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30

여성관음의 탄생 한국 가부장제와 석굴암 십일면관음 김신명숙 저

여성관음의 탄생 - YES24




여성관음의 탄생
한국 가부장제와 석굴암 십일면관음
김신명숙 저 | 
이프북스(IFBOOKS) | 2019년 
 회원리뷰(2건) | 판매지수 36



출간일 2019년 11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336쪽 

책소개

관음이 품은 여신, 여신이 바꾼 관음
석굴암 십일면관음을 관통하는 신비롭고 파워풀한 한국 여성관음의 역사

“관세음보살은 남성일까?, 여성일까?, 트랜스젠더일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 도서는 처음부터 신의 성별을 문제 삼는다. 신의 성별은 세계적으로 남성적 신성이 문제로 부각되고, 신성의 젠더균형이 이슈가 되면서 큰 조명을 받고 있는 주제다. 그리고 이 책을 탄생시킨 콘텍스트이기도 하다. 저자는 그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국 여성관음의 역사를 최초로 탐색해 나간다.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목차
사진자료
여는 글. 관음은 여자? 남자? 트랜스젠더?

제1부 동아시아 여성관음과 서구 여신관음

1. 중국의 여성관음: 묘선공주 이야기
2. 일본과 한국의 여성관음
3. 서구로 간 관음: 여신관음의 등장

제2부 한국 여성관음의 역사

1. 고대 한국의 여신신앙
2. 여신신앙의 핵심적 상징 : 여근
3. 초기불교와 여신신앙의 만남
4. 여성관음의 등장과 원효
5. 출산하는 관음의 등장
6. 원효의 파계행 다시 보기
7. 신라와 백제의 여성관음상들 : 석굴암 십일면관음
8. 고려시대 이후 여성관음도 : 관음의 수염
9. 금강산 보덕굴의 보덕각시 : 사라진 성기
10. 한국관음의 본생담 [안락국태자경]과 『사씨남정기』
11. 현대 한국관음의 여성성 : 자비의 어머니

제3부 [안락국태자경]과 석굴암 : 원앙부인과 요석관음

1. 관음의 전생, 원앙부인
2. 사라수왕과 원효의 숨은 관계 찾기
3. [안락국태자경]과 석굴암 주실의 상통성
4. 석굴암의 입지와 건축구조 : 여근상징들을 품다
5. 본존불의 정체와 십일면관음의 위상
6. 주실벽 존상들과 [안락국태자경]의 인물들
7. 본존불과 원효 : 본존불은 원효불
8. 경덕왕의 아들집착과 석굴암
9. 석굴암에 담긴 주체적 불국토사상
10. 혜공왕 설화 다시 읽기 : 원효와 무열왕의 가부장제 동맹
11. [안락국태자경] 서사의 기원과 의도
12. [안락국태자경] 서사가 무가에 미친 영향

제4부 여신관음을 찾아서

1. 여성들의 삶에서 꽃핀 관음신앙
2. 동아시아 여성관음의 한계 : 유교적 관음
3. 서구여성들이 만난 관음 : 페미니스트 여신
4. 여성부처가 필요하다
5. 보덕의 잃어버린 성기 되찾기
6. 미래를 여는 새로운 신, 관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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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저 : 김신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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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성적 신성이 되살아나야 한다는 신념으로 여신학)Goddess Stdies)분야를 홀로 개척하고 있는 연구자이자 대학강사. 10대부터 영적인 문제와 세상 문제 모두에 관심을 두고 살아왔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화두로 해서 살다 보니 30대에 페미니스트가 되었고, 40대 중반에 여신을 만났다.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를 알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했고, 50대 초반에 국내 최초로 여신학(Goddess Studies) 분야의 박사논문도 썼다. 앞으로의 인생이 여신과 함께 춤추는 길이 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낸 책으로는『나쁜 여자가 성공한다』, 『소설 허난설헌』, 『김신명숙의 선택』 등이 있다. 이후 여성적 신성의 관점에서 한국 여성관음의 역사를 추적해 『여성관음의 탄생』을 출간하게 됐다. 현재 대학에서 여성학을 가르치는 한편으로 여신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2018년 5월 출간한 『여신을 찾아서』(판미동)를 통해 여신의 역사, 여신문화, 여신순례 등을 한국사회에 소개했다. 과거 강력했던 한국여신의 역사를 회복하는 일을 생의 과업으로 삼고 있다. 여신이 신앙의 중심에 있었을 때 여성 역시 존중되었고, 성과 계층 모두에서 평등한 사회가 유지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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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다른 상품






여신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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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관세음보살은 여성일까, 남성일까?

