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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학교 대학원 신학박사(Ph.D.) 논문 연재(1)
기독교 인문주의 시대에 나타난 뒤러의 <네 마녀들>
전경숙 박사(성공회대 Ph.D.)
승인 2019.09.18 17:01
호수 456
성공회대학교 대학원 신학박사(Ph.D.) 논문 연재(3)
전경숙 박사(성공회대 Ph.D.)
승인 2019.09.18 17:01
호수 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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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의 <네 마녀들(Four Witches)>에 표상된 기독교인문주의 연구”
▲ 저자: 전경숙 박사(성공회대 Ph.D.)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목회학석사(M.Div.) 부산대학교 수학과
독일을 대표하는 뉘른베르크의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는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평생을 기독교적인 주제의 해석에 전념하면서 미술가로서의 자신을 오직 신의 직인으로 만족하며 살았다. 뉘른베르크가 북유럽의 예술과 학문의 중심지로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기독교적인 고전고대(Christian Antiquity)에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기독교 인문주의를 꽃피웠던 것을 생각하면, 뒤러가 미술사에서 인문주의 화가로 기록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나아가 뒤러는 수학, 특히 기하학에도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는 두 번의 이탈리아 연구여행을 다녀온 후, 자신의 인문학적 예술 창작과 함께 기하학도 발전시켰다. 그는 생애 동안 17점 이상의 그림, 100점 이상의 동판화, 250여 점의 목판화, 1천 점이 넘는 소묘와 그리고 기하학과 축성술, 인체비례이론에 관한 세 권의 인쇄본을 남겼다. 그의 저서들에는 기하학을 비롯한 여러 가지 나선(helix)의 작도와 그 원리가 소개되어있는데, 뒤러의 나선 연구는 훗날 1962년의 DNA 이중 나선 구조를 밝히는 데 공헌하였다. 이는 다빈치의 해부학 드로잉 <비트루비우스 인간>이 오늘날에도 수많은 자연과학도들의 도전을 자극하고 있는 것에 버금간다.
뒤러의 1497년 작 동판화 <네 마녀들(Four Witches), 또는 네 명의 벌거벗은 여인들(The Four Naked Women)>은 첫 번째 이탈리아 여행(1494-95) 이후에 북유럽 르네상스의 기초를 쌓기 시작한 시대의 작품이다. 이 여행을 통해 뒤러는 당시까지 북유럽 미술에서는 생소했던 인체 미에 관한 의문을 품게 되었고, 새롭게 접한 인체의 구조와 동세에서 얻어낸 발견들을 동판화로 만들어 인쇄하였다.
뒤러는 대중들을 위해서 목판화를 제작할 때는 대중적인 감각에 부합하고 교훈적이며 감동 있는 주제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귀족들과 중산층의 교육받은 사람들을 상대로 동판화를 제작할 때는 그는 자신의 창조적 분방함을 아낌없이 발휘하였다.
뒤러의 동판화 <네 마녀들> 속의 네 명의 나체의 젊은 여성들은 모두 가운데를 향하여 둥글게 모여 서서 마치 무언가를 공모하는 듯하다. 그런데 뒤러는 주인공들의 머리모양과 표정과 몸짓들을 눈에 띄게 의도적으로 모두 제각각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가운데의 예쁘게 장식한 헤어스타일의 아름다운 몸매의 인물은 비너스로 보인다. 그리고 비너스의 왼편 인물은 언뜻 보아도 임신한 여성이다. 그녀는 자신의 태중의 아이에게 근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올리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
전경숙 박사(성공회대 Ph.D.) dsglory3604@nate.com
원제: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의 <네 마녀들(Four Witches)>에 표상된 기독교인문주의 연구”
▲ 저자: 전경숙 박사(성공회대 Ph.D.)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목회학석사(M.Div.) 부산대학교 수학과
독일을 대표하는 뉘른베르크의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는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평생을 기독교적인 주제의 해석에 전념하면서 미술가로서의 자신을 오직 신의 직인으로 만족하며 살았다. 뉘른베르크가 북유럽의 예술과 학문의 중심지로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기독교적인 고전고대(Christian Antiquity)에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기독교 인문주의를 꽃피웠던 것을 생각하면, 뒤러가 미술사에서 인문주의 화가로 기록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나아가 뒤러는 수학, 특히 기하학에도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는 두 번의 이탈리아 연구여행을 다녀온 후, 자신의 인문학적 예술 창작과 함께 기하학도 발전시켰다. 그는 생애 동안 17점 이상의 그림, 100점 이상의 동판화, 250여 점의 목판화, 1천 점이 넘는 소묘와 그리고 기하학과 축성술, 인체비례이론에 관한 세 권의 인쇄본을 남겼다. 그의 저서들에는 기하학을 비롯한 여러 가지 나선(helix)의 작도와 그 원리가 소개되어있는데, 뒤러의 나선 연구는 훗날 1962년의 DNA 이중 나선 구조를 밝히는 데 공헌하였다. 이는 다빈치의 해부학 드로잉 <비트루비우스 인간>이 오늘날에도 수많은 자연과학도들의 도전을 자극하고 있는 것에 버금간다.
