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5

임건순 - 나무위키 - 386세대에 대해 날 선 비판하는 젊은 동양철학자 任建淳

임건순 - 나무위키

임건순

최근 수정 시각: 2022-02-08 18:07:59




분류
대한민국의 철학자
1981년 출생
보령시 출신 인물
서울시립대학교 출신

1. 개요2. 생애3. 사상4. 저서5. 출처

1. 개요[편집]

임건순(1981~ )은 법가, 유가 분야를 주로 다루는 동양철학자이다. 충청남도 보령시 출신. 서울특별시 종로구 거주. 현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출처, 제3의길 집필진.

2. 생애[편집]

생애는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원추각막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데다 집안이 가난하여 등록금이 싸고 장학금이 많은 서울시립대학교에 진학했다.[1] 본래는 행정학과 전공이었으나 학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했으며 박사학위는 받지 못했다. 임건순 본인은 이를 두고 "나는 지적 불법체류자"라고 칭했다.

2010년대 중반 무엇인가를 계기로 운동권에서 돌아섰고 지금은 격렬한 운동권 비난론자가 되었다. [이 사람] 386세대에 대해 날 선 비판하는 젊은 동양철학자 任建淳

3. 사상[편집]

임건순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인문학은 중산층만을 위한 배부른 학문이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정치적으로는 대한민국에는 제대로 된 보수진보도 없다고 주장한다. 보수 세력은 게으르고 안일하게 행동하며 과거에만 머무른 채 진보하지 않는 배부른 돼지이며, 진보 세력은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선민의식이 몸에 밴 내로남불의 끝판왕이라고 비판한다. 문재인 정권 이후로는 조선일보, 월간조선에 칼럼을 연재하고 펜앤드마이크등의 매체에서 정규재과 함께 말을 나누는 등, 속마음이야 어떻든 일단 담론장에서는 확실히 보수 쪽 논객으로 기능하고 있다. 민주당에 대해서는 중국에 나라를 팔아먹고 중국 공산당 귀족 계층으로의 편입을 계획하는 집단이라고 믿고 있다.

페미니즘에 대해 특히 비판적으로 접근하는데, 소위 '386' 기득권, 현 정권이 페미니즘 세력과 연합하여 나라를 분열의 장으로 만들어놓고 자기네들 이득만 취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한 연장선으로 조국 사태에 대해서도 가열차게 비판하였으며, "진보의 민낯을 보여주어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다. 출처

4. 저서[편집]

《야구오패》
《생각이 많으면 진다》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오자, 손자를 넘어선 불패의 전략가》
임건순 “우리나라 지도자, 오기의 리더십 배워야”복장에 주목
《오기, 전국시대 신화가 된 군신 이야기》
《순자, 절름발이 자라가 천 리를 간다》
《동양의 첫 번째 철학, 손자병법》
《생존과 승리의 제왕학, 병법 노자》
《세, 동아시아 사상의 거의 모든 것》
《대학, 중용》
《도덕경》
《제자백가 인간을 말하다》
《한국에서 법가 읽는 법》
《한비자, 법과 정치의 필연성에 대하여》

5. 출처[편집]

신동아 <‘아웃사이더’ 동양철학자 임건순>
사회공헌저널 <보편복지라는 위선과 야만의 탈 -임건순>

[1] 고등학교는 대천고등학교를 졸업했다.

===

[이 사람] 386세대에 대해 날 선 비판하는 젊은 동양철학자 任建淳
“한국은 조선시대로 귀환 중… 집권 386은 철들지 않은 꼰대”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 “자기들이 정의로우니 권력 누려야 한다고 믿는 집권 386은 孟子 영향받은 조선 사대부의 亡靈”
⊙ “중국인은 孫子의 자식들… 손자 및 손자의 영향받은 老子 이해하면 중국인 속이 보일 것”
⊙ “韓非子는 개인의 이기심 긍정했던 애덤 스미스와 유사”
⊙ “386이라는 암 덩어리를 들어내고 난 후에야 진정한 左派·右派 경쟁을 할 수 있을 것”
⊙ “右派는 더 이상 기득권 세력 아니다… 말과 글에 투자해야”
⊙ 諸子百家 해설서 등 11권의 책 펴내… 이번 달부터 서로 비슷한 문제의식 가졌던 동서양 사상가들을 살펴보는 ‘동서양 사상 크로스’ 연재

임건순
1981년생.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수료. 저서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손자병법: 동양의 첫 번째 철학》 《생존과 승리의 제왕학 병법노자: 생존의 기술, 승리의 조건, 변화의 전술》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관중에서 한비자까지 위대한 사상가 13인이 꿈꾸었던 최상의 국가》 《오자: 손자를 넘어선 불패의 전략가》 《순자: 절름발이 자라가 천 리를 간다》 《세, 동아시아 사상의 거의 모든 것》 《생각이 많으면 진다:우리가 몰랐던 류현진 이야기》 《야구오패: 한국 야구를 지배한 감독들》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손자병법: 동양의 첫 번째 철학》 《생존과 승리의 제왕학 병법노자: 생존의 기술, 승리의 조건, 변화의 전술》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관중에서 한비자까지 위대한 사상가 13인이 꿈꾸었던 최상의 국가》 《오자: 손자를 넘어선 불패의 전략가》 《순자: 절름발이 자라가 천 리를 간다》 《세, 동아시아 사상의 거의 모든 것》….

책 제목만 봐도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중국 고전을 만만치 않게 섭렵했음이 느껴진다. 손자(孫子)나 노자(老子)를 제외하면 다루고 있는 인물들이 비교적 생소한, 중국사상사의 비주류(非主流)라는 게 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손자병법》이 ‘동양의 첫 번째 철학’, 《노자》는 제왕학(帝王學)이자 병법(兵法)이라니 이 또한 생경하다.



임건순 작가의 諸子百家 관련 저작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작업을 하고 있는 이가 백발이 허연 70대 한학자(漢學者)나 ‘꼰대’ 모습이 완연한 50~60대 대학교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위 책의 저자는 임건순(任建淳), 38세 젊은이다. 지금까지 펴낸 11권의 책을 제외하면 세속적 의미에서 내놓을 만한 이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독특한 시각으로 제자백가를 재해석해 저술과 강연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고 있다. 아직 수가 많은 건 아니지만 나름 열광하는 팬층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임 작가가 페이스북에서 토해내는 현실, 특히 386세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도 눈길을 끈다. 지난 5월 28일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자.


‘386의 생각은 다 옳은가?’

〈시사인에서 20대 남자들에 대한 기사를 읽어봤는데 이런 질문들 던지고 싶다.

