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1

希修 Shared with Custom < 내가 명리학 공부 그만 두고 불교에 올인하게 된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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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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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명리학 공부 그만 두고 불교에 올인하게 된 이유 >

(명리학 얘기를 몇 번 쓰긴 했었지만..) 사주 공부를 하게 되면 주위 가까운 사람들의 명식을 저장해 놓고서, 책에 무슨 이론이 나올 때 그 이론이 내 지인들의 실제 사례에도 정말 적용이 되는지를 확인하면서 공부한다. 잘 보는 분들은 물론 세세한 부분들까지 예측을 하겠지만, 내 경우엔 그저 그 사람의 전반적인 사회경제적 지위 (여러 경우들이 있고 예외도 있지만 음양의 전반적 조화가 나쁘지 않으면 대개는 세속적 관점에서도 비교적 편안한 삶을 살게 된다), 성향/개성, 그리고 어떤 대운이 도움이 되는 운이냐 안 되는 운이냐 이 정도 대충 '추측' ('판단'도 못 되는)하는 수준에서 공부를 그만 두었다.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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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순한 '詐欺'사기는 아니고 분명 뭔가의 '경향성'이 있긴 있고 삶과 세상을 들여다 보는 전혀 색다른 종류의 tool로서의 가치도 무시 못 하지만, '과학'이라 불릴 요건들은 다들 아시다시피 못 갖추고 있으며, 깊이 들어갈수록 이론도 계속 가지치기 해 가면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가 "시어머니도 몰라 며느리도 몰라"가 됨.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엔 사주 풀이가 60~70% 정도 맞는 듯 한데, 물론 99% 사주대로 사는 이들도 있고, 사주가 40%밖에 안 맞는 경우도 있음. 70%가 맞는다 해도 풀이의 어느 부분이 맞고 어느 부분이 틀리는지 알 수가 없기에, 30%의 오류 가능성을 무릅쓰고 그 풀이에 의지해 어떤 결정을 내린다는 건 너무 무모하다고 나는 생각. 그러니 현실적 효용 가치는 사실 작다고 느꼈음. (그래서 처음엔 당연히도 내 아이들의 사주를 가장 열심히 들여다 봤는데, 성격적 특성 정도 파악한 이후로는 아이들 사주도 안 봄. 필요이상의 선입견을 갖고서 아이들을 키우게 될까봐 걱정도 되고, 또 내 운명도 아닌 다른 존재의 운명을 감히 내가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들어서. 대신, 나도 아직 초보일 뿐이지만 애들에게 불교철학을 나름 깨작깨작 가르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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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위 사람들의 언행방식, 사고방식, 어떤 결정을 내리는 방식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나쁘다'거나 '비도덕적'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는 '합리성'에 비추어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런 경우들이 실제로도 나중엔 별로 바람직하지는 못 한, 그리고 때로는 주위 사람들까지 귀찮게 하거나 폐를 끼치는 결과로 귀결되는 일이 왕왕 있었음. 그러고서 그 사람의 명식을 보면, '아, 저 사람의 복이 이 정도밖에 안 되어서, 스스로 복을 피하고 문제를 좇느라 뜬금 없이 저런 결정들을 내렸었구나' 싶더라는. (물론 지난 일 돌아보며 내리는 판단은 끼워 맞추는 식이 되기 십상.) 
이 말은, 평소의 생각/언행 방식을 관리하면 복은 키우고 화는 줄일 수 있다는 얘기 - 어느 정도 한계 내에서. 이걸 사람들은 대개 착하게 산다, 마음을 다스린다, 라고 표현하지만, 나는 이게 그런 착함 혹은 정서의 문제라기 보다는 어디까지나 합리성, 즉 이성의 문제인 것 같더라는. 즉, 어떤 건물에 이미 치킨집이 있는데 그 건물에 또 치킨집을 내면서 '열심히 하면 난 잘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욕심은 '합리적 사고' 아닌 '소망 사고'일 뿐이며, 어떻게 해야 자신의 치킨을 차별화하고 어떻게 가게 운영을 효율화하는지에 있어 '섬세'를 넘어서는 '정밀'이 없다면 손발만 아무리 '열심히' 움직여 봐야 뻔한 결과이고 아무리 '착해' 봐야 무소용. 그리고 아무리 여기 저기 기웃거려 봐도, 'new 업 짓기' (과거 업이 소금이라면 현재 업은 물. 물의 양에 따라 짠 맛의 농도가 달라짐)인 '생각/언행 방식의 관리'에 있어 부처님의 가르침보다 더 합리적이고 더 정교한 프로그램을 나는 못 찾겠더라는. (힌두교, 도교, 대승불교가 뒤섞인 소위 New Age 영성이 당장 기분 up 시키는 데에는 최고이지만, discipline 으로서의 체계는 1도 없음.)


