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16

[話題의 인물] 丹學선원의 李承憲 : 월간조선

[話題의 인물] 丹學선원의 李承憲 : 월간조선
07 2001 MAGAZINE

[話題의 인물] 丹學선원의 李承憲
丹學선원의 李承憲(새천년 평화재단 총재) 巨大 네트워크… 美國에도 진출, 확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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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15년 만에 국내 300, 해외 50여 개의 수련센터 운영. 延100만명이 거쳐갔고 매일 새벽 全國 3000여 개 공원에 수련장, 정부기관·기업·대학內에 160여개의 수련장. 태권도에 이은 文化 수출 상품이 될 것이란 전망도. 시인 金芝河씨의 비판, 단군상 건립운동에 대한 기독교의 반대운동, 宗敎가 아니냐는 시각도 존재
  미국의 丹學 바람
 
 
  丹學(단학)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명상 수련법이다. 그것을 현대화하고 과학화, 체계화하여 대중적인 상품(?)으로 만들어 내놓은 사람이 一指 李承憲(일지 이승헌·52) 새천년 평화재단 총재. 1985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현재 이 전통적인 명상 수련법은 이미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던 인도의 요가나 서양식 명상법인 마인드 컨트롤, 그리고 같은 전통 명상법인 몇 가지 종교 및 단체들을 제치고 명상 수련법의 宗家(종가)로 자리를 잡았다. 국내에 수련원만 300개, 참가연인원 100만명이 넘을 정도로 그 전파 속도는 빠른 편이다.
 
  2000년 11월20일 李承憲씨의 새로운 저서 「힐링 소사이어티(Healing Society-A Prescription for Global Enlightenment)」가 미국의 메이저 출판사인 햄프턴 로즈社에 의해 간행됐다. 발간 한 달 만인 12월25일에는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www.amazon. com)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섰다.
 
  지금까지 미국에 상륙하여 대중적인 바람을 일으켰다가 사라진 동양의 靈的 가르침과 수련법들이 빠져 있었던 신비주의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것이 丹學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한국의 오랜 전통 사상인 단군의 弘益人間(홍익인간) 理化世界(이화세계)의 이념과 신선사상을 골간으로 하고 여기에 현대문명의 꽃인 과학을 융합시켜 만들어낸 상품이 곧 丹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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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丹學이 미국에 상륙한 것은 1991년이었다. 이해 10월 필라델피아에서 해외에서는 처음으로 丹學선원이 개설된 이래 현재까지 캐나다·일본 등 해외에 설립된 丹學선원은 모두 50개, 이 중 절반이 미국에 있다. 미국에서의 丹學 바람이 예상 외로 빠른 속도로 불기 시작하자 李承憲 총재는 1997년 9월 애리조나州 북부 고원지대의 작은 도시 세도나에 丹學센터를 세우고, 이곳을 미국 내 丹學 보급의 중심으로 활용해 오고 있다.
 
  세도나는 인구 2만의 작은 도시이기는 하지만 명상 수련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메카처럼 잘 알려진 지명이기도 하다. 특별한 지형, 지세 때문에 예부터 「氣가 센 땅」으로 알려진 세도나에서는 수많은 UFO가 목격되어 외계인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선호하는(?) 땅으로 일찌감치 점찍은 곳. 인도의 요기(요가 수행자)들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자칭 타칭 道人, 선각자들이 모여들어 氣를 겨루는 한판의 결전장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지금도 요가를 비롯한 각종 명상 단체들 약 30개가 이곳에 본부를 두고 활동중이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현재, 丹學선원의 미국 내 회원은 10만명으로 늘어났고 세도나의 丹센터는 명상 수련의 새로운 상징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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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丹學선원 관계자들은 『태권도에 이어 두 번째로 미국 상륙에 성공한 문화상품이다』라고 말한다.
 
 
  병약하고 번뇌가 많았던 소년
 
 
  李承憲 총재는 6·25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 충청남도 천안에서 교육자인 부친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집안은 비교적 넉넉한 편이었다. 어릴 적 몸도 약하고 잔병치레가 많았던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이상한 경험을 한다. 추운 겨울날 아침, 할머니 생신을 맞았는데 미리 고기를 사다놓지 못한 어머니가 쩔쩔매는 것을 보고 십리나 되는 길을 눈 속에 걸어 고기를 사가지고 오는데 추위도 느끼지 못했고, 보통 때보다 훨씬 빨리 돌아올 수 있었다.
 
