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냐 .1986.8.14 오북환 장로
연산
2015. 12. 1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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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냐
1986.8.14 오북환 장로
하나님 앞에는 밤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 우리 셈으로 따지면 수수 억만 만의 시간 날짜라도 년이라도 몇 광년이라도 말입니다. 하나님은 잠깐이야. 잠깐 하나님은 잠깐이야. 우리는 몇 만 년을 살았어도 하나님 앞에 대면 무한에다 대면 잠깐이거든. 그러니까 이렇게 분을 두시는 것도 큰 은혜입니다. 어서 갈려고 하는 것도 좋지만 더 큰 은혜 주시기 위해서 아직도 천국에 갈 자리가 준비가 조금 덜 되었다. 덜되었으니까 제일 좋은 자리를 마련했는데 조금 지금 전등을 안 달았다든가 전등이 필요 없지만 거기서는 하나님이 빛이니까 무엇이 좀 꽃 하나 심을 데가 지금 안 심었다든가 조금 덜 피었다거나 무엇이 조금 덜된 것뿐이니 그저 감사히, 감사히 받을 것뿐이다. 그렇게 말씀이 내려요. 지금 제 집회이지, 여러분의 집회가 아니야. 여러분도 받으면 여러분의 집회이고 개인 개인의 집회야.
또 그 이야기 하면 길지만 처음에 말씀 봤을 때도 보니까 그렇습디다. 처음에 일주일 전부터 부흥집회를 위해서 준비를 해가지고 일주일 만에 마쳤지만 일주일 동안 집회 가운데 첫날밤부터 예수 믿는 사람 손드시오. 많이 들어요. 아마 마칠 때까지 하면 몇 백 명 교회 부산 초량교회인데 본 교회가 600명가량 되는데 아마 새로 믿겠다는 사람 몇 백 명 될 것 같아요. 저녁마다 적었으니까 나도 첫날밤에 적었거든. 나 믿겠다고 그러면 6개월쯤 되면 학습을 받거든, 그래서 학습 받으라고 준비하고 오라고 하니까 저도 갔지요. 학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문답을 해요. 그런데 그렇게 많은 청년들이 믿겠다고 했는데 둘밖에 없더라고 둘 밖에 나하고 어떤 청년하고 둘이 문답합디다. 그때 문답이 무엇이냐? 어찌해야 구원받습니까? 믿으면 구원 받겠지요? 조금 맞았지만 조금 틀렸소. 회개해야 구원 받아요. 안 믿고 어떻게 회개를 해요? 속으로 믿어져야 회개를 하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했으니까 순서로는 회개가 먼저겠지요? 그렇지만 믿어질 때 인제 회개하고 믿고, 믿고 회개하는 거예요. 완전한 회개는 믿어짐에 따라서 완전한 회개지, 이것은 숨 끊어질 때 까지 회개해요. 인간은, 부활이고 죽고 살고 죽고 살고 죽어진 만큼 살아 겉 사람이 부패해진 만큼 날로 새로워져 날마다 회개요. 날마다 부활입니다. 신앙은 어제 회개 다했다 아니에요. 언제 다해? 아직 회개 시작도 않았어. 나는 자기 부정이 회개인데 자기부정 언제 했냐? 안했다고. 그러고 보니까 조금 보니까 그 청년마저 없데요. 안보여. 나오지도 않아. 그러고 보니까 아 그 집회는 내 영혼 건지려고 그랬다. 그때 말씀은 말씀조차 제목조차 첫날부터 제목조차 내가 생각하던 문제였거든요.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냐? 인생이란 무엇이냐? 이렇게 허망할 바에야 뭐 하러 났냐? 일찍 죽는 것이 좋지 한참 좋을 때 죽어버려야지, 나중에 결말이 이렇게 될 바에요? 뭐 하러 인생의 가치가 있냐? 그 인생관에 대해서 자나 깨나 생각이 그것뿐이야. 뭐 희망이 발견되지 않으면 차라리 자살해버리지 뭐 하러 사냐? 그 말이야. 뭐 하러 사냐? 이렇게 허망할 바에야 뭐 하러 인생의 가치가 어디가 있냐? 그랬던 참인데 그날 밤에 가서, 모든 만물이 목적이 있는데 성경 하나 봐요, 시편 119편 91절 이에요. 처음 들었어도 그 말씀은 잊어버리지 않아 어찌 내게 적절한 말씀이기 때문에 잊어버리지 않아요? 또 하나는 빌립보 1장 11절이고 그때 성경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고 그럴 때인데요. 읽어봐요.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라.’ 공동번역에는 ‘만물이 주의 여종이라’ 그랬어요. 여종은 낳으니까 사람을 낳아 주니까 생산해 만물이 주의 여종이라. 천사라는 말이 나오는데 천사라고 계속 하겠습니다만 천사가 무엇이냐? 만물이 흙덩이도 천사야 천사, 흙덩이 흙속에 지금 고구마 들었을라나 몰라. 이파리 두어 개 붙은 것 끊어가지고 땅에다 묻어 놓으면 가을에 캘 때 머리빡만한 것 캐 어떤 것 은 언제 한번 보니까 7관 5백, 그것을 3년을 심으니까 7관 5백 몇 메가 나오더라고. 그렇게 커버려. 고구마 순 쪼그만 것에서 그러면 무엇이 그렇게 종노릇을 했냐? 하나님의 천사가 천사들이 하나님이 시켜서 천사들이 흙을 이용해서 흙속에서 키웠다고, 농사도 농부가 지은 것 아니에요. 천사들이 지어요. 