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1

希修 April 2018 - Apr 2020 命理學 공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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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20 April 2018  · Shared with Public

< 命理學 공부 이야기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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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 평생토록 끊이지도 변하지도 않고 이어져온 관심/호기심 분야가 바로 '영성'인데, 11~12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 세계에서 3차원도 완벽히 이해 못 하는 인간의 제한된 이성과 온갖 착각을 일으키는 왜곡된 감각을 갖고서 우주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고는 감히 기대도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 인.간.끼.리. 상대할 때는 서로의 공통분모인 이성과 감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최.선.이라 생각), 다만 혼자 놀 때는 이 이상 재밌고 이 이상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일을 발견 못 했을 뿐. 그러나, again 인간의 제한된 이성과 왜곡된 감각으로는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결국 모든 것이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일 뿐이기에 "아무 것도 100% 믿지 않고 그 무엇도 완전히 무시하지도 않는다"가 신조.


 (드루킹 사건으로 "옴마니파드메훔"과 송하비결 비웃는 얘기들이 요즘 페북에 자주 보이는데, "옴마니파드메훔"과 송하비결은 비웃음의 대상이고 불경, 기독경과 "내 탓이오" 기도문은 존중의 대상이라고 나는 생각지 않음. 교리의 수준 차이라는 것이 물론 있지만 이 판단도 상대적일 뿐. '진리'라는 것이 있다면 그게 '다수결'로 결정될 일 역시 아니고.) 


하여간 기독교, 불교, 힌두교, 도가철학과 뉴에이지 영성까지 표면만 살짝 훑고 결국은 한 달 전 명리학에 입문. (물론 명리학뿐 아니라 모든 초자연적 현상들에 대해 어릴 때부터 관심은 늘 다분했음.) 서당개도 3년은 되어야 풍월을 읊는다는데 명리학 알파벳도 아직 마스터 못 한 단계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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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철학과 종교가 "너 자신부터 제대로 알라"고 가르치지만 이게 쉽지가 않은 바, 그래서 주위의 객관적인 피드백이 필요한데, 내게 피드백을 주는 사람들이 아무리 정직 정확하고자 해도 그들 역시 제한된 이성과 왜곡된 감각 게다가 각자 자신의 감정/입장에 의해 덧칠까지 된 견해일 뿐. 


그래서 난 일단은 사주라는 것을 '삶이라는 집을 지어올리기 위한 토대이며, 남탓하기 전 자신을 반성하기 위해 비춰보는 거울'로 생각하기로. 마치 건강관리를 위해 혈액검사 결과를 참고자료로 삼듯이. 그러나 명리학 역시 인간의 제한된 이성과 왜곡된 감각으로 만든 이론틀인지라 100% '맞는' 것도 미래까지 세세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며, 이 거울의 어느 부분에 어떤 색깔의 때가 묻어 있고 어느 표면이 어느 만큼 휘어 있는지도 우리의 이성과 감각으로 알 수 없을 것임을 기억하고자 함. (명리학이 '맞지' 않는 이유를 분석한 책을 먼저 읽은 이유.) 현재 내가 발견하는, 명리학의 또 다른 효용으로는, '타인을 자신만의 잣대로 판단/평가하면 안 된다'는 것을 누구나 머리로는 알면서도 실천 못 하지만, 명리학을 공부하면 나의 가치관/취향에 근거하여 상대를 보기보다 '저 사람은 어떤 모양의 그릇을 타고 났기에 저런 언행이 나오는가?'에 관심을 갖게 되며, 이건 다시 말해 '판단'/'평가'보다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에 대한 '이해'에 노력/집중하게 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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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자면, 명리학의 철학적 바탕이며 한의학을 비롯 중국 문화 제반의 척추라고 할 수 있는 음양오행을 보다 보니, 오행간의 상호작용이 마치 인간관계나 정치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특히 '合'이라는 것도 결국 그 이면에선  하나의 '剋' 작용과 또 다른 '剋' 작용의 만남일 뿐이라는 점 (지금 내가 보는 책에선 그렇게 설명) 등이 너무 재밌음. 즉, 음과 양은 늘 서로 꼬여서 존재하기에 동전의 앞면-뒷면같은 구분조차 사실상 되지 않는다는 것이 노자가 반복한 얘기였는데, 삶 역시 이분법적 사고로는 온전한 이해가 불가하며, 合이든 剋이든 刑沖破害든 변화의 원동력으로 보아야 한다,라는 그 근원 철학이 너무 재밌음. 결국 '변화' 자체가 '살아 있음'의 본질이며 그렇기에 '완벽한 균형'이라는 것은 영원히 도달 못 할 '추구의 대상'일 뿐 실제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인데, 인간만이 삶을 '변화과정' 아닌 '정지사진'으로 파악, 집착하면서 '좋고 싫음'만 생각하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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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Jumi Yoon

타고난 선생의 피는 속일수가 없소~~ ㅋㅋㅋ 좋은건 혼자만 간직하지 못하고 꼭 설파해야 직성풀리는 본성. 영업이사도 벌써 달았을 능력인데... 아깝기도 해. 언니~ 도에 경지에 이르는 그날까지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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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타고난 그릇이 접시라서 담고 지낼 수 있는 용량이 모기눈물만큼인지라, ㅎㅎ.. 암튼 땡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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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en Kim

재미지죠. 나중에 실력이 늘으시면 더 놀라운 일들이 많을겁니다. 한 가족을 살펴보면 사주팔자도 대물림으로 내려온다는 사실을 아시면 더 놀라실거에요. 부모와 자식사이에 내려오거든요. 저도 저희 집 명식 보고 되게 놀랐었는데요, 이게 저희 집만 그런게 아니더라구요. 한집안에 공통적인 코드가 있습니다. ㅋㅋ 통계로 나온 결과다보니 분명 유전적인 면도 녹아들어가 있다고 저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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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명리학의 세계로 전도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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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en Kim

Hee Kim 누가보면 제가 무슨 되게 도사같이 보이겠어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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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hwan Lee

옛날 과학이죠, 오로지 인간의 천연 sensor 에 의존해서 자연을 설명하려고 했었을때 말이죠. 열심히 배우시고 다만 신비주의에는 빠지지 마시고, 물론 그러기엔 너무 이치를 많이 아시니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만^^ 담에 재미나게 이야기 해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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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命理學 공부 이야기 #2 > 4주8자 분석은 이를 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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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라는 집을 자알 지어올리기 위해서, 내게 주어진 땅의 지반을 분석하는 일. 집을 지으면서 '이 재료를 쓰니 잘 안 올라가더라' 등의 시행착오를 통해서도 그 지반의 성격을 물론 자연스레 알 수 있게 될 것이나, 다양한 분석 방법을 활용, 참고해서 나쁠 것 또한 없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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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日干) 포함 8명이 뛰는 운동경기 (삶)에서 우리 팀원의 성격, 기량, 서로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평가를 '타인'으로부터 들어보는 일. 그 '타인'은 바로, 살아오는 동안 수십억 수백억 명의 삶을 관찰한 1,000살쯤 되는 할아버지=명리학. 할아버지 말씀 스타일이 난해하여 10명이 통역하면 10명 모두 각자 다르게 통역한다는 것이 난점이고, 연세도 많으셔서 사고방식이 '다소' 고루하시니 "이 여자는 성격이 너무 강해서 좋은 아내감이 아니"라고 하시면 '아, 이 여자와 원만한 결혼생활을 하려면 아내를 지배하려 들지 말고 파트너/동업자 대우를 해줘야 하겠구나'라고 해석하는 센스가 필요. 1,000살 드신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지금 남녀차별하십니까?"라고 따지는 건 '불손해서 잘못된 행동'이라기보다 그저 '미련한 짓'. 어차피 농부가 똑같은 씨앗을 똑같이 뿌려도 옥토는 싹을 틔울 것이나 자갈밭이나 가시덤불은 길러내지 못하는 것.