보통의 한국인들에게 관음의 성을 물으면 대개는 당혹스런 표정을 짓는다. 한국사회에서 관음의 성은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 멈칫대다가 이렇게 답하는 경우가 많다.
“여자 아니에요? 그런 것 같은데….”
어릴 적부터 가끔씩 절을 방문해온 나도 관음을 여자로 알고 있었다. 아무도 그렇게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부지불식간에 그런 인식이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불교에 대한 지식이 있다는 사람일수록 “여자”라는 답은 하지 않는다. 관음 같은 보살은 성을 초월하므로 그런 질문은 부적절하다는 태도가 가장 흔하고, 경전에 근거해 남자라고 대답하는 경우도 있다. [수월관음도] 를 예로 들며 양성적이거나 중성적인 보살이라고 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 성적 소수자들의 존재가 부각되면서 관음을 트랜스젠더라고 하는 이야기도 들린다. 원래 남성이었다가 중국에서 여성으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성적 정체성이 분명한 다른 신이나 신격들과 달리 관음의 성은 이처럼 문제적이다. 모호하고 미끄러지며 경계를 가로지른다. 남성인가 하면 여성이고 중성적인가 하면 다젠더 multi -gender 적이다.
그런데 관음이 보여주는 이 특유의 성격에 ‘신의 성별’이라는 고질적 난제에 대한 해답이 있을 수 있다. 이 책이 관음의 여성화 과정을 탐구하며 젠더문제에 주목하는 이유다.
--- 「여는 글 ‘관음은 여자? 남자? 트랜스젠더?’」중에서

『삼국유사』에서 관음보살이 여성으로 처음 등장하는 시기는 문무왕대다. 낙산이대성관음정취조신 조와 광덕엄장 조에 등장하는 관음들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설화 모두에 원효가 등장한다. 먼저 낙산이대성관음정취조신 조에 실린 내용을 보자.
그 뒤(의상대사가 낙산 해변의 굴에서 관음진신을 친견하고 낙산사를 창건한 후)에 원효법사가 와서 예를 올리려고 했다. 처음에 남쪽 교외에 이르렀는 데, 논 가운데서 흰옷을 입은 여자가 벼를 베고 있었다. 법사가 희롱삼아 그벼를 달라고 하자, 여자도 희롱조로 벼가 영글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법사가 또 가다가 다리 밑에 이르자 한 여인이 월경수건을 빨고 있었다. 법사가 물을 달라고 청하자 여인은 그 더러운 물을 떠서 바쳤다. 법사는 그 물을 엎질러버 리고 다시 냇물을 떠서 마셨다. 이때 들 가운데 서 있는 소나무 위에서 파랑새(靑鳥)한 마리가 말했다.

“불성을 깨닫지 못한 중!”

그리고는 홀연히 숨어서 보이지 않았고, 다만 그 소나무 아래에 신발 한 짝이 떨어져 있었다. 법사가 절에 이르러 보니 관음보살상의 자리 밑에 또 아까 보았던 신발 한 짝이 있었다. 그제야 원효법사는 전에 만났던 성녀 聖女가 관음의 진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소나무를 관음송 觀音松이라고 했다. 법사가 신성한 굴로 들어가 다시 관음의 진신을 보려고 했지만 풍랑이 크게 일어나 들어가지 못하고 떠났다.
간단히 말하자면 원효가 여성으로 나타난 관음을 두 번이나 만났지만 알아보지 못했고, 결국 의상이 친견했던 관음진신을 보기는 커녕 굴에도 들어가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관음보살의 놀라운 영험을 말해주는 전형적인 관음설화와는 다른 종류다.
그런 점에서 이 설화는 매우 독특할 뿐 아니라 내용 역시 불교적 관점으로는 이해가 쉽지 않다. 한국 불교사의 최고봉으로 존숭되는 원효를 조롱 내지 비판하는 내용부터가 그렇다.
위 설화의 이해가 쉽지 않은 이유는 여신신앙의 코드로 서사가 직조돼 있기 때문이다. 이 설화의 출처는 고본 古本이라고 돼 있는데 정체가 불분명하지만 정통 불교전적이 아닐 것이다.
--- 「제2부 4장. 여성관음의 등장과 원효 중에서」중에서

사라수왕처럼 본존불 역시 원효와 관련돼 있을까?

