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30

알라딘: 왕의 한의학 - 낮은 한의사 이상곤과 조선 왕들의 내밀한 대화 이상곤 2014

알라딘: 왕의 한의학


왕의 한의학 - 낮은 한의사 이상곤과 조선 왕들의 내밀한 대화 
이상곤 (지은이)사이언스북스201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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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최근 『조선왕조실록』 우리말 완역 이후 『승정원일기』 등에 대한 번역과 전산화 작업이 진척되면서 왕의 육체를 둘러싼 연구가 활기를 띠고 있다. 이번에 (주)사이언스북스에서 펴낸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의 『왕의 한의학: 낮은 한의사 이상곤과 조선 왕들의 내밀한 대화』는 바로 이런 학문적, 콘텐츠 산업적 연장선상에서 출간된 책이다.

전작 『낮은 한의학: 알기 쉽게 다가오는 한의학의 지혜』를 통해 대중의 눈높이에서, 현대인의 건강 수요에 맞춰 한의학의 오래된 역사와 지혜를 소개한 바 있는 이상곤 원장은 이번 책 『왕의 한의학: 낮은 한의사 이상곤과 조선 왕들의 내밀한 대화』에서 조선 한의학의 지식과 기술의 정수가 응집되어 있었을 조선 왕실의 의료와 의학, 그리고 그 발전 과정을 소개한다.

이상곤 원장은 왕들의 질병 및 치료 기록이 비로소 분명해지는 태종, 세종 때부터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 때까지 실록 및 아직 번역되지 않은 영역이 더 많은 『승정원일기』와 『약방일기』 등의 왕실 의료 관련 기록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해독해 가며 조선 왕실의 의학, 즉 ‘왕의 한의학’의 비밀을 파헤쳐 간다.


목차


머리말 조선 왕의 몸은 역사보다 정직하다 7

1부 왕의 시대, 권력과 스트레스의 쳇바퀴에서

1장 세종: 위대했던 리더의 너무나 슬픈 육체 19
2장 문종: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왕의 질병 39
3장 태종과 세조: 질병으로 읽는 매정한 권력자들의 속마음 55
4장 성종: 성군으로 기억되는 주색 밝힌 밤의 황제 75

-이상곤의 왕의 한의학 특강 1 조선 왕실은 어떻게 진료하고 치료했는가 92

2부 사림의 시대, 구중궁궐 속 왕들의 내밀한 한의학

5장 연산군: 정기 누설 일삼은 시대의 색골 101
6장 중종: 대장금과 조광조에서 중종의 두 얼굴을 보다 119
7장 인종과 명종: 성리학은 왕에게서 건강할 권리도 빼앗았다 137
8장 선조: 사림과의 신경전이 준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157
9장 광해군: 무속과 여색에 빠진 왕이 된 남자 173
10장 인조: 조선의 미래를 바꾼 저주 타령 191

-이상곤의 왕의 한의학 특강 2 조선 왕실의 사랑을 받은 명약들 213
-이상곤의 왕의 한의학 특강 3 조선 왕들의 건강 비결, 식치와 온천욕 219

3부 당쟁의 시대, 음과 양의 조화를 한낱 꿈일까

11장 효종: 허장성세의 약골 임금 227
12장 현종: 만병에 시달린 스트레스 증후군 환자 243
13장 숙종: 간 질환 달고 산 뒤집기 정치의 달인 263
14장 경종: 간질과 비만에 시달린 왕, 게와 감을 먹고 절명하다 281
15장 영조: 평생 인삼을 입에 달고 산 조선 최장수 왕 299

-이상곤의 왕의 한의학 특강 4 조선 왕 독살 사건의 진실 316

4부 조선의 황혼, 사라져 가는 왕의 한의학

16장 정조: 한의학의 대가였던 임금, 인삼 든 경옥고 먹고 절명 331
17장 순조: 심담허겁의 임금, 절체절명의 왕조 355
18장 헌종과 철종: 종마로 살아야 했던 불쌍한 왕들 375
19장 고종: 뇌일혈로 세상 떠난 망국의 황제 395
-이상곤의 왕의 한의학 특강 5 근대 한의학의 도전과 응전 414

추천사 422 / 조선 역대 왕들의 주요 질병과 사망 원인 428
참고 문헌 430 / 찾아보기 433
접기


책속에서


정치적, 경제적 사건이나 시대 정신의 변화는 조선 왕의 몸과 마음에 흔적을 남겼다. 커다란 사건이나 심한 변화는 왕의 몸과 마음에 충경을 주었고, 이것은 바로 질병으로 이어졌다. 왕의 몸은 바로 조선 역사의 바로미터다. 사실 마음은 숨길 수 있지만 몸은 정확하게 반응한다. 왕의 몸은 너무나도 정직하기 때문이다. 왕의 몸과 그 몸을 괴롭힌 질병의 기록이 바로 조선 역사의 거울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8쪽) 접기 - 바람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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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북스 2014년 12월 13일자 '북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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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신문 2014년 12월 18일자 잠깐독서



저자 및 역자소개
이상곤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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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박사. 한방 안이비인후피부과 전문의. 대구한의대학교 교수, 동 대학 부속 한방 임상 시험 센터 부센터장, 한의사 국가 고시 출제 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수서갑산한의원 원장이며 한방 안이비인후피부과 학회 상임 이사로 재직 중이다. 동서양 철학과 사상, 역사에 이르는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동아일보》, 《신동아》,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칼럼을 연재하며 이비인후과 분야의 한의학적 지혜를 깊이 있게 설명하고 있다. 저서로는 <낮은 한의학>, <왕의 한의학>, <신한방임상이비인후과>, &l...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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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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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개의 작동 원리>,<해양>,<희망의 책>등 총 308종
대표분야 : 과학 1위 (브랜드 지수 1,407,116점), 심리학/정신분석학 5위 (브랜드 지수 150,938점), 환경/생태문제 8위 (브랜드 지수 14,971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조선 왕의 질병 속에서 역사의 비밀을 읽는다!
조선 왕들의 몸을 진단하고 현대인들의 마음을 처방한다

최근 조선 시대를 무대로 한 사극 붐이 뜨겁다. 여름에는 극장가에서 이순신의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 「명량」이 1500만 관객을 돌파했고, 가을과 겨울에는 텔레비전에서 사도세자의 비극을 다룬 「비밀의 문」, 광해군의 왕위 계승 이야기를 다룬 「왕의 얼굴」 등이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출판계에서도 조선 시대는 스토리텔링의 보고로 각광을 받고 있다. 만화 『조선왕조실록』 시리즈가 100만 부를 돌파하고 정치사에서부터 민중사, 그리고 미시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조선 역사 관련 서적들이 빈번하게 출간되며 출판 불황 속에서도 조선 시대사 관련 출판 시장은 나름의 성장세를 유지해 가고 있다. 이것은 1990년대 초?중반 『조선왕조실록』의 국역 완료 이후 그 범위와 깊이를 확대해 가고 있는 조선 시대 연구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의 기록 문화 유산인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조선 왕들의 모습은 다채롭다. 『조선왕조실록』을 만든 사관들은 태조부터 순종까지 27대 조선 왕들의 삶과 정치적 행위 등 모든 것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당시의 정치.경제.사회적 상황에 휘둘리고, 왕권과 신권의 우열 관계에 대해 고민하며,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따지는 민심의 향배에 불안해했던 조선 왕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록에는 조선 왕의 공식적인 삶에 대해서만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내밀한 사생활, 그들의 숨기고 싶었던 육체적, 정신적 아픔까지도 기록하고 있다.
조선 왕은 천명(天命)을 대리하는 초월자인 동시에 현실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절대 권력자였다. 그리고 자기만의 사생활과 육체를 가진 하나의 인간이었다. 따라서 때에 따라 공식적 삶이 주는 스트레스는 왕의 삶과 건강을 망치기도 했고, 반대로 왕의 건강과 질병은 정치사를 뒤바꾸기도 했다. 최근 『조선왕조실록』 우리말 완역 이후 『승정원일기』 등에 대한 번역과 전산화 작업이 진척되면서 왕의 육체를 둘러싼 연구가 활기를 띠고 있다. 이번에 (주)사이언스북스에서 펴낸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의 『왕의 한의학: 낮은 한의사 이상곤과 조선 왕들의 내밀한 대화』는 바로 이런 학문적, 콘텐츠 산업적 연장선상에서 출간된 책이다.
전작 『낮은 한의학: 알기 쉽게 다가오는 한의학의 지혜』를 통해 대중의 눈높이에서, 현대인의 건강 수요에 맞춰 한의학의 오래된 역사와 지혜를 소개한 바 있는 이상곤 원장은 이번 책 『왕의 한의학: 낮은 한의사 이상곤과 조선 왕들의 내밀한 대화』에서 조선 한의학의 지식과 기술의 정수가 응집되어 있었을 조선 왕실의 의료와 의학, 그리고 그 발전 과정을 소개한다. 이상곤 원장은 왕들의 질병 및 치료 기록이 비로소 분명해지는 태종, 세종 때부터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 때까지 실록 및 아직 번역되지 않은 영역이 더 많은 『승정원일기』와 『약방일기』 등의 왕실 의료 관련 기록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해독해 가며 조선 왕실의 의학, 즉 ‘왕의 한의학’의 비밀을 파헤쳐 간다.

