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1

알라딘: [전자책]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고미숙

알라딘: [전자책]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 크로버 시리즈 epub

고미숙 (지은이)북드라망2015-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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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작년에 출간된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가 고미숙이 동양의학을 현대의 삶에 맞게 재해석한 결과물이었다면, 이번에 나온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는 그와 짝꿍을 이루는 동양역학을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동양의 고전을 현대적으로 새롭게 직조해 내는 데 능숙한 고미숙답게, 이 책을 통해, 개화기 이후 도입된 서양 문물과 삶-인식의 방식 때문에 “미신적인 것”으로 치부되거나, 『주역』으로 대표되는 역학고전에 대한 ‘신비감’에 가두어져 왔던 사주명리학은, 지금 여기 우리 삶의 길을 펼쳐갈 지도로 새롭게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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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머리에

입구_농담 혹은 아이러니

하나 - 공동체와 주술 | 둘 - 불과 정치적 상상력 | 셋 - 마음의 행로



1부 몸과 우주, 그리고 운명의 비전을 찾아서·23

오리엔탈리즘_신비와 미신 ‘사이’·26 | 이분법의 종말 _ 개와 늑대의 시간·32 | 우주의 척도 리듬과 강밀도·36 | 음양오행 혹은 매트릭스·42 | 혁명과 ‘구도’는 어떻게 조우하는가?·52



2부 사주와 팔자 : 8개의 ‘카드’에 담긴 비밀·61

인생 혹은 팔자·64 | 존재의 축, 일간(日干)·71 | 팔자, 생극의 동그라미·83 | 태과와 불급, 그 원초적 평등성·95 | ‘숨은 조커’를 찾아라!·104 | 내재하는 ‘외부’, 대운 혹은 시절인연·110 | 용신, 운명의 우주적 거래·119



3부 육친법과 ‘오이디푸스’·129

십신(十神) 팔자와 ‘표상’의 마주침·132 | 두 개의 기본 리듬 ‘식상생재’와 ‘관인상생’·144 | 육친법 팔자의 ‘오이디푸스화’·152 | 오이디푸스의 ‘배후’ 국가와 자본·161 | 운명의 ‘덫’ 자의식 혹은 트라우마·168 | 오이디푸스의 ‘탈주’·182



4부 케이스 스터디 : 팔자의 정치경제학·189

케이스 스터디 1. 인성과다 : 엄마의 ‘늪’·192

케이스 스터디 2. 식상과다 : SNS의 빛과 그림자·200

케이스 스터디 3. 재다신약 : 욕망의 레이스·204

케이스 스터디 4. 관성고립 : 이상한 나라의 ‘에로스·’218

케이스 스터디 5. ‘인성’의 아름다운 순환 : 제빵왕 김탁구·230



출구_‘팔자타령’에서 ‘운명애’(Amor fati)로!·238

길흉은 없다!·240 | 개운법 - 지혜와 공동체·246 | 운명애 ? 고전에서 배우는

‘창조의 기예’·257



부록 사주명리 왕초보교실·265

1. 첫번째 시간 : 천간 탐구생활 _ 음양오행, 그리고 충과 합·266

2. 두번째 시간 : 지지 탐구생활 _ 현실세계에서 지지의 모습·271

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아줌마는 공부를 해야겠네요. 자식이나 재물, 이런 거하고는 영 인연이 없어요." 처음 역술원에 갔을 때였다.

“중요한 건 더 좋은 힐링, 더 많은 치유가 아니다. 힐링과 상처의 공모관계를 해체하고 전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삶을 일방향으로 이끄는 거울을 깨뜨리고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과 세상을 향한 항해를 시작하는 것. 그리하여 감히 자신의 운명을 직면하는 것, 길은 다만 거기에 있을 뿐이다. 강을 건너기 위해선 뗏목이 필요하다. 사주명리학은 아주힘차고 역동적인 뗏목이 되어 줄 것이다. 강을 건넌 다음엔? 물론 뗏목은 버려야 한다!” (머리말 중에서)  접기

“인류가 고안해 낸 운명론 가운데 음양오행론은 단연 독보적이다. 무엇보다 의학과의 긴밀한 결합이 가능하다는 것이 최대장점이다. …… 가장 원대하고도 고매한 비전탐구이면서 동시에 가장 구체적이고도 실용적인 용법을 지니고 있다는 것. 운명을 안다는 건 ‘필연지리’(必然之理)를 파악함과 동시에 내가 개입할 수 있는 ‘당연지리’(當然之理)의 현장을 확보한다는 뜻이다. 정해진 것이 있기 때문에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우연일 뿐이라면 개입의 여지가 없다. 또 모든 것이 필연일 뿐이라면 역시 개입이 불가능하다. 지도를 가지고 산을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어진 명을 따라가되 매 순간 다른 걸음을 연출할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운명론은 비전탐구가 된다. 사주명리학은 타고난 명을 말하고 몸을 말하고 길을 말한다. 그것은 정해져 있어서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최대한으로 누릴 수 있음을 말해 준다. 아는 만큼 걸을 수 있고, 걷는 만큼 즐길 수 있다. 고로, 앎이 곧 길이자 명이다!”  접기

좋은 팔자란 길한 것을 맞이하고 흉한 것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길과 흉에 대한 인식과 욕망의 배치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245쪽 - 녹차

물론 용신을 선택하거나 활용하는 데도 기본기가 중요하다. 가장 먼저 중시해야 할 사항은 반복의 늪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반복은 순환의 죽음이다. 아니, 반복 자체가 죽음이다. 암과 자폐증, 그리고 치매. 현대인을 두렵게 하는 이 병들의 공통점은 이웃과의 단절이다. 세포 단위든 개체 단위든 일단 소통이 단절되면 모둔 존재는 자기 동일성만을 증식하게 된다. 자기 동일성의 증식이 곧 반복이다. 반복의 늪에만 빠지지 않아도 인생은 일단 살 만하다. 좋건 나쁘건 변화의 국면들을 헤쳐 가면서 끊임없이 다른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22)  접기 - 베리심플

사람마다 몸과 기질이 다르듯, 운이 막히는 대목이 다르다. 보통 운명이라고 하면 거창한 인생역정을 떠올리지만 그 어떤 인생역정도 일상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운명을 바꾸려면 무엇보다 일상의 리듬을 바꾸어야 한다. 얼마나 단순하고 쉬운가. 이 일상을 건너뛰고 다른 방편을 쓰고자 한다면 그건 다 사술이다. (124) - 베리심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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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고미숙 (지은이)

본 투 비 백수. 20대에는 청년 백수, 30대 중반엔 박사학위를 받고도 중년 백수가 되었다. 그래서 아예 ‘고전평론가’라는 직업을 만들어버렸다. 혼자는 너무 심심하고 외로워서 공부공동체를 꾸렸다. 우여곡절을 거쳐 현재는 ‘감이당(&남산강학원)’이 본거지다. 2080세대가 함께 꾸려가는 대중지성 네트워크라 생각하면 된다. 주요 활동은 ‘읽고, 쓰고, 말하기’. 그것으로 밥벌이도 하고 수많은 벗들을 만나고 계속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하다. 이 행운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

최근작 : <나는 왜 이 고전을>,<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 총 174종 (모두보기)

인터뷰 : '수유+너머'를 듣기 위해 고미숙을 만나다! - 2004.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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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책 소개

이 책은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인문학과 사주명리학의 만남을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을 날카롭게 분석한 사회비평서이자, 힐링과 치유가 넘칠수록 상처가 늘어나는 기묘한 시대에 우리 자신의 마음에 대한 공부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함을 동서양 고전을 넘나들며 말하는 인문서이고, 그 공부의 지도가 되어 줄 사주명리학의 초보 지식까지 친절히 담아 놓은 사주명리 입문서이다.

