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13

알라딘: 오, 윌리엄!, 스트라우트 2210

알라딘: 오, 윌리엄!

오, 윌리엄!  |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은이),정연희 (옮긴이)문학동네2022-10-31

원제 : Oh William!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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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희곡 주간 58위, 소설/시/희곡 top100 8주|Sales Point : 13,200 
 9.4 100자평(9)리뷰(6)

편집장의 선택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2022 부커상 최종후보작"
지나간 사랑의 모습은 일상과 단절된 기억 속에 유물처럼 자리 잡고 때때로 미화된 광채를 내뿜기 마련이다. 그러나 루시 버튼이 그리는 과거의 사랑은 그런 모습이 아니다. 결혼해서 20년을 함께 살았고, 헤어진 후 각자 재혼했지만 두 딸을 함께 키우며 일상을 공유해온 존재. 이제 일흔에 접어든 전 남편 윌리엄에 대해, 루시는 쓴다. 수십 년을 뉴욕에 함께 살았지만 "맞춤 정장을 입듯" 맨해튼 한복판의 생활에 착 맞춰들어가 “어떤 것도 자신을 해칠 수 없다”는 태도로 삶을 대해온 윌리엄에 비해, 스스로 "밑바닥 출신"이라 여겨온 루시는 단 한 번도 뉴욕에서 "진짜로 살았던" 것 같지 않다. 두 사람은 너무도 달랐다.

서로가 서로의 집이 되어 주고 있다는 안정감으로 충만했었던 마음과, 서로의 치부를 가장 예리한 말로 공격하다 남은 깊은 상처를 회상한다. 남편이 내려준 따뜻한 커피 한 잔에 잠시 모든 갈등을 묻어버리던 순간도 있었다. 마침내 이혼을 결심했을 때에는, 헤어짐의 고통과 그에 따를 책임이 죽을 만큼 두려웠지만 또 생은 계속되었다. 과거의 인연이기에 온전히 음미할 수 있는 순수했던 사랑의 감정과, 그와 동시에 엄습하는 더 이상 그와 함께이지 않다는 것에 감사하며 안도하는 마음. 그렇게 윌리엄은 루시에게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았다. 그리고 노년의 윌리엄과 함께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루시는 그에 대해 반드시 무언가를 써야만 한다고 마음먹는다. 일순간에 풀린 미스터리가 루시에게 진정한 해방감을 선사했기에.
- 소설 MD 권벼리 (2022.11.01)

시리즈루시 바턴 시리즈 (총 4권 모두보기)



[세트] 오, 윌리엄! + 무엇이든 가능하다 + 내 이름은 루시 바턴 - 전3권


책소개

2016년에 출간되어 맨부커상 후보에 오른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장편소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은 유년 시절의 지독한 가난과 소외의 기억을 간직한 채 소설가가 된 ‘루시 바턴’이라는 인물을 처음으로 소개하며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루시가 병원에서 어머니와 보낸 닷새를 그린 이백여 페이지의 이 짧지만 묵직한 이야기를 통해 루시 바턴은 ‘올리브 키터리지’에 이어 작가의 대표적인 캐릭터로 자리매김했다.

『오, 윌리엄!』은 그 루시 바턴을 화자로 삼아 쓴 두번째 소설로, 한때 루시의 남편이었고 이제는 오랜 친구인 윌리엄과 루시의 복잡하고도 섬세한 관계를 뛰어난 스토리텔링과 담담하면서도 사려 깊은 언어로 그려낸다. 이 작품은 독자와 평자들의 극찬을 받으며 “루시 바턴은 문학사에 남을 불후의 캐릭터다”라는 평가와 함께 2022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목차