1. 젊은이들이 386을 무조건 정치적으로 지지해줘야 하는가?

2. 젊은이들이 386과 같은 생각을 해야 하고 그들이 주입하는 가치관을 자기 것으로 해야 하는가?

3. 젊은 샐럽과 지식인들도 386의 세계관에서 허우적대며 그들이 궁금한 것, 혹은 원하는 것들 대신 해결해주고 그래야 하나?? 이것도 넓은 의미에선 부역행위 아닌가?

386과 다른 생각하거나 정치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면, 보수고 수구고 일베고 괴물이란다. 특히 ×××라는디 그놈의 20대 ×××론은 언제까지 계속 우려먹을 것인지.

아니 386의 생각이 다 옳은가. 386과 다른 생각하면 악마여?? 그저 젊은 애들은 운동권 출신 진보를 자임하는 자들에게 표 주는 기계로 살아야 하나. 그리고 젊은 샐럽, 그래 젊은이들 중에 사회적 스피커와 마이크를 쥔 자들도 386 입장에서 세상을 보고 논해야 하나. 니들도 386이냐? 참 여러 가지 이건 아닌데 생각이 드는 기사였다. 기사에 깔려 있는 전제들이 영….

젊은이들이 386들이 시키는 대로 하고 386 지지하기만 하고 386의 가치관을 자기 신조로 삼아 살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고, 맑고 밝고 명랑한 시상이 만들어질 것인디 나만 그걸 몰랐나 봐. 그냥 몇 마디 말로 통치면 되는 거 아녀. ‘야 이 ×××들아, 왜 민주당과 문재인 지지 안 해. 당장 생각 고쳐먹고 다음 총선, 대선 때 또 민주당 사람들 찍어!!’ 이러문 되는 거 아녀. 그저 386과 다른 생각한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닥치고 문제라고 놓고 보는 시각 자체가 구역질 나.〉


‘知的 불법체류자’

고향인 충남 바닷가의 느긋한 사투리를 섞어 쓰면서 애써 칼날을 감추고는 있지만, 386세대에 대한 날 선 비판의식이 느껴진다. 《월간조선》은 7월호부터 원석(原石) 같은 젊은 동양철학자이자 작가 임원순의 글을 연재한다. ‘동서양 사상(思想) 크로스’는 세상사에 대해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 제자백가 사상가와 15~18세기 유럽 철학자의 사상을 비교하면서 우리 현실을 돌아보는 기획이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임건순 작가의 생각을 들어보기로 했다.

― 1981년생이면 한문은 고사하고 한자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세대일 텐데 어떻게 한학자의 길을 걷게 됐습니까.

“외할아버지가 한학을 하셨습니다. 직접 배운 건 아니지만, 덕분에 어려서부터 한문에 대한 공포감이 없었죠. 그것도 일종의 ‘문화적 자본’이겠죠.”

― 행정학과 출신인데 어떻게 제자백가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까.

“학부에서 교수님들이 ‘늘 행정학은 사회과학이다, 경제학이나 정치학 같은 인근 학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제자백가는 철학이라기보다는 종합 사회과학입니다. 학부에서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 대학원 가서 제자백가를 공부하는 것보다, 학부에서 사회과학을 튼튼하게 공부한 사람이 대학원에서 제자백가를 공부하는 게 옳은 것 같습니다.”

― 한문 공부는 언제 본격적으로 했습니까.

“2008년부터 1년 동안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했습니다. 1년 동안 무조건 사서(四書: 논어・맹자・대학・중용)를 다 외워야 합니다. 무식하지만 가장 빠른 지름길은 역시 원문(原文)을 달달 외우는 것이에요.”

임건순 작가는 스스로를 ‘한국 지식인 사회의 지적(知的) 불법체류자’라고 말한다. 무슨 뜻일까?

“우리나라 지식인 사회에서 인정받으려면, 유학도 갔다 와야 하고 제도권에서 박사학위도 받아야 하는데, 그런 게 없으니까요. 대학에서 특강 외에는 강의해본 적도 없고요. 그런 시민권・영주권이 없으니 불법체류자죠.”

― 시민권을 획득하려고 노력은 해보았습니까.

“굳이 할 이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영주권・시민권을 얻으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형편이 허락하지 않은 것도 있고요. 형편이 허락하지 않는 걸 굳이 하려고 하기보다는 내 상황에서 뭐라도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원망할 것도 없고….”

― 서울시립대 행정학과를 나왔는데, 공무원시험 봐서 직장 잡고 가정 꾸려 평범한 삶을 살아보려는 생각은 안 해보았습니까.

“어려서부터 그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아주 단호한 대답이었다.


원추각막

― 와, 정말요? 대단하네요.

“초・중・고교 때 선생님들이 ‘건순이 쟤는 조직형 인재가 아니라 장인(匠人)형 인재다. 그냥 내버려둬라’ 하면서 배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어떻게 보면 그 때문에 저를 차별할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도 선생님들에게 무척 감사하고 있어요. 새 책을 낼 때마다 그때 선생님들의 성함을 꼭 적어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 그때 선생님들은 뭘 보고 그렇게 판단하신 걸까요.

“‘늘 혼자서 책을 읽고 있고, 엉뚱하지만 날카로운 질문을 많이 하더라. 얘는 자기 생각을 말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시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창의력이라는 것은 시험을 객관식에서 주관식으로 바꾼다거나 차별화된 교육과정을 마련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어른들이 ‘쟤는 저럴 수 있어’ 하면서 묵인하고 배려해주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싶어요.”

― 원추각막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각막이 망막을 뚫고 나오는 건데, 그래서 시력이 좀 안 좋습니다.”

― 계속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등 눈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을 해야 하는데, 지장은 없습니까.

“지장이 있기는 하죠. 다른 한편으로는 좋은 면도 있어요. 눈이 잘 안 보이다 보니 공부할 때 소리 내서 읽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암기가 잘됩니다. 글을 소리 내서 읽는 것이 습관이 되니, 글을 쓸 때도 상대방에게 말하는 것처럼, 독자가 술술 읽을 수 있게 쓰게 되더군요. 노트 한 권 쓸 것을 소리 내어 거듭해서 읽고 외우다 보면, 머릿속에서 내가 스스로 재평가하고 의미부여를 하면서 머리에 저장하게 되더라고요. 그게 저술가로서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제국주의와 제국질서

― 제자백가 얘기를 좀 하기로 하죠. 중국에서는 지금으로부터 2400여 년 전인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에 온갖 사상이 만개(滿開)한 후로 한 번도 그토록 다채로운 사상을 꽃피운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반면 유럽에서는 15세기 이후 다양한 철학사상을 꽃피우면서 이를 바탕으로 근대로 진입하지요. 그 차이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제자백가 사상을 꽃피우던 춘추전국 시대는 유럽의 15~18세기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여러 나라로 쪼개져서 서로 경쟁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15~18세기 유럽의 경쟁은 제국주의(帝國主義)를 낳은 반면, 기원전 중국의 경쟁은 제국질서를 낳았습니다. 제국주의는 경쟁을 계속해나가는 것이지만, 제국질서는 경쟁의 종식을 의미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상적인 활력뿐만 아니라 군사혁명(군사 전략・전술・기술상의 변혁)이나 기술적인 혁명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제국주의와 제국질서라… 흥미로운 얘기네요.