(3) 물론, 자신의 노력으로 통제 불가능한 '운'이라는 요소를 절대 무시 못 하며, 어떤 집안에서 어떤 부모에게 어떤 건강상태나 적성/능력을 갖고 태어나는지 자체가 실은 그 사람 삶의 윤곽 형성에 이미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데, 이런 것도 사주에서 나오더라는. 예를 들어, 아버지가 존경할 만한 인격이 전혀 아니라 평생 쌓인 상처와 한이 많은데, 막상 사주를 보니, 아버지가 아예 딴살림 차리고서 원가족에게는 생활비 한 푼 안 주어도, 엄마가 벌어오는 돈 아버지가 노름이나 사업으로 다 날려도 하나도 놀랍지 않은 사주여서, 아버지가 최소한 딴살림 안 차리셨고 월급봉투도 집으로 갖고 오셨다는 자체만으로도 실은 감사해야 하는, '객관적으로'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충분히 이해 가지만 사주를 보면 "그래도 아버지로서는 그만큼이나마 최선을 다 하신 거네요. 아버지께 감사하세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경우도 있더라는. 

다른 예를 들어, A는 그 누구와 결혼을 해도 심지어 '놀던' 사람과 결혼을 해도 결혼하고 나면 그 사람이 최소한 나에게는 성실하고 자상한 배우자가 되고, 반대로 B는 그 누구와 결혼을 해도 아무리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과 결혼을 해도 막상 내게는 안 좋은 배우자가 되어 버리고 마는, 그런 얄궂은 운명도 있으며, 자신의 사주가 얼어죽을 듯 너무 추워 그래서 여자를 밝히는 남자의 경우엔 도덕만 갖고 그를 비난하기가 어렵더라는. (모든 바람둥이들에게 이런 사정이 있다는 얘기는 결코 아님.) 

그렇다고 '그럴 수 밖에 없어서' 그렇게 바람둥이로 사는 것이 과연 미래에 혹은 내세에 본인을 위한 최선인가?하면 이건 또 전혀 별개의 얘기. 그러니, 최대한 바르게 살되, 타인에 대한 도덕적 판단에는 신중하고 겸허해야 할 것 같더라는. 그러니, '살면서 불평이나 원망할 일은 하나도 없구나!' 싶고 (명리학 공부의 최대 효용. 남 원망할 필요 없다는 건 개인적 종교적? 차원의 얘기이고, 사회 구성원으로서는 여전히 비판도 하고 필요하다면 고소도 하고 그래야 한다고 나는 생각 - personal한 감정 없이!), 이런 타고나는 '운'이 神의 뜻이라기 보다는 업 (전생에 지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짓고 있는) 때문이라고 보는 설명이 내게는 좀더 타당한 듯 들리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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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그 전엔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들 중에서 좀 더 설득력 있게 들리는 철학'일 뿐!이었던 불교에 확신이 생기면서 올인하게 되더라는. (근데 종교적 문제에 관심 많은 나의 이런 성향이 사주에도 나오고, 집중하는 시기도 대운과 우연히? 맞아 떨어지니 또 신기하달 밖에.


 이름에 쓰는 '수'는 秀나 壽가 대부부인데 修를 쓴 것도 아마, 작명해 주신 분이 이런 성향을 미리 보셨기 때문 아닐까 싶기도 하고, 나도 아주 옛날부터도 내 이름이 이유 없이 걍 좋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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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예를 하나 더 들자면, 어떤 유명 배우가 자살할 당시의 대운이 내가 39~48살일 때의 대운과 같은 형국이었음 - 홍수가 나서 산이 붕괴하는. 근데 그 분은 유명인이다 보니 온갖 고통을 더 심하게 겪다가 그런 선택을 했고,

나는 아무 것도 안 하고 (난 돈관리도 남편시킴 - 그런 거 신경 쓰는 거 귀찮아서리) 전업주부로 집에만 있다 보니 사고 칠 일 자체가 아예 없고, 걍 소소하게 부리는 오지랖에서 상처받고, 의사들조차 알아내지도 어떻게 해 주지도 못 하는, 죽을 병은 아니지만 또 엄청 짜증나는 희한한 증상들과 시체 수준의 저질 체력 때문에 계속 괴롭다가, 그래도 운동 열심히 해서 어찌 어찌 겨우 넘겼음. 이 말은, 운이라는 것을 무시도 못 하지만, 노력과 근신에 따라서는, 동일 운에 누구는 자살도 하고 누구는 골골 하면서도 큰 사건/사고 없이 넘길 수도 있고 그렇다는 얘기.