오, 윌리엄!• 009

감사의 말 • 299
옮긴이의 말—우리는 타인의 경험을 모른다 • 301

책속에서
첫문장
나의 첫 남편 윌리엄에 대해 몇 가지 말하고 싶다.
P. 9 슬픔은 당신이 유리로 된 아주 높은 건물의 긴 외벽을 미끄러져 내려오는데 당신을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과 같다.
P. 54 나는 미국에서의 계급이라는 문제에 대해 한 번도 완전히 이해한 적이 없었다. 그건 내가 밑바닥 출신이고, 그렇게 태어나면 그 사실은 절대 당신을 진정으로 떠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건 내가 정말로 그것을, 내 출신을, 가난을 결코 극복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게 내가 하려는 말 같다.
P. 98 내 안에서 튤립 줄기가 툭 꺾였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튤립은 꺾인 채로 내 안에 남았고, 결코 다시 자라지 않았다.
나는 그후로 좀더 진실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P. 108 나는 스스로에게, 어머니가 나를 사랑했다고 말해준다. 어머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 언젠가 그 사랑스러운 여자 정신과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소망은 결코 죽지 않아요.”
P. 152 사람들은 외롭다, 그게 내가 하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아는 사람들에겐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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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루시 바턴의 가장 내밀한 생각들을 알게 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스트라우트의 책 깊숙이 들어가는 경험은 독자들을 안심하게 한다. 이 작가의 손이라면 우리를 믿고 맡겨도 좋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 NPR 
너무도 친밀하고, 연약하고, 절박한 인간성이 페이지마다 짙게 스며서 숨이 멎는 듯하다. 거의 모든 문장에 강력한 깨달음의 힘이 실려 있다. - 워싱턴 포스트 
스트라우트의 단순 명료한 문장에는 거대한 세계가 담겨 있다. 외로움과 소통 불능,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의 어려움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하는 작가가 어디 있는가? 이 탁월하고 강렬하며 다정한 책은 그저 기쁨 그 자체다. - 보스턴 글로브 
일견 투명해 보이는 문장들 아래 비밀스러운 힘을 주입하는 수완은 스트라우트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증거다. 스트라우트의 작품은 일상적인 대화의 영역 안에서 평범한 언어와 직설적인 어휘를 통해 반복과 공백과 위화감을 빚어낸다. 그리고 어느 순간 훤히 트인 시야 안으로 긴급함의 물결이 난데없이 밀려든다. - 뉴욕 타임스 북 리뷰 
스트라우트가 헤밍웨이에 비견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어떤 면에서는, 스트라우트가 그보다 더 훌륭하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미국) 
삶이 동반하는 깊은 분노와 절망을 드러내고 그 혹독함을 증명하면서도, 스트라우트의 작품은 끊임없이 삶의 지극한 풍부함과 그 안에 항상 잠재한 축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 뉴욕 리뷰 오브 북스 
스트라우트는 다음과 같은 루시의 통찰을 깊이 체감하게 만든다. 비록 우리가 근거 없이 추정하고 믿고 싶은 대로 믿을지라도, 진실은 언제나 우리의 시야 안에 있다는 사실을. - 스타 트리뷴 
스트라우트는 언어에 옷을 입힐 때, 울 스웨터면 족한 상황에서 억지로 턱시도를 입히지 않는다. 스트라우트가 어떠한 불필요한 미사여구도 없이 이루어낸 성취를 본다면 다른 작가들은 분명 스스로를 질책하게 될 것이다.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이 지닌 기적적인 특징은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깊이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사랑의 본질이 ‘이해’보다는 ‘인식’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비록 그 두 개념의 차이를 깨닫는 데는 한평생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 가디언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다. 그러므로 『오, 윌리엄!』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트라우트의 작품이 될 것 같다는 사실은 산술적으로 ‘기쁨’과 등가어이다. 이 책에 담긴 깊이와 복잡성과 사랑은 기적의 경지를 보여준다. - 앤 패칫 (작가)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경향신문 
 - 경향신문 2022년 10월 28일자 '책과 삶'


저자 및 역자소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Elizabeth Strout)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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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미국 메인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나, 메인주와 뉴햄프셔주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베이츠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영국으로 건너가 일 년 동안 바에서 일하면서 글을 쓰고, 그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끊임없이 소설을 썼지만 원고는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작가가 되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에 그녀는 시러큐스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잠시 법률회사에서 일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을 그만두고 뉴욕으로 돌아와 글쓰기에
매진한다.
문학잡지 등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던 스트라우트는 1998년 첫 장편소설 『에이미와 이저벨』을 발표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는다. 2008년 발표한 세번째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로 언론과 독자들의 호평을 받으며 2009년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이 작품은 HBO에서 미니시리즈로도 제작되었다. 이후 『버지스 형제』 『내 이름은 루시 바턴』 『무엇이든 가능하다』, 그리고 『올리브 키터리지』의 후속작인 『다시, 올리브』까지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21년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의 후속작인 『오, 윌리엄!』을 발표했다. ‘루시 바턴’을 다시금 화자로 삼아 사랑과 상실, 기억과 트라우마, 가족의 비밀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소설은 한때 루시의 남편이었고 이제는 오랜 친구인 윌리엄과 루시의 복잡하고도 섬세한 관계를 특유의 뛰어난 스토리텔링과 사려 깊은 언어로 그려낸다. 접기
수상 : 2009년 퓰리처상
최근작 : <오, 윌리엄!>,<올리브 키터리지 + 다시, 올리브 세트 (리커버 특별판) - 전2권>,<다시, 올리브> … 총 166종 (모두보기)