이 새로운 질문을 갖고 다시 석굴암을 들여다 보면 놀랍게도 여러 연관성들이 보인다.
무엇보다 의미심장한 것은 본존불이 무덤 형태의 석굴에 좌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서 설명했듯 석굴암은 횡혈식 석실분 형태의 감실에 봉토를 쌓아 무덤처럼 만들어 놓은 건축물이다.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무덤 속에서 깨달음을 얻은 원효를 연상시킨다. 게다가 본존불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무덤 속에서 성도하는 순간을 보여주는 것이다.
원효가 무덤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실은 『송고승전』 의상전에 전한다.(---)
석굴암이 원효의 오도처인 무덤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추정은 ??송고승전??에 실린 원효의 게송과도 공명한다.
마음이 일어나는 까닭에 갖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면 감(龕)과 분(墳)이 둘이 아니네. 삼계가 오직 마음이 지은 것이며, 모든 현상은 의식의 전변이라. 마음 밖에 법이 없는데 어찌 달리 구하겠는가?"

“감과 분이 둘이 아니”라는 위 구절은 신성한 감실이면서 무덤이기도 한 석굴암과 그대로 통한다. 감은 원효가 머물렀던 토감, 즉 토굴을 지시하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불감(佛龕), 즉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공간도 의미할 것이다. 감분불이(龕墳不二)는 곧 원효가 주창했던 진속불이(眞俗不二)와 통하기 때문이다. 원효는 게송을 통해 부처를 모신 감실과 무덤이 둘이 아님을 노래했고, 석굴암을 만든 사람들은 그것을 구상화한 것같다.
--- 「제3부 7장. 본존불과 원효: 본존불은 원효불」중에서

원효와 김춘추는 신라사회에 유교적 부계혈통을 새롭게 세우는 데 서로 합의했던 것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원효에게 관리를 보내 요석궁으로 인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교적 부계혈통은 남성계보를 중심으로 하는 승가와도 어긋나지 않는다. 역시 남성중심적인 불교의 질서를 세우려 했던 원효와 태종무열왕은 젠더권력 관계의 변화라는 과업에서 이해를 공유했던 것같다. 당시까지도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을 여신신앙과 여성권력에 대해 둘은 동맹관계였을 것이다.

그런데 유교적 부계혈통은 당시 신라사회에 익숙한 문화가 아니었다.
왕실부터가 그랬다. 알다시피 바로 전의 두 왕이 여성이었다. 원칙적으로 여왕은 부계혈통중심 사상에서는 나올 수 없는 모순적 존재다. 때문에 원효-김춘추 동맹이 추구한 부계혈통의 확립은 신라사회에 새로운 충격이었을 것이다. “자루 없는 도끼” 노래가 오늘날까지 전해진 이유다. 그 노래는 원효 개인의 기이한 행각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증언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 「제3부 10장. 혜공왕 설화 다시 읽기; 원효와 무열왕의 가부장제 동맹」중에서

원효와 요석공주의 결합에는 신라 여신전통을 모르면 보이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도 숨겨져 있다. 요석공주는 왕실여사제 전통에 속한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왕실여사제였다면 그녀를 아내로 맞는 일은 불교와 여신신앙의 융섭을 의미한다. 물론 평등한 융섭이 아니라 여신신앙이 불교에 복속되는 방식이다. 요석공주와 원효의 만남이 원효와 무열왕의 가부장제적 공모라는 맥락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만약 요석공주가 여사제였다면 원효로서는 그녀만큼 효과적인 선택이 없었을 것이다. 당시까지도 상당한 세력으로 존재했던 토착신앙을 그녀와의 결혼을 통해 포섭하고 순치시킬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효가 무애박을 들고 다니며 대중포교에 나선 것이 “설총을 낳은 후”라는 ??삼국유사??의 기록은 의미가 크다.
원효와 요석공주의 결합은 오래된 여신이 새롭게 등장한 남신으로 대체되는 과도기에 여신이 남신의 아내로 포섭되곤 했던 여신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홀로 숭배됐던 중국의 창조여신 여와가 복희의 아내로 격하되고, 가나안의 여신 아세라가 야훼의 아내로 짝지워졌던 경우같은 것들이다.