  곤란한 처지를 당한 어머니를 돕는다는 뜨거운 마음이 예상치 못한 힘을 발산하게 만든 것이었다. 누구나 어려움에 빠지거나 큰 사랑의 마음을 내었을 때 흔히 경험할 수 있는 「氣 체험」이지만 이 경험이 李承憲에게는 그후 두고두고 의문으로 남아 결국은 스스로 그 의문을 풀고 丹學을 완성하는 단계까지 이끌어간다.
 
  그 인연을 李承憲 총재 자신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릴 때부터 번뇌가 많았습니다. 늘 幻廳(환청)과 환각에 시달렸어요. 학교에 가서 교실에 앉으면 선생님의 강의가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보면 「아, 이 사람은 어디가 아프구나」 하는 느낌이 와요. 노트 한 권 제대로 쓰지 못하고 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글자는 비뚤거리고 엉망이었지요. 시골에서 자랐기에 다행이지, 서울에서 그렇게 살았으면 어릴 때부터 정신분열증 환자 취급을 받았을 겁니다. 학교에 가면 그 모양인데 공동묘지에 드러누우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요. 내 속에서 일어나는 像(상)과 뇌의 기능이 어긋나 전파장애가 온 것 같은 그런 현상이라고나 할까』
 
 
  달을 보고 걷다가
 
 
  그가 여자였다면 「神氣가 있다」 하여 내림굿을 하고 점쟁이나 무당이 되었을 법한 그런 기질이었던 것 같다.
 
  『중학교부터 천안 시내에서 하숙을 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다 주먹이 센 친구 세 명에게 모자를 빼앗기고 안 죽을 만큼 얻어맞았어요.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달이 떠 있었으니까. 그때부터 맞는 것이 두렵지 않더군요. 부모에게 부탁하여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공부는 집중이 안 되는데 운동은 집중하지 않으면 내가 얻어맞으니까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무섭게 집중하여 태권도를 익히니 실력이 늘어 일년 뒤에는 나를 두들겨 팬 세 녀석을 차례로 불러내 갚아주었지요. 이때부터 무협소설과 만화에 빠져들었습니다. 소설과 만화에 나오는 요가가 어떻고 내공이 어떻고 하는 일들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차크라니 뭐니 하는 명상 수련법을 순서도 안 틀리고 모두 외웠으니까요.
 
  이러한 나를 보고 부친이 너무나 실망하는 모습에서 나도 비로소 철이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再修(재수)를 해서 서울보건전문대학교 임상병리학과에 들어갔어요. 졸업 후에는 다시 체육관(태권도장)을 열어 경영하면서 부친의 도움 없이 이번에는 단국대학교 체육교육학과(야간)를 졸업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도 하고, 軍에도 갔다 오고, 이어서 오산 기독병원 검사실장, 병리실장, 화성군 보건소 공해담당관 등을 거치면서 평범한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아들도 태어났고요』
 
  평범한 家長으로 열심히 살고 있던 어느 날 귀가길에 달을 보고 걷다가 그는 문득 「이렇게 살다가 갈 수는 없지 않느냐」는 내면의 소리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면서 울컥 서러운 생각에 잠긴다. 그로부터 얼마 뒤 책을 사러 청량리에 있는 고서점에 들렀다가 「태극권」이라는 불에 타다 남은 낡은 책을 발견하고 그 내용을 읽게 된다. 문득 그 낡은 책 속에서 「禪(선)을 통해 氣를 터득하면 천하 무적이 된다」는 구절을 읽고 감전된 것처럼 격심한 충동을 받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느꼈던 그 이상한 느낌이 오랜 세월을 건너 다시 찾아온 것이었다.
 
 
  『천지와 나는 둘이 아니다』
 
 
  「뭔가가 있다. 내가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것을 모르고 이대로 살다가 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백일기도에 들어갔다. 직장에 다니고 있었으므로 새벽 시간을 통하여 산에 올라가 명상에 돌입한 것이었다.
 