뒤러의 1497년 작 동판화 <네 마녀들(Four Witches), 또는 네 명의 벌거벗은 여인들(The Four Naked Women)>은 첫 번째 이탈리아 여행(1494-95) 이후에 북유럽 르네상스의 기초를 쌓기 시작한 시대의 작품이다. 이 여행을 통해 뒤러는 당시까지 북유럽 미술에서는 생소했던 인체 미에 관한 의문을 품게 되었고, 새롭게 접한 인체의 구조와 동세에서 얻어낸 발견들을 동판화로 만들어 인쇄하였다.
뒤러는 대중들을 위해서 목판화를 제작할 때는 대중적인 감각에 부합하고 교훈적이며 감동 있는 주제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귀족들과 중산층의 교육받은 사람들을 상대로 동판화를 제작할 때는 그는 자신의 창조적 분방함을 아낌없이 발휘하였다.
뒤러의 동판화 <네 마녀들> 속의 네 명의 나체의 젊은 여성들은 모두 가운데를 향하여 둥글게 모여 서서 마치 무언가를 공모하는 듯하다. 그런데 뒤러는 주인공들의 머리모양과 표정과 몸짓들을 눈에 띄게 의도적으로 모두 제각각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가운데의 예쁘게 장식한 헤어스타일의 아름다운 몸매의 인물은 비너스로 보인다. 그리고 비너스의 왼편 인물은 언뜻 보아도 임신한 여성이다. 그녀는 자신의 태중의 아이에게 근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올리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
전경숙 박사(성공회대 Ph.D.) dsglory36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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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학교 대학원 신학박사(Ph.D.) 논문 연재(2)
성공회대학교 대학원 신학박사(Ph.D.) 논문 연재(2)
‘O·G·H·’, <네 마녀들> 속 수수께끼
전경숙 박사(성공회대 Ph.D.)
승인 2019.09.26
원제: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 rer 1471-1528)의 <네 마녀들>에 표상된 기독교인문주의 연구”
전경숙 박사(성공회대 Ph.D.)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목회학석사(M.Div.) 부산대학교 수학과
<네 마녀들>에서 오른쪽의 인물은 두 팔을 내린 채 왼쪽의 임신한 귀부인을 바라보며 난감해 하고, 맨 뒤에 서 있는 인물은 앞을 보며 분노로 화를 내고 있다. 바닥에 놓여있는 해골과 긴뼈는 작품의 분위기에 으스스하고 음울한 긴장감을 더한다.
또한 배경 왼쪽의 열린 문 아래로는 커다란 얼굴의 악마가 보인다. 악마는 마치 자신이 이 장면을 주도하는 듯, 문 뒤에서 관객을 향해 얼굴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림 중앙의 천정 가운데 매달려 있는 둥글고 큰 구체에는 제작년도 아래에 ‘O·G·H·’라는 알파벳이 뚜렷하게 새겨져있다. 구체에 새겨진 세 문자 ‘O·G·H·’는 뒤러의 서명이나 제작년도처럼 관객을 위한 암호로 보인다. 도대체 뒤러는 저 이니셜 ‘O·G·H·’로 관객에게 무슨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20세기 이전의 연구는, <네 마녀들>을 신화들과 연계한 세속적인 동판화로 보았다. ‘삼미신(The Three Graces)’과 ‘파리스의 심판(Judgement of Paris)’ 같은 주제는 르네상스 초 예술가들에게 새롭고도 인기 있던 주제였기 때문이다. 1675년 미술사가 산드라트(Joachim von Sandrat)는 <네 마녀들>의 구도를 ‘삼미신’, 등장인물들을 마녀들로 보며 뒤러의 ‘O·G·H·’를 “O Gott hüte uns von Zaubereyen(오, 신이시여, 마술로부터 저희를 구하옵소서)”로 풀이하였다. 이 동판화의 제목이 <네 마녀들>로 불리게 된 것은 이때부터이다.
