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22

베짱이에게도 기본소득을 주어야 하나?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저서로
《한국경제와 마르크스경제학의 도전》,
《정보혁명의 정치경제학》, 공저로
《경제학자, 교육혁신을 말하다》,
《더불어 행복한 민주공화국》등이 있다.


캘리포니아주 말리부 해변은 서퍼들의 낙원으로 꼽히는 곳 중의 하나이다. 평일에도 파도와 젊음을 즐기는 서퍼들로 들떠있다.《정의론》으로 유명한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가장 불행한 사람을 가능한 한 행복하게 만드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마땅히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말리부 서퍼를 보고는 하루 종일 여가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기본소득을 보장하면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모든 사람에게 노동과 관계없이 무조건 기본소득을 보장하자는 말을 하면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질문을 하게 된다.
① 왜 부자에게 기본소득을 주어야 하나?
 ② 왜 베짱이에게 기본소득을 주어야 하나?
질문 ①에 대한 대답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무상급식 논쟁을 생각해 보면 된다. 그러나
질문 ②에 대한 대답은 조금 어려워 보인다. 이 글에서는 이 질문에 대하여 비유적으로 대답해 보려고 한다.

베짱이가 종일 노래를 불러야 개미가 더 행복하다
실질 자유지상주의(real libertarian) 입장에서 기본소득을 옹호하는 판 파레이스는 롤스의 주장을 비판하였다. 그는《모두를 위한 실질 자유주의(Real Freedom for All)》라는 책을 쓰면서 표지에 말리부 서퍼의 그림을 실었다. 그리고 그는 사고실험을 통해서 말리부 서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여기서는 내용을 약간 바꾸어서 서술하자.
개미와 베짱이 - 판 파레이스의 표현에 따르면 ‘미친 자’와 ‘게으른 자’(Crazy and Lazy) - 가 있다고 가정하자. 개미는 일에 미친 자이고 베짱이는 노래에 미친 자이다. 이들은 태어날 때 똑같은 크기의 땅을 상속받았다. 개미는 자기 땅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해서 4데나리온(이 글에서는 하루분의 곡식을 살 수 있는 돈을 1데나리온이라고 가정하자)을 벌지만 더 벌지 못해서 불행하다. 베짱이는 1데나리온만 벌고 나머지 시간에는 노래를 부르지만 종일 노래를 부르지 못해서 불행하다. 개미가 꾀를 하나 내어 베짱이에게 제안한다. - 너의 땅을 나한테 빌려주면1데나리온을 줄게. 베짱이는 기꺼이 합의한다. 개미는 이제 8데나리온을 벌어서 베짱이에게1데나리온을 주고 7데나리온을 가지니까 행복하다. 베짱이는 이제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르면서도 1데나리온이 생기니까 더 행복하다. 이와 같이 베짱이에게 1데나리온(기본소득)을 주는 이유는 개미와 베짱이가 모두 더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베짱이가 개미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베짱이와 개미가 공생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기본소득의 근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