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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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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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 (2017)평점9.4/10다큐멘터리 한국2018.05.10 개봉96분, 15세이상관람가(감독) 구자환누적관객1,58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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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후 남한에서의 민간인 집단학살은 1946월 8월 화순탄광사건과 대구 10월항쟁으로 시작됐다. 미군정 치하에서 발생해 남한 전역으로 확대된 대구 ‘10월 항쟁’은 “식량난이 심각한 상태에서 미군정이 친일관리를 고용하고 토지개혁을 지연하며 식량 공출 정책을 강압적으로 시행하는 것에 불만을 가진 민간인과 일부 좌익 세력이 경찰과 행정 당국에 맞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항일독립군을 토벌하고 고문•처형했던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청산되지 않고 미군정에 의해 경찰과 국가기관의 수장이 되면서 이후 자행될 민간인학살의 전주곡이었고, 반역사의 시작이었다.

숙청되어야 할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미군정과 이승만에 기대여 살 길을 찾은 것이 바로 공산주의자 척결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친일행적을 가리고 생존을 위해 반정부주의자, 좌익세력, 민족주의자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1946년 미군정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남한 주민들의 78%가량이 사회주의를 원했고, 14% 가량만이 자본주의를 원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이승만 정권은 친일파와 우익인사를 기용해 정치적 걸림돌이 되는 집단과 민간인을 학살했다.

1947년부터 불거진 제주 4.3항쟁과 1948년 여순사건을 거치면서 이승만 정권은 보수우파와 좌익세력을 제거하며 본격적인 반공국가 건설에 들어간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민간인 대량학살은 본격화 된다. 좌익인사를 선도하고 계몽하기 위해 설립한 국민보도연맹은 한국전쟁 초기에 대량 학살 대상이 됐다. 친일 출신의 군인과 경찰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더욱 참혹한 학살극을 벌인 측면도 있다.

한국전쟁으로 전시작전권을 이양 받은 미국도 민간인학살의 주체가 되었다. 이 시기 퇴각하던 인민군과 내무서, 지방좌익에 의해서도 민간인학살은 자행됐다.



기획의도

우리나라 민간인학살의 기원은 일제 해방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5년 해방직후 남과 북에는 사회체계가 다른 미국과 소련이 주둔하면서 민족분단의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남한사회에서는 미군정이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기용하고 인민위원회를 해산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남한단독선거로 벌어지는 분단 상황에서 이승만 정부는 친일행위자들을 앞세워 정국을 주도해 나간다. 신탁통치를 두고 갈라진 찬탁과 반탁운동은 친일파들이 애국자로 변신하는 계기가 됐다. 이 사건 이후 불거진 단독정부 수립을 두고 민족주의자와 항일독립운동가, 보수주의자들까지도 정적으로 제거된다.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에 이어 발생한 한국전쟁은 민간인학살이 최고조에 도달한 야만의 시대였다. 이 시기에 경찰, 군인, 미군, 우익, 좌익, 인민군은 노인,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지 않고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 이러한 한국의 현대사는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매카시즘으로 인해 왜곡되고 진실이 가려져 있다. 한국전쟁을 전후해 민간인 최대 100만 명이 학살된 우리의 현대사가 국가 구성의 한 주체인 국민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역사가 된 것은 슬픈 일이다.

영화 ‘해원’ (解寃)은 우리의 현대사 가운데 민간인 학살의 역사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를 통해 현시대에도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는 유족들의 눈물을 보듬고 피해자들이 신원이 해원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제대로 된 진실규명으로 갈등의 역사를 종식하고 용서와 화해로 나아가는데 작은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