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孟子의 마음공부
–인간의 자존감 회복의 길–* **
박승현***
**본 논문은 2010년 정부재원(교육과학기술부 학술연구조성사업비)으로 한국연구 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NRF-2010-361-A00008)
** 본 논문은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가 “유교의 마음공부”란 주제로 주최한 학술대회 (2015년 8월11일)에서 발표한 것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주 요 어
중국철학, 유가철학 맹자, 마음공부, 성선, 본심, 자존감, 인의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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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약 문
맹자의 마음공부의 궁극적 목적은 이상적 인간의 실현, 즉 인격완성에 두고 있다고 할 것이다. 맹자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도덕가치 실현의 근거가 된다. 그것은 인간이 육체생명의 한계에 머물지 않고 도덕이라는 무한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성분이 인간의 내면에 있음 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맹자는 그러한 본성의 확보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드러내는 길임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맹자가 인간의 본성을 이 해하는 것은 이상주의의 관점에 서 있다고 할 것이다. 도덕은 바로 이상 주의에 근거할 때 비로소 진실한 의미를 드러낼 수 있다. 고자와 같이 인 간의 본성을 태어나면서 갖게 되는 자연적 성질, 즉 본능으로 이해하는 곳에서는 진정한 도덕을 말할 수가 없다. 이러한 본성의 규정은 단순히 종류를 구별하는 유적인 구별이며, 이러한 규정 속에는 인간이 다른 동물 보다 존엄하다는 것을 구분해 낼 수 없다. 고자가 현세에 존재하고 있는 구체적 인간의 생물학적 차원에서 인간의 본성의 문제에 대한 논의를 출 발하고 있다면, 맹자는 인간을 보다 이상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인간이 동 물보다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는 지점, 즉 가치적 관점에 인간의 존재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이 남과 더불어 사는 공존의 논리, 즉 도덕을 실현할 때 인간이 진정으로 인간다워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 을 위해서는 우선 자기 긍정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고, 자존감의 회복이 우선된다. 본심 회복의 마음공부는 자기긍정, 즉 자존감의 회복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1. 들어가는 말
오늘날 먹고 살기도 어렵다고들 하는 이 복잡한 시대에 우리는 왜 다시 맹자의 마음공부에 대해서 주목하게 되는가? 논자는 우리가 철학사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철학적 물음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어야 한다 고 생각한다. 2500년 전에 제기된 맹자의 철학적 물음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지금 바로 여기에서 문제의 출발점으로 삼아 재 해석 되어야 하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현재 우리의 문제 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공허한 이론의 나열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 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문제로 삼아야 하는가? 현 실에 놓여 있는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가 많이 있겠지만, 논자가 우선 주 목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떨어져버린 인간의 ‘자존감’에 대한 문제이
다. 자존감은 자존심 혹은 자부심과는 구별된다. 자존심과 자부심은 항상 다른 사람과 경쟁하고 비교하는 데서 나오는 감정이다. 치열한 경쟁사회 에 살다보니 남보다 우위에 서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우리의 뇌리에 항상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할 것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이 좀 나으면 우쭐하는 우월감이 생기고,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면 열등감이 생겨서 위축된다. )
반면 자존감은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기에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좌우되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사람은 우월감이나 열등감과는 거리가 멀다. 잘나면 잘난 대로, 못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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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대로 자신을 온전히 존중하기 때문이다. 남보다 낫다고 우쭐대지도 않고, 남보다 못하다고 위축되지도 않는다. ) 자존감의 상실은 곧 바로 우리 사회에서 심각하게 직면하고 있는 ‘생명 경시’ 현상과도 연관이 있 을 것이다. 조그만 문제에 부닥치기라도 하면, 그 문제에 직면해서 해결 의 방안을 모색하기 보다는 극단적 선택을 쉽게 해버리게 된다. )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한 ‘상대적 빈곤감’과 삶의 책임감의 상실은 바로 자신 을 진정으로 존중할 줄 아는 ‘자존감’의 상실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자존감의 회복에 관한 문제는 우리가 당면한 삶 의 공허감을 극복하는 문제와 연관을 가지고 있다할 것이다.4) 주지하다시피 현재 우리의 교육은 극심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도구나 기술을 획득하기 위한 지적인 교육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삶이란 것이 오직 높은 직위나 권력을 얻 는 사회적인 성공이나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것을 ‘행복한 삶’으로 인식 하는데 기인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 그래서 학교 교육의 방향도 생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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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에서 승리하는 삶의 방법과 도구를 어떻게 획득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6) 사회 속에서 자신의 지위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자존심과 자부심에 대한 강조는 있을 지언정, 자신을 존중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자존감’에 대한 교육의 중시 는 찾아볼 수가 없다.7)
그렇다고 인간들이 일상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생존의 노력이 중요하 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모든 사 고와 활동이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삶의 가치를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논리로 작동되는 동 물의 차원에만 머물게 하는 것이다. 인간이 분명 생물학적차원에서 동물 의 한 종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동물적 삶에 만족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동물의 차원을 넘어 ‘인간다운 삶’을 살기로 한다는 것은
바로 ‘생존’을 넘어 남과 더불어 사는 ‘공존’을 고민하기 시작하는 지점 일 것이다. 공존을 고민하는 그 지점에 ‘도덕’이라는 것도 있을 수 있다. 도덕이 자발적인 의지의 발현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을 억압하고 규제하는 기제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다움을 실현하고 인간 의 존엄성을 확보하는 최소한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8)
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 “물질적 만족이 곧 행복한 삶을 담보해줄 수 있는 것인 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별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 듯하다.
6) 학교 교육에서 ‘국어’ ‘영어’ ‘수학’만을 중시하고, ‘음악’ ‘미술’ ‘체육’ 등의 과목 을 경시하는 것이 바로 그것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른바 ‘국영수’는 인간 들이 밥 빌어먹고 살기 위한 도구를 획득하는데 유리한 과목이라고 한다면, 삶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음악’ ‘미술’ ‘체육’ 등이 필요함에도 그것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하고 지나쳐버린다.
7)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최근 ‘인성교육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그 것이 황폐화되어가는 학생들의 ‘인성’을 학교 교육을 통하여 바로 잡아보겠다는 야심찬 계획 속에 수립되었지만, 그 실효성을 의심하는 학자들이 많다. 인성교육 이 하나의 교과목으로 자리 잡고, 대학 입시에 반영되는 과정을 밟게 되면, 인성 교육도 단순한 지적인 훈련을 통한 입시과목으로 전락하게 될 위험이 많다. 인성 교육과목의 성적이 좋은 사람이 곧 좋은 인성을 갖추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과거 ‘국민윤리’ 교육처럼 국가가 인성교육의 방향을 주도함으로 인하여 인 성교육의 획일화라는 위험성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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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움’의 실현은 객관 세계를 탐구하는 자연과학에서 지식을 추구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므로 가치에 관한 일은 자연과학을 탐 구하는 지적인 탐구와 구별되어야 한다.9) 인간다움의 실현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적 사실이 아니다. 이것은 당위에 관한 일이며, 가치적 사 실이다. 가치적 사실은 실천을 통하여 실현함으로써 존재하게 되는 것이 다. 따라서 도덕실천은 바로 의지의 문제와 연관을 갖게 되는 것이다. 스 스로의 의지를 발현하여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실현함으로써 그 가치가 비로소 구체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10) 그 속에서 인간 의 존엄성을 확보될 수 있고, 그 존엄성의 바탕에는 바로 주체적 자아의
8) kant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의무의 개념을 법칙에 대한 복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모든 의무를 이행하는 그 인격에 대해서는 일종의 숭고성과 존엄성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은 어떻게 해서 그런가? ……그가 도덕적 법칙에 복종하고 있기만 한다면 그에게는 아무 숭고성 이 없다. 그러나 동시에 바로 그 법칙의 입법자로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 법 칙에 종속되는 것이며 그러는 한 숭고성이 있다. 우리는 이상에서 행위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행위의 동인은 공포도 기호도 아니며 다만 법칙에 대한 존경일 뿐이라는 사실도 지적하였다. 우리 자신의 의지가 그 준칙을 통해 가능한 보편적인 법칙의 조건아래에서 행위 하는 한, 이념 안에서 가능한 이 의지가 바로 본래적인 존경의 대상이다. 인간의 존엄은 비록 그가 바로 그 법칙에 동시에 복종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가> 보편적 입법자일 수 있다는 이 능력에 있는 것이다.”
