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 유영모의 생활모습 / 기독교사상
다석 유영모의 생활 모습
이 대담은 다석 유영모 연구가인 박영호와 박재순이 다석의 일상생활과 사상을 주제로 2004년
12월 12일 성천문화재단에서 한 것이다.
다석은 남강 이승훈이 설립한 오산학교 교사와 교장을 지냈고 서울YMCA 연경반(성서연구반)을 지도한 사상가였다. 대담은 한국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의 연구비 지원을 받은 한신대 프로젝트(“한국개신교가 한국근현대의 사회 문화적변동에 끼친 영향 연구”)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한신대 학술원 신학연구소의 허락을 받아 박영호와 박재순의 대화를 두 회에 걸쳐 소개한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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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순: 다석 유영모 선생님의 가장 가까웠던 제자이신 박영호 선생님을 모시고 다석 유영모
선생님의 사상과 삶의 모습에 대해서 듣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다석에 대해서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깊숙한 그런 말씀을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박영호: 반갑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씨의 소리」에 발표된 다석 선생님에 대한 박 교수님의 논
문을 봤습니다. “공부 많이 하셨다.” 했는데, 가까이 뵙게 돼서 대단히 반갑습니다.
박재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유영모 선생님을 세상에 널리 알린 첫 번째 업적을 가진 분으로
저는 박영호 선생님을 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유영모 선생님의 강좌를 가장 충실하게 들으셔서 유영모 선생님으로부터 마침보람, 졸업장을 받으신 유일한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제자로서 스승 유영모 선생님을 어떤 분으로 보시는지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박영호: 제 나이가 다석 선생님하고 40년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 오래 모신 편은
아닙니다. 다석 선생님이 69, 70세 되셨을 때 제가 선생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함석헌 선생님보
다는 한 30년 이상 늦게 다석을 만났지요. 제가 다석 선생님께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는 말은 옳
은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석의 만년에는 다른 분이 안 계시고, 김흥호 선생님만 계시고, 제가
자주 구기동 드나들면서 선생님 가르침도 받고 그랬습니다. 제가 다석의 전기(傳記)를 쓰기 위
해 자료를 수집하려고 하는데 다석 선생님께서 전기에 대한 것은 김흥호 교수님하고 두 사람이 의논해서 처리하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하나님에 대한 내 사상의 멀고 가깝고 바르고 거슬리는 것에 대한 것은 김흥호 님과 상의해서 해라.” 하는 공식적인 통보를 받고서 처음부터 김흥호교수님하고 둘이서 유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김흥호 선생님께서 그때 이대에 계시니까 바쁘셨어요. “난 바쁘니까 필요한 자료가 있다고 그러면 대학 도서관에서 다 뽑아줄 테니까 박 선생님이 전적으로 맡아서 하시오.” 그래서 제가 만년에 선생님하고 더 가깝게 지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박재순: 어떻게 박 선생님만 마침보람을 받으셨는지요?
박영호: 저만 받았다 그러니까 다른 분들께는 굉장히 송구스럽게 되었는데요. 마침보람을 받게된 계기는 이렇습니다. 내가 선생님을 자주 집으로 찾아가고 편지를 하고 그랬습니다. 하루는 고향에 계시는 형님 내외분이 찾아왔기에 창경원 구경하시라고 모셔다드리고, 나는 또 구기동으로 선생님 뵈러 갔거든요. 그런데 그날은 뜻밖에, 선생님께서 “날 찾아올 생각도 말고, 편지할생각도 말아야 된다. 그걸 단사(斷辭)라 한다.” 하시면서, 찾아오지 말라 이거예요. 내게는 너무충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박재순: 선생님과의 관계를 끊으라는 말이죠?
박영호: 그렇지요. 정신적으로 독립하란 말이죠. 보통 소들이 어미 소가 송아지를 잘 먹이다가
젖 뗄 때가 되면 발길질 탁 하면서 젖 떼는 것처럼 딱 이렇게 자르는 걸 느꼈어요. 나는 정신적
독립은 못 되었는데, 『주역』의 단사, 말씀 사(辭) 자 끊을 단(斷) 자 ‘단사’라 그러면서 그 단사를
하고 정신적 독립을 해서 다 흩어져서 각기 제 노릇을 해야 하지 않느냐 하셨습니다. “그냥 함
께 어리바리 있으면 뭐 되느냐, 너는 너대로 가서 너 한 사람 구실하고, 나는 나대로 하는 거지,
이렇게 오래 붙잡고 있는 게 아니다.” 그러셔요. 그래서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 말씀이 옳거든요. 함 선생님이 “자기 지어서 자기가 먹는 거다. 내가 생산하는 게 내 자신의 식량이되는 거다.” 하고 말씀을 하셨지만, 아직 나 스스로 정신적인 생산을 할 정도도 못 되었는데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이제 선생님께서 우리 집 앞을 지나가더라도 선생님 만나러 안가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자 제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르더라고요.
그렇게 한 5년 정도 선생님을 찾아뵙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정병호 선생이라는
분을 보내서 박영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아보라고 하셨어요. 그때 내가 상처(喪妻)했다는
소리를 들으셨던가 봐요. 정병호 선생이 이제 선생님이 찾으시니까 한번 가보라고 그래서, 다시5년 만에 구기동 선생님 댁을 찾아가 “저는 이제 선생님 곁을 떠나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렸어요. 선생님도 “나는 ‘은혜’라는 말을 쓰기 싫어가지고, ‘힘입어’라고 말하는데, 앞으로 힘입어서잘 사시오.” 하셨습니다. 이렇게 둘이 고별인사를 했어요. 그랬더니 뒤에 봉합 엽서에다 마침보람, 졸업장이라 그러고, 그 안에다 당신 한시를 적어서 우편으로 보내오셨어요.
그때 난 톨스토이를 좋아했는데 “대학은 학문의 묘지”라고 말한 톨스토이의 영향을 많이 받아
서 대학을 가지 않았습니다. 톨스토이도 대학 중퇴한 사람이거든요. 내가 톨스토이 영향을 너무많이 받았기 때문에 신앙도 비정통이 되다 보니깐, 비정통을 용납해줄 한국 신학교가 없잖아요 . 그래서 신학교도 못 갔지요.
「문화일보」가 처음에는 정치 기사를 못 쓰게 되어 있었어요. 정주영 씨 정치적 활동을 억제하
려고 그랬지요. 「문화일보」 이규영 회장이, 다석 선생님을 소개함으로써 「문화일보」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내게 글을 쓰게 했습니다. 그런데 나를 소개해야 할 텐데, 난 대학이라고는 안가봤고, 졸업장 하나 받은 게 있다면 다석 선생님께 졸업장 하나 받은 거 하나 있다고 하니까
그럼 몇 분이나 그런 졸업장을 받았냐고 묻더라고요. 글쎄 난 모르겠는데, 아마 다른 사람이 받
았다는 소리를 못 들었다고, 그랬더니 그 말이 커져서, 다른 제자분들한테는 굉장히 송구스럽게되었어요.
박재순: 유영모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는 북두칠성처럼 빛나는 분이라고 생각하는데, 한
디로 다석 선생님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유달영 선생님은 다석을 공자 같은 분이라고
하셨지만, 공자하고는 다른 면도 느껴집니다. 공자는 유영모 선생님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분
로서, 유영모 선생님처럼 철저한 금욕과 영의 세계를 탐구한 분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공자는 제자가 3,000명이었다고 하니까 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현실에 큰 영향을 미친 분이었
습니다. 그러나 다석의 정신세계가 공자보다 내면적으로는 훨씬 더 깊은 거 아닐까요?
박영호: 성천 유달영 선생님도 다석 선생님은 공자 이상 가는 인물이라고 추모 모임 때 자주 말
씀하시곤 그랬어요. 저는 한마디로 다석 선생님은 우리에게,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업그레이드
어떤 고차적인 신관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의 모든 국부적이고
저차원적인 신관에서 보다 높은, 21세기의 정신을 이끌어갈 수 있을 만한 신관을 제시하셨습
다. 강남신학대학교 대학원장 지내신 심일섭 교수가 “21세기에도 다석 사상 이상의 어떤 신학
이 나올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다석은 21세기에 두루두루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새
로운 신관을 제시해준 분이라고 봅니다. 모든 종교를 다 같이 아우르면서, 그야말로 회통할 수
있는 신관이지요. 그러나 혼합종교는 아니에요. 김흥호 교수님조차도 박영호처럼 그렇게 이야
기하게 되면 혼합종교가 되는 거 아니냐 그러셔요. 나는 그 소리를 듣고서 깜짝 놀랐어요. 그렇
지 않아요. 다른 종교들을 소화하면서 다석 선생 나름의 하나의 새로운 신관을 만들어낸 거지,
그냥 혼합만은 아니죠. 그것을 종합하고, 새롭게 하나의 신관을 제시하는 거죠.
박재순: 다석의 신관의 새로운 내용은 어떤 것일까요?
