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과 서학의 대화로 열어내는 하늘학(天學) 세계
이현건 기자
승인 2021.06.27
■ 동학의 재해석과 신문명의 모색 | 김용해·김용휘·성해영·정혜정·조성환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88쪽
이 책은 다섯 명의 학자가 “회심, 소통, 공동체, 생태, 영성”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동학과 서양의 여러 사상적 맥락을 교차시켜 가며 재해석하고, 이를 토대로 신문명을 모색하는 작업을 담아냈다.
동학을 한쪽 축에 놓고
그리스도교(회심),
신비주의(소통),
사회주의(공동체),
토마스 베리(생태),
인도의 오르빈드(영성) 등을 배치하여
두 사상의 접점을 찾아 가는 과정에서 상호 이해와 내적 심화-확장을 통한 창조적 재해석이 일어난다. 이들 동학과 서학의 만남과 그로부터 파생한 제 사상은 수세기에 걸친 세계사의 갈등과 격변을 야기하는 과정과도 맞물린 것으로, 오늘의 세계가 새로운 지구적-인류적 과제에 직면한 상황에서 성실하게 공부하고 실행해야 하는 지혜를 제공해 준다.
세계 근대 역사는 서구 문명의 폭력적 확장 과정이 그 이외 각 지역의 고유한, 자주적인 역사 흐름을 압도하였던 시기이다. 19세기의 조선 또한 이러한 서구 문명의 폭력적 내도(來到)에 대응하여 기존의 성리학 기반 체제를 수호하거나(守舊派), 서기동도(西器東道)의 실용적 대처를 모색하거나(實學派), 혹은 서학 천주교를 수용하고 재해석하고(親西派), 이를 기반으로 적극적인 사회 개혁을 추구하기도 하였다(開化派). 이런 가운데 세계 문명을 조망하면서, 당대의 변화가 조선에 국한된 것이 아닌 문명사적 대전환의 일각임을 간파하고 대안적 종교-사상-철학운동을 펼친 세력이 있는데 이것이 ‘다시개벽’을 표방한 동학이다(開闢派).
동학은 그 시대의 주류 종교 또는 세력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에, 그리고 어쩌면 인류 역사 이래 대대로 고통 받고 소외받아 온 이들의 고통과 희망으로부터 자생하면서 그보다 더 밑층, 자기 문화의 가장 심층에 있는 잠재력으로부터 싹튼 영성운동이다. 동학은 한편으로 서구로부터 연원하였으나 당대 민중들의 일각에서 신앙으로 수용하고 죽음으로써 지켜 나온 서학(西學)과 짝을 이룬다. 조선 민중들의 영성은 제국주의와 더불어 동점해 오는 서학(천주교)마저 개벽적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다시 말해 조선 사회가 서세의 동점과 내부 질서의 와해라는 이중의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민중들은 궁극자이고 보편자인 하늘을 지향하여, 현실의 질곡을 일거에 도약적으로 극복하는 천도(天道)의 선포로 나아간 것이다. 어둠 속에서 달빛이 더욱 빛나듯이 위기와 고통 속에서 한울님(天主)의 현존은 더욱 뚜렷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다시 1.5세기 혹은 2세기가 지난 오늘의 한반도는 지구 전역적인 위기가 더욱 깊어지고 넓어지고 뚜렷해지는 시간을 지나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 위기의 시간은 지난 2세기 남짓한 시간 동안 인류사의 주도적인 흐름이 걸어온 길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인류에게 희망을 줄 ‘새로운 문명’을 모색해 온 저자들은 오래된 미래의 지혜로서 동학을 위시한 개벽적 담론들을 논찬하면서, 한국인들의 고유한 사상과 지혜들을 관통하는 알갱이가 곧 ‘하늘’임을 새삼스럽게 발견하게 되었다. 하늘은 어원적으로 우리 민족의 이름인 ‘한’과 일치한다. ‘한’은 하나, 전체, 위대함, 대략적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서 ‘한울(한우리)→하눌→하늘’은 자연스레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형상을 담고 있다. 이 한을 매개로 할 때 동학과 서학은 쉽게 만나 소통할 수 있으며 과거와 현재, 남과 여, 인간과 비(非)인간도 스스럼없이 서로 만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하늘의 뜻(天命)을 찾아 자연과 세계(地)와 조화하고 완성하는 인간학(人)이니 이는 다름아닌 하늘학(天學)인 것이다.
