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3
알라딘: 닿는 순간 행복이 된다 - 말보다 따뜻한 몸의 언어, 터치 이달희
면역력을 높여주는 터치 테라피 접촉의 심리치료 by이달희
면역력을 높여주는 터치 테라피
접촉의 심리치료 36_터치로 면역력을 높여라
by이달희Mar 1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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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요소들이 복잡하게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미치는 복잡계로서 존재하는 우리 인간이 온전하게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은 어느 한 가지라고 꼽을 수 없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몸과 마음이 외부로부터의 위협적인 자극으로부터 나를 지켜낼 수 있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체적인 자기, 즉 몸이 가지고 있는 면역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된다. 면역 기능을 한마디로 정의내리자면 우리 몸을 지켜주는 방패라고 할 수 있다. 면역력(免疫力)이란 외부에서 들어온 병원균에 저항하는 힘을 말하는데, 면역에 관여하는 것은 우리 몸의 여러 기관과 세포, 그리고 물질이 공동체로 관여해서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용한다. 면역시스템은 태어날 때부터 지니는 선천면역(자연면역)과 후천적으로 얻어지는 획득면역(적응면역)으로 구분된다. 우리의 면역 시스템은 단순히 파수꾼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체내 세포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서 신체의 기능 저하와 세포조직의 노화를 막아준다. 따라서 면역시스템이 튼튼하면 스트레스에도 강해지고, 바이러스성 전염병이나 알레르기성 질환에도 걸리지 않는다.
미국의 심리학자로 마이에미 의대 교수이자 '터치 연구소' 소장인 티파니 필드(Tiffany Field) 박사는 터치의 치료적인 효과에 대해서 가장 많은 연구를 해오고 있는 학자다. 티파니 필드는 인간에게 신체적인 접촉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 실증적인 연구 결과를 통해 알려주고 있다. 그중에서 신체적인 접촉을 기반으로 하는 터치 테라피가 인간의 치료에 도움을 주는 면역력을 높여주는 효과적인 방법임을 알려주는 연구가 있어서 소개해본다.
터치는 면역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피부의 기능과 1차적인 관계가 있다. 피부는 면역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이 호르몬은 T세포를 만들어내는 흉선(thymus)에서 분비되는 호르몬과 비슷하다. T세포는 병원균을 파괴하기 때문에 면역계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며 암, 당뇨, 고혈압과 같은 만성 질환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욱 중요하다.
그렇다면 터치가 직접적으로 면역력 강화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까. 티파니 필드는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대학생 50명을 무작위로 뽑아 10명씩 5개 그룹으로 나눈 뒤 실험을 했다. 5개 그룹은 다음과 같았다.
1)눈을 감은 채 조용히 누워 휴식을 취하는 그룹
2)신체적인 접촉을 통한 터치 테라피를 받는 그룹
3)반듯하게 누워서 몸과 마음의 긴장을 푸는 근육 이완법을 받는 그룹
4)마음 속으로 건강한 상태나 편안한 상태, 몸이 좋아지는 것을 상상하는 시각적 심상법 그룹
5)아무런 처치도 받지 않은 통제 집단
티파니 필드는 이 실험을 하기 전에 먼저 다섯 그룹에 배치된 학생들의 타액을 채취했다. 그런 다음 그룹별로 각각의 치료법을 20분동안 실시하고 다시 타액을 채취했다. 각각의 처치를 받기 전과 후의 타액 샘플을 분석해서 호흡기관에서 염증을 막아주는 항체인 면역글로블린 A(immunoglobulin, IgA)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졸(Cortisol) 수준을 비교했다. 타액의 면역 글로블린A 수치는 일반 건강검진에서 전반적인 건강상태를 나타내는 표지로 활용된다.
그 결과 다섯 그룹 가운데 신체적인 접촉을 통한 터치 테라피 치료를 맏은 학생들에게서 타액의 면역글로블린 농도가 가장 많이 늘어났으며, 그 다음은 근육이완법을 받은 집단, 시각적 심상법 집단 순이었다.
이것은 터치 테라피가 실제로 면역기능을 높여준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실험 결과다. 또한 각종 질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에게 왜 터치 테라피가 효과가 있는지를 설명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신체적인 접촉을 통한 피부 촉각의 감각적인 자극은 인간이
누군가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지지 받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하는
‘유대감’ 인식의 원천이다.
인간의 생존에 꼭 필요한 접촉 결핍으로 면역력이 떨어져서
생명의 유지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먹어야 살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할 때 발생하는
영양 실조의 현상과도 같다.