박영호: 하나님은 상대적, 부분적 존재가 아니라 지금 존재하는 모든 존재 그 자체, 전체가 하
님이다 이거예요. 상대적인 것은 하나님의 하나의 부속품이지, 하나님 자체는 아닙니다. 하나님한 분만 계시는 것이고, 그 하나님 영역 안에 우리 인간들도 있고, 별도 있고, 만물들이 있는 거지요. 그러니까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모른다고 하는 것보다 더바보 같은 소리입니다.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은 있다 없다의 지경을 넘어서 없음(無)과 있음(有)을 아우르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본 정체는 허공이시며 성령이신 없이 계신 님입니다. ‘없이 계신 하나님’이지요. 그러니까 유신론 무신론을 다 넘어섭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계시고 허공으로 계시기 때문에 없이 계시는 것이고, 그게 말씀으로 만물이되었다고 그렇듯이, 성령의 일부가 절대성을 잃어버리면서 상대화되어서 만물이 되었다고 하니까 만물조차도 하나님의 영역 안에 있습니다. 성령과 허공으로 계시는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존재이고, 상대적인 만물은 자꾸 생겨나면서 변하는 존재니까 하나님은 변하는 모습을 가지고있으면서도 변하지 않는, 유와 무를 합한 이 전체가 하나님입니다. 전체로서는 하나님만 존재하는데,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인간이, 뭇 생명이 잠시 생겨나는 것입니다. 다석의 신은 인간적인 신화적 신도 아니고 범신론도 아닙니다. 성령과 허공으로 계시면서 만물을창조하고 생성하는 하나님입니다. 불교의 허공과 기독교의 하나님이 여기서 회통됩니다. 그게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란 거죠.
박재순: 하나님을 성령과 허공으로 표현하는 것도 아주 새롭게 들리고, 유와 무를 통합한다고
하는 말씀도 새롭게 들립니다 13 1
. 다석 선생님이 하나님은 유무상통(有無相通)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셨지요.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이 함께 쓰는 것을 유무상통한다고 하는데, 하나님을 유무상통이라고 하니까 더욱 새롭게 들렸습니다.
참 좋은 말씀인 것 같고, 두고두고 새기고 좀 더 생각을 이어가야겠지요. 그런데 유영모 선생님
의 사상은 남기신 글을 보고, 또 박영호 선생님이나 김흥호 선생님이 또 많이 풀이를 해주셨으
니까 그런 걸 연구하면 될 것 같은데, 유영모 선생님의 생활의 구체적인 모습, 그런 건 사실은
박 선생님이 안 계시면 어디 가서 여쭤볼 수도 없습니다. 그런 걸 꼭 여쭤봐야겠다 싶어서 이런
자리를 마련한 건데요. 우선, 저희가 유 선생님을 보면 ‘1일 1식을 한국에서 처음 시작하신 분이다. 1일 1식을 통해서 건강도 유지하고 정신적인 깊은 세계까지 들어갔다.’고 알려져 있는데, 식사하는 모습에 대해서, 식사량이나 식사시간이나 반찬 가지 수나 그런 거를 자세하게 말씀해주세요.
박영호: 함석헌 선생님하고는 다르게 다석 선생님은 자신에 대해서나 집안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쓰신 일도 없고, 강연을 하실 때도 그런 얘기는 별로 말씀 안 하셨어요. 함석헌 선생님조차도, 다석 선생님이 장로 아버지의 아들이라서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말씀하시는데, 사실은 다석선생님이 먼저 교회 다니고 그 뒤에 아버님이 교회 다니게 되었습니다. 다석 선생님이 성령을받고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때가 쉰두 살 때입니다.
이때부터 생활 패턴이 확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부인하고 해혼하고, 금욕생활에 들어가고, 1일
1식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남이 알지 못하는 어떤 영적인 체험을 하신 것 같아요. 그전에도 알
만큼은 다 아셨어요. 그때 인간이라는 건 몸뚱이로는 완전히 동물, 짐승이라고 여기셨어요. 동
물들은 먹어야 하고, 싸워야 하고, 새끼 쳐야 하는데, 그걸 불교적 용어로 말하자면 ‘탐진치’거든요. 탐(貪)–탐욕부리고, 진(瞋)–성내고, 치(癡)-색욕인데, 그게 동물의 본능인데, 예수님과 부처님은 뭐냐면, 동물이면서 동물이기를 거부한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 아들 노릇하는 거거든요.
다석 선생님에 따르면 예수님 말씀대로 산 이가 부처님이고, 부처님 말씀대로 산 분이 예수님
이지요. 전구가 여러 개 있지만 전원은 똑같듯이, 예수나 석가의 인격체, 객체로는 다 다른데 영적인 근원은 다 같기 때문에 그렇게 똑같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이나 부처님한테는 우리가 탐진치의 냄새를 맡을 수가 없잖아요. 식욕에서 모든 탐욕이 시작되니까 먹는 걸 절제해야 된다, 안 먹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완전히 안 먹으면 죽어버리니깐 하루 한 끼 먹는 거지요. 이 몸은 우리 머슴인데, 이걸 심부름 시키자면 안 죽을 만치만 먹는 게 한 끼 먹는
거지요. 그런데 선생님은 타고나기를 아주 평화적인 인물로 나셨기 때문에 자기와의 싸움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식색에 대한 금욕을 강조해요. 1일 1식 하면서 성생활 딱 끊어버린 것은 탐진치를 완전히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입니다. 그래서 해혼도 하셨지요.
다석 선생은 저녁을 잡수시는데, 그냥 젊은이 밥 한 그릇 정도 드셨어요. 나는 70세 때 만났는
데 그때도 젊은이 밥그릇 정도로 잡수셨습니다. 원래 소년 시절에 학교 다닐 때도 도시락 안 가
지고 다니셨거든요. 2식밖에 안 했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2식을 아주 오래 하셨죠. 1식하기 전
에는 생식도 하시고 솔잎도 잡수실 때도 있고, 콩이나 쌀 불려서 생식도 한 1년인가 하시기도
했어요. 육식을 좋아하시지도 않고, 그냥 반찬이 올라오면 ‘나 오늘 돼지고기 몇 점 먹었어.’ 할
정도로 공개하시고. 반찬 몇 가지 안 드셨어요. 워낙 살기를 그렇게 사셨으니깐요.
박재순: 저도 70년 중반에 딱 한 번 퀘이커 예배에 나오는 사람들하고 같이 세검정 유 선생님
댁을 찾아뵈었어요. 두세 시간 앉아서 여러 분들하고 말씀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제가 너
무 강한 인상을 받았어요. 얼굴이 그냥 신선 같으시더라고요. 머리카락은 완전 하얗고, 볼은 발
갛고, 어린아이처럼 입술도 새빨갛고, 입에서는 늘 침이 고이신다고 하시는데, 정말로 입에는
물이 가득하시더라구요. 국이나 물은 많이 드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박영호13 : 그리고 또 국물이 있더라도 밥은 밥대로 먹고 1
, 국은 국대로 먹어야지, 같이 먹으면 덜씹힌다고, 밥만 먹어야 꼭꼭 씹힌다고. 또 비벼서 잘 드셨어요. 속에 들어가면 저절로 위 속에서 다 비벼지는데, 미리 비벼서 먹는 게 좋다고. 썩썩 비비시진 않고, 설설 비벼서 드셨지요.
박재순: 밥을 제물이라고 하고, 식사하는 것을 진정한 예배라고도 하셨지요. 왜 1일 1식을 하냐.아침은 하나님을 위해서 드리고, 점심은 이웃을 위해 드리고, 저녁만 나를 위해서 먹는다고 그러셨다는데, 혹시 그런 말씀 들은 적 없으십니까?
박영호: 서울YMCA 총무 하신 현동완 선생님이 그 비슷한 말씀을 하셨어요. “내가 과일을 안 먹는 건 환자를 위해 안 먹는 거”라는 그런 소리를 자주 하셨어요. 도산 선생님이 ‘나는 밥을 먹는것도, 잠을 자는 것도 나라를 위해서 한다.’ 그러듯이, 유 선생님은 밥을 먹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 먹고, 잠자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 잔다고 하셨고, 어떤 의미에서 당신은 기도하기 위해 밥
먹는 것이고, 밥 먹는 것도 기도하기 위해서 밥 먹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유 선생님이 마지막 2
년 동안은 기억상실증에 걸리셨거든요. 사모님과 나를 보시고, “저 얼굴이나 이 얼굴이나 눈에
는 익었는데 시작을 모르겠다.” 말씀하시기도 하셨지요. 그러면 부인도, 제자도 못 알아보신 거죠.
박재순: 왜 그러셨을까요? 말년에 뇌를 한 번 다치셨던 것이, 그것이 재발하셨나요?
박영호: 낙상하셨는데, 그래서 그때 제가 의사이신 최태사 선생한테 물어봤었는데, 직접적인 관계는 없을 것 같다 그래요. 요즘 의사들에 따르면 이하고 뇌하고 관계가 깊어서, 많이 씹어야
뇌의 혈액순환이 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석 선생님이 이가 안 좋으셔서 일찍 빠졌습니다.
박재순: 왜 그러셨을까요. 다른 데는 다 건강하셨는데.
박영호: 이를 해 넣지도 않았는데 그게 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만으
로 아흔한 살 사셨는데, 돌아가시기 2년 전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리셨어요. 부인이 6개월 먼저
돌아가셔서, 산에서 그날 밤을 새우는데, 왜 집에 안 가느냐고 하셨어요. 당신 부인 돌아가신 것도 모르는 거죠. 그러니 기억을 완전히 잃으셨는데도, ‘아버지~ 아버지’ 하고 간헐적으로 하나님아버지를 찾는 것은, 신앙이 잠재의식에까지 뿌리를 내렸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확인할 수 있었어요.