(도덕형이상학원론(이규호역), 박영사, 1988, 95쪽)
9) ‘마땅히 무엇인가’(ought to be)와 ‘이것은 무엇인가’(What is it)는 다른 차원의 일이다. 후자는 사실의 문제이지만, 전자는 가치의 문제이다. 객관적 사실의 문제 를 다루는 것은 지적인 작업이지만, ‘인간다움’의 실현은 가치의 영역이고, 인간 의 마음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인 것이다.
10) 여기서 마땅히 해야 한다는 당위도 사실적 의미와 도덕적 의미로 구분될 수 있 다. 겨울에는 마땅히 두꺼운 옷을 입고, 여름에는 시원한 옷을 입어야 한다는 마 땅함은 사실적 의미의 마땅함이지만, 사람이 사람의 도리를 마땅히 한다는 것은 가치적 당위라고 할 수 있다. 전자는 도덕적 의미가 없지만, 후자의 도덕적 의미 를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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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립이 우선시 된다. 주체적 자아의 확립을 다른 말로 하면 바로 자존감 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존중감이 없는 곳에 인 간의 이상적 가치의 실현이란 있을 수 없다. 이상적 가치의 실현은 바로 의지의 발현이며, 그것은 바로 마음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 한 자존감을 확보하고 높이려는 수양의 길이 바로 마음공부라고 할 수 있다.
맹자의 마음공부를 우리가 다시금 주목하게 되는 것은 바로 주체성의 확립, 다시 말해 인간의 자존감의 확보에 관한 문제와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맹자철학의 궁극적 관심은 주어진 시간과 공간의 한계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의 의미를 최고로 드높일 것인가 하는 이른바 ‘삶의 책 임의식’에 두고 있다고 할 것이다. ) 인생에는 추구하는 이상이 있고, 행 동에는 ‘마땅히 해야 함’이 있음을 자각하게 되면 그 생명은 한 단계 위 로 도약할 수 있다. 이때 그 생명은 사실적 존재임과 동시에 가치의 존 재로 승화된다. 또한 인생도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무기력한 삶이 아닌 진실감을 가진 삶을 실현할 수 있다. 우리의 생명은 결정된 것이지만, 도 리어 스스로 결정하고 주제할 수 있다. 인간이 유한하다는 것은 결정된 사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스스로 결정하고 주재하는 것은 가치 의 무한이기 때문에 인생의 장엄함을 드러낼 수 있다. 인생은 결정된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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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속에서 당연의 무한 가치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맹자는 인간에 대한 긍정적 신뢰를 바탕으로 도덕적 주체성에 대한 자각과 도덕실천의 문제, 그리고 그러한 도덕실천을 통한 이상적 인간의 실현의 문제 등 이른바 도덕가치의 근원을 탐구하는 것에 더 중 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이상주의적인 관점에서 '인간으로서 참 다운 인간이 되는 길'(人之所以爲人)을 모색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위하여 맹자는 시종일 관 본심의 회복을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도덕실천의 원동력이 기 때문인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먼저 맹자가 주장하는 성선론性善論의 함의를 밝히는 것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할 것이다. 왜냐하면 맹자가 말하는 ‘성선性善’은 인간의 진실한 주체로부터 이끌어져 나오는 것이며, 이러한 진실한 주체 의 확보가 마음공부에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통하여 맹자가 주장하는 마음공부는 바로 인간의 자존감의 회복 을 통한 인간의 존엄성의 확립하는 길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2. 價値의 근원으로서의 性善
맹자를 말하게 되면 사람들은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라고 하는 '성선 설性善說'을 곧 바로 떠 올리게 되지만, 우리 주위에서 쉽게 목격되는 인 간들의 악행을 보면서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주장에 대하여 선 듯 동 의하기 어려워지고, 그리하여 그의 주장의 진의眞義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도 보기 전에 그것을 쉽게 간과해 버리는 것 같다. 중국철학에서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 혹은 악하다고 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다양한 주장을 내놓는 것은 바로 인간의 도덕적 실천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를 논의하는 것이다.12) 다시 말해 도덕실천의 가능근거를 밝히는 것은 바로 인간을 어떤 차원, 즉 현실 경험적 차원에서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이상적 차원에서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밝히는 것 이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도덕실천의 방법에 대한 문제를 낳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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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철학에서 인간의 본성을 논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인간을 현상 세계에 존재하는 자연적 사실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인간이 비록 동물의 한 종에 속하지만, 인류학적 관점 에서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생물학적 특성이란 측면에서 인간의 본성(人性)을 논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연적 사실로서의 특성을 인정하지 만, 그것을 뛰어넘어 이상적 혹은 가치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특성을 파 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지점인 도덕적 관점에서 인간의 본성(人性)을 논하는 것이다. 이것을 리기理氣의 개념으 로 나누어 보면, 기氣의 관점에서 인간의 본성의 문제를 논한 것이 고자 告子라고 한다면, 리理의 관점에서 인간의 본성의 문제를 논한 사람은 맹자孟子라고 할 수 있다.13)
리理의 관점에서 인성을 논한다는 것은 이상주의(idealism)를 말하며,
이상주의가 바탕이 될 때 비로소 진정한 도덕을 말할 수 있다. 도덕은 우리의 가치적 생명을 어떻게 확보하고 드러낼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것은 인간을 단순히 생물학적 차원에서 말하는 생명유지에 관심을 두기 보 다는 도덕적 차원에서 가치적 생명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중점을 두 고 있다.14) 맹자가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도덕주체가 모든 사람
12) 牟宗三, 心體與性體(1), 臺灣, 正中書局, 1989, 4쪽 참조
13) 牟宗三, 孟子講演錄 (1), 鵝湖月刊 347호, 7-8쪽 참조
14) 모종삼은 이상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들은 다 아래로 떨어 져 타락에 이르는 것을 불안해하는 본성이 있고, 아래로 죄에 떨어지는 것을 불 안해하는 것이 바로 도덕성이다. 죄에 대한 불안은 죄 가운데서 뛰쳐나오려는 염 원과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러한 염원과 능력을 창조적 역량이라고 말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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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선천적으로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증명할 수 있으면, 이를 근거로 덕성을 수양할 수 있도록 격려할 때 더욱 강한 실천적 효과 를 수반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15)
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당시 주류를 이루고 있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을 시도하였다. 맹자와 인 간본성의 파악에 대척점에 있었던 사람은 고자告子이다. 고자는 당시의 유행하던 인간의 본성을 생生(性者, 生也)으로 이해하는 기존의 관점을 따라 인간의 성性을 "생지위성生之謂性"16)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여기서 말하는 생자生字는 인간이 출생하면서 가지고 있는 자연적 생명을 가리 키는 것이다. 고자의 의미를 현대적인 용어로 바꾸면 "한 개체가 존재할 때 본래 가지고 있는 자연적인 본질本質을 성性이라고 한다."17)라고 정 의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적 본질은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같은 성性이란 글자를 쓰고 있다고 하더라도 고 자가 말하는 성性은 인간이 나면서 가지고 있는 개체적인 속성으로서 생 물학적인 특성, 즉 본능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고자는 식욕과 색욕 등과 같은 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물 론 인간이 태어나면서 자연적인 본능에 해당하는 특질을 모두 가지고 있 는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생지위성生之謂性'의 관점에서 인간의 본성
