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25

한국 신종교의 성격과 가톨릭 신앙 노길명 2013

교회와신앙


한국 신종교의 성격과 가톨릭 신앙


2013년 12월 02일 (월) 
노길명 교수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노길명 교수 /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1. 한국 신종교의 현황

한국의 신종교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그 까닭은 많은 신종교들이 교리나 의례 또는 조직체의 체계화가 미흡하여 하나의 종교집단으로 간주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 분명한 조직체계와 명칭을 가졌다 하더라도 기성종교와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거나 00회, 00협회, 00학회, 00연구회 등과 같이 일반 사회단체나 학술단체로 오인할 수 있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밀교(密敎)의 형태로 은밀히 전파되는 경우가 많으며, 생멸성쇠(生滅盛衰)의 흐름도 빨라 그 실태가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신종교의 수효는 조사기관에 따라 저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나 그동안의 실태조사결과들을 종합해 보면, 한국사회에서 등장한 신종교의 수효는 600개가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 중 상당수는 이미 소멸되었지만, 아직도 300개 내외의 신종교들이 활동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의 신종교들은 크게는 4가지 계열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는 민족종교계열 신종교들이다. 한국 전통종교인 불교나 유교에서 분파된 종단들과 함께 한국의 전통종교사상을 나름대로 수렴하여 체계화시킨 동학계, 정역계, 증산계, 단군계, 각세도계, 찬물교계, 무속계 종단들이 이에 포함된다. 둘째는 그리스도계 신종교들이다. 개신교에서 분파된 신종교들과 가톨릭 신자가 만든 신종교가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는 외래계 신종교들이다. SGI한국불교회, 여호와의증인, 국제도덕협회 등과 같이 일본이나 미국 또는 중국 등 외국에서 들어온 신종교들이 이에 포함된다. 넷째는 탈현대성에 따라 확산되는 뉴에이지운동, 정신세계운동, 기수련문화운동 등과 같은 신영성운동이다.

2. 한국 신종교운동의 전개과정

한국의 신종교운동은 ‘근대’(近代)의 충격에 대한 대응운동으로 시작되었다. 19세기 후반에 밀어닥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충격은 오랜 동안 외부세계와 단절되어왔던 한국사회를 세계사의 흐름 속으로 편입시켰지만, 이러한 외적 충격은 조선 후기사회가 지니고 있었던 내적 모순을 더욱 심화시킴으로써 한국사회를 급속한 위기상황으로 몰아넣게 되었다.

이와 같은 위기상황은 두 가지의 사회적 모순이 심화됨에 따라 더욱 가속화되었다. 그 하나는 지배계급이 민중을 억압하고 수탈함으로써 계급간의 차이와 갈등을 수반하는 계급모순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사가 민족의 자주적 결단보다는 외세 열강의 이해관계에 의해 왜곡되는 민족모순이었다. 이 두 가지 사회적 모순의 심화는 민중에게 고통을 부여하는 한편, 민족문화와 국가정체성의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다.

신종교운동은 이와 같은 사회적 상황에서 등장하였다. 신종교의 창교자들은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를 지적하는 한편, 이로 인해 고통 받는 민중의 해방과 구원, 밀려오는 외래문화의 충격 속에서 훼손되는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 그리고 위기를 맞고 있는 국가정체성의 확립 등을 약속하면서 신종교를 창교하였다. 따라서 한국의 신종교운동은 그 자체가 민중과 민족문화 그리고 민족국가의 정체성 위기에 대한 대응운동으로서의 성격을 띠면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민족종교계열뿐 아니라 그리스도계 신종교들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리스도계 신종교의 발생에는 서구 선교사들의 신앙유형과 선교정책도 크게 작용하였다. 선교사들의 대다수를 차지하였던 미국선교사들의 신앙유형은 성속이원론에 바탕을 둔 근본주의 신앙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민족사에 대한 대응보다는 초월적이고 내세 중심적이며 개인중심적인 신앙을 강조하였다. 또한 그들은 철저한 정교분리정책을 표방하고 반일운동에 대한 참여를 금지시키면서 개교회중심주의 정책을 지켜나갔다. 선교사들의 이러한 신앙유형과 선교정책은 신학적 이단종파운동, 반선교사운동, 반교권운동, 무교회주의운동, 신비신령주의운동, 환상적 애국적 종파운동 등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러한 종파운동은 한국 그리스도계 신종교운동의 기원이 되었다. 현재 활동 중인 대부분의 그리스도계 신종교들은 이러한 종파운동과 상당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3. 신종교운동의 창교자와 참여자