작년(2011년)에 출간된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가 고미숙이 동양의학을 현대의 삶에 맞게 재해석한 결과물이었다면, 이번에 나온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는 그와 짝꿍을 이루는 동양역학을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동양의 고전을 현대적으로 새롭게 직조해 내는 데 능숙한 고미숙답게, 이 책을 통해, 개화기 이후 도입된 서양 문물과 삶-인식의 방식 때문에 “미신적인 것”으로 치부되거나, 『주역』으로 대표되는 역학고전에 대한 ‘신비감’에 가두어져 왔던 사주명리학은, 지금 여기 우리 삶의 길을 펼쳐갈 지도로 새롭게 탄생한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먼 존재”라는 니체의 말은 현대인의 삶에 대한 가장 신랄한 한마디일 것이다. 몸은 의사에게 맡기고, 마음은 심리치료사나 또 역시 (정신과)의사에게 맡길 뿐, 자기 마음과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그러니까 지금 왜 이토록 너의 말 한마디에 화가 치밀고, 너의 행동이 보기 싫은지, 왜 이렇게 나는 무기력하고 우울해지기만 하는 건지― 알려고, 공부하려고 하지 않는 우리들에게 고미숙은 말한다. 중요한 건 더 많은 힐링, 더 좋은 치유가 아니라, 자신과 세상을 향한 항해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그리하여 감히 자신의 운명을 직면하는 것이라고.

“오직 나 자신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 무수한 번뇌와 아픔과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하는 것, 그것은 앎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고미숙이, 엄마-아빠-자녀의 가족삼각형에 갇혀 버린, 오이디푸스적 삶에 옭매인 우리에게 그 사슬을 끊고, 새로운 나를 향해 떠날 지도 한 장을 펼쳐 놓고 있다.



인문학, 사주명리를 만나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운명 사용설명서!

― 자신과 세상을 향한 항해를 시작하라, 그리하여 자기 운명과 직면하라!



작년 가을, 허준의 『동의보감』을 인문학자의 눈으로 새롭게 풀어냈던 고전평론가 고미숙. 그녀가 의역학 공부로 나아간 지 10년 만에 출간한 『동의보감』 리라이팅과 더불어 동양의학과 짝을 이루는 동양역학에 대한 책,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출간했다. 동양의학은 ‘한의학’으로 당당히(?) 제도권 속에 진입한 데 반해 동양역학은 아직까지도 ‘미신’ 정도로 취급받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동양의 천문(天文)이며 인문(人文)인 ‘사주명리학’이야말로 가장 고매하면서도 가장 실용적인 인문학이라고 말하는 고미숙은, 이 낯설고도 흥미로운 동양학의 영역을, 어떤 사회적 관계도 거세해 버리고 “엄마―아빠―자녀”의 가족삼각형 안에 얽매인 오늘의 세태를 분석하며 지금, 여기의 것으로 새롭게 조명해 낸다.



현대인들은 문명의 폭주 속에서 나를 잃어버렸다. 나에게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다고 해야 맞으려나. 감정, 자의식, 스펙, 대체 무엇이 ‘나’인가? 그 어떤 것도 허망할 따름이다. 그래서 괴롭고 아프다. “거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일찍이 자신에 대해서 탐구해 본 적이 없었다. …… 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들 자신에게 있어 이방인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며, 오해하고 혼동할 수밖에 없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먼 존재’이다.”(니체, 『도덕의 계보』) 결국 자신과의 소외는 자연에 대한 무지와 맞물려 있는 셈이다.(본문 49쪽)



이 책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왜 치유와 힐링이 이렇게 범람하는데, 상처는 줄어들지 않는가? 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전문가’(의사, 심리치유사 등)에게서 찾으려 하는가? 니체의 말처럼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먼 존재”가 되어 버린 자신을, 나에게로 가는 길을, ‘사주명리학’이라는 지도를 가지고 찾아보자는 것이다. 물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도, 융의 분석심리도,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자연의 이치 속에서 존재와 운명의 비의를 탐색해 온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있다. 게다가 이 앎은 의학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 몸과 우주와 운명을 하나로 관통하는 앎의 체계인 것이다. 심리만이 아니라 ‘삶의 비전’까지 탐구할 수 있는 이 앎을, 고미숙은 우리 각자가 적극적으로 전유하길 바란다. 우리 자신에게 가는 그 길은 “아는 만큼 걸을 수 있고, 걷는 만큼 즐길 수 있다”면서.

어찌 보면 동양의역학은, 자본주의 탄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근대성’ 비판에서 출발, 근대의 이분법적 앎의 배치부터 위생담론까지 전방위적으로 비판하며, 새로운 앎, 새로운 삶을 그 자신이 직접 실천해 온 고미숙이 만날 수밖에 없는 학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명석판명함을 지향하는 서양의 입론들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영역, 자연에 사계절이 있듯 삶에도 생로병사가 있고, 고로 나를 아는 것이 곧 우주의 이치를 아는 것과 연결되는, 이 미시와 거시, 인생과 우주가 중첩되고 교차되는 앎의 체계를 풀어낸 이 책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를 통해, 우리도, 지금, 나 자신과 세상을 향한 한발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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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의 수학능력은 어디까지일까.아는 것을 풀어놓는 솜씨는 지식소매상 중 으뜸이다.저자의 책을 볼때마다 놀라기도 하고 반성하기도 하는데 치우지지 않는 사유를 통한 중심을 지켜 내는 힘이 대단하기 때문이다.자칫 잡술로 치부되기 쉬운 명리학을 제대로 꿰뚫어 시원한 통찰을 보여준다.  구매

Ajna 2015-08-11 공감 (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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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관심이 많은 분야인데 고미숙샘이 글을 쓰셨다고 해서 많은 기대를 해서 그런가 초반에는 정말 재밌었는데 뒤로 갈수록 아쉬웠다. 다음엔 `중급`편을 써주셨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구매

라로 2013-02-22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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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 선생님의 글을 읽다보면 나도모르게 글의 논리에 빠져들어 수긍하게된다. 사주명리학에 인문학과 의지를 녹여내는 선생님의 글솜씨란 진정한 브리콜라주가 아닐까. 오이디푸스적 운명론에 빠져서 자작자수 하지말라는 선생님의 일침에 가슴이 얼큰했다.  구매

김민준 2016-01-19 공감 (7)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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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여러 책을 읽어 보았지만, 이 책은 무척 실망이다. 왜냐하면 깊이 있는 연구와 성찰이 부족하다. 이미 유효기일이 끝나 폐기처분해야될, 용신, 격국, 형충파해, 신살들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매

melvin 2012-09-06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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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학의 전문가로서의 깊은 이해와 공부를 갖고 저술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이해한 범위 내에서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쓴 책으로 일반인의 흥미와 관심을 유발하는 데에 그 의의가 있을 뿐임.  구매

windwave21 2017-01-29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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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약은 약사에게, 점은 점쟁이에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겐 흥미롭고 즐거운 독서였다. 그리 깊이 들어가지 않고, 그렇다고 아주 가볍지도 않은, 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정도의 책.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평소 사주명리학을 접해 본 경험이 있다거나 자주 점집을 들락거리면서 '주워들은 풍월'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에 국한된 얘기가 아닐까 한다. 사주명리학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읽으라면 , 끝까지 쉽게 읽어 내기가 그리 만만치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아줌마는 공부를 해야겠네요. 자식이나 재물, 이런 거하고는 영 인연이 없어요. 평생 공부하고 , 글 쓰겠어요. 꼬부랑 할머니가 돼서도 글을 쓰겠구먼요. "

책 초반에 나오는 얘기인데, 저자인 고미숙이 점집에 갔을 때 들은 사주명리학에 대한 첫경험이었다고 한다. 얼마나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렬한 느낌이었을까 짐작이 간다.

많은 사람들은 사주팔자가 여전히 믿을 게 못되고 비과학적이며 터무니 없는 미신이라고 주장하는데, 겪어 보면 알게된다. 그 신기하고도 절묘한, 그리고 경험하고도 여전히 믿기 힘든 음양오행의 오묘한 조화를. 그리고 겪어 보지 않으면 절대로 영원히 이해할 수도 없다. 나의 경우도 모태 점집 마니아이신 우리 어무이를 통해 서서히 사주명리학의 신통함에 대해 접하게 되었고 주변사람들의 점집 방문 경험을 많이 듣거나 내가 직접 경험함으로써 사주명리학을 믿게 된 케이스다. 몇가지만 예를 들자면....

case 1 : " 아마도 의약계통 또는 건강 관련 업종에 종사하겠으나 한창 공부해야 할 시기에 학운이 조금 미약하여 의사나 약사는 아닙니다. 역마의 기운이 강하니 가만히 앉아 일하는 내근직은 전혀 맞지않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돌아다녀야 하는 팔자군요"

=>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잔뼈가 굵어 지금은 건강식품회사 직접 차린 내친구가 20대 후반에 나랑 같이 가서 들은 사주풀이

case 2 : " 전형적인 선비사주군요. 30대 쯤 외국 나가 살 운이 있으니 유학가서 박사하면 되겠습니다. 문과 보다는 이과 적성이며 직장운이 늦게까지, 그리고 큰 굴곡없이 지속되는 걸로 보아 대학에 몸 담을듯... "

=> 유학 다녀와서 모 대학에서 교수(바이러스 전공)하는 우리형이 초딩때 들었다는 사주풀이

글쎄, 이런 걸 생년월일시만 알고 대충 눈치봐서 찍을 수 있을까? 세상에 직업이 얼마나 많은데. 일단 내 주변의 가벼운(?) 사례 두 개만 말했지만 명리학 고수들의 엄청난 무용담은 수없이 많다. 나의 경우를 말해 볼까?