그래 농부들이 천사 대리를 했지요? 모든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니까 그러니까 이 집회에서도 내게 어떤 영혼에게 말씀을 받아요. 그러면 그 영혼 하나를 위해서 집회가 된 거예요. 다 받았으면 얼마나 좋아요? 그러나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 집회에는 내 영혼, 실증을 보라. 책만 보지 말고 책에서 찾지 말고 실증을 보라. 그래서 그 정신환자 자기도 그 병에 들었던 그 정신환자 법적으로 경우대로 따지면 두들겨 맞는다고 맞아. 그분보다 더 낮아지고 내려가서 같이 눈물을 흘리면서 다독거리면 누그러진다고요. 목욕도 세수도 안하려고 그래, 더 낮아져, 낮아져 참 겸손해. 그러니까 천사다. 천사 복음이다. 그것이 복음을 봤어. 복음이 무엇이냐? 그것이 복음이다. 말이 아니야. 복음은 말이 아니고 실 사랑의 역사다. 하나님의 역사가 복음이다. 사명의 역사다. 사랑이 거기 있다. 더 낮아지고, 낮아지고 다른 자매는 가서 약을 사려고 하니까 약이 많으니까 한보따리야. 벌써 거기가면 한보따리 온다. 그런다고, 그래도 순서가 어찌 지혜 있게 잘하니까 사람이 모두 일등으로 앞으로가라고 그냥 경우대로 하려면 아무개 좀 약 좀 줘야 쓰겠어요. 안된다고 탁 거절할 텐데 가서 어린양을 하고 또 그이가 말 안 들으면 더 높은 사람한테 가서 더 어린양을 하고 재미가 있거든. 그거 타가지고 온다고 그렇게 하는데 저기서는 자매는 환자들 세수나 시켜주고 그렇게 하지, 약 사러 가지 말라고 다른 사람은 약을 잘 못 사오는데 멸시만 받고 와서 창피하다고 그러는데 탁탁 거절해 버리니까 창피하지요. 그렇지만 이이는 잘 타와. 그것 잘 타오는 것뿐만 아니라 버스를 타면 그때가 기도하는 시간이라고 참 하나님 만나서 기도하는 시간이라고 그러고 가서 목적지가서 어떻게 내리나 몰라. 그런데 가서 알려주신다고 그래, 산 복음이에요. 이것이 산 복음을 목격했어요. 환자 자매에도 그렇고 그러면 일찍 죽으려고 말라. 그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된다. 내 생각은 그렇지요 그러면 그 자매 환자 당사자 자매가 거기서 겸손해지고 그 은혜를 깨달아진 만큼 그 수종을 든 사람이 성녀가 돼. 노인들 나는 피해만 돼. 피해만 돼. 어서 죽어버려야 돼. 남에게 폐 안 끼치려면 죽어버려야 돼. 그것 조금 오해에요. 생명은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의 은혜인데 은혜를 받으라는 것인데 자기 생각이야. 아이고 나 죽어야 한다. 안 된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야 한다. 마지막 말씀도 그러지 않았어요? 하도 고통이 심하니까 언니가 어서 죽었으면 좋지 않아? 나도 못 보겠네. 곁에서, 아닙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내 뜻대로는 더 오래살고도 싶지 않고 일찍 죽고도 싶지 않지만 하나님의 뜻이면 몇 조금 보태면 몇 만 년을 살게 하더라도 감사할 것뿐이다. 곧 데리고 가셔도 감사, 일평생 병중에 있어도 감사,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그 병중 에서 또 그럴수록 그 병중에서 천국사리를 하니까 영적으로 고통으로 못 견디는 것이 아니고 은혜를 받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자유로 이랬으면 좋겠다. 그거 욕심이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함으로 그 수종을 드는 사람을 깨우칠 수 있다. 하나님은 본인은 물론이지만 그 수종꾼들의 영혼을 깨우치는 하나님의 섭리로 봐야 되요. 그러니까 겸손만 해주면 나가요 내가 자유로 교만하면 무엇에 써요? 내 마음대로 착착 자유해가지고 선도 행하고 남도 구제하고 교만하면 무엇 하겠어요?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바보천치라도 겸손해지면 하나님이 받지만 교만하면 다 틀렸다고 전 세계 인류를 다 행복하게 살게 해줄 수도 없지만 막상 그렇게 해줬다하더라도 그만큼 자기 영혼은 얼마나 교만할거냐 말이야. 소용없어요. 모든 재산을 다 바치고 자기 자신마저 화제로 드린다 할지라도 사랑 없을 수 있거든요. 그거 소용없는 거예요. 우리는 선의 표준을 인간계에서 찾는다고 아니에요. 선의 표준은 사람이 못해.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이여야지 인간 자기 생각에서 선 그건 죄에요. 인간이 보기에 선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보기에는 정 반대라는 거야. 세상 행복이 영적 행복과 정 반대야. 가장 멸시천대 받는 것이 큰 영광이고 가장 높아지는 것이 천한 것이고 낮아질 것이고 정반대로 세상 행복과 영혼의 행복과는 정 반대에요. 세상 영광과 하나님의 영광과는 정 반대란 말이야. 제일 멸시천대 받는 것이 영광입니다. 그만합시다.