마음은 숨길 수 있지만 몸은 숨길 수 없다!
제왕에 몸에 새겨진 질병이 들려주는 비밀

조선의 왕은 단순한 권력자가 아니라 조선의 하늘과 땅, 그리고 만백성을 연결하는 존재였다. 조선의 모든 변화는 왕에게 입력되었고 왕은 그 변화에 대응하는 결정을 해야 했으며 그 책임을 져야 했다. 조선의 왕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변화를 자신의 마음과 몸으로 견뎌 내야만 했다.
정치적, 경제적 사건이나 시대 정신의 변화는 조선 왕의 몸과 마음에 흔적을 남겼다. 커다란 사건이나 심한 변화는 왕의 몸과 마음에 충격을 주었고, 이것은 바로 질병으로 이어졌다. 왕의 몸은 바로 조선 역사의 바로미터다. 사실 마음은 숨길 수 있지만 몸은 정확하게 반응한다. 왕의 몸은 너무나도 정직하기 때문이다. 왕의 몸과 그 몸을 괴롭힌 질병의 기록이 바로 조선 역사의 거울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본문에서

이상곤 원장은 이 책에서 왕의 한의학을 네 가지 측면에서 이해한다. 첫 번째, 조선 왕실의 의료는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는 핵심적인 사항이었다. 전제 왕정 국가에서 왕의 건강 관리는 국가의 핵심 정책 중 하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종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죽은 문종, 과다 출혈 사고로 종기 치료 중 목숨을 잃은 효종, 개혁 정치 추진 중 종기를 다스리다가 죽은 정조 등의 죽음은 곧바로 쿠데타, 북벌 정책의 좌절, 개혁 정치의 쇠퇴 및 왕조 멸망의 가속화 등을 낳았다.
이상곤 원장은 왕의 한의학의 두 번째 측면으로, 왕의 육체가 조선 왕조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바로미터라는 것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세종을 살펴보자. 그는 안질, 임질, 소갈(당뇨병), 풍습(관절염) 등 온갖 질환으로 고생했고 말년에는 강직성 척추염으로 추정되는 치명적인 병으로 괴로워했고, 결국 중풍으로 추정되는 심혈관계 질환을 50대 중반에 세상을 떠났다. 이상곤 원장은 이 책에서 세종의 이러한 질환들을 조선 왕조의 성리학적 통치 시스템과 숙청과 권력 투쟁으로 얼룩진 건국 역사의 결과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버지 태종과 어머니 원경왕후의 정치적, 사적 갈등, 그리고 재위 초반 10년 가까이 왕실을 덮친 줄초상의 비극 등이 세종의 워커홀릭 같은 업무 습관과 결합해 병을 키웠다는 것이다. 결국 세종의 병은 조선 개국 정치사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왕의 한의학의 세 번째 측면으로는 기존의 역사 연구나 해석을 보완해 줄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상곤 원장이 특별히 강조하는 주제는 조선 왕 독살설에 대한 한의학적 접근이다. 시중에는 조선 왕 독살설을 주제로 한 책과 드라마, 영화 등 콘텐츠가 차고 넘친다. 이것들에 따르면 조선 왕조는 충효의 나라가 아니라 왕실 가족과 종친, 그리고 신하가 왕을 암살하는 나라이다. 문종과 단종, 그리고 경종과 정조는 물론이고 연산군, 효종, 고종 등의 수많은 왕들이 독살설에 오르내린다. 과연 그럴까?
이상곤 원장은 이 책에서 조선 왕 독살설에 일침을 놓는다. 실록 등 치밀하게 기록된 조선 왕실의 의료 기록을 볼 때 독살되었을 것이라고 확언할 수 있는 왕은 거의 없다. 독살설의 대부분은 의료 기록에 대한 오독이나 무지의 결과일 뿐이다. 오히려 고의가 아닌 의료 사고나 약화 사고라고 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이상곤 원장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정조의 경우 왕의 몸 상태와 처방을 매일매일 기록한 자료를 꼼꼼하게 검토한다. 그리고 충격적인 결론을 주장한다. 정조는 암살되지 않았다.
이처럼 역사 해석과 연구에 대해 왕의 한의학의 관점은 새로운 해석과 연구의 여지와 지평을 열어 놓는다. 역사학과 한의학이 융합적, 통섭적 연구를 펼칠 수 있는 ‘비밀을 문’을 여는 셈이다. 그러나 이상곤 원장의 왕의 한의학은 이러한 세 가지 측면으로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바로 현대인에게도 곧바로 활용 가능한 건강 지혜를 알려준다. 조선 왕실에서 이루어진 처방들은 사실 당대 조선 의학이 가진 최고의 지식과 기술이 응집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 처방을 만들고 사용하고 논의한 이들은 모두 다 당대의 명의, 어의였고, 당대의 지식인들이었다. 실제로 지금 한의원에서 쓰고 있는 많은 처방들 중에는 왕실 의료에서 개발되고 발전되어 현대까지 계승된 것들이 많다. 현재야 한의학이 서양 의학에 질병 치료의 적극적인 역할을 어느 정도 양보하고 있지만 조선 시대에는 당대의 의학이었고, 병마에 대항하는 적극적인 치료 의학이었다. 이상곤 원장이 역사 기록에서 발굴해 낸 수많은 처방과 치료 방법 들은 현대 한의사들과 일반인들에게 시사점을 주기 충분하다. 이것이 바로 왕의 한의학이 가진 네 번째 측면이다.
그런데 이상곤 원장은 조선 왕실의 의료를 살펴 왕의 한의학이라는 개념을 네 가지 측면에서 정립하는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왕의 한의학에서 동양 의학과 서양 의학을 아우르는 보편적 건강 지혜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질병 및 치료 기록 속에서 조선 왕들은 단 한 사람도 건강하지 않다. 우리는 이 책에서 세종부터 정조와 고종까지 육체적, 정신적 질병으로 고생한 왕들의 생생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세종은 “한 가지 병이 겨우 나으면 한 가지 병이 또 생기매”라고 탄식했고, 선조는 왕 노릇 하다가 미칠 것 같다고 비명을 질렀으며, 현종은 “오장이 불에 타는 듯하여 차라리 죽고 싶다.”라고 고통을 호소한다. 실록은 왕들의 비명과 절규, 고통의 신음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이상곤 원장은 이들의 질병이 모두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한 데에서, 정확하게 말하자면 건강은 자신이 지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 데에서 온 것이라고 진단한다. “자신의 체질을 알고 질병에 대비했으며, 스스로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편집증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온갖 노력을 기울”인 영조만이 자신의 건강을 지키면 80대까지 장수할 수 있었다고 지적하며 왕의 한의학이 자신의 시간도 공간도, 그리고 몸과 마음도 자신의 뜻대로 하지 못한 현대인들에게 주는 건강 교훈을 책을 마무리하면서 다음과 같이 전해 준다. (19장 고종 편의 마지막 부분이다.)

고종이 기록대로 뇌일혈로 죽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생활 습관조차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줏대 없이 시대의 바람에 항상 휘둘리기만 하다가 두려움에 떨며 밤잠조차 잘 이루지 못한 채 살아야 했던 고종 스스로가 오랫동안 쌓아 온 마음속 독이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공자는 “사람에게 죽음에 이를 세 가지 경우가 있는데 이는 다 자초하는 것입니다. 잠들 때를 놓쳐 숙면의 시기를 놓치거나, 먹고 마시는 것을 조절하지 못하거나, 과로를 하거나 지나친 편안함에 젖는 것이 그것입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건강이냐 병이냐는 자신에게 달렸다. 사실 이 건강 지혜를 따른 조선 왕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만약 고종이 이 건강 비결을 지켰다면 조선의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고종의 죽음과 함께 왕의 한의학의 시대도 막을 내렸다. -본문에서


독자들을 사로잡은 ‘왕의 한의학’ 시리즈의 정수를 한데 모았다!

