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6

문광스님, 생각 끊어진 마음자리로 가야 : 조현이만난사람 : 휴심정 : 뉴스 : 한겨레

문광스님, 생각 끊어진 마음자리로 가야 : 조현이만난사람 : 휴심정 : 뉴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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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스님, 생각 끊어진 마음자리로 가야

등록 :2022-03-15
조현 기자 사진
[마음건강법을 인생멘토에게 묻다]

(9) 탄허학 박사 1호 문광 스님―상


탄허학 박사 1호인 문광 스님. 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접촉은 줄고, 접속은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해 활동량과 대면 접촉이 줄면서 활동 반경은 줄고, 불안과 우울 지수는 높아졌다. ‘코로나19’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 못지않게 지나친 불안과 우울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것도 중요한 때다. 똑같은 환경이지만 평안하고 행복한 일상을 누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 지혜를 찾아 <한겨레>가 플라톤아카데미와 공동으로 ‘마음건강법을 인생멘토에게 묻다’ 시리즈를 4주 간격으로 10회에 걸쳐 진행한다. 아홉번째 멘토는 동국대 불교학술원 연구초빙교수인 문광(51) 스님이다.








밤이 깊어갈수록 새벽은 가까워진다. ‘코로나19’의 극성도 새벽의 징조일 수 있다. 한민족이 수많은 고난을 이겨내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듯이. 잠자는 나무와 꽃들을 깨우는 꽃샘추위와 함께 비가 촉촉하게 내린 14일 서울 남산 한옥마을에서 문광 스님을 만났다. 자신이 근무하는 동국대 불교학술원에서 달려 나온 문광 스님이 봄바람처럼 맞는다.

그는 연세대 중어중문학과 학·석사, 동국대 선학과와 불교학과 석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를 거친 불교학자이자 국학자이다. 통광 스님으로부터 전강(傳講)을 받아 경허-한암-탄허-통광으로 이어지는 전통 강맥을 이었다. 조계종 종정이었던 혜암 스님이 열반하기 전 마지막 시봉자였던 그는 참선 수행에 매진한 수좌이기도 하다.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설법하는 문광 스님. 문광 스님 제공

그뿐이 아니다.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퇴계학파인 유학자 부친에게서 어려서부터 한문을 익힌 그는 또래에서 드물게 일찍이 유(학)·불·도(학)의 경전들을 쉽게 섭렵할 수 있었다. 그가 유·불·도뿐 아니라 주역·정역·성경까지 통달했던 탄허(1913~1983) 스님을 사숙(私淑·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으로 그 사람을 본받아서 도나 학문을 닦음)한 것은 그 박람강기(博覽强記·동서고금의 책을 널리 읽고 그 내용을 잘 기억함)와 통섭에서 통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탄허사상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은 탄허학 박사 1호인 그는 <탄허선사 사교회통사상>에 이어 최근에도 <탄허학>(조계종 출판사 펴냄)과 <탄허사상특강>(도서출판 교림 펴냄)을 동시에 출간했다. 탄허 스님은 한국전쟁 이후 강원도 산골 오대산의 월정사와 상원사를 이끌면서도 불교 역사상 전무한 역경과 저술 작업을 통해 초인적 성과를 이룬 인물이다. 탄허 스님은 새벽 1~2시쯤 일어나 신선법과 참선으로 하루를 열었다고 한다.

문광 스님도 참선에 연구에 강연까지 눈코 뜰 새 없어 보이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는 선가(禪家)의 보물이라는 고려 진각국사 혜심의 <선문염송 요칙>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도 늘 아침에 통기법(通氣法)이라는 몸 푸는 체조 같은 것을 하고 바로 좌선을 한다. 그것이 바쁜 일상에 압도되지 않고 살아가는 건강 비결이다. 통기법과 좌선을 하루도 끊김 없이 이어온 지 6000일이 넘었다고 한다. 햇수로 16년이 넘은 셈이다. 그는 “운동이든 수행이든 한꺼번에 많이 하는 것보다 이처럼 끊기지 않게 습관을 들이는 게 가장 좋다”며 직접 지은 신조어인 ‘최귀연공’(最貴連功·끊기지 않고 단련하는 것이 가장 귀하다)을 늘 불자들에게 강조한다.

특히 그는 스트레스 해소와 정서 안정을 위해 선(禪)을 최고의 비법으로 제시한다. 미래에 대한 예지와 예언으로 미래학의 지평을 연 탄허 스님이 “변화무쌍한 미래엔 변화 자체보다 두렵고 놀라서 해를 입는 사람이 더 많다”며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참선을 권유한 것과 같다. 일문일답이다.