그 다음에 마리아의 노래, 이 말을 듣고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나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레 입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해주신 덕분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대대로 자비를 베푸십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불효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주님은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자비를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베푸신 것입니다. 꿈을 상실한 낙관주의자보다 낫다. 염세주의자 일지라도 세상은 모든 것이 싫어서 피하고 숨고 그럴지라도 꿈을 상실한 낙관주의자보다는 낫다. 꿈이 있어야 한다. 인생은 꿈이 있어야 한다. 희망을 말한 거야. 희망 희망을 성경에서 찾아봐요. 신구약에 많아요. 그렇지만 구약에서 먼저 봅니다. 예레미야 여기서부터 봐야지요. 스가랴 9장 9절서 12절, 제가 봅니다. 구역으로 봐요.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 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10절,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 마병 말을 끊겠고 세상 모든 무기,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사람에게 평화를 전할 것이요. 그의 전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11절,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를 인하여 내가 너희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모았나니, 갇혀있다. 진리에 딱 붙잡혀있는 사람들입니다. 감정을 스스로 억제한 사람들이에요.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소망을 품었다. 소망을, 소망 없이 갇힌 것은 그것은 참 비참한 일이지만 소망을 품고 갇혔으니까 더 희망이 확실해 진다고요.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으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날도 이르노라. 내가 배나 네게 갚을 것이라. 갚아주겠다.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 확실한 보장으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날 이르노니 내가 배나, 배나 네게 갚을 것이다.
이것은 공동번역 이고요. 예레미야 31장 19장서부터 볼까요? 예레미야 29장 11절 10절서부터 읽겠습니다. 나 야훼가 말한다. 너희가 바벨론에서 70년을 다 채운 다음에야 약속대로 나는 너희를 찾아가 이곳으로 다시 데려오리라. 너희에게 어떻게 하여 주는 것이 좋을지 나는 이미 뜻을 세웠다. 나는 너희에게 나쁘게 하여주지 않고 잘하여 주려고 뜻을 세웠다. 우리가 어떤 감정적으로 아주 나쁘다고 생각하는 그런 어려운 문제에 부닥쳤다고 생각할 때 그럴 때는 기쁜 소식, 좋게 해주려는 하나님의 섭리다. 그렇게 봐요. 그 문제가 그 어려운 문제를 통해서 내 영적 문제가 신앙적인 어떤 문제가 탁 풀린다면 그렇게 좋은 일이 없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베풀어주신 특별히 믿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주신 사건들은 다 축복이에요. 육적으로는 다 불리한 것 같지만 육적으로 불리할수록 그건 영적으로 다행한 길이 열린다는 뜻이에요. 나는 너희에게 나쁘게 육으로는 나빠요. 나쁘게 하여주지 않고 잘하여 주려고 뜻을 세웠다. 밝은 앞날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 밝은 앞날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12절, 나를 부르며 나에게 와서 빌기만 하여라. 기도로 그렇게 하면 들어주리라. 마침내 너희는 일편단심으로 나를 찾게 되리라. 지금 예수를 찾아본다. 열심히 찾아본다. 일편단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일편 다심입니까? 다심이야. 다심, 이것도 좀 찾아보고 저것도 좀 찾아보고 그렇게 일편단심으로 나를 찾게 되리라. 그렇게 나를 찾으면 일편단심으로만 찾으면 아무 다른데 마음 내키는데 없이 매인데 없이 오직 주님을 찾는 데만 오로지 전심전력 그렇게 찾으면 내가 만나주리라. 만나주리라. 그래 여기서 좀 찾아보다가 안 만나지면 또 저기서 찾아보다가 늘 그러면 못 만나, 일편단심이라야 돼. 똑똑히 일러둔다. 