박재순: 그리고 그럴 때도 무릎 꿇고 계셨다고….
박영호: 늘 무릎 꿇고 계셨죠. 선생님은 한복을 안 입으셨어요. 선생님은 요가에 대해 일가견을
가지셨어요. 그래서 몸에 균형을 잡는 걸 굉장히 강조하고 그러셨는데, 그래서 마지막까지 일어서서 바지를 입으셨어요. 마지막에 일어서서 바지를 입으시다가 넘어지셨어요. 그래서 일주일동안 못 일어나시고,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그때만 오줌똥 받아내고 그랬지,깨끗하게 돌아가셨어요.
박재순: 대단하시네요. 완전한 기억상실 상태인데도 2년 동안 그렇게 깨끗하게 지내셨다니! 이가 빠진 것은 60대 때 빠진 건가요?
박영호: 내가 69살 때 뵈었는데, 그때도 앞니만 몇 개 있더라고요. 그런데 5년 뒤에 가니깐 몽땅
다 빠셔서, 저 어금니 한두 개만, 하하 웃으실 때 어금니 한두 개만 있더라고요.
박재순: 왜 그러셨을까요? 저작을 많이 안 하셔서 그런가요?
박영호: 그게 왜 그러셨는지 모르겠는데, 아드님들이 의치를 자꾸 하라고 해도. 어머님도 90 가
까이 사셨는데, 내가 어머니한테도 못 해드렸는데, 내가 뭐 틀니까지 해야겠느냐고, 그냥 살다
가 죽겠다고.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데, 잇몸으로 살면 되는 거지 하시며 그냥 사셨어요.
박재순: 잇몸으로도 식사는 잘하셨나요?
박영호: 그렇죠. 경제적으로 근검절약하는 거 몸에 밴 분들이지요. 함 선생님도 마지막에 서울
대학 병원에 계실 때, 하루는 홍익재 사장이 ‘선생님 가까이서 봬야지.’ 해서 내가 홍익재 사장
하고 함 선생님을 찾아뵈었습니다. 화장실에 가야 되는데, 따님이 혼자 있어서 우리가 모시고
화장실 갔었는데 13 , 화장실에서 종이를 뜯어드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종이를 좀 길게 뜯었더니, 1
그러면 되겠느냐 하시며 반을 뚝 잘라가지고 쓰시더라고요. 그런데 다석 선생님도 아주 근검절약 하세요. 달력 뒷치에 글 쓰시고, 시 쓰시고 하셨어요. 그렇게 물건 아끼는 것은 두 분이 똑같아요. 함 선생님 그 휴지 조금 많이 뜯은 거 딱 갈라서 쓰시는 거 보고 홍 선생이 깜짝 놀라더라고요.
박재순: 선생님의 자제분들 얘기 들어보니까, 생선을 먹을 때는 가시 채로 먹으라고, 가시를 발
라내지 못하게 하셨대요.
박영호: 가시에 영양분이 있지요.
박재순: 함 선생님의 삶과 정신은 유 선생님에게 힘입은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함 선생님에
게 여자 문제가 있어서 유 선생님은 서운해하셨지만, 함 선생님의 많은 부분이 유영모 선생님
한테서 왔습니다. 유 선생님의 깊은 사상과 높은 정신세계가 있기 때문에 함 선생님의 사상과
실천이 깊고 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영호: 이기백 교수의 아버님 이찬갑 선생님이 왜 함석헌이 자꾸 유영모를 닮아가느냐고 공개적으로 비난을 했어요. 한동안 함 선생님도 한복 입고, 머리를 좀 깎으시고 그랬거든요. 유달영선생님에 따르면 함 선생님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석 선생님 닮으려고 애쓰신 분이다. 1일1식하고, 한복 입은 거나, 고무신 신고 다니는 거나. 다석 선생님은 가난한 사람 차림으로는 나가도 부르주아지 차림을 해서는 바깥에 못 나간다 그러셔요. 나도 이거 넥타이 맨 지 얼마 안
돼요. 넥타이 매다가도 선생님한테 갈 때는 풀고 가고 그랬어요.
박재순: 유 선생님이 잠은 어떻게 주무셨나요?
박영호: 잠은 보통 열 시 전후에 주무셔요. 드러누웠다고 하면, 코 소리가 아주 요란해요. 그래
서 코 곤다는 걸 글로 쓰신 것도 있어요. 당신도 모르시는데, 아마 코 곤다는 소리는 들으셨나
봐요. 그래서 코 고는 그걸 가지고 시조로 쓰신 것도 있어요. 아주 죽은 듯이 그렇게 주무셨어
요. 잠이 안 오고 그런 거는 없어요. 세 시, 네 시면 딱 깨셨어요. 그때 깨가지고 다석일지 쓰시
는 거예요. 저녁에 쓰는 게 아니에요. 아침에 생산하는 거죠. 암탉이 꼬꼬댁 하면서 새벽에 알
하나 낳듯이, 다석 선생님은 시 한 수 내놓는다고 서영훈 선생님이 자주 말씀하셨죠. 일기라 해
서 내가 뭐 했다는 것을 쓰지 않고, 전부 다 한시 아니면 시조를 쓰셨는데, 한시가 한 1,300수,
시조가 한 1,700수 됩니다. 쓸 게 없으면 그냥 날짜만 이렇게 써놓으셨어요. 여행을 하신 경우
에는 일지를 쓰지 못하셨지요.
박재순: 주무실 때는 어떻게 주무셨나요? 대 자로 주무셨나요?
박영호: 그렇죠. 선생님은 널판에 주무셨잖아요. 관 하나를 사서 관의 밑바닥 판만 갖다 놓고 그위에서 주무셨어요. 이만치 두꺼워요. 관에서 주무셨던 셈이지요. 죽기 전에 관 속에 들어가는체험을 하기 위해서, 죽음하고 가깝게 지내기 위해 그렇게 주무셨어요. 사람이 죽음을 잊어버리면 잡념이 자꾸 들어오거든요. 죽음을 마주해야 잡념이 안 들어오기 때문에. 쉰두 살 때부터 그렇게 주무셨습니다. 공자님은 송장 잠을 자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선생님은 송장 잠을 자야 한다는 거예요. 송장처럼. 인간들이 허리가 펴져야 하는데, 낮에는 자꾸 굽어지잖아요. 그러니깐허리가 딱 펴질 정도로 바로 자야 한다고 하셨어요. 선생님은 잠을 깊이 주무셨어요.
박재순: 선생님은 숨 쉬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셨는데, 자면서 숨을 깊이 쉰다고 했으니
까.
박영호: 숨은 자는 동안 더 활달하게 호흡을 한다고 그래요. 다석 선생님은 성령을 숨님이라고
했어요. 어떤 때는 기라고 하기도 하는데, 몸도 늘 숨을 쉬어야 되듯이, 잠자는 동안에 영적으로하나님의 성령을 숨 쉬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우리도 글 쓰다가 꽉 막혀서 안 될 때는 한잠 자고 깨면 이 잠재의식에서 다 풀어져서 글이 되는 그런 경험, 교수님도 잘 아실 거예요. 그게 잠재의식이 활동을 해서 영적으로 해결이 되는데, 그것을 선생님은 성령의 활동으로 생각하셨지요. 자고 나면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자는 동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내 의식에 13 1
, 잠재의식에어떤 역사를 하셔서, 어떤 영감(inspiration)을 받는 거라고.
박재순: 잠자는 게 수행이네요. 잠자는 게 기도고. 숨을 쉬어서 하나님의 성령과 통하는 것이군
요.
박영호: 낮에 기도할 때 왜 눈을 감느냐? 이 세상 보면서 하나님하고는 대화하기는 어려우니까
눈 감고 기도하는 거니까, 밤에 아무것도 안 보일 때에는 기도가 더 잘 되는 거지요.
박재순: 선생님이 한 서너 시에 일어나서 맨 처음 하는 것이 무엇이었나요? 냉수마찰이요?
박영호: 나중에는 마른 수건 마찰도 하시고, 수건이 없으면 손으로 빠닥빠닥 소리가 날 정도로
온몸을 문지르세요. 집에 계시면 대야에 물 떠다가 하셔요. 세숫대야 하나면 목욕 다 되는데, 목욕탕 갈 필요가 없다고 하셨어요.
박재순: 그러면 냉수마찰을 20대 때 처음 하셨다고 하는데, 밖에서 하셨다고 했는데.
박영호: 물이 꽝꽝 얼었는데, 그거 깨가지고 하셨죠. 그래도 감기 한 번 안 걸리셨어요.
박재순: 그래서 말년까지 냉수마찰을 밖에서 하셨나요?
박영호: 선생님이 물 길어다가, 그때 사랑방에 계실 때는 사랑방 안에서 하시고, 마당에서도 하
시고, 우물가에서도 하시고. 그다음에는 옛날 주택이 많이 들어서기 전에는 개울 앞에서도 하시고. 그래서 지금도, 평창 둘째 아드님 댁에 계실 때 개울에서 냉수마찰 하는 거 보신 분들이 많아요. 그 노인이 그렇게 훌륭한 분이신 줄은 몰랐다고요. 요즘 새벽사람 가르치지, 다석 선생님은 진짜 새벽사람이지. 아드님이 그러는데, 젊을 때는 늦잠 자고 그러셨대요. 원고 써놓고 늦게까지 주무셨는데, 쉰두 살 이후로는 완전히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져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셨어요.