대체로 본다면, 신종교 창교자들은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그 하나는 자신이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거나 극도의 고통을 체험한 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부조리 또는 타인이 겪는 고통에 나름대로 고민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이나 타인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하였지만 그에 대한 적절한 해결방안이나 해답을 얻지 못하고, 결국에는 종교를 통해 해결하려고 시도한 경험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기성종교를 통해서도 해답이나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였을 때, 이들은 여러 종교에서 얻게 된 수련방법을 통해 나름대로의 종교적 체험을 갖게 되고, 자신의 종교적 체험을 인정하고 따르는 추종자를 얻어 하나의 새로운 종교를 형성하게 된다.

신종교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빈곤자,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자, 영성적 갈증이나 도덕적 결핍을 느끼는 자,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연대성을 상실한 자 등 다양하다. 그러나 대다수는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억눌리거나 상처받거나 고통 받는 자들이다. 또한 이들의 대부분은 자신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위로받기 위해 기성종교를 다녔던 경험을 지니고 있다. 종교성이 낮은 사람들은 남들로부터 사이비종교, 사교, 유사종교, 이단 등으로 불리면서 지탄받는 신종교를 자신의 첫 번째 종교로 택하지 않는다. 신종교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종교성이 강한 사람들이고 나름대로는 기성종교에서 열심히 활동하였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기성종교에서 마저도 소외되거나 상처받은 ‘이중의 실패자들’이 대부분이다. 신종교가 기성종교에 대해 강한 비판과 배타를 나타내는 것은 이러한 점과도 관련된다.

신종교의 창교자들은 단순한 종교지도자가 아니다. 그들의 대다수는 ‘낡고 사악한’ 이 세상을 심판하고 구원할 ‘메시아’로 신봉된다. 그렇기 때문에 신종교 참여자들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로부터 삶의 분명한 방향과 방법을 제시받는다. 또한 유사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동료신자들과의 강력한 연대의식과 응집성을 통해 ‘삶의 기반’을 찾는다.

4. 신종교의 전교방법

신흥종교들은 기성종교보다 역사가 짧다. 따라서 그들의 교리나 의례나 조직체계는 기성종교보다 미약하다. 이들이 하나의 종교집단으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은 혼자의 힘으로는 세상을 살아가기 어려운 사람들이 서로 모여 의지하면서 위로받을 수 있다는 이들의 공동체적 특성, 또는 자신의 앞날에 대해 불안감을 지닌 사람들이 무한한 권능을 가진 것으로 인식되는 창시자나 교주에게 자신의 삶을 의탁함으로써 불안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따라서 신흥종교의 전교방식은 교리나 의례를 강조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삶에 호소하는 방식이 중심을 이룬다. 이러한 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유형이 포함된다.

그 첫째는 강력한 집단공동체의 구조적 성격을 강조하는 방법이다. 유사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동질적인 집단구조와 새로운 종교로서의 소공동체적인 성격은 집단에 대한 적응력과 충성심을 높여줌으로써 친족집단이나 지연집단과 같은 삶의 공동체적 기반을 상실하거나 사회적 적응에 실패한 경험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삶의 새로운 터전과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친밀한 인간관계의 형성이다. 최근 상당수의 신종교들은 설문조사형식을 빌어 상대방의 인적사항과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파악하거나, 문화예술 동아리나 성경공부 반에 가입을 권유하면서 전교대상자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인간관계를 형성한 다음에는, 주로 전교대상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가슴 속에 맺혀 있는 상처나 응어리를 털어놓도록 유도하고, 그것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위로하면서 자신도 유사한 처지와 경험을 지니고 있었음을 강조하고, 자신의 종교를 통해 그러한 문제나 고통을 해결할 수 있음을 약속한다.

셋째는 현세 기복에 대한 약속이다. 이들은 내세 구원을 별로 내세우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믿으면 내세가 아니라 현세에서 축복을 받게 된다고 강조하면서 접근한다. 특히 치병은 많은 신종교들이 강조하는 주요 전교방법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종교에 와서 안수를 받거나 기도회에 참여하거나 헌금을 하게 되면 어떠한 불치병이나 난치병도 치유될 수 있다고 약속함으로써 고통 받는 병자들과 그 가족들의 관심을 촉발한다.

