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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1)<기독교와 불교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 류기종 | rkchg@hanmail.net 입력 : 2010년 04월 28일 (수) 17:59:29 최종편집 : 2010년 05월 04일 (화) 13:42:15 [조회수 : 6492]
* 류기종 목사가 발표한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6편을 소개한다. 성경, 특히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들을 지난 이천년에 걸쳐서 가장 깊이 사색하고 묵상(체험)한 영적 큰 스승들의 통찰과 이해에 의거해서 살핀 글이다. Rudolf Otto, A. N. Whitehead, Paul Tillich, D. T, Suzuki , Thomas Merton, 다석 류영모를 조명한다.
<기독교와 불교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
1. 한국 사회의 종교적 상황과 특수성 한국 사회는 종교사적으로 볼 때, 매우 특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일찍부터 동양의 삼대 종교 즉 불교 도교 유교가 들어와 한국인의 심성을 지배했을뿐 아니라, 한국의 고유문화를 창조했으며, 특히 불교와 유교는 한국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유교와 불교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가까운 이웃 나라인 중국을 통해서 유입되기 시작했으나, 특별히 불교가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삼국시대부터 였으며, 통일 실라 시대를 거처 고려시대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15세기에 이르러 고려조의 붕괴와 함께 이씨 왕조의 등장으로 한국 사회는 불교의 영향이 뒤로 밀려나고 유교가 전 사회의 지배적 종교로 등장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한국의 근대사회는 유교중심의 문화권을 형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17세기 이후에 서구문화가 동양으로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기독교가 중국을 경유하여 한국 사회에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18세기에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그리고 19세기에는 개신교가 한국에 들어와, 불과 1, 2백년 동안에, 기독교가 한국의 주요 종교 중의 하나로 성장하게 되었으며, 20세기 이후에는 불교와 함께 한국사회의 2대 종교로 성장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인구통계에 따르면, 21세기에 들어선 오늘의 한국인의 종교인 분포 중 가장 특이한 점은 지구상의 여러 종교들 가운데 가장 심오한 종교 사상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동서양에 걸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쳐온 두 종교 즉 불교와 기독교가 대등한 분포의 종교로 자리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불교인 수와 기독교인(신 구교 합한)의 수가 각각 일천만 명에서 천오백만 명 선에 달하고 있다. 이 둘을 합하면 2천5백만 에서 3천만 명으로 한국인 전체인구의 과반 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아마도 이 지구상에서 기독교인과 불교도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또한 두 종교인의 수가 천만 명을 넘어서 대등한 수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외에 어느 나라에도 없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종교사적으로나 인류 문화사적으로 매주 주요한 사실로 보여진다. 이 사실은 다른 말로 하면, 한국인의 두 사람 중 하나는 기독교인이거나 불교도란 사실을 의미하며, 따라서 한국인들은 길에서나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즉 사회 전 분야에서 두 종교인들 즉 불교도들과 기독교인들은 수시로 만나고 관계를 가지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의 기독교인들과 불교들은 이렇게 매일 만나고 관계를 가지고 살고 있음에도 불고하고, 그들 사이에는 종교라는 벽이 가로 놓여있어서 그들 사이에 깊은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점이 오늘의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임과 동시에 이것이 오늘의 한국의 사회적 갈등의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들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요인들을 간추리면 (1)빈부의 갈등 즉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와의 갈등, (2)출신 지역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 그리고 (3)정치 이념적 갈등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모든 사회적 갈등의 가장 저변에 깔려 있는 요인은 바로 다름 아닌 종교적 신념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 즉 종교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종교적 신념이 우리 인간 생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사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예로, 불교인 시어머니와 기독교인 며느리, 기독교인 직장 상사와 불교인 하급 직원, 불교인 선생과 기독교인 학생, 그리고 한 직장 안에서 종교가 다른 개인 혹은 구릅 간의 불편한 관계 등을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는 한 사회 안에서의 종교적 신념의 차이에서 오는 사람들 간의 이러한 간격과 갈등들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가 오늘의 우리 한국 사회의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회적 갈등의 중요 원인이 되는 종교인들 간의 대립과 갈등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대화의 채널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고 있으며, 특히 한국 사회 전체 인구의 과반을 차지하는 불교인들과 기독교인들 사이의 대화의 채널이나 소통의 길이 꽉 막혀 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이들 두 종교는 그들 두 종교 구성원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의 보수적 성향으로 인하여, 매우 배타적 성향을 띠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자기 밖의 다른 종교에 대해서 적대적 태도마저 취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이러한 종교적 신념의 차이에서 오는 사회적 갈등과 대립들을 다른 문화권에서도 흔이 보게 된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종교적 신념의 차이에서 오는 충돌로 인해서 집단적 분쟁 즉 전쟁이나 종족 살육과 같은 극단적 행위들까지 일어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런 행위들은 특히 종교적 신념의 대립이 종족이나 민족적 대립과 결부되었을 때 더욱 격열해 지며 때로는 참혹한 결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한국은 고래로 세계의 큰 종교들 즉 불교 유교 도교 그리고 근대에 들어와서 기독교 그리고 또한 한국의 고유 종교들인 천도교 증산교 원불교 등이 함께 어울려 있으면서도, 종교적 신념들로 인한 극열한 대립이나 집단적 투쟁 같은 것이 없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특히 현대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가량을 점유하는 기독교인들과 불교인들 간의 내면적 갈등과 정신적 관계의 단절의 심각성이다. 즉 한 사회 안에서 자주 만나는 사람들 간에 종교적 신념의 차이 때문에 정상적인 인간관계가 형성되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깊은 골 즉 간격이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우리 한국 사회 안에 잠재해 있는 보이지 않는 불행한 요소이며 또한 정신적 고통의 요인인 것이다. 특히 불교와 기독교의 경우 한 가족 공동체 안에서 종교가 다름으로 인해서 더없이 아름답고 행복해야 할 인간관계가 파괴되고 그로 인해서 가족 구성원들이 정신적 고통과 불행을 겪게 된다면 그보다 더 큰 비극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종교인들 간의 갈등 특히 불교인들과 기독교인들 간의 종교적 신념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기독교와 불교 사이에 대화의 통로가 닫혀 있으며, 그로 인해서 두 종교 간에 상호 이해의 길이 막혀있으므로 해서 상대방의 종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의 선입견에 의한 지극히 피상적 이해에 머물러 있거나 아니면 자신의 종교에 대해 무조건 적대적 종교로 이해하고 있는데 기인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면 기독교인들은 불교를 전적으로 무신론 종교로 알고 있으며 따라서 불교는 기독교와 근본적으로 반대되는 종교로 생각하고 있으며, 또한 불교는 기독교를 인간의 감정을 지닌 신을 믿는 유치한 유신론 신관의 종교로 아니면 기복적 신앙의 종교로 곡해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이런 현상들은 두 종교 간에 상호이해의 기회나 대화의 통로가 전적으로 막혀 있는 데서 오는 필연적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필자가 기독교와 불교 간의 대화에 관심을 갖게 된 직접적 동기는 필자가 1970년대 중반에 미국 뉴저지 주에 있는 두루 대학교 대학원에서 종교철학 과목을 공부하는 중에 대승불교의 창시자이며 동시에 이론 체계 수립자인 1세기 말의 인도의 대 사상가(철학자)인 나가주나(Nagarjuna, 한국명, 용수)의 “무”(無, Emptiness) 사상을 접하고서 이다. 담당 교수로가 필자에게 한 책을 주면서 그 책의 내용을 발표하라는 것이었다. 그 때 필자가 받은 책은 미국의 저명한 종교철학자 프레드릭 스트랭(Frederick Streng)이 풀이한 나가주나의 주저 <중도론/中道論>의 해설서였는데, 그 책의 내용은 주로 대승불교의 중심사상인 공(무)사상과 연기론(緣起論) 그리고 그것의 종교적 역할과 의미에 관한 것이었다. 나가주나는 그의 공(空) 사상을 설명함에 있어 불타가 설한 공사상의 핵심인 연기론에 기초해서 그것을 체계적으로 잘 설명해 준 까닭으로 해서 제 2의 불타로 불려지기도 한다.