다석 선생님에 따르면 정신이란 에너지, 호르몬을 말하는 것인데, 그것이 왕성해야 기도도 할
수 있고, 철학도 할 수 있고, 예술도 할 수 있는 거지요. 정력이 있어야 예술도 하고, 노동도 하
고, 기도도 할 수 있는 건데 왜 자꾸 그것을 방사로, 사정을 해버리고, 아까운 에너지를 낭비하
느냐는 겁니다. 새벽은 피로가 다 풀려서 제일 정력이 왕성할 때거든요. 그때 정신활동도 제일
잘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새벽 시간을 요긴하게 쓰신 거죠. 저도 나중에 그렇게 해보니까 하루
온종일 글 쓰는 것보다도 새벽에 하는 것이 더 성과가 좋아요.
박재순: 묵상을 어떻게 하시나요?
박영호: 언젠가는 내가 새벽에 가니까, 아직도 글 쓰고 있으면서 ‘내게는 쓰는 게 기도다.’고 하
셨는데, ‘내 기도는 참선에 가깝다.’ 그러셨어요. 명상을 하는 그런 타입이고, 그다음엔 글 쓰는
것 자체가 영감 받는 기도의 시간이었지요.
박재순: 시간을 정해놓고 참선과 묵상을 하셨나요?
박영호: 새벽마다 주로 무릎 꿇고 눈 감고, 몸을 이렇게 흔들흔들 하시면서 명상하셨지요. 선생
님은 하루 온종일, 전천후 비행기라고 하듯이, 전천후 기도예요. 하루 특별한 시간만 내놓고 기
도하는 분이 아니에요. 늘 항상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분이지, 어느 시간만 딱 정해놓고 그 시
간에만 기도하는 분은 아니었어요. 하루 온종일 하나님하고 떨어지는 일이 없는 그런 생활을
하셨죠.
박재순: 선생님이 자세를 흐트러뜨리는 법이 있으셨습니까? 이를테면 다리를 쭉 뻗는다든지,
기댄다든지.
박영호: 그런 거 없어요. 다석 선생님은 앉는 자세, 무릎 꿇는 자세가 달라요. 보통 우리는 이렇
게 발을 깔잖아요. 다석 선생님은 안 그래요. 다리를 여덟 팔 자로 이렇게 펴고, 궁둥이가 땅에
닿게 해서 온종일 좌상에 앉으셔서 지내셨어요. 이 자세를 궤(跪) 자, 발족 변에 위험하다 위를
써서 궤 자라고 하는데, 온종일 이 자세로 똑바로 앉아 계셨어요. 늘 긴장이 되고 허리를 굽힐
수가 없는 자세로, 하루 온종일 이렇게 지내셨어요. 함 선생님하고 ‘「성서조선」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가셨는데 13 1
, 간수들이 자꾸 무릎 꿇으라고 하는데 유 선생님은 시키지도 않는데 온종일무릎 꿇고 있으니깐 간수들이 탄복을 하더래요. 그러니 선생님이 무릎에 혹이 달릴 정도로 굳은살이 배겼어요. 그렇게 온종일 앉아있는 거예요. 낮에는 눕는 일이 없어요. 선생님이 그렇게꿇어앉으시니까, 우리가 편하게 앉을 수가 없어요. 그렇게 우리가 꿇어앉아 있으면 한 시간만지나면 아파서 이렇게 앉다 저렇게 앉다 그러는데, 선생님은 꿈쩍하지 않으셨어요. 참 기적 같
은 일이에요. 아까도 말했지만, 치매 상태가 되었는데도, 그렇게 앉는 것은 똑같아요.
박재순: 제가 70년대 중반쯤에 유 선생님 찾아뵙고, 참 짧은 말씀이었지만 큰 인상을 받은 것
중 하나는 ‘스스로 해야 한다. 손이 하는 일을 발이 도우면 안 되고, 발이 하는 일을 손이 도우면안 된다.’ 하시고 ‘이렇게 하는 거다.’ 그러면서 80이 넘은 노인이 무릎 꿇고 앉으셨다가 갑자기한쪽 발을 세우시더니 그 발로 번쩍 일어나시더라고요.
박영호: 그리고 누웠다가 손 안 대고 딱 일어나셨지요.
박재순: 그러니까 늘 앉아서 단전호흡을 이렇게 하시고 그러셨나 봐요. 또 영감이 나면 글을 쓰
시고, 시를 쓰시고. 그 당시에 정인보 선생님이나 최남선 선생이나 다 학자셨는데, 유영모 선생
님이 특별히 한학에 깊고 동양학의 대가라는 평판을 들으셨다고 그러는데, 유영모 선생님의 한문 실력이라고 할까, 또 공부법은 어떻게 하셨나요?
박영호: 오산학교 교장으로 오는데, 육당 선생이 두려워하는 분은 오직 이 분뿐이라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러니깐 춘원 선생이 지금 상명여대 있는 데 이사 왔을 때, 다석에게 노자 이야기를
들었다고 나와요. 김흥호 교수님도 정인보 선생님한테 물으니깐, 동양학에 대해서는 다석 선생님한테 배워라 하셨고, 그다음엔 춘원 선생님한테 가니까 또 다석 선생한테 가서 배워라 하셨대요. 보통 우리나라에 옛날 삼천재라는 분이 육당 최남선 선생하고, 춘원 이광수 선생하고, 원래 이북에 간 홍명희 선생인데, 그분 빼고 정인보 선생을 집어넣었는데, 김교신 선생님 하는 말이 삼천재, 사천재 하는데 다석 선생님도 포함하더라고요. 김교신 선생은 이 삼천재가 두려워하는 분은 유영모 선생이라고 하셨지요. 다석 선생도 천자 책을 집에서 아버님한테 배웠는데, 다섯 살 때 이미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도 하고, 뒤에서부터 거꾸로 암송을 했다고 해요. 다 알고눈에 환하게 보인데요, 천자 책이. 그러니 이래도 외우고 저래도 외울 정도로 비상한 머리를 타고나신 것 같아요.
박재순: 강의는 어떻게 하셨나요?
박영호: 사람들이 이야기를 할 때 틀거리에 맞게 미리 구상을 해서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은 한 주제가 떠오르면 그에 대해서 아는 걸 다 말씀하시니까 끝이 없어요. 네 시간도 좋
고 다섯 시간도 좋고. 난 농사짓는 사람이니까 짐승들이 들에 있으니까 말씀을 듣다 말고 먼저
나와야 돼요. 세계대학봉사회에서는 일곱 시간 강의를 했다고 해요. 보통 오후 두 시에 모여서
겨울에는 컴컴할 때까지 했지요. 12월 한 달, 8월 한 달은 쉬고. 보통 두 시에 모여서 일찍 끝나
야 보통 여섯 시 또는 네 시에 끝났고, 보통 서너 시간 다 넘어요.
박재순: 혼자만 말씀하시나요? 질의응답 같은 건 없고요?
박영호: 없어요. 당신 혼자만 말씀하셨어요. 이따금 유승국 교수, 김흥호 교수님도 오셨지요. 당
신 혼자만 말씀하시기에도 시간이 없었는데요. 주소록 하나 만들지 않고, 인사시키는 일도 없고
얼굴은 얼굴대로 알고 지냈지요. 김흥호 선생님이 그러잖아요. 구기동 가서 『중용』을 배우는데
하루는 같이 나오는 분한테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니 평안도 용천이라고 해서, ‘그러면 함 선생
님을 아세요?’ 그러니까 ‘내가 함석헌이요.’ 그랬대요.
박재순: 유 선생님은 언제부터 가르치셨대요?
박영호: 월남 이상재 선생님 돌아가시고, 1928년인가 YMCA 연경반에서 후임자를 구하는데, 최
남선 선생님이나 김정식 선생님을 비롯해서 여러 분들이 다석 선생님을 추천했다고 해요. 현동
완 총무가 집으로 왔더래요. 그래서 거기서 강의하시게 되었대요. 『노자』하고 『중용』은 집에서
강의했어요 13 . 선생님이 1
『중용』과 『노자』는 완역했고, 『장자』나 『맹자』는 발췌를 해서 가르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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셨거든요. 집에서 아침 일곱 시에 시작했는데 함 선생님은 오류동에서 구기동까지 걸어가셨다
는 거 아니에요. 김흥호 교수는 서대문에서 댁까지 걸어오셨고. 일곱 시에 시작하면 열두 시 될
때까지 말씀을 하셨어요. 서경덕 상서의 글을 번역해서 가르쳐주시고, 불경도 많이 가르치시고,
『반야심경』은 완전히 강의를 해주셨어요. 『반야심경』 번역도 있죠. 그러니까 우리 성경만 읽던
사람들이 불교를 알게 됐어요. 유승국 교수님도 다석 선생님을 만나서 불경도 읽게 되고 성경
도 읽게 됐다고 해요. 다석 선생님을 먼저 알아서 함 선생님을 알게 된 경우도 있고, 함 선생님
을 먼저 알아서 유 선생님한테로 넘어간 경우도 있지요. 물론 함 선생님 쪽에서 넘어간 사람이
숫자가 많지요. 네 그렇지요. 그렇죠. 머 넘어간 게 아니죠. 나는 넘어갔는지 몰라도.
박재순: 유 선생님이 집안일이나 농사일은 어떻게 하셨나요? 농사를 직접 지으셨나요?