인간은 먹는 것만으로는 살 수가 없다.
서로 접속만하지 말고 직접 얼굴을 마주보고
피부와 피부가 맞닿는 접촉을 하라.
참고자료 : Touch, Tiffany Field, 2003, MIT Press
Touch
By Tiffany Field
An essay on the importance of touch to children's growth and development and to the physical and mental well-being of people of all ages.
A Bradford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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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An interesting, well-written book with an extensive bibliography.
Library Journal
Award
Winner in the 2002 AAUP Book, Jacket, and Journal competition for excellence in design in the category of Jackets.
Endorsement
In the hands of Tiffany Field, touch, 'the mother of the senses,' finds its muse. An engagingly written book coursing from the physiology lab to 'new age' therapy, Touch never fails to stimulate.
Lewis LeavittProfessor of Pediatrics and Medical Director, Waisman Center on Human Development and Mental Retardation,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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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view
Author(s)
Praise
Summary
An essay on the importance of touch to children's growth and development and to the physical and mental well-being of people of all ages.
The first sensory input in life comes from the sense of touch while a baby is still in the womb, and touch continues to be the primary means of learning about the world throughout infancy, well into childhood. Touch is critical for children's growth, development, and health, as well as for adults' physical and mental well-being. Yet American society, claims Tiffany Field, is dangerously touch-deprived.
Field, a leading authority on touch and touch therapy, begins this accessible book with an overview of the sociology and anthropology of touching and the basic psychophysical properties of touch. She then reports recent research results on the value of touch therapies, such as massage therapy, for various conditions, including asthma, cancer, autism, and eating disorders. She emphasizes the need for a change in societal attitudes toward touching, particularly among those who work with children.
화담 힐링 해외 의학계에서도 인정하는 터치 테라피>
2020/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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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1
대승비불설 - 나무위키
대승비불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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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편집]
2. 논의[편집]
그런데 근대에 문헌학에 기초해 연구해보니, 상좌불교의 (아함경 등) 팔리어 경전의 성립시기가 더욱 빠르다는 결과가 우세하게 나타났다. 다른 설도 존재하지만 대승불교 경전의 성립은 아함경 등 초기경전보다 몇백 년은 늦는다는 것이 일반론이 되었다. 여기에 기초하여 근대적인 '대승비불설'이 나타났는데, 대승불교 경전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승불교 측의 반론/호교론은 다음과 같다.
- 구전론: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경전으로 결집된 것 이외에도 다른 경로로 구전이 존재했고, 상좌불교 경전은 대승불교 경전과 전승한 집단과 경로가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즉, 대승불교 경전의 성립이 늦은 것은 단지 문서화가 늦었을 뿐이라는 것. 또한 인도에서는 이미 구전전통이 있었고 대승불교 경전의 가르침도 구전으로 전해졌음이 드러난다.
- 말하자면, 문헌학에 기초한 비판이나 본문을 비평해 연대를 추론한다고 해도 '대승불교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아니다'라는 증명은 할 수 없다. 성립연대가 늦었다는 것이 곧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필요충분적인 증명이라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 물론, 이 주장도 현재로서는 확고한 증거가 없기에 증명이 불가능하다. 문자로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석가모니는 대승불교의 가르침도 전파했다는 '믿음'을 품을 수밖에 없다. 인도나 티베트의 일부 사람은 석가모니와 몇몇 지배계급 출신 제자들이 산스크리트어에 정통했으므로, 소수 제자들에게 대승의 가르침을 전하고 이 법맥에서 산스크리트어로 비밀스럽게 전승하다가 후대에 문자로 기록했다고 믿기도 한다. 다만, 일부 출토된 프라크리트어 문헌을 볼 때 처음부터 산스크리어 전승되었을 가능성보다는 프라크리트어로 전승되다가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더욱 높다. 또한 모든 대승경전이 소수에게 전승되었다고 보기에는 대승경전의 양이 너무 많다. 또한 대승경전 중에서도 일부만이[3] 이른 시기에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 불성론: 대승불교의 특수한 관념으로, 모든 중생은 불성(佛性)이 있고 대승불교 경전도 불성에 따라서 만들어진 것이다. 예컨대 수행자가 명상으로서 만난 부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것이다. 가령, 무착(아상가)의 경우 수행 중 도솔천의 미륵보살에게 가르침을 받아 그 내용을 논서로 기록하였다.
