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24

일본, 위안부 피해 여성 국가배상 호도… 받은 사람도 못 받은 사람도 상처 - 김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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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자료]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 1

국민기금 위로금이 사죄라고?

일본, 위안부 피해 여성 국가배상 호도… 받은 사람도 못 받은 사람도 상처

- 김부자(도쿄외국어대대학원 교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주장은 법적으로는 1965년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으로 해결했으며, 인도적으로는 1995년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하 국민기금)으로 해결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국민기금에 대해서는 한국에 그 실체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는 미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는 국민기금으로 위안부 문제에 성의를 표했다”고 강조했다(홋카이도 신문 9월 28일자). 앞서 아사히신문은 8월 29일자에서 “일본은 (위안부 문제가) 법적으로 해결됐음에도 국민기금으로 보상하려고 노력했다. 평화헌법을 가진 일본의 전후 노력을 알아줬으면”이라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국민기금이란 무엇이며, 피해자에 대한 사죄 혹은 보상으로 볼 수 있는지 살펴보자. 1993년 8월 일본 정부는 위안부제도에 대한 일본군의 관여와 강제성을 인정하면서 ‘사과와 반성’을 표명한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 그리고 사과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사죄를 표명하는 방식이 ‘보상’이 아니라 ‘보상에 대신하는 조치’였다는 점이다. ‘이미 법적으로는 문제를 해결했다’고 주장해온 일본 정부가 1995년 7월 19일 도의적 책임을 지는 ‘츠구나이(償い·위로) 사업’으로 설립한 것이 바로 ‘보상에 대신하는 조치’인 국민기금이다.

그 내용은 위안부제도 피해자를 대상으로 △민간모금에 의한 츠구나이금(200만 엔) △총리의 사과편지 △국고로 의료복지 지원 사업(한국에서는 300만 엔 규모)을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국민기금에 따르면 일본 국민에게서 실제로 모금한 총액은 약 5억6500만 엔(목표 10억 엔), 국고에서 지출하기로 한 의료복지 지원금은 7억5000만 엔이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 필리핀, 대만 피해자 285명에게 위 3가지 조치를 모두 취하고, 네덜란드 피해자 79명에게는 총리의 사과편지와 의료복지 지원만 실시했다(2002년 종료). 인도네시아에서는 고령자사회복지추진사업을 시행했으며(2007년 3월 해산), 중국과 북한, 동남아시아 국가 피해자들은 제외됐다. 구체적인 국가별 내역은 공개하지 않았으나 9월 28일자 홋카이도 신문은 한국 정부가 인정한 위안부 피해자 234명 중 61명이 ‘츠구나이금’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한국 위안부 61명 ‘츠구나이금’ 수령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츠구나이금’이라는 일본말의 애매함이다. 한국의 주요 언론보도와 출판물에서 이를 ‘보상금(補償金)’ 혹은 ‘보상(補償)’이라고 번역한 경우가 적지 않은데, 엄연한 오역이다. 최근 한국의 한 일간지는 “일본 정부는 아시아 여성기금을 통해 군위안부 피해 여성에게 보상하려 했지만 당사자들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정대협)가 일본 정부의 관여와 사죄와 보상을 법으로 정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되면 일본 정부가 국민기금을 통해 ‘보상’하려고 했음에도 피해자와 운동단체가 반대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국민기금에 의한 ‘츠구나이금’은 민간에서 모금한 것으로 ‘보상에 대신하는 조치’라고는 하지만, 일본 정부에 의한 개인 보상(국가배상)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러니 일본어 ‘츠구나이금’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는 ‘위로금’ 혹은 일본어 발음 그대로 ‘츠구나이금’이라고 해야 한다.

짚고 가야 할 점이 또 있다. 위에서 결정한 3가지 조치, 즉 위로금과 총리의 사과편지, 의료복지 지원을 세트로 실시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총리의 사과편지는 피해자 모두에게 오지 않고 위로금을 받은 피해자에게만 전달됐다. 위로금을 받지 않은 피해자는 사죄 대상에서도 제외된 것이다.