제왕의 한의학에서 배우는 오래된 미래의 지혜
인간에게 있어서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것은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화두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절대 권력자였던 조선 시대 왕들의 건강 관리 비법을 자세히 소개한 『왕의 한의학』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올바른 건강 정보를 제공해 주는 좋은 지침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왕의 한의학』은 조선 시대 왕들이 어떻게 건강을 다스렸고, 질병을 치유했는지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기술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전통 의학인 한의학의 참다운 정수를 느낄 수 있습니다. 『논어(論語) 「위정편」에 “옛것을 알고 새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선조들과 조선 시대 국왕들의 무병장수의 비밀을 배우고 현시대에 이를 적응하여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싶은 여러분께 #왕의 한의학##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김필건(대한한의사협회 회장)

이 책은 당대 최고의 한의사인 이 박사가 조선 시대 왕들과 그들이 앓은 질병에 대해 나눈 ‘과거와 현재의 내밀한 대화’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조선의 왕들이 앓은 은밀한 질환을 들여다보는 재미와 함께 당대의 역사적 현상이 한 인간을 어떻게 병들어가게 하는가를 파악할 수 있다. 그 속에서 독자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자신을 어떻게 병들게 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고 또한 자신의 건강을 도모하기 위해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 또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최영철(≪주간동아≫ 의학 담당 기자) 접기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가 국역된 요즈음, 앞으로 더더욱 당시의 법,정치,생활,사회,제도,의학,풍습 등이 오늘날 현대의 학문과 만나서 우리에게 배움과 지식을 많이 줄 수 있는 이러한 책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책이다.
사자는살아있다 2015-01-01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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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케스트 시사통 김종배 라는것을 통해서 구매했는데 나름 괞찬네요!
꿍따리 2015-02-2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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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즉불통(通則不痛) 불통즉통(不通則痛)이 치료에만 적용되는 말일까?



왕이란 무엇일까?

누군가는 '도끼'를 상징했다고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하늘과 사람 사이(二)의 중간에 위치하여(一) 하늘과 백성을 연결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여,

하늘의 명으로 만민을 통치하는 존재라고 풀이하기도 했다.

어찌 되었건, 위로는 하늘을 우러르고, 백성의 민심을 모두어 반영하는 존재였던 것만은 사실이다.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었다.

왕이 없어졌지만,

그에 가장 근접한게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국민의 숫자가 늘어나고, 숫자에 걸맞게 민심이 다양해졌다.

'하늘을 우러르고, 백성의 민심을 모두어 반영'하는게 번거로워 졌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역할을 소홀히 해도 좋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어느 한 곳에서부터 어긋나서 삐그덕거리고 그리하여 균열이 생기는 걸 무시하다 보면 어찌되는지,

역사는 이름만을 달리할뿐, 되돌이하여 보여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한때 택시 요금이 엄청 바가지인것 같았을때, '할머니와 택시'라는 웃지못할 유머가 나돌았었다.

택시를 탄 할머니가 목적지에 도착해서 보니,

요금이 3000원 나왔는데, 700원만 주고 내리면서,

"내가 탈때 2300원부터 시작했어!"라고 했다는 거나,



요금이 2000원이 나오자,

1000원만 주고 내리면서,

택시기사를 향하여,

"이놈아! 네놈은 같이 안타고 왔냐!"라고 했다는,

경우가 바르고 셈이 정확한 할머니가 유머에 등장한다.



며칠전 또 하나의 웃지못할 유머가 탄생하는걸 몸소 경험하였다.



해가 바뀌어 다니러 오신 어르신이 있었다.



접수에서 진료비를 낼때만 해도 쿨하게 계산을 하셨다는데,

내가 '어르신'이라고 부르자 노발 대발 하시더니,

낸 진료비 중에서 1500원을 제외한 차액을 돌려달라셨다.

진료비를 많이(=1500원이상) 내는건 65세가 안된 젊은이들의 특권이라고 생각하셨고,

1500원을 넘게 받길래 당신이 아직 65세가 안 되어보여 그러는 구나 싶어,

접수에서 몇 살로 보이냐고 진지하게 물어보기까지 하셨다는거다.



그런데 내가 어르신이라고 부르자,

'젊은 오~화~'의 꿈은 산산이 무너져 버렸을 뿐이고~ㅠ.ㅠ

당신의 연세를 다 알면서 진료비를 왜 비싸게 받냐면서,

우산꼬챙이를 들고 삿대질을 하셨다.



2015년이 되어, 의료보험 수가가 인상되었다.

의료보험수가가 항목마다 조금씩 인상되는 바람에,

공단에서 보조해주던 상한선인 15000원을 쉽게 넘어가고, 그 부분은 개인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그걸 일선에서 체감하게 되는건 65세 이상의 노령층이다.



전과 똑같은 의료 서비스인데 부담해야할 진료비가 늘어나는걸,

설명하고 이해시키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아무런 저항없이 이해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괴담으로만 끝났으면 좋겠을, 또 하나의 민심의 표출이다.



13월의 보너스라고 불리우던 연말 정산은 13월의 세금 폭탄이 되었고,

의료보험료, 담배값 등 공공요금이고 민간 요금이고 뭐 하나 인상되지 않는게 없다.

유머가 되어야 할 민심의 표출은 오히려 괴담이다.

경우 바른 할머니의 유머가 절실하다.



조선시대 왕이라고 하면 절대 권력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겉으로는 피의 숙청을 통해, 강력한 왕권을 구축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 개개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하늘과 민심을 진정으로 두려워했고,

그리하여 평생 여러가지 약을 달고 살았던 인간적인 면모를 지녔다.



먹는 것만 해도, 산해진미나 진수성찬을 먹고 살았을 것 같지만,

오히려 아주 소박했다.

김소운의 '가난한 날의 행복'에 나오는,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은 잘못된 표현인 셈이다, ㅋ~.





가끔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때,

참고가 된 책을 쓴 사람의 입장이나,

그가 속한 당파나 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번,

후대에 그걸 해석하는 사람의 역사관에 따라, 또 한번,

개인의 주관이 개입되는 통에 혼란스러웠다.

왕이나 대신들의 초상화를 보다보면,

책속에 나타난 그들의 성격이나 행동과 일치하지 않아서 혼란스러울때도 여러번이었다.



물론, 이 책 또한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가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논리적이고 개연성 있는 접근으로 추리소설을 읽는듯한 재미가 있었다.



영조의 경우,


숙종의 아들이 아니라 광선부원군 김만기의 손자 김춘택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었다.

김춘택이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동이, 즉 숙빈 최 씨를 숙종의 침전에 집어넣었다는 이야기 등이 당대에도 널리 퍼졌고 야사로도 전해진다.ㆍㆍㆍㆍㆍㆍ『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등 각종 기록을 통해 살펴보면 영조의 체질은 확실히 특이한 데가 있다.그의 풍성한 수염이나 큰 키는 숙종의 풍모와 전혀 달랐다.ㆍㆍㆍㆍㆍㆍ조선 왕들은 무장인 이성계의 혈통을 이어바다서 그런지 대개 성격이 불꽃같거나 화병을 앓았다. 심지어는 화가 내부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다 못해 피부로 솟아오르는 종기 질환을 앓다가 죽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몸에 열기를 보태는 인삼을 약재로 잘 쓰지 않았다.(302~303쪽)

라고 하는데,

'설도 있었다'라고 둥글리는 어법도 그렇고, 제법 설득력도 있다.



사람을 보게 되면, 그냥 사람이 보이지 않고,

그 사람의 외형으로 미루어, 성격이나 질병의 연관성을 자꾸만 유추하려 드는 건,

아무래도 직업이 만들어낸 오랜 습관이지 싶다.



모든 책을 그렇게 읽는 편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주인공은 살아 움직이는캐릭터라는 둥,

어떤 캐릭터는 만들어낸 설정이라는 둥,

그렇게 너스레를 떨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만화 '미생'의 경우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살아움직였다.

하나도 겉도는 인물이 없었다.



그런데, 만화'미생'의 인기를 업고 만들어진 드라마 '미생'의 경우,

다른 캐릭터는 몰라도 '오과장'은 좀 아니었다.

(이건,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나 '외모가 캐릭터에 들어맞는다' 따위의 평가가 아니다, ㅋ~.)









이름부터가 '오상식'인 그는 '상식'있고 경우에 맞게 행동하는 캐릭터이다.

만화에선, 처음 장그래의 사수로 등장할때 잠깐이었지만, 바둑의 묘를 아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반해,

드라마 마지막 회를 보고 놀랐는데,

어디 사막에 가서 가드 올리고 폼 잔뜩 잡는 인물로 그려지더라~--;



'오상식'에 맞춤인 인물을 연기자 중에서 찾기 쉽지 않아서 그랬겠지만,

충혈된 퀭한 눈의 만화 '오과장'과 드라마의 '오과장'은 전혀 다른 체질과 성격이다.



그런 예로,

역대 왕들의 대표적인 질병은 '산증(疝症)'으로 진단명은 같지만,

처방과 치료법은 체질에 따라 각각 다르다.

그걸 이 책을 쓴 '이상곤'님은,

역사적 접근에서 크게 비껴 가지도 않고,

그러면서도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에 입각하여,

알기 쉽게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솔직히 일반인들이 얼마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내가 보기엔 한방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고 애쓴,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접점을 모색하려고 애쓴,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결코 쉬운 책은 아니다.



개인에게 살아온 이력이,

왕에겐 살아온 이력의 흐름인 역사가,

질병을 이해하는데,

질병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온 우주, 자연 삼라만상이 필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분이시고,

그러다 보니, 그런 각종 분야의 공부와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은 것이 드러난다.