필자는 그 책을 접하고 큰 충격과 감동을 느꼈다. 왜냐하면 필자는 그 때 까지 불교의 중심사상에 대해서 체계적인 지식을 갖지 못하였었으며, 따라서 기독교와 대화할만한 확실한 근거를 찾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책을 통해서 불교 특히 대승불교의 중심 사상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으며, 따리서 불교에서 말하는 공(무) 사상이 무신론이나 부정주의 철학 원리가 아니라 서양철학 혹은 기독교 신학에서 말하는 “궁극적 실재”(Ultimate Reality)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런 점에서 불교와 기독교는 앞으로 깊은 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깨달음은 그후 현대의 많은 대승불교 학자들의 나가주나 연구서들을 접하면서 한 층 더 큰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이 글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기독교와 대비되는 불교의 사상은 불교의 경전들에 의존하기 보다는 바로 이 대승불교의 중심사상(Central Philosophy)에 해당하는 나가주나(Nagarjuna)의 중도론에 나타나 있는 공사상과 연기론에 주로 의존하고 있음을 미리 말해 두고자 한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4) -폴 틸리히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3) - A. N. Whitehead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2) - Rudolf Otto 한국신학 소고(溯考): 한국신학의 과거,
=====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2) - Rudolf Otto 류기종 | rkchg@hanmail.net
입력 : 2010년 05월 10일 (월) 16:00:35 최종편집 : 2010년 05월 11일 (화) 20:11:05 [조회수 : 2804]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2)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의 선각자들
20세기에 들어와서 우리 지구촌 인류가 경험한 중대한 사건들은 먼저 1, 2차에 걸친 세계대전이었으며, 그 후에는 공산주의 국가들의 등장과 함께 생겨난 이념적 대립에 의한 세계질서의 극한적 대립과 거기에서 파생한 긴장과 전쟁이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서 전 인류는 큰 고통을 경험했으며, 그 직접적 피해는 이 지구상 어느 민족이나 국가들 보다 더 우리 한국국민들이 가장 심각하게 경험한 바이였으며, 아직도 그 상처의 후유증이 남아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20세기의 대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는 의외로 20세기에 지구상에 일어난 가장 중대한 사건으로서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의 시작의 사건을 지목했다. 그는 20세기에 들어서서 싹트기 시작한 기독교와 불교와의 접촉과 대화의 시작을 이 지구상(역사상)에 발생한 어느 사건들 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으로 본 것이다. 그 이유는 전 세계 인구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기하고 있는 두 종교 즉 동서양을 대표하며 또한 동서 문화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종교 그리고 가장 심오한 인간의 도덕적 가치체계와 구원의 이론체계를 가지고 있는 두 종교가, 지난 2천년 동안 서로 담을 높이 쌓고 문을 굳게 잠근 채 남남으 로 지내대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굳게 닫친 문을 열고 서로 대화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이것은 인류 역사의 정신적(내면적) 의미의 중대성을 간파한 토인비 박사의 예리한 판단과 통찰력에서 나온 결과로 사료된다. 뿐만 아니라 토인비 박사는 그의 <세계 종교 속의 기독교>란 소책자에서 인류의 평화 증진을 위해서는 기독교와 세계종교들과의 긴밀한 대화의 필요성과 함께 기독교의 오만(교만)의 포기와 겸손의 필요성을 강력히 피력하고 있다. 토인비 박사의 지적대로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기독교와 불교는 비록 소수에 의해서이긴 하지만 대화가 논의되기 시작했으며, 이것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동서양의 종교 사상가들의 주 관심사가 되다 시피 하였고, 현대에 와서는 주류 신학자들의 주 관심사의 하나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종교사적으로나 문화사적으로 볼 때 매우 중대한 의미가 있으며, 특히 우리 한국 사회에 있어서는 심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동안 꽉 막혀있던 우리 한국 사회의 두 주류 종교인 불교와 기독교 사이에 상호이해와 소통의 길이 열리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음으로 지난 20세기 동안에 불교와 기독교의 간의 대화의 물꼬를 터준 선각자들은 누구인가 살펴보기로 한다.
(1) 루돌프 옷토(Rudolf Otto, 1869-1937) ▲ 루돌프 오토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기독교와 불교와의 대화의 가능성을 암시한 최초의 인물은 아마도 1917년에 <성스러움의 의미, Das Heilige) 란 책을 저술한 독일의 신학자며 종교철학자인 루돌프 옷토 일 것이다. 이 책은 현재 종교학이나 종교철학 분야에서 하나의 고전이 되다 시피 하였다. 옷토가 기독교 사상을 넘어서 다른 종교 특히 동양의 종교 사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가 1910년에서 1911년까지의 2년에 걸친 긴 여행을 통해서라고 보여진다. 그는 이 기간 동안에 북아푸리카와 이집트, 팔레스타인을 거쳐서 인도와 중국과 일본을 방문하였으며, 15년 후인 1925년과 1927-1928년 사이에 다시 중동과 인도를 방문하여 동양의 종교전통에 대한 그의 지식을 한층 심화시켰다.