이전부터 상좌불교에서는 대승불교 경전은 본래 없던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대승불교 측에서는 이상과 같은 논리로 반박했다. 근대 문헌학상으로 이것을 지지하는 근거가 나타나자 새로운 논의가 필요해졌다. 위경 관련으로 중국 불교 내부에도 많은 논쟁이 있었다. 중국에선 아함경, 법구경 등의 경전은 석가모니의 활동 초기에 근기가 낮은 중생을 위한 가르침으로 방편이었다고 하고, 후대에 나온 화엄경, 금강경, 법화경 등은 어느 정도 단계가 오른 중생을 대상으로 한 수승한 가르침이라는 식으로 정리했다. 당연하지만, 이런 분류는 실제 역사와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더구나 중국 불교 내에서도 후발 주자인 선종이나 유교나 도교 등에 공격받을 시기에 정통성을 확보하려고 많은 위경/위조 문헌이 만들어졌다.
3. 맹점[편집]
대승경전이 역사적인 불타의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에 불교를 믿지 않는다면 이는 참다운 신앙이 아니다. 그리고 신앙의 확립은 대승비불설론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대승비불설이 본격으로 처음 등장한 일본의 대승비불설 주장 세력은 초기 경전(숫타니파타, 법구경, 자설경, 아함경)만이 진실한 경전이고 다른 불설은 전부 부처의 직설(直說)이 아니라고 단정하여 결론하면서 많이 비판받았다. 당시 일본의 불교계 전체가 이 설을 내세운 학자들을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그 학자들도 이 탓에 평생 고생했을 정도였다. 물론 이때의 비판은 당시 불교계가 최신 문헌고증학의 연구 결과를 수용할 만한 수준이 되지 않았던 것이 더욱 컸으나 그 후 다음과 같은 비판들이 등장하였다.
1. 대승불교 경전이라고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관련이 전무한가?
대승비불설을 향한 가장 오래된 비판이다. 물론 현대에는 정말로 대승불교 경전들을 전부 석가모니가 설했다는 걸 믿는 학자는 없고, 승려들 중에서도 학문을 많이 연구하거나 이쪽에 관심있는 이들은 믿지 않는다. 현대에 이 비판은 대승불교 경전의 설립과 유관하다. 우리나라 조계종의 승려용 교육교재로 쓰이는 책이나 자료에도 학자들이 연구해 낸 경전 형성과정은 당연히 언급된다. 즉 현대 기준으로 제대로 교육받은 한국 승려라면 대승비불설이나 관련된 정보를 최소한 들어보기는 했어야 정상이다.
물론 대승불교 경전이 초기 경전보다 한참 뒤에 성립되었음은 사실이지만, 대승불교도 결국에는 석가모니의 제자들이 만든 것이고 기존 불교문헌과 연구를 근간으로 형성된 것이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대승불교에서 강조되거나 보이는 공 사상이나 불법승 삼보를 향한 공양사상이나 정토염불 신앙은 초기불전 중 아함경에도 나타나며, 초기 불교를 기반으로 생겨난 것이지 그냥 짠하고 독자스럽게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2. 상좌부 불교 문헌들은 비불설에서 자유로운가?
이것은 현대적인 문헌연구학을 이용한 불교문헌연구가 더욱 발달하자 나타났다. 남전불교 문헌도 연구 결과, 초기 경전이 대승불교보다 잘 전수되고 중시되어 왔음은 사실이지만, 상좌부 불교에서 전래되는 불경을 비롯한 불교의 여러 문헌 또한 후대에 여러 차례 첨삭과 증보개정을 거쳐 현재까지 이른다는 것은 문헌연구학상으로는 이미 정설이다. 이 때문에 일부 극단적 연구자들은 상좌불교 문헌이나 대승불교 문헌이나 학술상 정통성 면에서는 다를 게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과거 이 문제 때문에 한국에서 논쟁이 일어났다. 당시 팔리 경전의 정통성을 비판하는 쪽은 동국대학교 권오민 교수를 비롯한 기존학계였고, 팔리 경전을 옹호하는 사람은 마성 스님과 전재성 박사였다. 대체로 한국과 일본 학계에서는 권오민과 비슷하지만,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대승불교가 주류라는 점을 필히 감안해야 한다. 그러니 국제학계의 학설들을 알아보는 것이 더 객관적이다.