1884년, 타우징은 뒤러의 <네 마녀들>을 ‘파리스의 심판’과 1486년 마녀사냥을 위해 도미니크 수도사들에 의해 출판된 『마녀의 망치(Malleus Maleficarum)』를 관련시켜, 성적으로 탐욕스런 악마들과 계약을 맺는 육욕의 여성들이 ‘여성누드를 과시하는 파리스의 심판’으로 해석했다. 포쉬는 산드라트의 ‘삼미신’ 구도에 『마녀의 망치』를 연관시켜, <네 마녀들>의 인물들을 화환을 쓰고 있는 세속적 사랑인 비너스와 그녀를 따르는 육적인 여성들로 보았다.(『마녀의 망치』에 대해서는 4회 연재에서 소개한다)
부스트만은 둥근 구를 임신과 출산에 대한 사랑의 묘약으로 생각했던 맨드레이크(mandrake) 열매와 동일시하여 ‘O·G·H·’를 “곳곳마다 인간을 태어나게 하는(Omnium Generato Hominum)”으로 풀이했다. 그리고 뷜러는 15세기 독일사회를 위협했던 매독의 공포에, 매춘을 여성들의 육욕의 실현이라고 본 『마녀의 망치』와 연결해서, ‘O·G·H·’를 “공공여관(Offentliches Gaste Haus)”이라고 주장했다.
20세기 전설적인 미술사가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는 당시 독일에서 유행하던 마녀이야기들 중 한 사건과 관련시켰다. 그는 한 조산부가 두 여성을 대동하고 악마의 아기를 임신한 귀부인의 집에 침입하여 ‘악마의 주문을 외며’ 태내의 아기를 죽이고 있는 장면이라고 해설하며, ‘O·G·H·’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았다.
미술사가이자 여성학을 연구한 헐츠(Linda C. Hults)는 여성에 대한 선(good)과 악(bad)의 전통적인 이분법적 견해와 뒤러시대의 “묵시론적 여성혐오”를 관련시켜, ‘O·G·H·’는 잠정적으로 “인간에게 발생하는 재난(Onus Generi Humani)”을 암시한다고 해석했다. 헐츠는 뒤러가 “당신들의 부인들을 다스려라, 그렇지 않으면 악마가 당신들의 권위를 침탈할 것이다.”는 내용을 <네 마녀들>의 관객에게 선정적으로 호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위의 연구들에는 역사적 인물로서 뒤러 개인에 대한 고찰이 결여되어 있다. 뒤러의 성장배경과 신앙, 그리고 당시의 신학과 역사, 문화적 환경을 함께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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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숙 박사(성공회대 Ph.D.)
승인 2019.09.26
원제: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 rer 1471-1528)의 <네 마녀들>에 표상된 기독교인문주의 연구”
전경숙 박사(성공회대 Ph.D.)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목회학석사(M.Div.) 부산대학교 수학과
<네 마녀들>에서 오른쪽의 인물은 두 팔을 내린 채 왼쪽의 임신한 귀부인을 바라보며 난감해 하고, 맨 뒤에 서 있는 인물은 앞을 보며 분노로 화를 내고 있다. 바닥에 놓여있는 해골과 긴뼈는 작품의 분위기에 으스스하고 음울한 긴장감을 더한다.