.그러니 여러분, 塞翁之馬와 盡人事待天命을 늘 기억하면서 산다면

사주같은 거 안 보셔도 됩니다.

다만, 종교든 철학이든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사고/언행 방식만큼은 늘 점검하셔요.



그냥 막연히 '착한' 게 중요한 게 아니고, 학문적 지식을 많이 쌓는 것과도 좀 다르고,

'사고/언행 방식의 관리' ('긍정적 vs. 부정적' 뭐 이렇게 단순화만도 할 수 없는)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얘기는 재미로만 들으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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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옹지마 塞翁之馬

1.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서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말. 옛날에 새옹이 기르던 말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나서 노인이 낙심하였는데, 그 후에 달아났던 말이 준마를 한 필 끌고 와서 그 덕분에 훌륭한 말을 얻게 되었으나 아들이 그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졌으므로 노인이 다시 낙심하였는데, 그로 인하여 아들이 전쟁에 끌려 나가지 아니하고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중국 ≪회남자≫의 ‘인간훈(人間訓)’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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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인사대천명  [ 盡人事待天命 ]

(다할 진, 사람 인, 일 사, 기다릴 대, 하늘 천, 목숨 명)

요약 -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후 결과는 운명에 따름.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후에는 오직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이 말의 중심은 앞부분에 있지 뒷부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한 후에는 후회하거나 미련을 갖지 말고 차분히 기다리라는 말이니까요.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이라고도 하는데, 이때 수(修)는 ‘행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이와 비슷한 표현이 하나 더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 - (다할 진, 사람 인, 일 사, 기다릴 대, 하늘 천, 목숨 명) (고사성어랑 일촌 맺기, 2010. 9. 15., 기획집단 MOIM, 신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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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인사대천명 [ 盡人事待天命 ]

요약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하고 나서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뜻의 한자성어.

盡 : 다할 진

人 : 사람 인

事 : 일 사

待 : 기다릴 대

天 : 하늘 천

命 : 명령할 명



《삼국지(三國志)》의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에서 유래한 말이다. 중국 삼국시대에 유비(劉備)의 촉(蜀)나라가 오(吳)나라와 연합하여 위(魏)나라와 적벽(赤壁)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촉나라의 명장 관우(關羽)는 제갈량(諸葛亮)으로부터 위나라의 조조(曹操)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예전에 그에게 신세진 일이 있어 차마 죽일 수 없었다. 결국 관우는 화용도(華容道)에서 조조의 군대를 포위하고도 퇴로를 열어주고 달아나게 하였다. 제갈량은 다 잡은 적장을 살려준 관우를 처형하려 했지만 유비의 간청으로 그를 살려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문을 보니 조조는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므로 일전에 조조에게 은혜를 입었던 관우로 하여금 그 은혜를 갚으라고 화용도로 보냈다. 내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쓴다 할지라도 목숨은 하늘의 뜻에 달렸으니, 하늘의 명을 기다려 따를 뿐이다.[修人事待天命]"



애초에 제갈량은 관우가 조조를 놓아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우에게 조조를 죽이라는 명을 내렸다. 관우에게 조조를 죽일 계략을 알려주는 것이 자신의 소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고 조조의 생사는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진인사대천명은 이처럼 사람이 일을 행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뜻의 ‘수인사대천명’에서 비롯되었으며, 사람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어떤 일이든지 노력하여 최선을 다한 뒤에 하늘의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하지 않고 요행을 바라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비슷한 뜻으로 모사재인성사재천(謨事在人成事在天)이라는 성어가 있다. 명(明)의 나관중(羅貫中)이 지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나오는 고사로, 촉(蜀)나라의 제갈량이 숙적인 위(魏)나라의 사마의(司馬懿)와 공방전을 벌이던 때였다. 제갈량은 호로곡(葫蘆谷)이라는 계곡으로 사마의의 군대를 유인하고 불을 질러 군대를 몰살시키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내려 사마의 부대는 살아날 수 있었다. 이에 제갈량이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며 말하기를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에 달렸으나 일을 성공시키는 것은 하늘에 달렸도다.(謨事在人, 成事在天.)”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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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생각하게 만드는 점이 많아 (하고 싶은? 생각나는?) 이야기가 많은데 시간이 너무 결릴 것 같아 시작을 못하겠네요.

그래도 시작을 해 보자면,

1] 의미가 있는 이름을 지어주신게 인생에 영향이 클 수가 있다는 것.