정연희 (옮긴이)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 『다시, 올리브』 『내 이름은 루시 바턴』 『무엇이든 가능하다』 『버지스 형제』 『에이미와 이저벨』 『사라진 반쪽』 『디어 라이프』 『착한 여자의 사랑』 『소녀와 여자들의 삶』 『운명과 분노』 『플로리다』 『엘리너 올리펀트는 완전 괜찮아』 『그 겨울의 일주일』 『비와 별이 내리는 밤』 『커먼웰스』 『헬프』 등이 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내 이름은 루시 바턴』 『무엇이든 가능하다』를 잇는 또하나의 걸작!

“스트라우트가 헤밍웨이에 비견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어떤 면에서는, 스트라우트가 그보다 더 훌륭하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 부커상 최종 후보(2022) ★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뉴욕 타임스 북 리뷰> <워싱턴 포스트> <타임> <벌처>, BBC 선정 올해의 책(2021)

인간의 내면에 대해 스트라우트처럼 글을 쓰는 작가는 없다. 세심한 관찰력으로 써내려간 이 작품은 깊이 있는 심리적 통찰로 가득하다. 루시 바턴은 문학사에 남을 불후의 캐릭터다. 쉽게 깨어지고 망가지고 흐트러지고 상처 입는 그녀는, 무엇보다, 우리 모두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다. _부커상 후보 선정 이유

2016년에 출간되어 맨부커상 후보에 오른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장편소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은 유년 시절의 지독한 가난과 소외의 기억을 간직한 채 소설가가 된 ‘루시 바턴’이라는 인물을 처음으로 소개하며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루시가 병원에서 어머니와 보낸 닷새를 그린 이백여 페이지의 이 짧지만 묵직한 이야기를 통해 루시 바턴은 ‘올리브 키터리지’에 이어 작가의 대표적인 캐릭터로 자리매김했다. 『오, 윌리엄!』(2021)은 그 루시 바턴을 화자로 삼아 쓴 두번째 소설로, 한때 루시의 남편이었고 이제는 오랜 친구인 윌리엄과 루시의 복잡하고도 섬세한 관계를 뛰어난 스토리텔링과 담담하면서도 사려 깊은 언어로 그려낸다. 이 작품은 독자와 평자들의 극찬을 받으며 “루시 바턴은 문학사에 남을 불후의 캐릭터다”라는 평가와 함께 2022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사람들에 관해 내가 흥미를 느끼는 부분은 우리를 움직이는 감정들의 모호함, 어쩌면 스스로도 완전히 알지 못하는 우리 내면의 영역들입니다. 여러분이 루시나 윌리엄은 아니겠지만, 이 인물들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닿을 수 있기를,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여러분의 닫힌 세상의 천장을―아주 조금이라도―들어올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_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1998년 첫 장편소설 『에이미와 이저벨』을 발표한 이후 소설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세계는 끊임없이 확장되어왔다. 그리고 스트라우트에게 세계란 곧 사람이므로, 세계의 확장은 인물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그의 모든 소설에서 인간이란 도저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자 끝없는 경이로움의 원천이고, 그렇기에 끊임없이 탐구해야 할 영역이다. 작가의 작품 대부분이 하나의 인물이나 서사에 집중하기보다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그려내왔다는 점, 『올리브 키터리지』와 그 후속작 『다시, 올리브』를 포함해 『에이미와 이저벨』 『버지스 형제』 『내 이름은 루시 바턴』 등 작품 제목에 인명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도 이러한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사랑과 상실, 기억과 트라우마, 가족의 비밀을 탐구하는 작가의 여덟번째 소설 『오, 윌리엄!』은 그 모든 기준에 들어맞는다는 측면에서 지극히 스트라우트적이지만, 동시에 보다 간명하게 정제된 언어로 인간의 내면과 삶의 심원한 영역을 예리하게 통찰해냈다는 점에서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오른 작가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준다.