너희는 나를 만날 것이며 나는 너희를 고국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너희는 나에게 쫓겨 세계만방에 포로로 끌려갔지만 왜 세계만방에다가 흩어버렸을까? 왜 그랬을까? 거기서 회개할 때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때 부르시려고, 여기 동광원에 모여 살아도 회개하지 않으면 싹 흩어버릴 거라고 하나님께서, 거기 가서 참으로 내가 그것을 왜 그렇게 몰랐던가? 참 거기가 내 영혼의 집이었었는데 왜 몰랐던가? 그러고 후회 하고 후회하고 뉘우치고 돌아온다는 거예요. 모르겠어요. 회개 안하면 그런단 말이야. 회개했다하면 지금 이렇게 살겠어요? 회개했다면 그냥 천국에 살지 회개했다면 무엇이 문제가 있겠냐 말이야. 그냥 그대로가 생활이 전부가 천국이지 무엇 다른 것이 있겠냐 말이야. 회개를 안했다는 증거야. 모두 문제가 있고 얽히고설키고 그것 모두 문제가 있는 것은 회개를 안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못 만났다는 증거이고 일편단심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는 증거에요. 나를 부르며 나에게 와서 빌기만 하여라. 그렇게 하면 들어주리라. 마침내 너희는 일편단심으로 나를 찾게 되리라. 그렇게 나를 찾으면 내가 만나 주리라. 똑똑히 일러둔다. 너희는 나를 만날 것이며 나는 너희를 고국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너희는 나에게 쫓겨 세계만방에 포로가 되었어요. 각국에 잡혀가 버렸어, 포로로 끌려갔지만 나는 너희를 거기에서 어디에서 포로로 끌려간 나라에서 회개하면 뉘우치면 거기에서 모아들인다. 여러 나라로 쫓아버렸는데 거기에서 모아들인다고 모아들여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건 한국 사람이 어느 나라에 제일 많이 갔어요? 일본인가요? 미국인가요? 나는 모르겠네. 하여간 미국도 상당히 많이 갔다고, 그런데 거기에서 회개하면 도로 싹 돌아오지 않겠어요? 그러나 몸이 그 말 아니에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그렇게 돌아온다고 지금 이스라엘에서 하지만 지금 그대로면 싸움만 계속하지 않아요? 우리 영혼의 나라이지, 영적 나라이지 육체 땅에 있는 나라 아니에요.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은 세상이지만 세상이 아니라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정의와 평화와 기쁨이다. 하늘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것이 아니고 너희 안에 있다. 우리 마음속에 있다. 너희 마음속에 있다. 심중천국이란 말이야. 땅에다가 하늘나라 나라이 임하옵소서. 하니까 땅에 하늘나라 자기 안에 하늘나라를 이룬 사람은 그냥 땅에가 하늘나라에요. 그런 데가 성경에 어디가 있어요? 에베소 2장 5절 6절이요. 제가 봅니다. 잘못을 저지르고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렇듯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셔서 하늘에서도 한 자리에 앉게 해 주셨습니다. 주셨습니다. 앞으로 미래사가 나이에요. 벌써 과거사로 되어있어요. 하늘에 하늘나라에서 한자리에 앉혔다. 그러니까 지금 하늘나라를 이룬 사람은 땅에서도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 그거야. 하늘나라에서 살고 있어요. 미리 영원한 하늘나라도 가겠지만 지금 이대로 계속이야. 계속 몸만 갈릴 때가 있을 뿐이지 마음에는 계속이다. 하늘나라 땅에서 자기 안에서 지옥도 있고 연옥도 있고 천국이 있어요. 무엇이냐? 지옥은 믿지 않는 마음이 지옥이야. 지옥살이 항상 죽겠다. 죽겠다. 그렇지요? 항상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이 지옥이란 말이에요. 그러면 인제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해서 모셔 들여서 믿게 되면 자기는 없으니까 그리스도와 일단 한번 연옥 생활을 한다. 연옥이란 무엇이냐? 단련, 지옥을 벗어나는 단련 죄를 떠나는 훈련, 그것이 떠나진 만큼 죄는 자기가 지으니까 죄가 없어 진만큼 천국이 가까웠다고 예수께서 너는 하늘나라가 멀지않다. 가까워졌다. 어떤 사람보고 그랬어요?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제일 되는 계명이라고, 아 그쯤 알았으면 가까웠다. 아직 하늘나라는 아니지만 이루어지지는 않았어도 가까웠다. 그쯤 마음을 다하고 몸까지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나선 사람은 가까워져 자꾸 단련이 된 만큼 자기가 부정이 된 만큼 겉 사람이 부패된 만큼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져, 그것이 하늘나라에요. 죽은 뒤에 하늘나라 간다고만 생각하고 멋대로 살아버리면 그것 아니에요? 그것은 복음이 아니에요.