그걸 알 수 있는 단적인 예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등을 두루 넘나드는 것이다.

게다가 '장자'의 '소요유'등을 떡주무르듯 인용한다.

권말에 그가 남겨놓은 '논문'과 '단행본'등 참고 문헌만 훑어보아도,

내공을 짐작할 수 있다.









'하늘을 우러르고, 백성의 민심을 모두어 반영'하는게 왕의 역할이라면,

하늘과 백성이, 자연과 국민이 균형을 회복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하는게,
한의학에서 말하는 '치료'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늘과 백성이, 자연과 국민이 균형을 회복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은 찾았으니,

왕만 찾으면 되는 건가 보다.



나는 하늘의 이치는 고사하고,

맨날 환자들이랑 지지고 볶는 일개 돌팔이이니까,

조선의 왕들 같은 통치자를 학수고대하는 수밖에 없겠다.같은 '치'자가 들어가서 생각해본 엉뚱한 발상이다.



통즉불통(通則不痛) 불통즉통(不通則痛)은

한의학 관련, 치료에만 적용되는 말은 아닌것 같다.

왕이나, 대통령 등 통치자들이 솔선수범해야할 당면과제이다.



나의 툴툴거림을 보고,

왜, 어떻게 그런 비약이 가능하냐고 할 사람들을 위해 대답도 준비해 놨다.

짬뽕공이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모르고,

엿장수가 가위질을 몇번 하는가는 엿장수 맘대로다, ㅋ~.





한자가 많이 섞인 책인데도 불구하고 오ㆍ탈자가 없어 눈에 띄었다.

손수 갔다 드렸다->손수 갖다 드렸다.(2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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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5-01-23 공감(18)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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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한의학 - 이상곤



언젠가 TV 드라마에서 허준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전국 시청률 40%를 넘길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드라마였다. 드라마에서 허준이 어의가 되는 과정을 담고 있었는데, 그는 권력을 좇는 의사이기보다는 사람에 대해 측은지심으로 바라보았던게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지 않았나 싶다. 물론 허준의 측은지심과 별도로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었다. 드라마 속에서보면 어의로서 궁궐내의 왕을 치료하고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고 왕이 승하하기라도 하면 어의 또한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다. 그만큼 어의의 역할이 중요했고 왕의 건강이 중요했던 것이다.







이번에 읽은『왕의 한의학』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참고로 해 왕이 처방받은 약을 통해 왕의 질병을 살펴보았고, 왕의 질병을 통해 조선의 역사, 역사속의 비밀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사람에게는 체질도 중요하지만,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가 중요한 것 같다. 당쟁에 휩싸여, 혹은 왕족들의 권력싸움의 한가운데서 버텨오기란 쉽지 않을 것이었다.







조선의 왕들이 특히 많이 걸린 병이 종기라고 했다. 최근에는 보기 드물지만, 오래전 내가 어렸을때만 해도 종기가 꽤 많았었던것 같다. 고약을 사러 약방에 심부름을 가곤 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가 어렸을때도 종기가 있었던 듯 한데, 조선 시대에서야 더 흔한 질병이었으리라. 종기 뿐만이 아니다. 조선의 왕들은 학질도 많이 걸렸으며 안질, 소갈병(당뇨병)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소갈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고생했다. 왕에게는 왕의 곁에서 왕의 건강을 보살피는 어의가 있었는데, 어떤 어의가 있는가에 따라 왕을 살리기도 했고, 잘못된 판단으로 왕을 죽음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환자의 역사, 즉 환자가 살아온 삶의 흐름과 이력을 읽고 질병의 함의와 맥락을 통찰하려 한다. 환자가 느끼는 신체적 고통만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이유를 되새기면서 환자의 상태를 수용하고 이해하려고 애쓴다. 한의사는 환자와의 만남을 통해 질병이 던지는 메시지를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157페이지)







우리가 흔히 야사(野史)가 진짜 숨겨진 역사가 아닐까 싶다. 야사속에서 많이 나오는 정조 독살설에 대해 나도 어느 정도 사실이 아닐까 싶었는데, 이 책 속에서 정조에게 처방했던 약들과 저자의 설명을 읽다보니 저자가 말한 것이 사실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인삼을 강하게 거부했지만, 정조의 체질을 간과했던 어의의 실수가 정조의 죽음을 부르지 않았는가 말이다. 조선의 왕 중에서 가장 장수한 왕 영조가 특히 인삼을 많이 복용했다고 했다. 인삼의 효능이 아무리 좋아도 정조의 몸에는 맞지 않았다는 것. 아무리 좋은 인삼이라도 결국엔 사람의 체질에 맞게 처방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했다.







왕들의 한의학을 읽으며 조선의 역사에 더 깊이 다가간 느낌이 들었다. 비교적 자세하게 적혀진 실록이나 승정원 일기에서 사관들이 적은 내용, 자신의 병세에 대한 왕의 설명, 신하들의 처방약에 대한 권고 등을 읽으며 왕의 건강이 곧 조선을 살리는 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조선 초기에 비해 조선 후기로 갈수록 침과 뜸을 이용한 치료보다는 보약등의 예방약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현직 한의사가 쓴 글이어서 왕에 처방한 약들로 왕의 병을 진단하는 책이려니 했지만, 여느 역사서 못지 않게 왕의 질병과 질병이 생기게 된 원인등을 역사속에서 찾았다는 점이 특별했다. 역사의 비밀과 질병의 상관 관계를 제대로 살펴본 느낌이었다. 우리가 심리 상담을 받을때도 우리가 살아온 내력을 알아야 하듯, 우리의 질병도 우리가 살아온 내력에 따라 달라질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배운 작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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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eze 2015-01-12 공감(1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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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으로 풀어 보는 조선 왕의 역사



조선의 역사는 왕의 역사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왕을 중심으로 정치과 경제, 문화가 얘기되어진다. 그런데 이 책은 한의학으로 풀어 보는 조선 왕의 역사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새삼 왜 이책이 이제야 출간이 된 걸까 싶기도 하다. 솔직히 우리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는 건 학교에서 배우는 국사 시간이 아니다. TV 드라마를 통해서다. 거기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사약을 받고, 왕이나 세자를 살리기 위해 어의가 진맥을 하고 침을 놓는 장면 등을 보면서 왜 이 부분에 대해선 그리도 무덤덤했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대장금>에 와서야 역사 드라마가 좀 달라졌다고 감지하는 정도였다. 그래도 왕의 병에 관해서는 드라마가 다루기를 거부했던 듯 하다. 우리가 아는 정도는 세종이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는 정도랄까? 책은 세종의 병에 대해 자세히 알려 줌은 물론 역대 왕들의 병에 관해 비교적 소상히 밝히면서 그 치료에 관한 한의학에 대해 펼쳐 보인다. 읽으면 우리 나라 국왕의 역사에 대해 가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연산군에 관한 부분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우리는 어디가 아프면 단 하루도 못 살겠던데 조선 왕들은 온갖 질병을 안고 정사를 돌봤다니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병만이라면 그나마 나은 것이다. 시시때때로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정적들과 간계들 속에 그야말로 하루하루 버티고 사는 것도 힘들었겠다 싶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지 않던가? 조선 왕들의 병은 천성적이라기 보다 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재밌는 건 저자는 적자에서 왕이 된 사람은 대부분 단명한 반면 영조 같이 방계에서 왕이 된 사람은 오래 장수했다는 통계도 내놓는다. 재밌기도 하지만 저자가 참 꼼꼼하게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들게도 한다.



무엇보다 저자는 한의학으로 왕의 역사를 논한만큼 요즘 흔히 다뤄지는 팩션으로 인해 왜곡되어진 역사의 부분을 바로 잡으려고 한다. 팩션은 알다시피 역사와 상상력이 결합된 이야기 형태를 의미하는 것인데 이는 TV 드라마나 영화의 영향이 가장 크다. 우리가 그런 매스컴을 통해 역사에 다가가는 것은 좋은데 그러다 보니 왜곡된 부분도 의외로 많다. 물론 역사적 사실이 좋은 것만은 아닐 수 있다. 일견 너무 경도된 면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팩션은 너무 상상력을 강조한 나머지 인물을 왜곡할 수 있고. 그중 하나가 책에서도 다룬 광해군일 것이다. 지금까지 광해군을 직간접으로 다뤘던 드라마나 영화는 하나 같이 그가 올바른 군주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책은 과감하게 광해의 가리워진 부분을 드러내 보여준다. 또한 정조 역시 독살된 것처럼 알려지고 있는데 저자는 한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일견 예견 거라고 한다. 누구는 또 이걸 가지고 옳으냐 그르냐를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만 볼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으로 보는 눈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저자의 관점도 참고해 볼만한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병을 가지고 있지 않은 왕은 없었지만 이걸 가지고 자신을 방어하기도 하고, 이것이 위협이 되는 순간이 있었다는 건 확실히 생각해 볼만하다. 예를들면 광해나 연산군은 병을 핑계로 정무나 경연을 멀리하기도 했단다.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내 얘기지만 나도 초등학교 시절 학교가 너무 가기 싫어 병이라도 낫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너무 건강한 것도 문젤까? 그런 일은 나에게 여간해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 그 마음 알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예전에 대통령의 스트레스를 다룬 재밌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대통령이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인지 대통령직을 수락하는 순간 빠른 속도로 늙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해 영부인들은 활짝 피고. 그런데 스트레스로 팍삭 늙긴 하지만 퇴임 후 생에 대한 만족도는 높아서 대체로 장수한단다. 그러고 보니 과연 그렇다 싶다. 물론 책의 내용과는 다소 배치가 되는 것도 같지만 그거야 오늘 날은 의학도 발달하고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 능력이 옛날에 비해 강화되었으니까 그럴 것이다. 하지만 스트레스만 놓고 보자면 그냥 넘길 부분은 아니다.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물론 그런 왕의 병증을 다루면서 한의학은 발전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혜로운 왕일수록 자신의 병을 어의에만 맞기지 않고 스스로 다스려나갔던 반면 폭군일수록 몸은 돌보지 않은 채 방탕하고 온갖 스태미너에 의존했다. 자신이 자신의 몸을 위해 무엇을 했더란 말인가? 그걸 할 줄 모르는 지도자 그리고 그 밑의 신하들과 백성들은 힘들어진다. 그래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했을까?