이것은 나의 영원한 미스터리—
첫 남편 윌리엄에 대한, 그와 나에 대한 이야기다.

“나의 첫 남편 윌리엄에 대해 몇 가지 말하고 싶다”라는 선언과 함께 시작되는 이 소설은 화자인 루시가 최근 이 년 동안 전남편 윌리엄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에 대해 회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회고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예순아홉 살인 윌리엄은 무려 스물두 살이 어린 세번째 아내와 함께 살고 있고, 여전히 건강한 몸과 “(거의) 어떤 것도 자신을 해칠 수 없다”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지닌 남자다. 이십 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헤어진 뒤로도 루시와 윌리엄은 가까운 친구로 지내왔고, 루시는 두번째 남편 데이비드와의 결혼생활에서 위로와 행복감을 느꼈음에도 여전히 윌리엄과 일구었던 집이 자신이 가져본 유일한 집이라고 여긴다. 그러던 어느 날, 윌리엄이 루시에게 예상치 못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최근 들어 한밤중에 악몽 같은 사념에 시달리느라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그리고 그 악몽은 오래전 돌아가신 어머니와 2차대전 당시 독일군 포로 신분으로 미국에 온 아버지와 관련이 있다고. 루시는 윌리엄의 고민을 들으며 생전에 자신을 무척 다정하게 대해주었던, 그러나 때로는 루시의 가난한 출신과 관련해 묘하게 상처를 주는 말을 던지기도 했던 시어머니 캐서린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윌리엄이 가계와 조상을 추적할 수 있는 웹사이트에서 어머니의 젊은 시절에 대해, 아버지를 만나기 이전의 삶에 대해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되면서 캐서린은 그저 기억이 아닌 뚜렷한 실체로서 윌리엄과 루시의 삶에 되돌아온다. 그리고 윌리엄은 어머니의 과거와 그녀가 먼 옛날 남기고 영영 떠나온 것들에 대해 더 알아내기 위해 어머니의 고향인 메인주에 직접 가보기로 결심하고 루시에게 동행을 청한다. 그렇게 떠난 여정에서 루시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윌리엄과의 결혼생활, 딸들과의 관계, 두번째 남편의 죽음이 남긴 여파를 되돌아보며 캐서린의 진실뿐 아니라, 그녀에게 영원한 미스터리였던 윌리엄에 대한 진실을, 종국에는 스스로에 대한 진실을 마주한다.

주저하는 문장들 사이에 남겨진
상실과 결핍의 빈자리, 그리고 봉인된 기억들

엄밀히 말하자면, 2017년 출간된 소설집 『무엇이든 가능하다』에 수록된 단편 「동생」이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동생을 맞이하는 루시의 오빠 피트 바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에, 『오, 윌리엄!』은 루시가 등장하는 세번째 작품이다. 그러나 소설을 이끌어가는 중심인물과 시점, 서술 방식 등을 고려할 때,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의 실질적인 후속작은 『오, 윌리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내 이름은 루시 바턴』에서와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끝까지 화자인 루시 바턴의 일인칭시점에서 전개되는 이 작품에서 스트라우트가 사용하는 언어는 유독 생략과 공백으로 가득하다. 내면의 독백이든 상대와의 대화든 말은 계속해서 끝을 맺지 못한 채 중단되거나 흩어진다. 혹은 “오, 지금은 더 말할 수 없다”와 같은 직접적인 부정의 표현이나 감탄사로, 외마디 소리로 대체된다. 작가는 언어화할 수 없는 영역에 있는, 또는 화자가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감정이나 내면의 목소리를, 인물들의 상실과 결핍을 표현하기 위해 현학적이고 추상적인 언어를 동원하지 않는다. 대신 화자가 겪는 언어의 실패를, 이해의 한계를 공백으로 남겨둔다. 이렇게 페이지 위에 존재하는 물리적 빈 공간은 언어가 중단된 자리에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또한 특정한 사실에 대해 서술할 때도 “내 생각에는” “내가 보기에는” “내가 기억하기로” 등과 같은 유보적인 표현을 삽입해 이 이야기가 오로지 화자의 관점이 투영된 주관적 기록임을 강조한다.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이 주저하는 문장들, 되묻고 의심하는 문장들은 ‘우리는 결국 타인에 대해 알 수 없다’는 주제의식과 더불어 소설의 키워드 중 하나인 자유의지, 선택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과거에 윌리엄과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그를 떠남으로써 딸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괴로워하는 루시에게 윌리엄은 우리가 실제로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은 극히 드물며 그저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채 무언가를 쫓아갈 뿐이라고 말한다. 기억과 경험과 살아온 세월을 통해 형성된 내적인 체계와 경향성에 의해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될 뿐이라고. 루시 또한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가난의 기억과 부모님의 폭력적인 양육 방식으로 인해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려왔고 “정말로 그것을, 내 출신을, 가난을 결코 극복하지 못했다”고 느낀다. 심지어 루시는 자신을 존재하지 않는 사람, 이 세상에서 물질적인 공간을 점유하지 않는 사람, 즉 투명인간이라 여긴다. 그리고 여전히 때때로 불현듯 그녀를 덮쳐와 꼼짝 못하게 만드는 정체 모를 두려움은 아마도 내면에 자리한 공허와 결핍에서 비롯할 것이다.