  누구의 지도도 받지 않고, 오랜 세월 책에서 보고 배운 대로 「이럴 것이다」 하고 스스로 생각했던 그런 방식으로 「기도」를 시작한 것이었다. 목표로 했던 백일이 되기 며칠 전 새벽 영하 20도의 혹한 속에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얼어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생명을 포기해 버렸을 때 내면으로부터 무서운 元氣(원기)가 폭발하는 것을 체험했다.
 
  온몸에서 김이 나고 앉았던 자리 주변의 눈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內氣(내기)를 터득한 것이었다.
 
  그 후 그는 새벽 3시에 어김없이 일어나 안양 뒷산 자신의 수련장에 앉으면 눈앞에 밝은 광채가 나고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이는 氣의 흐름을 체험했다. 이런 현상이 무엇인지 스님을 찾아가 물었으나 대답을 듣지 못한 그는 스스로 자신의 체험에 運氣心功(운기심공)이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뒤에 이같은 체험은 丹學의 수련체계를 만들면서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氣를 움직이는 이른바 내공을 터득하기는 했으나 그것으로 삶이 달라진 것은 없었다. 삶과 죽음의 문제,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자신의 결심을 전하고 처가가 있던 전주 모악산에 들어가 21일 간의 단식수련에 들어갔다. 물만 마시고 눕지도 자지도 먹지도 않는 死生결단의 고행이었다. 몸 안의 생명이 소진되고 삶을 포기할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내 몸은 내가 아니라 나의 것이다』
 
  일상적인 나와 불변하는 眞我(진아)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니고 천지와 내가 하나가 되어 함께 호흡하고 있는 것을 비로소 터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깨닫고 보니 天地의 운행은 그대로이고 나의 삶도 변한 것이 없었다. 결국 그는 「아무것도 깨달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옛 조사 스님들의 깨달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주 합일의 깨달음은 동양에서는 그다지 새로운 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깨달음을 체계화하기 위하여 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노력을 한다. 책을 보고 道人을 찾고 명상을 거듭한다. 이때 「天符經(천부경)」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우연히 「천부경」을 보는 순간 그는 자신이 해냈던 일, 자신이 갔던 길을 이미 수천년 전에 우리 조상들이 이루어낸 일, 그들이 갔던 길임을 알고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이 놀라움은 기쁨이었다.
 
  깨달음의 세계와 단군의 사상 및 그 후예들의 수련방법이 같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의 「선택」은 끝난 것이었다. 자신이 발견한 인간과 우주의 비밀 위에 단군의 홍익인간 理化세계의 이념이 결합되면서 丹學은 全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인간완성학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丹學이라는 전통적인 仙道(선도)가 李承憲 총재에 의해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한 과정은 대강 이런 것이었다. 여기에는 태권도 4단의 무술 실력이 크게 도움이 됐고, 인간의 신체와 氣의 존재 및 작용을 체계화하는 데에는 임상병리학의 지식도 쓸모가 있었다.
 
 
  필라델피아에서 세도나까지
 
 
  그가 자신의 깨달음을 체계화하고 있던 1983년, 어느 날 집에서 가까운 안양의 공원에 나가 단전호흡을 하고 있는데 새벽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그는 관심을 보인 사람들을 불러놓고 단전호흡과 行功의 여러 동작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배우려는 사람들은 날마다 늘어났다. 그로서는 자신이 만들어가고 있는 수련법을 현장에서 적용하면서 수정 보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었고, 또한 丹學의 보급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었다.
 
  丹學을 이해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좀더 널리 보급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고, 그런 뜻을 가진 여덟 사람이 힘을 합해 서울 신사동에 25평 크기의 도장을 마련, 최초의 丹學선원을 열었다. 동양적인 정신 수련법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수행의 어려움과 결과의 불투명성 때문에 주저하고 있던 사람들이 丹學선원으로 몰려왔다.
 
  15년이 지난 현재 국내에 300여 개, 해외에 50여 개의 丹 센터가 설립 운영되고 있고, 1500명의 丹學 지도자가 양성되어 국내외의 일선에서 뛰고 있다. 현재 수련 중인 회원의 수는 10만명, 그동안 거쳐간 회원의 수는 100만명이 넘는다. 이들 丹學선원(丹센터)에서의 수련은 유료이다. 그러나 유료 수련에서 번 돈으로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무료 수련 지도를 행한 것이 丹學 보급의 속도를 빠르게 한 원인이었다.
 