“제국질서 아래서는 상인(商人)들의 지위가 높아질 수 없었죠. 여러 나라가 경쟁해야 상인들의 지위가 높아지고 발언권도 올라가거든요. 군주들이 상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되니까…. 이런 이유들 때문에 진(秦)나라, 한(漢)나라 같은 거대제국이 생기면서 중국에서는 2000년 전부터 커다란 진보가 없어진 것 같습니다.”


“한비자, 개인의 이기심과 인센티브 강조”



한비자(왼쪽)와 애덤 스미스는 개인의 이기심을 인정하고, 결과적 평등을 부인한다는 점에서 흡사하다.
― 제자백가 중 누구에게 가장 관심이 갑니까.

“지금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한비자(韓非子)가 제일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은 과도한 공공(公共)부문을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개혁을 많이 해야 합니다. 자본주의・시장경제를 한다고 하지만 규제가 너무 많고 관치(官治)의 영역이 비대합니다. 그래서 한비자가 필요합니다. 한비자는 밀턴 프리드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애덤 스미스와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 한비자 하면 흔히 ‘법(法)’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국가의 힘을 최대한 동원하려던 국가주의자로 인식합니다. 그런 한비자가 ‘자생적(自生的) 질서’를 강조한 프리드먼이나 ‘보이지 않는 손’을 주장한 애덤 스미스와 통한다니, 뜻밖이네요.

“애덤 스미스와 한비자는 똑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바로 ‘사람들의 이기심(利己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는 것이었죠. ‘각자 자기의 이기적 욕망을 가지고 잘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고 그런 상태에서 사회적 분업(分業)이 돌아가야 한다’ ‘나라는 개인들의 사적(私的) 욕망을 발현할 수 있게 멍석을 깔아줘야 하고, 그래야 국력도 강해진다’ 등.

법가(法家)들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말했는데, 강병 이전에 부국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나라를 잘살 수 있게 할 수 있는가? 개개인의 욕망, 돈을 벌려는 마음, 잘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억누르면 안 된다고 한비자는 말합니다.”

― 재미있네요.

“또 한비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지지는 것처럼 하라’는 노자의 말을 인용합니다. 작은 생선을 지질 때에는 약한 불로 하고 함부로 뒤집으면 안 되는 것처럼, 법령들을 자주 바꾸거나 덫을 놓는 규제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 혹시 ‘평등’에 대해서도 한비자가 얘기했나요.

“한비자는 결과의 평등을 철저하게 부인했습니다. ‘더 열심히 일한 사람, 더 부지런을 떤 사람, 자기 능력을 발휘한 사람, 더 많은 리스크를 짊어진 사람들이 사치하고, 방탕하고, 리스크를 짊어지지 않은 사람보다 더 잘사는 것이 당연하다’ ‘결과의 평등을 내세우면 인센티브 체계가 무너져서 국력이 약해진다’고 봤습니다. 경제학적 통찰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마오쩌둥, “노자는 兵家의 書”

― 제자백가 중에서 개인적으로 정서적 공감을 가장 많이 느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묵자(墨子)입니다. 묵자는 못 먹고 못 입는 사람들을 잘 이해한 것 같아요. 서구(西歐)에서는 묵자를 일종의 사회민주주의자로 보는 것 같더군요.”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 고학(苦學)을 했고, 지금도 가난한 학인(學人)의 길을 걷고 있는 그의 처지를 생각하면 이해가 갔다.

― 묵자가 사회민주주의자라니, 그럴듯하네요.

“그런데 공부하면서 보니 사회민주주의라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봐요. 구성원들의 정신적 건강함, 사회적・공적(公的) 신뢰가 있어야만 하는데, 과연 우리나라에서 사회민주주의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묵자가 개인과 계약에 대해 많이 이야기한 데에 눈길이 갑니다. 한국인에게 부족한 것이 계약에 바탕을 둔 사고(思考)입니다. 묵자에 대한 책을 하나 쓰기는 했지만, 기회가 되면 ‘계약’이라는 관점에서 묵자를 책으로 다시 써보고 싶습니다.”

― 노자를 문명비판론적 자유주의자가 아니라 국가주의자로, 노자의 《도덕경》을 병법서로 해석했는데, 그 이유가 뭡니까.

“《도덕경》은 ‘어떻게 하면 왕의 권력을 길고 안정되게 가져가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느냐’를 고민한, 군주를 위한 통치술입니다. 중국이나 구미(歐美)에서도 그렇게 이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주희(朱熹・주자)는 ‘제자백가 중에 노자가 가장 독하다’고 했고, 마오쩌둥(毛澤東)은 ‘《도덕경》은 병가(兵家)의 서(書)’라고 했습니다.”

― 어떤 점 때문에 《도덕경》을 병법서로 보는 건지 예를 들어 설명해주시죠.

“노자의 유명한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죠? 손자는 ‘병법의 극치는 물과 같아야 한다. 물이 흐르는 것이 지형을 따라서 늘 변하듯이 군대는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만 이길 수 있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었죠. 노자는 그걸 시적(詩的)으로 다시 쓴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노자를 손자와 연관지어 볼 수 있는 대목이 무척 많습니다. 중국에서는 손자와 노자를 같이 이해하는 논문이 꽤 많이 있어요.”


“한국인은 殺身成仁, 중국인은 明哲保身”



《손자병법》과 고구려에 대해 강의하는 임건순 작가. 사진=유튜브 캡처
임건순 작가는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손자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은 ‘공맹(孔孟・공자와 맹자)의 자식들’입니다. 한국인들의 정신세계는 공맹만 가지고 어느 정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같은 한자문화권이라고 하지만 중국인들은 ‘손자의 자식’들입니다. 손자와 그의 영향을 받은 노자를 이해해야 중국인들의 속이 보일 것입니다.”

― 우리 한국인들이 ‘공맹의 자식들’이라….