--- 「제2부 6장. 원효의 파계행 다시 보기」중에서

서구에서 등장한 여신관음이 현대여성들, 더 넓게는 현대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바우처가 여신관음에 대해 밝힌 아래의 견해부터 보자.
여성으로 태어난 우리는 여성 몸을 한 영적 안내자를 보고 싶어 한다. 불교는 깨달음이 젠더를 초월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물론 누구든 사려 깊은 사람에게는 합당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아직 깨닫지 못한 우리들은 일상생활과 영적 공동체에서 작동하는 젠더 차이와 불평등을 겪고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들이 여성의 몸을 하고 있는 걸 너무나 보고 싶다. 만약 내가 부처의 경지에 오르고 싶다면, 내가 여성의 몸으로 매일 경험하는 의식과 반응들을 같이 나누는 부처의 모델을 갖는 것이 나의 발전을 위해 얼마나 더 좋을 것인가.
내가 남자라 하더라도 여성부처를 보면 안도할 것이다. 보다 통합적인 불교의 길을 보게 돼서 감사할 것이다.

바우처가 말한대로 불교에서는 깨달음 혹은 불성이 젠더와 무관하다고 가르친다. 성별 자체가 근본적으로 실체 없이 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교에서 성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천녀와 사리불의 대화에 나오듯 성별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즉 색즉시공만 있는 게 아니라 공즉시색도 있다. 없음(공)과 있음(연기)이 공존하며 움직이는 것이다.

젠더가 인정되지 않았다면 불교 가부장제와 성차별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가르침과 달리 불보살의 몸은 남성으로 표상된다. 정토 역시 남성들의 땅이다.
--- 「제4부 4장. 여성부처가 필요하다」중에서

접어보기

출판사 리뷰

제1부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관음의 성에 대해 소개한다. 인도에서 남성이었던 관음은 중국에 들어와 여성으로 변했다. 한국과 일본의 경우도 유사하다. 그런데 동아시아에서 여성화된 관음은 미국으로 건너가 20세기 후반에 또 한번의 변화를 겪었다. 그들의 문화적 변동 속에서 여신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 여신관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여성적 관음과 질적으로 다르다. 이 흥미로운 역사적 변전과정들이 소개돼 있다.

제2부에서는 한국 여성관음의 역사를 불교 전래 이후 현재까지 통시적으로 고찰한다. 관음이 여성화된 저변에는 여신이 중심에 있던 토착신앙이 자리하므로 우선 고대 한국의 여신신앙에 대해 소개했다. 여신신앙의 내용과 상징들, 중요한 여신들과 여사제 전통 등을 개괄적으로 설명했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2018년 5월 출간된 저자의 책 『여신을 찾아서』에 담겨 있다). 한국에서 관음이 여성화되기 시작한 시기는 불교전래 초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에는 문무왕 대에 처음 나타난다. 그런데 신라의 관음은 여성관음이라고 할 정도로 여성화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토착신앙의 여신들이 갖는 특성을 공유한다. 신라의 관음상들 중 가장 여성적인 것은 여성미의 극치라는 평가를 받는 석굴암 십일면관음상이다.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여성관음은 금강산 보덕굴의 보덕각시다. 그녀와 관련된 설화를 소개하고 분석했다. 그리고 양성적이거나 남성적인 관음으로 알려진 수월관음도가 실질적으로는 여성적 신성을 담고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조선시대의 여성관음은 [안락국태자경]과 그것의 이본인 소설 『안락국전』 그리고 소설 『사씨남정기』 등을 통해 설명했다.

한국관음의 전생인물인 [안락국태자경]의 원앙부인.
그녀의 정체를 추적하다 만난 석굴암
본존불과 십일면관음의 모델이 원효와 요석공주일 가능성을 최초로 제기한 문제작!

제3부에서는 한국관음의 유일한 본생담인 [안락국태자경]을 집중탐구하고 석굴암과의 관련성을 밝혔다. 1장과 2장에서는 [안락국태자경]의 내용을 소개 분석하고, 주인공 중 하나인 사라수왕을 원효와 비교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사라수는 원효의 상징 중 하나다. 사라수왕의 가족구성과 원효의 가족구성도 같다. 또 [안락국태자경]은 국내창작물이고 이후 유례없이 다양한 장르로 파생되며 엄청난 대중적 영향력을 미쳤다. 한국문화에서 원효가 차지했던 대중적 영향력과 유사하다.