소망은 하나 더 보지요. 예레미야 31장 16절 17절 봅니다. 저들이 적국에서 돌아오리라. 원수의 나라에서 돌아온다. 회개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밝은 앞날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분명히 말한다. 너희 자식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리라. 그랬어요. 이것은 소망이라는 말은 없지만 그냥 읽었으니까 한번 이사야 57장 15절이에요. 여기는 14절서부터 되어있네요. 위로의 약속, 또 말씀하신다. 길을 훤히 닦고 또 닦아라. 내 백성이 갈 길에서 걸림돌을 치워버려라. 우리 지금 신앙으로 앞으로 전진 해 나아갈 길이 걸림돌이 많아요. 그 무엇일까요? 제일 큰 돌이 무엇일까요? 자기지요? 자기, 지극히 높으신 이 보좌에 영원히 앉아 계시는 이 거룩하신 분이라 불리는 이께서 말씀 하신다. 나는 높고 거룩한 보좌에 앉아 있으면서도 하나님은 아주 높고 거룩한 보좌에 앉아 계시면서도 누구하고 같이 살기를 좋아하시냐? 얻어맞은 사람, 얻어맞아 용기를 잃은 사람들하고 함께 살기를 원해요. 여기 아마 별로 얻어맞은 사람, 더러 육이오 때 아마 김 장로님 많이 맞았다고 합니다만 그러니까 돌아오는지도 모르지요. 얻어맞아, 애매히 얻어맞았단 말이야. 잘못해서 맞을 것이야 분명히 맞아야지요. 그렇지만 잘했는데 맞아, 얻어맞아, 용기를 잃은 사람들과 함께 살며 잃은 용기를 되살려 준다. 잃은 용기는 그때 그 잃어버린 용기는 잃어버렸지만 다시 생기는 용기는 새것이지요. 새것 잃은 용기를 되살려주고 상한 마음을 아물게 해주리라. 내가 언제까지나 따지기만 하랴, 조금 장로교에서는 따지기도 했지만 노여워하기도 하시고 매도 때리기도 하셨지만 그러니까 예수님에게다가 마지막으로 매 때려버리지 않았어요? 내가 언제까지나 따지기만 하랴. 항상 노여워하기만 하랴, 사람은 나에게서 용기를 얻고 나에게서 생명의 숨길을 받는다. 그들이 너무 못되게 욕심을 부림으로 나는 성이 났다. 화가 나서 그들을 치고 얼굴을 돌렸다. 치기는 쳤지만 내가 더 아프다. 그랬을 거란 말이야. 그리고 배신하고 제멋대로 가버릴 때 그래도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사랑이란 말이야. 나는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눈여겨보았다. 오늘 지금 멀리 멀리 사람 눈도 피해서 간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눈은 못 속인단 말이야. 다 보았다. 내가 그들의 병을 고쳐주며 위로하고 한껏 격려해주리라. 슬피 울던 입술에서 19절입니다. 아까 얻어맞고 말이야. 슬피 울던 입술에서 이런 찬미가가 터져 나오리라. 이런 찬미가 터져 나오게 하리라. 태평천하일세. 태평천하일세. 멀리도 가까이도 태평천하일세. 야훼께서 약속해 주셨다. 내가 너를 고쳐주마. 그만치 희망에 대해서 보고 신약에는 많이 있지만 시간이 없으니까 이것만 책을 읽다가 성경을 보니까 시간이 다 가버리고 이 두 가지 태도의 중간에 우리가 취해야할 유일하고도 현명한 진로, 앞으로 진행할 길이 있다. 그러면 두 가지 길이 무엇이 있지요? 여러분이 봤지만 회의주의 염세주의 또 꿈도 없는 낙관주의, 꿈은 가져야해요. 회의주의가 되었던지 염세주의가 되었던지 꿈은 가져야 될 텐데 꿈까지 없어져 버렸어요. 희망이 없어져 버렸어요. 우리는 희망을 갖은 만큼 힘 있게 사는 겁니다. 다른 것 조금 다 부족해도 좋아요. 그렇지만 약속이 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 내가 약속을 지킨다. 지키며 간다. 부정한데서 나오라. 회개하라 말이야. 약속을 지키는 것은 회개하는 겁니다. 회개, 그래 이 두 가지 태도 중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유일하고도 현명한 진로가 있다. 그것은 예수가 성전에서, 이것은 성경 안 봤습니다만 삼일간이나 행방불명이 되었을 때 마리아가 취한 길이다.
