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의 즐거움
기자명 한국농어민신문 승인 2011.11.11 11:54 신문 1823호(2006.01.09)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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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위해 굶겠다고모인 사람들…
가벼워지는 몸과맑아지는 정신창자 비운만큼마음도 비워 세상사에 부대끼다보면 자신을 놓칠 때가 있는데 이럴 때 불현듯이 떠 올리게 되는 생각이 하나 있으니 유서 깊은 명언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위해 먹느냐”이다. 못마땅한 일을 견뎌내야 할 때마다 하는 자조 섞인 푸념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그런데 살기위해 굶겠다는 사람들이 있다.보다 잘 살기위해 굶겠다는 이 사람들과 나는 두 주째 함께 지내고 있다. 나는 굶지 않고 하루 세끼 꼬박꼬박 챙겨먹는 고로 이 무리들 중에서 제일 배부른 사람인 셈이다. 여러 날 굶어 피골이 상접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냄새가 폴폴 나는 만두를 가져가서 먹는 맛은 상상을 초월한다. 전라북도에서 제일 경관이 뛰어난 옥정호를 끼고 서 있는 임실군 환경교육관을 빌려 작년 12월 24일부터 1주일 동안 전국귀농운동본부 주관으로 단식수련이 있었고, 곧이어 대전에 있는 ‘평화의마을’이 주관하는 ‘새해영성단식수련’역시 1주일 기간으로 진행되고 있다. 두 행사에 다 나는 강사로 참여하였는데 우리 집에서 가깝다보니 내가 맡은 시간 외에도 집을 오가면서 여기서 머무는 시간이 많다. 이름 높은 선생님들이 하는 영성강좌는 새해 다짐을 하는데 더 없이 은혜롭다. 함석헌선생님을 모시고 씨알농장에 계셨던 김복관할아버지의 귀한 말씀도 들을 수 있었고 어제는 ‘풍경소리’를 발행하시는 김민해 목사님도 오셨다. ‘생명평화결사 탁발순례’중인 도법스님도 법문을 하셨다. 원광보건대의 요가선생님이 파트너요가를 지도하실 때는 사람들이 굶는 사람답지 않게 생기가 넘치기도 했다. 우리민족의학을 보급하고 계시는 정호진목사님은 사흘 전에 와서 한나절 강의를 했었다. 굶겠다고 모인 사람들은 신분과 지위의 높낮이, 남녀노소를 다 아우른다. 왜 굶는지 이유도 다양하고 참여하게 된 계기도 제 각각이다. 사랑에 실패하고 학교 성적도 형편없어진 어느 고등학생은 마음 좀 추스르기 위해서 왔다고 하여 참석자들을 배꼽잡고 웃게 했다. 첫사랑도 아니고 두 번째 사랑이란다. 이제 고 1인 그 남학생은 단식 끝내고 집에 돌아가면 자주 다투기만 하던 엄마와 꼭 화해하고 싶다고 했다. 중3인 여학생도 있다. 작년에 문경으로 귀농한 후배 부부도 여기서 만났다. 도시형 대안학교인 ‘이우학교’ 학부형을 만나 아는 사람들의 안부를 두루두루 주고받는 시간도 즐겁다. 전교조 현직 교사가 몇 분 계셔서 아이들 교육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뜻을 세우고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끊어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아름다운 일들을 만나게 된다. 이때 명상과 행공을 하면 가벼워지는 몸과 맑아지는 정신은 기본이고 세상일들이 투명해진다. 마음을 비우기 위한 방법 중에 창자를 비우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친구 중에서도 제일 끈끈한 친구는 배곯을 때 함께 한 친구라 하지 않던가. 한 두 끼도 아니고 며칠씩이나 배를 쫄쫄 굶어가며 맺은 인연들은 값진 삶을 살아가는 동반자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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