  전국의 3000여 개 공원에서의 새벽 수련 지도를 비롯하여 학교와 복지시설 등지에서 행한 丹學 수련 지도가 그것이다. 나아가 전국 160여 개의 단위 부대, 정부기관 및 기업체 내의 丹學수련장 운영, 60여 개 대학에 丹學 동아리 지원도 하고 있다.
 
  1991년 필라델피아에 丹센터를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丹學의 본격적인 해외 진출의 시대가 열렸다. 여기에 뇌호흡의 날개를 달면서 丹學의 창시자 李承憲 총재는 일약 세계적인 靈性(영성) 지도자로 浮上했다. 미국에 건너간 李총재의 야심은 당연히 「丹學의 세계 정복」이었다. 1997년 세도나에 丹센터를 설립하여 해외 전파의 기지로 삼는 한편 1999년에는 「제1회 세계정신지도자와 석학과의 만남」을 개최하고 2000년에는 새천년 평화재단(NMPF)을 설립하여 총재직에 올랐다. 같은 해 8월에는 유엔이 개최한 「밀레니엄 종교 및 영성 세계평화정상회의」에 아시아 및 한국 대표로 참석하여 대표 기도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는 6월15일부터 17일까지 새천년평화재단 주최로 서울에서 「제1회 휴머니티 컨퍼런스 - 지구인 선언대회」를 개최한다. 이 대회에는 지난번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던 앨 고어가 참석한다. 앨 고어의 국제행사 참석은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처음 갖는 일이다.
 
 
  정체성과 경영의 문제
 
 
  한편 丹學의 국내 활동에는 약간의 장애가 발생했다. 丹學선원의 정체성과 禪院 경영의 문제를 놓고 의혹이 제기 되었고, 이로 인한 내부적인 갈등이 표출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또한 단군숭모운동의 일환으로 전국 초등학교에 단군상을 건립하기 시작한 것이 일부 기독교 교파의 심각한 반대와 저항을 불러일으키면서 사회적인 문제로 비화했다.
 
  먼저 丹學선원의 정체성 문제. 이 문제와 관련하여 가장 두드러지게 표출된 의문은 『丹學이 종교가 아니냐. 丹學선원이 종교단체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丹學은 스스로 문화운동, 나아가 문화상품임을 표방하면서 선원의 운영방식도 주식회사의 형태로 하는 한편 회원의 수련은 원칙적으로 유료로 해 왔기 때문에 만약 丹學이 종교라면 심각한 이율배반에 빠지게 된다. 상식과 관습, 법률상으로도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세무서와 같은 국가기관에서는 丹學선원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 난감해 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세무서와 같은 곳에서는 丹學선원을 종교단체도 아니고 문화 예술단체도 아닌 서비스업으로 분류하여 세금을 징수하는 편법을 쓰고 있다.
 
  운영방식도 종교단체와는 다를 뿐만 아니라 특정한 神에 대한 믿음이 없고, 교주도 존재하지 않는다. 창시자인 李承憲 총재에 대한 우상화, 신격화 작업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는 간부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전체적인 조직의 성격이나 李총재 개인의 취향 모두 이같은 「타락」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이 대부분의 회원, 간부들의 주장이다. 무엇보다도 丹學은 내세의 삶과 구원을 얘기하지 않는다.
 
  얼른 보면 丹學은 여러 종교와 사상에서 이것저것 빌려와서 혼합해 놓은 것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단군을 숭모하고 「천부경」을 우주와 세계관의 근간으로 삼는 것은 전통 종교인 대종교 등과 유사하고, 수련방법은 신선도를 이었으며, 깨달음은 불교와 유사하고, 인류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는 것은 기독교와 닮았다.
 
 
  金芝河의 비판
 
 
  이같은 정체성의 문제와 관련하여 詩人 金芝河씨가 丹學선원을 정면으로 공격하면서 결별을 선언한 사건이 있었다. 金씨는 한동안 丹學에 심취하여 스스로의 건강 회복에도 많은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丹學측의 사상적인 체계나 운영방식에 회의를 품고 공식적으로 결별을 선언한 것이었다. 이에 李承憲 총재는 金씨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했으나 지난해 고소를 취하했다.
 