“한국인들은 명분(名分)과 당위(當爲)를 중시하지만 중국인들은 철저히 실리(實利) 위주죠. 우리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을 강조하지만, 중국인들은 명철보신(明哲保身)을 강조합니다. 그런 중국인들의 의식의 연원은 손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명청대(明淸代)에 만들어진 후흑학(厚黑學), 36계의 뿌리도 손자에게 있는 것 같고요.”

― 서양 정치학과 철학은 어떻게 공부하게 됐습니까.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자백가 시대의 중국과 15~18세기 유럽의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상황이 비슷하면 사람들이 비슷한 사고(思考)를 하지 않을까’ 해서 서양 사상가들을 찾아보았습니다. ‘묵자와 토머스 홉스’ ‘한비자와 니콜로마키아벨리, 애덤 스미스’ ‘공자와 에드먼드 버크’ ‘순자(荀子)와 데이비드 흄’이 비슷하더군요. 서양의 철학・정치학을 공부하는 것이 제자백가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 《월간조선》에 연재할 ‘동서양 사상 크로스’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고전(古典)은 질문입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책들이 고전입니다. 고전은 뭔가 원점(原點)에서 사회와 인간, 국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자극을 주거나, 원점에서 검토해보려고 안간힘 쓸 때 길을 잃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전 속의 동서양 사상가들이 던진 질문을 가지고 오늘의 한국 사회를 한번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朝鮮化’



사대부의 특권을 주장한 孟子.
― 이제부터는 우리 사회 돌아가는 얘기를 좀 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요즘 페이스북을 보면 ‘조선(朝鮮)으로의 귀환’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있더군요. 무슨 의미입니까.

“지금 권력을 쥐고 있는 386운동권들은 조선시대 사대부(士大夫)들과 똑같은 사고를 갖고 있어요. 저는 이들이 조선시대의 망령(亡靈)들이라고 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도덕적으로 옳다, 정의롭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이런저런 특권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리스크와 싸우면서 문제를 해결할 역량을 갖고 있다’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옳다, 우리가 과거에 정의를 위해 투쟁했다’고 하는 당위(當爲)만 가지고서 도덕을 얘기합니다. 자기들의 정치권력, 기득권(旣得權)을 정당화하고, 그 기득권을 쭉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그게 바로 ‘조선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면서 기업과 상인, 과학기술자, 의사 같은 전문가 집단을 공격하고 있죠. 자기들은 사대부, 위 집단들은 상민(常民)이나 중인(中人)으로 생각하는 거죠.”

― 그런 조선적인 모습은 역시 ‘맹자-성리학’적인 건가요.

“(한숨을 쉬며) 유교(儒敎)는 공자의 철학이라고 하는데, 한국은 공자도 아니고 맹자의 나라 같아요. 맹자가 처음으로 지식인 계급, 사대부 계급의 특권과 독재, 정치권력의 독과점(獨寡占) 같은 것들을 주장했거든요. 《논어》를 보면 ‘군자는 이래야 한다, 이럴 수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군자의 의무와 자격, 책무를 많이 이야기합니다. 반면 《맹자》를 읽다 보면 ‘군자는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 이런 것들을 누려야 한다’는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지금 집권세력은 누리는 것만 생각하는 것 같고, 어떤 책임과 의무를 지고 공적 유능함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근대는 小人과 謀利輩의 사회”

―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자기들이 군자(君子)라고 믿는 사람들, 군자라는 자의식(自意識)을 가진 사람들이 정권을 잡는 사회는 근대사회가 아니라고 봅니다.

근대사회는 ‘나도 소인(小人)이고 너도 소인이다’ ‘너도 모리배(謀利輩)고 나도 모리배다’라는 걸 다 인정하면서, 소인과 모리배들이 적당히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면서 사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민주주의고 시장경제겠죠. 군자라는 자의식을 갖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는 건 이런 근대에 대한 부정입니다.”

― 과거에 ‘산업화→민주화→선진화’라는 말이 있다가 근래에는 ‘산업화→민주화→조선화(朝鮮化)’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그와 통하는 말이군요.

“제가 386 기득권 세력들을 비판하는 것도 단순히 ‘좌파를 때려잡자’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를 근대적 합리성을 가진 사회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제가 하는 작업도 단순히 그들이 나쁘다, 무능하다고 비판하는 걸 넘어서 더 좋은 사회를 위한 더 나은 청사진을 제자백가와 15~18세기 유럽 고전에서 찾아보고자는 것입니다.”

임 작가는 “조선화로 넘어가면서 리스크(위험)를 짊어지는 것에 대한 평가와 대우가 박해진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저는 우리가 사대부의 나라가 아니라 상인과 무사(武士)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늘 강조합니다. 또다시 군인들이 정치하거나 기업인들이 정치권력을 쥐어야 한다는 얘기는 물론 아닙니다. 전선(前線)에서 부대끼는 사람들을 존중해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국종 교수가 외상(外傷)센터 지원 얘기하잖아요? 그건 돈을 지원해달라는 얘기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리스크를 짊어지고 전선에서 부대끼는 사람들을 지원해주는 사회로 변해야 한다’는 경고의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경쟁이나 전쟁에서 이긴 사람들, 살벌한 경쟁투쟁에서 끊임없이 자기들의 능력을 입증한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서구의 힘이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 우리나라는 그런 점에서 전통적으로 부족한 게 많지요.

“우리도 지방자치 선거할 때 공천 헌금하는 지역토호들을 내세울 게 아니라, 미국처럼 군인이나 경찰 생활하다가 장애를 입은 이들을 공천하면 좋겠어요. 장애인들을 왜 패럴림픽에만 내보냅니까? 그들이 당장은 서툴러도 공동체를 위해 책임감을 갖고 일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면 좋겠어요. 그래야 시민사회가 건강해지고 정신이 건전해질 것입니다.”


“우파가 공짜 바라는 건 자기 부정”

현 집권 386세대를 이렇게 혹독하게 비판하는 임건순 작가가 4년 전 쓴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에서는 한국 보수세력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묻자 “한국 보수는 너무 공짜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뜬금없는 대답이었다.

―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세상이 변해가면 ‘과거에 내가 이런 공(功)이 있다’는 것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변해야 합니다. 반공(反共)이니 산업화 같은 것을 넘어서 ‘우리가 어떤 철학과 가치(價値)에 기초하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고, 국가주의와 결별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가치와 철학, 상징자산 이런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데 보수세력에게는 그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는 것 같아요.”

― 상징자산이란?

“딱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나 이미지 같은 걸 말하는 거죠. 지금으로 치면….”

― 좌파의 노무현(盧武鉉) 같은 존재를 말하나요.