박영호: 나도 체력이 약하지만 선생님의 손발은 나보다 크시더라고요. 키는 나보다 작고. 선생
님의 아버님이 선생님보고 ‘니가 뭔 농사짓느냐? 농사 감독이나 하면 하겠지’ 하셨대요. 그러나
당신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집안 청소에 이르기까지 제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셨어요.
다석 선생님의 가방을 받아드리려고 하면 안 시켜요. 어린아이들에게도 잔심부름 안 시켰어요.
양반들이 잔심부름 시키는 거, 안 한다는 거지. 잔심부름 시키면 둘 다 병신 된다는 거지. 사모
님이 다리가 아프실 때 당신이 가셔서 사골 뼈 사다가 고아드렸어요. 큰일 할 때, 다른 사람 힘
빌려야 할 때만 빌리지요. 첨에는 머 며느리 없을 때는 아예 물 한 컵도 안 주시고, 며느리 생기
면서 꿀도 타오고 차도 타오고 그런 일이 자꾸 벌어져요. 밥상을 당신이 부엌 앞에 갖다놓으셔
요. 당신은 아무것도 안 잡수셔요. 우리만 손님으로 왔으니까 마시지요. 설거지를 하시지는 않
았어요. 한번은 내가 구두를 신고 갔는데, 구두 위에 뭐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시고 가족들이
떨어뜨렸다 생각하고 선생님께서 내 구두를 닦아놓으신 일도 있어요.
선생님은 그렇게 서민적이셔요. ‘귀족화되면 안 된다 이거야. 기독교가 상놈의 종교인데 귀족
종교가 되면 안 된다 이거야’. 권위는 전연 부리지 않으셨어요. 그래도 함 선생님은 그 앞에서
두려워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권위는 영적인 힘에서 오는 권위였지요. 겨울이 되어야 두루마기
입으시고, 두루마기 고름 아닌 단추 끼우시고, 여름에는 베 고이 입으시고. 아주 서민적이셨어
요.
세수할 때 비누 같은 것도 안 쓰시고 이는 소금으로 닦으셨어요. 아주 서민적이세요. 『주역』에 ‘
지천대통’(地天大通)이라는 말이 있지요. 지금 서대문의 독립문에 있는 천지비석처럼 하늘궤가
위에 있고 땅궤가 아래 있으면 답답하다는 거예요. 지가 위에 올라가고 하늘이 아래로 가면 확
트인다는 거예요. 시골서 사는 사람 서울서 살고, 서울서 사는 사람 시골서 살고. 그래서 왜 뭣
좀 안다는 사람들이 자꾸 시골로 내려가야 지천대통이 되지, 자꾸 권위만 부리고 있어서는 서
민들이 살지를 못한단 말이에요. 나는 맨 끄트머리가 되고 땅의 먼지하고 가깝게 되는 게 자기
라는 거예요.
박재순: 예수님 가르침하고 같네요. 예수님의 성육신하고 같네요.
박영호: 그렇죠. 땅의 권위를 부리지 말라는 거예요. 그래서 아드님들도 대학공부 안 시켰죠. 하
기야 그때만 해도 중학교 한 고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시기예요. 사람들한테 떠받드는 사람
되면 하나님한테 미움받는다는 거예요. 공부를 많이 해서 지배층이 되면 자기도 모르게 서민들
을 수탈해먹는 죄를 짓게 되어서 하나님한테 미움받는 존재가 되는데, 왜 그렇게 자꾸 그렇게
되느냐 이거지. 사람들한테 떠받드는 존재가 되면 하나님한테 미움받는 거 누가복음 17장엔가
나와요. ‘왜 자꾸 자식들 공부 많이 시켜서 귀족 만들려 하냐, 지배계급이 되어서 자신도 모르게
서민들 피 빨아 먹는 존재가 되려 하느냐.’ 그런 서민의식이 철저해요. 그래서 내가 농사짓는 거
와 보시고, 내가 쓴 『새 시대의 신앙』이라는 책을 보시고 내 사상을 변질시키지는 않겠다고 여
기셔서 기특하게 여기지 않았나 생각해요.
박재순13 : 선생님은 어떻게 보면 기독교 신앙이나 성서로부터 자유롭게 나간 것도 같지만 1
,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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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유 선생님처럼 성서를 문자적으로 실천한 사람도 없다고 여겨져요.
박영호: 그렇죠. 선생님은 예수님하고는 아주 가까운데 현 기독교하고는 멀죠. 선생님은 오늘날
기독교하고는 가까울 수 없다고 하셨어요. 유교를 통해서는 공자나 맹자의 모습을 볼 수 없고,
지금 불교를 봐서는 부처님의 모습을 볼 수 없다고 하셨어요. 진짜 예수님을 알려면 어떤 의미
에서는 다석 사상을 알아야죠. 그래서 지금 톨스토이 주장은 사도 바울은 자기의 도그마를 위
해서 예수님을 양념으로 써먹었지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다
석 선생님이 톨스토이 영향을 받았지요.
박재순: 바울 얘기는 하지 않으셨나요?
박영호: 지금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이 얼굴마담 정도로 되어 있는 거지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
하지는 않는 거죠. 다석 선생님은 몸으로, 삶으로 산제사를 드린 것 같아요. 평생이, 전부가 예
배였어요. 성경을 철저하게 생활화하신 분이라고 할 수 있지요. 예수님 가르침대로 사신 분이에
요. 내가 밥 먹는 거는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먹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상의 미사가 어
디 있습니까? 비정통이 아니라 정통이죠. 선생님은 식사하실 때 가족들이랑 같이 드시지 않고
따로 드셨어요. 손님이 오시면 겸상을 하죠.
박재순: 일상생활에서 유 선생님의 특징이 있나요?
박영호: 괴짜라는 말 많이 들을 정도로 생활 자체가 남다르셨지요. 걸어갈 수 있는 데는 다 걸
어가셨죠. 오류동 송두영 선생 모임에 가실 때도 몇십 리 되는 길을 걸어가셨죠. 인천까지 걸어
서 다녀오기도 하셨습니다. 김흥호 선생님은 <개성당일 왕복래>(開城當日 往復來)라는 한시가
「성서조선」에 실린 것을 보시고 유 선생님이 하루에 개성까지 걸어갔다 오셨다고 하는데, 그건
불가능해요. ‘개성당일’은 일본이 항복한다는 뜻을 함축한 말인데, 함 선생님만 그 뜻을 파악하
셨어요. 포천에 할아버지 산소가 있었는데, 하루 한 끼 먹는 일을 시작하고 새벽같이 가서 당일
에 오셨어요. 송두영 선생하고는 굉장히 가깝게 지내셨어요. 송두영 선생의 신앙은 정통적인데
도 두 분이 친하셨어요. 송두영 선생님과 함 선생님이 만나면 방에서 서로 큰절을 하고 “선생님
,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인사한 후 서로 대화를 나누셨다고 해요. 다석 선생님은 남한테 엎
드려서 큰절하는 걸 싫어하셨어요. 마을 젊은이들이 세배하러 왔는데 ‘그거 왜 하는지 모르겠다
.’고 하셨어요. 그래서 나는 세배 대신에 선생님 시를 암송하면 선생님이 좋으셔서 ‘아멘’ 하셨어
요. 일제 때 신채호 선생님이 세수할 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하셨다고 그래요. 일제에 굴하지
않기 위해서, 사대주의가 싫으니까. 자주정신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랬던 거지요. 오랜 세월 중
국 앞에 고개를 숙이고 살았으니까 그게 너무 분통해서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는 거지요.
박재순:: 유영모 선생님은 동양학의 대가로서 기독교 정신과 동양종교, 민족사상을 종합하고,
얼과 정신, 몸을 곧게 세우고 사신 분으로 압니다. 유 선생님의 사상을 한마디로 어떻게 말할
수 있나요?
박영호:: 유 선생님은 대단한 노력형이셨어요. 댁에 보면 고전 책이 많았어요. 다석 선생님은 정
적인 분이니까 골똘히 혼자서 연구하셨지요. 다석 선생님은 선생님이 없잖아요. 한문도 아버님
한테 배우고 서당에서 김인수 선생이라는 분한테 『맹자』 배운 거밖에 없죠. 그러고는 경신학교
한문 선생님이 김도희 선생님인데 다석 선생님의 한문 실력이 선생님 못지않았다고 해요. 한자
를 파자(破字)해서 한시도 쓰고 해서 김도희 선생님이 아주 탄복을 했대요. 나중에 『화엄경』을
어떤 스님한테 배웠다고 하지요. 타고난 천재에다가 대단한 노력형이라서 깊이 파고들 수 있었
지요.
박재순:: 안창호, 이승훈, 여준, 신채호가 모두 신민회의 중심인물들이지요. 안창호가 교육을 통
해 국민을 일깨우고 나라를 바로 세우자고 주장해서 이승훈 선생님이 오산학교를 세웠지요. 그
런데 유 선생님이 책을 읽으실 때 특별한 방법이 있었나요? 이를테면 주자는 글을 읽을 때 이
해가 안 되는 것이 있으면 밑줄을 그었대요 13 1
. 두 번째 볼 때도 이해가 안 되면 이해될 때까지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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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하다가 안 되는 건 또 밑줄 긋고, 세 번 읽을 때는 또 그래도 이해 안 되는 건 또 밑줄 긋고 해
서 마지막에는 이해 안 되는 게 없을 때까지 읽었다고 해요.