명리학 할아버지가 1,000여 년에 걸쳐 관찰 축적한 데이터와 그로부터 추출해낸 패턴을 어떻게 소화 활용하느냐도 결국 각자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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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학 공부를 해서 좋은 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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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행 모두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니, 나와 같은 일간을 보면 동지의식이 느껴져서 좋고, 나와 다른 일간을 보면 '이 사람과는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면 서로에게 이러저러한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즉 상대를 내 취향에 의해 재단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그리고 그 상대와 건설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법에 대한 숙고를 하게 되어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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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자가 타고난 결함/결핍을 8글자를 통해 보게 되고, 그 결함/결핍이 그 당사자에게 어떤 어려움을 주게 될지 상상하게 되니,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최소한 연민은 갖게 되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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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의 대부분의 문제들이 실은 외부 아닌 내 자신으로부터 왔음을, 그러므로 남 탓/원망할 시간, 에너지로 내 자신의 관점, 태도, 습관의 교정에 집중해야 함적나라하게 확인시켜 주어서 좋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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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을 해주어 좋네" "을 해서 나쁘네" 운운하지만 그건 단기적인 평가일 뿐, 장기적으로 무엇이 '좋은'지 '나쁜'지는 그 단기적인 작용을 내가 어떻게 감.당.하느냐에 달린 것이지, '생'과 '극'이 본질적으로 전혀 별개가 아니라 결국 하나의 동전의 앞뒷면일 뿐임도 알게 해준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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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命理學 공부 이야기 #3: 나나 잘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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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50 즈음하여 역을 공부하면 큰 후회 없이 살 수 있을 거라고 공자가 말했다는데, 자기 주제파악에 참고하여 큰 실수 예방하려면 (정확도는 50%라고 일단 치고서) 2~30대쯤 공부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는. (봐주는 사람이 아무리 '용하다' 한들 유쾌하지 않은 내용이라면 100% 정직하게 말해주기 어려움. 확실히 맞으리라는 보장도 없는데 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욕먹을 각오를 하겠는지? 결국 주제파악도 실천/수행도 오직 본인만 할 수 있는 일. 누군가 아무리 자상하게 일러줘도 어차피 자기 그릇의 크기만큼밖에 할 수 없는 일.) 주제파악 전혀 안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살아올 수 있었음에, 주어지고 허락되어온 것들에, 늘 곁에 있는 인연과 만난 공부에 감사할 뿐. 芻拘 (풀로 만든 강아지)같은 생명을 둘이나 데려와 놓았으니 (배짱도 좋지) 더구나 겸허해야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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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命理學 공부 이야기 #4: 삶은 파도타기(surf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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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또는 '지혜로운'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많이 오염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예를 들면, 배우자의 불륜을 알고도 직시가 두려워 모른 척 한다든가, 아니면 권모술수, 편법, 비굴함 등을 통해 이익을 추구한다든가 그런 맥락에서 주로 쓰이더라는.) 정말로 현명하게 지혜롭게 사는 건 이론적으로는 사실 무척 '단순'한 것 같음. 즉, (a) 현실개선을 위한 노력은 노력대로 하더라도 '상황이 더 나빴을 수도 있었음 (could have been worse)'을 늘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우선 갖는 것, (b) 불필요한 뻘짓하다 오히려 문제만 자초하는 꼴은 되지 않는 것, (c) 복을 짓지는 못 할 망정 스스로 굴러 들어오는 복마저 걷어차지 않는 것 (나를 아껴 주고 도와 주는 사람의 시간/노력/마음을 귀하게 여길 것). 그런데 이 '단순'한 세 가지가 정작 실천은 무척 어려움. 나의 어리석음이라는 것이 남들에겐 다 보여도 내 자신에겐 절대 안 보이는 법이고, 누군가 아무리 공들여 설명해 줘도 내게는 안 와닿기에. (거북이가 물고기에게 육지동물 얘기를 해 준다고 해서 물고기가 그 모습을 실제로 자기 머리 속에서 그려 낼 수 있는 게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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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1) 자신에게 정직하게 산다는 것과 (2) 자신을 극복한다는 것 사이의 딜레마에 놓이게 되는데.. 자신의 타고난 그릇의 모양새와 크기 고대로 살다 보면 자신의 어리석음/한계로 인한 시련을 오롯이 겪게 될 테고 (그 시련은, 전부는 아니어도 대부분 스스로 창조하거나 끌어당기는 것. 대개의 인간들은 주위 사람 탓만 하지만.), 생겨난 그릇을 이제 와 바꾸기란 초인적인 자기 부정/제어를 요하는 일이고.. 어쨌거나 대다수 사람들이 피하고 싶어 하는 고생스러운 일이니 '시련'이라 불리는 것일 텐데, 그거 피하자고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면서 겉으론 좀 순탄할 수 있다 해도 내적으로까지 정말 만족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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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ㄱ) 일단은 내가 타고난 그릇을 잘 알아야 하고, (ㄴ) 1과 2 사이 어느 지점 즈음에서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을 것인지 정확히 판단해야 하며 (어려움의 '양'이 아닌 '종류'에 대한 선택. 1~2 사이 어느 지점을 선택하든 어려움의 총량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종류의 어려움/기회비용을 기꺼이 선택하고 껴안는 '용기'가 필요. '마음의 평화'라는 건, 기회비용을 껴안는 그 용기를 내고 스스로 불평불만을 멈출 때에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듯), (ㄷ) 그 후엔 그 목표 균형점에 이르고 또 변해가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균형을 끊임없이 갱신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하는 듯 - 마치 파도타기처럼.

타인/환경/세상을 내 뜻대로 바꾸기란 불가능하므로, 남 비난/원망할 시간/에너지까지 살뜰히 긁어모아 (파도타기에서 바다 탓을 한다면 바보짓일 뿐),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에만 집중해야 하는 듯.

'세상 모든 일은 일어날 만해서 일어나는 것이고 내가 바라는 일 또한 일어날 만해지면 일어날 것이다'라는 '대자연/우주에 대한 신뢰' (이것이 바로 '無心'/'無爲'라고 나는 생각한다)의 태도를 갖고서 말이다. 그러니 모든 건 결국, 항상, 언제나, '니 자신부터 제대로 파악하라!'로 돌아오는 듯. 이게 안 되면 아무 것도 근본적인 해결/개선이 안 되는 것이고, 이 문제만큼은 그 누구도 도와 줄 방도가 도무지 없는 것.. 이 과제에 있어 명리학만큼 도움되는 것이 또 있을런지..