“그렇죠. 우파에게 새로운 상징자산이 있나요? 그 사람들은 박정희(朴正熙)나 이승만(李承晩) 가지고 계속될 줄 알았나 봐요. 그게 아닌데…. 기존 상징자산이 기능을 못 하면 다른 걸 찾아봐야 하고, 그러면서 ‘우리가 과연 어떤 철학, 가치,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너무 권력의 단맛에 취해 있었던 것 같아요. 공짜를 좋아했다는 건 그런 의미입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데….”

임 작가는 “우파는 공부를 아예 안 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전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國富論)》을 갖고 다녔어요. 우리나라의 보수정치인 중에 애덤 스미스적 가치, 철학에 기초한 사람이 있나요?”

― 없죠. 그 부분은 공감합니다.

“좌파는 몰라도 우파는 공짜를 바라면 안 됩니다. 그건 자기 스스로를 부정하는 꼴밖에 안 됩니다. 사람 키우려는 생각도 없는 것 같고요.”

― 그래요. 책을 내도 ‘책 하나 보내줘’ 하지 ‘내가 사 볼게’ 하는 사람이 없지요.

“기업가나 자본가라는 사람들은 ‘정권이 못살게 군다’는 소리만 하지 말고, 세련된 가치와 레토릭으로 자기들을 변호하고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지원하고 투자해야 합니다. 소외된 사상가・철학자・작가들을 찾아서 조금만 투자하면 됩니다. 그들에게 ‘우리도 지금 이렇게 변하고 있고, 변할 테니까, 우리 입장을 대변해줄 수 있는 세련된 말과 글, 언어들을 생산해달라’고 해야 합니다. 이건 일종의 거래입니다. 날로 먹을 수는 없어요.”

― 우리나라 기업은 그런 것에 장기적 투자를 하기보다는 좌파 시민단체, 좌파정권에게 살살 때려달라고 뇌물 주면서 5년 견뎌낼 생각만 했죠. 좌파 시민단체들에게 ‘삥’ 뜯겨 건물이나 지어주고….

“자기의 말과 글, 언어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당당하게 자기 권리도 말할 수 있습니다. 말과 글, 자기 철학이 있으면 삥 뜯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386, 심각한 피터팬증후군”



2003년 8월 남북경협 지속 발전에 관한 기자회견을 한 386세대 정치인들.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를 읽으면서 중국 제자백가 사상들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에 비해, 기성 보수세력에 대한 비판은 표현이나 방식이 표피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을 막으면서 빠르게 국가 건설을 해야 했고, 그런 과정에서 무리도 있었겠죠. 그런 것은 나이가 들면서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삶의 모순과 복잡성이 보이고, 빛과 그늘이 공존하는 게 인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르신들이 싫어할 수도 있는 얘기겠지만, 이승만은 독재자이기도 하지만 평생 독립운동을 한 ‘건국의 아버지’이기도 하고, 일본은 침략자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근대화에 기여한 부분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두 가지 측면을 다 인정하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요? 저도 옛날에는 그게 어려웠어요. 하지만 그런 걸 인정해야 하고 양쪽 다 껴안고 가야 합니다.”

― 페이스북 등에 386에 대해 비판한 글을 쓴 걸 보면, 그들을 거의 증오하는 것 같더군요. 왜 그렇게 386세대를 미워합니까.

“386세대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들이 아직도 젊은이인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철들지 않았다는 걸 너무 공개적으로, 또 자랑스럽게 이야기해요. 젊은 사람들이 봤을 때는 그 사람들은 ‘꼰대’들입니다. 그런데 꼰대가 되기 전에 한 번은 철이 들어야 하거든요. 어르신들 말씀대로 어렸을 때는 아이다운 모습이 있어야 하는 거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단계마다 해야 할 일과 모습이 있는 겁니다. 나이 먹어서 꼰대가 되는 건 할 수 없지요. 하지만 철도 안 든 꼰대는 곤란합니다.”

― 저도 아직 대학 시절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친구들에게 ‘대학 다니는 자식을 둔 놈들이 자기가 아직도 대학생인 줄 안다’고 꼬집곤 합니다.

“심각한 피터팬증후군입니다. 대학 다니는 아들, 대학 졸업하고 공무원시험 준비하는 딸을 둔 사람들이 자기가 아직도 20대 청년인 줄 알고 있어요.”

임 작가는 “한국 사회는 386이라는 악성 종양, 암 덩어리를 들어내고 난 후에야 진정한 좌파・우파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논개처럼 산업화 세력을 껴안고 절벽으로 떨어져 버린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이 386세대를 껴안고 절벽 아래로 떨어질 거라고 기대합니다. 좌파는 50대의 기득권・탐욕・이기심이, 우파는 70대의 노추(老醜)가 문제입니다. 그들이 물러나줘야 합니다.”


“이제는 좌파가 기득권 세력”

― 문재인 정부가 ‘적폐(積弊)청산’한다고 하잖아요.

“자기들이 적폐예요.”

― 대학 시절 운동권에 대한 관심은 없었나요.

“없었어요. 혼자 있는 걸 너무 좋아하다 보니…. 그리고 제 눈에 비친 운동권 모습이 너무 위선적이었어요. 지금도 그들이 하는 걸 보면 말과 행동이 너무 모순되는 게 많아요.”


― 어떤 걸 두고 하는 말입니까.

“386세대 교수들을 보면 대학원생들에게 함부로 하면서도 신문에 쓰는 칼럼에서는 자신을 아주 정의로운 사람인 것처럼 포장하지요. 최순실 사건 때, 박근혜 정권을 비난하는 성명을 냈지만 자기들끼리는 엄청 밀어주고 끌어주고…, 민노총이 너무 막 나간다 싶은데도 지식인이란 사람들은 그들을 옹호하고 눈감아주고….”

― 임 작가는 이념적으로 어느 쪽이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진보인 것 같아요. ‘앞으로 나가야 한다’ ‘자기들을 대변할 정치세력이 없는 사람들이나 못사는 사람들을 정치가 챙겨야 한다’ ‘과학적 사고, 합리적 인식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진보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우파 좌파 할 것 없이 ‘인식의 지체(遲滯)’ 현상을 겪고 있는 것 같아요.”

― 무슨 얘기입니까.

“이미 대한민국에서 기득권 세력은 완전히 바뀌었어요. 우파라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도전자라는 인식을 가져야 하는데, 자기들이 아직도 여당이고 기득권자인 줄 알고 있어요.