한국이나 대만에서는 국민기금의 모호한 성격 때문에 대다수 피해자가 위로금을 거부했다. 홋카이도 신문이 보도한 대로 한국인 피해자 234명 중 61명이 위로금을 받았다면, 4명 중 3명이 이를 거부한 셈이다. 1991년 한국에서 위안부 문제를 최초로 고발한 김학순 씨는 1997년 세상을 뜰 때까지 국민기금에 단호히 반대했다. 또 다른 피해자 강일출 씨는 “일본 정부가 져야 할 책임을 국민에게 미루고 있다. 국민에게서 돈을 모아 나눠준다는데 그건 이상한 이야기다. 어떤 사람은 받고 어떤 사람은 안 받고 사람들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 일본 정부는 왜 이런 짓을 하는가”라고 말했다(2009년 11월 28일).

위로금 전달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다. 1997년 국민기금 측이 피해자들의 거부에도 위로금 전달을 강행하면서 위로금 사취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피해자들이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점을 악용한 피해자 주변인이 정부로부터 받은 피해자인정증을 복사하는 등의 방법으로 국민기금 측으로부터 위로금을 받아 빼돌린 것이다. 위로금을 받은 적 없는 위안부 피해자 심달련 씨는 제삼자가 위로금을 챙겼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국민기금 측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으나 계속 거부당했다. 그러다 국민기금이 해산된 2007년 3월 말에야 일본 변호사로부터 심씨의 위로금이 김모 씨 계좌로 입금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심씨는 계좌주인 김씨가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국민기금이 피해자 본인 확인을 게을리한 결과인 만큼 비슷한 사례가 더 있을 개연성이 높다.

한국 정부는 법적 책임 요구

국민기금의 위로금은 피해자가 요구한 국가보상이 아니며, 총리의 사과편지가 위로금을 받은 피해자에게만 한정됐다는 점, 위로금을 둘러싸고 피해자 혹은 피해자와 지원 단체 사이에 균열을 초래했다는 점, 결정적으로 위로금을 받지 않은 피해자가 대다수며, 위로금을 받은 피해자조차 그 사실을 공표할 수 없어 궁극적인 ‘존엄의 회복’을 가져오지 못했다는 점에서 일본 정부의 사죄라고 보기 어렵다. 위로금을 받은 사람이나 받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 슬픔과 혼란, 노여움과 불신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민기금은 일본 정부가 법적 해결을 촉구하는 피해국의 요구나 유엔 등의 권고를 등한시하는 ‘알리바이’로 작용했다. 위로금 지급 실적 올리기에는 분주하면서 정치인이나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언동에는 침묵했다. 일본 내 여성·시민단체들이 입법 해결을 요구하는 운동을 전개했으나 이를 막은 것도 국민기금이다.

유엔 인권소위원회 특별조사관 맥두걸은 보고서(1998)에서 “피해 여성에게 법적 배상을 한다는 일본 정부 책임이 국민기금으로는 달성되지 않았다”며 “국민기금의 위로금 지급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으킨 범죄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2007년 7월 미국 하원이 채택한 일본 정부에 대한 위안부 사죄 결의안도 국민기금에 대해 “공인 및 민간인의 노력과 정열은 인정하나 근본적인 해결이라고는 볼 수 없다”면서 “명쾌하고도 애매함이 없는 형태로 공적 사죄와 역사적 책임을 다할 것”을 촉구했다. 같은 해 12월 유럽연합(EU)은 일본 정부 측에 역사적, 법적 책임을 다할 것을 요청하면서 피해자 및 그 유족에게 배상할 것, 개인이 정부에게 배상을 요구하는 권리를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 정부는 1997년 1월 국민기금이 관계자를 서울에 파견해 기금사업을 강행하자 “너무나 유감스럽다”며 불쾌감을 표명했다. 이듬해 4월에는 위로금을 거부한 피해자에게 지원금을 지급할 것을 결정하면서 국민기금에 사업 중지를 요구했다. 한국 정부는 피해자들의 의사를 반영해 국민기금에 반대해왔고, 지금은 명확하게 일본의 법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국제사회도 국민기금이 사죄로서 불충분하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며, 일본 정부 측에 피해자 개개인에게 사죄와 법적 배상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피해자가 바라는 사죄란 일본 정부의 국가배상을 동반하는 사죄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주간동아 2012.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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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자료]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기금 3