내가 술에 물탄듯, 물에 술탄듯 공부하다가 해마다 시험 떨어지고 취업을 할 것인지, 한 번 더 Go를 할 것인지 고민하던 때, 나와는 달리 벌써 시험에 합격한 후 배부르게도 또 다른 진로를 고심하던 친구들이 있었다. 한 명은 내친 김에 사법시험까지 볼 것인지를 고민하던 친구였고 또 한 명은 유학을 갔다와서 교수를 해볼까 고민하던 친구였다. 그때만 해도 나는 점집에 거의 가 본적이 없었고 주로 우리 어무이께서만 해마다 유명하다는 점집을 순례하시고 내게는 듣고 온 사주풀이를 전해 주시던 때였다. 그래서 나는 두 친구에게 어무이로부터 전해 들은 유명하다는 점집 얘기를 하며 선택이 고민될 때는 점집이 최고라는 조언 겸 격려를 해줬다. 무려 백수 처지에. -_-

하여간 몇 달 후 이 친구들과 다시 모일 일이 있었는데 친구 중 한 명이 벌써 그 점집에 갔다 왔는데 거의 도사 수준이라며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했다. 얘기인 즉슨, 자리에 앉아 생년월일만 말했더니 그 사주보는 아저씨가 잠시 후 " 자네 혹시....... 직업이 ..... 회계사인가?" 라고 했고 내 친구는 깜짝 놀랐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이외 다른 것들도 대체로 잘 맞았고.

그 얘기를 들은 나머지 친구 한 명이 그럼 자기도 다녀오겠다는 얘길 했고 몇 달 후 만난 자리에서 그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두 번째 친구도 그 집에 가서 생년 월일을 말했더니 역시나 잠시 후 " 자네 혹시....... 직업이 .... 회계사인가?"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이외의 다른 개인적인 인생이력에 대한 적중도는 먼저 간 친구와 대동소이. 우리는 술 마시면서 아마도 그 아저씨 아무나 젊은 남자 오면 회계사냐고 일단 찍는가보다 라며 농담한 기억도 난다.

이쯤에서 나도 궁금해졌다. 점집소개만 해 주고 정작 나는 못가봤는데....나도 한 번 가볼까....하는.

아마도 공부가 무척이나 하기 싫었거나 시험준비에 대한 회의가 들던 어느 날이었을텐데,  드디어 난생 처음 점집이란 곳을 혼자서 가봤다. 나도 생년월일시를 말하고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사주풀이를 기다리는데..... 그 아저씨 왈,

기가 막힐 노릇 아닌가?  나이도 같은데 누군 회계사냐고 물어 보고, 누군 회계사 시험 준비하냐고 물어보고. 내가 따지듯 물어 보자 그 아저씨 가라사대, "자네 사주를 보아 하니 분명 적성이나 할 일은 이분야인데 아직 나쁜 대운이 안 끝나 합격운에 이르지 못했으니 준비하냐고 물을 수밖에. "라며 당연한 얘길 묻냐는 식으로 말했다. 그 이후로 그 아저씨가 '때려 죽여도' 붙는다는 해에 난 시험에 합격했고 아무리 늦어도 이 시기 넘기기 전에 장가간다는 해에 결혼했다. 물론 그 이후로 난 사주명리학의 신봉자가 되었고 자칭타칭 점집 마니아도 되었다.

사주팔자는 미신이라고 하기엔 나와 내 주변의 경험상 너무 잘 맞는다. 저녁 7시의 운명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턱도 없이 당신은 아침 10시라든가 오후 2시의 운명이시군요라는 헛소리는 절대 안한다. 물론 분, 초까지 정확히 맞추지는 못해도 대략 저녁 6시에서 8시사이의 삶을 산다는 것 정도는 맞춘다. 물론 초일류고수에게 본다는 전제하에. 그래서 평소 사주점이 잘 안맞는다는 사람들은 대충 공부한 어설픈 사람들에게 봤거나 자기 태어난 시간이 정확치 않은 사람이 대부분일거라는게 내 생각이다. 참, 여기엔 신들린 무속인의 점은 제외한다. 신점은 맞을 땐 정말 소름끼칠 정도로 잘 맞지만 일반적으로 편차가 크다. 양궁으로 치면 10점 아니면 6점만 쏘는 궁사라고나 할까?

다시 책으로 넘어와서... 보통 사주명리학 하는 사람들은 글솜씨가 없다. 쉽게 쓸 수 있는 글도 일부러 현학적인 자세로 어렵게 쓰는 것인지는 모르나 아무튼 사주개론서나 해설서들이 대부분 난해하다. 그런 측면에서 일단 이책은 매끄러운 서술과 쉬운 설명에서 점수를 주고싶다.


이책은 사주명리학을 공부하기 위한 친절한 입문서는 아니다. 조용헌의 책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전설의 고향'류의 명리학고수들 무용담이나 점집 탐방기는 더더욱 아니고. 아마도, " 사주명리학, 너무 무시하지 마라. 다들 뜬구름 잡는 식의 거창한 얘기만 하면서 헛고생 하지만 음양오행의 조화를 알게 되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 마음도 편해진다. 내가 공부해보고 겪어 보니까 그렇더라. 그러니까 너희들도 관심가지고 명리학 공부 좀 해보지 않으련? " 뭐 대충 이런 얘기가 아닐까 한다.

사회를 바꾸는 활동과 소수자를 위한 운동은 아주 종종 헌신과 희생으로 귀결되곤 한다. 혁명을 위해 자신을 내팽개치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혁명인가? 내가 나를 구원하지 못하는 혁명이 대체 누구를 구할 수 있단 말인가? 공적으로 표방하는 명분과 내밀한 욕망 사이의 이중 플레이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아무리 혁명을 외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의 욕망은 곧 사회적인 인과의 결과물이다. 나의 질병은 곧 시대적 징후의 산물이다. 나의 욕망, 나의 질병을 탐구하고 해명할 수 있을 때 비로서 타자들에게 그것을 전파하고 순환시킬 수 있다. - p 55

너무 직설적으로 쓰면 좀 없어 보이니까(?) 인문학적인 고상한 용어도 섞어 쓰면서 얘기는 진행된다.

흔히들 자기운명을 개척하려는 의지가 굳세고 사주팔자를 안 믿는 사람들에 대한 대답도 이런 식이다.

숙명론은 정해진 운명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운명에 대한 해석을 전적으로 외부에 맡기는 것을 뜻한다. 몸이 아플 때 의사나 묘방만을 찾으면 그것이 곧 숙명론이다. 왜 아플까? 그 인과를 찾기 시작하고 그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풀어가게 되면 그건 숙명론이 아니라 운명에 대한 비전탐구가 된다. 그런데 그 비전탐구를 하려면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그것이 작용하는 원리와 좌표를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 사주팔자란 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네비게이션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 - p 127

좋은 팔자란 길한 것을 맞이하고 흉한 것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길과 흉에 대한 인식과 욕망의 배치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생명의 바다, 음양오행의 매트릭스에 길흉은 없기 때문이다. - p 245

모르긴 몰라도 사주명리학에 대한 공부는 저자가 나 보다 훨씬 많이 했겠지만 장담컨데 전국의 유명하다는 점집(주로 명리학) 은 내가 더 다녀봤을 것이다. 그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다가 올 운명을 100% 맞추는 사람은 절대로 없다는 것이다. 30년 이상 이 공부만 해 온 고수들도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왕왕 있다.