박영호:: 다석 선생님이 1971년에 저한테 성경책을 하나 주셨어요. 1909년도 판 신약성경인데
온통 빨간 방점을 찍어놓고 빨간 줄을 그어놓기도 했어요. 성경책이 거의 빨갛다 할 정도예요.
하루도 성경 안 읽을 때가 없었대요. 한창 젊을 때 30, 40, 50대까지도 거의 날마다 성경을 읽으
신 것 같아요. 형이상학이 약한 주희가 하나님에 대한 걸 잘 모르면서, 사서에다가 주석을 붙여
놓아서 그 영향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받아서 우리나라 유학자들이 거의 무신론자가 되었어요.
그런데 다석 선생님은 ‘공자, 맹자가 다 하나님만 아는 분들인데 그렇게 되느냐?’ 하시고, 유교
가 이렇게 잘못된 거는 하나님을 내버려서 그렇다고 하셨어요.
다석 선생님의 유교 해석은 주희와 달라요. ‘천명지위성’(天命之爲性)에서 천명이란 하나님의
명령이고 생명은 성령인데 그 성령이 내게 온 것이 생(性), 바탈이라는 겁니다. 바탈이라는 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내가 쓰는 것이고. 성령을 내가 모시고 따라가는 걸 ‘솔성지위도’(率性
之謂道)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 가운데 왔는데, 내게 오신 하나님, 성령의 뜻을 좇아서
가는 게 길입니다. 나만 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보고 같이 가지고 하는 게, 그게 ‘수도지위교’(
修道之謂敎)라는 겁니다. 다석의 유교 해석은 기존 유학자들의 해석하고는 전연 달라요. 이것은
굉장한 것입니다.
박재순:: 다석은 자신의 하나님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유교 경전을 해석하신 것이죠?
박영호:: 그렇죠. 공자도 하나님의 천명, 하나님의 생명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대인을 두려워한다고 하셨지요. 공자의 하나님은 상상 이상으로 인
격적인 하나님이에요. 그야말로 신격의 하나님이죠. 이 세상 사람은 날 몰라주는데 하나님만 날
알아준다고 공자가 말씀하셨지요. 공자는 그런 신격의 하나님을 믿은 분인데, 지금 유교인들은
효도나 하고 제사 지내는 게 유교인 줄 알아요. 천(天)을 그냥 원리로 생각합니다. 다석 선생님
의 공로가 있다면 오리지널 예수를 생각하고 드러내고 오리지널 부처님, 오리지널 공자, 맹자,
장자를 드러내고 맛보여준 것입니다. 함 선생님이 노자를 많이 하신 것도 그게 다 다석 선생님
의 영향이죠. 유 선생님이 다른 사람의 주석을 보긴 보셨는데, 의지하지는 않았죠. 당신이 독창
적으로 하셨죠.
박재순:: 다석 선생님은 일본에서 물리학을 하셨고, 천문학, 수학을 좋아하셨고, 서양 학문을 접
해서 과학이나 화학을 가르치셨다는데, 서양 학문에 대한 공부는 어느 정도 하셨을까요?
박영호:: 영어는 잘 못하셨어요. 영어에 약한 걸 그걸 아쉽게 생각하셨지요. 당신이 미션스쿨에
다니면서 일어를 알았기 때문에 빨리 서양 학문을 받을 수 있었죠. 춘원 선생님이 일본에서 중
학교 졸업하고, 오산학교에 톨스토이 전집을 가지고 왔다 그래요. 그때 톨스토이 전집을 읽어보
신 거죠. 20대 초에 톨스토이뿐 아니라, 읽을 수 있는 것은 일어를 통해서 거의 다 읽으셨어요.
그때만 해도 간디 책은 많이 번역이 안 됐을 때니까.
서양 철학자 중에서는 에크하르트를 좋아하시고, 김교신 선생하고 가깝게 지내면서 무교회에
서 칼라일을 워낙 좋아하니까, 칼라일의 『의상(衣裳)철학』도 읽으셨고. 철학도 뭐 읽으시긴 하
셨는데 워낙 당신이 신앙적인 사람이셔서 특정한 철학에 매이지는 않으셨지요. 헤겔의 정반합
이라는 거는 인류에게 공헌하는 소리다. 변증법 같은 거는 인정하셨지요. 그러나 그런 것은 당
신한테는 한 단계 아래잖아요. 그걸 우리한테 가르쳐 주려고 하지는 않으셨어요. 괴테도 인정하
시고 말씀하셨지요. 서양 사상에 대해서 전부 다 한 차례는 독서를 하셨는데, 당신 마음에 드는
거는 톨스토이하고 에크하르트하고 몇몇 영성에 뛰어난 분들이었어요. 교의신학에 갇힌 분들
은 그야말로 코드상 안 맞으니까 우리한테 언급을 하지 않았어요.
박재순:: 데카르트 글도 보셨을까요? 소개서가 아니라 직접 그 사람들의 책을 보셨나요?
박영호13 :: 그렇죠1
. 일본 책을 통해서 읽어보신 것 같아요. 6・25 때 책을 많이 잃어버렸잖아요. 잃
정연이네 집
10/7/2019 다석 유영모의 생활모습 / 기독교사상 :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kjyoun24/221313598128 12/19
어버렸어도 많이 남아 있었는데, 거기서 대략 뭐를 읽으셨는지 짐작을 할 수 있죠. 거기에 그런
책들이 있어요. 일어를 하셨고, 영어는 좀 약하고, 에스페란토어는 잘 하시고, 중국말을 하셨죠.
김교신 선생님 모임에서 다 원어로 성서를 연구하기 때문에 희랍어도 조금 아시고 히브리어도
조금 아셨어요. 다석의 성경을 보면 희랍어로 된 문구가 나오고, 『다석일지』에도 많이 나와요.
우리말 성경을 많이 보시고 일어 성경도 보시고, 중국어 성경도 보셨어요. 그리고 우리나라에
공동번역 나왔을 때도 선생님이 아주 연로하셨을 때인데 제일 먼저 가셔서 사가지고 오시더라
구요. 지금 성경에 잘못된 게 많으니까 옳게 번역해야 한다고 하셨지요. 축소판 팔만대장경도
사다 놓으셨어요. 선생님은 될수록 우리말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셨어요. 한글, 우리말을 연구
하셨고 『천부경』이나 『삼일신고』를 많이 보셨지요.
박재순:: 일지에 보면 삼일철학에 대해서도 많이 말씀하시는데 혹시 선생님이 대종교와 가까이
하시거나 가까운 분이 계셨던가요?
박영호:: 대종교 총책임자였던 윤기복 선생은 만주로 피난 갔다 온 분인데 그분이 구기동에 찾
아오기도 하고 다석 선생님이 그분을 찾아가기도 하셨지요. 『천부경』, 『삼일신고』 같은 것도
윤기복 선생 쪽에서 왔다고 생각합니다. 『천부경』은 우리말로 번역해서 『다석일지』에 실려 있
어요. 유승국 교수님은 다석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천부경』 풀이를 들었대요.
박재순:: 『천부경』을 풀이하면서 한보다 무에 초점을 두는 이들도 있습니다. 무에서 형이상학적
깊이를 본다는 거지요. 그런데 선생님은 한에서 시작해서 한으로 끝나는데, 그게 맞는 풀이 같
아요. 유무 이야기도 나오지만 결국은 한(하나님)으로 귀결된다. 그것이 『천부경』을 직역한 것
이면서 한(韓) 사상, 하나님 사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잘 보여주신 것 같습니다. “유와 무보다 더
깊은 곳에 하나님이 있다.” “시작과 끝이 한이다.”
박영호:: 쉰두 살 때 유 선생님께 정신적 혁명이 일어나는데 완전히 자기 개체가 깨지고, 하나님
, 전체의식으로 의식의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졌어요. 예수님도 “내 속에 하나님이 와서 말씀하시
는 것”이라고 하시잖아요. 하나님의 판단으로 판단하는 게 다 옳다고 하셨어요. 모든 걸 하나님
자리에서 생각하는 게 전체의 자리에서 생각하는 것이죠. 그렇게 사는 사람이 하나님 아들 아
니겠습니까? 그게 이루어진 게 쉰두 살 때였죠. 다석 선생님은 귀일(歸一), 하나로 돌아가자, 하
나님께로 돌아가자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노년에 빗자루질을 많이 하셨어요. 빗자루가 닳을 정
도로 청소를 하셨대요. 선생님은 깨끗을 말씀하셨지요. “끝까지 다 깨진 게 깨끗한 거다. 더럽다
는 것은 덜 없어져서 더러운 거다. 또 깨어서 끝내는 것이 깨끗한 거다.”라고 하셨어요. 우리말
을 살려내려고 애쓰셨지요.
박재순:: 말놀이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말은 우리 무의식 깊은 곳에 박혀 있는 것이니까,
우리가 우리말을 수만 년 동안 써왔고 앞으로도 쓸 말인데 이 말을 다듬고 이 말에 새로운 의미
를 부여하면 민족이 새로워지는 거 아닙니까?
박영호:: 그럼요. 가장 친근한 게 말인데, 말에다가 의미를 부여해서 영향을 주는 게 얼마나 큽
니까? 한신대 채수일 선생님이 “신학을 독일어로 해야 되느냐? 우리말로 신학도 하고 철학도
하신 이가 다석 선생님이다.”라고 하셨어요.