또한 배경 왼쪽의 열린 문 아래로는 커다란 얼굴의 악마가 보인다. 악마는 마치 자신이 이 장면을 주도하는 듯, 문 뒤에서 관객을 향해 얼굴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림 중앙의 천정 가운데 매달려 있는 둥글고 큰 구체에는 제작년도 아래에 ‘O·G·H·’라는 알파벳이 뚜렷하게 새겨져있다. 구체에 새겨진 세 문자 ‘O·G·H·’는 뒤러의 서명이나 제작년도처럼 관객을 위한 암호로 보인다. 도대체 뒤러는 저 이니셜 ‘O·G·H·’로 관객에게 무슨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20세기 이전의 연구는, <네 마녀들>을 신화들과 연계한 세속적인 동판화로 보았다. ‘삼미신(The Three Graces)’과 ‘파리스의 심판(Judgement of Paris)’ 같은 주제는 르네상스 초 예술가들에게 새롭고도 인기 있던 주제였기 때문이다. 1675년 미술사가 산드라트(Joachim von Sandrat)는 <네 마녀들>의 구도를 ‘삼미신’, 등장인물들을 마녀들로 보며 뒤러의 ‘O·G·H·’를 “O Gott hüte uns von Zaubereyen(오, 신이시여, 마술로부터 저희를 구하옵소서)”로 풀이하였다. 이 동판화의 제목이 <네 마녀들>로 불리게 된 것은 이때부터이다.
1884년, 타우징은 뒤러의 <네 마녀들>을 ‘파리스의 심판’과 1486년 마녀사냥을 위해 도미니크 수도사들에 의해 출판된 『마녀의 망치(Malleus Maleficarum)』를 관련시켜, 성적으로 탐욕스런 악마들과 계약을 맺는 육욕의 여성들이 ‘여성누드를 과시하는 파리스의 심판’으로 해석했다. 포쉬는 산드라트의 ‘삼미신’ 구도에 『마녀의 망치』를 연관시켜, <네 마녀들>의 인물들을 화환을 쓰고 있는 세속적 사랑인 비너스와 그녀를 따르는 육적인 여성들로 보았다.(『마녀의 망치』에 대해서는 4회 연재에서 소개한다)
부스트만은 둥근 구를 임신과 출산에 대한 사랑의 묘약으로 생각했던 맨드레이크(mandrake) 열매와 동일시하여 ‘O·G·H·’를 “곳곳마다 인간을 태어나게 하는(Omnium Generato Hominum)”으로 풀이했다. 그리고 뷜러는 15세기 독일사회를 위협했던 매독의 공포에, 매춘을 여성들의 육욕의 실현이라고 본 『마녀의 망치』와 연결해서, ‘O·G·H·’를 “공공여관(Offentliches Gaste Haus)”이라고 주장했다.
20세기 전설적인 미술사가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는 당시 독일에서 유행하던 마녀이야기들 중 한 사건과 관련시켰다. 그는 한 조산부가 두 여성을 대동하고 악마의 아기를 임신한 귀부인의 집에 침입하여 ‘악마의 주문을 외며’ 태내의 아기를 죽이고 있는 장면이라고 해설하며, ‘O·G·H·’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았다.
미술사가이자 여성학을 연구한 헐츠(Linda C. Hults)는 여성에 대한 선(good)과 악(bad)의 전통적인 이분법적 견해와 뒤러시대의 “묵시론적 여성혐오”를 관련시켜, ‘O·G·H·’는 잠정적으로 “인간에게 발생하는 재난(Onus Generi Humani)”을 암시한다고 해석했다. 헐츠는 뒤러가 “당신들의 부인들을 다스려라, 그렇지 않으면 악마가 당신들의 권위를 침탈할 것이다.”는 내용을 <네 마녀들>의 관객에게 선정적으로 호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위의 연구들에는 역사적 인물로서 뒤러 개인에 대한 고찰이 결여되어 있다. 뒤러의 성장배경과 신앙, 그리고 당시의 신학과 역사, 문화적 환경을 함께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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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학교 대학원 신학박사(Ph.D.) 논문 연재(3)
뒤러의 작품 속 경건과 민족적 자각
전경숙 박사(성공회대 Ph.D.)