  丹學선원에게 쏟아진 또 하나의 의혹은 돈의 문제. 주식회사 丹學선원의 절대다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李承憲 총재가 단체의 수익금과 재산을 개인적으로 전횡할 수 있다는 당연한(?) 의심이 그것이었다. 李承憲 총재는 지난해 10월 개천절을 기하여 1000억원에 이르는 자신의 소유지분을 몽땅 민족정신교육기관에 기증하고 경영권도 직원들로 구성된 경영위원회에 위임, 자신은 새천년 평화재단 총재의 역할에만 전념키로 한다고 발표했다.
 
  필자는 지난 4월26일 광주에서 처음 李承憲 총재와 만나 丹學과 李총재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어 5월3일 서울 신사동의 한국인체과학연구원에서 두 번째로 만나 일반인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문제들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나누었다.
 
  ―丹學에서도 불교에서와 같이 인간의 靈的인 진화의 목표를 깨달음에 두고 있습니다. 깨달음이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종교들이 말해온 구원이나 깨달음의 경지가 아득히 높아 보통 사람들이 이르기 어려운 산봉우리에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 속에서는 누가 구원을 받았는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는지 검증할 만한 객관적인 기준이 없고 오로지 내면적인 현상에 그쳤던 것이지요. 그래서 나는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인류의 삶에 도움이 되는 윤리적인 선택이야말로 진정한 깨달음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병들고 고통받고 있는데 내세만 얘기하는 것은 「종교」의 할 일이고 삶을 바꾸고 세상에 평화를 실현하고 망가지고 있는 사회와 지구를 치유하는 것은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일입니다』
 
  ―총재께서는 깨달았습니까.
 
  『내가 깨달았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나는 「깨달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깨달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중요한 것은 깨달음이 무엇이냐는 원론적인 문제에 매달려 한평생을 소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기능으로서 작용하느냐 안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기독교와 불교가 구원 또는 깨달음의 경지를 내세워 2000년 이상 세상을 지배해 왔으나 세상은 늘 이 지경이었습니다. 지구 인구의 20%가 하루 1달러 이하로 살고 있고, 1000만명의 아이들이 5세 이하의 나이에 죽어가고 있는데 구원과 깨달음은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겁니까』
 
 
  『來世보다는 오늘이 중요』
 
 
  ―총재께서는 보통 사람으로는 하기 힘든 수련을 스스로 했고, 그 결과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장차 무엇이 되려는 목적과 야망을 가지고 그런 고행과 수련을 했습니까.
 
  『깨달은 후에 처음 한 일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건강법을 알려 주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그런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깨달음을 물은 것도 아니고, 다만 그들이 몸이 아픈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건강법을 알려 주었고, 때때로 그들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한 것이 法文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이 계속되다 보니 생활 속에서 저절로 정신운동으로 발전된 것입니다. 결국 나에 대한 자각을 얻은 다음 그 시대의 요청에 따라 반응한 것뿐이며 결코 무엇이 되려고 한 적도 없었고, 지금도 없습니다』
 
  ―死後세계의 존재를 믿습니까.
 
  『극락이니 천당이니 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내 관심은 이 세상에 있습니다. 오늘 자다가 내일 다시 눈을 뜰 수 있을지 아닐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온 세상의 평화와 행복한 삶을 전파하며 다니는데 과연 지구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아닐까, 솔직하게 말해서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내 생명의 에너지를 다하여 바람직한 삶이 이런 것이다 생각한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나는 예수의 「너희는 항상 기뻐하라. 그리고 사랑하라」는 말을 가장 좋아합니다. 가슴에 닿는 가르침이지요』
 