거룩함의 경험: 옷토는 기독교의 성서가 말하는 종교적 진리의 핵심은 우주의 근원적 실재인 하나님 곧 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중심한 것인데, 이 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은 우리 인간의 이성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신비적 차원의 것으로 보았으며, 그것을 그는 “거룩함에 대한 경험”, 혹은 "초월적 실재"(numen/the numinous)에 대한 경험으로 보았다. 그 한 예로서,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하나님의 임재 체험을 할 때, “네가 선 땅은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으라”는 음성을 들은 것은 초월적 실재인 하나님의 임재경험을 들어내는 것으로 본 것이다. 따라서 이 때 모세에게 준 신의 명칭 즉 “스스로 존재하는 자”란 뜻을 지닌 “야훼” 혹은 “여호와”라는 신의 명칭은 이 세상 만물과 전적으로 구별되는 신비 지극한 초월적 실재라는 뜻을 암시한다고 옷토는 이해하고 있다. 이 신비 지극한 존재로서의 신을 기독교 신비가들이나 신학자들은 이 세상 만물 즉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들과 전적으로 구별되는 존재라고 해서 “전적 타자”(the Wholly Other)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신비주의에 대한 새로운 이해: 루돌푸 옷토가 현대의 기독교계와 종교계에 공헌한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신비주의"(Mysticism)의 중요성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제공한 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옷토는 유한자인 우리 인간이 초월자/무한자인 신의 임재를 경험할 때, 두 가지 현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1)극치의 신비에 대한 “두렵고 떨리는 마음”(tremendum majestorum)과 (2)감당하기 어려울 만한 “매혹적인 황홀한 마음”(tremendum fasinosum)이다. 이러한 경험이나 느낌과 깨달음은 신비주의의 특색을 잘 들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옷토는 종교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가 바로 신비주의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으며, 따라서 신비주의는 기독교 종교의 가장 본질적인 측면임을 잘 표현해 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신비주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비주의에서 말하는 “저 넘어"(beyond) 라는 것도 역시 모든 종교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비합리적 요소가 극도의 긴장상태를 이룬 것을 의미한다. 신비주의는 “전혀 다른 것”으로서의 누멘적 대상을 우리의 일상적 경험과 극단적으로 대립시키되, 단순히 자연적이고 세상적인 모든 것과의 대립으로 만족하지 않고 급기야는 “존재 자체(Being itself)”와 모든 “존재하는” 것 과 대립시킨다. 결국 신비주의는 그것을 무(無)라고 부른다. 여기서 무라는 것은 단지 어떤 것으로도 말할 수 없다는 뜻할 뿐 아니라 존재하고 있는, 혹은 생각될 수 있는 모든 것과 단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이질적이며 반대적이라는 뜻이다.....우리 서양의 신비주의자들이 말하는 독특한 “무”(nihil)에 대한 고찰은 불교의 신비주의자들이 말하는 “공”(空)한 것 혹은 “공”(Sunyata)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타당하다. 신비주의자들이 사용하는 신비적 언어나 지시어(ideogram, 상징적 표현)에 대하여 아무런 내적 감정도 느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불교적 신비주의자의 "공"과 "공화"에 대한 추구는 일종의 어리석음으로 보일 것이다....그러나 사실은 동양의 “공”(무)은 서양의 "없음"(nothing)과 마찬가지로 “전혀 다른 것”(the wholly other)에 대한 누멘적 지시어인 것이다. 공이란 “기이한 것”(mirum) 그 자체, 그러면서도 동시에 우리가 언급하게 될 "역설"(paradox)과 “이율 배반적인 것으로 까지 고조되는 것이다.(거룩함의 의미, 길희성 역, 분도, 1987, pp.71-72).
위의 글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점은 옷토가 불교의 “무“ 혹은 “공”의 개념을 서양이나 혹은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이 파악한 “전적 타자” 혹은 “이질적인 것”에 대한 신비적 방법에 의한 인식, 다시 말하면 궁극적 실재인 신에 대한 신비적 경험의 내용과 동일하게 보았다는 사실이다. 옷토의 이러한 생각은 매우 중요한 사실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이때까지 서구인들이나 기독교인들에게 너무도 이질적으로만 느껴지고 심지어는 일종의 허무주의 내지는 부정주의 종교철학 원리로만 인식되던 불교의 “공”사상을 새롭게 보았을 뿌 아니라, 기독교 신비가들이 경험하고 체득한 신(하나님) 체험의 내용과 동일한 차원의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옷토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의 첫 물고를 터 준 사람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3) - A. N. Whitehead 류기종 | rkchg@hanmail.net
입력 : 2010년 05월 16일 (일) [조회수 : 2721]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3) - 계속 - ▲ A. N. Whitehead
(2) 알프레드 화이트헤드(Alfred N. Whitehead, 1833-1947)
20세기 들어와서 기독교와 불교의 긴밀한 관계성과 상호이해의 필요성을 본격적으로 언급한 사람은 과정철학자 화이트헤드이다. 그는 런던 대학에서 하버드 대학으로 옮겨온 해인 1924년 2년 후인 1926년에 발표한 그의 종교론 <형성과정에 있는 종교>란 책에서, 불교와 기독교 두 종교의 특색과 함께 두 종교의 대화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1) 최고의 합리적 종교로서의 불교와 기독교 화이트헤드에 따르면, 이 세상에는 두 개의 주된 합리적 종교가 있는데, 이들은 곧 기독교와 불교이다. 즉 기독교와 불교는 이 세상의 모든 종교들 중에서 가장 발전된 우주관에 적합한 합리화의 과정에 진입한 종교들이다. 이 들 두 종교의 주변에는 경쟁적 종교들이 있었지만, 이 두 종교는 이념의 명료성, 시유의 일반성, 도덕적 품위, 존속의 능력, 그리고 세계로의 확대의 폭 등을 고려할 때, 이런 성질들을 골고루 구비한 점으로 해서 그들의 경쟁자들을 훨씬 능가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화이트헤드는 이들 두 종교를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서 판단한다면 현재 쇠퇘(퇴보)의 국면에 들어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 두 종교는 현재 세계에 미치는 과거의 위력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 두 종교의 특색: (1)화이트헤드에 따르면 기독교와 불교는 두 위대한 이물인 불타와 그리스도의 영적 체험에 기초한다. 그러나 불교는 인간의 구원의 도리를 인간과 우주 만물의 본질에 대한 형이상적 이해를 통해서 도달하려는 반면에 기독교는 인간의 삶과 역사 안에 활동하는 신에 대한 신앙을 통해서 달성하려고 한다. 그래서 화이트헤드는 불타는 인류에게 위대한 교리를 준 반면에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명을 주었다고 말한다. 아마도 이 표현이 불교와 기독교의 특색을 가장 잘 들어내는 것으로 사료된다. 따라서 불교는 다분히 혹은 본래적으로 철학적/형이상학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그래서 화이트헤드는 불교를 응용된 형이상학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사례라고 말하며, 따라서 불교가 종교를 탄생시키는 형이상학 즉 종교적 기능을 하는 형이상학/철학 원리인 반면 기독교는 항상 형이상학을 추구하는 종교 즉 인간의 구체적인 삶의 정항에서 시작해서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종교의 특색을 지녔다고 말한다.
(2)화이트헤드가 이해한 기독교와 불교의 또 하나의 특색(유사점과 차이점)은 악의 문제에 관해서이다. 기독교와 불교 둘 다 우리 인간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두 위대한 종교인 기독교와 불교는 이 중대한 악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즉 악의 극복의 방법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화이트헤드에 따르면 불교는 물질적 또는 감정적 경험의 세계의 본성 자체 안에 악이 본질적으로 존재한다고 본다. 따라서 그것을 깨닫게 하는 지혜는 그러한 경험의 방편이 되는 개체적 성격들로부터 “놓임”을 받도록 깨닫게 하며 또한 그렇게 삶을 살도록 유도한다.