우리도 그 길을 통과해야 한단 말이에요. 거기 한번 봅시다. 누가복음 2장이지요. 누가복음 2장 11절 12절, 제가 보고 갑니다. 오늘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다윗의 고을에 나셨다. 그분은 바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시다. 그 구주가 말구유에 났단 말이에요. 구유에 소 우릿간에 구유에 났어요. 너희는 갓난아이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것을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바로 그분을 알아보는 표이다. 라고 말했다. 갓난아이가 포대기에 싸여가지고 방도 아니고 짐승 우릿간에 비가 철철 새는 소도 가난한 집에 우릿간에 태어나서 부자일 때는 소도 키웠는데 가난하니까 소도 못 키워서 지붕이 다 새고 말이야. 아주 보잘 것 없는 곳이란 말이야. 차마 곧 뜯으려다가 놔뒀어. 뜯을 사람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놔뒀는데 그런데다가 형편없이 가난한 얼마나 형편없이 가난했던지 여관에도 못 들어가고 돈이 있어야지요. 그러니까 애기는 낳아야겠고 다급하니까 거기에다 낳았단 말이야. 그 아기가 구주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보냐 말이야. 그것이 구주라는 것을 알아보는 표라는 거예요. 표 그런데 이것은 감정적인 인간의 타락 성을 지닌 인간으로서 그 구주라고 알아볼 사람이 있겠습니까? 성령이 통하지 않고는 성령이 가르쳐주지 않고는 어떻게 알겠냐 말이야.
그것도 문제인데 여기는 책에는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아니고 예수의 수난 소년시절 거기 41절서부터 나오는데 봅시다. 해마다 유월절 과월절이 되면 예수의 부모는 명절을 지내려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는데 예수가 12살이 되던 해에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명절의 기간이 다 끝나 집으로 돌아올 때에 어린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런 줄도 몰랐어요. 그런 줄도 몰랐다. 따라오는 줄로만 알았어요. 그때는 좀 하루길인데 말이야. 아침부터 저물도록 나서서 가야하는 하룻길인데 그렇게 오도록 어째 뒤를 안돌아 보는가 모르겠어요. 그래서 집에 다 오고 보니까 안 따라 왔어. 그런 줄도 모르고 그의 부모는 아들이 일행 중에 끼어있으려니 하고 하룻길을 갔다. 그제야 생각이 나서 친척들과 친지를 가운데서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음으로 줄 곳 찾아 헤매면서 예루살렘까지 되돌아갔어요. 그러니까 사흘이 꼬박 걸렸단 말이야. 하룻길 길은 하루길인데 사방 찾자니까 친척집 친척이란 데는 갈만한데는 다 찾아 가봤어. 또 어디 아는 집에는 다 찾아갔다. 그러니까 사흘이나 걸렸어요. 줄 곳 찾아 헤매면서 예루살렘까지 되돌아갔다. 사흘 만에 사흘 만에 그랬어요. 이 책에는 나흘 만에 그랬어요. 사흘 만에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거기서 예수는 학자들과 한자리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는 중이었다. 그러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그 율법학자들에게 무엇을 배울 것 있어서 묻겠어요? 하나님이신데 무엇을 묻겠어요? 그런데 묻는 것은 어쩌자는 거예요? 가르쳐 주자는 거예요. 너희 모르지 않느냐 말이야. 그러니까 묻는 것은 너희가 얼마나 아는가? 너희 스스로 알아봐라. 모른다. 그러니까 진리의 문답을 했다. 진리와 조금 그러니까 12살 쟁이 인데 그런 신학자들하고 율법학자들하고 대화를 한단 말이야. 대화, 주고받고 이건 하나님이야. 그리고 그래도 하나님인줄을 몰랐을 거예요. 아 보통 어찌 이렇게 훌륭할까? 우리들도 모르는 말씀을 하시고 그리고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지능과 대답하는 품에 경탄했어요. 놀랬어요. 천재라, 바로 거의 하나님 가깝다 말이야. 경탄하고 있었다. 그 부모는 그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왜 놀래요? 기뻐서 놀랬지요? 기뻐서 놀랬지요? 너무 기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고 그래가지고 얼마나 너를 찾느라 고생했느냐 말이야. 어머니는 예수를 보고 얘야, 얘야 놀래기는 놀랬는데 얘야, 왜가 나와요? 왜 우리 일본사람들을 조금 나쁘게 말하면 무엇이라고 합니까? 왜놈 난쟁이 키가 작다. 지금은 키가 커요. 왜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 나와 네 아버지를 애태우느냐? 너를 찾느라고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하고 말했다. 어째 12살쯤 되면 그만큼 철이 들었어야 할 텐데 부모가 너를 안 찾을 줄 알았냐? 어떤 부모가 자기 자식을 잃어버리고 안 찾을 부모가 어디 있겠냐 말이야. 왜 그렇게 철이 없냐? 