이상의 사실들을 실마리로 사라수왕이 원효를 모델로 창작된 인물일 가능성을 원효의 행적을 추적하며 탐구했다. 그 결과 여러 근거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정도 추론 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이어서 석굴암을 들여다 보았다. 왜냐하면 놀랍게도 [안락국태자경]에 전생이 소개된 불보살·나한들과 석굴암에 모셔진 불보살·나한상들이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석굴암에 봉안된 존상들의 구성이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 찾아내지 못했다. 그만큼 독창적인 구성이고 배치다. 그런데 [안락국태자경]과 석굴암은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과 같다.

그렇다면 석굴암의 본존불도 원효와 관련돼 있을까? 이 점을 밝힐 수 있다면 사라수왕이 원효를 모델로 창작된 인물이라는 추정이 큰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본존불이 원효불임을 추정해낼 수 있다면 십일면관음은 요석공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석굴암은 가만히 들여다 보면 본존불이 원효불일 가능성을 여러가지로 보여준다.

7장에서 그 근거를 다섯가지로 제시했다. 그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석굴암이 무덤형태로 지어졌다는 사실이다. 석굴암은 횡혈식석실분 형태 위에 봉토를 덮어 전체적으로 커다란 무덤처럼 보인다. 현재는 입구에 목조건축물을 세워 놓아 느끼기 힘들지만 조선 후기 석굴암을 방문한 사람들은 석굴암을 소릉(小陵)이라고 표현했다.그런데 무덤같은 굴 속에 들어앉은 본존불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을 때의 모습인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무덤 속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원효를 연상시킨다. 특히 원효는 신라인들에게 석가모니같은 존재로 숭앙되었다. 그는 사라수(석가가 열반에 들 때 사방에 있었던 나무) 아래서 태어났고 사라사라는 절을 지었다. 신라의 석가로 여겨진 원효가 무덤을 본뜬 석굴암에 본존불로 봉안된 것같다(승려이자 거사였던 원효는 [안락국태자경]에서 사라수왕(아미타불의 전생)과 광유성인(석가불의 전생) 두 인물로 나뉘어 형상화되었는데, 석굴암 본존불 역시 석가불과 아미타불의 성격을 함께 갖추고 있다).

지면상 생략하지만 나머지 네 가지 근거들도 본존불이 원효를 표상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설득력 있는 것들이다. 그 중 하나는 석굴암 주실에 서 있는 돌기둥이다. 이는 원효의 “자루 없는 도끼” 노래에 나오는 “하늘 바칠 기둥”(아들을 의미)으로 해석된다. 중국인들은 낙양의 용문석굴 봉선사에 모셔진 본존불(7세기 후반)이 당의 무측천을 모델로 했다고 전한다. 또 일본 법륭사의 유명한 구세관음상도 백제 위덕왕이 아버지인 성왕을 그리워 해 그 모습을 본 따 조성한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본존불이 원효불일 가능성에 힘을 주는 사례들이다.

8장에서는 석굴암이 무엇보다 아들을 얻으려는 경덕왕의 기원에 의해 건립되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이미 학계 일부에서 나온 주장인데 추론을 훨씬 더 구체화했다. 설총의 아버지인 원효는 아들생산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가진 인물이다. 불교가 아니라 민중문화의 차원에서 그렇다. 그 흔적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경덕왕 당시 원효는 가부장제 부계혈통의 상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외 주체적인 신라불교를 선언하기 위해 신라의 부처인 원효불을 봉안한 것이라는 추정도 제기했다. 석가모니만 보리수 아래서 깨달은 것이 아니라 원효도 무덤 안에서 깨달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석굴암의 건립목적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삼국유사』의 기록과 다르다. 10장에서는 그렇다면 왜 김대성이 석굴암을 창건했다는 설화가 만들어져 전하게 됐는지를 당시 신라의 정치적 격변상황을 분석하며 설명한다. 그리고 11장에서는 [안락국태자경] 서사가 석굴암을 근거로 언제쯤 창작됐을지 추정해 보고, 그 이야기가 대중에 유포되면서 한국의 종교문화 전반에 미친 중대한 영향을 살펴본다. 그것은 여성적 신성에서 남성적 신성으로의 전환이라는 패러다임적 변화였다.