기독교도 역시 악 혹은 악의 세력으로부터의 “놓임”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악의 문제에 있어서 불교보다 형이상학적인 관점으로는 덜 분명하지만, 반면에 더 구체적인 사실들을 담고 있다. 즉 기독교는 처음에는 악이 세계 전반에 내재한 것으로 말한다. 그러나 악은 개개인의 삶/사실 그 자체의 필연적 결과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개개인의 숭고한 이상의 실현과 선을 지향하는 삶을 통해서 즉 선으로서 악을 극복하려 한다고 본다. 따라서 화이트헤드는 악의 문제이 있어서 즉 악에 대한 이해와 그것의 극복의 방법에 있어서 두 종교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3. 두 종교의 퇴보의 원인과 대화의 필요: 화이트헤드는 기독교와 불교는 이 세상의 모든 종교들 중에서 가장 진보된/발전된 위대한 종교들이지만 현재의 상태는 그들의 발생 초기에 비해서 쇠퇴의 과정에 들어서 있다고 보고 있다. 두 종교의 쇠태/퇴보의 가장 중요한 원인을 두 종교의 폐쇠성 즉 두 종교가 각각 배타주의와 우월주의에 빠져서 상대방에게서 더 배우려 하지 않고 자기만족에 빠져 안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두 종교가 초기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두 종교가 문을 열고 대화하며 상대방에게서 배우려 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현대 사상에 있어서 결정적 영향을 끼친 기독교와 불교의 퇴보는 부분적으로는 이들 각 종교가 지나치게 상대방으로부터 피해 숨어버린 상태에 기인한다. 배움에 대한 자기 충족의 폐쇄성과 무지한 열광주의자들의 확신이 결합하여 각 종교를 자기 자신의 사유의 형식 속에 갇혀 있게 만들었다. 더 깊은 의미를 찾기 위한 상호간의 탐구와 고찰 대신에 그들은 자기만족과 메마른 상태로 머물러 온 것이다.(Whitehead, 종교론, 류기종 역, 제4장, 진리와 비판, p.111).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와 불교가 각각 자기 종교의 쇠퇴(퇴보)적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족에 머물러 있지 말고 보다 높은 단계로의 성숙을 위해서 자기 종교의 문을 열고 상대방에게서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두 종교 간의 긴밀한 상호 교류와 대화가 요청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화이트헤드는 두 종교 간의 관계를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 즉 서로에게서 배워야 하는 상보의 관계로 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와 상호교류는 양 종교를 위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닐 뿐 아니라 하나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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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불교의 만남(4) -폴 틸리히 류기종 | rkchg@hanmail.net
입력 : 2010년 05월 23일 [조회수 : 3899]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3)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
▲ 폴 틸리히
20세기에 들어서서 기독교 신학자로서 기독교와 불교와의 대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태도를 나타낸 이는 아마도 폴 틸리히일 것이다. 틸리히의 불교에 대한 깊은 관심은 그가 1960년에 일본을 방문하여 수개월 간(5월에서 7월까지 약 8주간을) 도꾜와 교도에 머물면서 일본의 저명한 불교 학자들과의 깊은 교제와 대화를 나눈 점을 보와도 알 수 있다. 그의 일본 방문은 야사카 다까기(Yasaka Takagi) 교수의 초청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때 그가 만난 사람들은 선불교의 대가인 스즈키(D. Suzuki) 박사를 비롯하여 교도학파(the Kyoto School)의 철학자 및 불교 학자들과 또한 일본의 고유 종교인 신토(Shinto)의 스님들과 선승들(Zen Masters)도 포함되어 있었다. 틸리히는 그들과의 대담과 토론을 통하여 동양 사상 특히 선불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증거로서 틸리히는 그의 일본 방문의 경험을 토대로 해서 “기독교와 세계종교들과의 만남”이란 책을 저술하였으며, 그 책에서 그는 기독교와 불교와의 대화의 문제를 직접 취급하였다.
종교 간의 대화의 요건: 틸리히는 위의 책에서 기독교와 불교를 비교 고찰함에 있어, 불교를 모든 종교들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낫 설며, 동시에 가장 경쟁적인(most greatest, strangest, and competitive) 종교라고 칭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와 불교와의 대화는 현재까지는 매우 미미했지만, 앞으로 두 종교의 대화는 가까운 장래에 가장 중심적 문제로 등장하게 될 것으로 보왔는데, 그 이유는 현대 세계에 나날이 확산되어가는 세속주의와 그것의 영향을 받은 유사종교들(quasi-religions)의 발흥에 공동 대처하기 위해서라고 보았다.
한편 틸리히는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 문제를 취급함에 있어서 대화자가 취해야할 기본자세에 대해서 다음 네 가지로 언급하였다. (1)상대방 종교의 신념의 가치에 대해서 존중하고 인정할 것, (2)대화자는 지신의 종교적 신념에 대해서 깊은 이해와 확신을 가지고 임할 것, (3)대화가 유익되게 하기 위해서는 상호 간에 공통분모(common ground)를 찾아낼 것, (4)상대방의 비판에 대해서 열린 자세를 가질 것 등을 제시했다. 그는 이런 요소(자세)들을 가지고 대화에 임한다면, 서로에게 지극히 유익하며(extremely fruitful), 또한 그것을 계속한다면, 자신의 일본에서의 경험에 비추어서 볼 때, 두 종교 및 다른 종교 간의 대화는 우리 역사에 큰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인격주의 대 비인격주의: 틸리히는 기독교와 불교를 비교함에 있어 가장 크게 부디치는 문제로서 기독교의 인격주의적인 특성과 불교의 비인격적인 특색을 지적했다. 그 대표적인 개념이 기독교의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나라” 개념과 불교의 “절대무"(Absolute Nothingness)와 “열반"(Nirvana)의 개념이다. 즉 기독교의 궁극적 실재를 나타내는 하나님은 인격적인 특성으로 표현/상징화(symbolized)하는 반면에 불교에서는 궁극적인 것을 나타내는 표현(상징)인 “공"(Void)이나 “절대 무”(Absolute Non-Being)는 비인격적 혹은 초인격적인 특성을 나타낸다. 사실 이것은 틸리히가 기독교와 불교의 특징을 비교 고찰함에 있어서 정확한 진단이며 지적이라고 사료된다. 왜냐하면 불교는 인격주의적 표현이나 개념들은 인간의 감정이나 성질을 나타내는 표현들이기 때문에 궁극적 실재를 나타내는 데 있어서 부적합하다고 보는 반면에, 기독교는 오리혀 그것을(인격주의적인 접근이나 표현을) 궁극적 실재 혹은 신의 실재를 표현하는데 있어 더 적극적(긍적적)이고 적합한 표현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와 불교와의 대화는 넓은 의미로 표현하자면 “인격주의”(personalism)와 “비인격주의” 혹은 “초인격주의”(trans-personalism)와의 대화라고 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틸리히의 하나님 이해: 틸리히가 기독교와 동양종교 특히 불교와의 대화에 크게 공헌한 점은 그가 기독교의 인격주의 중심의 신관을 초인격주의적인 신관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틸리히는 하나님을 인격적 존재로 부르는 것은 “절대자”(혹은 절대 타자)인 하나님을 여러 존재들 중의 하나로 즉 비록 모든 존재들 중 최고의 존재라 하더라도 무한자를 유한자의 범주로 격하시키는 일이 때문에 부적합하다고 보왔다. 그래서 그는 신의 존재를 “하나님”(God)으로 호칭하지 않고, 모든 존재들의 근거가 되는 의미에서 “존재 자체”(Being-Itself) 혹은 “존재의 근거”(Ground of Being)으로 불렀다.