있고, 이로부터 인간들의 창조성과 이상성을 이해할 수 있다. 생물학적 생명의 창조성은 단지 기계적(Mechanical)일 뿐이고, 오직 정신적 측면과 도덕적 측면에 서의 창조성이 비로소 진실한 창조성(Real creativity)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정신적인 것에 속하는 것이고, 그러므로 그것은 또한 이상성(Ideality)을 대표한
다. 이상의 최후 근원은 반드시 이러한 창조성이다. 이러한 이상성이라야 비소로
‘진정한 이상성’이라고 할 수 있다.”(牟宗三, 中國哲學的特質, 學生書局, 70쪽)
15) 맹자가 일생동안 힘들여 노력한 작업은 바로 도덕실천의 가능 근거를 밝히는 것 이며, 또 이를 어떻게 실현하는가에 관한 방법론이다. (王邦雄, 曾昭旭, 楊祖漢,
맹자철학 (황갑연 역), 서광사, 2005, 20쪽 참조)
16) 告子上, "告子曰生之謂性"
17) 生之謂性에 대한 해석은 모종삼 선생의 圓善論의 7쪽의 해석을 참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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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규정하는 것도 완전히 잘못된 견해라고 말할 수는 없다. ) 다만 성性 을 본능의 측면에서 파악하게 되면 인간은 동물에 미치지 못하거나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본능은 결코 진귀하지 않으며, 맹목적이고 기계 적(Mechanical)이어서, 외부의 자극에 쉽게 이끌리고, 습심習心(habitual mind)으로 자동전환 되어져서 그 자신의 생명을 주재하고 장학할 수 없 다. ) 그것을 통해서는 도덕주체로의 인성人性을 드러낼 수 없다고 생각 하기 때문에 맹자는 고자의 주장에 반대한 것이다. ) 그래서 맹자는 여 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가 인간의 도덕적 본성과 자연적 본능을 구분하 려고 시도하게 된다.
맹자는 “입이 맛에 있어서와 눈이 색깔에 있어서와 귀가 음악에 있어 서와 코가 냄새에 있어서와 사지가 안일함에 있어서는 성性이지만 명命 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군자는 이것을 성性이라고 하지 않는다. 인仁이 부자父子 간에 있어서와 의義가 군신君臣 간에 있어서와 예禮가 손님과 주인 간에 있어서와 지智가 현자에 있어서와 성인이 천도에 있어서는 명 命이나 본성本性에 있다. 군자는 이것을 명이라 하지 않는다." )라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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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아름다운 여색을 좋아하고, 아름다운 소 리를 좋아하고, 향기로운 냄새를 좋아하고, 피로함을 싫어하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은 다 우리의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라는 오감 五感의 본래 작용, 본능에 해당한다. 이러한 것은 앞에서 말하는 인간이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는 자연적 본능에 해당한다. 맹자는 우리의 감각적 욕망을 성性이라고 하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자연적 특성으로서의 생물학적 본능에 해당하는 성性과 구별되는 도덕적道德的 관점에서 성性 을 말하려는 것을 여기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맹자는 ‘생지위성’ 즉 인간의 자연적 기질로부터 인간의 성性을 규정하는 것을 통해서는 도덕적 가치 측면에서 말하는 도덕성을 구분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들 인간이 존엄하다고 하는데, 이 존엄함이라 는 것은 단순히 자연적 기질 혹은 지능의 우월함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 니다. 인간이 도덕성을 지니고 그것을 유지하고 발휘할 때만이 인간의 존엄성은 확보되는 것이다. 고자가 생지위성生之謂性에 근거한 성性의 구 별을 개체존재의 자연적 특징에 근거하여 종류를 분류하는 ‘류類적인 구 별’이라고 한다면, 맹자는 ‘인간이 인간이 되는 것’(人之爲人)즉 인간의 존엄성의 확보차원에서 인간의 본성을 구별하는 가치적 구별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22) 생지위성生之謂性에 근거하여 인간의 본성을 규정하게 되면, 인간의 본성 자체가 선하다 악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고자가 말하 는 인성人性은 중성적中性的인 성격을 나타낸다.23) 선하고 악하게 되는
之於賢者也, 聖人之於天道也, 命也, 有性焉, 君子不謂命也.”11111"
22) ‘류부동’에서 말하는 성性은 사실명제라고 한다면, 맹자가 도덕적 측면에서 창조 적 진기를 말하는 성은 가치적 의미의 성을 가리키는 것이다.(牟宗三, 中國哲學
的特質, 63쪽)
23) 고자가 "성유기유性猶杞柳"(재료적 의미) "성유단수性猶湍水"(중성적 의미) "식색 성야食色性也"(생물학적 본능)라고 정의하는 인간의 본성을 규정하는 것에는 인 간의 내면에 도덕적 요소를 찾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선악은 외적인 환경에 의 하여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의 인성은 중성적인 성격을 띠고 있 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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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외적인 환경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좋은 환경을 만 나면 좋은 인성이 발휘될 것이고, 나쁜 환경을 만나면 나쁜 인성으로 드 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인간이 악하게 되지 않고 선하게 되 기 위해서는 후천적으로 좋은 환경과 교육을 받아서 가능해진다. 만약 좋은 환경과 교육을 받지 못한다면 선한 행위가 가능하지 않다. 선은 선 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 교육에 의하여 가능하다는 것 이다. 따라서 고자가 도덕실천의 원리는 객관적 상황에 의하여 결정된다 고 주장하면서, ‘인仁은 내적內的인 것이고, 의義는 외적인 것’(인내의외 仁內義外)라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
이러한 고자의 주장에 반대하여 맹자는 ‘인의仁義는 내재內在한다’(인
의내재仁義內在)라고 주장한다. ) ‘인의仁義’가 내재한다는 것은 칸트의 용어를 빌리면 자율自律이라고 할 것이다. ‘자율’이라는 것은 의지의 자 율을 말하는 것이다. 자율은 스스로 행동의 원칙과 방향을 세운다는 것 인데, 우리의 의지가 주의의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다른 어떤 외적인 요 인에 의하여 행위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스스로 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 칸트의 이러한 의지자유를 맹자의 용어 로 바꾸면 ‘인의내재仁義內在’라고 할 것이다. 인의내재를 결정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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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능력은 바로 우리의 ‘심성心性’에 있다. 맹자는 선한 본성(性善)에 따 라서 스스로 도덕적 의지를 결정(인내의외仁義內在)하게 된다는 것이
다.27)
고자告子가 우리의 행위를 결정하는 표준인 ‘의義’가 객관적으로 존재
한다고 하는 ‘의외義外’를 주장하는 까닭은 인간의 내면에 도덕적 근거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고자는 도덕적 행위의 기준은 객관 사실(대상)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맹자는 “인의 예지는 외부로부터 부여되어진 것이 아니고, 내 스스로 본래 가지고 있 는 것이다”28)라고 말한다. 이것은 도덕법칙(인의仁義)이 도덕 주체성(성
性)에서 나오는 것이지 대상에 의하여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맹자는 인의仁義가 내재內在인지 외재外在인지는 도덕주체성인 본성에서 나왔는가의 여부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가 ‘인의내재仁義內在’를 통하여 말하는 것은 도덕성이 ‘인의예지仁義禮智’ 의 마음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 럼 ‘재료적’ ‘중성적’ ‘생물학적 본능’으로 인성人性을 말하는 고자가 말 하는 자연적 본능의 차원에서 인성을 규정하는 것을 반대하고 가치론적 입장에서 성선性善을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맹자가 가치론적 입장에서 성선을 말했다는 것을 한 걸음 더 나아가
살펴보면, 바로 동물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인간만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 는 것, 다시 말해 인간이 인간이 되는 그 지점이 무엇인가를 찾고자 한 것이다. ‘인간다움의 실현’은 바로 ‘나’ 아닌 다른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 는 것, 즉 ‘생존’을 넘어 ‘공존’을 고민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공존을 위 해서는 먼저 자신에 대한 강한 긍정, 그리고 책임의식과 아울러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필요하다.29) 삶에 대한 책임
27) 牟宗三, 先秦儒學大義 (1), 鵝湖月刊 383호, 2007, 7쪽 참조)
28) 孟子 告子上, ‘仁義禮智, 非由外鑠我也, 我固有之也, 弗思耳矣.’
