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사상의 최전선>Q : 전체론으론 왜 세계를 파악할 수 없나
기자 입력 2019.09.24. 10:30
차은정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
A : 다원주의 ‘전체속 부분’만 인정… 부분간 ‘평등한 관계’ 봐야
④ 메릴린 스트래선(Marilyn Strathern, 1941~)
서구중심 ‘절대진리’ 비판에
다원주의 흡수하면서
부분적 진리 주장하지만
그마저도 전체론 못벗어나
유럽 형이상학 지배한
신체 초월한 로고스로는
‘앎’을 완결적으로 닫아놓고
위계적 질서도 해체 못해
쏟아지는 정보홍수 속에서
어딘가에서 온 세계들과
어떻게 관계 맺을지가 중요
“사방이 적입니다.” 한 학생이 내게 한 말이다. 최근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제목의 인기 웹툰이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것을 보면 그 학생만 하는 생각은 아닌 것 같다. 다른 한편에는 ‘소확행’이라는 말이 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일컫는 줄임말로, 타인과 나누는 행복보다는 혼자서 즐기는 행복에 가까운 의미이다. 이제는 정녕 타인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추구할 수 없는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개념, 즉 인간은 타자와 함께 공동체를 만들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말로는 더 이상 인간을 정의할 수 없는 것일까?
‘타인은 지옥이다’에 등장하는 고시원 사람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데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저마다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주의는 바로 이 감각, 사람들이 같은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학문적으로 검토하고자 했다. 비서구의 ‘타문화’를 탐구해 왔던 서구 인류학에서는 이 감각이 학문의 기반을 뿌리째 흔들었다. 1980년대까지 서구의 인류학자들은 자신들이 비서구를 객관적으로 기술했다는 데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런데 비서구 사람들이 스스로 말하기 시작하자 그 기술이 ‘서구의 시선에 의한 비서구’에 불과하다는 것이 판명됐다.
강제 징용과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에서 비근한 예를 찾을 수 있다. 강제 징용 피해자들과 위안부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일본 정부의 기술과는 전혀 다른 일제강점기의 실상이 드러나고 있다.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 중에는 당시 조선인들이 일본의 통치를 반겼을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과도 잘 지냈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조선인들이 일제강점기에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일본인의 입장에서 식민지 조선을 이야기하는 시도는 조선인들이 실제 처했던 현실을 간과한 채 일본인의 편향된 이해를 보여 주는 데 그치기 쉽다.
서구 인류학도 연구 대상인 비서구를 알 수 없다. 20세기 인류학은 서구가 어떻게 비서구를 알 수 있을지를 해명하고자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주의를 흡수했다. 인류학자들은 비서구에 대한 자신의 기술이 객관적이며 이것이 절대적 진리가 아님을 인정했지만 ‘부분적 진리’로서는 학문적 의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예에서 볼 수 있듯, 부분적 진리란 보통 비서구가 아닌 서구 자신의 이야기로 귀착되고 만다. 타자는 거울이고 그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본다는 인식이 포스트모던 인류학의 이론적 종착점이었던 셈이다.
◇다원주의는 왜 자가당착에 빠지는가?