뿐만 아니라 틸리히는 기독교의 전 역사를 살펴보면 신과 인간에 관해서 불교의 사상에 매우 유사한 신비주의적 요소를 발견할 수가 있다고 말하고, 특히 오리겐, 어거스틴, 에크할트 등이 사용한 고전적 신개념인 “존재 자체”(esse ipsum)란 개념은 불교의 “공”(空) 개념이나 “절대무”(絶對無)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단서를 제공하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즉 틸리히에 의하면, 존재 자체로서의 신은 어떤 하나의 위대한 존재나 혹은 모든 존재들의 총체가 아니라 모든 존재들을 초월하면서 또한 모든 존재들을 존재 가능케 하는 “존재의 기반” 혹은 “모체”(Matrix)로서, 우리 인간의 언어나 상징이나 어떠한 개념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절대계”(the Absolute) 즉 “궁극적 실재”(Ultimate Reality)를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아마도 틸리히의 이러한 신관(하나님 이해)은 불교의 “공”사상과 “절대무”(Absolute Nothingness or Emptiness) 혹은 “열반”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되며, 이런 점에서 틸리히는 기독교와 불교의 상호 이해와 대화에 있어서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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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5) - D. T, Suzuki 류기종 | rkchg@hanmail.net 입력 : 2010년 05월 30일 (일) [조회수 : 4065]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5) 계속
(4) 다이세츠 스즈키(D. T. Suzuki, 1870-1966)
▲ D. T, Suzuki
일본의 경도학파의 창시자 니시다 기다로(1870-1947)의 친구이자 선불교의 대가인 스즈키 박사는 대승불교(Mahayana Buddhism) 특히 일본의 선불교(Zen Buddhism)를 서방 세계에 알린 인물이며, 또한 동-서의 철학과 종교 사상을 잇는 가교역할을 한 인물로 유명하다. 현대의 한 역사가인 린 화이트(Lynn White, Jr)는 1927년에 영문으로 출판된 스즈키 박사의 “선불교의 논문들”(Essays in Zen Buddhism)이란 책의 출현은 오는 세대에 있어서 마치 13세기의 윌리엄 모어베크(William Moerbecke)에 의한 아리스토틀의 라틴어 번역과 또는 15세기에 피치노(M. Ficino)에 의한 플라톤의 번역에 비견될만한 의미를 지닌 한 위대한 지적인 사건이라고 말한바 있다. 그만큼 스즈키 박사의 이 책은 기독교 문화권인 서방 세계에 대승 불교의 사상을 알리며 그들에게 큰 관심을 끌게 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즈키 박사의 여러 저서들 중에서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작품은 기독교와 불교의 긴밀한 관계성을 말한 책으로 1957년에 출판된 <신비주의: 기독교와 불교>(Mysticism: Christian and Buddhist)이다. 스즈키는 이 책에서 기독교와 불교 특히 선불교와의 관계를 신비주의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스즈키는 기독교의 많은 사상가들 중에서 특히 14세기에 독일의 도미니크 수도회 수장으로 활동한 마이스터 에크할트(Meister Eckhart)의 신비주의 사상이 대승불교와 많은 유사점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나는 처음 마이스터 에크할트의 설교문들이 수록된 소책자를 읽고서 큰 감 명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과거나 현대에 걸쳐서 어느 기독교 사상가도 이 들 설교문들에 나타나 있는 사상들을 따라 갈만한 그런 기독교 사상가는 기 대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설교문이었는지 기억할 수는 없지만, 거기 에 나타난 사상들은 확실히 불교적 사상들에 접근하고 있었으며, 너무도 가 깝게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들이 거의 확실하게 불교적 사 유에서 나온 것들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사료된다. 나의 판단으로 는 에크할트는 특이한 ‘그리스도인’인 것 같다>(스즈키, 신비주의, 제1부 제1장, “에크할트와 불교”에서 인용)
절대무(Absolute Nothingness)와 신성(Godhead): 스즈키 박사가 발견한 마이스터 에크할트의 신비주의에서 대승불교와 가장 가까운 개념은 에크할트가 이해한 “신성” 으로서의 하나님관이다. 에크할트에 의하면,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활동에 직접 간여하는 신(God)과 모든 창조활동에 전적으로 초월에 있는 “신성"(Godhead)의 두 면이 있다. 이것은 신의 “내재성”과 “초월성”의 양면성에 대한 언급이라고 볼 수 있는데, 신의 초월성과 내재성의 개념은 신구약성서 전반에 들어 있으며, 오리겐을 비롯하여 어거스틴을 포함한 거의 모든 교부들과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 그리고 칼 발트 등 현대 신학학자들에 이르기 까지 줄기차게 주장되어 온 개념이다. 그들 중에서도 특히 에크할트는 신의 내재성과 초월성의 차이를 강하게 언급하고 있다. 에크할트는 "신"(하나님)과 "신성"의 차이는 하늘과 땅 만큼 큰 차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무엇을 이룩하신다. 그러나 신성은 그렇게 하지 않으며, 그럴 필 요도 없으시다. 신성은 어떠한 행위도 추구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하나님과 신성의 차이는 행위와 행위의 부재로서 구별된다. 나는 전에 말해 본 적이 없는 바, 하나님과 신성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말 하고자 한다. 사람의 내면성과 외면성도 하늘과 땅 만큼이나 다르다. 그러 나 신과 신성과의 거리는 측량할 수 없을 만큼 크다>. (Matthew Fox, Breakthrough, pp. 76-77)
에크할트는 “신(창조의 하나님)”은 무엇을 이룩하기 위해 활동하지만 “신성”(신의 본래 모습)은 그럴 필요가 없으며, 따라서 “신성”은 어떠한 행위도 부재한 상태라고 표현하고 있다. 즉 에크할트는 신의 참 모습은 그의 초월성인 “신성”에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신성”으로서의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 신에 대한 바른 지식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에크할트가 여기서 말하는 신의 초월성을 의미하는 행위의 부재로서의 “신성”은 대승불교에서 의미하는 “공”이나 “절대무”와 매우 유사한 개념임을 나타낸다고 스즈키는 보고 있다. 왜냐하면 불교의 “무”는 이것과 저것, 행위와 무행위, 있음과 없음 등의 모든 상대적 개념을 다 초월하며, 따라서 어떠한 상대적 개념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절대계를 지칭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와 불교의 가장 큰 차이로 여겨지는 불교의 "공"(空) 특히 선불교의 “절대무” 개념과 기독교의 하나님 이해 사이에는 비록 신비주의자들이나 혹은 영성가들의 이해에 의해서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상호이해와 대화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지적해 준 이가 바로 20세기에 들어서서 불교와 기독교 및 서구철학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한 다이세츠 스즈키 박사이다. 그런 점에서 스즈키 박사는 기독교와 불교(특히 선불교)와의 대화에 있어서 중요한 공헌자 중 하나로 평가할 수 있겠다.