호주국립대학교의 J. W. de Jong은 팔리 경전의 상당부가 부처의 가르침을 잘 보존하였으나 후대에 전래되면서 일부가 변형됐다고 주장한다. 옥스퍼드대학교의 A. Wynne은 팔리 경전이 초기 불교의 가르침을 담고 부처의 가르침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방법이라고 주장한다.[5] 반면 페어필드의 Ronald Davidson은 후세에 많은 변화가 있었기에 현재 불경에서 부처의 가르침을 정확히 재구성하기는 불능하다고 주장한다. 캘리포니아의 Gregory Schopen처럼 아예 원시불교를 다룬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기에 현재로서는 석가모니의 본 가르침을 다룬 추론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이러한 논의들에서 알 수 있듯, 팔리 경전도 과연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지는 국제 학계의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거리이다. 현재로서는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만한 고고학상 근거가 부족하기에 명확히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
참고로 현존하는 불경 중 가장 오래된 간다라 불경 중에 대승경전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6][7] 다만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이 간다라 불경은 현재까지 남아 있는 불경을 기록한 문헌 중 그 존재가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이지 불경의 내용 자체가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 인도에 남아 있는 왕 아쇼카의 비문을 보면, 현존하는 팔리어 경전 일부가 인용된다.
4. 관련 문서[편집]
지금 불교계 화두는 ‘화두 수행’ 회의론
지금 불교계 화두는 ‘화두 수행’ 회의론
ㆍ“50년간 깨달음 20여명뿐”… 간화선 ‘시대와 괴리’ 논란
지난달 24일 합천 해인사의 선원(禪院) 개방이 화제를 낳았다. 참선을 체험하려는 일반인들이 줄을 이었고, 언론들은 ‘1200년 만의 첫 선방공개’라는 사찰 이벤트를 대서특필했다. 보도대로라면 불교의 참선 수행이 대중화될 날도 그리 머지않아 보였다.
그러나 외부에 비친 ‘매력적인’ 불교 선원문화와 달리 수행 스님들의 고민은 깊은 모양이다. 출가 경험이 있는 한 불교계 인사는 “최근 한 스님으로부터 ‘선방에 앉아 화두를 들고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라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 ‘간화선 수행’에 대해 회의를 갖는 수행자들이 적잖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 불교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외면한 채 과거의 관습을 답습하고 있다”며 “현실세계와 소통하지 못하는 불교에 대한 위기의식이 커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이러한 목소리는 불교계 내부에서 공론화하고 있다. 특히 한국 불교의 대표적 수행법인 ‘간화선(看話禪:화두를 들고 수행하는 참선 방법)’ 수행을 놓고 논란이 거세다.
한국 불교의 수행전통인 간화선이 시대의 문제의식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수행체계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전남 해남 미황사에서 참선하고 있는 재가불자들.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제공
불교 초기경전을 연구하고 있는 마성 스님(팔리문헌연구소장)은 계간 ‘불교평론’ 최근호에 기고한 ‘한국불교의 수행법, 무엇이 문제인가’에서 간화선 수행의 문제를 집중 제기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에서 펴낸 <간화선>에서는 “간화선은 조사선(祖師禪)의 핵심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수행법”이라며 “한국 불교가 자랑하는 최고의 이상이자 목표인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마성 스님은 올해 초 조계종 총무원이 올해의 역점 사업으로 ‘수행결사’를 제안한 사실을 상기하며, 수행 결사 제안이 조계종의 대표적 수행법인 간화선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와 함께 “간화선을 통해 수행한 스님들은 얼마나 많이 깨달음을 이루었는가?”라며 간화선의 깨달음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마성 스님은 도법 스님(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 추진본부장)의 글을 인용, 통합종단 출범 이후 지난 50여년간 조계종단 출가자 50여만명 가운데 깨달음에 이른 수행자는 20여명에 불과하다며 “간화선 수행을 통해 목적을 달성한 이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한국불교가 최고의 수행법으로 내세우는 간화선의 성적 치고는 초라하기 그지 없다. 마성 스님은 간화선 수행법은 물론 간화선 수행자의 태도에 문제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불교는 계(戒:계율)·정(定:참선)·혜(慧:지혜) 삼학(三學)의 일치를 추구하는 종교다. 그러나 한국 불교, 특히 간화선의 수행은 계율을 소홀히 하고 참선과 지혜를 통한 깨달음을 추구한다. 이 때문에 스님의 수행과 생활이 불일치되는 경향이 종종 나타난다.
마성 스님은 “선방 스님들마저 수행과 생활이 일치하지 않는 속에서 재가불자가 일생생활을 하면서 화두를 참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간화선의 대중화에 회의를 표시했다.