나무란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도 배웠는가? 또 왜? 그러자 예수는 왜? 왜? 내일 낮에는 해방 기념일이라고요. 왜 사람들이 왜 사람들이 36년 붙들고 잘 가르쳤지요. 다 좋은 일 했어요. 예수는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나는 내 아버지 집에 아버지 집에, 또 그전 성경 같으면 천주교서 보는 성경 같으면 아버지 집에 일이 있는 곳에 아버지 일이 있는 내 집에 우리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것을 어찌 모르십니까? 손으로 가슴을 칠일이야. 답답해요. 서로 답답해. 그러면 우리 조금 안 됐지만 누가 잘잘못을 누가 잘못했는가? 한번 봅시다. 누가 잘 못했습니까? 누가 잘못했어요? 인륜상으로 보면 예수님이 잘못했어요. 천륜으로 보면 어머니가 아직 미달이에요. 몰라. 그러면 우리는 인륜 따라 가는 것 아닙니다. 천륜 따라 가야지요. 믿는 사람은 예수님만 관계를 해야지 우리들 고기 덩어리하고 짝해서는 안 되어요. 인간끼리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되어요. 천륜은 사명과 관련을 맺는 것 아닙니까? 인륜은 사람끼리지요. 부모형제 모두 인륜 아닙니까? 인륜도덕 인륜도덕을 잘 지켜서 구원이 되요. 예수님의 교훈은 정반대 아니에요? 다 버려라. 다 버려, 설교가 인륜 도덕설 그러면 성경 안 봐도 도덕성 더 좋은 것 쌓였는데 성경은 도덕성이 아니에요. 하늘나라 천국 복음이에요. 땅의 일이 아니에요. 하늘나라 기쁜 소식이에요. 죄인만이 죄인일수록 희망을 갖은 복음이에요. 죄를 많이 깨달은 영혼일수록 큰 희망을 주는 복음이에요. 의인은 상관없어요. 세상에 똑똑하고 잘사는 사람들은 성경 상관없어요. 필요 없어요. 예수하고는 상관없는 거예요.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에요. 암만 기독교 간판 정통이라고 붙였다 하더라도 그렇더라도 복음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50절, 그러나 부모는 아들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어요. 그만큼 미흡해요. 몰라요. 그러니까 우리가 모른다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마리아의 태도를 취한다. 이것이 기회다. 염세주의나 회의주의나 낙관주의나 다 아니지만 거기 중간에 취할 길이 무엇이냐? 마음에 두는 것. 51절이지요, 예수는 부모를 따라나섰음으로 그랬지만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것을 몰랐습니까? 그래버렸으면 그러면 안 따라오셔야 되지 않아요? 그래 인제 30년 더 살고 33년까지 할 일이 있거든요. 그런데 12살 밖에 안 되니까 미리 나중에 맞출 일까지 미리 다 이야기 하신 것이고 또 예수의 마음은 항상 하나님의 일이 있는 데만 계시는 것이지 그래 우리 믿는 사람도 항상 하나님의 뜻에 마음을 둬야지 내 생각 내 뜻 가져서는 안 된단 말이야. 믿는 사람이라면 그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의 뜻을 자기 뜻으로 받아들여야지, 자기 뜻은 버리고, 갈멜 산길이라는 십자가의 요한께서 그렇게 설명했어. 내가 그대로 기억 안 되도 변화해요. 변화 여기에 나와요 변화 변(變)자는 있던 것이 없어지는 것이 변이고 화(化) 는 이제 있어 있던 것이 없어져 버렸으니까 무엇이 있는가? 있던 것을 자기 뜻이 있던 것은 없어지고 인제 무엇이 있냐? 화는 무엇이냐? 하나님의 뜻 자기 뜻은 없어지고 하나님의 뜻이 자기 뜻이야. 그래가지고 하나님으로 변화된다는 거야. 그리스도로 변화된다는 거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바로 그리스도가 된다고,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위에 실천한다고 몸으로 사실 때 실천 한다고, 변화 예수는 부모를 따라 나사렛으로 돌아와 부모에게 순종하며 살았다. 순종하며 살았다. 아직 시간 있으니까 순종해 따라오니까 52절에 그 어머니는 51절에 있고 만요. 그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에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이것이에요. 이 점이에요. 지금 확실히 해결이 안 되도 이해가 안 되어도 신앙을 품고 인제 약속대로 내가 그 과정을 치러 가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그 확신을 믿어야지요.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 믿음과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간직하였다. 이 길이에요. 예수가 성전에서 삼일간이나 행방불명되었을 때에 마리아가 취한 길이다. 우리가 마음에 간직한 그것도 아직 확실히는 이해 안 된 거예요. 그러니까 언제 승천하실지 그것은 시간은 모르지만 사도요한의 집으로 가서 사도 요한의 집에서 마쳤지 않습니까? 예수의 십자가 진 뒤에 어머니를 사도요한에게 사도들을 대표로 네 어머니다. 이것은 당신의 아들이다. 당신은 아들 노릇은 다했으니까 그러니까 사도요한에게 그러면 믿는 사람 대표에요. 