[관련기사]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3) - A. N. Whitehead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2) - Rudolf Otto 한국신학 소고(溯考): 한국신학의 과거, 현재, 미래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1) 예수의 종교(Religion of Jesus)
제이 씨 (184.146.115.16) 2012-04-27 08:08:18
기독교와 불교는 진정한 의미에서 상호 이해와 대화가 가능한가? 종교란, 수평/竪直적 의미에서 “절대무” 찾기나 “존재자체” 찾기를 말한다면, 사람들에 의하여 아래로부터 위를 향한 상향식↑추구라고 사려되며, 기독교는,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이 “인격적 하나님” 의 垂直적 계시↓에 의한 특수한 만남 (현현과 응답) 에 대하여, 신뢰↑함으로 “인격적 하나님” 과의 상응관계 곧 위로부터 아래를 향한 하향식↓의미가 전제 되어 상하↕관계 형성이 된다는 인과성의 체험적 의미가 부여 된다는 생각입니다. “인격적 하나님” 의, 사람 존재 (창조) 이 전의, 그 분의 “인격” 이란, 어떤 분의 말을 빌리면, “내적 개념내용과 고유한 자 의식, The inner content and unique self-conteousness,” 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인격” 으로의 내적개념내용이란, 하니님의 정체 (영, 스스로 존재 하는 창조자) 를, 그리고 하나님의 고유한 자의식이란, 자기 계시와 타자인식 (사랑) 을 의미한다고 보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된 사람의 인격을 해석 함은, 내적개념내용인 사람의 정체를 영과 육체 곧 피조자로, 그리고 사람의 고유한 자 의식을, 자아 발견 의식과 타자 인식 으로 이해 됩니다. 그러므로 인격주의? 적인 체험(하나님 만나는 경험) 과 비 인격주의? 적인 궁구한 발상적 초월과의 대화적 공통점을 찾을수 있을까 라는 풀리지 않을것 같은 의문을 제기 합니다.
창공 (121.162.90.34) 2010-05-26 08:32:52
기독교와 불교를 하나님과 절대무, 인격과 비인격으로 표현한 것을 읽으며 실제 종교의 표상으로 드러난 것으로 보면 불교는 부처(인간모습의 불상)이고, 기독교는 형상을 만들지 말라 하셔서 만들지 않아 오히려 역으로 보이고 있다. 재미있지 않은가? 세상의 많은 것들이 아렇게 뒤바뀌어 보이니 진리를 알아채고 전하기가 어렵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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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6)-토마스 머턴 류기종 | rkchg@hanmail.net 입력 : 2010년 06월 06일 (일) [조회수 : 4120]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6) -계속-
(5) 토마스 머턴(Thomas Merton, 1916-1968)
▲ 토머스 머튼
20세기 중반 이후에 기독교와 불교 특히 기독교와 선불교와의 대화에 큰 관심을 보인 사람은 아마도 20세기의 “사막의 교부”(a Desert Father)라고 불리는 토마스 머턴일 것이다. 머턴은 1941년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자마자, 어렵게 얻은 뉴욕의 한 대학교의 영문학 교수직을 포기하고, 켄터키 주에 있는 겟세마네 수도원에 한 수도사로 들어가 일생동안 명상수행에 전념했으며, 자신의 체험에 기초해서 “명상” 및 “관상기도”(Contemplative Prayer)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편으로 세계 평화의 문제와 빈곤과 폭력과 사회악 등 사회정의의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머턴은 오랜 동안의 자신의 명상수행의 과정에서 불교의 명상 의 방법 특히 선수행(Zen Practice)의 방법과 매우 가깝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즉 머턴은 기독교 신비가들의 영적 체험의 방법과 선불교의 영적 체험의 방법이 본질적으로 깊이 통하는, 다시 말하면 인간의 심오한 영적 체험과 깨달음을 표현하는 형식들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1967년에 <신비가와 선의 대가들> (Mystics and Zen Masters>이란 저술을 발표하였다. 이 책에서 머턴은 6세기 이후에 중국에서 발전된 선의 역사와 내용 그리고 발전 과정들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선(禪/Zen)불교는 중국의 당나라 시대에 인도에서 들어온 달마대사(Bodhidharma)에 의해 처음 중국에 소개되었고, 도교와 결합하여 발전된/꽃피운 대승불교의 한 지류이며, 그후 한국과 일본에 널리 소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선불교(Zen Buddhism)와 기독교 신비주의(Christian Mysticism): 달마대사에 의해서 소개된 선의 기본정신은 “교외별전 불입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敎外別傳,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이란 4개의 한자성어로 된 내용이다. 이 시는 선불교(Zen)의 핵심을 집약적으로 들어내는 시이다. 즉 우리 인간이 진리를 깨닫는 득도에 이르는 길은 경전의 문자나 교리나 추상적인 개념들에 의해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의 내면을 직시함으로써, 즉 마음(인간의 영혼 혹은 정신세계)의 신비(본질)를 깨달음으로써, 참 진리(실재)의 인식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 선종(선불교)은 선의 5대조 홍인(弘忍)의 두 제자 혜능(慧能)과 신수(信秀)에 의해서 남종과 북종으로 갈라지게 되었는데, 6대조의 선발과정에서 5대조 홍인의 수제자 신수의 시가 혜능의 시에 뒤떨어짐으로서 혜능이 6대조로 선택 되게 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신수의 시: (신수는 최고령자로 자타가 공인하는 홍인의 후계자로 보였었다) <몸은 보리수요, 마음은 깨끗한 거울 같구나, 항상 갈고 닦아서 한 올의 먼지도 묻지 않게 하려네>.
혜능의 시: (혜능은 홍인의 절에서 계도 받지 못한 채 부엌에서 일만하던 시골뜨기 도반중 하나에 불과 했으나 선의 참뜻을 나타내는 탁월한 시를 썼다) <보리수 나무 원래 없고, 깨끗한 거울 또한 아무데도 없는데, 어느 곳에 때가 끼고 먼지가 일까?>
혜능은 바로 이 시 때문에 신수 대신 홍인을 이어 선의 6대조가 되었다. 머턴은 이러한 선의 방법들이 기독교의 여러 상이한 신비체험들과 어떻게 연관되고 교류될 수 있는 지를 말해주고 있다. 머턴(Merton)은 선불교와의 접촉에 있어서 선승이며 동시에 대학자인 다이세츠 스즈키와의 교제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두 사람 간의 서신교환은 1959년부터 시작하였는데, 머튼은 고대 사막교부들의 관상적 영성과 선불교의 선승들의 영성의 유사성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으며, 이로 인해서, 이점에 대해 큰 관심을 지녔던 스즈키와 깊은 교분을 나누게 되었다. 두 사람은 1964년에 뉴욕의 콜롬비아 대학 교정에서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눈 이후 깊은 교제를 나눴는데, 스즈키는 머턴을 가리켜서 선의 본질을 가장 잘 이해한 서양인(기독교인)이라고 평한바 있다.
스즈키와의 교제 이후, 머턴은 1965년에 <장자의 도>란 책을 출간했으며, 1967년에는 자신의 선불교 연구서로 볼 수 있는 앞에서 언급한 <(기독교)신비가와 선의 대가들>이란 책을 저술하게 되었다. 머턴은 장자를 통해서, 언어와 개념을 넘어선 “실재”에 대한 체험적 인식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머턴은 기독교의 문제점은 언제나 개념화와 교리화에 집착하는 약점이 있음을 깨달았다. 머턴의 동양종교에의 깊은 관심은 1968년 태국 방콕(Bangkok)에 열린 종교회의에의 참석으로 절정에 달했다. 그는 이 기회를 불교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종교성과의 접촉의 기회로 삼으려 했다. 마턴은 이를 계기로 인도, 태국, 스리랑카를 방문하려 했고, 다라이 라마와의 만남과 일본의 선승들과도 만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머턴은 회의 도중 갑작스런 사망으로 그 뜻을 다 실현하지 못했다.