나는 내가 조금이라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내 사랑스러운 정신과의사가 놀란 것처럼. 그녀는 말했다. “당신과 같은 상황이라면, 루시, 많은 사람이 시도조차 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내 안에 있는, 윌리엄이 기쁨이라고 부른 그것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기쁨이었다.
이유야 누가 알겠는가? _본문 274쪽

작가는 불연속적인 서술 방식과 루시의 단편적인 기억들로 이루어진 느슨한 서사 구조, 페이지 위에 존재하는 물리적 빈 공간을 통해 인물들의 내면에 자리한 공백을, 그 미지의 세계를 둘러싸고 형성된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성공적으로 형상화한다. 인간이란 여기저기 중요한 단어들이 지워져버린 기밀문서처럼 무수한 생략과 삭제로, 봉인된 기억과 침묵으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우리는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알지 못하며, 많은 경우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 이렇게 문학의 고전적인 장치 중 하나인 ‘믿을 수 없는 화자(unreliable narrator)’는 인간의 보편적 특성으로 확장된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도 믿을 수 없는 화자이다. 어쩌면 이것이 스트라우트가 반복적으로 이야기해온 인간의 궁극적인 한계이자 비극일지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나아가 자기 자신조차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 그러나 우리가 오해하는 존재라는 것은 반대로 우리가 지긋지긋할 만큼 잘 안다고 생각했던 타인에 대해, 스스로에 대해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새로이 이해하게 될 수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사랑이 결여된 혹독한 환경에서 성장한 루시가 스스로의 내면에 끝내 뿌리를 내린 사랑을, 기쁨을 발견하고 놀라워했듯이.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사려 깊은 눈으로 다시 읽히기를 기다리는 텍스트이다. 혼란과 실망과 슬픔의 문장들 사이에서 우리는 때로 믿을 수 없을 만큼 찬란한 기쁨과 위로를 읽어낼 수 있다. 『오, 윌리엄!』을 읽는 일이 바로 그러하듯이. 접기


북플 bookple
이 책의 마니아가 남긴 글
친구가 남긴 글내가 남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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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해 만약 '올해의 책'을 선정해서 페이퍼를 썼다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오, 윌리엄》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너무 뻔한 결과라서, 그러니까 스트라우트 책을 읽었다면 그러지 않을 수 없지 않나, 하는 뻔한 결과라서 뭔가 올해의 책 선정 페이퍼 같은거 쓰기가 싫었다. 여기까지는 반만 진실이고 나머지 절반의 진실은 쓰기가 너무 귀찮았다...



요즘 친구들과 오, 윌리엄 원서를 읽고 있다. 읽으면서 진짜 너무 좋다고 다들 감탄하고 지금까지 읽은 스트라우트 작품중 이게 최고이다, 베스트다 호들갑을 떨고 있다.

좋은 지점이 너무 많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런 지점들이 나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친구들과 나는, 자식을 버리고 남자 좋다고 떠나버리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고-그것은 주체적이라고 해야 하는건가, 그러나 남겨진 아기는?- 그러나 그녀의 어린 시절 환경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것까지도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루시의 전남편 윌리엄의 세번째 결혼까지 실패하고 그과정들에 역시나 윌리엄의 불륜이 있었던 걸 알게 되면서 루시가 '그러니까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구나' 깨닫는 장면도 소름돋게 좋았다. 윌리엄의 어머니와 자신에게서 비슷한 점을 발견하고 윌리엄에게 '너는 엄마같은 여자랑 결혼한거야' 라고 말했을 때는 가슴이 얼마나 쑤셔대던지.