무위 [ 無爲 ] 도가사상의 근본개념의 하나. 도가사상에서는 일체 만물을 생성ㆍ소멸시키면서 그 자신은 생멸을 초월한 초감각적 실재나 천지자연의 이법으로서의 <도>의 존재방식을 체득한다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하는데, 그 <도>의 존재방식을 나타내는 것이 <무위>라는 개념이다. <무위>라는 것은 인위의 부정을 의미하는데,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체의 인간적 영위를 <위(僞)>로서 부정한 것에, 천지자연의 이법에 그대로 따르는 참된 <위(爲)>를 실현하는 것이며, 정확하게는 <무위의 위>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위 [無爲] (종교학대사전, 1998. 8. 20.)
무위 [ 無爲 ] (1) 중국 철학에서 주로 도가(道家)가 제창한 인간의 이상적(理想的)인 행위. 무위는 자연법칙에 따라 행위하고 인위적인 작위를 하지 않는다. 유가(儒家)는 목적 추구의 의식적 행위인 유위(有爲)를 제창했으나, 도가는 유위를 인간의 후천적인 위선(僞善)ㆍ미망(迷妄)이라 하여 이를 부정하는 무위를 제창했다. 또 역설적으로 ‘무위에서야말로 완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 뒤 도가만이 아니라 유가도 무위를 인간의 의식을 초월한 고차적인 자연행위, 완성적 행위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중세 예술론의 근본개념이 되었다. (2) 불교에서, 여러 가지 원인ㆍ인연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 아닌 존재(asam skrta). 시간적인 생멸변화(生滅變化)를 초월하는 상주(常住)ㆍ절대의 진실로, 열반(涅槃)의 이명(異名)으로도 사용된다. 무위는 생멸 변화가 없는 모든 법의 진실체를 설명하는 말로 위(爲)는 위작(僞作)ㆍ조작(造作)이란 뜻이다. 인연에 의한 위작ㆍ조작을 떠나서 생주이멸의 변천이 없는 진리. 열반ㆍ진여ㆍ법성ㆍ실상과 같은 뜻이다. 《구사론(俱舍論)》에는 허공(虛空)ㆍ택멸(擇滅)ㆍ비택멸(非擇滅)의 3무위를 말하나 그 분류방법은 경전에 따라 다양하다. 반대는 유위(有爲)이다. 선종(禪宗)에서 사용되는 의미는 아무런 행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행위에 있어 물고기가 물속을 가듯이, 새가 창공을 날듯이 걸림이 없는 행동을 말한다. 무위가 가진 수행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인간이 지식과 욕심에 따라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면 오히려 세상에 대위(大僞)ㆍ대란(大亂)을 가져오게 되므로 될 수 있는 대로 무리하지 말고 자연법칙에 맡겨두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위야말로 인간의 이상적인 행위이며, 무위에서 완성이 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위 [無爲] (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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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命理學 공부 이야기 #5: 명리학의 가치와 운명의 '극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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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의 업을 쌓은 '나'와 현세에서 이 글을 쓰고있는 '나'는 과연 동일한 존재인가?"라는 문제는, 범위 한정을 위해 이 글에서는 일단 보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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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학을 공부하는 분들이라면 모두 '각자가 타고난 초기 조건과 패턴이 분명 있고, 4주8자는 이 조건/패턴을 상징하는 기호 체계이며, 이 패턴이 삶의 각 영역/층위에서 프랙탈(fractal)처럼 반복 발현된다'는 것을 '사실'로 인정할 거다.


그렇다면 그 다음 질문은 '(1) 그럼 나는 왜 이런 조건/패턴을 타고 났고, (2) 극복/변화 가능한가?'가 될 터.


(1)에 대한 답으로 아마 유신론적 종교들에선 '신의 뜻', 불교에선 '업', 힌두교의 不二論 혹은 非二元論 (Non-Dualism) 학파에서는 '본인 스스로의 선택'이라고 설명하는 듯. 인간이 이에 대한 '정답'을 알아낼 방법은 없으니 (2)로 넘어가자면, 극복/변화도 가능할 것이라는 추측을 나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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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 '극복'/'변화'는, 우리가 현세의 삶에서 이런 조건/패턴을 타고난 이유가 된 '그 무엇'의 힘을 능가하는 정도의 노력이 쌓여야만 가능할 듯. 예를 들어 업/윤회 이론을 따르자면, 나의 현세 조건을 만들어낸, 전생에 걸쳐 켜켜이 쌓인 업이, 짧은 기간의 노력만으로 (억겁의 세월에 비하면 수십년도 '짧은 시간'에 불과할 수 있음) 180도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는 얘기. 더 많은 전생을 가진 사람의 더 오래된 업일수록, 소멸이나 방향전환도 그만큼 더 힘들 수밖에 없을 테고. 하지만 현세의 초기 조건 결정에 전생의 업이 작용했다면, 나의 현재 역시 미래/내세에 작용한다고 보는 것이 일관된 논리가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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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한 사람이 살면서 행하고 가졌던 모든 생각, 감정, 말, 행동은 그 사람의 얼굴, 음성, 에너지장 ('아우라'라고도 부르는) 그리고 우주에 흔적을 남긴다고 나는 본다. 바로 그렇기에 사주도 관상도 타당성과 효용을 갖는 것이고 동시에 "사주, 관상, 수상, 족상보다 心相"이라는 말도 있는 것이며, 업, 윤회, 아카식 레코드, 愼獨, 끌어당김의 법칙 (Law of Attraction) 등등의 일맥상통하는 개념들이 나온 것이 아닐지. 그러므로, 내가 타고난 조건/패턴의 얼마만큼이 현세에서 극복/변화 가능한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이 결국은 바위도 뚫는다"는 말 역시 잊지는 말아야 할 것 같다. 다만 그 바위를 움푹 패이게는 할 수 있어도 현세에서 완전히 뚫리지는 않을 가능성도 있으니, 노력은 노력대로 하되 그 노력의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私心/欲心 가라앉힌 빈 마음' (無心, 無爲)이 필요할 듯. 운명의 '극복'/'개척'은 어쩌면, 타고난 조건/패턴을 바꿔보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 초기 조건/패턴을 받아들이고 모든 불평을 그만두는 일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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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팔자라는 것은 현실에서 가시화될 수 있는 많은 방법들을 아우르는 기호 체계이기 때문에, 이미 일어난 현실에서 상징을 찾아내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워도 동일한 상징이 미래에서 어떤 구체적인 모습으로 발현될지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려울 거다. 그래서 "지난 일은 맞혀도 앞 일은 못 맞힌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하고, 각 현상/작용에 대한 이론이 그 디테일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다르기에 (그야말로 십인십색) 누구의 말을 따를 것인가? 하는 문제도 생기며, 명리학 이론 자체의 태생적 한계 (『비의 이론 사주 궁합의 비밀을 밝힌다』 라는 책에서 지적하는 것처럼)로 인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면도 있는 듯.


沖이니 凶神이니 하는 것들도 대개는 '안 좋다'고 보지만, 이런 것들도 좋게 작용하는 경우는 吉神이라 불리는 것들보다 오히려 더 큰 福을 가져오기도 한다고 하니 말이다.


(사실, 인간이 대자연을 이해하고자 만든 이론이 음양오행이고

이걸 자연의 일부인 인간에게 적용한 것이 명리학인데,

불완전한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이론이 완벽할 수 있겠나.