넷째는 신비체험의 약속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종교집회에 참여하면 하느님의 음성을 직접 듣게 되거나,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과 대화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집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우환들은 돌아가신 조상님들의 영혼이 평안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그들을 편한 곳으로 보내드리는 천도제(遷都祭)를 드려야 한다며 많은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다섯째는 성경에 대한 자구적 해석이다. 신종교는 역사가 짧기 때문에 교리나 신학의 체계성이 기성교회보다 미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계 신종교들은 성경의 배경이나 문맥은 무시한 채, 성경구절을 자구적으로 해석하면서 성경에 대한 관심이나 지식이 낮은 기성교회 신자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그리스도계를 포함하여 대다수의 신종교들은 가톨릭신자들을 우선적 전교대상으로 삼는 경향이 많다. 따라서 신종교 참여자들 가운데는 가톨릭신자 출신이 대단히 많다. 또한 가톨릭에서 신종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다시 가톨릭신자들을 대상으로 삼아 적극적인 전교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신종교의 집단응집력은 대단히 강하다. 신종교가 지닌 구성원들의 유사성과 집단의 소규모성, 자신들이 오랫동안 지니고 있던 상처와 열망을 풀어내는 열광적인 집회, 메시아로 간주되는 교주의 강력한 카리스마, 간단하고 분명하면서도 쉬운 교리와 주장, 임박한 종말론과 심판에 대한 강조, 자신들은 ‘선택받은 사람들’이고 다른 사람들은 ‘저주받고 심판 받을 사람들’이라는 이원론적 대립구도, 그리고 늘 함께 기도하고 전도하는 공동생활양식 등은 집단에 대한 참여와 응집성을 강화시키게 된다. 여기에 덧붙여, 끊임없이 계속되는 기도와 수련 그리고 교육에 따른 환상이나 환청 또는 신체적 이상과 같은 신비스러운 체험은 이러한 분위기와 응집력을 더욱 강화시키게 된다.

5. 한국 신종교의 공통교리와 사상

한국에서 발생한 신종교는 대단히 많다. 또한 그들의 계보, 경전, 조직, 규모, 활동 내용은 저마다 다양하다. 그렇다고 하여 한국 신종교의 교리나 사상체계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그들의 경전이나 각종 출판물 그리고 설교의 내용들을 분석해 보면, 대단한 공통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까닭은 한국의 신종교들이 동일한 역사적 체험과 문화적 유산을 바탕으로 발생하였으며, 현실 사회 상황에 대한 민중의 진단과 종교에 대한 욕구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한국 신종교의 교리나 사상은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나 기본 바탕은 종말론이다. 민족계열 신종교에서는 이를 ‘개벽’(開闢)이라 하고, 그리스도계 신종교에서는 ‘말세론’이라고 한다.

종말론은 신종교 신자들의 사회적 배경과도 깊은 관련을 맺는다. 신종교들은 현실의 세계는 자신들에게 고통을 주는 장소이며, 악의 세력들이 지배하는 장소라고 간주한다. 따라서 이들은 악의 세계, 낡은 질서는 하루 속히 타파되고 정의가 실현되는 지상천국(地上天國), 후천선경(後天仙境), 천년왕국(千年王國)과 같은 새로운 세계가 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오늘날은 이와 같은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는 대전환의 시기, 즉 ‘말세(末世)’ 또는 ‘개벽(開闢)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이 시기에는 삼재팔란(三災八亂)과 괴질(怪疾)이 엄습하게 되며 ‘대 심판’이 있게 되는데, 그동안 권력과 부(富)를 향유하던 자들은 모두 멸망하고 억눌려 있던 약자(弱者)들만이 새로운 이상세계에 참여하여 복락을 누리게 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재난과 심판을 면할 수 있는 비법으로 주문(呪文)을 암송하거나, 부적(符籍)이나 증표를 지니게 하거나 또는 특정 지역으로 도피하도록 가르치기도 한다. 이러한 교리에는 인간존엄에 대한 강렬한 신념과 함께, 그동안 억눌리고 고통받아온 민중의 한(恨)을 해소하려는 강한 열망이 내재된 것으로 보여 진다.