다원주의는 저마다 다양하고 무수히 많은 세계를 논하려 하지만 왜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귀착되는 걸까? 영국 인류학자 메릴린 스트래선은 다원주의가 여전히 ‘전체’를 상정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다원주의자들은 더 거대한 차원의 세계(전체)가 있고 그 하위에 작은 세계(부분)가 무수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체에 포괄된 부분들은 아무리 탈중심화하고 이질화하고 파편화한다 해도 끝내 전체를 벗어나지 못한다. 전체의 중심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원주의의 자가당착은 세계를 전체로서 구상하고 이해하는 서구 문명 특유의 사고방식인 전체론에서 기인하는 문제다. 여기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전체론의 관점이 근대에 이르러 시각화(신체화)됐다는 점이다. 17세기 유럽에서는 광학 기술이 크게 발전했다. 현미경과 망원경이 발명돼 인간 시야의 규모를 조정할 수 있게 됐고, 감각 기관을 통해 시야가 생겨난다는 점 또한 인지하게 됐다. 인간의 수정체는 그것을 본뜬 인공 기관인 현미경이나 망원경의 렌즈와 결합했다. 그러나 인간 개개의 시각을 뛰어넘어 확장된 인공 시야는 전체를 보지 못한다는 인간 문명의 본원적 한계 또한 드러냈다. 인간은 고도로 발전된 전파 망원경으로 블랙홀을 관측하는 데까지 성공했지만, 그 성공은 전파 영역의 빛 너머가 미지의 세계로 남을 수밖에 없음을 가르쳐 주었다. 138억 년으로 추정되는 우주의 역사에서 인간은 기껏해야 빛이 전달해 주는 38만 년의 우주만을 볼 뿐이다. 나아가 우리 우주 외에 또 다른 우주들이 있을 것이라는 다중 우주론도 가설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따라서 전체가 과연 존재하느냐는 인식론적 의문이 제기된다. 인간이 전체의 존재를 알 수 없다면, 전체로 구상된 것들이 실은 전체 없는 부분 그 자체이지 않을까?
스트래선은 이러한 발상을 통해 근대 유럽 중심의 전체론적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뒤집으며 전체론에서 발동되는 전지전능의 시야를 문제시한다. 서구 유럽의 전체론적 시야는 비서구를 주변으로 밀어낸다. 스트래선에 앞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전체론적 사고가 위계적 질서의 원천임을 통찰한 바 있다. 데리다에 따르면 유럽 형이상학의 중심에는 ‘로고스’라는 절대적 법칙이 있다. 데리다는 로고스가 서구와 남성을 중심에, 비서구와 여성을 주변에 위치시켜 왔다고 논했다. 유럽 형이상학은 세계를 전체로 구축하기 위해 초월적 중심을 상정했고, 음성이나 남근으로 이 중심을 상상적으로 구축함으로써 ‘객관성’을 표방했다. 이에 따라 세계를 중심과 주변으로 구조화하는 위계적 질서를 해체하려면 로고스를 탈구축해야 한다.
반면 스트래선은 로고스(음성이나 남근)를 탈구축한다 해도 유럽 형이상학의 초월성(탈신체성)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위계적 질서를 해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데리다의 사고를 더 급진화한 것이다. 유럽 형이상학에서는 전체를 내려다보는 시야의 중심에 로고스를 둠으로써 객관성을 보증했다. 그러나 스트래선이 보기에는 로고스가 아니라 ‘신체를 초월해 전체를 내려다보는 시야’ 자체가 문제다. 그래서 스트래선은 신체의 부분적 감각을 계속 주입함으로써 전체론적 사고에 균열을 내고자 했다. 세계에 대한 앎을 완결적으로 닫아 놓는 것이 아니라 닫힌 전체를 절개해 앎을 무한히 생성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전체일 수 없으며 전체와 부분의 관계는 부분들 사이의 상호 관계로 대체된다.