29) 증자가 말하는 “책임은 무겁고 갈 길은 멀기 때문이다. 인(仁)의 실현을 자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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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과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식이 바로 가치의식이고, 이것을 실현 시킬 원동력인 인간의 진정한 주체성을 인간의 참다운 본성이라고 하였
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내재적인 도덕의식이고, 인간이 인간으로 되는 참다운 본성이 소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맹자는 인간이 다른 짐승과 다를 수 있는 차별성을 육체적 생명의 욕구에 좌우되지 않고 자 율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주재하여 인의를 실천할 수 있는 곳에서 찾았다. 맹자는 “인간이 금수와 다른 것은 거의 드물다. 서인들은 이것을 버리 고, 군자는 이것을 보존한다. 순임금은 여러 사물의 이치에 밝으시고, 인 륜人倫에 특히 상세하였으니, 인의仁義(한 마음)에 말미암아 행한 것이지, 인의仁義(라는 외재하는 도덕규범)을 행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30)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다름(이異)은 앞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개체사 물의 특징을 구별하는 류類적인 부동함이 아니라, 가치상의 부동함을 말 한다.31) 그가 이러한 인간과 금수의 구별을 통하여 건립하려는 인성 개 념은 존재사물의 본질을 분류하는 류類개념 즉 지식의 추론 과정을 통해 서 얻어진 지식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 실천 생활 속에서 얻어지는 실천 적 개념으로 규정할 수 있다. 생활실천 상에서 인간은 도덕심의 작용을 통하여 시비를 판단하고, 선악을 분별하여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책임진 다. 그래서 맹자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식색食色 등과 같은 생리적 욕망 이나 자연적 재질적인 특성으로서 본능은 짐승과 본질적인 차이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맹자는 인간과 짐승 사이의 '미미한 차이'(기희幾希)는 바로 인간이 인의仁義함 즉 도덕성을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에 달
임무로 삼으니 무겁지 아니한가? 죽은 뒤에나 그만둘 것이니 멀지 아니한가?”(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라고 하는 것이 바로 유가 들의 공통된 삶의 책임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람다움의 실현(인仁의 실현) 이 인생의 최고의 목표이고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論語 泰伯 -7)
30) 孟子 離婁下 , "人之所以異於禽獸者幾希, 庶民去之, 君子存之. 舜明於庶物, 察於人倫, 由仁義行, 非行仁義也" 31) 牟宗三, 孟子講演錄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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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상적 인간이라고 지칭되는 순舜 임금이 순임금이 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인의仁義한 도덕성을 자각하고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 이다. 순舜 임금이 여러 사물의 이치에 밝고, 인륜人倫에 대하여 살폈다 는 것도 바로 기희幾希한 그 지점, 바로 도덕적 본성인 인성人性으로부 터 도덕심이 발동되어 나온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는 바로 “인의 仁義(한 마음으)로부터 행한 것(유인의행由仁義行)”이지 어떤 외적으로 존재하는 “인의仁義라는 외적인 도덕적 규범에 맞추어 실행하는 것이 아 님(비행인의非行仁義)”을 주장한다.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의 실현은 바로 ‘기희幾希한 그것’ 즉 인의仁義함을 존양확충存養擴充함을 통하여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속세의 일반적인 인간들은(이른바 小人) 그것 을 존양存養해야 함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자연의 생명에 따라서 흘러 가게 되어 금수와 차이가 없게 되고, 바로 이 지점에서 쉽게 불선한 행 위를 범하게 된다는 것이다.
맹자는 인의내재仁義內在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심성心性이고,
그 심성이 바로 가치의 근원을 이룬다고 보는 것이다. 선천적으로 인간 의 내면에 내재하고 있고 있는 선한 본성(성선性善)에 근거하여 도덕적 실천을 할 때, 인간은 비로소 동물과의 구분점을 확보할 수 있고, 인간의 자존감과 존엄성을 확보하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의 가치를 실 현할 수 있는 출발점을 마련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인간의 자신의 인격완성의 길을 열어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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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心善을 통한 性善을 논증 - 주체성의 확보
맹자는 성선性善이 가치실현의 근원이라고 한다면, 그 본성이 선하다
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맹자는 인성人性의 구체적인 내용을 심心을 통하여 설명하면서 사단지심四端之心을 제시한다. 성性 그 자체는 어떤 내용을 갖지 않은 객관적 원칙이기 때문에 성性이 구체적이고 진실 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바로 심心의 활동을 통하여 드러나야만 한다. 그래서 성性이 객관적 원칙이라면, 심心은 주관적(주체적)인 원칙이다.33) 심心은 주관적인(주체적인) 활동이고 동각動覺을 표시하는 것이다. '성性' 은 본체이므로 이러한 의미를 드러낼 수 없다. 만약 이러한 성性에서 활 동, 즉 각覺을 말하려면 반드시 심의 활동, 즉 심心의 각覺에서 말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성性은 객관적 형식의 측면에서 말하는 것이 고, 사단지심四端之心은 구체적 내용의 측면에서 말하는 것이다.34) 그래서 맹자는 "측은지심은 사람마다 모두 가지고 있고, 수오지심도
사람마다 모두 가지고 있고, 공경지심도 사람마다 모두 가지고 있으며, 시비지심도 사람마다 모두 가지고 있다. 측은지심은 인이고, 수오지심은 의이고, 공경지심은 예이고 시비지심은 지이다. 인의예지仁義禮智는 밖으 로부터 나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고, 나에게 고유한 것이다."35)라고 말하 는 것이다. 본성의 구체적인 내용이 바로 사단지심四端之心, 현대적인 용 어로 말하면 도덕심道德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도덕심의 발현을 통하여 선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선性善의 실현은 인간들이 근
33) 牟宗三, 心體與性體(1), 臺灣 正中書局,1989, 42쪽
34) 牟宗三, 맹자강연록 (6), 鵝湖月刊 353호, 3쪽
35) 孟子, 告子上 7孟子曰, “惻隱之心, 人皆有之, 羞惡之心, 人皆有之, 恭敬之心, 人皆有之, 是非之心, 人皆有之. 惻隱之心, 仁也, 羞惡之心, 義也, 恭敬之心, 禮也, 是非之心, 智也. 仁義禮智, 非由外鑠我也, 我固有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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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능력에 기인하는 것이다. 맹자는 인간이 가진 이러한 선천적인 능력을 양능良能이라고 부르고, 이것에서 도덕적 선이 발현되어 나온다는 것이다. 이런 능력을 구체적인 내용으로 설명하 면 사단지심의 활동이 된다. 인간이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기에 그러한 마음의 발현이 바로 우리 의 본성의 발현을 의미한다. 사실 인의예지의 사단지심은 우리에게 본래 부터 갖추어진 것으로 일단 자각하기만 하면 육체생명의 제한을 받지 않 고 실현할 수 있으며, 이 도덕심이야말로 인간의 참모습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선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보이기만 하면 반드시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선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보일 때, 도덕적 인 선은 이미 우리의 사람의 마음속에서 드러난 것이다. 선에 대한 자각 은 밖에 있는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가치를 긍정하 고 자각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만일 스스로 선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반드시 사욕에 이끌려 도덕을 위배하게 될 것이고 도덕본심 역시 사욕에 가리어 드러나지 않게 될 것이다. ) 따 라서 선한 본성이 우리에게 내재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측은지심과 같은 우리의 본심의 활동을 통하여 확인 할 수 있고, 이러한 불인지심不忍之心, 사단지심四端之心은 모두 심선心善하는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심선 心善을 통하여 성선性善을 증명한다. )