스트라우트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많지만 내가 오 윌리엄까지 읽으면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그녀 소설의 최대 장점은, 그녀가 자신이 창조해낸 인물들에 대해 가치평가를 한다든가 변명을 해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 남자가 바람을 폈어 나쁜 놈이지? 이 남자가 불법촬영을 햇어 죽일놈이지? 이 여자가 가난했어 불쌍하지? 이 사람은 물에 빠진 누군가를 구하려고 시도해 정의롭지? 라는 식의 흐름을 결코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스트라우트는 다만, 그들의 삶을 그려내보일 뿐이다. 자 이 사람은 이렇게 살아왔고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다, 이 사람은 이 대화에서 이런 감정을 느꼈다, 이 사람은 이 대화에서 이런 반응을 보였다를 그저 이야기할 뿐이다. 그걸 읽고 느끼는 감정은 온전하게 독자의 몫이다. 왜 그녀는 그런 선택을 했을까, 왜 그는 그런 선택을 했을까, 아 이래서 그랬구나 하는 수많은 감정들이 책을 읽으면서 내 안에서 일어난다. 스트라우트가 대신 해주지 않기 때문에 온전히 나의 몫이 되는거다. 나는 이런 이야기가, 이런 소설이 바로 문학이 가진 힘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이야기하고 독자는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바로 문학이 그리고 책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어제 정희진의 오디오 매거진을 듣는데 '읽는 것은 곧 읽는자가 다시 쓰는 행위이다'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스트라우트의 소설을 읽으면 나는 다시 쓰게 된다. 정희진 쌤의 말이 바로 그대로 실현된다. 책 속 인물들에 대해 변명을 하고 편을 들어주는 걸 스트라우트가 하지 않고 읽는 내가 하게 된다. 사랑도 동정도 분노도 연민도 기쁨도 스트라우트가 내게 심어주려 하지 않는다. 그저 펼쳐보일 뿐이다.

《올리브 키터리지》가 너무 좋아서 읽고 나서도 재차 훑곤 했는데 그 뒷이야기 《다시, 올리브》가 더 좋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대부분 후속작은 실망하기 마련 아닌가?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이 좋았는데 《오, 윌리엄》의 출간 소식에 좋으면서도 그게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다. 루시의 헤어진 남편 이야기가 도대체 어떤식으로 흘러갈까? 그런데 놀랍게도, 오 윌리엄은 내가 그동안 읽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최고 작품이 되었다. 오, 윌리엄. 진짜 너무 좋다. 게다가 원서로 한 번 더 읽고 있노라니 홀랑 빠져들어. 나는 스트라우트의 모든 책을 원서로도 소장하자고 새삼 결심하게 되었다. 이미 올리브 키터리지,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오 윌리엄, 다시 올리브를 갖추었다. 그렇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도 사야겠어! 하고 알아보던 중에,
친구가 보내준 선물이 도착했다.

아니, 루시 바턴 후속작이 또 나왔다. 오, 윌리엄의 후속작이기도 하다. 아아, 책이 너무나 아름답고 이 책이 내게 있음에 나는 너무나 행복하다 흑흑 ㅠㅠ

한나 아렌트 책장의 그 수많은 책들 중 읽지 않은게 너무 많아서 토요일에는 어디 한 번 읽어보자, 하고 책장 앞에 섰다. 무얼 읽을까. 작년 한해 알라디너 들이 극찬했던 한나 아렌트의 전기를 읽을까, 하다가 생일에 선물 받았던 크리스테바의 한나 아렌트를 꺼내들었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예정이었던 터라 가방을 가볍게 하고 싶었다. 그러니 얇은 책이 나았다. 그렇게 나는 이 얇은 책을 들고 아가 조카네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한나 아렌트의 철학서를 읽어본 게 없어서-아이히만, 전체주의, 인간의 조건- 과연 내가 이걸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총 5강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1강과 2강은 정말 좋았다. 특히 이런 부분을 읽을 때는 울고 싶을 만큼 좋았다.