머턴과 깊은 교제를 나눴던 틱낫한(Thich Naht Hahn)은 머턴에 대해 평하기를 대부분의 서구 신학자나 영성가들이 이원론적 사고의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데 반해서 머턴은 그런 틀에서 벗어서 있다는 사실이라고 평했다. 데이비드 스타인들 라스트(D. S. Rast)가 머턴에게 묻기를, 불교와의 접촉 없이 기독교의 가르침들 을 잘 설명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머턴이 한참 생각하다가 대답하기를, “나는 불교의 빛으로 조명하지 않고는 기독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머턴의 이 말은 불교의 진리들은 기독교의 깊은 영적인 진리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머턴은 <신비가와 선의 대가들>의 서문에서 “선은 추상적인 형이상학도 아니며, 신학도 아니며, 이론적인 명제도 아니고, 의식과 앎의 굴레(속박)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행위로서, “구체적인 살아있는 존재론”이라고 정의 내렸다. 머턴은 이 책에서 기독교 전통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교부시대, 초기 수도원제도(사막의 수도자들), 영국의 신비주의, 17세기 신비주의, 러시아 동방정교회 영성 그리고 개신교 수도원 공동체 등도 소개하고 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머턴은 선불교 즉 불교의 선(Zen)의 방법에 매혹된 기독교 명상수도자로서, 영성주의 혹은 신비주의의 측면에서, 기독교와 불교와의 깊은 대화의 길을 모색한 사람이란 사실은 부인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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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7) - 류영모 - 당당뉴스
류기종 | rkchg@hanmail.net 2010년 06월 13일 (일) 18:38:37 [조회수 : 3945]
(6) 류영모(柳永模, 1890-1981)
▲ 다석 유영모
다석(多夕) 류영모는 젊은 시절 한 평번함 과학도로 시작하여, 끊임없는 연구(진리탐구)와 스스로의 수행에 의한 깨달음을 통해서 세계(인류) 정신문화의 원천인 유, 불, 선, 기(기독교)의 회통과 창조적 조화를 이룩해 낸 인물로서, 20세기의 탁월한 통섭의 사상가인 과정철학자 화이트헤드에 비견될만한 특유의 사상가이다. 그는 소년시절에 접한 기독교 신앙을 일생동안 자신의 삶의 근거로 견지 하면서도, 단순한 교리적인 신앙에 머물러 있지 않고, 동양의 전통 종교 사상들과 또한 한국고유의 전통종교 사상들에 대한 깊은 연구를 통해서, 그리고 그들의 창조적 만남과 조화 회통을 통해서, 한층 더 깊은 차원으로 승화시키고 심층적으로 이해한 참으로 희귀하고 독특한 사상가이다.
<류영모와 연경반>: 류영모는 서울 YMCA 총무였던 현동안의 초청으로 일종의 종교 강좌에 해당하는 “연경반” 강좌를 맞게 되었는데, 1928년에 시작하여 1963년 까지 35년간 지속되었다. 박영호씨의 기록에 의하면, 연경반은 많이 모일 때는 수백명이 참석할 때도 있었지만, 적게는 십여 명씩 모였으며, 평균 20명 정도가 참석하였다고 한다. 류영모는 이 연경반에서 기독교의 성경뿐 아니라, 유불선의 경전들즉 동양의 고전들도 강의하였으며, 따라서 그는 기독교와 유불선의 종교적 가르침들과의 조화 속에서, 즉 기독교를 그 자체에 의해서만 이해하지 않고, 동양의 지혜를 통해서 이해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한 예로 류영모는 1959년에 영경반에서 <노자>를 강의 했고 같은 해에 불교의 중요 경전인 <반야심경>을 강의하였다. 박재순 교수는 다석의 불교에 대한 친밀성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다석은 공(空) 사상에 기초해서 만물을 공으로 보고 하느님의 본성도 공으로 보았다. 그는 23세 때부터 빔(空)이 맘 안에, 맘이 빔 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늘 빈탕한테를 말한 것도 불교적이고, 해혼 후 하루 한 끼 먹은 것도 금욕적인 불교의 가르침을 실천한 것이다. 모든 집착과 욕심을 끊고 자유로운 삶을 살려는 것은 불교의 해탈을 추구한 것이다. 날마다 무릎 꿇고 앉아서 생각과 명상에 잠긴 것은 불교의 선(禪)을 수행한 것이다,...사람 노릇을 하려면 불교를 알아야 한다고 했고 불교를 모르고는 이 세상을 바로 살 수 없다고도 했다. 다석은 자주 예수와 석가를 나란히 언급했다. 다석은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진리인 불성이 내 속에 있다는 것을 믿는 것으로 보았고, 하느님이 진리의 근원이라는 것을 말함으로써 기독교와 불교를 연결시켰다. (박재순, 다석 유영모, 현암사, pp. 313-314)
그런 점에서 류영모는 단순히 기독교와 불교(특히 선불교)의 대화나 만남의 차원을 넘어서, 두 종교를 한 생명인 자신의 삶으로 직접 실천한, 다시 말하면 기독교와 불교 두 종교의 창조적 일치를 실행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그는 기독교를 통해서 불교를 보고 불교를 통해서 기독교를 보았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그에게는 그리스도와 불타가 따로 있지 않고 둘이 진리의 스승으로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진리의 스승인 점에서 그 두 분은 둘이면서 하나이며 하나이면서 둘인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이러한 통찰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 필자는 류영모의 이러한 통섭의 정신은 바로 우리 한국인의 고유 철학인 “한사상”(韓思想) 즉 일즉다(一卽多)의 궁극적 조화와 일치의 원리인 “한사상”에서 비롯한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참조, 류기종, 기독교와 동양사상, 황소와 소나무, pp. 12-37)
<탐진치 3독과 인간의 죄성>: 류염모는 인간의 실존 이해에 있어서도 불교와 기독교의 양측의 입장을 함께 종합해서 본 듯하다. 즉 기독교는 인간의 현존재를 최초 인간 아담의 타락에 의한 원죄의 유전으로 인한 죄성이 만인에 보편적으로 깃드려 있다고 보는데 대해서 불교는 인간이해의 핵심으로서 탐(貪,탐욕), 진(瞋,분노/시기/질투/미움), 치(痴,무지/어리석음/치정-성적충동) 3독을 보편적 성질로 이해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 탐진치는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동물이나 생물들의 삶의 본능적이고 자연적인 모습이다. 우리 인간의 자연적 특성을 탐진치 3독의 내재성으로 보는 불교적 인간 이해는 바로 사도 바울이 로마서 1장에서 언급한 인간의 죄성(롬1:29-31,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군거림, 우매, 배약, 무정함, 무자비)에 대한 진술과 매우 유사함을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참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이 동물적 요소인 탐진치의 속성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참조, 박영호 풀이, 다석 류영모 명상록, 두레, pp. 472 이하).