그러나 우리가 비록 증명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 맹자는 논
리적인 논증을 통하여 증명을 시도하지 않고, 다만 비유를 통한 유추의 방식인 유비적 논증을 시도한다. 대표적인 예로 맹자는 어린아이가 우물 에 빠지는 상황을 비유로 들면서, 사람들이 그러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 면 누구나 다 달려가서 아이를 구해주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즉각적으 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이 바로 ‘출척측은지심怵惕惻隱之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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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38) 다시 말해 '남의 고통을 참아 보지 못하는 마음' 즉'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이 누구에게나 다 일어난다는 것을 통하여 심선心善의 보편성을 증명한다. 이러한 본연의 마음이 그러한 순간에 직면해서 곧 바로 드러 나는 것은 사실은 양심良心 천리天理의 직접적인 드러남을 의미한다. 이 것은 지적으로 뛰어나거나 우둔한 것과 상관없이 사람이면 누구나 필연 적으로 모두 동일하게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의 활 동은 다른 불순한 목적, 다시 말해 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으려거나 향 당과 붕우들에게 어떤 명예를 위해서라거나 혹은 구하지 않았다는 비난 의 소리를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우리의 본심으로부터 자연 스럽게 발동되어져 나오는 것이다.39) 만약 다른 목적에서 비롯된 행위라 고 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도덕적 행위라고 할 수 없다. 결국 도덕실천은 어떤 이익이나 명예, 감성적 호오好惡에 의한 것이 아니라, 어떤 전제조 건이나 목적에 의지 않는 오직 측은지심의 발로이고, 남의 고통의 차마 보지 못하는 우리의 도덕심(따뜻한 마음)40)의 발로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맹자의 이런 증명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도덕성이 인간에게 내
재되어 있음을 논리적으로 혹은 경험적으로 증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논증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를 다루는 가치의 문제이기 때문이
다.41) 도덕적 영역에서 실천을 통하여 드러나고 그 실재성을 확보하는
38) 출척측은지심怵惕惻隱之心’에서 ‘출척怵惕’은 깜작 놀라서 두려워하는 마음이고, ‘측은惻隱’은 안타까워하는 마음이다.
39) 孟子, 公孫丑上 , “所以謂人皆有不忍人之心者, 今人乍見孺子將入於井, 皆有怵惕惻隱之心――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 非所以要譽於鄕黨朋友也, 非惡其聲而然
也.” 참조
40) 논자는 공자가 말하는 ‘인심仁心’, 맹자가 말하는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을 비유 적으로 ‘따뜻한 마음’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따뜻한 마음’이 자신에게로 향할 때 는 자신의 자존감을 확인하는 것이고, 밖으로 향할 때는 다른 사람과 외물에 대 한 배려와 존중의 원칙으로 드러나게 된다.
41) "應當 무엇인가"(ought to be)와 "무엇인가"(What is it)은 완전히 다른 층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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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다. 성선性善을 말하는 세계는 객관적 사실의 세계가 아니다. 이 것은 당위의 세계이다. 당위의 세계는 주체적 결단을 통하여 실천에 옮 길 때 객관적 사실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仁이 멀리 있겠 는가? 내가 인仁을 실천하고자 하면 이 인仁은 이르게 된다"42)라고 말하 고, 또한 "인을 설천하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다(위인 유기爲仁由己)"라고 말한다. 맹자는 “(내재하는 도덕성인) 인의仁義으로부 터 말미암는 것이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인의(라는 도덕규범)으로 말 미암겠는가?”라고 말한다. 이처럼 맹자가 주장하는 성선性善의 실재성은 주체적 수행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다. 스스로 결단하고 실천할 때만이 도덕적 사실은 존재하게 된다.
현세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간다는 것을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되겠 지만 오직 생존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 유일한 가치는 아니다. 일반 적으로는 더 오래 살고 싶어 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은 일반 사람들의 현실적 바람이다. 그렇지만 한번 밖에 없는 이 삶을 어떻게 의미 있게 살 것인가란 물음은 우리가 화두처럼 숙제로 남겨진 문제이다. 자신의 자존감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의義롭게 살 것 인지, 아니면 적당히 현실 과 타협하고 불의不義를 눈감아주면서 물질적 만족만을 추구하면서 살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에 항상 직면한다. 사욕에 이끌리는 자신을 극 복하고 의義로움을 객관적 존재하는 사실로 증명하는 것은 스스로 도덕 적인 결단하는 그 순간에 드러나게 된다. 맹자는 ‘생을 버리고 의를 취한 다’(사생취의舍生取義)고 말하고 있다.43) 경우에 따라서는 의義가 삶의 현실적 가치보다 더 중요한 가치로 작동할 때가 있다. 그래서 인간이 긴
전자는 가치의 문제이고, 후자는 사실의 문제이다. 牟宗三, 孟子講演錄 (4) 4쪽 참조
42) 論語, 述而 , 子曰, “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
43) 孟子, 告子上 孟子曰, “魚, 我所欲也, 熊掌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 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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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 생사의 간두竿頭에 섰을 때 가장 절실하고 확실하게 선한 본성의 실현을 보게 된다. 그 선택의 순간에 인간의 선한 본성을 증명할 수 있 는 것이다.
4. 맹자의 마음공부 - ‘잃어버린 마음’의 회복
앞에서 심선心善을 통한 성선性善의 증명을 살펴보았다. 이렇게 성선 性善을 확인하려는 것은 도덕실천의 근거가 인간의 내면에 내재하고 있 음을 밝히는 것이다. 이것을 확인하는 것은 덕성을 수양할 수 있도록 격 려할 때 더욱 강한 실천적 효과를 수반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 간의 도덕의지(도덕주체)가 인간 본성이며 본성이 인격완성의 근거임을 깨달은 후에 반드시 위대한 성현의 길을 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맹자는 이러한 인생의 이상을 “천하의 넓은 곳에 거처하고, 천하의 올바 른 위치에 서고, 천하의 위대한 도를 실천한다” 표현한다.44)
그러나 우리가 위대한 성현의 길을 말하게 되면, 곧 바로 인간의 노력
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신의 경지처럼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45) 동양에서 말하는 성현聖賢은 인간의 도덕적 실현을 통하여 실현가능한 이상적 인 간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서 성현을 실현하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바로 ‘사람이 사람다움을 실현하는 것’ 즉 인격완성을 의미이라고 할 수 있다. 인격완성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시시각각 자신의 감성적 욕구를 극복하면서 도덕심을 드러내야 한다.46) 공자가 인의 실현은 자신의 주체
44) 孟子 滕文公下-2 , “居天下之廣居, 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
45) 기독교에서 예수는 비록 인간의 형상을 가지고 있지만, 그는 인간의 노력을 통하 여 범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위에 있다. 피조물인 인간은 기도를 통하여 구원 을 요청할 수는 있지만, 인간 자신의 노력으로 신의 지위에 도달할 수 없다. 인 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하더라도 그는 신이기 때문이다.