결론 삼아 저자는 이렇게 재미있고도 살아가는데 요긴한 명리학 공부를 직접 해 보는게 어떠냐는 식으로 권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상식수준에서 조금 공부하면 도움이 된다. 정말 인생의 기로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시기에 사주명리학에 대한 기초적인 공부가 되어 있으면 상담을 받으러 가더라도 더 예리하게 질문을 잘 할 수 있고 , 그들의 설명과 논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어설프게 책 몇 권 공부해서 자기 운명이나 남의 운명을 본인이 직접 감정하려 들면 큰 실수를 할 수 있다. 남의 귀한 자식의 인생진로를 엉뚱한 방향으로 망칠 수 있고, 사랑하는 청춘남녀의 결혼을 궁합이 안 맞는다는 이유로 갈라 놓을 수 있으며, 손대지 말았어야 할 사업을 남에게 부추길 수도 있다. 책 좀 읽고 공부 약간 했다고 하면 주변에서 (재미삼아겠지만) 질문공세를 퍼부으며 가만 놔두지를 않는다. 내가 아는 모 고수는 10년 이상 공부하고 1 만명 이상의 사람을 만나 감정해보니까 그제서야 어렴풋이 조금 감이 좀 오더라는 말을 했다. 그만큼 어려운 공부다. 사주풀이를 평생직업으로 할(물론 재능도 갖춰야겠지만)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깊숙히 공부는 하지말자. 하더라도 조금만 하자. 이게 내가 어줍잖게 사주명리학 서적 몇 권 읽고 수많은 전국의 내로라하는 역술인 고수들 만나 본 결과 내린 결론이다.

다시 말하자면, 약은 약사에게, 점은 점쟁이에게.  단, 반드시 초절정 고수에게!

P.S. 1. 뜬금없이 책 몇 페이지 걸러 한 번 씩 등장하는 (^^;) 같은 이모티콘은 누구의 아이디어 일런지? 인터넷 상의 가벼운 블로그 글도 아니고, 너무 자주 등장하니 이 책에 좀 안 어울린다는 생각을 넘어 눈에 거슬리기까지 했다.







2. 지난 몇 번의 점집 관련 페이퍼로 점집을 소개해 달라는 숨은 댓글과 메일을  100 건이 넘게 받았다. 물론 일일이 친절하게 장문의 답변을 드렸고. 그런데.... 한 번이라도 서재상에서 인사를 나눈 경우라면 모를까 처음 방문해서 대뜸 문의 댓글 한 번 달고 그 이후로는 깜깜무소식인 1회성 댓글 문의는 이제는 정.중.히. 사양하련다.   잘 안 믿어지겠지만 나도 제법 바쁜 사람이다.  게다가 점집 영업사원은 더더욱 아니고.   -_-;;



















서재에서 처음 뵙는 분들의 점집 문의에 대한  비밀 댓글에 대해서는 9/28일 오전 11시 이후로 절대 답글 안 달아 드립니다.  문의하지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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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2-09-12 공감(88) 댓글(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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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친구에게 새창으로 보기 구매

이 또한 사주명리학의 마법이다. 앞에서 보았듯, 누구든 치우치거나 기울어져야 태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완벽하다, 아니 최선이다! 출발의 조건도 그렇지만 이후에도 그러하다. 여덟 개의 카드는 구성이 어떻든 간에 다른 오행으로 변주될 수 있는 유동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곧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인생역전 혹은 깨달음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내가 아닌 아주 낯선 존재가 되어 전혀 다른 삶을 산다는 뜻이 아닌가. 사주팔자에는 그런 식의 변곡점을 만들어 낼 '숨은 조커'들로 그득하다. 니체가 말한바, "생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 두었다"는 예언이 혹 이런 뜻이었을지도. (p.108-109)











며칠전에 친구와 인간관계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것은 관계를 맺게 되는 '운'에 관한 것이었는데, 친구가 보기에 나는 가족들과 사이가 좋고 다정하여 복받은 것 같다는 거다. 나 역시 그걸 알고 있는 바, '관계운 총량의 법칙이란 게 있는 것 같아, 나는 가족운 좋은 대신에 애인운은 별로인가봐' 했더니, 친구는 '나는 애인운은 있는데 가족운은 별로인 것 같아'라고 말했더랬다. 그러면서 친구가 덧붙이길, '내 운 어디가 어긋났는지 너가 나타났네' 라고도 했다. 이뻐라..



어쨌든, 인간은 모든면에서 모든 걸 다 완벽하게 가질 순 없는 것 같다. 친구와의 대화에서처럼 타인과 맺고 있는 관계란 것도 마찬가지. 나는 직장에서도 동료들과 사이가 좋고 다정하게 지내서, 나의 동료들도 자신들의 친구로부터 '어떻게 그런 동료가 다있냐'라는 말도 종종 듣는다는데, 상사로 가면 얘기가 확 달라진다. 나는 수시로 '이런 상사를 내게 줘서 미안한 마음에 이런 동료들을 줬나' 싶어지는 거다. 그리고 다른 관계로 크게 축복해주지 못할 것 같아서, 이토록 복된 가족을 내게 주었나... 싶고. 어쨌든 상사 폭탄은 너무 크다. 관계에서 이렇게 총량의 법칙이 있는 것처럼, 다른 부분도 다 마찬가지로 작용할 것이고, 그리고 이것은 전체 운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위에서 말한 '여덟 개의 카드'는 우리가 말하는 그 '팔자'를 의미한다. 태어난 년월과 시. 우리는 보통 '팔자가 사납다' 따위의 말을 하긴 하지만, 누구 하나의 팔자가 더 사납거나 더 좋을 순 없다고, 이 책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얘기한다. 이게 넘치면 저게 부족하고, 저게 넘치면 이게 부족하고. 그렇지만 그것이 일상의 사소한 (나쁜)습관을 고치는 걸로 달라질 수도 있음을 얘기하고, 또 다른 사람과의 관계맺기로도 달라질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스스로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데, 이는 '너 자신을 알라'와 같은 말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내가 아주 잘 살아오고 있다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끊임없이, '내가 이럴 때 어떡해야 하는가' 부터 시작해서, 나를 관찰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 내가 이럴 때는 이렇구나, 이럴 땐 이렇게 해야 겠구나, 하고, 꾸준히, 아직도 내가 모르는 나를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한다.











사주를 보러 간 적도 몇 번 있는데, 사주를 보러 가는 것은 내가 내 운명을 따르기 위함이 아니었다. 내가 들여다보는 내가 아닌, 타인으로부터 내 운명에 대한 얘길 듣기 위해서였다. 그런점에서 사주는 내게 카운슬러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는데, 가서 가만히 내 생년월일을 넣고 나의 운명에 대한 얘기를 듣노라면, 그게 그렇게나 위안이 되는 것이다. 아, 내 사주에 이런 글자가 있어서 나에게 역마살이 있구나, 부터 시작해서, 아 나는 계속 공부하면서 살아야겠구나, 까지. 어떤 사주 쌤은 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아주 잘 살고 있다고 하셨다. 이렇게 잘 살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 같냐고, 절대 그렇지 않다고, 칭찬해주고 싶다고 했더랬다.







특히 기억에 남는 사주쌤은, 내 친구의 사주를 봐주면서 '너의 팔자가 이렇다고 해서 이렇게만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더랬다. 아주 작은 결정에서부터 운명은 바뀔 수 있으니, 끊임없이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이 되어서 보고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하라고. 누군가 써준대로만 사는 인생이면 얼마나 재미없냐,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면서 사소한 게 하나라도 바뀌면, 그 다음 행보도 바뀔 수 있으니, 운명을 스스로 써나갈 수 있도록 하라는 거였다. 그때 그 쌤이 해준 얘기가 이 책에도 똑같이 실려있다.