아무튼 이 책은 역사와 한의학 두 마리의 토끼를 확실히 잡은 것 같다. 좋은 책이다. 일독을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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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1-18 공감(8)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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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한의학> 실록을 통해 왕의 건강을 살펴본다.







<조선왕조실록>의 국역완료는 많은 사람들에게 당시의 역사, 생활상, 사회상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그래서 이를 기초로 한 많은 도서, 영화, 드라마 등이 봇물터지듯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흥미을 위주로 하다보니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이런 내용들이 정사일까, 야사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경우도 있게 마련인데, <왕의 한의학>은 철저하게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정통 역사서만을 바탕으로 해서 조선 왕들의 건강을 체크해 본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허준>, <대장금>, <마의>등을 통해서 조선의 의관이나 의녀 이야기는 단연 인기를 끌기도 했으며, 그런 이야기를 통해서 조선 왕들의 건강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도 있었다.



또한, 조선의 역사서 중에는 조선왕들의 독살사건에 대한 내용을 다룬 책들도 있는데, 과연 그들이 정적으로부터 독살을 당했을까 하는 의문은 아직까지도 지워지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왕의 한의학>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상세하게 살펴보고 있다. 그 바탕에는 당시에 왕이 건강 상태, 질병에 대한 어의들의 처방, 그 처방이 과연 그 질병에 맞는 처방이었을까 하는 부분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데, 그것은 한의학을 전공한 저자만이 할 수 있는 깊이있는 진단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의 왕들은 어느 정도는 가족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도 가질 수 있다. 많은 왕들이 피부병, 안질, 소갈증(당뇨병), 화증 그리고 심지어는 광증이나 편집증을 앓은 왕들도 있음을 역사서 속에서 찾을 수 있다.





" 조선 왕의 몸은 당대 조선의 시대 정신과 과학, 그리고 제도와 정치가 응축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의 왕의 체질과 질병,그리고 처방의 의미를 하나씩 되짚어 보는 것은 역사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좋은 방법 가운체 하나일 것이다. " (p. 8)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태종 역할의 유동근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태종이 후덕한 인상의 기골이 장대한 무인일 것이라고 짐작을 하지만 실제로는 성격은 강명(剛明) 했으나 체질은 허약했다.



세종이 안질과 요병, 소갈증, 종기에 시달렸음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며 성증은 서증(暑症 : 더위 먹은 병)과 치통이, 사도세자는 광증, 영조는 편집증이 있었다.



그런데 조선초기의 경우에는 의관들의 수준이 매우 낮아서, 판수와 무녀들의 말에 많이 의존하였고, 불교의 힘을 빌어서 병을 고치고자하였다.



부모의 비참한 죽음을 알거나 목격한 왕들이 연산군, 경종, 정조도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경종의 경우에는 기록에 '형용하기도 어렵고 치료하기도 어려운 ' 병에 걸렸다는 내용의 기록이 있는데, 그가 복용한 약물로 추측하건대 간질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영조는 체격은 컸지만 약골이었고, 그는 스스로 자신의 질병을 진단하고 몸 상태를 파악하였으며, 자신에게 어떤 처방을 내려야 할 지를 자신이 정확하게 알았고, 강한 의지를 가지고 건강을 지켰기에 83세라는 나이까지 장수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평생을 엄청난 량의 인삼을 먹었다고 하니, 검소한 임금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는 당시로서는 고가의 인삼을 달고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로 유명해진 의녀 장금이는 중종이 남성 의원의 견제에도 수십 년 동안 곁에 두었던 의녀이다.



<동의보감>을 쓴 어의 허준에 대한 평가를 보면,



" 약을 처방함에 있어 허준의 치료 능력을 잘 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소신대로 옳다고 생각하면 시행하며 정성껏 처신하는 그 뜻을 감안하여 석방한다. " (p. 169)



역사서를 저술한 작가에 의하면 조선왕 27명 중에 10명의 왕이 독살당했다고 말하는데, 거기에 대한 이 책의 저자의 생각은 대부분의 왕의 경우에 의료사고일 가능성이 많음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독살당했다고 하는 왕들의 진료기록이 그대로 사료로 남아 있기에 어떤 질병에 걸려 있었으며, 그 치료 방법이 무엇이었는가, 그 방법이 올바른 치료방법이었는가를 살펴보면서 그런 의문점을 풀어준다.



정조의 경우에는 6월 14일에 증상이 나타나서 6월 28일에 승하하기 까지의 증상, 처방전이 기록되어 있는데, 정조는 의관들 보다도 더 자신의 질병과 처방에 대해서 깊이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도세자의 죽음이후에 화증이 있어서 인삼을 기피하였다, 그런데, 그는 마지막 순간에 의관이 인삼을 처방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우를 범하게 된다. 그것이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처방이었다는 결론이다.



이런 처방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저자가 한의사이기에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는 한의학 뿐만 아니라 역사에 대해서도 깊이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이 책은 곧 이 박사가 환자로 만난 조선 시대의 왕들의 이야기이며, 그는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왕뿐 아니라 당대를 괴롭힌 질병들의 실체를 낱낱이 파악한다. 한의학 서적이면서 역사서이기도 하다. 내가 알기로는 이 책은 국내 에서 조선 왕들이 앓은 질병의 실체와 치료법, 그의 죽은 이유를 심도깊게 파헤친 유일무이한 서적이며, 앞으로 조선시대 질병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도 지향점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p. 426 : 추천사 중에서)



바로 이 추천사가 가장 이 책을 잘 알려주는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한의학 서적이자 역사서이기에 조선 왕들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부터 생각, 활동, 역할, 질병, 처방전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이 그동안 역사 관련 서적을 통해서 살펴보지 못한 내용들까지 고스란히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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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2015-02-16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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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한의학





환경에 지배받는 몸을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 『왕의 한의학』





사극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봤던 조선 왕의 모습은,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손가락 끝으로 천하를 호령하는 사람이었다. 시쳇말로 수행원들 줄줄 달고 살며, 앉은 자리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편한 생활이 몸에 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너무 익숙하면 가끔 심심하기도 하겠지만, 사실 편하게 살고 싶은 건 인간이 가지는 바람이기도 하니 부럽다는 생각이 더 크게 작용한 적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누리기 위해 감당하고 이겨내야 할 것도 많았다는 것. 단순히 흥미로만 만나던 그 시간의 이야기를 즐길 요소도 있지만, 그 이면의 것들이 오히려 진실에 가까운 게 아닐까 추측해보기도 한다.



이상곤의 『왕의 한의학』은 조선 왕의 질병과 역사를 연결한다. 어느 사건이 일어난 때, 어떤 환경의 지배를 받고 있었을 때 왕의 건강이 보내는 신호를 말한다. 굳이 왕이 아니어도, 일반인인 우리를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건드리는 사건이나 고민거리가 생길 때 몸은 이상 신호를 보내고 반응한다. 온갖 방법으로 그 치료를 하겠지만, 그 근원을 뽑아내기 전에는 완전히 아물지 않는다. 왕의 자리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의 의료행위는, 한의학으로 왕의 건강을 예방하고 치료하며 역사와 함께 해왔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의 기록으로 시간을 추적하고 왕의 몸을 다시 진찰한다. 그 기록 안 왕들의 모습은 다양했다. 병명, 증상, 치료법도 여러 가지가 함께 했지만, 저자의 글을 바탕으로 보면 그 자리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스트레스가 모든 병의 근원이었던 듯하다.