* 기부자로부터의 메시지 

- The Asian Women's Fund 아시아여성기금

아시아여성기금의 호소에 부응해 기부해 주신 여러분들이 메시지를 곁들여 보내 주었습니다. 이 메시지에는 (일본)국민의 심정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1997년 기금의 팸플릿에서)

<인간으로서의 사죄>

-논의가 있어도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조금이나마 협력합니다.

-위안부였기 때문에 불행한 삶을 보내신 분들에게 부디 정중한 사과와 함께, 앞으로의 행복을 빌어 드리고 싶습니다. 충분한 도움은 못 드리지만 하루 2시간 정도 집에서 할 수 있는 자원봉사가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조속한 보상을 마음으로부터 기원합니다.

-이러한 아시아여성기금이 생기는 것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인으로서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습니다. 기쁜 일입니다.

<조금씩이라도. 할 수 있는 일부터>

-전쟁 당시, 저는 어린아이였습니다만, 나중에 '종군위안부'의 존재를 알고, 희생이 되신 여성들의 억울함을 헤아리면서, 이러한 무모한 시책을 실행한 일본군대에 대한 분노로 몸이 떨려왔습니다. 이 죄의 보상은,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이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구체적 행동의 일환으로 이 기금의 의의를 인정합니다.

-상대국의 입장, 일본정부의 이유도 있겠지만, ODA(정부개발원조)보다도 우선적으로 보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안부였던 분들의 명예회복에 도움이 되는 형태로 활용해 주었으면 합니다. 동시에, 이것으로 일본정부 책임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 규명 등, 각종 노력을 계속해 나가도록 요청해 주십시오.

<전쟁을 모르는 젊은이로부터>

-이 나라의 국민인 이상, 이 나라의 과거의 잘못, 역사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종군위안부로서 희생되신 여러분께 일본인으로서, 인간으로서 마음으로부터 사죄 드립니다. 아시아여성기금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그 전쟁을 모르는 27세의 젊은이로부터.

- '민중의 전쟁책임'을 자각하며 참여합니다.

<제대로 된 과거 청산을>

-'종군위안부'로서 강요 당했던 여러분들에게, 저는 깊이 머리 숙여 사죄 드립니다. 이 분들에 대한 보상은 '국가'가 '국가'로서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지금, 노령이 되신 분들에게 남겨진 시간은 적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저는 원칙론을 거두어 들이겠습니다. 일본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보상을 위해 사용해 주시길 바라며 송금합니다. 이 분들에 대한 고통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이러한 역사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절실하게 생각합니다.

<군인연금 일부를 기부>

-과거 병사였던 사람으로, 군인 연금의 일부를 기부합니다. 그러나 한마디 말씀 드리자면, 전쟁터의 심리는 현장에 있던 사람밖에 이해할 수 없는 것. 가볍게 보지 말아 주십시오.

<전후50년, 새로운 출발점에>

-국가의 사죄와 보상이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를 향한 과정으로의 민간기금에 찬성합니다. 얼마 안되지만 가족 4명의 모금입니다. 활용해 주십시오. 제 아버지는 지금 77세로, 만주(満州), 오키나와(沖縄)에서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기금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아시아 각국과의 좋은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아주 조금이지만 협력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참혹한 일을 당한 여성은 오늘날도 많이 있습니다. 힘내십시오.

-전쟁책임의 처리뿐만 아니라, 지금도 어떤 무책임한 일본인 남성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는, 아버지가 없는 아시아 국가의 아이들을 위해서도, 구원의 손길을 부탁 드립니다.