이 위협에 직면해서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The HumanCondition에서 삶에 대한 맹렬한 방어를 구축한다. 소비주의의생기론적 결정론과 ‘생명 활동‘ vital process에 대한 현대 과학기술의 헌신 속에서 단지 틀에 박힌 듯이 재생산되는 삶에 대한정반대 극단에서 아렌트는 그녀가 기꺼이 ‘삶의 기적‘ the miracleof life 이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 각각의, 그리고 모든 탄생의 고유함에 대해 찬양을 올린다.

세계, 인간사 영역을 그 통상적이고, ‘자연적인‘ 파멸로부터 구하는 기적은 궁극적으로 탄생성이라는 사실인데, 그 안에 행위능력이 존재론적으로 뿌리내리고 있다. 그것은 다시 말해 새로운 인간의 탄생이고 새로운 시작이며, 그들이 태어남으로 인해서 가능해지는 행위인 것이다. - P15

한나 아렌트는 행위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는데, 인간이 태어남으로써 일단 그 행위가 가능해진다는 거다. 태어나는 게 행위라고, 인간이 태어남으로써 인간을 파멸로부터 구할 수 있다는 거다. 이게 《인간의 조건》에 나오는 구절이라는 거다. 아 진짜 너무 좋지 않나. 한나 아렌트의 철학서들중 내가 만약 읽게 된다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가장 첫 책이 될거라고 막연히 짐작하고 있었는데, 토요일 지하철 안에서 이 부분 읽고 너무 좋아서 당장 교보문고에 바로드림으로 《인간의 조건》을 주문해버렸다. 당장 필요하다. 당장 읽진 않더라도 당장 갖추어야 한다! 이 책을 지금 가지고 있어서 바로드림 가능한 곳은 잠실점이란다. 오케바리, 내가 간다. 잠실점에 있는 책 내가 갖겠어!



그렇게 일요일에 교보문고에 《인간의 조건》을 찾으러 가면서, 그런데 딸랑 한 권 남아있다고 하니 책 상태가 좀 안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이 책 너무 갖고 싶고 (안읽었지만)벌써 너무 좋고, 내가 그렇게 책 상태에 막 까다로운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책이 지저분한 건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 만약 교보가서 책 찾는데 책 상태가 마음에 안든다면 거침없이 환불요청 하겠어! 으르렁- 하는 마음으로 교보에 도착해서 바로드림으로 책을 수령하는데, 아니.. 책이.. 비닐 포장이 되어있었던 겁니다. 세상에!! 나는 직원분께, 이 책 원래 이렇게 포장되어 있었나요? 물었더니 직원분은 그렇다고 해주셨다. 그러니 책 상태는 좋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샤라라랑~ 너무 기분이 좋아버렸어..

(부러 원서들 앞에서 사진 찍어 보았다. 뽀대를 위해! for 뽀대!!)

한나 아렌트 책을 읽기 전에는 《보부아르의 말》을 읽었다.

여느때처럼 책을 펼쳐 책날개의 작가 소개를 읽는데, 아니 보부아르를 인터뷰한 '알리스 슈바르처'도 완전 페미니스트이고 슈바르처가 쓴 저서중에 《아주 작은 차이 그 엄청난 결과》가 있다는 게 아닌가! 꺅 >.< 내가 또 이 책을 가지고 있지. 나란 여자, 없는게 없는 사람! 내 스스로 다 갖추는 사람. 슈바르처 님, 제가 님의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껄껄... 좋구먼. 좋다. 내 책장에 슈바르처의 책이 있다니. 어쩐지 좋구먼유. 

《보부아르의 말》을 읽으면 굉장히 보부아르가 급진페미라는 걸 알 수 있는데 슈바르처도 짱 급진이다 ㅋㅋ 사르트르 공격한다 슈바르처가 ㅋㅋㅋㅋㅋ 아무튼 슈바르처 좋아서 이 책도 곧 읽어야겠다.

아무튼, 그래서 월요일의 책탑은 이렇습니다.

소박하다. 으하하하.

《바바야가의 밤》은 《올랜도》읽다가 머리 식힐겸 꺼내들었는데 재미있어서 내친김에 다 읽었다. 얇은 책이라 가능했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볼 의향이 백프로다. 특히 활과 화살을 이용해 나쁜놈 고환을 명중시키는 장면 같은 거, 자주 화면에 등장했으면 좋겠다.