따라서 류영모는 우리 인간이 득도 해탈의 경지에 이른 참 자유인 즉 진리를 깨달아서 참 자유함을 얻은(요8:32) “얼나” 곧 영적인 존재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이 3독을 제거하고 거기에서 자유함을 얻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로서 우리는 류영모의 인간실존 이해에 있어서도 불교적 요소와 기독교적 요소가 함께 공재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없이 계시는 하나님>: 류영모의 기독교와 불교의 친밀성(공통점) 이해의 또 다른 중요한 점은 바로 불교의 공(空/빔/없음)과 기독교의 하나님(하느님/한님/한얼)을 그 근본(본질)에 있어서 매우 밀접한, 어떤 의미로는 동일한 내용(개념)으로 이해한 점이다. 류영모에 따르면 허공(空)은 곧 하나님의 마음을 지칭한다. 즉 허공의 상징은 진선미 곧 순수하고/깨끗하고 아름다움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이 하공을 알고 허공을 존중하여 맘에 품고 살 때 아름답고 깨끗한 삶을 살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와 인간의 바탕이 허공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석이 공 혹은 허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만물의 근거로 본 것은 불교의 가르침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즉 류영모는 공(空)을 참된 실재로 보는 불교의 공의 철학 곧 공의 신비와 의미를 깊이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석가는 “빔”(공)이 맘 안에, 맘이 “빔” 안에 있음을 깨달았고, 예수는 내가 아버지(하나님) 안에 아버지(하나님)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여, 석가의 공 이해와 예수의 하나님(아버지) 이해를 대비시키고 있다. 더 나아가 류영모는 이 “빔”(공/허공)을 최고로 높고 밝고 거룩한 것으로 보았다. 즉 류영모는 공 혹은 허공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신령한 허공을 하느님으로 이해했으며, 허공, 마음(얼) 혹은 영(靈), 절대자가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 아버지의 마음인 허공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였다. 즉 그는 허공과 하나로 되어 하늘에 머물러 사는 사람은 물질과 허공을 하나로 보는 공색일여(空色一如)의 자유함을 얻는 다고 하였다. 그러나 류영모는 공(허공)을 참된 실재로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이라 이해하면서도 불경에 하나님이란 말이 없음을 못내 아쉽게 생각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의 마음의 저변에 기독교의 신관과 함께 한국인의 고유 종교성인 하느님 신앙이 흐르고 있음을 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참조, 박재순, 앞의 책, pp. 316-319)
요컨대, 류영모가 이해한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마음의 욕심(3독)을 뽑아내서 “빔”에 이르러 공색일여(공즉시색 색즉시공)의 진리를 깨달음에서 오는 참 자유 곧 궁극적인 자유(해탈)에 이르는 것이다. 물론 다석이 허공을 진리 곧 참 실재로, 만물의 바탕으로 본 것은 불교의 중심 진리를 말한 것이다. 그러나 공(허공)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본 것은 불교의 기독교적 이해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점에서도 류영모의 기독교와 불교의 조화와 통섭의 측면을 읽을 수 있다.
<“얼나”의 현시자로서의 불타와 그리스도>: 류영모의 사상에서 또 하나의 독특한 개념은 “얼나”의 개념이다. “얼나”는 인간의 자연적 상태인 “제나”(selfish ego) 즉 인간의 죄성인 탐진치 3독을 제거하지 못한 인간에서 “빔”(공)의 진리를 깨우쳐서 신의 본성인 "빔"(空性)과 하나가 된 영원한 자아, 즉 시공을 초월하는 공한 마음(空心)인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참 자아를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 인간의 삶의 목표는 바로 이 동물성(獸性) 곧 죄성으로 인하여 죽어 없어질 존재인 “제나”(육적인 자아 곧 땅의 존재)에서 영원한 생명과 광채를 지닌 “얼나”(하늘의 존재)로 거듭나는 일이다. “제나”가 “얼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제나”가 완전히 죽어야 하는데, 이 제나의 죽음이 바로 십자가의 의미이다. 류영모에 있어서 완전한 자기부정의 길인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불타(불교)의 진각(眞覺)에 이르는 4대 진리인 고집멸도(苦執滅道)의 완성/성취를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얼나”는 득도 진각을 이룬 초월적 자아 곧 영적인 자아(enlightened/spiritualized self)라고 말할 수 있다.
류영모에 따르면, 불타와 그리스도는 둘 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인류에게 득도 해탈의 길 곧 구원의 길을 제시해준 위대한 참 스승이며,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진인(眞人) 곧 “얼나”의 모형이다. 그런 점에서 불타와 그리스도는 이 “얼나”의 현시자요 화신(incarnation)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즉 불타는 공(빔)의 진리와 또한 공과 만물이 그 근본에 있어서 하나라는 “공즉시색 색즉시공”(空卽是色 色卽是空)의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모든 집착과 속박으로부터 자유함을 얻는 해탈의 길을 제시해 주었고, 그리스도는 참 빔(참 실재)이신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길, 하나님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그리고 아버지와 내가 하나 되는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죽음까지도 포함된 모든 속박과 억매임으로부터 완전히 놓임 받는 참 자유함에 이르는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류영모에게는 불타와 그리스도 두 구원자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러나 실은 이 둘은 하나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불타와 그리스도 두 분이 다 참 "빔"(공/허심/태일太一/하나님/궁극적 실재)과 하나가 됨으로써, 즉 “빔의 신비"(mystery of emptiness) 곧 “없이 있으며 참으로 있음”의 신비를 깨달음으로써, 궁극적 자유함(해탈)인 구원에 이르는 길(진리)에 있어서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류영모에 있어서 불타와 그리스도의 관계는 태극의 음양 리기의 관계처럼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의 관계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류영모는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와 만남을 넘어서 두 종교의 아름다운 조화와 상보관계를 실현한 독보적 사상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류영모는 불교를 통해서 기독교를 이해하고 또한 기독교를 통해서 불교를 이해하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볼 때,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의 시기라 할 수 있는 20세기에 있어서 두 종교의 관계를 류영모 처럼 깊이 통찰한 사람은 없을 것으로 사료된다.
<맺는말>: 이상에서 지난 20세기 동안에 기독교와 불교와의 대화에 크게 기여한 즉 두 종교 간의 대화의 개척자들의 견해들을 살펴보았는데, 필자는 그들 중에서 우리 한국의 기인(奇人) 다석 류영모의 방법이 가장 탁월하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는 단순히 두 종교의 대화를 넘어서서, 양 종교를 친밀한 형제와 친구의 관계로 즉 자신을 위해서 상대방이 꼭 필요한 (태극의 음양과 리기의 관계처럼) 필수적 동반자의 관계로 연결시키는 방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와 불교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기독교를 보다 깊이 알기 위해서는 불교를 필요로(알아야)하고, 또한 불교를 보다 깊이 알기 위해서는 기독교를 필요로(알아야) 하는 상보의 관계이다. 이런 점에서 류영모는 기독교와 불교의 상호이해와 대화에 있어서 최대의 공헌자로 평가되리하고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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