[안락국태자경]과 석굴암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에 있다. 둘은 한국문화의 고유성과 독창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데서도 공통적이다. [안락국태자경]은 다른 나라에서 유사작품이나 모본이 될 만한 것을 찾을 수 없고. 석굴암 또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독특한 석굴사원이다. 또 불교미술사에서 석굴암 십일면관음이 한국 여성관음의 정점을 보여준다면, [안락국태자경]의 원앙부인은 불교설화사에서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4부에서는 한국 여성관음의 미래적 가치를 논했다. 불교 뿐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의 성평등한 변화를 위해 그녀에게 기대되는 역할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역할수행을 위해 단순히 여성인 관음에 그치는 게 아니라 페미니즘적 맥락의 “여신관음”으로 거듭 태어날 필요를 주장했다.

여성적 신성의 회복을 위한 ‘여성관음’이라는 화두.
그 화두가 밝혀낸 석굴암의 정체와 한국 가부장제의 뿌리.

이상 소개했듯 이 책에는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새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잊혀졌던 토착 여신신앙을 복구하고, 그 관점에서 역사를 새롭게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석굴암의 정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물론 한국 가부장제가 언제 누구에 의해 본격적으로 추동됐는지 중요한 계기를 밝혀낼 수 있었다.

저자가 이 흥미로운 역사탐구 과정에 동원한 자료들은 광범위하고 풍부하다. 국내외 관음신앙 관련 불교경전들과 저서 및 논문들, 젠더 관점의 불교저작들,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의 사서와 고려·조선의 관련문헌들, 설화와 민속, 무속신화들, 소설들, 원효와 석굴암과 신라사 관련 논문들, 신문기사와 인터넷 자료 등등….

오랜 시간 각고의 노력이 가능했던 것은 여성적 신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저자의 신념 덕이었다. 책의 핵심적 목소리는 그러므로 “왜 우리가 여성적 신성을 필요로 하는지” 설명하는 제4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현재 서구에서 부상 중인 여신운동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관음을 한국의 여신으로 재인식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한국여신의 계보에서 관음이 차지하는 위상은 매우 특별하다. 불교가 한국의 지배적 종교가 되면서 토착여신들이 그녀에게 흡수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는 한국여신들의 총화라고도 할 수 있다. 관음은 또 심오하고 풍부한 불교 사상체계와 다양한 의례들을 품고 있다. 지역적으로도 동아시아 전역에서 가장 사랑받고 숭배되는 여신일 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영향력을 넓혀가는 중이다.

이러한 관음의 특성과 현실은 한국사회가 필요로 하는 여신으로서 그녀를 다시 보게 만든다. 현대 한국여성들 혹은 한국사회와 관음의 관계를 재설정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불교의 보살이라는 경계를 넘어 한국의 여신으로서 관음을 새롭게 상상해 보았으면 한다.


[읽는여자2기] 여성 관음의 탄생 (김신명숙,이프북스)을 읽고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c*****0 | 2020-08-03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12815965


읽는 여자 2기. 보내주시는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앞의 2권의 무게감이 상당했던지라 이 책의 제목만을 보고서 "몰카"를 다룬 것이 아닐까 했습니다.

(내안의 '관음증'에 대해 반성해봅니다.)






그런데 책의 내용은 전혀 다른 내용이었어요. 부제가 '한국 가부장제와 석굴암 십일면관음'입니다.

부제를 읽고 제목을 다시 보면 전혀 다른 느낌이!






표지를 넘겨 작가 소개글을 보면 이야기의 전개가 명확하게 그려집니다.

2018년 5월에 출간된 전작이 "여신을 찾아서". 여신의 역사, 여신문화, 여신 순례 등을 소개한 책이라고 하네요.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전작에 대한 흥미가 동할 듯.






'관음보살'에 대한 학술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여성의 역할과 이미지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여성부처가 필요한 이유'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밝히면서 끝이 납니다.






읽다보니 궁금해진 부분이 결국 '여성부처의 존재'였거든요.



언제부터 '관음보살'을 떠올리면 자애로운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생겼을까요?

이유는 무엇일까요?






종교적, 학술적, 역사적 기원을 짚어봅니다. 생각보다 짧은 역사인 듯.






자극적인 사건을 둘러싼 실시간 대화가 이슈몰이로는 제격일지 몰라도 그 근원을 파헤쳐가는 글쓰기의 생명력에는

못 미치는 것 같습니다.