(2007년 기금 홈페이지로부터)

아시아여성기금의 뉴스를 보고, 처음에는 먼 일처럼 생각했지만, 열심히 활동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여성을 위해 열심히 해 주셨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성에게 있어 대단히 마음 든든한 활동이므로 계속해 주셨으면 합니다. 다양한 프로젝트가 좋은 방향으로 발전되기를 바랍니다.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神奈川県川崎市)∙여성)

위안부였던 분들의 심정을 생각하면 가슴 아픔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아주 적은 금액이지만,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사죄와 보상의 마음을 보내드립니다. (도쿄도 스기나미구(東京都杉並区)∙여성)

전쟁에 의해 얼마나 많은 여성이 상처 입고, 남자들의 폭력으로 심신 모두 엉망진창이 되었는가를 생각하면, 더더욱 '평화'의 중요성, 소중함, 두 번 다시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 남성의 폭력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강해졌습니다. (도쿄도 스기나미구(東京都杉並区) ∙여성)

저도 소년시대 전쟁을 경험했습니다만, 당시를 되돌아보면서, 적지만 기부를 합니다. 부디, '위안부'였던 분들이 즐거운 여생을 보내실 수 있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지바현 나라시노시(千葉県習志野市)∙남성)

'위안부'였던 분들에 대한 보상을 위해 사용해 주십시오.(사이타마현 우라와시(埼玉県浦和市)∙여성)

두 번 째입니다. 일본국민으로부터 기금을 모금하고 있다는 것에 의의가 있으며, 이런 점이 이해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십시오. (쿄토부 나가오카쿄시(京都府長岡京市)∙남성)

많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드디어 취직이 돼서 협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쿄도 시부야구(東京都渋谷区)∙남성)

침략전쟁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개인의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비참한 죽음과 고통, 슬픔을 가져온 것을, 우리 일본인은 직시하고 후세에 전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쿄도 나카노구(東京都中野区)∙남성)

적지만 희망하시는 '위안부'였던 여성분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전달되기를 기원합니다. (2001년 2월19일 도쿄도 스기나미구(東京都杉並区)∙여성)

힘든 시대를 헤쳐 오신 분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약소하지만, 제 마음을 받아주시면 기쁘습니다. (지바현 마쓰도시(千葉県松戸市)∙남성)

'기금뉴스'를 받았습니다. 반성과 보상의 사업은 힘든 일이라 사료됩니다. 저도 중국에 2년간 종군했습니다만, 다행히 귀국을 할 수 있어서 지금 80살입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약소하지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이타마현 오가와쵸(埼玉県小川町)∙남성)

일본인이 '위안부'였던 분들에게 저지른 일은 어떤 죄보다도 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소녀들에게 평생 가도 지울 수 없는 정신적인 고통과 육체적 고통을 주었으며, 전쟁의 피해자가 되어 비참한 일을 당한 여성들. 그 사실을 지금 살아 있는 우리들은 더욱 더 알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제대로 전하고 바른 교육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분들의 마음의 무거운 짐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질 수 있도록, 살아 있는 동안에 적으나마 보상, 사죄와 사죄금을 전해 주십시오. 신속하며 오랫동안 지속적인 활동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홍보를 더욱 확대해 모금액∙기한도 늘려 주십시오.(도쿠시마현 고마쓰시마시(徳島県小松島市)∙여성)

아시아여성기금의 활동에 경의를 표합니다. 번영 속에서 과거를 직시하지 않는 사상이 확산되고 있지만, 인간의 존엄, 평화, 행복과 삶에 대해 서로가 깊이 생각하고, 과거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는 것도 21세기가 진정으로 사람들의 세기로서 아시아 전체가 공생하며, 협력해야 되는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안되지만 세라초(世羅町)관청 직원들의 모금을 보내드리오니, 보탬이 되면 기쁘겠습니다. (히로시마현 세라쵸(広島県世羅町)∙관청)