마성 스님은 ‘깨달음 신비주의’도 간화선 수행의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한국 불교에서는 깨달음의 정의가 정립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신비화되어 있다”며 깨달음을 ‘신비 체험’과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묵언정진(침묵 수행), 장좌불와(오랫동안 눕지 않고 수행), 동구불출(수행하는 선방이나 토굴 밖으로 나가지 않음) 등이 수행의 최고경지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이러한 신비주의와 관련이 있다.
간화선 수행의 문제점은 조계종단 내부에서도 제기됐다. 지난달 28일 조계종 교육원 주최로 열린 ‘현대 명상문화와 한국 선(禪) 문화’ 토론회는 요가, 단전호흡 등의 명상 수행법이 유행하는 가운데 간화선으로 대표되는 불교 수행법을 알리고 대중화하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됐다.
기조 발제자로 나선 수불 스님(안국선원장)은 지난 20여년간 재가불자들에게 참선을 지도한 경험을 바탕으로 간화선을 미래불교의 대안으로 부족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명상이 흙탕물을 고요히 가라앉히는 것이라면 간화선은 흙탕물 자체를 뽑아버린다”며 명상 프로그램이 스트레스 해소, 건강 추구 등 세속의 목표를 추구한다면 간화선은 열반, 대자유 등의 긍극적인 깨달음에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토론자들은 간화선의 수행법, 수행자의 자세 등의 문제를 집중 제기했다. 월암 스님(한산사 용성선원장)은 “한국 간화선의 문제는 오직 화두에만 매달리면 된다는 깨달음 제일주의에 빠져 무사안일에 침잠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좌선 형식주의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그는 선(禪)의 이론을 정립하고 간화선 전문인력양성기구를 설립할 것을 제안했다.
김태완 무심선원장은 “조계종은 선종을 표방하면서 선에 대한 교육이 충분치 않다”며 선 교육을 체계화할 것을 제안했다. 이제열 법사는 “선 수행자들의 경전무용론이나 기본 교설에 대한 공부 없이 신도들에게 화두를 던지고 깨달아보라는 식의 방법은 재고되어야 한다”며 선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간화선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최근의 간화선 논쟁은 아직 간화선 폐기나 무용론으로까지 나아가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전통 간화선이 시대정신과 동떨어져 ‘천년 전의 죽은 이야기’가 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높다. 월암 스님은 “시대의 절박한 문제의식이 없는 화두는 효용가치가 없다”며 “지금 여기 존재 자체의 실존적 문제에서 화두를 잡고 수행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조운찬 선임기자 sidol@kyunghyang.com
[경향신문 2011년 10월 13일]
기본 > 불교의이해 > 불교의식 총서에 대한 평론 (마성스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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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식 총서에 대한 평론 (마성스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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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門儀範)- 불교의식 총서
▶ 석문의범 - 마성스님 글
근기(根機)에 따른 불교의례
오늘의 한국불교에 있어서 재가 불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재가 불자를 위한 별도의 교육과정이 없기 때문에 일반 불자가 불교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각종 사찰의 행사에 동참했을 때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찰에서 진행되고 있는 행사는 불공과 제사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불교에는 행사와 제사는 있으나 진정한 의미의 법회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상당수의 사찰에서는 불공 · 기도 · 방생 등 각종 이름을 붙인 불사와 49재 · 천도재 · 위령재 · 수륙재 등 제사의례가 1년 내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불교가 이처럼 의례불교화(儀禮佛敎化) 된 것은 조선시대라고 할 수 있다. 배불정책하의 조선시대의 불교는 교학(敎學)의 부진, 교단의 쇠퇴 등으로 말미암아 상층사회에 포교의 기반을 잃어버리고, 그 대신 일반 민중을 대상으로 한 의례불교가 크게 성행했다.
하지만 18세기 이후 의례불교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의례요집(儀禮要集)의 새로운 정비가 몇 차례 이루어졌다. 그 대표적인 의식집으로 <범음집(梵音集)>, <작법구감(作法龜鑑)>, <동음집(同音集)>, <일판집(一判集)> 등이 있다.