노벨상 수상한 경제학 박사라고 해서 늘 100% 정확한 경제전망을 내놓는 것도 아니고 정신과 전문의가 홍길동을 상담하여 그의 심리/의식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정도는 같은 기간동안 홍길동을 알아온 가족/친구가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정도보다 미세하게 높을 뿐이건만, 오로지 명리학에 대해서만 '100% 정확도'를 사람들이 기대하는 자체가 나는 오히려 의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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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沖이나 凶神이 '좋은' 결과가 되려는지 '나쁜' 결과가 되려는지는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니,

미래 예측을 위해 명리학을 과신/맹신할 게 아니라

자신이 받은 이승의 삶과 그 속에 들어있는 시련을 통해 성찰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그 '숙제'를 이해하기 위한 수양의 도구로 명리학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지 않을지.


예를 들어,


내 사주에 傷官이 있다면 내가 평소에 타인을 대할 때 얼마만큼의 존중/신중을 갖고 대하는지를 늘 유념한다든가,


내게 木이 없다면 木의 마음인 仁을 가지려고 노력한다든가,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의 원인은 일부나마 타인 아닌 내 자신/운명 속에 있으니

남 원망을 그만둔다든가 하는 식으로. (개인적인 원한을 품지 말라는 것일 뿐, 범죄행위를 당하고도 신고조차 하지 말고 자책을 하라는 얘기는 물론 아님.)


매순간 새로 깨어나는 명징한 의식과 사사로움 없는 마음이, 부적, 옷색깔, 풍수지리 등보다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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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종교나 철학은 '이상적인 인간형' 하나 (예수, 석가, 공자 등)를 정해 놓고서 무조건 그 롤모델을 닮으라고 말하는데 비해,


명리학은 고유한 개개인이 자신의 타고난 모습과 결함/결핍/한계를 직시하고서 거기서부터 한 걸음씩 시작하도록 도와 주며, 바로 여기에 명리학의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건강관리를 위해 혈액검사 결과를 참고하듯 (심장병에 취약한 체질이라는 분석이 심장병에 걸릴 거라는 '예언'은 아닌 것) 그런 참고자료 역할 이상의 '부귀영화를 위한 묘수'를 명리학에서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대자연이 내게 준 숙제를 따돌리겠다는 교만이고 욕심일 듯.


(기본적으로 나는, 한 사람이 평생 겪어야 할 어려움의 '양'은 정해져 있지 않나 싶다. 어려움을 겪는 방법의 '종류'는 변화가 가능해도. 예를 들어 "네 성격 바꾸지 않으면 이혼 가능성이 크다"고 누가 한들, 타고난 성격을 바꾸기도 어렵거니와, 천성을 바꾸는 노력에 들어가는 수고와, 이혼 때문에 겪어야할 스트레스는, 그 크기가 결국 서로 엇비슷하지 않겠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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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명리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다양한 방법으로 자연과 우주의 탐구에 헌신한 모든 분들의 노력에 감사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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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리학 공부 이야기 #6: 명리학은 '삶의 해결사'가 아니라 '이승에서의 숙제 해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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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몸의 세포 수는 37개조라고 한다. 각 세포들이 조직과 장기를 이루어 세포, 조직, 장기 등의 서로 다른 차원에서 서로 다른 톱니바퀴로서 딱딱 아귀가 맞게 돌아가야만 우리는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인체가 이렇게 복잡하고 신비로우니 임신 기간동안엔 당연히 태아의 건강이 최우선 관심사였고, 한 사람이 '대충 멀쩡하게' 태어나는 자체도 얼마나 대단한 기적인지를 그야말로 뼛속 깊이 느꼈었다


- 매일 매일. 명리학 공부를 하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곤 한다.

한 사람의 인생에 일어날 수 있는 문제는 글자 그대로 무수히 많은데, 그것들에 대해 읽다보면 '그래서 어떤 종교들은 이승을 형벌의 장소로 보는 것이지' 이해도 가고, 뉴스에 나올 만한 정도의 사건은 평생 한 번도 안 겪고 가는, 그 정도의 삶도 실은 감사한 일이지 싶다. 마치 '대충 멀쩡하게' 태어나는 것이 그 자체로 이미 기적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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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난 기적에 감사 못 하고 "안 예쁜" 외모나 "나쁜" 머리에 대해 한탄하는 엄마들을 보면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는데, 평범 이상의 삶을 살면서도 자기 삶에 감사하지 못 하고 불평뿐인 사람 (자기 비하는 겸손이 아니고 오만이다), 또 자기 손으로 선택한 배우자에 대해 늘 험담/비아냥만 하는 사람을 볼 때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단적인 예를 들어, 고아는 그 사주에 부모복 없다 나오고 그 고아의 부모 사주를 보면 또 자식과 인연이 없다거나 혹은 젊어 질병/사고를 조심해야한다 나오고, 이런 식으로 마치 퍼즐이라도 맞추듯 그렇게 서로 맞아떨어지게 만나는 경우가 많음을 보면, 배우자와의 궁합까지 보지 않고 본인 사주만으로도 현재의 혹은 지나간 결혼생활까지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음을 보면, 모든 원망, 한탄, 불평은 결국 자기 얼굴에 침 뱉기일 뿐이건만.


"각자 자기 업에 꼭 들어맞는 부모, 배우자, 자식, 수명, 재물 복 등을 자기 자신의 손으로 선택하여 이승에 오는 것이고, 그 조합을 겪어내는 것이 이승에서의 내 '숙제'이니, 그러므로 남 탓 말고 용서해야하는 것"이라는 가설이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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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주팔자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a) 건강관리에 무관심하게 살 경우 어떤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지를 보여주는 혈액검사같은 것;


(b) 한 개인이 올라탄 '운명'이라는 이름의 기차가 가진 스펙과 관성에 대한 연역적 분석;


(c) 돈, 명예, 학업, 재능, 건강, 부모, 배우자, 자식, 친구/동료 등 내 삶의 무수한 톱니바퀴들이 서로 아귀가 맞는지에 대한 분석 (사주에 '돈'이 아무리 많아도 톱니바퀴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 하면 가난하게 되고, '돈'이라는 톱니바퀴가 하나도 없어도 다른 모든 톱니바퀴들이 정확히 들어맞게 돌아가면 경제적으로도 넉넉하게 살고 그런 것임. 어떤 요소들이 8자를 채우고 있는지 그 각각이 중요한 게 아니고, 각 요소들 간의 '관계'와 '전체적인 어울림'이 중요한 것임);


(d) 나무의 잎 모양만 보고서도 그 나무가 어떤 기후에서 자라야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듯이 그렇게 한 인간이라는 '자연물'의 여러 측면을 짐작하게 해주는 단서/상징/기호들의 체계;


(e) 이승에서의 내 '숙제'가 무엇인지를 자세히 알려주는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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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인간은 자연물이되 자연법칙을 100% 따르지는 않는 변칙적인 존재이며, 이것이 바로, 인간이 만들어내는 온갖 '예외'/'문제'들과 '경이로움'의 원천이다.