46) 공자가 인간다움의 최고 경지인 인仁의 실현을 극기克己에서 시작하는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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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실천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47) 모든 도덕가치의 실 현은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 그래서 공자는 “인仁이 멀리 있겠는가? 내가 인을 하고자 하면 곧 인에 이를 것이다”48)라고 말하는 것이다. 네 가 하고자 하면 도덕적 사실은 그곳에서 곧 드러날 것이고, 너에게 그러 한 의지가 없으면 양심은 바로 숨어 드러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에게 문제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의지를 발현 시켜 양심을 드러나게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도덕적 필연 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마음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유가철학에서 언제가 강조하고 있는 수양공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바로 ‘마음’이다. 마음공부를 한다고 하는 것은 결국 도덕적 필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인 것이다. 우리의 의지가 외물의 유혹에 빠져들지 않고, 항상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여 우리의 선한 본성을 언 제나 드러나게 하여 도덕적 선을 실현하는 것이다. 깨어 있는 마음을 유 지한다는 것은 바로 본심의 확보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본심이 있다는 것을 승인해야할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드러나 게 하여야 한다. 본심을 잃게 되는 원인은 감성 욕망에 의한 은폐에 있
다. 마치 잡초가 마음을 꽉 막아버린 것과 같게 된다.49) 따라서 본심의 회복은 감성의 욕망으로부터 초월 여부에 달려 있다. 감성의 욕망을 초 월 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바로 자신의 도덕본심이다. 아직 완전히 없어지지 않은 양심을 자각하고 시시각각으로 성찰하여 자신의 본래 면
바로 그곳에 있다. 공자는 “자신을 이겨서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仁을 실천하는 것이다”(克己復禮爲仁, 論語 顔淵 )이라고 말한다. 극기란 자신의 부정적인 측 면을 제어하는 것이고, 복례라는 인간이 긍정적 측면에서 추구해할 인간의 이상 성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바로 인격완성의 길로 가는 것이 라고 할 수 있다.
47) 論語 顔淵 , “인仁을 실현하는 것은 자신으로 말미암지 다른 사람에게서 말미 암겠는가(爲仁由己, 而由人乎哉)”
48) 論語 述而 , “子曰: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 49) 孟子 盡心下 “今茅塞子之心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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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 안으로 증명하고 순수한 적자지심赤子之心 )을 보존해야 한다.51) 그렇다면 어디서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 것인가? 맹자가 제시하는 방법 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양심 스스로 양심의 존재를 드러내고 밝히는 것이다. 일단 양심의 존재를 자각하고, 본심이 스스로 작동하게 되면 쉽게 습관적 마음(습심習心 habitual mind)에 따라서 우리의 마음과 행동이 습관적 행동이나 이기적 방향으로 자동 전환되는 것을 막을 수가 있다. 그래서 그는 “학문의 방법은 다른 것이 없다. 단지 잃어버린 마음 을 회복할 따름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잃어버린 마음’이라는 것은 우 리의 양심을 가리킨다. 우리의 양심을 스스로 성찰하고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고 양심의 회복만을 강조하고 다른 공부는 필요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수양공부가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양심의 자각이라는 기초가 먼저 확립되어야 한 다는 것이다. 양심의 자각이 있게 되면, 인생의 방향이 바른 방향으로 나 아갈 수 있게 되고, 모든 활동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돌아보면 대부분 외물의 유혹에
이끌려서 욕심과 사욕에 따라서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양심의 자각 이 있게 되면 자신이 마주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게 되고, 그 진실감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나 본심이 우리에게 선천적으로 내재하고 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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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구하고 잘 드러나지 않게 된다. 그래서 맹자가 잃어버린 본심을 회복 하는 것이 공부의 요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시작에서 끝까지 양심의 자각은 모든 수양공부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잃어버린 마음을 회복할 것인가? 그곳에 특별한 방법
이란 없다. 다만 본심本心이 주동적으로 스스로 자신의 작용을 회복하는 해야 한다. 스스로 자기 근원으로 돌아가 물음을 제기하는 것이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차적인 것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착각한 것이 바로 모 든 잘못의 근원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착각 때문에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추구하면 얻게 되 고, 버리면 잃게 된다. 이는 추구하는 것이 (무엇을) 얻음에 도움이 되는 데, 나에게 본래 갖추어져 있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53)라고 말한다. 스스로 어떤 것을 추구하고자 의욕을 발휘하여 노력하게 되면 반드시 얻 게 되지만, 스스로 포기하면 반드시 잃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추구 하려는 대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의예지仁義禮智와 같은 도덕인 것이 다. 인의예지와 같은 자신의 도덕성이 본래 자신의 내면에 갖추어져 있 기 때문에 스스로 반성을 통하여 이것을 추구하게 되면 반드시 그것을 현실로 실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54) 다시 말해 자기 마음의 본래 모습 을 명확하게 파악하게 되면 인의예지기 진정으로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이
53) 孟子 盡心上3 “孟子曰 求則得之 舍則失之 是求有益於得也 求在我者也”
54) 맹자는 나의 안에 있는 것과 나의 밖에 있는 것을 구분한다. 나의 밖에 있는 것 (재외자在外者)은 부귀와 명예 등을 가리킨다. 부귀와 명예는 본래 후천적으로 얻어지는 우연적인 결과이고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다 른 사람이 준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회수해 갈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부귀 와 명예를 얻으려는 반드시 정당한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야 하지만, 정당한 방법 과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도 반드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외적 인 환경에 영향을 받은 우연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맹자는 “추구하는 데 정당한 방법이 있고, 얻는 데 제한이 있을 수 있다.이는 추구하는 것이 얻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는데, 나의 밖에 있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求之有道 得之有命 是求無益於得也 求在外者也” - 孟子 盡心上3 )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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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것을 알고서, 모든 행동을 양심의 본성에 따라서 행하게 될 것이고, 이것이 바로 도덕적 행위인 것이다. )
그러나 현실적으로 돌아보면 이러한 도덕적 원칙을 지키면서 살아간다 는 것은 쉽지 않다. 맹자도 그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인仁은 사람이 거 처하는 집이고, 의義는 사람이 마땅히 따라야 할 올바른 길이다. 그런데 편안한 집을 비워두고 거처하지 않으며, 마땅히 따라야 할 올바른 길을 버리고서 따르지 않으니 얼마나 슬픈가?” )라고 개탄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에게 갖추어진 마음의 진실함을 바로 보지 못한다. 때문에 스스로 마음의 본성에 따르기를 원치 않고, 또 올바른 인생의 대 로大路를 버리고, 간편한 편법을 추구하고 한다. 결국 그 자신을 공허하 고 고립무원의 지경에 빠뜨리게 된다. 이것은 스스로 인생의 비극을 자 초하는 것이고,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스스로 해치는 것이니 슬프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맹자는 “무릇 도는 큰길과 같으니, 어찌 알기 어렵겠는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구하지 않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라고 말한다. 이 말은 오직 스스로 도덕심을 자각하고, 그 도덕본성을 드러내면 곧 모 든 선을 실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모두가 지니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 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도덕적 본성을 특별한 사람에게만 갖추어져 있 는 것이 아니고, 도덕심과 본성은 모든 사람에게 선천적으로 갖추어져 있으며, 어떤 차별도 없는 것이다. 