백승종
4 h ·
김근수 선생의 <<로마서 주석>>(꽃자리, 2022)
오늘은 부활절이다(2022. 4. 17).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이런저런 세상사를 걱정하다가 김 선생님의 신간인 이 책을 떠올렸다.
알다시피 바울의 <로마서>를 칭찬하는 사람은 많으나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적다. 나도 바울의 글을 여러 차례 읽어보았으나 번번이 실패하였다. 회를 거듭해 읽을수록 바울이란 사람이 미워지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그의 극단적인 금욕주의가 내 마음에는 마땅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김 선생님의 <<로마서 주석>>은 바울과 나를 화해시키기에 족한 책이다. 아니, 나의 부족함을 일깨우는 양서이다. 이 책은 출발부터가 그동안 내가 읽은 책들과는 다르다. 저자는 신학적인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나와 같은 역사가의 궁금증을 달래준다. 김근수 선생은 바울이 로마서를 쓰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울은 로마 공동체에서 돈과 사람을 지원받고 싶었다. 바울은 예루살렘 공동체뿐만 아니라 로마 공동체에 자신에 대한 오해를 해명하고 호의를 얻고 싶어 로마서를 썼다.”
그랬었구나. 이것이 바로 바울의 저술 목적이었다! 외롭기 짝이 없었던 바울, 그는 로마서를 집필함으로써 난국을 헤쳐나가고 싶었다는 것인데, 과연 그의 목적은 달성되었을까. 아니란다. 로마서를 다 쓴 다음 바울은 원고 뭉치를 들고 동지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러나 바울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그는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되고 말았다. 바울은 그의 소망과는 달리 예루살렘에서도 로마에서도 공동체의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쓸쓸히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그리고자 한 예수의 모습은 무엇일까. 누구라도 대개 짐작하는 바이지만, 바울과 동시대를 살았던 신자들은 예수가 왜 십자가에 매달려 숨졌다가 부활하였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바울은 사람들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한 점의 의혹도 없이 이해할 수 있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김근수 선생님의 설명을 따라가노라면, 평소 내가 제대로 보지 못한 그림이 점차 윤곽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김 선생님은 <<로마서 주석>>에서 바울이 하느님 나라는 물론이고 가난한 사람들에 관하여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독일 성서학자들을 비롯해 대다수 성경 연구자들은 바로 그 점을 놓쳤다. 그들은 성경을 문헌학적으로 철저히 연구하고 있으나,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에 대한 예수와 바울의 관심을 크게 부각하지는 않는다. 로마서가 피와 눈물로 가득한 역사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 챈 것은 남아메리카의 해방신학자들이었다. 김 선생님은 해방신학의 관점에서 바울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였고, 이점이 <<로마서 주석>>의 백미(白眉)라고 생각한다. 부활절 아침에 김 선생님을 떠올리며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약한 사람을 배려하라는 바울의 뜻은 못들은 체하며 술담배나 고기 먹지 말자고 우기는 사람은 달은 못보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는 사람이다. 술담배 안한다고 거룩하거나 믿음이 강한 사람은 아니고, 술담배 한다고 거룩하지 않거나 믿음이 약한 사람인 것이 전혀 아니다.”
“서로 다른 생활 습관을 가진 사람들을 예수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대할 것인가. ... 바울은 두 가지 가르침을 우리에게 남겼다. 먼저, 서로 판단하지 말라. 그리고, 깨끗함과 깨끗하지 않음은 물건이나 사물 자체에 있지 않다. ... 바울은 약한 사람을 감싸고 강한 사람을 혼내는 입장을 택했다. 바울 자신이 강자에 속했지만, 바울은 강자를 비판하였다. ... 예수는 부자들을 수없이 사정없이 비판했지만, 단 한번도 가난한 사람들을 비판하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의 잘못이나 약점을 예수가 왜 몰랐겠는가. ... 예수의 말과 행동에서 보이는 놀라운 신비 중 하나다. 예수가 보여준 놀라운 신비의 길을 바울도 따라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