믿어도 참으로 믿는 사람은 저같이 거짓으로 믿는 것 아니고 참으로 믿는 사람은 내 어머니가 되어요. 마리아에게는 예수가 왜 그렇게 했는지는 잘 알지 못했지만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누구에게도 이것을 할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주는 누군가의 삶이다. 왜 자기 아들이 왜 그렇게 자신들을 애태웠는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삼일간이나 찾아 헤매다가 4일째 되던 날, 저는 그전에 이 책을 보기 전에는 이런 정도로는 생각했습니다. 삼일 만에 찾았다. 그러면 우리 성령으로 거듭난 연혼 부활이란 말이야. 부활을 체험하는 영혼에게 예수가 찾아진 것이다. 만난 것이다. 부활을 체험한 영혼 김 선생 같은 체험한 영혼은 만난 것이에요. 확실히 만나서 같이 사는 거란 말이에요. 3일이라는 것은 성경에 많이 있어요. 부활 의식과 무슨 경건한 모양 그것은 아무리 경건한 모양의 의식 예배를 드리고 그런 것이 말할 수 없어. 친지 신앙 동지들 막 모아서 토론하고 무엇 하고 무엇하고 해서 예수를 만나지는가? 아니에요. 개인 개인이 완전히 옛사람은 장사지내고 새 사람으로 부활하신 예수와 부활을 체험할 때 그때 예수와 같이 산다 그 말이에요. 그러면 3일 동안 계속 이유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3일 동안 계속될지 모르고 혹은 3년이 될지도 모른다. 3년이 되겠습니까? 또 제대로 된다면 3일 만에 되겠지요? 걱정 할 필요는 없다. 신앙생활이란 그런 것이다. 신앙생활 낙심해서는 안 돼. 신앙이란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지금 확실히 다 이해한 것 아니에요. 다 알았다고 할 수 없어요. 이해 한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것, 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이해, 어차피 나 같은 것이 뭐 알겠냐? 그러고 아주 이해 안하려고 해버린다고요. 하나님을 알고자 하면 알게 되어있는데도 알려고도 안 해. 애당초 뭐 나 같은 것이 예수 믿으면 천당 간다니까 예수 믿지 그러면 무엇 하는가? 예수 믿으면 좋은데 무엇 하는가? 자기 욕심대로 다 살면서 그것 하지 말고 믿어야 할 텐데 하면서 믿는다고 하는 거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이란 이해하려는 것이다. 신앙이란 알았다. 그것은 이런 의미이다. 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하는 거야. 아 깊은 뜻이 있다고 하는데 내 머리로는 안 되겠다. 더 좀 더 밝아지고 더 좀 더 회개를 철저히 하고 해야지 이 정도로는 안 되겠다. 안 된다고 해서 진리가 아니냐? 진리니까 내 머리로는 모르지요. 진리니까 성경이 왜 성경이냐? 내가 모르니까 성경이야. 내가 알면 성경이겠는가? 내 책이지, 내가 만들어 놓은 것이지, 모르니까 성경이다. 나 같은 것이 모르니까 성경이다. 성령이 이끌려서 썼으니까 성령이라야 알아지지, 내 생각으로는 모릅니다. 그것에는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 한다고 자기에게 타이르는 것이다. 스스로 어떠한 의미가 있느냐에 대해서 우리는 성급한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 저는 모르니까 스스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고 말도 해보고 하는데 참으로 깨달은 사람은 말 안 해요. 그러니까 이 선생은 깨달은 분이라고 믿기는 하지 깨달았는지 확실히는 몰라도 깨달은 분이다. 그렇게 맹목적으로 그렇게는 했어요. 그러니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만 그런 뜻은 있겠지, 그래 나는 그분에 대해 다른 오해는 안 해. 아무리 내가 이해가 안 돼. 안 되어도 뜻이 있지만 내가 미련해서 못 본 것이고 내 눈이 어둡지, 왜 그랬을까? 그렇지는 않아요. 누구든지 한번 그 인격을 믿었으면 지금 아닌 듯이 나타나도 너는 하지 말라는 그런 것 내 교훈이지 그 사람이 왜 그럴까 그것 아니에요. 그거 믿은 것 아니에요. 인격으로 인격적으로 교제라는 것 그것 아니에요. 아무리 다른 사람이 그 사람 잘못이라고 도적놈이라고 욕해도 그분 참 애매한 소리다. 상 받겠다. 그래 이해하고 믿어주는 거야. 신앙적인 인격적인 교제라는 것은 무조건 믿어주는 거야. 또 다른 사람에게도 그래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누구든지 자기가 예수로 본답니다. 그거 예수 아니겠소? 다 지체니까 왜 불평하고 싸우느냐? 지체로 모르니까 그렇지 율법은 항상 너 나 다투거든, 갈라지고 그렇지만 복음은 하나니까 다 한 몸이야. 교파도 없어, 국경도 없다. 다 한 몸 예수의 지체니까 한 몸이야. 나만 예수의 지체인가 아니다. 제일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예수의 지체이다. 어제 보니까 제일 모두 미쳤다고 비난하고 지금도 신용안하고 그렇지만 참 천사다. 예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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