또 명리학 자체의 이론적 한계도 있을 테니 사주 분석은 70% 정도 맞는다고 생각해야하는데, 어느 부분이 '맞는' 70%에 속하고 어느 부분이 '안 맞는'/'잠복중인' 30%인지를 알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이 상징/기호 체계를 그 70%나마 누가 정확히 해독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 이런 난점들이 있으니 맹신해서는 안 되고 신중해야하는 것. (30%라는 건, 생각하기에 따라 '엄청 큰 숫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 저녁 세수하면서 거울에 자기 얼굴 비추어 보듯 그렇게 자신을 비추어 보는 수양도구로서는 다른 어떤 종교에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일반 종교나 철학은 '이상적인 인간형' 하나 (예수, 석가, 공자 등)를 정해놓고서 무조건 그 롤모델을 닮으라고 말하는데 비해, 명리학은 일단 자신의 타고난 모습과 결함/결핍/한계를 직시하고 욕심을 비우라고 가르친다. 자신을 정확히 보고 욕심을 비우는 이상의 수양이 있겠는지? 무엇보다, "내게 주어진 현실과 한계를 일단은 받아들인 후 내 사주의 부족한 부분으로 인한 욕심/갈등/고통은 내 마음의 수양을 통해 다스리겠다"라는 태도로 명리학을 대해야 하늘도 도와주지, "수양 말고 부적같은 손쉬운 방법을 통해 내 사주의 부족함을 기어이 채우겠다"라는 기복신앙적 욕심은 있던 복마저 쫓아내는 '삿됨'( = '우주에 맞장 뜨는 오만/반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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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11차원의 세계에서 3차원의 의식/감각으로 뭘 믿든 뭘 무시하든 각자의 자유이긴 하지만, 뭔가를 무시하려면 일관되게 무시하고, 정보를 얻어 혜택을 좀 받고 싶다면 겸허히 존중하고, 둘 중 하나만 제대로 하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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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겸허하게 존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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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ecember 2018  ·< "기운이 크다/강하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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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물고기가 헤엄치다 우연히 꼬리로 큰 물고기를 쳐봤자 큰 물고기를 아프게 하지는 못 한다. 하지만 큰 물고기의 꼬리 지느러미가 작은 물고기를 치는 건 의도치 않게 상대에게 상처나 아픔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육체적인 힘이나 사회적 권력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은 그만큼 조심하고 배려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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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힘/덩치가 눈에 보이지 않는 종류의 것일 때. 흔히 "기가 세다"로 표현되는 경우가 한 예일 수 있겠는데, 이것이 후천적인 의지/노력 혹은 단순히 개성의 문제가 아님을 명리학 공부를 통해 깨달았다. 그래서 명리학에선 기운이 큰/강한 사람에게 활인업을 하라고 얘기하는데, 기운이 큰/강한 사람은 사고를 치거나 실수를 할 경우에도 결과가 크게 나타날 것이므로 그 기운을 이왕이면 남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사용하도록 의식적인 노력을 하며 살아야지, 안 그러면 본인의 삶자체가 부침심하고 험난해질 수 있다는 것. (삶이란, 다양한 '각도'뿐 아니라 다양한 '층위'에서 바라볼 수도 있어야 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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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에 나타나는 기운은 나도 강한 편인데, 남들과 똑같은 '실수'를 해도 그 결과는 좀 더 큰 '피해'가 될 수 있음을 전엔 몰랐었다. 상처받는 쪽의 자존감 문제만은 아닐 수 있음에 대해 둔감했던 것. 겉으로 보기엔 내가 '어깨깡패'도 아니니, 내 승질 더러운 거 인정 않고서 '누구에게나 성격상의 장단점이 있지 않나' 정도로만 합리화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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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큰/강한 기운'이란 건 영어로는 어찌 번역하면 좋을까. 'Big/strong energy'라 하면 신체적인 에너지나 열정이 많다는 의미로 들려서 적절하지 않은 것 같은데. 틱낫한 스님도 옆에만 가도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오는 분이니 작거나 약한 기운은 분명 아니지만, 그 온화한 분을 'strong'이라고 표현하는 건 너무 안 어울리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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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rd or strong 이 더 와닿아~~ or firm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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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capacity (용량), potential (잠재력), 이런 단어들이 떠오르는데 딱히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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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nternal ener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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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pacity는 뭔가 해낼수 있는 ability로 느껴져. 현실적느낌. 기랑은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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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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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 기가 쎄게 태어난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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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르셨어요? 위장술에 성공한 건가요,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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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몰라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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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워낙 기가 없이 태어나서... 흑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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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답을 듣고 왜 신이 나는 건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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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좀 나눠드릴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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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리학 하룻강아지의 운명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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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관찰한 결과인 음양오행이론을 인간사에 적용하는 것이 바로 명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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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운까지 고려하면 사주의 조합은 최대 120만여 가지가 나온다 하고 그렇다면 현재 지구상의 최소 6~7천명씩이 동일 사주를 공유한다는 것인데, 주지하다시피 세상 그 어떤 두 사람도 동일한 삶을 살지는 않으니 사주가 삶의 전부를 설명/예측 못 함은 두 말하면 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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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명리학이 발전되어 오는 과정에서 이론적 구멍을 메꾸기 위해 자의적으로 땜질된 부분들도 없지 않고 논란이 정리되지 않은 문제들도 많음. (어느 학문인들 한계가 없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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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간은 '자연물'인 동시에 다른 자연물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의식수준이 높을 수. 있.는. 존재라서 (인간의 의식 자체가 氣이고 神),

'운명' ( =내가 올라탄 자동차가 갖고 있는 '케파', 속도, 향하고 있는 방향)도 변화/창조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 ("사주보다 관상, 관상보다 심상"이라는 것도 결국 의식수준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됨.)


다만, 실제로 모든 인간이 '높은 의식'이라는 가능성을 실현하지는 못 하기에,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사는 이는 결과적으로 소수이고 다수는 그저 자연/운명에 이끌려 다니는 피지배자로서의 성격이 더 강한 삶을 산다고 봄. 아무리 자기 삶의 주인이라고 해도 타고난 조건들의 영향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다는 말은 물론 전혀 아니고 ('좋은' 것의 효과는 늘리고 '안 좋은' 것의 영향은 줄이는 정도 뿐),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그 의식수준의 가능성조차 타고나는 것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음. (부모가 알콜중독, 도박, 폭력 등의 온갖 문제들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성인으로 자라는 자녀들의 경우 뇌 자체가 물리화학적으로 다르다고 뇌과학도 말하는데, 만약 그런 뇌를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것이라면 그게 바로 '운명개척의 가능성을 타고난 운명'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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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주가 '결코 무시만은 할 수 없는 무언가'임을 이해하는 이들은 크고 작은 결정에 임할 때마다 사주에 의지하려고 하는 습관이 생김.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특정인의 사주를 10명에게 가져가면 10명의 해석이 다 다르다는 사실. (60갑자 각각의 글자가 일종의 기호/부호라서 추출할 수 있는 정보량이 엄청남.)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10명의 해석 사이에 공통되는 부분들도 적지 않고, 내 사주에 대한 10가지 해석의 집합과 다른 특정인에 대한 10가지 사주 해석의 집합은 성격이 전혀 다르기에 "사주 다 소용 없어!"라고 단순화만도 할 수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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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러므로 내 생각에, 사주 분석의 효용은, 자신을 바로 보고 마음을 비우도록 도와 주는 데에 있는 것 같다는. 가령, 내 꿈이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여 NASA 연구원이 되는 것인데 아무리 공부해도 대학 갈 만한 성적이 도통 안 나오더라, 그래서 사주를 봤더니 공부는 내 길이 아니더라, 이럴 경우, 어차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과학자의 꿈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가 좀 수월해진다는 것. 내 아이의 성격이 워낙에 유별난데 사주에도 그렇게 나온다면 "넌 대체 성격이 왜 그 모냥이냐?"라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이 아이와의 관계만 오히려 악화시킬 원망을 더이상 하지 않게 된다는 것. (그런 자식의 부모가 된 것도 서로의 운명이 퍼즐처럼 들어맞기 때문. "알고 보면 삶에서 남탓할 일은 별로 없다"라는 것이 명리학과 업이론의 기본 입장. 천주교의 "내 탓이로소이다"도 이래서 나왔나 싶음.)