개벽이나 말세 교리에는 메시아에 관한 교리가 따르게 된다. 신종교에서는 ‘말세’ 또는 ‘개벽의 시대’에는 이 세상을 심판하고 새로운 세계를 펼쳐 줄 ‘심판주’나 ‘구세주’ 또는 ‘미륵불’이라 불리는 메시아가 출현하게 된다고 강조하면서, 그는 바로 자기 종교의 창시자 또는 교주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신종교의 창시자나 교주들은 단순한 지도자가 아니라 강력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이며,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창시자나 교주에 대한 신앙은 선민의식(選民意識)으로 연결된다. 한국 신종교의 교주나 창교자가 메시아라면, 한국은 하느님이나 절대주로부터 선택받은 나라이고 한민족은 메시아를 영접한 민족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세상을 비출 ‘새 진리’, ‘새 진법(眞法)’, ‘새 원리’는 한국에서 나오게 되고, 앞으로 전 세계는 한국을 중심으로 새롭게 통합되며, 한국이 세계역사를 주도하는 상등국(上等國)이 되고, 한국어가 세계의 ‘조국어’ 또는 ‘모국어’가 되며, 후천선경이나 지상천국도 한국에서부터 실현될 것이라는 신념으로 연결된다. 또한 이러한 믿음은 한민족은 하늘로부터 특수한 소명을 받은 민족이라는 신념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선민의식에는 그동안 외세열강에 의해 손상되어온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강한 열망이 내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신종교들은 계보나 연원에 관계없이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낸다. 우선, 한국의 신종교들은 한국인의 사유형식인 조화와 융합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교리체계를 구성한다. 그러면서 한국의 종교적 유산들을 수렴하고 새롭게 체계화하려는 강한 열의를 나타낸다. 이들은 전통종교의 교리나 사상은 물론 민중에 의해 전승되는 재래의 민간신앙을 배척함이 없이 거의 모두 수렴하고 있다.

따라서 신흥종교의 교리는 강한 혼합주의를 타나낸다. 이러한 점은 그리스도계 신종교운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면, 통일교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그리스도계 신종교의 교리 속에는 유교, 불교, 도교의 사상은 물론 음양사상, 태극사상, 주역사상, 무속신앙, 단군신앙, 정감록신앙과 함께 경우에 따라서는 춘향전과 심청전의 내용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이와 같은 전통 문화들을 계승하고 체계화함으로써 외래문화의 충격으로 손상되는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시도한다. 이와 같은 점에서 한국의 신종교운동은 민족문화의 정체성 회복을 위한 운동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학자들은 한국의 신종교들은 억눌리고 수탈당해온 민중을 해방하려는 ‘민중종교운동’으로서의 성격과 함께, 외세열강에 의해 손상되어온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고 외래문화의 유입으로 정체위기를 맞고 있는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려는 ‘민족종교운동’으로서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6. 신종교와 일탈행동

신종교가 지닌 비판적 성향과 급진적 성격 그리고 교주를 중심으로 한 강한 응집성과 열광성은 때때로 일탈행동이나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현상은 기존 사회 체제와 기성종교에 대한 태도가 비판적일수록, 또한 새로운 이상사회에 대한 열망이 강할수록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히 시한부종말론을 강조하는 집단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우선, 신종교가 나타내는 교주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하는 집단 응집성, 기존의 가족관계나 인간관계 및 사회질서에 대한 정면 거부와 그에 따른 외부세계와의 차단 등은 때때로 일탈행동을 유발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가정, 직장 또는 직업의 포기, 재물수탈, 혼음과 성폭력, 노동력 착취, 등은 신종교에서 일어나는 일탈행위의 흔한 사례들이다. 또한 ‘여호와의 증인들’이 병역의무는 물론 애국가 부르기와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고 헌혈과 수혈을 거부하는 것도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신종교나 이단 종파의 일탈행동은 흔히 도피적 행동이나 공격적 행동 또는 집단 히스테리나 광란적 행동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도피적 행동은 자신들의 힘으로는 새로운 질서를 펼칠 수 없다고 느낄 때 특히 나타난다. 도피적 행동은 기존 사회와의 접촉을 단절하고 자기들만의 독특한 집단적 삶을 영위하면서, 구세주나 심판주가 출현하여 새로운 질서를 펼쳐줄 때를 기다리는 형태로 나타난다. 많은 신종교들은 한국의 계룡산이나 모악산을 심판 때 구원받을 피난처나 또는 지상천국이 건설될 복지(福地)라고 생각하면서 그곳에서 신앙촌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신종교의 도피적 행동 사례로서는 1950년대부터 시작된 전도관의 ‘신앙촌’을 비롯하여, 1989년 가정주부 74명이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가출하여 야영생활을 하였던 것, 그리고 1980년대 말부터 한국에서 크게 성행했던 소위 1992년 휴거론을 신봉하는 종파들의 집단생활 등을 들 수 있다.