승인 2019.10.03
전경숙 박사(성공회대 Ph..D.) 한신대학교신학대학원 목회학석사(M.Div.) 부산대학교 수학과
원제: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의 <네 마녀들(Four Witches)>에 표상된 기독교인문주의 연구”
14세기 초부터 시작된 신비주의 운동은 독일에서는 도미니쿠스 수도회를 중심으로 경건을 강조하며 활발하게 일어났다. 인간이 명상을 통해 ‘신성’(Gottheit) 속에서 ‘아무런 중재 없이’ 하나님과 ‘신비적인 연합’을 하고자하는 이 운동은 에크하르트(Eckhart von Hochheim)에 이어 주조(Heinrich Suso) 등 그의 제자들에 의해 더욱 확대 발전되고 성직자뿐만 아니라 평신도 단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들 공동생활 형제단(the Brothers of the Common Life)의 활동은 ‘근대 경건’(Devotio moderna)이라고 불리어지고, 빠르게 확산되어 독일, 스위스, 네델란드 프라하 등 여러 곳에 학교를 세우면서, “일상생활”(common life)의 중요성과 함께 경건을 실천했다. 에라스무스와 루터 등도 이들이 세운 학교 출신이다.
또한 15세기 중엽 인쇄술의 발달은 인문주의자들의 고전고대(classical antiquity) 연구에 박차를 가했고, 그 성과물인 번역본들은 폭넓게 전파되었다. 특히 기원전 100년경에 타키투스가 썼던『게르마니아(Germania)』가 재발견되자, 독일인들은 자신들이 전설적이고 고귀한 조상에서 유래했다는 흥분으로 열광하게 된다. 독일인문주의자들은 로마 교황의 도덕적 타락성에 독일인의 도덕적 순결성을 대비시켰다. 인문주의자이자 시인이었던 휴텐(Ulrich von Hutten, 1488-1523)은 1500년대를 맞으며 “오 새로운 세기여! 오 지식이여! 살아있는 것이 기쁨이로다!(O saeculum! O litterae! Iuvat vivere!)”로 시작하는 글을 뒤러의 둘도 없는 친구인 뉘른베르크의 빌리발트 피르크하이머(Willibald Pirckheimer)에게 보냈다.
독일의 또 다른 경건운동은 1474년 도미니쿠스 수도회에서 설립한 ‘로사리오(rosario, 장미화관) 형제회’이다. 기독교미술에서 장미는 마리아를 가리키고 붉은색은 그리스도의 사랑, 흰색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한다. <장미화관의 축제(The Feast of the Rose Garlands)>는 뒤러가 두 번째 이탈리아여행 중, 당시 베네치아 중심에 있던 로사리오형제회에 속한 대규모의 독일인 상인연합회로부터 그들의 교회인 산 바르톨로메오교회의 제단화를 그려달라는 위임을 받고 그린 것이다.
원래는 옥좌에 앉은 마리아와 아기예수가 장미화관을 베푸는 내용이지만, 뒤러는 마리아 옆에 독일 도미니쿠스 수도사도 그려 그에게 함께 장미화관을 베푸는 영광을 주었다. 뒤러는 또한 평신도 그룹인 오른쪽의 인물들을 맨 앞의 당시 독일 황제(막시밀리언 1세)를 비롯한 실제인물들로 그리면서 독일황제가 왼편 성직자 그룹의 교황보다 먼저 머리 위에 장미화관을 받아쓰고 있게 그렸다. 그리고 오른쪽의 평신도 군중 맨 뒤편에 “알브레히트 뒤러, 한 게르만인, 5개월에 걸쳐 제작했다. 1506”이라고 쓴 흰 종이를 들고 있는 자신의 초상을 넣으면서 이탈리아 땅의 독일인들에게 민족적 자긍심과 자부심을 느끼도록 했다.
뒤러의 만년의 정수로 꼽히는 <슬픔의 남자로서 자화상>은, 뒤러가 네덜란드 여행 중 고래를 보기 위해 질란트 해변까지 보트를 타고 갔다 온 후, 고열과 여행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을 때의 그림이다. 뒤러는 주조의 ‘고통의 신비주의(die Mystik des Leidens)’를 실천하려는 듯이 그리스도의 수난의 채찍들을 십자가 모양으로 포갠 자신의 양 손에 하나씩 쥐고 있게 그려 하나님과 연합하고 싶은 자신의 의지를 표현했다.
전경숙 박사(성공회대 Ph.D.) dsglory3604@nate.com
전경숙 박사(성공회대 Ph.D.)