박재순:: 강의하신 모습이나 강의 방법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지요.
박영호:: 제가 농사짓다가 가면 나 한 사람 앉혀놓고 당신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말씀하셨어요
. 당신은 점심을 안 드시지만 우리는 배가 고프잖아요. 그렇게 한 사람 앉혀놓고도 열강을 하시
고, 겨울에는 털 스웨터를 입으셨는데, 열강을 하시니까 더워서 벗어놓고 하시고, 어떤 때 신이
나면 당신 글에다가 가락을 붙여서 시조 읊듯이 설명하셨어요. ‘ㅣ’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당신
이 서서 “이~이~” 하시며 “이거는 세계적으로 공통어야. 이이 저이 하는 게 좋은 거지. 미스터니
김 상이니 하냐?”라고 하셨어요. 영어 ‘I’만 아니라 희랍어 이요타도, 중국어도 하나가 사람을 가
르킨다는 겁니다. 13 1
정연이네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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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걸어오시니까 시간 늦으시는 법이 없어요. 낙상해서 하루 못 오실 때가 있었는데 기다
려도 안 오셔서 구기동에 찾아가니까 경황이 없어서 못 알렸다고 그러셔요. 다른 책은 아무것
도 안 가지고 오시는데 옛날 신구약 성경 하나만 천으로 만든 가방에 들고 다니니까 누가 사주
팔자 보냐고 하더래요. 그래서 “하나님 관상 본다.”고 하셨대요. 신구약 성경 하나만은 꼭 들고
오시고 다른 고전들은 노트에 쓴 것만 들고 오시지요.
다석 선생님은 함 선생님처럼 달변은 아니시지만 시적인 표현, 은유적인 표현을 잘하셨어요. 눈
에 안 보이는 하나님을 설명하려면 비유를 잘해야 하는데, 유 선생님은 나무에서 똑 따온 과일
같은 싱싱한 비유를 잘 하시죠. 말씀하시다가 한참 신이 나면 손짓 발짓으로 춤을 추셨어요. 보
통 음란한 춤은 하체를 많이 움직이잖아요. 선생님은 신이 나서 상체를 움직이시며 춤을 추셨
어요. “신앙 생활한다는 것은 기쁜 것이다.” 기쁨은 기를 느끼는 것이지요. 선생님은 기철학을
하시잖아요. 기쁨은 기를 뿜어내는 거지요. 배가 ‘고프다’, ‘슬프다’, ‘바쁘다’에서 ‘쁘다’는 느끼는
거예요. 성령이 뿜어져 나와야 되는 거지요. ‘인생이 만날 우울증에 걸려서 어떻게 사느냐, 기쁨
이 넘쳐야 신앙생활이지. 분열증 걸리고 우울증 걸리는 게 신앙인에게 있을 수 있느냐.’는 말입
니다. ‘기쁘다’에서 ‘쁘다’는 ‘느끼다’를 뜻하고, ‘기’라는 건 한자의 ‘氣’가 아닌 우리의 ‘기’라는 겁
니다. 그걸 성령으로 연결시켜서 기쁨이란 ‘그렇다, 옳다, 맞다’면서 성령을 느끼는 게 기쁨이라
는 겁니다. ‘인생이 기뻐야지 울상을 짓고 해서 되느냐 이거야. 신앙인은 당장 내일 죽는다 해도
기쁘다 이거야. 죽는 것처럼 기쁜 게 어디 있느냐.’ 이겁니다.
다석 선생님의 신앙생활에서 52세를 전후로 다른 것이 있어요. 「성서조선」에 다석 선생님이 3
8년 만에 믿음에 들어가는 이야기를 쓰셨어요. 그전에는 지금 교회에서 말하듯이 육신의 예수
를 그대로 그리스도로 믿었는데, 52세 이후에는 예수님의 마음 가운데 온 하나님의 영이 그리
스도이지 예수님의 몸뚱이 그 자체, 마리아가 낳은 인간 자체가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 예수님의 마음 가운데 온 영적인 생명인 하나님의 성령이 그리스도라는 겁니다. 다석 선생님
은 예수님도 영적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다석 선생님은 2,000년 전 예수
나 석가한테 온 영원한 생명이 자신에게도 왔다고 하셔요. 그런 영적 체험을 한 것은 쉰 두살
때인 것 같아요. 그리고 영이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생명이기 때문에 너, 나가 없다는 거예요. 영
으로는 예수 따로 있고, 석가 따로 있고, 유영모 따로 있고, 간디 따로 있고 그런 것이 아니고 영
적인 생명으로는 너, 나가 없기 때문에 한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기 때문에 회통이 되는
데 그러나 교회에서는 그렇게 생각을 안 하니까, 교회하고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지요. 유승국
선생님에 따르면 다석 선생님은 유교에 대해 선생님이시고, 불교에 대해 선생님이시고, 기독교
에 대해 선생님이신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수나 석가나 공자, 맹자 중심으로 해서 그런 거지
현재의 기독교, 현재의 유교, 현재의 불교와는 안 맞는 거예요.
다석 선생님의 기조정신은 예수님의 속에 온 영이에요. 그것을 제일 잘 나타내고 실천해 보여
준 사람이 예수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은 나에게
신앙을, 하나님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 오직 한 분의 선생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
을 믿은 분인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하나님과 예수님하고 분별이 안 되지 않나요. 석가나 공자,
맹자 이런 분보다 더 분명하게 예수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이야기한 것을 유 선생님은 굉장히
좋아하신 거예요. 결국에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가르쳐주는 것이 종교거든요. 그 관계를,
가장 절대와 상대의 관계를 인간적으로, 인격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버지라는 거예요. 그것이 제
일 좋아서 예수님을 좋아하셨지요.
박재순:: 유 선생님이 예수님을 제일 좋아하고 가까이하신 것은 사실이지요.
박영호:: 그렇죠. 한 아버지 하나님을 우리한테 분명하게 가르쳐 준 분은 예수님이지요. 다른 분
들도 그것을 가르쳐줬는데 난삽한 데가 있어요. 예수님의 생애조차도 하나님 아버지한테 충성
하고 효도하는 것을 가장 잘 드러내셨어요 13 1
. 그래서 “나는 예수가 제일 좋다.”고 다석 선생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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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연하게 말씀하세요.
박재순:: 혹시 유 선생님이 여성과 관련해서 특별히 하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빨래하고 청소하
는 여인네들이 한사귀족(閑士貴族)들의 속구주(贖救主)다.”라고 말씀하신 대목이 나옵니다. 여
성들이 더러움과 때를 씻어주는 구세주라고 하신 것을 보면 여성들에 대해 친애하는 마음이 있
으셨던 것 같은데, 혹시 남성보다 여성에 대한 특별한 시각 같은 것이 있으셨나요?
박영호:: 선생님은 좀 모순된다고 할까 이율배반적인 말씀을 하시는데 ‘기독교는 아버지종교’라
고 하셨어요. 말에서 ‘ㅏ’가 기본음이거든요. 영어의 ‘A’도 그렇고. 일본어도 ‘아이우에오’에서처
럼 ‘아’가 먼저 되고 애기들이 옹아리할 때 나는 소리도 아래아(ㆍ) 소리거든요. 유 선생님은 아
버지를 ‘아바디’라고 해요. 지금도 함경도에서는 아바디라고 하지요. 아바디에서 ‘아’는 모든 음
의 시작을 나타내고, ‘바’는 ‘밝아진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디’는 땅을 굳게 딛고 실천한다는 것
을 나타낸다고 풀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받아가지고 세상이 밝아지도록 그것을 디
디고 실천해나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머니’는 ‘어–머니, 아–머니, 멀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필요 없다는 겁니다. 성숙한
사람은 어머니에게서 독립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성숙한 아들에게는 아버지 하나님만 있으
면 된다는 거지요. “우리가 오늘 이야기하고 들을 수 있는 것도 집에서 부인네들이 다 수고하기
때문이 아닌가. 여인네들에 대한 고마움을 알아야 된다.”고 늘 말씀하셨지요. 선생님이 레닌복,
노동복을 입으시기도 했고, 늘 간편한 옷을 입으셨는데 그 까닭은 여자들의 일손을 덜게 하려
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자기를 이기기 위해서 탈가족해야 된다는 거예요. 가족밖에 모르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셨지요.
또 국가주의에서도 벗어나야 한다고 하셨어요. 이런 나라에 쫓아가서는 안 되고 하나님 나라를
쫓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국가 이기주의가 개인 이기주의보다 더 무서운 거거든요. 국가를 벗어
나 하나님 나라로 가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러나 국가 민주주의가 잘 되어야 하고, 가정도 유지
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셨지요. 가정이 다 깨져버리면 애들을 어떻게 키우느냐, 그리고
몸뚱이도 건강해야지 건강을 잃어버리면 이중으로 다치는 거라고 하셨어요. 이런 국가, 우리가
따라갈 필요가 없다, 그런 공무원 하지 말라 이거예요. 그러면서도 ‘이 우주가 얼마나 장엄하냐!