어떤 유형의 팔자건 순환이 이루어지려면 일단 내가 가진 기운을 내야 한다. 몸, 재물과 능력, 마음, 이 세가지는 누구나 지니고 있다. 많든 적든 높든 낮든. 뭐가 됐건 일단 이것들을 쓸 준비를 해야 한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서 좋은 운이 오긴 어렵다. 재물과 능력을 적극 활용하지 않고서 복을 받기란 불가능하다. 또 마음을 꽉 채워 버리면 운은 막혀 버린다. 요컨대, 탁하고 무거운 기운이 가득찬 곳엔 복이 머무르지 않는다. 복을 받고 운을 맞이하려면 주변의 공기를 맑고 청정하게 해야 한다. (p.124)











사람마다 몸과 기질이 다르듯, 운이 막히는 대목이 다르다. 보통 운명이라고 하면 거창한 인생역정을 떠올리지만 그 어떤 인생역정도 일상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운명을 바꾸려면 무엇보다 일상의 리듬을 바꾸어야 한다. 얼마나 단순하고 쉬운가. 이 일상을 건너뛰고 다른 방편을 쓰고자 한다면 그건 다 사술이다. (p.124)















책의 부제에 써있는 '사주 명리학'이란 단어 때문에 이 책을 읽으려고 했었다. 혹시라도 책을 읽다가, 나의 사주를 봐주진 않을까 해서. 그러니까 왜 별자리 책처럼 '사자자리' 찾으면 '당신은 어떻고 어떤 사람이고 어디가 행운의 장소이다' 같은 걸 말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기대로 책장을 펼치긴 했지만, 아니 그런데 태어난 년월과 시로 말하자면 어마어마한데, 그걸 다 책에다 쓸 순 없었겠지, 설마 나한테 찾아보라는 건가, 하며 기대를 좀 접긴 했는데, 역시나 '너의 사주는 어떻다'고 풀이해주진 않았다. 나는 내가 되게 특별한 줄 아는데, 전혀 아니라는 걸 자꾸 깨닫는다. 그럼 그렇지, 이 책이 뭐 나의 사주에 대해서만 말해줄줄 알았냐... 각설하고,







이 책에서 말하는 운명과 팔자에 대한 부분, 그러니까 우리가 가진 팔자 그 자체가 굉장히 공평하고 최선이라는 것, 우리가 가진 재료로 이렇게 만든 게 최선이었다는 것을 얘기하는 건, 아마 그동안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굉장히 신선하게 틀릴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사주명리학을 공부해볼까 하는 충동에 잠깐 흔들렸는데, 아마도 이 책을 읽고 사주명리학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진 사람이 많아지지 않았을까. 또한, 저자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 가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던 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내게는 이 책에 쓰여진 것들이 딱히 특별할 건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모르는 바를 일깨워주진 않았던 거다. 너와 내가 만나서, 그러니까 어떤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느냐로 나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내가 나를 잘 들여다 봐야 한다는 것, 일상의 작은 것들이 우리의 운명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시간 약속을 잘지키고 청소를 잘하는 것으로 아주 많은 것들이 해결된다고 한다!!)은, 나로서는 이미 다 아는 얘기였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했던 얘기들이기도 하고. 그러나 알고 있다고 해서 언제나 머릿속에 넣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새로이 되새기는 것도 아니잖은가. 잊고 있었다. 내가 나 자체로서, 그러니까 이렇게 어딘가 기울어지고 모자란 상태로서도, 이미 완벽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또한 우리 모두가 공평하게 어딘가 모자라고 이지러진 존재라는 사실도 마찬가지고.











일전에 사주를 보러 갔을 때 그 쌤은 본인이 잘 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는 자기에게 사주를 보러 온다고 하기도 했다. 이 분이 말씀하시길, 그렇게 잘 보는 자기이지만 처음엔 결혼을 잘 못봤다는 거다. 젊은 사람들이 '나 언제 결혼하느냐' 부터 시작해서 결혼에 대해 물을 때 자기가 보이는대로 대답을 해주면 절반은 맞고 절반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 왜그럴까 왜그럴까 고민하다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 있었으니, 결혼은 '상대'가 있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나 하나의 사주로 결정될 수 없다는 것. 그것을 나중에 깨달았다고 하시는데, 이 얘기에서도 나는 이미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한다. 어디 결혼만 그렇겠나. 우리가 다 정해진 팔자가 있다고 해도, 그 안에서 그럴 내가 어떻게 운영하느냐로 달라질 것이고, 일상을 바꾸면서 달라질 것이고, 일상을 바꾸면, 이 책에서 얘기한 것처럼, 만나는 사람 자체도 달라질텐데, 그러면 모든 것들이 조금씩 바뀌어 다 달라질 수 있게 되는 것 아닌가.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고 살아가는 세상이니, 쓰여진 사주대로 진행되지는 않을 터. 이런 것들을 알면서 잊고 지냈던 나는, 그래서 이 책을 읽는게 큰 도움이 됐다. 내가 원하는 바-내 사주를 봐주는걸까?-와는 일치하지 않았지만 뜻밖의 위로를 받았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다른 책과 동시에 집어 들었는데, 이 책에 열중하게 됐다.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나 뿐이고, 나라는 인간 자체는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그러나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모든것들을 충만하게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서 그 사람의 팔자가 결코 좋다고 볼 수는 없고, 그 균형은 어딘가의 누군가가 채워주고 있을 것이라는 거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내 삶에 충실하고, 일상을 단단하게 채워나가야겠다고, 그리고 다시 겸손해지는 것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꼭 사주팔자 그대로를 믿어서가 아니라, 태어난 것으로 정해지는 운명을 받을어서가 아니라, 그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을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하는 것에 대한 작은 위로로도 이 책은 읽을 만하다. 끝에 좀 '어라?'하는 부분이 있어서 별은 넷밖에 못주겠지만, 이 책으로 고미숙을 접했는데, 그것을 고미숙을 아는 '시작'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고미숙의 다른 책들도 다 읽어보고 싶어졌다는 거다.







요즘 삶이 힘겨워 밤에 잠을 못이룬다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의 그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터라, 이 책을 또 주문했다. 내가 가진 책은 이미 밑줄을 많이 그어서, 새 책을 친구에게 주기 위해서.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친구도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 자신의 상태 그대로 최선이라는 것, 그리고 일상의 작은 변화만으로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새삼 되새기며 위로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대부분은 정서적 균열과 관련되어 있다. 감정보다 더 힘이 센 것은 없다. 많은 경우, 명분과 논리는 감정의 ‘얼굴마담‘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감정들의 어울림과 맞섬이 사람들의 동선과 리듬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곧 인생이고 운명이다. (p.12-13)



시작이 있으면 중간이 있고, 그 다음엔 끝이 있다. 시작과 중간과 끝. 시간적 순서(次)는 반드시 공간적 질서(序)와 함께한다. 시간은 공간의 다른 표현이다. 시간과 공간이 합쳐져서 시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은 공간의 ‘휘어짐‘이고 공간은 시간의 ‘주름‘이다. 시공간의 리듬, 그것이 곧 ‘차서‘다.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에는 차서가 있다.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차서가. 해마다 이 리듬을 밟기 때문에 우주는 만뭉릉 쉬지 않고 창조해 낸다. 이 생생불식하는 활동을 일러 순환이라 한다. 순환이야말로 생명의 원동력이다. 다양성과 자율성도 이 차서 안에서만 가능하다. (p.38)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이 차서를 어그러뜨리는 체제이다. 순환과 비움이 아니라, 소유와 증식만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가난할 때는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돈을 버는 행위 자체가 자기에 대한 존중감이자 타인에 대한 배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자가 된 다음에, 먹고살 만해진 다음에도 계속 부를 증식하고자 한다면 그건 바보거나 광인이다. 자연스럽지가 않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부를 일구고 나면 선비를 기르기 위해 삼대가 적선을 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지혜다. 뒤에서 배울 터이지만 재성(재물운)이 관성(관운)과 인성(명예와 공부운)으로 순환하는 길을 찾는 것이다. 물질적 풍요는 반드시 정신의 가치와 함께가야 한다는 걸, 그래야 쉬임 없이 만물을 낳을 수 잇다는 걸 터득했던 셈이다. (p.47)



몸의 구조와 생리, 성격과 인생관등 다양한 항목들이 계열화된다. 그것이 관계를 만들고 사건을 일으키고 인연을 불러온다. 관계와 사건과 인연, 그 접속과 변이-이것이 바로 인생, 아니 팔자다. (p.70)



자신 안에 있는 불기운을 주체하지 못하는 건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지 다른 사람들이 비난해야 할 사항은 아니다. 타인의 행동을 시비선악을 떠나 ‘있는 그대로‘ 지켜볼 수 있는 것도 아주 좋은 공부가 된다. 물론 그 모든 것은 거울처럼 반사되어 나에게로 온다. 나의 행동, 나의 인생을 보는 시선도 전혀 달라지게 된다. (p.86)



