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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공동체 불 지핀 박성준 선생 : 종교 : 사회 : 뉴스 : 한겨레

인문학 공동체 불 지핀 박성준 선생 : 종교 : 사회 : 뉴스 : 한겨레

인문학 공동체 불 지핀 박성준 선생

등록 :2014-03-11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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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나를 울린 이 사람
3년 전, 인문학을 기치로 공동체를 처음 설립했을 때 이곳을 찾는 이가 별로 없었다. 사람이 없어 폐강하는 강좌와 세미나가 훨씬 더 많았다. 당시 개설했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강좌도 폐강될 가능성이 높았다. 독일어 원서 강독이니 더했다. 강의 시간 또한 직장인은 오기 어려운 낮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강의가 살아났다. 길담서원 박성준(전 성공회대 교수) 선생이 길담에서 공부하는 청년들과 우르르 이 강의를 찾은 덕이었다. 길담서원은 2008년, 선생이 만든 책방과 찻집을 겸하는 인문학 및 문화예술 공간이다.
그는 진지하면서도 치열하게 공부했다. 69살에 철학 공부에 뜻을 둔 뒤 독일어도 다시 시작했다는 그의 책은 예습을 하며 적은 글씨로 빼곡했다. 강의를 하는 50대 학자도, 강의를 듣는 20대 청년도 혀를 내둘렀다. 그는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를 프랑스어로 읽는 모임에도 참여했다. <분노하라> 강독은 모처럼 강의실을 채울 정도로 사람들이 모였다. 선생은 여기서 공부만 한 게 아니었다. ‘공부’를 주제로 특강도 열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사환 일을 하거나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선생의 자전적 특강은 청중들을 울렸다. 그는 내게 몇 차례 점심을 사며 공동체 운영에 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의 가르침은 간명했다. 스스로 공부하며, 이곳을 찾는 이들이 주인이 되게 하라는 것이었다. 매달 월세 내기에 급급하던 당시, 그는 길담서원에서 영어 원서 강독을 진행하며 받은 사례비를 공동체에 내놓기도 했다.
선생의 가르침 덕인가. 그가 공동체를 찾은 이후 다른 공부모임들도 조금씩 활성화했다. 당시 10개 안팎이던 공부모임도 이젠 60개 안팎으로 늘었다. 문화예술이나 인문학 초보처럼 가볍게 참여할 수 있는 강좌나 세미나에서 프랑스어로 난해한 철학서를 읽는 모임까지 내용도 풍성해졌다. 10~70대의 학생,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에서 주부, 회사원, 연구자, 작가, 교수, 전문 직업인, 대기업 경영자들이 한방에서 강의를 듣거나 발제하고 토론을 나눈다. 기적이 따로 없다.
이제 일부 강의나 세미나 참여자들은 이곳에서 밥도 지어 함께 먹는다.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며 공부하는 청년들도 있다. 프린터에 종이가 떨어지면 누군가가 종이를 채워 넣고 맛있는 것이 생기면 이곳으로 먼저 가져와 나눈다. 강의나 세미나를 앞두고 빔 프로젝터를 점검하거나 난로 따위를 살피는 이도 있다. 참여자들이 슬금슬금, 주인이 되어가는 것이다. 공동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서 선생의 발길도 뜸해졌다. 하지만 이곳에 새로운 사람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선생의 가르침을 떠올린다. 스스로 공부하고, 이곳을 찾는 이가 주인이 되게 하라.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627807.html#csidx1820c20ecfca50aa15c3112e26aa4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