하늘학은 “하늘을 모든 존재자를 창조하고 각각의 존재자의 본성을 완성하는 인격신으로 혹은 근원적 원리로 삼는 사상 또는 종교가 자신들의 하늘-자연생태-인간 삼자 간의 경험과 의미 체계를 공유하고 토론하여 인류의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하늘학은 정태적인 관점과 동태적 관점을 아울러서 인간과 사회의 개혁과 진보를 다룬다. 개체와 전체, 정체성과 관계성, 의식과 무의식, 주체와 객체, 정치와 종교, 개성과 공공성이 대립하고 분열하여 서로를 배제하는 문화를 극복할 대안으로 ‘동귀일체(同歸一體)’의 지평을 모색한다. 이것이 서구의 근(현)대성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논쟁을 해소하는 지평이라 생각한다.
자연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종교적 믿음을 분리하고, 인식 주체의 이성(과학)만을 절대화하는 근(현)대성과 주객 이분법, 도구적 이성에 의한 세계의 사물화, 과학과 기술의 이면의 파괴성이 오늘의 ‘괴물 지구’를 낳았다. 이에 대한 반발로 이성을 해체하려고 봉두난발이 되도록 뛰어다니던 포스트모더니즘을 화해시키는 것, 다시 말해 주체의 강조와 주체의 해체를 통합하는 것은 서구 문명의 한계-과제를 해소하는, 그들의 아픈 심신을 달래고 치유하여 행복한 미래 세계로 인도하는 길이기도 하다. 오늘, ‘동아시아-한국’의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러한 ‘서구 문명의 한계’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독을 농축된 형태로 체화한 것이 우리이다.
한민족의 지혜를 담고 있는 하늘학은 어떤 비방으로서 그 독(毒)을 해소하고, 아니 그 독(毒)마저 약으로 승화시키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지가 이 책에서 답하려는 물음이다. 하늘학은 하나의 종교문화, 하나의 비전으로 환원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교문화와 여러 비전들이 공통으로 지향하는 가치를 모색하는 가운데, 다양한 개성과 전통, 사상과 강조점을 존중하며 현대 세계의 문제를 해소하는 공론장이 될 것이다.
세계 근대 역사는 서구 문명의 폭력적 확장 과정이 그 이외 각 지역의 고유한, 자주적인 역사 흐름을 압도하였던 시기이다. 19세기의 조선 또한 이러한 서구 문명의 폭력적 내도(來到)에 대응하여 기존의 성리학 기반 체제를 수호하거나(守舊派), 서기동도(西器東道)의 실용적 대처를 모색하거나(實學派), 혹은 서학 천주교를 수용하고 재해석하고(親西派), 이를 기반으로 적극적인 사회 개혁을 추구하기도 하였다(開化派). 이런 가운데 세계 문명을 조망하면서, 당대의 변화가 조선에 국한된 것이 아닌 문명사적 대전환의 일각임을 간파하고 대안적 종교-사상-철학운동을 펼친 세력이 있는데 이것이 ‘다시개벽’을 표방한 동학이다(開闢派).