누구든 여덟 개의 카드뿐이라는 사실. 왕후장상이건 농민이건 브라만이건 수드라건 혹은 그 누구건 여덟 개 이상의 카드를 가질 수는 없다. 현실을 보면 슈퍼맨이나 영웅 혹은 대자본가가 있지만 운명의 차원에선 그들 역시 ‘팔자‘그 이상을 누릴 수 없다. 만약 그들의 부와 권력이 타고난 것이라면 대신 다른 것들을 포기해야만 한다. (p.96)



팔자 또한 그러하다. 여덟 개의 카드로 음양오행이라는 기운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골고루 다 갖춘다는 건 불가능하다(아니, 무의미하다는 게 더 맞을지도). 결국은 어느 쪽으로든 치우칠 수밖에 없다. 넘치거나 모자라거나.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그래야만 태어난다는 점이다. 미리 밝혔듯이 천간과 지지 사이엔 두 개의 잉여가 있다. 천지는 태초부터 서북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자전의 축 또한 23.5도 기울어져 있다. 말하자면 우주는 완전한 원형이 아니다. 타원형이거나 아니면 약간 일그러진 형태의 원형이다. 이런 상태로 또 계속해서 돌아간다. 돌고 돌아 멈추지 않는다. 그럴수록 간극들이 쌓이고 쌓여 주름투성이가 된다. 결국 이 우주 속의 모든 존재는 이 주름의 산물이다. 당연히 넘치거나 부족할 수밖에 없다. (p.97)



사주팔자를 뽑아 보면 오행상 어느 쪾으로든 다 기울어져 있다. 심한 경우 한 오행이 고립이거나 아니면 아예 없기도 하다. 한두 개의 오행만으로 된 경우도 있다(윽!) 고스톱으로 치면 한두 종류의 패만 들어온 셈이다. 그럼 판을 포기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 좀 위험성이 있긴 하지만 또 패가 골고루 들어온 경우에는 누릴 수 없는 스릴이 있다. 그 스릴이 오히려 인생역전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불급의 극단인 고립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고립은 다른 오행에 가로막혀서 순환이 불가능한 경우다. 하지만 그 카드는 존재의 무게중심이 된다. 엉? 어떻게? 아픈 곳이 몸의 중심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손가락이건 발톱이건9자식이 깊은 병이 들면 그 자식을 인생의 축으로 삼는 부모가 그런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 그 카드들이 야기하는 파장은 크다. 즉, 가장 문제적인 곳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구원처일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 문제와 사건의 중신이 된 건 다른 일곱 개의 카드 때문이다. 즉, 그것 자체가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카드와의 관계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p.99)



다른 카드에 대해서는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이것만 쏙 뽑아버리겠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무지의 산물이다. 만약 어떤 비책을 동원하여 그것을 제거해 버린다면 그 순간, 나머지 일곱 개의 카드도 다 위치를 바꾸어 버릴 것이다. 그러면 또 다른 카드가 고립이나 태과에 처하게 될 게 뻔하지 않은가. 9카드 돌려막기의 비애?^^)

팔자가 원초적으로 평등하다는 두번째 근거는 바로 이것이다. (p.99)



사주명리학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장 중요한 건 보는 힘이다. 내 운명의 지도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잇는 끈기와 열정이 필요하다. 보는 힘이 커질수록 자신의 운명에 개입할 수 있는 접점이 넓어진다. 보통은 비참하게 주어진 운명을 억척스럽게 개척하는 것이 인생역전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건 어디까지나 진부한 성공담의 서사일 뿐이고, 진짜로 인생을 바꾸려면 가장 먼저 자신의 운명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선 부질없는 팔자타령 아니면 한방에 역전하는 도박심리만을 키우게 된다. 물론 그럴수록 팔자의 늪에 더더욱 빠지고 만다. 그래서 ‘보라‘고 하는 것이다. 보면 알게 되고, 알면 사랑한다. 지(知)와 사랑은 하나다! (p.120)



어떤 유형의 팔자건 순환이 이루어지려면 일단 내가 가진 기운을 내야 한다. 몸, 재물과 능력, 마음, 이 세가지는 누구나 지니고 있다. 많든 적든 높든 낮든. 뭐가 됐건 일단 이것들을 쓸 준비를 해야 한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서 좋은 운이 오긴 어렵다. 재물과 능력을 적극 활용하지 않고서 복을 받기란 불가능하다. 또 마음을 꽉 채워 버리면 운은 막혀 버린다. 요컨대, 탁하고 무거운 기운이 가득찬 곳엔 복이 머무르지 않는다. 복을 받고 운을 맞이하려면 주변의 공기를 맑고 청정하게 해야 한다. (p.124)



운명을 바꾸려면 무엇보다 일상의 리듬을 바꾸어야 한다. (p.124)



일상이 습속을 바꾸고 습속이 다시 몸의 생리로, 몸이 또 인연의 장을 바꾸고 운명을 바꾼다. 출발은 어디까지나 일상이다. (p.125)



자기를 구하는 건 결국 자기밖에 없다! (p.128)



관성이란 ‘타자들과의 네트워킹‘이다. 익숙한 존재들과의 관계는 관성이 아니라, 식상에 가깝다. 계모임이나 동호회, 친목단체 등등. 이 관계에선 나의 변용이 불가능하다. 비슷한 상태의 확장과 변주만 있을 뿐. 반대로, 관성은 낯설고 불편한 관계를 감수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책임을 져야 하고 갈등과 충돌도 불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전혀 새로운 기운이 형성된다. 그것을 바탕으로 재물을 모을 수도 있다. 그 재물이 다시 관성을 낳기도 하고. 따라서 관성을 적극 활용하면 재성과 인성이 서로 맞서는 형국에서 재-관-인으로 이어지는 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 (p.147-148)



공부는 존재의 근원에 대한 충전이고, 문서는 만물을 낳아 주는 대지의 이미지가 덧붙여진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게 육친으로 따지면 엄마란다. 하여, 엄마복이 있다는 건 공부운이 좋다는 뜻이 된다. 하기야 맹모삼천은 있어도 맹부삼천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픽션이건 현실에서건 홀어머니는 삯바느질을 해서라도 자식을 공부시키지만 홀아버지일 경우는 일찌감치 자식을 노동현장에 내놓은 경우가 많다. (p.154)



처음,「입구」에서 말했듯이 운명의 지도에는 역설과 아이러니 투성이다. 어떤 인위적 척도도 통하지 않는다. 이것이 좋으면 저것이 어긋나고, 저것을 얻으면 이것이 사라지고. 겉이 아름다우면 속이 문드러지고, 바깥이 거칠면 속이 부드럽고. 혹은 돈이 들어오면 건강을 잃고, 권력을 가지면 사람을 잃게 되고, 사랑을 얻는 대신 친구를 버려야 하고……한마디로 팔자에는 온갖 가치들이 범람한다. 가치들의 범람 속에서 종국에는 가치들이 얼음 녹듯 녹아 버리는 것, 그것이 팔자의 우주적 연기법이다. 고로,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이 서로 ‘오버랩‘되는 이 매트릭스에선 더 좋은 팔자도, 더 나쁜 팔자도 있을 수 없다. (p.160)



그렇다! 문제는 에너지고, 문제는 순환이다. 몸과 마음의 순환, 나와 타자의 순환, 나와 세계 사이의 순환……아무리 좋은 것들을 고루 갖추고 있다고 해도 그것들 사이에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p.180)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라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내가 만나는 사람이 곧 나다! (p.225)



스승과 벗이 없는 인생이란 그 어떤 금액의 돈으로도 결코 보상받을 수 없음을 꼭 되새길 필요가 있다. (p.225)



인복이야말로 배움의 진정한 배경이자 토대인 까닭이다. (p.232)



인복은 타고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결국 자기 하기 나름이다. 자업자득이라는 뜻이다. 구마준에게 있어 타인은 다 성공을 위한 도구다. 부모건 연인이건 또 스승이건. 그런 사람은 돕고 싶어도 도울 방법이 없다. 하지만 탁구에겐 자신을 둘러싼 모든 존재들이 다 자신의 스승이다. 김탁구가 즐겨 하는 대사, ˝가르쳐 주면 되지 않습니까?˝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큼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은 없다. 돕지 않으려야 않을 도리가 없다. 그리고 사람을 움직이는 것보다 더 큰 내공이란 없는 법이다. (p.233)