◇부분들은 부분적으로 연결된다
전체론은 인류 문명사의 측면에서 낡은 사고방식이다.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많은 문제의 유발 원인으로 지목되는 인간 중심주의는 전체론과 궤를 같이한다. 근대 과학 기술 역시 발전을 거듭하며 자신의 전체론적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어쩌면 전체론이 문명적 인간의 사고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약 5000년 전 도시 혁명 이래로 인류가 비대칭적 관계, 즉 힘의 불균등한 관계를 용인하면서 힘 있는 자의 시야를 세계에 대한 앎과 등치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비대칭적 관계와 시선을 허용하지 않는 이상, 이제는 새로운 관계와 앎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는 저마다의 삶 속에서 세계를 구축한다. 20세기 사회 과학은 전체를 ‘사회’로 표상했고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서는 ‘개인’이 전체가 됐다. 그렇지만 세계가 전체를 포괄하는 일은 유한한 존재인 인간에게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애초에 실현될 수도 없다. 그래서인지 우리 인간은 각자의 세계에 갇힌 채 타자를 욕망할 뿐인 에로스로 스스로를 불태우며 그 고통을 잠시 잊으려 한다. 하지만 스트래선은 저마다의 세계 속으로 흩어지는 대신 무수한 세계들이 어떻게 관계해야 할지를 되묻는다. 저 유한한 존재들이 한시적 에로스로 자신을 소진하는 것으로는 미래 인류를 위한 지식의 소임을 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체라고 구상되는 세계 속에 타자가 그저 욕망의 대상으로 존재할 때 우리는 타자의 세계를 안다고 할 수 없다. 생명의 궤적은 그 각각의 세계가 무수한 관계들에서 나왔음을 알려 준다. 그렇다면 지식은 세계를 어떻게 전체로 구상하는가에 있지 않고, ‘어딘가’에서 온 세계들과 어떻게 관계할 것이며 그 속에서 무엇이 생성되는지에 있다. 스트래선은 21세기의 지식을 캐내는 자로서 이렇게 말한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잃어버린 관계를 되찾으라고…. “계몽주의와 과학 혁명 궤도 바깥의 사회들에서는 관계가 사물의 반대편을 능수능란하게 해명한다. 인류학자는 세계를 설명하는 다른 방식을 그리 어렵지 않게 발견해 낼 것이다. 요컨대 관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 메릴린 스트래선은
분야- 인류학-멜라네시아 민족학
사상- 존재론적 전회·비전체론
주요 활동·사건- 영국 사회인류학 비판, 존재론의 인류학으로 이론적 갱신을 선도
약력- 1941년 영국 남서부에 위치한 웨일스 지방에서 태어났다. 교사이자 1세대 페미니스트인 모친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페미니즘을 접했다.
케임브리지대 거튼칼리지에 입학해 사회인류학의 거목 에드먼드 리치와 마이어 포테스에게서 케임브리지 정통 인류학을 배웠다. 1964년에는 동료 인류학자 앤드루 스트래선과 결혼했고, 파푸아뉴기니로 현지 조사를 떠났다. 그때부터 1976년까지 호주와 파푸아뉴기니를 오가며 멜라네시아의 친족과 여성에 관한 연구에 몰두했다.
저서- 1976년부터 케임브리지대 비전임 연구원으로 재직했고, 영국 인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브로니슬라브 말리노프스키에 대한 강의를 5년 동안 진행했다. 이전까지는 사회 인류학 정통에 입각한 연구를 했지만, 영국에 돌아온 직후 시대사상에 둔감한 케임브리지 인류학계의 분위기에 한계를 느껴 당대의 사상적 조류인 구조주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등을 두루 섭렵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에는 21세기의 새로운 인류학을 예고하는 기념비적 저작 ‘증여의 젠더’(1988)와 ‘부분적인 연결들’(1991)을 출간했다.
특히 ‘부분적인 연결들’에서는 1980년대 페미니즘과 미국 인류학의 문화주의를 바탕으로 근대 유럽 중심의 전체론적 사고를 넘어서는 ‘탈전체론’을 획기적으로 시도했다.
이 책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인지 출간 당시 인류학계에서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의 주제 의식을 꾸준히 발전시키는 한편, 맨체스터대와 케임브리지대 사회인류학 교수로서 부지런히 후학을 양성했다. 그 결과 ‘부분적인 연결들’은 2000년대 이후 인류학계에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존재론적 전회’라고 불리는 새로운 학파의 시초로 재평가됐다.
현재 케임브리지대 명예 교수이며, 팔순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왕성한 학술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총 15권의 단독 저술, 44편의 단독 논문, 57권의 공동 저술을 발표했고 지금까지도 21세기 인류와 공명하는 연구를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