《죄와 속죄의 저편》은 워낙에도 도덕, 윤리, 죄, 선과 악 같은거에 관심 많은데, '장 아메리가' 가 말한다니 읽어보고 싶었다. (오리지널 신만 생각나네요~) 

《SKEPTIC》은 저 큰 타이틀에서 보이는 것처럼 성격이란 무엇인가.. 읽어볼라고 샀다. 성격이란 무엇인가욤?

토요일에 아가 조카 보고왔다. 아가조카랑 같이 밥먹었던 마트 건물에 알라딘 중고서점이 생겼다고 해서 아가조카랑 함께 갔었는데 요즘 공룡에 관심 생긴 아가 조카 공룡 스티커북 득템한 부분.. 가방에 넣고 가져가려고 했더니 아가조카가 자기가 들고 가겠다고 한다. 나 보더니 공룡 흉내 내더라. 진짜. 와. 너무 귀욤. 

월요일이 오는 게 싫었다. 너무너무 싫었다. 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시간이 가지 않기를 바란다는 건,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포기해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그래서 잘 견뎌보자고, 잘 버텨보자고, 어디 한 번 해보자고 생각했다.

요즘은 매일 머시 수아레스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자전거보다 훨씬 더 간절히 바란 것들이 있는데, 아무리 원해도 얻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다. 나는 할아버지가 병들지 않기를 바랐고, 내 주변의 세상이 ‘늘 그대로‘이기를 바랐다. 소중한 것들이 변치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늘 그대로‘라는 것은 이네스 고모가 사이먼 아저씨를 사랑할 기회가 없을 거라는 뜻이다. 오빠가 대학에서 훨씬 더 똑똑해지지 못할 거라는 뜻이다. 내가 조금도 성장하지 않을 거라는 뜻이다. ‘늘 그대로‘라는 건 할아버지의 변화만큼 슬픈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년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그건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무슨 일이든 헤쳐 나갈 수 있다.


조금 더 힘든 기어로 바뀔 뿐이다. 난 그저 크게 숨 한번 쉬고 힘차게 페달을 밟아 나가면 된다. - P417


이만 총총.

다락방 2023-01-09 공감 (45) 댓글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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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 윌리엄! / Oh, William!


올해 읽은 책 아니고 작년에 읽은 책이다. 정리 안 하려고 했는데 안 하면 너무 서운할 테고. 근사한 소설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책은 다 좋지만 신간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감사하다.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한 권 아니 두 권 더 써 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윌리엄은 루시 바턴의 첫 번째 남편이다. 캐서린은 윌리엄의 어머니, 루시의 시어머니다. 루시의 생각, 느낌, 감정을 제외한다면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루시의 이야기보다 더 큰 몫을 차지한다. 의아하다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어색하게 느껴지는 지점은 윌리엄에 대한 루시의 심경이다. 사랑했던 사람과 결혼하고, 이혼하고, 그리고 다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남매처럼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이 내게는 여전히 신기하다. 헤어진 뒤에도 ‘쿨하게’ 지낸다는 것. 루시는 윌리엄이 자신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쓴다.


William is the only person I ever felt safe with. He is the only home I ever had. (38p)


나는 한 번도, 어떤 남자에게서도 이런 느낌을 받았던 적이 없다. 안전하다고 느낀 적이 있고, 편안하다고 느낀 적도 있지만 이런 표현이라니. 글쎄, 난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랬던 사람, 내게 집 같았던 사람과도 헤어질 수 있다. 더 이상 그 사람을 참아낼 수 없을 때,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을 때, 두 사람은 헤어진다. 진짜 궁금한 건, 사랑에 빠지고 그와 결혼하고 사랑이 식고 그와 이혼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그를 ‘다시’ 만나는 마음이다. ‘미운정 고운정’이라는 옛말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미운정과 고운정의 공존에 회의적인 편이다. 다면적이고 다층적인 인간에 대해 당연히 여러 감정이 들 수 있고, 또한 그것이 우리네 현실이지만, 고운정을 다 상쇄해 버리는 미운정이, 또 다른 고운정으로 희석될 수 있는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람이 선사하는 친숙함을 사랑하지만, 이 정도의 배신이면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듯한데. 나라면 말이다. 루시는 그러지 않았고. 자주 그를 만나고 그를 돕고 그의 도움을 받는다. 이해되지 않는 세계, 혹은 이해하고 싶은 마음을 지나, 이 책은 <단발머리 선정 2022년, 올해의 소설>이다. (아무래도 ‘올해의 선택’ 페이퍼 못 쓸 각) 축하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