2] 그리고 저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운명에 대하여 관심이 전혀 없었다는 것.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원망이나 한이라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 그러나 한국에는 <한>이라는 것이 많은 개인들, 그리고 사회나, 역사까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그건 분석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왜 분석을 하려고 하는가 하면, 사람들의, 그리고 사회의 자기분석을 도아, 마음의 평화를 가지고 오게될지 않을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2] 원망이나 한 때문은 아니지만, 저는 20대에 (우울증, 고독으로?)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을 했다는 것. (이 때는 이미 카나다에서 이민자로서 대학 생활) 그런데 느낀 것이 부모는 일제시대에 일본대학 출신으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고, 자신들이 자식들의 교육이나 장래를 위해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민자체를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라고 했으니), 나는 not happy (불행이라는 표현이 맞을까?) 라고 생각하여, 자살까지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자식을 갖지 않아야 겠다고 까지 생각하게 된 것. 이 세상에 생명을 가저오는 것은 불행을 늘일 찬스를 늘이는 것이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생명을 더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것.  그러나 그 후의 인생의 코스는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요.

3] 그런데 왜 나 자신이 그런 상태로 되었나는 아직도 잘 이해를 못하고 있고, 언제인가 죽기전에 그 퍼즐을 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걸하기 위해서는 가족사의 정신분석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선은 부모, 특히 아버지의 정신분석. 그걸 위해서는 그가 살아온 시대와 사회배경, 그의 부모 (나의 조부모)의 분석도 필요할 것 같고요. 

4] 자기분석을 위해서는 불교가 유용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공부하려고 하는 것이고요. 그런데 사회적인 형성이라는 면에서는 사회학이 유용하겠지요. 둘을 합치면 더 유용할 것 같습니다. 

5] 저도 하늘의 뜻보다는 업이라는 풀이에 끌리는데요, 개인의 전생에 대하여는 모르겠고, 부모의 업이 자식과 관계가 될까에 대한 분석에 관심이 있습니다. 대대로 물려가는 정신문제(?)가 있는가, 나에게 있는가? 그런 의문,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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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아~ 그러시군요..
저는 정말 명리학의 알파벳 정도 공부한 수준이라 자세히 보지는 못 합니다만,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취약할 수 있는 부분들이 역시 사주에 나옵니다. 특정시기동안에만 우울하셨다면, 십중팔구 대운의 영향이었을 테구요.

요즘은 조부모나 부모가 오랜 기간 특정 종류의 정서상태로 생활하면 그게 후세에게도 유전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긴 하던데, 이게 얼마나 과학적으로 증명된 얘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명리학에서는 팔자에도 유전되는 면이 있다고 말하기는 합니다. (본인 사주만 놓고서도 조부모, 시댁식구들, 이모, 삼촌, 손사손녀 등에 대해서까지 정보를 유추할 수 있고, 잘 보시는 분들은 실제로 부모 사주의 특징을 대충 맞히시더라구요.) 그런데 또 어떤 면으로는 이게 '신기'한 얘기가 아닌 것이, 힌두교에서도 불교에서도, 본인이 가진 업에 따라 그 '시나리오'에 맞는 부모를 선택해서 어머니의 몸으로 들어온다고 말하거든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예를 들어, 내 부모에게 심장병이 있어 나 역시 '부모 때문에!' 그 질병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고, 내가 가진 업/시나리오상 내가 심장병에 걸려야 하기에 그런 조건을 가진 부모/환경을 내 스스로 선택한 것이죠.

 내가 어린 나이부터 가족들 생계를 책임질 팔자라면 (연예인들 중에 종종 이런 경우들이 있죠) 나는 하는 사업마다 실패하는 부모를 선택하여 이승으로 오게 됩니다. 그렇기에 '남 원망할 것 없다'는 것이죠. 

이 관점에 의하면, 부모와 조부모의 정신분석은 환경/緣에 대한 설명일 뿐 보다 근본적인 因에 대한 규명일 수는 없는 것이구요. 암튼, 원망/한이 많아 자신의 삶과 화해하지 못 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특히 명리학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하는 편입니다.

아시다시피 불교에도 워낙 많은 종파/학파들이 있고 입장도 각기 다릅니다만.. 부처님은 '탐진치 질병'으로 고통받는 중생들을 위해 처방하는 의사라고 스스로를 비유하셨고, 타니사로 스님은 비행기의 제작/작동 원리를 이해한 후 비행기를 정비하는 일에 불교수행을 비유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대국을 거치면서 스스로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시켰듯이, 그렇게 자신의 의식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불교수행인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 공부이기도 하구요. 이것을 '정신분석'이라고 부른다면 그렇게도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물론 실제로 정신과 의사들이 하는 분석과는 다르지만요.

서당개 풍월 읊는 수준으로 몇 말씀 드려 보았네요. 앞으로도 종종 댓글로 이렇게 대화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