그런 점에서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계는 사제지간이다. 특히, 스승이면서 친구이고, 친구이면서 스승인 사우! (p.233)



자승자박!자업자득! 즉, 길이든 흉이든 결국은 자신이 불러들인다는 것이다. 어떤 사건도 자신의 내부에 단서나 원인이 없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 운명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외부와 내부가 마주치는 지점에서 만들어진다. 이 원리를 깨우치지 못하면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일정한 조건만 주어지면 동일한 욕망과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p.241)



자기 팔자가 팍팍하다고 느낀다면, 이유없이 몸이 아프고 마음이 괴롭다면, 다른 건 일단 제쳐 두고 먼저 점검해 보라. 내가 얼마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는지를. 약속을 지키고 청소를 잘 하고 있는지를. 산다는 거 별 거 아니다. 시공간이 곧 나다. 시공간과 내가 조응하는 만큼이 곧 나의 일상이다. 고로, 일상의 구원은 약속과 청소로부터 온다!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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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1-11 공감(23)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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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새창으로 보기

세 번째로 읽은 고미숙 선생님의 책이다.

공부를 하자는 책에서 사랑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에로스란 책을 읽었고..

사랑에 운명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보면서 또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운명에 있어서 몸과 많은 연관이 있다는 글에 동의보감 책도 읽을 기세.



난 정말 사람을 어지간히도 안 만나는 편이다.

맨날 보는 가족 제외하고 약속 잡고 만나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

진정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친구가 제일 제일 제일 친한 친구다.

그 와중에 꼭 인생의 전환기마다 감사하게 시간을 내어주는 선배 언니가 있다.

언젠가 언니가 나의 태어난 날과 시를 잡고 사주를 푸는 거다.

나랑 언니는 교회와 기독교에 대해 얘기하던 사이라 적잖이 놀랐다.

언니가 너무 답답할 때 회사에서 사주 강의를 했는데 이것은 중국의 인구를 갖고 통계를 낸 통계학에 가깝다는 것.

그리고 미리 이런 성향을 예측하고 생각해서 내 삶의 방향을 잡는데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쁠 것이 없지 않느냐는 언니 말에..

끄덕끄덕 인정을 했다.

사실 어떤 삶에 대해 몇백 년 이상을 믿고 도움받아온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진정 이 학문이 연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오감을 넘어선 육감(식스센스)를 얻은 느낌이랄까..

인생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은 느낌이었다.

이제껏 사주카페 같은데 가면 그저 나의 단순한 길흉화복을 묻는 기계적 답변을 원했다면..

알고 보면 사주는 그 이상의 복잡하고 미묘하면서도 재밌는 특성을 갖고 있음을 깨달았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사주 용어들이 나오는데 그냥 뛰어넘었다. 인성이 어쩌고 관성이 어쩌고..

그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아빠가 강의마다 설파했던 `만득 이론`(공같이 생긴 모래로 만든 인형)이다.

사람은 완벽하게 행복할 수 없는 존재란 것이다.

한쪽이 채워지면 다른 한 쪽이 모자라고 다른 한 쪽을 열심히 채워 넣으면 다른 한쪽이 없어져 버리는..

신기한 것은 돈을 쓸어모으는 연예인 근처에 돈을 축내는 가족들이 있는 것은 진상은 호구가 만든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지 모르겠지만..부에 대한 기운을 그 연예인이 다 쓸어가서 다른 사람은 그 기운을 뺏어내는데 그렇게 당당하다는 거다.

또 자식을 잃고 오래 사는 사람은 어쩌면 자식의 기운을 얻어 간 것일 수도 있다.

반대로 이런 나쁜 기운과 좋은 기운을 지혜로운 공부를 통해 해결해 나갈 수도 있단다.

돈이 많은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술과 여자가 따라온다.

그러면 돈을 기부하는 형식으로 흐르면 술과 여자에 대한 흐름을 막을 수 있다.

돈은 많이 버나 돈 버느라 거지꼴로 먹을 수밖에 없는(먹을 복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밥을 사주고 같이 먹으면서 먹을 복을 보충할 수 있다. 등등-



어쩌면 일거수일투족을 다 엄마의 도움을 얻었던 나는 인성이 과다한 성격.

이런 성격은 학벌도 높고 자격증도 많이 얻으나 정작 쓰지 못한다는데 진심 찔렸음.-_-

동생은 독립적이고 잘 있는데 나는 왜 그런가..라는 생각이 어쩌면 운명론적 사주와 관계있는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기고 싶은 사실은..

사람은 흐르는 강물과 같다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살만해지면 그 때부터 고인 물처럼 썩기 시작한다는 사실.

나는 매일매일 읽지도 않는 책을 애 둘을 끌고 빌려오고 반납하는 일을 부지런히 해 오고 있었다.

정말 비슷한 원숭이띠 남편과 친정엄마는 왜 그 고생을 하냐면서 엄청나게 나를 괴롭혔다.(최소한 나한테는 괴롭힘으로 들렸다.)

내가 빌려온 책 한 권이 보이면 분노 분노 분노.

나는 그게 그렇게 서운했다.

애만 보고 있는 나 자신은 정말 이 책에서 나오는 썩은 물과 같았다.

어쩌면 우린 아이를 키우면서 힘든 일을 시키지 않으려고 형제들끼리 스트레스 될까 봐.. 미리 걱정 없이 해 주려는 부모의 배려가

아이들에게는 흐르는 물을 고이게 만드는 끔찍한 실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인생은 어쩌면 고행이다.



좋은 사주도 없고 그렇다고 아주 박복한 사주도 없다.

내가 열혈 구독해서 읽고 있는 ˝예설˝이라는 블로거는 이슈가 되는 연예인들 사주를 알려준다.

그중 너무 재밌었던 사주는 바로 지금 교황님의 사주였다.

부모복도 없어 자식복도 없어 적들은 엄청 많고..

아주 나쁜 사주란 사주는다 갖고 계셨던 것.

그런데 참으로 맞는 사주다.

어렸을 때 어렵게 살아 성당에서 도움을 받았고 그래서 신부가 됐고 당연히 자식은 없을 테니 자식복도 없는 거고

적이야 세상은 죄악으로 물들었으니 선을 지향하는 직업상 적이 많아야 어둠을 비추는 등불로 더욱 빛나는 교황님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평화롭고 걱정없는 밝은 이 세상에서 영롱하고 밝고 고매한 교황님인들..그분이 멋진 분이라는 걸 알기야 하겠어?



아무튼-이제 사주는 미신 따위가 아닌 당당한 인문학의 연구분야가 되었다.

지금 여기 도서관에서도 사주 강의가 있네.흐흐

참 재밌다.



이 고미숙 선생님은 나를 재밌는 공부의 세계로 빠지게 하시는군요.

근데 저 5개의 과제 중 3개의 과제가 남았다는 사실.ㅜㅠ



이제 사주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내가 해야 하는 공부를 해야겠다.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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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책한엄마_mumbooker 2016-03-12 공감(1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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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 사주명리학을 풀어 주다... 새창으로 보기 구매

사람은 태어나면서 '사주 - 생년,월,일,시'가 정해진다.



그 결정론적 운명론에 경도되면, 삶은 너무도 뻔한 것 아닐까?







제 애비를 죽이고, 에미와 결혼해서 자식도 낳을 넘...이란 오이디푸스처럼,



제 눈을 칼로 찌르고 광야로 나아갈, 비극적 운명에 순응하기 싫다면,



이 책을 읽고 '안티 오이디푸스'의 길을 걷자는 달콤한 꾐이다.







애니팡 2라는 게임을 하다 보면,



처음엔 재미도 있다가,



레벨이 좀 올라가면, 해도해도 안 되는 경지를 만난다.



그럴 때 열받으면, 돈을 써서 이런저런 아이템을 사게 만든다.



그건 편법이고 꼼수다.



진득하게 안 되는 판은 '덕을 쌓는다'고 생각하고,



될 때를 기다리면 된다. 언젠가 한 판은 기회가 온다.