고대의 주례(周禮)를 충실하게 복원한 조선 왕실의 상사(喪事)는 살인적이었다. 아마 세종은 그 첫 희생자였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신하들의 고기 섭취 권유에 덧붙이는 세종의 말은 그가 고기 마니아였고 대식가였다는 가설을 부정하기에 충분하다. “내가 본디 병이 없고 늙지도 어리지도 않으니 어찌 감히 뒷날에 병이 날까 봐 고기를 먹겠느냐.” (27페이지 세종)



왕의 자리에 앉기도 전에 이미 몸의 이상은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다. 선대의 상을 치르면서 예를 갖추느라 오랜 시간 몸을 상하게 했고, 왕위에 오르자마자 시작된 격무는 피로한 몸을 더 혹사하곤 했다. 권력 다툼의 중심에서 온몸은 긴장으로 풀어질 줄 몰랐다. 저자는 조선 왕실의 의학과 발전되어가는 과정을 들려준다. 몇몇 왕을 제외하고 태종부터 고종까지 실록을 바탕으로 해석하듯 비밀스러운 한의학을 풀어낸다. 그 결과부터 말하자면 역시, 가면 하나를 쓰고 살았던 조선 왕들에게 드러나는 증상들이 마음의 고통을 증명했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결국 다 숨기지 못했던 듯하다. 밖으로는 백성들의 안위를 돌보며 안으로는 수도 없이 밀려드는 위협과 싸워야 했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모든 것을 다스리고 관여해야 하는 묵중한 업무와 신하들과의 밀당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위협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 흔적은 고스란히 몸에 남았다. 세종은 워커홀릭으로 비만이었고,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은 시대의 색골이었다. 숙종은 화증과 눈병으로 평생을 앓았고, 헌종과 철종은 종마의 역할을 충실히 하느라 골골했다. 고종은 불면증으로 고생했다. 그 와중에 의외로 보였던 사람이 영조다. 정조는 장수한 거로도 유명한데, 평소 자신의 체질을 잘 알고 질병에 대비한 것으로 유명하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그에게도 나중에는 화병의 징후가 보이는데, 그건 허약체지이었던 그가 자기 관리로도 결국 감출 수 없었던 고질병이 아니었을까.



저자의 역사 해설과 함께 조선 왕의 증상을 들으면서 알 수 있었던 건 세세한 기록과 진료로 처방과 치료를 했다는 건데, 그 안에서도 의학은 자주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정치권의 손 안에 있었던 것 같다. 내의원 삼제조의 영향 아래서 온전한 의술을 펼치기는 어려웠을 거라는 것. 한편으로는 왕실의 의료 행위가 국가적인 일이라는 것을 상기하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힘의 작용을 완전히 무시하시는 못했을 듯하다. 게다가 조선왕조의 성리학적 통치나 권력 투쟁은 왕들의 발병을 만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정치적 갈등과 초상을 치르는 과정이 온갖 질환을 불러와 세상을 떠나게 하고, 독살설을 내놓는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기록된 조선의 왕실의 의료 기록을 볼 때 독살되었을 것이라고 확언할 수 있는 왕은 거의 없다고 한다. 독살이라기보다는 의료 과실에 가까운 원인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눈앞에서 아비의 죽음을 목격하고 평생 그 한을 풀기 위해 애쓴 정조는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견디며 살아야 했을까? 정조의 질병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이 가져다준 트라우마가 화증이 되어 평생 그를 괴롭혔다. (335페이지 정조)



가만히 듣다 보면, 이들의 모든 병은 화병에 가까워 보인다. 물론 그 화병 한 가지로 그들의 목숨이 위태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화병을 시작으로 합병증처럼 다른 병들이 줄줄이 따라온 것 같다. 종기는 기본으로 생기는 게 비일비재했고, 소화불량과 과로는 스트레스로 직행했다. 왕의 자리라는 것이 이들의 건강을 좌우해 기인한 것이 아닐까. 무엇 하나 내 마음대로 하는 게 쉽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 온갖 병을 불러오고 있었음이라. 말 그대로 왕노릇이 수명을 단축시킨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거부당하며 시작되는 질병의 참모습이다.



역사 해석과 함께 풀어놓은 저자의 관점은 한의학의 새로운 면모를 보게 하면서, 현대인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게 한다. 왕의 자리라는 위치만 다를 뿐 우리 살아가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스트레스, 때를 맞추기 어려운 식사로 인한 소화불량, 불면증 같은 시대를 거슬러도 비슷한 질병들을 안고 사는 우리의 모습을 비춘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처방과 치료법이 워낙 방대해서 다 옮겨 적을 수가 없는 게 아쉽지만, 그들의 증상을 보고 처방하고 치료한 과정을 통해 한의학의 역할과 발전,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처방임을 알게 되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보약처방이 많았고 침구술 같은 외과 치료가 경외 시 되었다는 것도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것 같다. 아마도 서양의학의 도입과 함께 변화되어 가던 과정도 한몫한 건 아닐까 싶다. 조선 시대 의학이면서 상당히 적극적인 치료법이었고, 오늘까지 계승된 것이 많다니 믿어볼 만 하다. 역사와 의료를 함께 들을 수 있어서 진지했고, 차근차근 풀어가는 그 설명에 믿음이 간다. 한의학은 자연과의 조화라는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순간 신호를 보내는 몸이 그걸 증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있었지만, 환경이 인간을 병들어가게 하는 과정과 그 치료를 위한 자세를 배우게 하는 실용적인 책이다. 읽는 내내 진지했고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사람에게 죽음에 이를 세 가지 경우가 있는데

이는 다 자초하는 것입니다.

잠들 때를 놓쳐 숙면의 시기를 놓치거나,

먹고 마시는 것을 조절하지 못하거나,

과로하거나 지나친 편안함에 젖는 것이

그것입니다. - 『공자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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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씨 2015-01-07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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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실마리



조선 왕들이 의외로 오래 살지 못하였다. 그 이유로 가장 유력한 것이 독살설이었다. 이덕일 님의 [조선 왕 독살설]을 읽으면서 독살설은 꽤나 신빙성 있게 들렸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그리고 가장 안타까워 했던 독살설의 주인공을 꼽자면 정조와 경종, 소현세자, 효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조금만 더 오래 살았더라면 조선의 역사를 바꿀 수 있었던 현명한 왕들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분명 왕에게는 역사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자이자 곧 나라 그 자체였던 조선의 왕은 거의 단명했다. 태조를 시작으로 하여 고종까지 오백년이 넘는 조선역사에 50년을 넘게 재위한 왕은 영조가 유일무이하다. 유일하게 영조가 52년 동안 왕좌를 지키며 83세까지 장수하였지만, 서자출신이라는 꼬리표와 당쟁이라는 권력의 이전투구로 불행한 삶을 살았다.



《왕의 한의학》은 조선 왕의 몸을 통해 조선의 역사를 재탐구하는 책이다. 흔히들 역사를 승자의 기록이라 하듯이 승자의 시선에서 쓰여진 역사가 아닌 왕의 지극히 은밀한 부분이었던 사생활과 사람의 역사에 초점을 맞춰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색다른 프레임의 역사서이다. 한의사인 저자는 환자의 몸에서 삶을 읽어내듯이 조선 왕의 몸과 마음에 남겨져 있던 삶의 흔적들이 병이 된 연유를 한의학이라는 돋보기로 보았을 때 역사에서 어느 정도의 사실성을 띠게 되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왕의 몸은 바로 조선 역사의 바로미터다.



조선 역사의 거울이 될 수밖에 없는 왕의 몸과 질병의 기록을 한의사의 눈으로 응시하는 작업을 왕의 한의학이라 부를 것이다. 왕의 한의학을 통해 왕의 몸과 병에 응축된 조선의 사회, 문화, 사상을 해독해 낼 수 있고, 역사 기록의 우물 속에 감춰진 진실을 퍼올릴 수도 있다.



왕의 몸을 통해 읽는 조선 역사는 실로 흥미로운 것이 많다. 한글창제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학질과 소갈병, 다리의 부종, 안진 , 임질, 풍질, 강직성 척추염을 앓다가 중풍으로 사망한 세종의 몸은 한 개의 병이 나으면 또 다른 병이 찾아오곤 하였다. 즉위하자마자 아버지(태종)와 어머니의 불화는 날로 심화되었고, 외삼촌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이어 장인의 처형과 장모의 노비전락과 이어진 국상으로 세종의 몸과 마음은 고통으로 유린당한 상태였다. 재위 초부터 시작된 상례로 누적된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는 결국 몸에 병을 불러왔다. 이렇게 한의사인 저자는 환자가 살아온 삶의 흐름과 이력이 질병의 함의와 맥락을 같이 한다는 의학적 견지로 조선의 역사를 이해한다. 한의사는 환자가 느끼는 신체적 고통만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이유를 되새기면서 환자의 상태를 수용하고 이해하여 처방을 한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다보면 마치 환자와 만나서 환자의 삶을 이야기 하듯 조선왕의 몸과 역사가 하나의 궤를 같이 하여 삶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조선의 왕은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왕이기 이전에 먼저 인간이었으며 왕이기에 앞서 아들이며 왕이기 전에 남자였기 때문이다.