정말 적은 금액이지만 송금합니다. 저는 4급 장애인으로 병역의 경험은 없습니다만, 전쟁 당시의 일은 잘 기억하고 있으며, 마음 아파하고 있는 한 사람입니다. (오사카부 가도마시(大阪府門真市)∙남성)

수고 많으십니다. 지방에서 조금씩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시즈오카현 가케가와시(静岡県掛川市)∙남성)

입원 때문에 송금이 늦어졌습니다. (오사카부 히라카타시(大阪府枚方市)∙남성)

기본적으로는 일본정부가 보상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 독일에서는 유태인의 홀로코스트 보상을 정부와 관련 회사∙기업이 했다고 들었습니다. 또 미국에서는 전시중 일본인 강제수용에 대해서 뒤늦게나마 보상을 했습니다. 일본은 일본국적의 병사들에게만 은급을 지급하고 오키나와를 비롯해 피해를 입은 민간인에게는 일체 보상하지 않았습니다. 조금이지만 기부합니다. (오사카부 오사카시(大阪府大阪市)∙남성)

'위안부'였던 분들께 바칩니다. 부디 우리 일본인을, 그리고 저희 선조가 저지른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여러분들의 마음의 상처가 하루라도 빨리 치유되고, 하느님께서 평안을 주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사이타마현 우라와시(埼玉県浦和市)∙여성)

앞으로는 아름다운 그림을 보고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평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기를 마음으로부터 기원합니다. (오카야마현 와게쵸(岡山県和気町)∙여성)

지난 3일, 아내가 70살로 생을 마쳤습니다. 공양이라 생각하고 기부합니다. 전세계 여성에게 평안과 안식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福岡県福岡市)∙남성)

소액이지만 모금합니다. '사과금'의 1인당 금액은, 그 사람의 인생을 짓밟은 데 비하면 얼마 되지 않겠지만, 일본인의 양심을 증명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열심히 해 주십시오. (미야기현 센다이시(宮城県仙台市)∙남성)

공민관 창구에 모금함을 설치해서 모금했습니다. 소액이지만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에 보내드립니다. (후쿠오카현 나라하마치∙공민관(福島県楢葉町•公民館))

돈으로 보상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神奈川県川崎市)∙여성)

서울에 있는 아들이 부탁해서 송금했습니다. (오카야마현 오카야마시(岡山県岡山市)∙여성)

지난 달은 사정이 별로 좋지 않아서 송금하지 못했습니다. 계획한 2개월 분이니 받아주십시오. (에히메현 단바라쵸(愛媛県丹原町)∙남성)

보상사업에 참여합니다. (2001년4월24일 이바라기현 도리데시(茨城県取手市)∙남성)

이번에 '남자와 여자의 인권'이라는 테마로 DV, 아동학대에 대해 4회 연속 세미나를 처음으로 개최했습니다. 이 때 입구에 모금함을 설치했습니다. (이바라키현 기타이바라키시(茨城県北茨城市)∙여성연맹)

일본인의 책임으로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사람의 작은 정성입니다. 활용해 주십시오. (지바현 사와라시(千葉県佐原市)∙남성)

조금이라도 마음이 평안해지기를 기원합니다. (아이치현 도요하시시(愛知県豊橋市)∙여성)

힘들 것으로 생각되던 사업이 여러분들의 성의 있는 활동으로 인정 받게 된 것을 기쁘 게 생각합니다. (도치기현 우쓰노미야시(栃木県宇都宮市)∙여성)

소액이지만, 조금이라도 일본이 저지른 죄의 보상이 되길 바라며… (니가타현 아라이시(新潟県新井市)∙남성)

역시나 공평한 조사와 국가에 의한 정식적인 사죄배상을 희망합니다. 그리고 깨끗하게 된 다음 재출발 하고 싶습니다.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熊本県熊本市)∙남성)

얼마 안됩니다만, 문화제에서 모금을 해서 보내드립니다. (이바라키현(茨城県)∙고교자원봉사부)

*출처: The Asian Women's Fund 아시아여성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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