물론 나의 타고난 성향과 한계같은 큰 틀은 사주를 안 보고 자신을 잘 관찰만 해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뻔한 현실조차 내 맘에 안 들면 부정하고 시비걸고 싶은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인데, 게다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 남들에게 나를 평가해달라 한들, 그들도 그들 나름의 경험이나 나에 대한 감정/이해관계에 바탕하여 나를 평가할 터. 인간의 그런 주관성을 배제했다는 것이 바로 명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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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럼 내 삶의 주인으로 살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궁극적으로, "운명 = 내 업으로 인해 이승에서 내가 받은 숙제"라는 자각이 우선인 듯.


'업'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축적된 결과물일 뿐이므로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닦아나가야 하는데, 그렇다고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고 이룰 수 있다는 말은 물론 아닐 테고. 또, 현재 내 삶에서 작용하고 있는 업의 힘을 바꾸거나 새로운 동력을 구축하기까지 얼마만한 노력과 시간 (여러 생의 윤회가 될 수도 있는)이 필요한지 아무도 알 수 없기에, 노력은 노력대로 하면서 내 노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순응하고 받아들일 밖에. 이런 노력 없이 아무리 '용한' 역학자들 쫓아다녀 봐야 뾰족한 방책같은 건 어차피 없다는 것이 내 생각. (쉽게 피할 수 있다면 그게 '운명'이겠나.)


또 '오행'의 '行' 글자 자체가 '변화'를 의미하고, 사람들이 말하는 '길흉'은 어차피 상대적 표면적 판단일 뿐이며, 원리상 길은 흉에서 나오고 흉은 길을 내포하니,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사실 역시, 당장은 안 와닿더라도 늘!!! 명심해야 함. (현재 자신의 불만/스트레스가 되는 '문제'가 알고 보면 더 큰 문제를 막아 주는 '액땜'일 수도 있다는 점을 부디 기억하시기를. 이래서 기독교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라 하고 옛말에도 웃는 얼굴에 복이 온다 하는 게 아닐까 싶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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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사주분석이 고등학교 때 하는 적성검사 정도의 참고자료는 될 수 있고, 하나의 이상향에 모든 인간들을 억지로 끼워맞추려 하는 다른 철학들과 달리 명리학은 각 개인을 그만의 고유한 사정 속에서 바라봐 준다는 장점이 있기에, 누구나 한 번쯤 공부할 가치는 있다고 나는 생각. 게다가 돈 내고 상담 받는 이들은 좋은 얘기를 듣고 싶어 하니 업으로 사주풀이를 해 주는 분들 역시 가능한 좋은 쪽으로 말해 주고 싶을 터. 이런 면을 고려하지 못 하고 '긍정적'인 쪽으로만 철썩같이 믿으면 안 보느니만 못 한 결과가 될 수도 있는 일. 게다가 '운명'이라는 것 자체가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이기에, '수양' 차원에서 스스로 공부하고 자기 몸으로 책임지는 것 이외의 '해결책'이나 '개운법'은 없다고 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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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Do Bad Things Happen to Good People? (Why Life Seems Unfair) - Teal S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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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좀 길었지만 잘 읽었습니다~^^ 난중에 만나면 잘 한번 풀어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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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자해지.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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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명리학 공부까지 하다가 다시 불교로 돌아온 이유.

최고의 개운법이 mindfulness라고 내가 생각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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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정재가 들어와 일간과 합을 할 때 남성인 명주의 마음이 여자문제로 인해 흔들릴 수 있으나, 그걸 '사건'으로 발전시키느냐 아니냐는 엄연히 본인의 선택.

(b) 본인이 사주상 지나치게 신왕/신강할 때 부인의 건강이 약해지거나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명주가 부인에게 잘 하여 해로하는 경우들도 많음.

(c) 번듯한 직장 멀쩡히 다니다 갑자기 때려치고 나와 치킨집을 차린다든가, 본인의 허황된 욕심 때문에 혹은 잘난 척 하다 자기 팔자 스스로 볶는다든가 하는 게 상관운인데, 근신 수성하고 '찾아온 기회'도 회의적 시각으로 꼼꼼히 검증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기간 중에도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음.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매사 생각하는 게 좋은 게 결코 아님. 상관이 용신도 아니데 상관운에 '긍정적'으로 사고하면 망상에 빠져 무리하다 망하기 딱 좋음. 불교적 관점에서도 번뇌는 부정적이라고 봐야지 번뇌도 긍정적으로 보면 뭐 하자는 거? 이래서 소위 뉴에이지 영성이 어설픈 것이고, 뉴에이지는 '수행법' 아닌 '진통제'에 불과.)

(d) 어떤 사람이 범죄자가 되기 너무 쉬운 사주라 해도, 그렇다고 해서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는 게 본인에게 좋을 수는 결코 없음. 그 성장과정과 환경이 최악이었다는 등의 緣起 조건들을 참작하여 인간적인 연민을 가질 수는 있지만, "사주가 그래서 그렇게 산다"와 "그래서 그렇게 사는 것이 실제로 본인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가?"는 전혀 별개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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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뭔가 눈에 띄는 기운이라는 것은 분명 있고

타고난 조건/한계/경향성을 절대 무시도 못 하지만,

본인이 마음 다잡고 신독하며 산다면

팔자나 운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음.


당뇨 가능성이 높은 유전자를 타고났다 해도 평소 꾸준히 섭생하고 운동하면 당뇨가 병으로 실현되지 않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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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라는 게 있는가?라는 주제의 한 시사프로를 명리학 공부 시작 전 본 적이 있었는데,


하는 사업마다 망하는 남성이 "내 생각엔 자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 분명 있는 것 같다" 하고, 그 부인은 "굳이 안 해도 되는 선택을 본인이 해 놓고서 팔자탓 한다"고 하고.


그걸 보면서 '저 두 시각 둘 다 맞을 가능성은 혹 없을까?' 하는 생각이. 근데 명리학 공부 하다 보니, 상반되어 보이는 그 두 시각이 정말 동일 동전의 앞뒷면인지도 모르겠다 싶더라는. 즉, '안 해도 되는 선택을 굳이 하게끔 만드는 그 생각/마음'에 바로 '운명'의 열쇠가 있는 것.


그렇기에, 자기 팔자를 알아도 mindful 하지 못 하면 타고난 가능성의 최저치로 사는 것이고, 자기 팔자를 몰라도 mindful 하면 타고난 가능성의 최고치로 사는 것. 자기 삶에서 가능한 최고치와 최저치는 사주를 보든 안 보든 어차피 안 변하며, '그릇'의 크기/격은 그 명주의 판단력과 사고/행동 방식을 보면 명리학 전혀 모르는 사람도 짐작은 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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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도/적중률에 대해 흔히

"사주보다 관상,

관상보다 수상/족상 (손금/발금),

수상/족상보다 심상"이라 하는데

그 말이 맞다 보이고,


다만 '심상'이라는 건 흔히 생각하는 '착함'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마음을 다스리는 mindfulness,

즉 '지혜'의 문제이며,

철학 심리학 등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지식'도 당연히 도움이 될 수 있음.