좌파도 마찬가지예요. 이제 차명(借名)・가명(假名) 등기하지 말고 실명(實名)으로 하고, 비판과 책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기들이 아직도 비판하고 저항하는 입장인 줄 알면서 자유한국당이나 재벌들을 욕하는데, 기득권은 이미 그들에게 완전히 넘어갔어요. 사실 그런 흐름은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라 이명박-박근혜 정권 기간 중에도 계속되고 있었죠. 탄핵은 그걸 추인(追認)한 것에 불과합니다. 운 좋게 우파가 다시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말과 글, 이런저런 조직들을 저들이 갖고 있는 한, 우파는 대통령만 명목상 차지하고 있는 것이지, 실질적인 권력은 여전히 저들의 수중에 있게 될 것입니다.”

― 우파가 왜 권력을 빼앗기게 됐다고 봅니까.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고, 미국의 ‘안보 우산’이 너무 든든하게 느껴지다 보니 그때부터 배가 부르고 안심하게 되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영구분단 선언하자”

― 북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과거에는 현실로서의 북한은 우리의 적(敵)이지만, 당위로서의 북한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와 같이 통일을 위한 동반자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만 포기! 차라리 영구분단을 선언해버리면 좋겠어요. 통일부는 ‘평화청(平和廳)’으로 이름 바꾸어서 외교부 산하로 넣어버리고….”

― 영구분단이라니…. 국민들이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젊은 사람들에게는 이제 통일해야 한다는 당위가 설득력 없어요. 젊은이들이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기성세대야 통일되는 걸 보고 샴페인 터뜨리고 얼마 후에 무덤으로 가면 그만이지만, 우리는 쟤들(북한주민들) 먹여 살리느라고 거지꼴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통일비용보다 분단비용이 더 적게 든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이렇게 묻고 싶어요. ‘적대적 분단, 돈 많이 드는 분단만 있느냐’고…. 한 나라였다가 갈라선 벨기에-네덜란드처럼 그냥 서로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살면 되지 않을까요.”

슬슬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 됐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뜻밖의 얘기가 돌아왔다.

“《월간조선》이 기회가 되면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일을 좀 해주었으면 합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저평가(低評價)된 대통령이라고 생각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에서 민주화로의 이행, 북방정책 등의 업적이 많습니다. 노동자들의 임금이 많이 올랐고, 소득분배도 고른 편이었으며, ‘중산층의 꿈’이 생겼습니다. 아마 87년 체제 이후 최고의 대통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면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은 실제보다 과대평가된 면이 많다고 봅니다.”

― 요즘 흔히 갖고 있는 생각과는 많이 다르네요.

“인격이나 이미지가 아니라 ‘정책과 제도를 통해 누가 국민의 삶을 개선해주었는가’ 하는 측면에서 정치인을 평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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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웃사이더’ 동양철학자 임건순

“조선으로의 퇴보를 멈춰라”

  • | 최창근 객원기자 caesare21@hanmail.net
  • ● 11권의 동양철학 저서 펴내고 대중 강연…“젊은 도올 보는 듯”
    ● 상위 10% 중간지배층이 독재하는 ‘조선스러운’ 대한민국
    ● “노무현은 과대평가, 노태우는 과소평가”
    ● “열 명에게 욕먹더라도, 한 명에게 자극되는 글 쓰고파”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회자된다. 인문·사회학 분야가 천대받는 세태의 방증이다. 문(文)·사(史)·철(哲)로 대표되는 순수 인문학 처지는 더 어렵다. 

한 남자가 있다. 이름은 임건순(37). 동양철학자 겸 저술가. 대중 강연도 한다. 어렵고 딱딱한 동양철학을 쉽게 녹이고 풀어내는 일이 그의 ‘직업’이다.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시대의창),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세(勢), 동아시아 사상의 거의 모든 것’ 등 그간 출간한 동양철학 분야 책만 11권. 집필 중이거나 집필 예정인 책도 10권이 넘는다고 한다. 그의 책들은 고정 독자를 확보하며 중쇄를 거듭하고 있다. 그는 ‘척박한 인문·사회 출판계의 떠오르는 별’로 평가받는다. 

임건순은 ‘멸종 위기’에 처한 동양철학 외길을 걷는 독행자(獨行者)다. 석·박사 학위는 없다. 대학 및 연구소 등 제도권에 적(籍)을 두지 않았다. 학술·연구단체와 인연도 없다. 혈혈단신 ‘임건순’이란 이름 석 자로 승부를 건다. 외롭고 힘든 길을 걷지만 행보는 거침없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이다. 임건순 책의 애독자인 손상범 영남대 교수(국제통상학부)는 “임건순의 말과 글에서 ‘젊은 시절’ 도올 김용옥을 연상한다”고 했다. 

스스로를 ‘한국 지식인 사회의 지적 불법체류자’라 정의하는 임건순은 한국 사회를 향해 거침없이 ‘돌직구’를 던진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조선으로 퇴보 중”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를 만났다.

‘혈혈단신 임건순’

다수가 기피하는 철학, 그중에서도 동양철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가 뭔가요. 

“대학은 행정학과로 입학했습니다만, 정치학·경제학 등 사회과학 전반을 두루 공부했습니다. 제가 연구하는 제자백가(諸子百家) 사상은 사실 철학보다는 사회과학에 가깝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사회와 국가를 잘 다스릴 수 있는 질서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한 학자들입니다. 정치사상이자 종합사회과학인 거죠. 관중(管仲)이나 한비자(韓非子)는 경제학으로 접근해도 좋습니다. 그들의 경제학적 통찰은 기가 막히죠.” 



제자백가 사상이 가지는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제자백가를 다른 표현으로 선진(先秦·진나라 이전) 철학이라 합니다. 통일제국 진(秦) 이전과 이후 철학 양상은 사뭇 달라요. 선진 철학이 역동적이고 재기발랄하다면, 후진(後秦) 철학은 단조롭고 무미건조합니다. 통일제국 성립이라는 환경 변화에 영향을 받아 학문적 자유도 줄고, 수성(守成) 시대에 맞춰 개인의 수신(修身)에 중점을 두게 됐기 때문이죠. 형이상학 내지는 관념론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열국(列國)이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벌이던 시대의 ‘백화제방(百花齊放)’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가 제자백가의 ‘역동성’과 ‘재기발랄’의 매력을 강조하는 이유는 한국 사회에 사유의 다양성과 다원성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제자백가 텍스트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저술과 강연으로 이들 사상을 대중화함으로써 한국 사회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겠다는, 그만의 ‘운동’인 것이다. ‘묵자’ 상동(尙同)편 상(上)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사람마다 의로움(義)을 달리하였다. 한 사람이 있으면 한 가지 의로움이 있었고 두 사람이 있으면 두 가지 의로움이 있었고 열 사람이 있으면 열 가지 의로움이 있었다. 사람의 수가 더욱 많아지면 의로움 역시 많아지는데….