신종교에서 흔히 나타나는 기존 질서에 대한 전면적 거부와 새로운 세계의 도래에 대한 조급성은 광조성(狂操性)을 일으켜, 기존질서 타파를 통한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앞당기려는 공격적 행동을 촉발하기도 한다. 기존의 정치제도나 경제제도, 교육제도, 가족제도 등을 낡고 사악한 제도라고 규정하여 거부하는 행위나, 자신들을 비판하는 대상에게 물리적 공격을 가하는 행위 등도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사회의 지도층이나 물리적 시설을 공격하는 행위를 새로운 세계에 동참하도록 ‘선택받은 자’가 마땅히 수행해야 할 성스러운 행위로 간주하기도 한다.

한편, 아직도 안정되지 못한 신종교집단에서의 이탈은 다른 신도들에게 영향을 미쳐 집단응집력의 약화를 가져오거나 집단내부의 비밀을 외부세계로 알릴 위험성을 높이게 된다. 이러한 경우, 충성도가 낮아지거나 이탈하는 신자들에 대한 물리적 공격이나 보복이 따르기 쉽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신도를 처단하는 사례들도 나타난다. 1930년대에 있었던 백백교에서의 신도 350여명 살해 암매장사건이나 1980년대 이후 발생한 영생교의 신도 살해 암매장 사건, 그리고 소위 ‘구원파’에 속한 ‘오대양’에서의 신도 32명 살해사건 등은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

또한 신종교의 조급성과 광조성도 광란적인 집회나 소란 또는 집단나체예배나 혼음 등과 같은 집단 히스테리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집단자살과 같은 형태로 표출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1978년 남미 가이아나(Guyana)에서 발생한 ‘인민사원’(The People’s Temple) 신도 909명 집단 자살사건, 1997년 미국에서 발생한 ‘천국의 문’(The Heaven’s Gate) 신도 39명의 집단 자살사건, 2000년 3월 우간다에서 발생한 ‘하느님의 십계 회복운동’에서의 1천여 명의 집단 자살사건 등은 신종교 집단 자살사건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7. 신종교와 가톨릭 신앙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결단이며 투신 행위이다. 따라서 그것은 개인의 주관적 행위에 속한다.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집단에서 보여 지는 바와 같이, 교리체계가 논리적으로 맞지 아니하고 많은 사회문제를 유발하는 집단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그러한 종교집단에 빠지게 되면 이성적 판단이나 합리적 사고방식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신종교에 대한 대응은 사후 치료보다는 사전예방에서 찾아야 한다.

신종교는 ‘병든 사회’와 그러한 사회에 역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기성종교들이 공동으로 만들어낸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신종교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건전해야 하고 기성종교들이 종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 특히 기성종교의 역할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오 8:20)고 하신 예수께서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오 11:28)고 하신 말씀처럼, 교회가 사회에서 소외되고 억눌리고 상처받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피난처’, 또는 ‘구원의 장소’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 그들은 ‘사이비종교’, ‘유사종교’, ‘이단’, ‘사교’ 등으로 불리는 신종교보다는 교회를 찾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다 적극적인 교회의 사회사목과 신자들 간의 나눔의 실천, 그리고 교회 내에서의 소공동체의 활성화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신종교로 개종하지 않기 위해서는 신자들의 신앙이 건전해야 한다. 기복적인 신앙이나 신비주의에 대한 무비판적인 몰두는 신종교의 선교전략에 쉽게 따를 가능성을 높인다. 가톨릭 신앙의 목적은 물질적인 축복과 같은 현세에서의 복락이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사회 안에 실현하는 것이다(마태오 6:33). 또한 가톨릭 신앙은 자신이 겪는 고통을 피하거나 해탈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는 예수의 말씀은 일상생활에서 겪는 고통을 피하려 하지 말고 그것을 받아들여 그 의미를 묵상하고 그것을 그리스도의 수난과 연결시켜 결국에는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라는 말씀이다.

또한 종교생활에서는 신비체험을 가질 수 있지만, 건강한 신앙이란 신비체험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비체험을 통해 전해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파악함으로써 지니게 되는 것이다. 심령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이 조화를 이룰 때, 즉 기적이나 계시에 못지않게 성서와 교리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을 때 신종교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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