다만 차이가 나는 것은 자각하느냐 하 지 못하느냐에 따라 범인凡人과 현인賢人으로 나누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맹자는 “오로지 현자만이 이 마음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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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갖추고 있지만, 현자만이 이 마음을 상실하지 않을 수 있었다”58)라 고 말한다. 흔히들 도덕을 말하게 되면 골치아파하고, 남들에게 억지로 어떤 행동의 규범을 강요하는 것처럼 비쳐질 때가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도덕은 인간으로서의 책임의식을 자각하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더 높임과 아울러 남과 더불어 사는 공존의 도리를 실현하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확보하고, 인간의 무한한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맹자에게 있어서 도덕은 바로 외적인 규범이 아니라 본심의 자발적 표현이다. 눈앞에 벌어지는 부조리한 상황에서 자 발적으로 선을 향하여 노력하고 실천하면 개인적인 자질의 차이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어느 정도 날 수는 있겠지만, 모두 본심을 근본으로 하여 나온 것이기 때문에 동일한 가치를 소유한 도덕행위라고 할 수 있다. 따 라서 어떻게 본심을 자각하고, 보존하여 발휘하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어디서 마음공부를 시작할 것인가이다. 맹자의 말을 빌면, 대아와 소아, 대체와 소체, 천작과 인작, 의로움과 사사로운 이익 등과 같이 이해의 대립이 발생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맹자는 “배양을 잘하고 못하는 것을 살펴보면 어찌 다른 것에 있겠는가? (무엇이 중요한지 아닌지를) 자기 스스로 결정하기에 달 려 있을 뿐이다. 사람의 몸에는 귀한 것과 천한 것이 있고, 큰 것과 작은 것이 있다. 작은 것으로써 큰 것을 해쳐서도 안 되고, 천한 것으로써 귀 한 것을 해쳐서도 안 된다. 작은 것을 배양하면 소인이 되고 큰 것을 배 양하면 대인이 된다.”59) 여기서 대인이란 주지하다시피 온전한 인간상을 실현하려는 사람인 반면 소인은 정신적으로 건강치 못한 이기적, 자기중 심적 사유에 사로잡힌 인간형을 지칭하는 것이다. 만일 선악의 가치가 대립되어 있을 때, 의로움과 사사로운 이익을 분별하여 육체 생명인 소
58) 孟子 告子上10 “非獨賢者有是心也 人皆有之 賢者 能勿喪耳”
59) 孟子 告子上 “所以考其善不善者 豈有他哉 於己 取之而已矣 體有貴賤 有大小無以小害大 無以賤害貴 養其小者 爲小人 養其大者 爲大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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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부터 빠져 나와 도덕생명인 대아를 수립할 수 있다면 당당한 군자의 인격을 수립할 수 있다.
일단 대아를 수립할 수 있으면 당당한 군자의 인격을 수립할 수 있다. 일단 대체가 건립되면 사사로운 욕망과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사설邪說 등은 우리의 본심을 오염시킬 수 없다. 우리의 본심의 작용을 근거로 사 악邪惡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하고, 어두움을 비추어 모든 죄악으로 하여 금 숨을 곳이 없게 해야 한다.60) 따라서 우리가 외물의 유혹에 빠져 들 지 않고, 잘못된 행동의 원칙을 선택하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진정으로 귀중한 것이 무엇이고, 천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는 자각적인 반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대인과 소인, 대체와 소체 로 구분이 나누어진다. 이러한 대소의 구분은 실제의 수량적 구분이 아 니라 가치 의미의 대소이다. 사람이 대인이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대체 의 명령을 따라 행위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대체란 본심을 가리 킨다. 본심의 명령에 따라서 실천하면 덕성을 성취할 수 있고, 존귀한 인 격을 세울 수 있다. 만일 본심이 결정한 방향에 따르지 않고, 사욕에 사 로 잡혀 함부로 행동하고, 이기적으로 해위한다면 금수와 다를 바 없는 소인의 경지로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공자께서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잃게 되고, 나가고
들어옴이 정한 때가 없으며, 그 방향을 알 수 없는 것은 오직 사람의 마 음을 말함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61)라고 말하면서, 도덕적 행위의 관 건은 바로 본심의 조존操存(잡아서 유지함)의 수양공부의 수행 여부에 달 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수양공부가 있다면 우리의 양심은 보존되고 발현되지만, 그러한 수양공부가 없으면 곧 바로 외물의 유혹이나 인간들 의 감각적 욕구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종합하자면 수양의 요점은 외물의 유혹이 이끌려 드러나지 않고, 자각
60) 王邦雄외, 맹자철학(황갑연역), 23쪽 참조
61) 告子上 , “孔子曰, ‘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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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못하는 심의 활동을 다시 한 번 회복시키는 것에 있다. 우리의 본 심이 주동적으로 깨어 있는 마음을 유지하고, 그것을 통해 항상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 살펴보는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되 친해지지 아니하면 그 사랑함(인仁)을 반성하고, 사람을 다스리는데 다스 려지지 않으면, 그 지혜의 부족함을 반성하고, 사람을 예의로 대우하는데 응답하지 않으면 그 공경함을 반성하라. 실천을 하였는데도 (좋은 결과
를) 얻지 못하였다면 모두 자신을 돌이켜보고 반성하라! 자신을 바르게 하면 천하 사람들이 다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다.”62)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이 뜻대로 성취되지 않는다면 외적인 것 에서 그 원인을 찾지 말고 곧 바로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와 자신을 성찰 해보라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 바 ‘반구저기反求諸己’ 즉 돌이켜 자신에 구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에서 과거의 잘못이 무엇 때문에 발생하는 가를 반문해보는 것이다. 또 내 마음이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 인지를 물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고귀함을 얻고자 하는 것은 사람마다 같은 마음이다. 사람들은 자기 안에 고귀한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자각 하지 못할 뿐이다. 사람들이 고귀하다고 하는 것은 사실 고귀한 것이 아 니다”63)라고 말한다. 봉록이나 관직을 획득하거나 잃는다는 것은 사회적 직위가 달라지는 문제이지만, 인의를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의 가치와 존엄성의 상실에 관련된 문제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역할 을 다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확보하려면, 우리는 후천적인 수양공 부를 통하여 본심을 항상 보존하고 있어야 하며, 시시각각 자신을 경각 시켜 본심의 각성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한시라도 본심의 각성을 잃
62) 孟子 離婁上 , “孟子曰 愛人不親 反其仁 治人不治 反其智 禮人不答 反其敬 行有不得者 皆反求諸己 其身正而天下歸之”
63) 孟子 告子上 “孟子曰 欲貴者 人之同心也 人人 有貴於己者 弗思耳. 人之所貴者 非良貴也 趙孟之所貴 趙孟 能賤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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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되면 본심은 바로 사욕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게 되다. 본심을 경각하 면 드러나고, 놓으면 바로 숨어버린다. 본심의 자각(사思)을 인의예지라는 본심本心의 본질적 작용으로 이해한 것이다. 따라서 도덕본심이 '자각(사 思)'하는가 '자각하지 못하였는가(불사弗思)'에 따라서 본심이 활동성을 확 보할 수 있는 여부를 결정지을 뿐 아니라, 또한 인간들이 대인이 되고 소인이 되는지의 구분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대인이 되는 길도 바로 이러한 본심의 회복에 있다. 맹자는 본심에 따라 사는 삶은 현재와 미래에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세속적인 행복과 상관없이 지금, 여 기, 이 땅에서 인간이 인간으로 마땅히 지녀할 자존감과 존엄성에 어울 리는 삶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5. 나가는 말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들은 끊임없이 비교를 당하고 살아가고 있다. 참 다운 자아의 모습을 발견하기란 무척 어렵다. ‘나는 누구인가?’라고 물어 보면 대부분 남들에게 비쳐진 자아를 상정할 때가 많다. 남들에게 의하 여 설정된 삶의 지표나 허상에 자신을 맞추기 위하여 부단히 자신을 학 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선 물음의 방향을 바 꾸어야 한다. 근본적으로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와 물음을 제기하여야 한 다. 다시 말해 주체적인 물음이어야 하는 것이다.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 은 나의 삶을 어떻게 의미 있게 살아갈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바로 인 간의 이상성에 대한 물음인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에게는 이러한 이상성 에 대한 물음이 없다. 단지 현재 주어지는 감각적 만족에 행복의 기존을 맞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행복이라 기준도 자기로부터 설정된 것이 아니 라 광고나 상업적 수단에 의하여 소비를 촉진하기 위하여 강요된 행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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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은 아닌지를 반성해야 한다.