임건순은 이 구절에 대해 “여러 사람이 등장해 ‘내 이야기 좀 들어보라’며 떠들어댄 당대 상황을 보여준다”며 “그만큼 다양한 목소리가 등장해 서로 힘을 겨룬 것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에 좋은 참고가 된다”고 말했다. 

공자(孔子)·맹자(孟子)가 아닌 묵자(墨子) 등 이른바 비(非)주류 사상가 연구에 주력합니다. 

“균형 있게 공부해보고 싶었습니다. 제자백가는 ‘백화제방’이란 표현처럼 서로 다른 빛깔을 가진 활짝 핀 아름다운 꽃들이에요. 수많은 아름다운 꽃이 있는데, 한두 송이(공자·맹자) 꽃만 바라보고 마나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그의 인생 역정은 순탄치 않다. 각막이 원뿔 모양으로 튀어나온, ‘원추각막’이란 희귀병을 앓고 있다. 가난도 따랐다. 원하던 서울 소재 명문 사립대학 대신, 학비가 저렴하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서울시립대학에 진학했다. 고학(苦學)은 필연. 사회로 나온 후에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기초 생계비에 턱없이 못 미치는 돈으로 수년을 버티기도 했다. 오늘날도 이른바 ‘도시빈민’ 신세다. 

“제 고향은 충남 보령군, 반농반어(半農半漁)의 시골입니다. 한마디로 전 ‘촌놈’이죠. 집안 형편도 어려웠어요. 본디 양반 가문도 아닌 것 같고요. 그렇다 보니 학문적 관심도 성리학(性理學)에서 자연 묵가(墨家)와 양명학(陽明學)으로 옮겨갔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열정적으로 구세(救世)하려던 묵자, ‘사농공상(士農工商)이 다른 일에 종사하지만 그 도(道)는 같다’는 이업동도(異業同道)를 주창한 양명학에 빠져들었습니다.”

유학파가 인문학 망친다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최근에 그가 주력하는 분야는 법가(法家)다. 올해 ‘법가’ 관련 책을 출간할 계획이고, 최근 이랜드그룹 후원으로 10강에 걸쳐 ‘한비자’를 강의하기도 했다. 법가에 천착하는 것 또한 그의 처지와 무관치 않다. 

“제가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데다 가난해서인지 성격이 거칠고 강한 편입니다. 영춘권(詠春拳)을 비롯해 무술도 좋아합니다. 평등 원리가 강하고 기득권·중간 착취계급 타파를 목적으로 하는 법가 사상에 끌립니다. ‘근대국가’인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전근대’ 조선으로 귀환했다고 봅니다. 상위 10%의 중간지배층이 독재하는 사회로 변해버렸으니까요.” 

임건순은 사회주의 용어로 ‘사회경제적 위치·계급적 좌표’가 학문에 결정적 영향을 끼쳐 한국 동양철학계가 외면해온 분야를 파고들게 된 셈이다. 

“우선 저 자신이 서 있는 사회·경제적 위치를 자각합니다. 그걸 바탕으로 제 좌표를 정확하게 인지해야죠. 그다음 저와 문제의식이 일치하는 사상가와 텍스트를 찾아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 사회와 국가가 당면한 문제와 해결 방법을 찾습니다. 이런 것이 ‘인문학적 사유’ 혹은 ‘인문학을 하는 자세’가 아닐까요?” 

처한 환경과 이를 바탕으로 생긴 문제의식 때문에 비주류가 되었다는 그는 한국 학계 풍토를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한국 대학에서 손자(孫子)나 오기(吳起)를 주제로 논문을 쓰면 석·박사 학위를 받기 힘들죠. 아마 안 줄 겁니다. 묵가, 병가, 법가 등을 공부한 저 같은 사람은 사문난적(斯文亂賊)일 거예요(웃음).” 

한국 사회 ‘인문학 열풍’의 의의와 한계는 무엇이라 보나요. 

“한국 사회 인문학은 ‘중산층 특화 교양’입니다. 쉽게 말해 여유 있는 사람이나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라고 할까요? 배부른 사람들 구미에 맞춘 위로와 위안을 진정한 인문학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진정한 인문학이란? 

“춘풍(春風)이 아니라 추상(秋霜) 같아야죠. 진리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지만, 당장의 진실 혹은 진리는 비참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시현하고 싶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팩폭(팩트 폭행)’이죠. 열 사람 중 아홉 사람에게 욕을 먹어도 한 사람에게는 진정한 자극이 되는 그런 글을 쓰고 싶고, 말을 하고 싶습니다. 만인에게 존경받기보다는 적을 만들더라도 치열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싸우고 싶어요.” 

그는 ‘인문학 위기론’에 대해서도 반론을 폈다. 

“인문학 위기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학 인문학과와 거기 교수들의 위기죠. 학령인구 감소로 인문학 전공 위주로 진행되는 학과 통·폐합 때문에 전임교수 자리를 잃게 된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겁니다. 한국 사회에서 언제 인문학이 제대로 연구·교육된 적이 있습니까?” 

인문학 전공 학생들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무늬만 인문학 전공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텍스트를 해독해 자신의 말과 글로 풀어내는 ‘내공’ 있는 인문학 전공자가 몇이나 있습니까? 비판적 사고를 제대로 하는 학생을 얼마나 보셨나요? A4용지 한두 장 분량이라도 조리 있게 자신의 생각을 쓰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부생, 대학원생의 민낯이죠.” 

원인이 뭘까요. 

“해외 유학파가 교수 시장을 독점하는 구조적 문제, 학문 후속 세대를 키우기 위한 노력과 시스템의 부재, 모국어를 천시하는 풍토 등이 한데 뒤섞였기 때문이에요.” 

박상익 우석대 교수도 ‘신동아’ 3월호 인터뷰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유학파들은 외국 이론·사상 ‘운반책’ 노릇이나 하고 있습니다. 로컬(local)에 기반한 상상력은 제로입니다. 그들은 제대로 된 한국어 교재나 번역서를 출간하는 데 게으릅니다. 명색이 선생이라면서 ‘아웃소싱’할 게 따로 있지, 학문 후속 세대를 제대로 양성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유학이나 다녀오라’고 합니다.” 

그는 이러한 현실을 타개할 해법으로 ‘제국(帝國) 연구’를 제시한다. 