(생각이나 지식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생각/지식이냐가 중요한 것이고 또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것.)


게다가, '왜 사람마다 서로 다른 건강과 재능으로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최저치/최고치를 갖고 태어나는가?'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이 '업과 윤회'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이름 바꾸고 어쩌고 하면서 변두리만 간지럽힐 게 아니라 핵심으로 직진하여 업을 닦는 정공법이 최선의 대책. 어떤 문제에 있어서든 당장은 더 '느려' 보이는 '교과서적인' 방법이 사실은 가장 확실하기에, 그러므로 효과 대비해서는 결국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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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fulness가 메인이고

사이드로 명리학 공부를 하시면 물론 더 좋겠지만

둘 다 하시기는 힘들 텐데,


어차피 타인은 인격수양의 측면에서 사주해석 못 해 줍니다.


"애초에 니 그릇이 작아 많이 담을 수도 없으니 그 허영심 버리고 잘난 척 그만 해라" 이런 말을 어떻게 남이 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 부디 mindfulness라도 공부하시기를.


'능력자'가 하사하는 특혜에 의존하지 마시고,

본인의 身口意를 직접 다스림으로써 본인 福은 본인 손으로 경작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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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묵스님 위빠사나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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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용이 아니라 먹는 목적이라면, 케잌에서 중요한 건 데코레이션보다 원재료의 퀄리티 아니겠나" (202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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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l-Dying 준비: 업 이해와 명상" (202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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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자체가 '무한대의 어리석음과 무한대의 욕망을 갖고 있는 아귀'라는 데에서 모든 문제가.." (20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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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e Sure You Know What You Are Saying, for What and How" (202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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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을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게 운명 극복/개선의 핵심" (2020.6.8)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121236154915133?notif_id=1591639660642744&notif_t=feedback_reaction_gener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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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 Is Pragmatic, Not Moralistic" (202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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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아이를 내 스스로 돌보지 않는 한, 난 평생 외롭고 서러울 뿐" (202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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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지옥이 자기 손에 달렸다는 말의 의미" (202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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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光年 높이의 산에서 등반중 조난 당했을 때 구출되는 방법"

(20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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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예측하는 여러 학문/기술들에 대한 나의 생각"

(20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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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태어나 짐승으로 죽는 것. 최대의 비극이자 공포"

(202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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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to Wake Up and Become Truly Ethical" (20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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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식'" (202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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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 Ways to Help One Another" (202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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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에서조차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인격자'" (202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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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ment You Entirely Give Up Your Own Rational Mind, Anything and Everything Becomes a Superstition Irrespective of the Label" (202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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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화합!을 원한다면 비판!을 잘 하고 또 잘 받아 들여야" (20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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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에겐 훤히 보이지만 정작 내 자신에겐 안 보이는 나의 진짜 속마음" (20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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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ever/Whoever Discourages Questioning or Critical Thinking Cannot Be Farther from Truth" (20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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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라는 단어의 오남용에 대한 우려" (20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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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어떤 인간관계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가?는 그 상대의 '입뻥끗'에 기울이는 섬세함의 수준으로 측정 가능"

(20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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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이라는 나이 속에서 이미 자라고 있는 노인의 모습들"

(20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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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l-Meant Well-Delivered Timely CRITICISM Is Essential to HARMONY, Buddhism Says" (20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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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은 동등하다고 보는 민주주의조차 생각들 사이의 우열은 인정하며, 그 우열을 논리로써 가르자는 게 바로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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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다루는 데에 미숙한' 아이들에 대한 서천석 박사님의 글에 내가 추가하고픈 불교적 관점" (2019.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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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빈익빈 부익부" (2019.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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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pful vs. Unhelpful Path/Teacher" (20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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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out Mindfulness, the Unlucky Might Get Unluckier" (201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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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의 후회, 참회, 자비"

(2019.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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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가르치는 마음=의식 상태와 운명" (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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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Honest with Yourself without Believing Your Stories" (20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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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Not Mathematics; Ideals Are Not Formulae" (2019.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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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불만은 본질적으로 태도의 문제이며 자기 복 갉아먹는 일" (2019.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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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보다 훨씬 거대한 잠재의식/무의식" (2019.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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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e Love without Attachment" (2019.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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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fulness : What and Why?" (2019.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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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Good Communication Is Critical to a Good Relationship or Friendship" (20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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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Start Living My 'Own' Life Only When I Fully 'Own' Responsibility for My Life" (2019.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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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You Find Outside Yourself Cannot Be Yours" (2018.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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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가장 큰 도움" (2018.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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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You Are Before What You Do" (20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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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e Love/Compassion for Any Person Irrespective of Age or Gender" (2018.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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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더 독특해지고 차별화되기 때문에 남들과 다른 모습으로 점점 변합니다." (20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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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st Labels; You Will Be Mislead" (20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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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Are Your Own Child, Too" (2017.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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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명을 예측하는 여러 학문/기술들에 대한 나의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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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예측하는 기술을 대개 '점성술 占星術'이라 부름.


한 사람이 태어날 당시의 별자리의 배치가 그 사람의 운명에 영향을 준다, 라는 동서고금의 공통된 전제에서 출발.

자연의 다섯 가지 기운 (오행)이 역시 자연물인 인간의 흥망성쇠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살피는 것이 사주명리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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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학을 한 1년 반 공부했는데..


99% 사주대로 사는 사람들도 있고, 사주가 50%밖에 안 맞는 사람도 있고.

. 이것은 첫째로는 명리학 자체의 한계. 인간이 불완전한데 인간이 만든 이론시스템이 완벽할 수는 없을 터.


(대운까지 고려하면 사주의 조합은 120만여 가지. 그렇다면 현재 나와 동일한 '운명'을 공유하는 사람의 수가 이 지구상에 6천 6백 명이나 된다는 것인데, 실제 삶은 마치 얼굴처럼 저마다 다 다르기 마련.) 자세히 들어갈수록 이론도 각양각색이라서, 특정인의 사주를 10명이 풀이하면 그 10개의 풀이가 다 다르게 나온다는 말도 그래서 있는 것.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10명의 해석 사이에 공통되는 부분들도 적지 않고, 내 사주에 대한 10가지 해석의 집합과 다른 특정인에 대한 10가지 사주 해석의 집합은 성격이 전혀 다르기에 "사주 아무 소용 없어!"라고 결론짓기도 무리.) 이런 이론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그래서 '점 占'을 또 따로 쳐서 보충하는 것. (내 생각에 육효나 타로 등의 점은 아마도, 어떤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현재의 기운을 읽어서 당사자가 궁금해 하는 문제에 이 기운을 적용하여 예측을 끌어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는. 사주명리는 인생전반의 궤적을 예측하는 데에 비해, 점술은 단기적 미래만을 내다볼 수 있으나 정확도는 더 높을 수도 있음. 그러나 '나를 둘러싸고 있는 기운'이라는 것에는 나 자신의 생각/태도가 가장 중요. 물론 자신의 생각/말/행동 습관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나 습관/태도를 자신의 의지대로 바꾼다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일이기는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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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같은 것이 어떤 사람은 잘 맞고 어떤 사람에겐 잘 안 맞고 하는 둘째 이유는,