왕의 독살설 중에 가장 신빙성있게 비춰졌던 경종의 '게장과 생감'에 대하여 저자는 독살설이라기 보다는 경종의 병약한 삶에서 비롯되었음을 역사에서 살펴보고 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 희빈 장씨가 사약을 받는 장면을 목격한 데다가 평소 간질과 비만성 질환에 시달리는 종합병원이나 다름없었던 병약한 몸이 게장과 생감을 소화할 체질이 아니었던 것이다. 경종의 병약함을 보면 게장과 생감이 죽음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게장과 생감이 독을 만드는 조합은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 [광해]에서는 왕이 매화틀(변기)에서 볼일을 보고 난 후 나인들이 뒷처리를 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저러니 조선 왕들이 오래 못 살았지' 라는 말이 절로 나왔던 것 같다. 태조부터 순종까지 27명의 왕 중에서 52년 동안 왕좌를 지키며 83세까지 장수한 영조가 유일무이한데 저자가 꼽은 영조의 건강 비결이다.


첫째. 자기의 몸 상태를 정확히 파악했다.

둘째. 자신에게 어떤 처방이 맞는지 정확하게 알았다.

셋째. 강한 의지를 가지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실천했다.

겨우 50세를 전후해서 생을 마감한 다른 왕에 비해서 영조는 정신적으로도 강했던 왕 같다. 태조나 태종, 세종, 문종, 세조 등 조선 왕들 가운데 과반수 이상이 종기와 소갈병을 달고 살다 종기나 질병으로 사망한 것과 달리 영조는 자잘한 병을 앓긴 했지만 노환으로 죽었다. 다른 왕에 비해서 비교적 건강하게 돌아가신? 편이다. 그렇다고 다른 왕들이 의학적 지식이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세종이나 문종, 세조, 성종, 중종, 명종, 숙종, 정조 등 의학적 지식이 해박했던 왕들도 병에 걸려 갑작스럽게 죽었다. 그러고 보면 조선의 왕중에서 병으로 신하들이 간언하는 기록은 있지만 영조처럼 자신의 몸을 관리하였던 왕의 기록은 없는 듯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실천했던 왕은 영조가 유일하다. 대부분 조선의 왕이 독살당했다는 일부 역사가들의 주장에 대해 저자는 조선 왕들의 독살설은 당쟁이라는 권력의 이전투구가 낳은 설이지 독살설의 대부분은 의료 기록에 대한 오독이나 무지의 결과라고 한다. 당시 시대상으로 중증 뇌일혈과 같은 질환은 외과적 대처가 불가능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당시 사약을 내려도 죽지 않아 조광조 같은 경우에는 독한 술을 마시게 하여 죽게 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조선 시대에 오히려 독살은 성공하기 힘든 방법인 것 같기도 하다. 의학적 사고의 지평을 넓혀준다는 의의도 있는 책이지만 조선의 역사를 전혀 다른 프레임으로 바라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는 책이다.



사람에게 죽음에 이를 세 가지 경우가 있는데

이는 다 자초하는 것입니다.

잠들 때를 놓쳐 숙면의 시기를 놓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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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5-01-21 공감(3)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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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으로 본 조선 왕들의 건강과 죽음의 진실



이덕일의 '조선 왕 독살사건'을 읽을 때 조선의 왕들이 항상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조선 왕들은 생각보다 그다지 행복한 삶을 산 것 같진 않은데

이 책에선 한의학의 관점에서 조선 왕들의 건강과 죽음에 얽힌 진실을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이 책에선 대부분의 조선 왕들을 다루고 있는데

그들 중 대다수가 한 마디로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었다.

성군으로 불리는 세종은 전에 읽은 '세종처럼'에서 육식마니아로 알려졌지만

이 책에선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세종이 재위 초기에 건강이 많이 상한 게

국상을 연달아 치렀기 때문이라는데 3년상이 기본인 데다 효의 모범이 되어야 했던 조선 왕들은

전왕의 국상으로 임금으로서의 임무를 시작하기에 재위 시작부터 몸이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병약한 효자였던 문종이 재위 2년만에 승하한 것도

국상을 치르면서 몸이 상한 게 큰 작용을 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자로만 알고 있던 조선 왕들은 격무와 여러 질병에 시달리면서

그다지 건강하지 못한 삶을 살았음을 잘 알 수 있었는데, 독살설에 휘말렸던 왕들의 죽음과

관련해선 전에 읽은 '조선 왕 독살사건'과는 완전히 상반된 입장을 제시한다.

대표적으로 독살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정조의 죽음도 인삼이 든 경옥고와

연훈방을 사용한 독살이 아닌 약화사고란 것이다. 위와 같은 처방도 한의학에 조예가 깊었던

정조 스스로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독살설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고 하는데

한의학에 문외한이다 보니 저자의 주장에도 나름 일리가 있지 않을까 싶지만

전에 읽었던 책의 인상이 워낙 강렬해 뭐가 진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정조뿐만 아니라 경종을 비롯한 독살설 연루자들 모두가 독살이 아니라고 하니

기존에 가졌던 생각과는 너무 달라서 도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데

어떤 관점에 주목하는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책을 보니 조선 왕들이 시달렸던 질병이나 건강이란 측면에서

그들의 삶을 일거수일투족 자세히 엿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왕들이 기본적으로 화증과 종기들을 갖고 있었는데 왕들마다의 특색도 있었다.

성종과 연산군은 밤의 황제이자 색골이었고, 광해군과 인조는 무속신앙에 빠졌으며

헌종과 철종을 대를 잇기 위한 종마로 사육(?)되는 신세였다.

적장자로 왕권을 무사히 이어받은 왕들은 그나마 정통성 시비는 비켜가서

스트레스를 덜 받았지만 방계승통으로 처음 왕이 된 선조를 비롯해 정통성이 약한 왕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곤 해서 당연히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을 받고 무수리의 아들로 간신히 왕이 되었던

영조가 83세로 최장수 임금이 되었던 건 좀 의외였는데 인삼을 입에 달고 살면서

소식을 하는 등 건강에 편집증적으로 신경을 썼던 게 나름의 비결이 아니었나 싶다.

이외에 이 책에선 조선왕실의 진료 및 치료방법, 왕실의 사랑을 받은 명약들,

조선 왕들의 건강 비결인 식치와 온천욕 등 조선왕실과 관련된 한의학적 지식도 싣고 있어서

한의학의 관점에서 조선왕조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왕조시대에 왕의 건강은 나라의 운명과 역사의 방향을 좌지우지했는데 이 책을 통해 조선 왕들의

건강상태와 질병치료를 살펴보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역시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역사의 평가가 달라질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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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 2015-01-11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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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한의학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나라 조상들은 참 지혜로운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참 놀라운 생활의 지혜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건강'관리법인데 우리 조상들은 음식이나 자연에서 얻은 약재로 '건강'을 지켰다. 그렇기 때문에 몸에 큰 부담이나 부작용없이 건강을 지킬 수 있었다. 그 중 왕의 건강은 백성들의 건강이자 나라의 건강이었다. 그래서 왕은 왕의 건강만을 전담해서 관리하는 부서도 있었고 왕이 하는 모든 생리적인 현상도 꼼꼼하게 체크하며 왕의 몸 변화를 관리했다. 옛선조들은 왕의 얼굴을 '용안'이라 했고, 왕의 밥상을 '수라상', 왕의 옷을 '용포', 왕이 앉는 의자를 '용상', 왕의 눈물을 '안수', 왕의 손은 '어수', 왕의 입술은 '구순' 등의 말로 일반 백성들과는 다른 말로 불렀다. 이런 말 들을 사용한 이유는 왕의 안위가 곧 나라의 안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 왕의 대변은 '매화'라고 해서 매일 왕이 대변을 보면 매화의 색깔을 보고 왕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내의원까지 따로 두고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왕이 건강이 나라의 안위에도 관계가 깊기에 왕의 건강을 신경쓴 것인데, 왕들은 대부분 과중한 업부와 정치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장수하지 못한다고 한다. 조선왕들을 보아도 대부분 젊은 나이에 죽거나 병사하고 오랜 장수를 누렸다는 왕은 영조는 82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왕들은 왕위에 오르고 오랜기간 통치를 하지 못했다. 왕들이 가장 많이 걸린 질병은 의외로 '종기'라고 한다. 지금에 종기는 큰병에 속하지도 않지만 조선시대 당시엔 종기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문종은 재위한지 2년 만에 종기로 인해 세상을 떠났고 이 사건으로 단종과 세조 사이에는 권력 쟁탈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단순한 병이라고 생각했지만 왕이 걸리고 왕권의 영향을 줄 수 있기에 후세엔 역사까지도 바꿀 수 있는 것이 왕의 건강이었다.