이 책에서 예를 든 고스톱처럼,



광을 많이 들었다고 승률이 높지도 않고,



그렇다고 피가 많다고 좋지도 않다.



자기가 든 패와 깔린 패와 순서가 척척 맞아 줘야 좋은 것이다.







고미숙의 가장 큰 장점은,



독자가 알아먹을 수준으로 말을 풀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학문적 깊이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힘들지만,



유사한 책들의 다른 저자들은 도대체 독자의 수준을 어떻게 잡고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을,



고미숙은 알기 쉽게 설명한다.







물론 이 책을 본다고 사주명리학이 훤~히 보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렇지만, 기초로는 이만한 책이 없을 듯하다.







개념들과 용어들을 쌈빡하게 설명하는 그의 능력이 부럽다.



나의 일간은 '계수'이다.







계수는 계곡물이나 옹달샘처럼 스케일이 작지만 투명한 물이다.



주변환경에 따라 자신을 변화시키는 유연성이 강하고, 아이디어와 독창성이 번뜩인다.(77)







고개를 주억거리며 읽게 된다.



서양의 '인간 탐구' 내지 '심리 해석'은 미리 많은 설문에 답한 다음 결과를 분석하는 것이어서



대부분의 경우,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분석하게 되는데,



동양의 철학은 음양보다는 오행의 상호작용이 크다.







나의 사주에서 나머지 일곱 글자는 불이 다섯, 나무가 둘이다.



치우쳐도 너무 치우친 사주다. ㅋ



그래서 가르치는 일로 먹고 산다.



식상이 '목'이다 보니, 표현하는 힘, 뻗는 것에 만족해 한다.



악기를 배우기 좋아하는 속성이 그런 것인가 한다.







재성이 '화'로 그득하다. 넘친다.



일복? 차고 넘친다. 알고나니, 억울하진 않다. 원래 팔자구나.







이렇게 치우쳐 있어서, 조커를 써볼까 하고 뒤적거려 보니... 헐~



점입가경이다.







네 글자의 '지지'에 딸린 '지장간'을 다 동원해 봐도...



열 하나 중에서, 다섯이 불이요, 둘이 나무다.







없는 것을 한스러워 하며 살면,



변화시킬 수 없는 것에 얽매이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나를 생하게 할 '금'의 기운을 가진 사람들이거나,



나를 극하지만 금을 생하게 할 기운을 가진 것들,



물론 내가 어떤 사업을 한다거나 하는 일, 사람을 믿고 투자를 하는 일 같은 것은 금물임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지만,



없는 것이지만, 서로 주고받으며 사는 것이 삶임을 깨닫노라면,



없으면 없는대로, 과하고 넘치면 또 그대로 살 수 있는 것이 삶이다.







고미숙 덕에 <운명의 브리콜라주>의 즐거움을 누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브리콜라주는 좋은 재료들로 작품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날 그 작업장에 있는 재료들을 활용하여 최고의 예술품을 만들어 내는 활동이라고 한다.



재료 자체의 속성이나 본질이 아니라,



재료들이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작품의 질과 개성이 결정된다는 원리.(122)







생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 두었다.(109)







행운으로 여길지, 불운으로 여길지는 해석하는 사람에게 달렸다.



내 삶의 해석,



굳이 남에게 맡길 것 없다.







내 삶은 내가 읽고 풀어가면,



풍부하게 차고 넘치지는 않더라도,



고만고만한 밥그릇에 겨우겨우 채워가며 살 수는 있잖을까 싶다.







이런 게송을 참 좋아한다.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중생수기득이익(衆生受器得利益)



구슬보배 더욱 생겨 허공에 가득해도,



뭇 삶은 그릇따라 이로움을 얻을 따름...







저녁밥이나 맛있게 먹을 일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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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4-07-14 공감(6)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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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가는 길 새창으로 보기

초등학교 친구 중에 괴짜로 소문난 친구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덩치가 좋았던 친구는 그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유도 선수가 되었다.  그것도 무제한급 선수로.  친구는 고1인가 고2의 여름방학에 친구들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체력 훈련을 하겠다며 산으로 들어갔었다.  친구들은 다들 그러려니 했다.  운동선수이니 체력훈련이 필요할 테고, 체력훈련 하면 뭐니뭐니 해도 산악훈련이 제격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겨울방학이 되어서 만난 친구는 뭔가 달라져 있었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낯선 분위기가 친구를 감싸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던 나는 한동안 그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고향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 친구의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부산에 내려가 풍수지리를 강의하고 있다고 했다.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선수로서 유도를 계속하거나 적어도 은퇴한 후 유도 코치가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풍수지리 강사라니...  그 친구와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다.  한의원을 운영했던 친구의 아버지는 친구가 어렸을 때부터 한자의 중요성을 누누히 강조하셨고, 그런 분위기에서 자란 탓인지 친구는 다른 과목에 비해 한문 실력은 늘 좋았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유도를 하던 친구가 풍수지리 강사가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쓴『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를 읽었다.  사주니, 운명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업으로 그 일을 하지 않는 이상 그저 관심으로만 그칠 뿐 더 이상의 진전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그런 시도조차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언젠가 공부를 해볼 요량으로 <주역>을 집어 들었다가 채 10페이지도 넘기지 못하고 포기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미련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이라는 가정 속에서 지루하게 시간만 보냈을 뿐 실행에 옮길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마음 속으로부터의 알 수 없는 거부감이 그 기회마저 밀어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고미숙의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는 사주니, 운명이니 하는 처음의 호기심으로 되돌아가도록 했다.







"운명을 안다는 건 '필연지리(必然之理)를 파악함과 동시에 내가 개입할 수 있는 '당연지리'(當然之理)의 현장을 확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해진 것이 있기 때문에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우연일 뿐이라면 개입의 여지가 없다.  또 모든 것이 필연일 뿐이라면 역시 개입이 불가능하다.  지도를 가지고 산을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어진 명을 따라가되 매 순간 다른 걸음을 연출할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운명론은 비전탐구가 된다.  사주명리학은 타고난 명을 말하고 몸을 말하고 길을 말한다.  그것은 정해져 있어서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최대한으로 누릴 수 있음을 말해 준다.  아는 만큼 걸을 수 있고, 걷는 만큼 즐길 수 있다.  고로, 앎이 곧 길이자 명이다! "    (p.31)







이 책은 현대적인 관점에서 사주명리학이 왜 '미신'으로 치부되고 있는지, 또는 왜 '신비주의'에 갇히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탐구하며 기초적인 사주명리학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힐링'과 '치유'라는 말이 범람하고 있는 요즘, 그럼에도 몸과 마음이 병들어가는 사람들은 넘쳐나고만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그 까닭을 우리의 몸과 마음 사이의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말과 행 사이의 간극이 질병과 번뇌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자기 팔자가 팍팍하다고 느낀다면, 이유없이 몸이 아프고 마음이 괴롭다면, 다른 건 일단 제쳐두고 먼저 점검해 보라.  내가 얼마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는지를.  약속을 지키고 청소를 잘하고 있는지를.  산다는 건 별 거 아니다.  시공간이 곧 나다.  시공간과 내가 조응하는 만큼이 곧 나의 일상이다.  고로, 일상의 구원은 약속과 청소로부터 온다! "    (p257)







팡세의 저자 파스칼은 말했다.  "나 이외에 아무도 나의 불행을 치료해줄 사람이 없다.  행복을 나 자신이 만드는 것과 같이 불행도 나 자신이 만들 뿐이요, 또 치료도 나 자신만이 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나 자신의 구원자인 나는 그럼에도 나 자신으로부터 가장 먼 존재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먼 존재"라고 철학자 니체가 지적했듯이.







근대성 비판으로 시작되는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문명의 발달은 결국 사주명리학만 버린 것이 아니라 이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버린 것이라고.  그래서 아픈 것이라고.  나 자신으로 향하는 길은 사주명리학이며, 그 지도를 들고 내 자신에게로 향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고향 친구를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던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는 마음 속의 그림자로만 남아 있던 '언젠가'를 '지금 바로'로 바꾸어 놓았다.  저자 고미숙으로 인해 나는 사주명리학 관련 서적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다음에 읽을 책도 준비해 두었다.  이러다 혹시 철학관을 내는 건 아닐까?  선무당이 사람 잡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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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 2013-08-04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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