  ―종교와 정치는 태생적으로 뿌리가 같아서인지 권력지향적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은 이것을 부인하고 싶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종교는 매우 권력지향적입니다. 丹學은 종교가 아니고, 李총재 역시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고 하나 만약 뒷날 李총재를 따르던 사람들이 이 단체를 종교적인 색채로 변화시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타락이지요. 타락한 정신은 생명력이 없습니다. 내가 모악산에서 깨달음을 얻고 나니 가까운 암자의 할머니가 「모악산에서 道人 나왔다」고 좋아해요. 스님이 찾아와 날더러 미륵이라고 삼배합디다. 「미륵을 알아 보니 당신도 미륵」이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또 무슨 신흥종교 교단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찾아와 날더러 「당신이 정도령」이라고 그래요. 정도령이든 무슨 도령이든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실망해서 돌아갔는데 나중에 보니 그 사람이 무슨 종교를 만들었더군요. 거듭 말하지만 나는 절대로 종교 만드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인류 평화의 양대 장애물이 국가와 종교라는 내 신념에 변함이 없어요. 다만 이런 단체를 대물림하면 권력의 속성상 저절로 종교적인 색채로 가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작년에 丹學선원의 조직을 해체하고 지분을 교육사업에 양도하고 운영권을 전체 회원들에게 넘겨 준 것입니다』
 
  ―丹學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仙道, 또는 風流道(풍류도)의 맥을 이었다고 보겠는데 중국에서 건너온 도교와는 어떻게 다릅니까. 또 최근 중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法輪功(파룬궁)과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도교는 그 목적이 장생불사에 있었으나 우리의 신선도는 영적인 완성에 목적이 있었지요. 근본이 다릅니다. 파룬궁하고 비교하려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파룬궁은 종교단체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우리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金芝河씨와의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것처럼 알려졌는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金芝河씨가 건강상 무척 어려울 때 丹學선원이 크게 도움이 되었는데… 서로 갈 길이 달랐던 거지요. 이제 고소도 취하했고, 아무런 찌꺼기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끝난 일이지요』
 
 
  미국의 심령과학자 태반은 무당 수준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丹學을 세계로 퍼뜨린다는 계획은 옳은 선택인 것 같습니다.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丹學의 국제적인 경쟁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미국이 현대 靈性운동의 용광로라면 그 중에서 세도나는 핵심에 해당되는 지역입니다. 나름대로 한 소식 했다는 사람들이 모두 세도나에 몰려들고 있어요. 바로 그 세도나에서 丹學의 경쟁력은 최곱니다. 그곳에 가보니 영적 능력자들이 많기는 한데 모두 우리나라의 무당 수준이에요. 모두들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고 자칭 심령과학자들이라고 하는데 죽은 전처를 불러내어 대화하거나 山神하고 대화하는 등 철학이 없는 낮은 수준의 무당들이 大宗을 이루고 있습니다.
 
  丹學의 수련은 최종적으로 인간 완성에 있는 만큼 단단한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전통의 사상에서 나온 철학이지요. 그것이 세계적인 보편성을 얻어가고 있으니 놀랍고도 즐거운 일 아니겠습니까. 어쨌든 미국은 노려볼 만한 땅입니다』
 
  ―미국에서 丹學선원을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전에 요가나 티베트 불교에 심취했던 사람들, 즉 靈性개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겠지요?
 
  『80~90%가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곳 저곳 계속 찾아봐도 진정한 道가 보이지 않는다고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요즘은 티베트 불교에서 온 사람들이 많아요. 그들은 「깨달음」을 갈구하며 방황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당신은 이미 깨달았다. 이미 깨달았으니 바른 생활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세상이 바뀐다. 이 목표를 가지고 함께 나가자」고 합니다』
 
  ―靈的 지도자들에게는 적당한 카리스마와 신비적인 요소가 필요한데 총재에게도 그러한 요소가 있습니까.
 
  『내 생활 자체가 나 자신입니다. 말만 따로 하고 행동이 다른 것이 없고, 그 모든 살아가는 과정이 유리처럼 투명하게 들여다 보이게 살고 있습니다. 카리스마가 어디에 있고, 신비가 어디에 붙겠습니까』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李총재는 게송 하나를 읊었다.
 
  『산은 깊고 물은 높다/단군의 팔뚝은 가늘고 어린아이의 다리는 굵구나/천년 묵은 용이 미꾸라지에게 잡아먹힌다/초생달 옆에 있는 저 보름달은/언제부터 대지를 비췄는가』
 
  겉으로는 조용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속으로 강한 의욕을 숨기고 있는 이 남자가 어떤 일을 해낼지는 앞으로 좀더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