외적인 유혹에 자신을 소모하고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삶을 한번 쯤
멈출 필요가 있다. 자신의 삶의 방향이 어디인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이 것이 바로 마음공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성을 잃어버린 자아 는 언제나 불안하다. 그것에서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없다. 인간의 삶의 비극성은 시작부터 끝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주어진 시 간과 한계 속에 자신의 삶의 책임감을 절감하고,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 야 할 일’을 자각하고 실천하게 되면, 그 인생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 다. 인간은 비록 유한하지만 스스로 삶을 주재하고 당연의 가치를 실현 시킬 때 인간의 가치는 무한해 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자신 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 이 바로 자존감인 것이다. 열등감이나 우월감은 같은 맥락에 서 있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상대적 빈곤감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자존감의 회 복은 바로 이러한 상대적 빈곤감에서 탈출을 의미한다. 그것은 진정한 주체적 자아의 확립을 의미하고,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 는 것이다.
본문에서 살펴본 것처럼 맹자는 인간에 대한 긍정적 신뢰를 바탕으로
도덕적 주체성에 대한 자각과 도덕실천의 문제 그리고 이러한 도덕실천 을 통한 이상적 인간의 실현의 문제에 중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고 자가 인간을 파악하는 관점이 현세에 존재하고 있는 구체적 인간의 모습 에서 출발하고 있다면, 맹자는 인간을 보다 이상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인간이 동물보다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는 지점, 다시 말해 가치적 관점 에 인간의 존재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고자와 맹자의 철학적 방향이 갈리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맹자는 항상 도덕주체성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 을 ‘사단지심四端之心’을 통하여 설명한다. 본성의 구체적 내용적 규정을 사단지심四端之心이라고 하고, 사단지심의 형식적 규정을 성性이라는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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념을 통하여 설명한다. 맹자는 사단지심四端之心, 즉 본심은 바로 도덕심 (무한심)을 나타내고, 도덕생명의 본체가 된다. 이러한 무한심을 통해서 도덕적 창조성을 발휘될 수 있다. 인간은 이 도덕심에 의해서 어떤 외부 적 제약과도 관계없이 스스로 도덕적 선악을 판단하고 행위 방향을 결정 하고 도덕을 실천할 수 있는 주체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아가 완전한 인격 완전한 인간 즉 성인이 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그래서 맹자는 인간이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극대화 한 것이다. 맹자가 긍정한 본성本性 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인 생명의 활동을 통하여 자신의 내용을 실현하는 주체라고 할 수 있다. 그 본성의 성선은 자각심 을 통하여 실현된다. 본심의 자각활동이 없다면 본성의 선성은 드러나지 도 않고 드러날 수도 없다. 따라서 본성은 심을 떠나 존재하는 것이 아 니기 때문에 마땅히 맹자의 공부론은 자각심을 배양하는 양심養心으로부 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으로 말미암아 본심의 자각 작용을 잃게 되었으며 그것으
로 인생이 타락하게 되는 과정을 가게 되는 것인가? 그 답은 간단하다. 본심이 스스로 자각 작용을 발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외물의 유혹에 쉽 게 빠져든 것이다. 수양의 요점은 외물에 혼매昏昧되어 드러나지 않은 본심을 다시 한 번 발현시키는 것에 있다. 이러한 본심의 발현은 강한 자기 긍정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마음공부를 하는 것 도 바로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은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을 다시금 확 인하는 작업일 것이다.
우리가 맹자의 마음공부를 통하여 다시금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자존감의 회복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 고 끊임없이 ‘상대적 빈곤감’을 조장하고 있다. 아마도 자본주의 사회에 서 소비를 촉진 시키지 위한 한 방법일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소 비’를 통한 자기만족이라는 허상 속에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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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참다운 나’를 확인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무척 어렵다. 마음공부를 한 다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차적인 것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착각 한 것이 바로 모든 잘못의 근원임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다. 잃어버린 애 완견을 찾고자 하는 그 애절한 마음으로 자신의 ‘잃어버린 본심’을 찾아 가야 한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기 때문 이다. 자기 존중감이 있을 때 삶의 책임감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이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가를 스스로 다시금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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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子的心灵修炼
투 고 일 2015년 10월 26일
심 사 일 2015년 10월 29일
게재확정 2015년 11월 10일
- 寻找失去的自尊之路 -
朴勝顯 (圓光大學校)
本文以孟子 “性善论” 为切入点, 以人之自尊、尊嚴为中心, 论述孟子思想中的‘心灵’修炼的问题. 孟子系统地论述了人的本性, 明确提出了“性善”论的观点, 使人生价值能当下在各人生命之内生根, 由此而人格尊严、人类互信互助, 都有了不可动摇的基础. 告子提出「生之谓性」的著名論點。他认为,人生來的本性是一个体存在时所本具的种种特性。可是孟子反对告子生之谓性的说法,不满意对以现实的生理自然之性为性。孟子也知道人之自然欲望之为人所本有,但又认为那些并不能称为人性,可以知道孟子看人,并不是从现实的经验的观点看,而是理想的,从道德实践的观点来看人。孟子认为只有在能作道德实践处,才显示出人之所以为人的价值,若人而不行道德,则虽是人,在价值上也同于禽兽。
孟子认为既然人性本善,那么道德修养就只须切己自反,发明本心即可。所以,成仁之道关键在于个体自己的主观努力。只有意识到了自己所具有的善知良能,并有意识地去努力“求”之,才能够“得”之。而这种“得”并非获得了自己所没有的东西,它不过是将自己本身的“善端”开发光明出来了而已。可见,孟子所主张的道德追求是一种“内求”,而不是一种“外求”。所以他要求我们寻找自己失去的本心-四端之心。恢复本心的‘心灵’修炼就是自我肯定,恢复失去的自尊之感。
關鍵語 : 孟子, 性善, 心灵修炼,自尊之感, 仁義內在, 本心
박승현 e-mail: psh3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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