동학은 그 시대의 주류 종교 또는 세력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에, 그리고 어쩌면 인류 역사 이래 대대로 고통 받고 소외받아 온 이들의 고통과 희망으로부터 자생하면서 그보다 더 밑층, 자기 문화의 가장 심층에 있는 잠재력으로부터 싹튼 영성운동이다. 동학은 한편으로 서구로부터 연원하였으나 당대 민중들의 일각에서 신앙으로 수용하고 죽음으로써 지켜 나온 서학(西學)과 짝을 이룬다. 조선 민중들의 영성은 제국주의와 더불어 동점해 오는 서학(천주교)마저 개벽적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다시 말해 조선 사회가 서세의 동점과 내부 질서의 와해라는 이중의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민중들은 궁극자이고 보편자인 하늘을 지향하여, 현실의 질곡을 일거에 도약적으로 극복하는 천도(天道)의 선포로 나아간 것이다. 어둠 속에서 달빛이 더욱 빛나듯이 위기와 고통 속에서 한울님(天主)의 현존은 더욱 뚜렷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다시 1.5세기 혹은 2세기가 지난 오늘의 한반도는 지구 전역적인 위기가 더욱 깊어지고 넓어지고 뚜렷해지는 시간을 지나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 위기의 시간은 지난 2세기 남짓한 시간 동안 인류사의 주도적인 흐름이 걸어온 길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인류에게 희망을 줄 ‘새로운 문명’을 모색해 온 저자들은 오래된 미래의 지혜로서 동학을 위시한 개벽적 담론들을 논찬하면서, 한국인들의 고유한 사상과 지혜들을 관통하는 알갱이가 곧 ‘하늘’임을 새삼스럽게 발견하게 되었다. 하늘은 어원적으로 우리 민족의 이름인 ‘한’과 일치한다. ‘한’은 하나, 전체, 위대함, 대략적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서 ‘한울(한우리)→하눌→하늘’은 자연스레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형상을 담고 있다. 이 한을 매개로 할 때 동학과 서학은 쉽게 만나 소통할 수 있으며 과거와 현재, 남과 여, 인간과 비(非)인간도 스스럼없이 서로 만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하늘의 뜻(天命)을 찾아 자연과 세계(地)와 조화하고 완성하는 인간학(人)이니 이는 다름아닌 하늘학(天學)인 것이다.
하늘학은 “하늘을 모든 존재자를 창조하고 각각의 존재자의 본성을 완성하는 인격신으로 혹은 근원적 원리로 삼는 사상 또는 종교가 자신들의 하늘-자연생태-인간 삼자 간의 경험과 의미 체계를 공유하고 토론하여 인류의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하늘학은 정태적인 관점과 동태적 관점을 아울러서 인간과 사회의 개혁과 진보를 다룬다. 개체와 전체, 정체성과 관계성, 의식과 무의식, 주체와 객체, 정치와 종교, 개성과 공공성이 대립하고 분열하여 서로를 배제하는 문화를 극복할 대안으로 ‘동귀일체(同歸一體)’의 지평을 모색한다. 이것이 서구의 근(현)대성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논쟁을 해소하는 지평이라 생각한다.
자연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종교적 믿음을 분리하고, 인식 주체의 이성(과학)만을 절대화하는 근(현)대성과 주객 이분법, 도구적 이성에 의한 세계의 사물화, 과학과 기술의 이면의 파괴성이 오늘의 ‘괴물 지구’를 낳았다. 이에 대한 반발로 이성을 해체하려고 봉두난발이 되도록 뛰어다니던 포스트모더니즘을 화해시키는 것, 다시 말해 주체의 강조와 주체의 해체를 통합하는 것은 서구 문명의 한계-과제를 해소하는, 그들의 아픈 심신을 달래고 치유하여 행복한 미래 세계로 인도하는 길이기도 하다. 오늘, ‘동아시아-한국’의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러한 ‘서구 문명의 한계’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독을 농축된 형태로 체화한 것이 우리이다.
한민족의 지혜를 담고 있는 하늘학은 어떤 비방으로서 그 독(毒)을 해소하고, 아니 그 독(毒)마저 약으로 승화시키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지가 이 책에서 답하려는 물음이다. 하늘학은 하나의 종교문화, 하나의 비전으로 환원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교문화와 여러 비전들이 공통으로 지향하는 가치를 모색하는 가운데, 다양한 개성과 전통, 사상과 강조점을 존중하며 현대 세계의 문제를 해소하는 공론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