승인 2019.10.03
전경숙 박사(성공회대 Ph..D.) 한신대학교신학대학원 목회학석사(M.Div.) 부산대학교 수학과
원제: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의 <네 마녀들(Four Witches)>에 표상된 기독교인문주의 연구”
14세기 초부터 시작된 신비주의 운동은 독일에서는 도미니쿠스 수도회를 중심으로 경건을 강조하며 활발하게 일어났다. 인간이 명상을 통해 ‘신성’(Gottheit) 속에서 ‘아무런 중재 없이’ 하나님과 ‘신비적인 연합’을 하고자하는 이 운동은 에크하르트(Eckhart von Hochheim)에 이어 주조(Heinrich Suso) 등 그의 제자들에 의해 더욱 확대 발전되고 성직자뿐만 아니라 평신도 단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들 공동생활 형제단(the Brothers of the Common Life)의 활동은 ‘근대 경건’(Devotio moderna)이라고 불리어지고, 빠르게 확산되어 독일, 스위스, 네델란드 프라하 등 여러 곳에 학교를 세우면서, “일상생활”(common life)의 중요성과 함께 경건을 실천했다. 에라스무스와 루터 등도 이들이 세운 학교 출신이다.
또한 15세기 중엽 인쇄술의 발달은 인문주의자들의 고전고대(classical antiquity) 연구에 박차를 가했고, 그 성과물인 번역본들은 폭넓게 전파되었다. 특히 기원전 100년경에 타키투스가 썼던『게르마니아(Germania)』가 재발견되자, 독일인들은 자신들이 전설적이고 고귀한 조상에서 유래했다는 흥분으로 열광하게 된다. 독일인문주의자들은 로마 교황의 도덕적 타락성에 독일인의 도덕적 순결성을 대비시켰다. 인문주의자이자 시인이었던 휴텐(Ulrich von Hutten, 1488-1523)은 1500년대를 맞으며 “오 새로운 세기여! 오 지식이여! 살아있는 것이 기쁨이로다!(O saeculum! O litterae! Iuvat vivere!)”로 시작하는 글을 뒤러의 둘도 없는 친구인 뉘른베르크의 빌리발트 피르크하이머(Willibald Pirckheimer)에게 보냈다.
독일의 또 다른 경건운동은 1474년 도미니쿠스 수도회에서 설립한 ‘로사리오(rosario, 장미화관) 형제회’이다. 기독교미술에서 장미는 마리아를 가리키고 붉은색은 그리스도의 사랑, 흰색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한다. <장미화관의 축제(The Feast of the Rose Garlands)>는 뒤러가 두 번째 이탈리아여행 중, 당시 베네치아 중심에 있던 로사리오형제회에 속한 대규모의 독일인 상인연합회로부터 그들의 교회인 산 바르톨로메오교회의 제단화를 그려달라는 위임을 받고 그린 것이다.
원래는 옥좌에 앉은 마리아와 아기예수가 장미화관을 베푸는 내용이지만, 뒤러는 마리아 옆에 독일 도미니쿠스 수도사도 그려 그에게 함께 장미화관을 베푸는 영광을 주었다. 뒤러는 또한 평신도 그룹인 오른쪽의 인물들을 맨 앞의 당시 독일 황제(막시밀리언 1세)를 비롯한 실제인물들로 그리면서 독일황제가 왼편 성직자 그룹의 교황보다 먼저 머리 위에 장미화관을 받아쓰고 있게 그렸다. 그리고 오른쪽의 평신도 군중 맨 뒤편에 “알브레히트 뒤러, 한 게르만인, 5개월에 걸쳐 제작했다. 1506”이라고 쓴 흰 종이를 들고 있는 자신의 초상을 넣으면서 이탈리아 땅의 독일인들에게 민족적 자긍심과 자부심을 느끼도록 했다.
뒤러의 만년의 정수로 꼽히는 <슬픔의 남자로서 자화상>은, 뒤러가 네덜란드 여행 중 고래를 보기 위해 질란트 해변까지 보트를 타고 갔다 온 후, 고열과 여행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을 때의 그림이다. 뒤러는 주조의 ‘고통의 신비주의(die Mystik des Leidens)’를 실천하려는 듯이 그리스도의 수난의 채찍들을 십자가 모양으로 포갠 자신의 양 손에 하나씩 쥐고 있게 그려 하나님과 연합하고 싶은 자신의 의지를 표현했다.
전경숙 박사(성공회대 Ph.D.) dsglory36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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