근본적으로 미래가 완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 예를 들어, '술취해 정신을 잃은'( =타고난 본능/성향대로 사는) 운전자의 자동차( =삶)가 언덕에서 굴러내려오고 있을 경우, 그 자동차의 진행 방향과 속도에 근거하여 10분 후 혹은 1시간 후 그 자동차가 어디께에 도달하려는지 짐작이 가능. 이것이 바로 온갖 종류의 '역학 易學'이 존재하는 원리라고 나는 생각. 그러나 운전자가 정신을 차리고 매초 매순간 fully mindful한 생각/말/행동으로써 새로운 업을 짓는다면, 그 자동차의 진행 방향과 속도를 변화시킬 수 있음.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의 출생 순간에 관찰된 자동차 진행 방향+속도에 근거한 미래 예측은 빗나갈 수밖에. 실은 현재의 경험의 질 자체도 경험자의 태도에 따라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음. (이렇듯 '운명'은 바뀌는 것이기에, 바로 그래서 운명학을 '바꿀 역'이라는 글자를 사용하여 '易學'이라 부르는 것이 아닌가 추측해 봄.) 물론 '나'라는 운전자가 올라탄 자동차의 진행 방향과 속도는 과거 무수한 전생들로부터의 업인데, 그렇게 쌓인 관성이 하루아침에 180도 바뀔 리는 절대 만무하고, 내가 현재 기울이는 mindful한 노력의 효과가 가시화되기까지 몇 분, 몇 겁(eon), 혹은 몇 생(rebirths)이 걸리려는지 아무도 알 수 없으며, 바로 그렇기에 현재 자신이 올라타고 있는 관성이라도 일단 알아 보기 위해 사주같은 것을 보는 것. (해석의 어느 부분이 맞고 어느 부분이 틀린지 알 수 없다, 라는 위험이 물론 수반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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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미래 자체가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바로 그래서 부처님도 모든 종류의 점성술을 금지하신 것. 무당도, 점술사도, 역학인도, 모든 종교인들도, 하나같이 자신들은 타인을 '돕기' 위해 그 일을 한다 말하고 아마 대부분은 그것이 '진심'이겠지만, 그것이 진심이든 아니든 무관하게 그 누구도 남의 업을 어떻게 해 줄 수 없다, 라는 것이 부처님의 시각. 심지어 부처님은 "나조차도 너를 도와 줄 수 없다. 너를 구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네 자신의 수행뿐"이라 하셨으며, 부처님이 우리를 돕는 방법은 가르침을 남기신 것뿐. 또, 초기경전을 보면, 운명을 점치는 행위는 악업 중에서도 무거운 악업에 속한다는 사실을 유추 가능.

(e.g., Sutta Nipata Sammāparibbājanīya-sutta, Sutta Nipata Tuvataka-sutta, Dīgha Nikāya Sāmaññaphala Sutta.


그래서 명리학 공부도 기초만 하고서 포기, ㅎ.) 한 사람이 타고난 경향과 살면서 만나게 되는 것들의 결코 적지 않은 부분들이 생년월일시만 갖고도 예측되기에 (명리학 공부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종류/양의 정보가 추출 가능),


자신의 운명과 화해하지 못 하고 남탓/세상탓으로 삶을 허비하는 사람들에게는 명리학 공부!가 매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


그러나 우리가 이승으로 가져온 플롯들 사이의 개인차가 왜 이렇게 큰 것인지, 나의 현재와 미래를 개선시켜 나가려면 나의 생각, 말, 행동을 어떻게 개조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불교가 가장 현실적인 도움이 된다고 나는 생각. 가장 멀고 '뻔해' 보이는 '교과서적인 방법'이 알고 보면 언제나 가장 빠르고 실패위험 가장 작은 '지름길'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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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국 사람이 없으면 모두 無혹은 空인거죠. 다 사람 사는 이야기이고,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이론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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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지만 적지 않은 승려들이 '카르마의 과학'이라는 명분(?)으로 명리학을 팔아 돈벌이를 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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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3 June 2018 · Shared with Public

< 命理學 Leads to Compass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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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st spirituality or philosophy schools have you look at people as a human 'race' or 'species' and demand that everyone should try to take after only one model, e.g., Jesus Christ, Gautama Buddha or Confucius. Since it is too difficult, we end up forgetting about it in everyday life. Instead, we see people through the small window of our own values and interests, sitting in the prison built with the bricks of concepts. They say truth will make you free, but even the people who have extensive and profound knowledge are still in the prison. Their prisons are just bigger (yes, a lot bigger) than those of less knowledgeable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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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contrast, 命理學 (ming-li-xue) does encourage you to look upon each person as a unique being, and it is supposed to show you what kind of deficiency, imbalance and challenges he has to deal with in life. (Obviously, you should take it as a reference instead of believing/trusting it.) Since you see others in terms of their challenges, not of how well they fit your value system or a cookie cutter like Jesus or Confucius, you can be less biased by your own concepts. You also understand how someone's 'flaws' will 'victimize' himself first before anyone else, thereby being more compassion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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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e had misanthropy for the past few years, right or left, religious or anti-religious. I've been just disgusted by human nature and mocked THE presupposition which underlies all kinds of men's endeavor, i.e., humans should prosper. I still think that such an idea is simply our own self-centered wish, which an extraterrestrial being would not see the necessity of. We are all geniuses at complaining and blaming but will never know how to be grateful or content. But, 命理學 helps me with my misanthropy although I'm only in the very beginning stage of learning its alphabet. Contempt, hatred or grudge is another form of attachment, which will keep me from '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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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7 September 2019 ·



< 3 Levels of 'Forgiv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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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ou are the 'evil' perpetrator, and I am the 'innocent' victim. Nevertheless, I graciously choose not to revenge on you because I am morally superior to you and God/ Nature will judge you anyways. But you should still kneel down to kiss my feet and beg for my forgi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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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verything that has happened between us was because of the seeds I planted unknowingly. My fault, my fault, my fault." (命理學 cannot predict the details of our lives, but it still has such a great value to show us how there is nothing we should complain ab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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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We both got entangled in the cycle of suffering not for a malice but for the lack of wisdom. So I hold onto no grudge, no guilt, no regret, no heartbreak but only compassion for both of us. If we change ourselves at here and now, both our pasts and our futures will also change. So, let us now finally set each other free. I bless you." (Feeling guilty or overly responsible is in fact a delusion of grande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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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d the above story from someone wise, and I totally agree. Until we reach (3), we will keep running the wheel of suffering through a great number of rebirths. And yet, we cannot force (3) either, because it will only be a faking then. Thus, we are just what we are at any given moment, we cannot be anything other than what we actually are at any second, and we simply keep trying what we can do within our limits. The seeds of good conduct will lead you to a good teaching. And the seeds of wisdom will enable you to understand the teaching and actually walk the path. If we keep walking the path even at the speed of a snail, eventually we will be able to reach (3). Just as you telling someone to become smarter does not make him any smarter, you judging someone or telling the person to be forgiving does not help him at all either. If you want to help him, instead of sticking out uninvited advice, live a life youself to become a good mo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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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pping water hollows out a stone, not through force but through persistence, not by intensity but by being const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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