법에 대한 이해의 처음이 제정목적과 연혁이듯. 이념 혹은 생각의 근원을 찾아가다보면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지는 듯.

그래서 뭔가에 대해 설명하고자 하면 공부가 필요한 것 같아요.






감정에 대한 호소 역시 하나의 방법이지만, 이론적인 접근 역시 필요합니다.






이프북스에서 좋은 책을 많이 내시는데, 좀 더 많은 분들이 접했으면 합니다.

참고로 이 책. 생각보다 사진 자료가 많고, 상식에서 접근하는 부분도 많아서 중간중간 흥미가 동하는 부분을 발췌해서 읽어도 잘 익힌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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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관음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n*****e | 2020-02-01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12047724





2019년 세계가 100명의 마을이라면, 33명이 기독교를 믿고 19명이 무슬림이며 13명은 힌두교 6명은 불교를 자신의 종교로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100명의 마을이라면, 기독교인이 29명(개신교 18명, 천주교 11명)이고 불교인은 23명이고 종교가 없는 사람은 47명이나 된다.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인이 없다면 종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인은 누구인가? 수많은 종교인은 어떻게 다르며 이 순간 어디에 있는가? 통계에 선택지로 등장하는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등의 분류는 어떠한 기준인가? 셀 수 없는 신흥종교는 누구의 발명품인가



내 부모의 종교는 유교 가부장제였다. 아들을 낳기 위해서 딸을 다섯이나 낳았으며,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아들을 낳아 제사를 지내야 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의 나는 어떠한가? 내 종교는 책에서 영화나 드라마로 바뀌었다. 다음은 유튜브나 넷플릭스일까? 아이들은 스마트폰인 것 같다.






신화와 과학은 종교를 해석하는 관점을 변화시켰다. 누구든 아는 만큼 의문을 갖게 됐고 나름의 답을 찾아가고 있다. 아주 오래전 존재했던 여신이 다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이유다. 가부장제가 감췄던 여성이, 여신이 재조명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부족한 자료는 상상력이 대신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가 어머니의 자궁에서 왔다는 사실은 변함없을 테니까 말이다.



관음은 여성? 남성? 트랜스젠더? 라는 의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동아시아의 여성관음과 서구에서 등장한 여신관음을 통해서 한국의 관음신앙을 다시 살펴본다. 특히 관음이 한국에 들어온 후 여성화된 역사적 맥락과 과정을 중점적으로 탐구하며 석굴암 건축 당시 신라의 종교문화적, 정치적 상황을 젠더사적 관점에서 분석한 역사여행을 선물한다.



한국관음의 여성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인용1_신성하고 강력한 힘을 가진 월경피, 그리고 동지팥죽

p.110

여신신앙에서 월경피는 생명을 탄생시키는 신성한 것이다. 고인돌 유구에서 흔히 발견되는 붉은 흙은 죽은 이를 재생시킨다고 믿어진 월경피를 모방한 것이다. 임신 중에는 월경이 그치므로 고대인들은 그 피가 생명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p.111

생명을 탄생시키는 월경피는 그 신성한 힘으로 병을 치료하거나 액을 막아주는 효험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18세기 초 수년간 부산에 머물렀던 한 일본인은 『유년공부』라는 설화집을 쓰면서 한국인들이 월경피를 약처럼 복용한다고 기록했다.



월경피를 이용한 액막이 주술은 전라남도 진도군에서 마을 여성들이 중심이 돼 벌였던 도깨비굿에서 나타난다. 굿이 시작되면 맨 앞에 선 인솔자가 월경피가 묻은 속곳을 긴 간대에 걸고 휘저으며 마을의 집들을 돌아다녔다. 그것이 도깨비를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새알심이 들어있는 붉은 팥죽은 월경피와 알을 표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동지팥죽이 액막이 효능이 있다고 믿어졌을 것이다. 팥죽과 관련해 전승돼 온 민담에서는 붉은 팥물이 말이나 염소같은 동물의 피 대용으로 쓰였다고 한다. 원래 월경피를 의미하던 것이 훗날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인용2_여신은 섹슈얼리티와 생명탄생을 축하한다

p.119

세계적으로 여신신앙 전통들에서 보이는 공통적 가치관은 생명탄생에 대한 축하다. 이는 현세를 비하하며 죽음 이후 피안의 세계를 신앙의 핵심에 놓고, 탄생보다 죽음에 더 관심을 두는 가부장제 종교들과 확실히 다른 특성이다.