이 우주가 혼불 나는 거다.’ 하셨어요. 우주도 상대 세계를 초월해야 된다는 거예요. 상대적 우
주에 갇혀 있으면 감옥이라는 거예요. 다석 선생님 집 앞에 가면 지금은 현대빌라가 들어섰는
데 네모난 돌에 사람 인(人) 자를 써 놓았어요. 그것은 죄수 수(囚) 자거든요. 몸, 집, 국가, 우주
조차도 내 관이고 수의고 감옥이라는 것입니다. 다석 선생님은 몸, 가족, 국가, 우주를 늘 이중
적으로, 모순과 이율배반으로 보셨어요.
박재순:: 벗어나자고 할 때는 이 몸이 죄수복인데, 그러나 또 살자고 할 때는 이 몸이 굉장히 소
중한 존재가 되지요.
박영호:: 그렇죠. 선생님의 말을 잘 들어야 해요. 몸이 병이 나버리면 이중으로 갇힌다는 겁니다
. 그러니까 몸 성해야 한다. 몸 성히, 맘 좋이, 뜻 태우를 말하셨어요.
박재순:: 어머니에게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어머니에 붙어 있는 나는 어린애이니까 독립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지요?
박영호:: 그렇죠. 상대세계를 멀리하고 절대세계로 가야 하는데, 아버지는 독립해서 절대세계로
나가는 것을 뜻하고, 어머니는 상대세계를 뜻하는데, 상대세계는 나를 키워주고, 나를 안고 있
는 어머니 탯집 같은 건데 이것을 벗어나야 한다는 겁니다.
박재순:: 금욕을 강조하셨는데 다 금욕해서 애도 안 낳고 가정도 없어지는 것에 대한 말씀은 안
하셨나요?
박영호:: 선생님 말년에 함 선생님 스캔들이 있고 그때 인구폭발 된다는 이야기가 신문에 많이
나올 때여서 금욕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13 1
. 씨앗도 두루 흩어져서 나야 되는데 씨 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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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를 한 군데 쏟아 놓으면 다 죽는다는 거지요. 모든 짐승들도 스스로 수를 조절해서 인구폭발
로 자멸하는 일은 없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이 이것을 조절하지 못해서 자멸한다면 이
런 창피스러운 일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셨지요. 될수록 결혼하지 말고 자식 낳지 말라고 하셨
어요. 옛날 같으면 이런 소리 하면 안 되는데 지금은 인구가 폭발하는 단계에 이르렀으니 내 감
히 이런 소리 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생식하고 자식을 낳은 것은 영원한 생명을
버리는 것이니까 영원한 생명을 붙잡고 생식을 하지 말자고 하셨어요. 마하트마 간디도 정신적
인 아들인 제자를 길러야지 하나님의 나라를 번식시키는 거라고 했지요.
박재순:: 다석 선생님의 금욕사상을 젊은이들에게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성
적인 자유 속에 살아가니까 금욕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거든요.
박영호:: 다석 선생님도 ‘30대는 암만 가르쳐도 실천하기 어렵다. 40이 넘어야 그게 되더라.’고
하셨어요. 사람이 40-50이 되어야 철나는데, 그것도 30대에 아주 노력하는 사람이라야 40-50대
에 철이 나지 안 그러면 40-50대에 더 바람난다는 거요. 탐욕을 다스려 보시를 하고, 노여움을
다스려 자기를 이기고, 생식하고 자식 낳고 싶은 것을 참으라는 이야기요. 탐진치(貪瞋癡)를 다
스린 후에 정진하여 반야, 선정에 이르는데 그것은 절대자와 나와의 관계입니다. ‘에고’로서의
자아가 완전히 없어지고 절대 속에 내가 동화되는 것을 선정이라고 하고, 하나 되는 것, 귀일하
는 것, 개체의식이 완전히 소멸되고 전체의식에서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영적
인 생명으로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을 이야기하셨어요.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그래서 나는 ‘
예수님이 하나님이다.’라고 기독교에서 말하는데, 그게 아니고 영적인 생명으로 하나님이 주신
성령으로 내가 아버지와 하나 되는 거지 예수의 몸뚱이가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와 나가 하나 되었다는 말씀이 자신을 신격화시키는 말은 절대 아니라는 겁니
다.
박재순:: 마지막으로 다석 선생님과 관련해서 하실 말씀을 해주시죠.
박영호:: 다석 선생님이나 나는 비정통이기 때문에 교의신학자들을 인용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
습니다. 다석 선생님은 오직 예수의 참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하는
분들 가운데 나에게 욕할 사람이 많을 텐데 욕하는 사람이 한 분도 없고 오히려 몇 분은 찾아오
기도 하고 이제까지 예수밖에 몰랐는데 당신 책을 읽고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다석 선생님은 교회 밖에서 나온 하나님의 큰 효자이다. 굉장히 고맙게 생각한다.”라
고 말하는 분도 계셔요.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는데 목회하는 분들은 교의신학을 따르기
때문에 다석의 책 읽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김경재 교수님이나 정양모 교수님이나 심
일섭 교수님 이런 분들은 많이 이해해 주시고 당신네 글에 유영모라는 이름을 나타내셔요.
박재순:: 요새는 유영모 선생님의 말씀을 많이들 하세요.
박영호::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싶고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분들은 다석 사상을 참고하시
면 예수님을 바로 아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다석 선생님은 날 보고 찾아오지 말라
고 할 정도로 우리는 교단이나 조직을 만드는 데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다만 선생님의 사
상을 알고 싶은 사람은 성천 유달영 선생님이 세우신 성천문화재단에 사무실에 ‘다석 사상 연
구회’라고 간판을 붙여 놓았어요. 목회하시는 분들이나 스님들이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궤도 수
정을 하는 데 다석 사상이 참고가 된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대만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석 사
상을 공부해서 예수님의 본모습을 아는 데 참고로 하고, 앞으로 21세기 모든 종교가 회통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종교가 평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데, 앞으로
모든 종교를 회통해서 진일보한 자리에서 다석 사상을 공부한다면 잘 이해될 겁
니다.
예를 들어 불교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오늘날 불교에서 부처님이 신앙의 대상이 되어 있는데
부처님의 신앙은 불상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니르바나를 추구하는 것이지요 13 1
. 적멸(寂滅)은 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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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2019 다석 유영모의 생활모습 / 기독교사상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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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바나를 의역한 것이고 열반은 음역한 것입니다. 절은 니르바나님을 모신 보배로운 궁전이라
서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같이 우상 배격한 사람 없어요. “부처님은 니르바
나라는 하나님을 믿은 분이다.”라고 발표를 했어요. 그것을 나타내는 것이 적멸보궁이라고 했
습니다. 앞으로 불교가 하나님 신앙에 가까워지고, 기독교가 예수님이 믿던 진짜 아버지 하나님
을 찾게 된다면, 그리고 톨스토이의 말대로 이슬람교를 기독교의 하나의 종파로 본다면 종교들
사이의 벽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높은 차원에서 종교는 정치인들을 가르쳐야 되는 거예요. 함 선생님이 다석 사상을 똑바로 지
켰다면, 함 선생님이 스캔들만 없었다면 함 선생님의 입을 거쳐서 대통령이 나올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질 않았을까 아쉽게 생각합니다. 현 정부의 정치인들이 어정쩡한 사상으로 지금 정치
하고 있는 거예요. 노무현 대통령부터 다석 사상을 한 번 읽으면 비전 있는 정치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조선조 들어서면서도 유교를 기조정신으로 정치철학으로 하고, 고려시대에도 불교로
하듯이 민주정부도 기조정신이 있어야 되는데, 지금 386세대들은 젊을 때 민주화 운동할 때 좌
경 서적 봤을 텐데 그런 바탕으로 어떻게 정치를 할 수 있겠어요. 다석 사상 전집이라도 한 번
읽고 하면 올바른 정치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안타깝고, 오늘날 교회나 모든 종교의 분쟁도 다
석 사상에서 회통할 수 있는 21세기의 정치나 종교의 기조정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미국의 소로우가 물질적인 재산을 재산으로 생각하지 말고 정신적 재산의 총화가 진짜 우리의
국부라고 했습니다. 물질적인 GNP만 따지지 말고 정신적인 GNP를 따졌을 때 우리 다석 사상
의 무게가 우리의 국부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유달영 선생님은 우리는 이제껏 사상을 수입만
했는데 예수님 사상도 수입했고, 부처님 사상도, 노장, 공자, 맹자도 수입만 했는데 이제는 다석
사상을 해외에 수출할 수 있는 사상이 아니냐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런 때가 한 번 왔으면 좋겠
어요. 외국과 국내에서 박사학위 받은 분이 여럿입니다. 석사학위 논문은 한 20여 편 나왔을 거
예요.
내가 다석 선생님을 호랑이를 고양이로 그리지 않느냐 하는 그런 생각을 할 때도 많은데, 선생
님의 생각을 크게 왜곡하거나 변질하지는 않았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습니다. 교단에 계시는 교
수님들께서 많이 연구하셔서 종파의식에 갇혀 계시지 마시고 확 열린다면 한국 신학계가 확 달
라지고 다른 여러 나라에서 한국에 신학 공부하러 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 생각해요. 진짜 Univ
ersity가 된다면 여기서는 불교 가르치고, 여기서는 유교 가르치고, 여기서는 예수님 가르치고.
그런 신학교가 생기지 않겠는가 꿈을 꾸는데 성천문화재단에서 그런 노력을 하고 있어요. 저도
70이 넘어서 바통 터치할 사람을 물색하려고 하는데 젊은 분들이 나타나기가 쉽지 않은 것 같
아요.
( ‘기독교사상’ 2018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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