왕의 건강을 주위에서 챙겨주기도 하지만 왕 스스로가 자신의 몸을 위한 보양식을 먹으며 건강을 챙기기도 했다고 한다. 건강에 좋다는 음식이나 매년 추수를 하면 백성들은 가장 좋은 농작물 등을 모아 왕에게 진상을 했다. 한 해 가장 영양이 풍부하고 햇곡식과 햇과일 등을 먹은 왕의 건강은 기본적으로 일반 백성보다는 좋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단명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희생양이 되거나 붕당정치의 피해자로 살아야 했던 왕들에겐 대를 이어야 한다는 강한 의무감이 있었다. 그래서 많은 왕자를 생산하려고 했고 때론 왕의 건강을 해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왕으로 왕손을 생산하기 위해 여러 명의 부인을 두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몸에 맞지도 않는 한약까지 먹으며 왕손을 생산하려고 했던 헌종과 철종은 그런 비운의 왕들이다. 조선의 27명 왕들 중에서 노환으로 죽음을 맞이한 왕은 단 3명 뿐이었다. 대부분 병으로 죽음을 맞이했는데 의학의 발달을 떠나 가장 좋은 환경, 최상의 영양 상태에서 병을 얻었다는 것은 그만큼 왕좌가 편안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세상을 호령했을지는 몰라도 자연을 거스러거나 자신의 몸(건강)을 지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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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 2015-01-04 공감(2)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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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들의 삶과 건강

사람에게 죽음에 이를 세 가지 경우가 있는데 이는 다 자초하는 것입니다. 잠들 때를 놓쳐 숙면의 시기를 놓치거나, 먹고 마시는 것을 조절하지 못하거나, 과로하거나 지나친 편안함에 젖는 것이 그것입니다 &nbs... + 더보기
우보 2015-01-24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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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이라는 권력의 실체



조선의 왕이라는 권력의 실체



사극에 나오는 왕이나 권력자들의 모습은 항상 대단한 위세를 떨치고는 한다. 우리는 왕이라고 하면 세상을 자기 맘대로 주무르면서 맛있는 음식을 맘껏 먹고 예쁜 여자들을 맘껏 희롱하면서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 밑에 있는 신하들은 왕이 무슨 말만 하면 자신의 목숨이 날아갈까봐 벌벌 떨며 왕의 비위를 맞추느라 애쓰고 그 곁에서 작은 권력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조선 후기의 매관매직 현상은 그러한 벼슬아치들이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민중들을 착취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왕들은 그렇게 대단한 모습을 보인 왕이 없었다. 조선의 왕들은 항상 여러 병들을 달고 살았고 성욕이나 음식 욕심을 맘껏 채우지도 못하고 오히려 신하들의 비위를 맞추며 전전긍긍하며 사는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었다. 어떤 모습이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조선의 최고 권력자인 왕으로서 그들은 권력의 단맛을 어느 정도는 누렸을 것이다. 하지만 왕보다는 세도가인 양반 사대부의 삶이 더 자유롭고 즐거웠을 것 같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권력을 가지기 위해 부모, 형제 등의 모든 친인척을 없애며 차지한 조선의 왕이라는 권력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이 책은 한의학자의 입장에서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 나타난 왕의 질병과 치료 사례를 보며 현대적 관점에서 한의학을 논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부분은 <허준>과 <대장금>에서 나오는 여의와 <마의>의 주인공에 대한 실제 역사적 기록과 치료 관계를 더욱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외에도 왕을 치료한 한의사의 다양한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어서 흥미로운 점이 많았다.



이 책 속의 조선의 왕들이 너무나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왕이 되면서 병을 달고 살면서 죽을 때까지 고생한 면이 많았던 것이다. 특히, 자신이 왕위에 오르면서 동시에 부모님의 삼년상을 치르게 되는데, 그러한 과정이 너무나 가혹해 그 이후에 건강을 크게 해치면서 앓아 눕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나중에는 건강이 나빠지게 되므로 고기 반찬을 조금이라도 먹으면서 상을 치르지 말라고 신하가 아뢰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왕으로서의 정통성과 왕위가 안정되는 경우가 많아 다음 대의 왕들은 그것을 그만두지 못했다. 조선 사회가 아무리 유교적인 이상 사회를 염원하는 국가라고 하지만 왕에게 너무나 많은 부담을 과도하게 주었던 것 같았다.



조선의 왕은 그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죽을둥 살둥 잔병치레를 겪으며 힘들어 했다. 그래서 왕의 자리를 벗어나면 너무나 오래 살았다는 몇 가지 사례가 남아 있어 왕이라는 부담감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태조는 1차 왕자의 난 당시 위중한 병으로 병석에 누워 있었지만 태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 74세까지 살았고, 정종은 어렸을 때부터 약골이라서 주변의 걱정을 달고 살았지만 동생 이방원에게 양위한 후 63세까지 살았다. 광해군은 재위 시 온갖 질병에 시달렸지만 퇴위 후 67세까지 장수했다고 한다. 조선왕이 젊어서는 30대, 보통은 40대, 오래 살면 50대 정도까지 지냈던 것을 보면 왕에서 물러나서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그 차이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52년 동안 왕좌를 지키며 83세까지 장수한 조선의 제21대 임금인 영조는 어렸을 때는 약골로 한약을 달고 살았다고 하니 예외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영조가 어떻게 해서 왕으로서의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건강을 오랫동안 유지하며 장수를 했던 이유가 궁금해진다. 영조의 장수 비결은 첫째, 영조는 자기의 몸 상태를 정확히 파악했다. 자기 몸의 약점이 무엇인지 알고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영조는 자신의 몸이 냉기에 민감하다는 사실을 알고 차가운 자리에 앉지 않고 찬 음식을 멀리하는 등의 온기 보존에 신경을 썼다. 둘째로는 영조는 자신에게 어떤 처방이 맞는지 정확하게 알고서 인삼을 대량으로 넣은 건공탕을 꾸준히 복용하였다. 셋째로는 바쁜 와중에도 식사를 거르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소식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의 왕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많이 없었다. 유교적인 사회가 굳건해지며 왕권이 약해지고 신권이 강해질수록 왕은 심적으로도 신하들에게 밀리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사극 드라마에서 왕이 호통을 치면 신하들이 질끔하며 몸을 움츠리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던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무엇을 하든 신하들에게 상의하며 눈치를 봐야했고 신하들이 상소를 올려 왕에게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충고를 하기도 했다. 현종은 온천욕을 하러 가고 싶다고 말하지만 신하들이 반대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나중에 몰래 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또 어떤 왕은 신하들 몰래 전복을 찾아 먹었다가 신하들에게 음식에 욕심을 내지 말라는 상소를 받는 등의 웃지 못할 일도 생겼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최고 권력자의 모습은 아닌 것이다.



이 중에서도 소설, 드라마, 영화 등으로 많이 창작되어진 조선 왕들의 독살 사건의 진실에 대한 한의학자의 견해도 재미있었다. 대부분은 독살설이 터무니 없었음을 실록에 나타난 사실을 바탕으로 오래 앓아온 병증과 잘못된 처치로 그렇게 되었다고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조선 왕들의 독살설을 믿을 것 같았다. 그것이 더 드라마틱하고 재미있고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독살설과 관련된 조선 왕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다. 문종, 단종, 예종, 연산군, 인종, 선조, 소현세자, 효종, 현종, 경종, 정조, 효명세자, 고종 등으로서 이렇게 많은 조선의 왕들이 독살설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많은 조선의 왕들 중에서 소현세자의 사연이 가장 안타깝게 느껴졌다. 전쟁의 볼모로 몇 십 년간 타국으로 떠돌다가 겨우 고향 땅으로 돌아오지만 병을 얻어 앓아 눕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당시 왕인 인조가 소현세자를 불쌍하게 여기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정적으로 인식하고 치료를 제대로 해주지 않아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그 이후로 인조는 소현세자의 장례도 세자로서 치르도록 대우해 주지 않았던 것이다. 소현세자가 얼마나 많은 한을 품에 안고 죽었을지 나로서는 상상도 되지 않았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여러 왕들을 정치적인 관점이 아니라 한의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본 것은 야사를 읽는 듯 제법 흥미로운 얘기가 많았다. 그리고 최고 권력자인 조선시대 왕들이 생각보다 행복하지 않고 많은 스트레스로 인해서 평생 고생했다는 사실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많으면 좋을 것이지만 그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 정작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산다면 우리는 오히려 불행을 쫓으며 살게 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왕으로서 가장 오래 살았던 영조의 방식을 본받아서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챙기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알라딘 사이언스북스의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정치적, 경제적 사건이나 시대 정신의 변화는 조선 왕의 몸과 마음에 흔적을 남겼다. 커다란 사건이나 심한 변화는 왕의 몸과 마음에 충경을 주었고, 이것은 바로 질병으로 이어졌다. 왕의 몸은 바로 조선 역사의 바로미터다. 사실 마음은 숨길 수 있지만 몸은 정확하게 반응한다. 왕의 몸은 너무나도 정직하기 때문이다. 왕의 몸과 그 몸을 괴롭힌 질병의 기록이 바로 조선 역사의 거울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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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향 2015-01-15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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