여신신앙에서는 모든 생명체가 죽은 후 다른 세계로 가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여겼다. 자연의 법칙 그대로다. 또 현세의 실존적 상황을 죄나 고통의 시각에서 보는 기독교나 불교와 달리 일상 속 현장을 아름답고 성스럽게 여겼다. 그러니 세상에 태어나는 게 축복이 되는 것이다.



생명이 탄생하려면 성행위가 전제돼야 하므로 섹슈얼리티도 신성한 것으로 찬양됐다. 수메르의 여신 이난나는 <이난나와 두무지의 구애>로 알려진 신화에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조금도 거리낌 없이 과시한다. 신랑인 두무지와 함께 성적 쾌락과 그 결실에 대해 노래하는 것이다.



성행위를 묘사하거나 과장된 성기를 노출시킨 신라의 토우들도 같은 맥락에 있다. 여신신앙에서 섹슈얼리티는 인간의 육욕적인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자연과 우주를 발행, 유지시키는 창조력이자 생산력으로 확장된다



인용3_여성 몸에 대한 혐오와 기피

p.126

금욕과 출가를 지향하는 불교에서 섹슈얼리티는 장애이자 부정한 것이다. 태어나는 것도 고통이니 월경과 출산 또한 마찬가지다. 주기적으로 배출되는 월경피는 오염과 부정함의 징표일 뿐 아니라 존재의 무상함을 상기시키는 기표였다. 이러한 인식은 자연스럽게 여성의 몸에 대한 혐오와 기피로 이어진다.



여성의 몸, 특히 그 몸에서 나오는 피에 대한 혐오가 얼마나 극심했는지는 12세기경 중국에서 만들어진 <혈분경>이 말해준다. 여자들은 월경과 출산 때 흘린 피로 세상을 오염시켰으므로 죽은 후 피 연못이 있는 지옥에 떨어져 매일 세 번씩 피를 마셔야 한다는 내용이다.



불교는 여성의 몸 뿐 아니라 몸 자체에 대해 부정적이다. 덧없이 늙어가고, 죽으면 썩기 때문이다. 몸은 더러운 것이어서 몸의 부정관이 중요한 수행법으로 쓰일 정도다. 그런데 수행론이 남성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특히 여성의 몸이 더러운 것, 수행에 방해가 되는 혐오스런 것으로 부각되었다.



남성 수행자들은 "여성의 몸은 더럽다"는 관찰 및 인식을 중요한 수행법 중 하나로 활용했다. 그들에게 섹슈얼리티는 자신들을 중생의 상태에 매이게 하고 가족의 계보에 묶는 위험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가 웬만해선 제어하기 힘든 치명적 유혹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석가모니가 성도하기 전 마왕의 아름다운 세 딸이 나타나 유혹하는 데서 알 수 있듯, 여성의 몸은 늘 수행자들이 걸려 넘어지는 최고의 장애물이자 육욕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인식이 불교의 여성혐오와 고질적인 성차별로 이어졌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인용4_남성적 관음도상, 여성관음이 주류인 문헌자료

p.162

고려에서 조선까지 관음의 도상이나 조각상들은 대개 남성적 형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관음신앙과 관련된 문헌자료와 구전설화는 여성관음이 주류였음을 말해준다. 표현된 형상과 실제 신앙현실 사이에 큰 괴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불일치는 사찰불교와 민간불교의 경계를 따라 생산됐을 것이다.



민중이 아무리 관음을 여성으로 인식해도, 불보살상의 생산주체인 사찰에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여성관음상이 만들어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집요하게 붙어있는 '관음의 수염'은 그러한 사찰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한국역사에서 여성관음 도상이나 조각상이 드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들이 있다.

선불교를 지목하는 것도 그렇다. 선불교는 깨달음을 남성성과 관련시키고, 남성조사들의 계보를 법맥이라 하여 중심에 두는 등 남성중심적인 성격이 강하다. 이는 조선시대의 강력했던 유교 가부장제와 만나 더 강화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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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아등바등 여성을 낮춰보려는 역사의 흐름을 알게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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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꺄*르 | 2020-07-28


평점5점
여성주의의 대상을 가부장제라고 놓고 산 지난 날이 새삼 부끄럽게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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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b*******n | 2020-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