“한국은 여러 이유로 인문학이 뿌리내리기 힘든 환경입니다. 한국인들은 중·고등학교 시절 시민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스스로 사유하고 판단하는 주체가 되지 못했습니다. 시민으로서의 소양을 쌓는 데 필요한 외국 고전과 명저가 제대로 번역돼 있지 않은 것도 큰 문제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우리에겐 제국 경험이 없습니다. 

저는 제국을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국의 야만성, 침략성이 아니라, 제국 운영의 메커니즘, 제국 창업자·수성자들의 철학과 수사(修辭), 제국이 성립하기 위한 물적·사상적 토대 등을 연구해 대중과 공유해야 합니다.”

‘배부른 돼지’와 ‘위선자’

그는 제국 연구를 통해 ‘한국인의 선량한 피해자 의식’을 깨야 한다고 주문한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나만 피해를 입었다’는 피해자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취지다. 

“수학과 과학도 인문학 연구에서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철학의 핵심은 개념입니다. 이는 수학·과학과 일맥상통합니다. 현상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훈련법을 수학·과학에서 차용할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수학·과학 분야에서 먼저 쉬운 한국어로 개념과 현상을 가르치면, 이 분야 전공자 중에서 장차 철학자로 대성할 인재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철학자로서 진단하는 한국 사회 보수 및 진보의 문제점은? 

“보수는 배부른 돼지고, 진보는 위선자죠. 한국 사회에 진정한 보수 및 진보 세력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보수 세력은 너무 배가 불러 사상적으로 진화하지 못했습니다. 인재를 키우는 데도 소홀했습니다. 왜냐? 진보와의 경쟁에서 지더라도 먹고사는 데 지장 없으니까요. 사상적으로 권위주의를 탈피, 자유주의·시장주의로 진화했어야 함에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반면 진보는 시쳇말로 ‘내로남불’이 심합니다. 위선과 허위의식도 강하고요. 도덕적 우월감에 기반한 선민의식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만 옳고 나와 생각이 다르면 적으로 간주하는 오만과 독선도···.” 

진보의 대표적 위선은 뭐라고 봅니까. 

“자신들도 기득권 집단의 일부이면서, 이를 애써 부정하거나 아닌 척하는 거죠. 조선시대 양반과 닮았습니다. 지배층이자, 자신의 기득권 수호에만 관심 있는 집단이란 점에서요. 절대 다수인 서민의 삶에 관심이 없으면서도 그들을 위하는 척하죠. 자신은 절대 선, 상대방은 절대 악으로 규정하며 명분과 도덕 투쟁을 벌이는 모습도 매우 닮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보 세력을 ‘위정척사적 사대부’라고 정의합니다.” 

임건순은 “대한민국은 조선으로 퇴행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의 눈에 비친 조선은 사대모화(事大慕華)에 빠져 있던 ‘한심한’ 나라다. 주 원인은 지배 이념인 성리학에 있다. 명분에 집착하고 현실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사농공상’의 신분 질서를 고착화해 백성 차별을 당연시했다. 역동성도 없었다. 무엇보다 문을 닫고 살며 대외 환경 변화에 무지했다. 

“대한민국의 영어 국호는 ‘Korea’이지 ‘Chosun’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회 진보를 하자면서 왜 자꾸 조선시대로 돌아가려 합니까? 일례로 교사와 공무원이 최고 직업이 되는 세상을 만들고 있잖아요. 다들 공무원 되려는 세상이 되면 실험실 불은 꺼집니다. 사업가는 사업을 접습니다. 안정적인 것을 찾을 게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며 도전해야 합니다. 우리에겐 ‘고려(Korea) DNA’도 있습니다. 이를 발전시켜 나가야 해요. 고구려와 고려의 진취성과 역동성, 개방성을 살려야 합니다.” 

그는 “‘샌님의 나라가 아니라 ‘무사·상인의 나라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사·상인의 나라는 어떤 의미인가요. 

“성리학이 명분인 이(理)에 집착한다면 양명학은 현실인 기(氣) 또한 중시합니다. 성리학만 공부하면 양명학이 만든 직업관이 보이지 않습니다. 양명학은 직업에 차이를 두었을 뿐,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조선이나 오늘날의 한국이 성리학만 편식한다는 겁니다. 같은 유교권인 중국이나 일본은 그러지 않습니다. 일본 장인정신의 뿌리는 양명학에 있습니다. 중국인의 사고 체계를 이해하려면 ‘손자병법’, 병법서 혹은 제왕학서로서의 ‘노자’를 읽어야 합니다. 

호방한 양명학은 무인·상인들에게 어울립니다. 인간의 욕망을 긍정합니다. 의병을 일으키고, 기업을 창업하는 것과도 잘 맞습니다. 광복 후 한국 발전에는 무인(군부)과 상인(사업가) 역할이 컸다고 봅니다. 이들이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싸워온 결과죠.”

‘고려 DNA’ 살려야

임건순은 이승만 초대 정부부터 김대중 정부까지를 ‘고려 DNA’가 잘 반영된 시기라고 평했다. 무인과 상인을 중심으로 고도 경제성장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는 노태우 전 대통령을 “저평가된 대표적 대통령”이라고 언급했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노태우는 ‘시계(視界) 제로’ 상황에서 대한민국을 번영의 길로 이끈 훌륭한 파일럿이었습니다.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가는 가교 역할을 하며 ‘연착륙’에 성공했어요. 민주시민사회 건설에도 큰 공이 있다고 평가합니다. 노태우 정부 때 노동자 임금도 인상되고, 내수 시장도 확장됐습니다. 소득 분배도 고른 편이었죠. 이 속에서 ‘중산층 꿈’이 생겼습니다. 대외적으로 북방 정책을 추진한 것도 획기적인 일입니다. 노태우는 군인 출신이지만 유연한 사고를 가진 인물이라 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비극적 최후 때문에 과대평가되는 면이 있다고 봅니다. 참여정부 시절 불공평이 심화됐고, 세종시 등이 비효율과 자원 낭비를 불러왔습니다. ‘화합’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국민 편 가르기를 통한 득표 전략을 추구한 점도 부정적으로 생각해요.” 

노태우는 보수·진보 진영 양쪽에서 인기가 없는 인물입니다. 

“역사학자들이 몸을 사리기 때문에 노태우 재평가가 안 되고 있다고 봅니다. 군부독재의 연장선상에서 노태우를 평하기 때문이죠. 쉽게 말해 노태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반민주·독재 옹호’로 낙인찍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겠죠. ‘노태우’ 이름 석 자만 나오면 공격부터 해대는 보수 및 진보 진영의 정치권도 관점을 달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태우는 과(過)보다는 공(功)이 훨씬 더 큰 인물입니다. 언젠가는 재평가해야 하며, 재평가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동아 201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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