그런데 근대에 와서 안진호(安震湖) 스님이 1931년 <석문의범(釋門儀範)>을 편찬했다. 이 <석문의범>이 곧 현행 한국불교의 '의식(儀式)'인 것이다. 석문의범은 상하 2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상편은 예경(禮敬) · 축원(祝願) · 송주(誦呪) · 재공(齋供) · 각소(各疏) 5장이고, 하편은 각청(各請) · 시식(施食) · 배송(拜送) · 점안(點眼) · 이운(移運) · 수계(受戒) · 다비(茶毘) · 제반(諸般) · 방생(放生) · 지송(持誦) · 간례(簡禮) · 가곡(歌曲) · 신비(神秘) 등 13장으로 편성되어 있다.
석문의범의 특징은 재래 불교의식집에서 강조한 의식음악인 범패(梵唄)의 기능보다는 지금까지 별도로 유행하고 있던 세분화된 의식문을 교리에 맞도록 합리적으로 간추려 재편성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중에는 아직도 비불교적인 요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정비가 요망되고 있다.
사실 불교의례는 자행의례(自行儀禮)와 화타의례(化他儀禮)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자행의례란 수도(修道)를 위한 수행의례이고, 화타의례란 기원의례 회향의례 등을 말하는 것인데 이는 출가자가 재가자의 의뢰에 의하여 가지(加持)나 기도를 하고 그 선근(善根) 공덕을 사자(死者) 혹은 일체 중생에게 회향하는 의례를 말한다.
여기서 석문의범의 예경 · 축원 · 송주 등은 모든 불자가 조석으로 행해야 할 자행의례이지만, 기타 시식 · 다비 · 방생 등은 화타의례에 속한다.
그런데 안진호 스님이 석문의범을 편찬하게 된 동기가 서문(序文)과 범례(凡例)에 나타나 있다. 이에 의하면 첫째 의식은 상근기(上根機)를 위한 것이 아니고 중류(中流) 이하의 근기를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며, 둘째 의식은 어디까지나 방편문(方便門)이라는 것이다. 염불과 참선도 방편인데 하물며 의식은 말할 나위 없이 방편 중에서도 방편임은 자명(自明)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불타 재세시의 교단 형태를 거의 원형 그대로 전승하고 있는 남방 상좌부 불교에서는 자행의례는 있으나 화타의례는 찾아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불교라는 종교가 발생하게 된 비경에서도 나타나 있다.
불타 재세시 인도에는 바라문교가 크게 성행하고 있었다. 바라문교는 철저한 계급제도 위에서 출발한 것이며, 종교적으로는 제사만능주의였다. 이러한 때에 활동한 석가모니 부처님은 성도 후 중생을 교화함에 있어 재래 바라문교, 즉 힌두이즘(Hinduism)에 정면으로 반박하였는데, ①계급을 반대했고, ②제사를 반대했으며, ③관념적 명상을 반대했고, ④행의식주의(行儀式主義)를 반대했으며, ⑤주정주의(主情主義, emotionalism)를 반대했고, ⑥ 비합리적인 고전(古典: 베다 등)을 반대했다.
이러한 초기불교의 가르침이 어떻게 해서 변질되었는지 살펴보자. 일본의 불교학자 죽중신상(竹中信常)에 의하면, 불교교리는 3단계의 계정(階程)으로 변했다고 한다. 첫째는 자율자수(自律自修)의 수행 단계이며, 둘째는 수행의 공덕을 인정하고 자타공수(自他共修)의 형식을 취하는 단계이고, 셋째는 그 공덕을 타인에게 혹은 사자(死者)에게 회향하기 위하여 승려에게 의뢰하여 타수적(他修的)으로 추선공양(追善供養) 하는 단계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불교의식도 교리변천과 함께 대자적(對自的) 단계에서 대타적(對他的) 단계로 변해 갔음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방편문인 의식이 현재 한국불교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면 이는 어딘가 모르게 주객이 전도된 것이 아닐 수 없다.
불타의 가르침은 수행과 포교를 통해 전승된다. 그러므로 사찰의 기능 또한 수행과 설법의 장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법회가 모든 불교의식보다 우위에 서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불교의식의 무용론(無用論)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에 있어서 의례가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의례는 어디까지나 방편이지 본래의 진실한 교법(敎法)이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도한 한국불교에서 행하고 있는 각종 제사의례는 분명 불타의 진의(眞意)에 위배되는 것임도 알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법(法)에 의지(의지)할 것이냐 방편문인 의례에 의지할 것이냐, 의례에 의지한다면 자행의례에 의지할 것이냐 아니면 화타의례에 의존할 것이냐는 그 사람의 근기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출처] 사단법인 대한불교삼보회 삼보정사 삼보사이버불교대학 - http://www.sambobuddha.org/bbs/board.php?bo_table=qna&wr_id=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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