# 근심·걱정·스트레스가 없는 마음자리로 들어가는 것이 선(禪)과 명상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들에게 왜 선이 도움이 될 수 있는가?

“선은 생각이 끊어진 본래의 마음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참선과 명상을 하면 본래 일 없는 무사(無事)하고 평화로운 자리로 들어가서 스트레스를 떠날 수 있다. <대승기신론>에 ‘심체리념’(心體離念)이란 말이 있다. 우리 마음의 본체는 원래 생각을 떠나 있다는 것이다. 스트레스와 근심과 불안의 실체는 본래 없는 것이니 자꾸 생각 끊어진 마음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인들의 전통적인 정신수양법과 마음관리법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한국이란 땅은 수행하러 태어나는 곳인 것 같다. 불교 수행은 삶에 깊이 녹아 있고, 도교 또한 국선도 등 마음 닦는 법이 이어져오고, 유교의 정좌법(靜坐法)도 있다. 유교의 ‘주일무적’(主一無適)의 원리는 ‘마음을 일념으로 해서 흩어지지 않게 한다’는 것으로, 유불선(儒佛仙)의 원리가 동일하다. 일례로, 퇴계의 ‘중화탕’(中和蕩)은 한국 유학의 심학적 특징을 보여준다. 생각에 삿됨이 없는 ‘사무사’(思無邪), 선행을 실천하는 ‘행호사’(行好事), 자기 마음을 속이지 않는 ‘막기심’(莫欺心), 시기 질투하지 않는 ‘막질투’(莫嫉妬), 탐욕을 경계하는 ‘계탐’(戒貪) 등 30가지 약재를 함께 달여서 마음으로 먹는 것이다. 중용의 마음이 최고의 약이라는 은유인데 멋지지 않은가.”



―한국 사상의 해답을 탄허학에서 찾는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원효에서 탄허까지 내려오는 회통의 정신은 한국학의 중요한 특질이다. 불교를 중심으로 유교, 도교, 기독교를 회통한 탄허학을 21세기 한국학의 새 지평이라 지칭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현대 세계의 특징인 융복합과 융섭의 경향이다.”





# 탄허 스님이 미래 예지는 힘든 세상을 살아낼 중생들을 위한 연민의 발로

―통상 불교 고승들은 역을 점치는 것이라며 멀리했는데, 왜 탄허 스님은 주역과 정역을 중시하고, 미래를 예지했나?

“중국의 근대철학자 모종삼은 <중국 철학의 특질>에서 동양사상의 핵심을 역학의 ‘우환의식’으로 보았다. 중생들에 대한 연민심의 발로였다. 힘든 세상이 온다는 것을 법력으로 알았으니 어떤 마음자세로 살아야 할지 미리 알려주고 싶었던 보살정신에서다. 역학의 예지는 성현의 무심(無心)에서 나오는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도 미래학이 많다. 미륵불이라든지, 관음·지장보살에게 중생제도의 사명을 준 것도 미래예지였다. 삿된 욕심에서 미래를 알고자 하는 것과는 경지가 다른 것이다.”



―탄허 스님은 자본주의와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사상을 능가하는 것이 바로 동양의 역학적 정치사상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본 까닭은?

“동양이 정신적이라면 서양은 물질적이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나 모두 물질과 소유 문제를 다룬다. 하지만 물질은 삶의 필요조건이지,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충족시켜줄 수는 없다. 역학은 그 중심을 항상 마음과 정신으로 설명한다. 동양 고대의 정치사상은 바로 인간의 마음과 정신까지 만족시킬 수 있는 심학적 정치사상이기 때문에 결국 물질적 풍요가 충족되면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어서 동양의 정치사상을 말했던 것이다.”



―탄허 스님은 지구의 미래, 갈등이 어떻게 될 것으로 보았는가?

“동양과 서양, 좌파와 우파의 갈등은 쉽게 해결될 것으로 보았다. 북극과 남극은 있어도 동극과 서극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나라 남한과 북한의 통일이 중요한 기점이 된다고 했다. 한국의 통일은 지구적으로 볼 때에도 큰 사건이라고 했다. 인간의 문제보다도 기후위기, 지진, 화산 같은 지구 자체의 격변과 변화를 많이 말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이 흔들리지 말고 호들갑 떨지 말고 참선하라는 것이다. 선업을 짓고 남을 도우면서 말이다.”



문광 스님이 사숙한 탄허 스님. <한겨레> 자료사진


# 세계인을 사로잡은 한류 드라마는 영웅이 아니라 바른 마음을 가진 개개인이 주인공

―한류 영화와 드라마가 세계를 석권하고 있는데, 어떤 점이 어필한다고 보나?

“미드(미국 드라마)는 영웅이 나와서 해결한다. 히어로물이 대세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엔 그런 영웅 대신 깨어 있는 개개인이 있다. 인간의 근본 마음을 가진 상식적인 휴머니즘의 ‘마음’이 바로 한국 장르의 특징이다. 심학(心學)이다. <오징어 게임>도 그렇고 <지금 우리 학교는>이라는 좀비물도 인간의 ‘마음’과 ‘양심’을 얘기하고 있다. ‘최고의 영웅은 바른 마음 아니겠어?’라는 질문을 세계에 던지고 있다. 그리고 사람을 누구나 존중하라는 거다. 결국 불교의 불성과 유교의 심성이 한류의 기저라고 볼 수 있겠다. 배트맨, 슈퍼맨 같은 초능력적인 ‘맨’(man)이 아니라 그냥 ‘휴먼’(human)이라는 보통의 ‘맨’이 영웅인 것이다. 왜 영웅인가? 근본 마음, 순수한 심성이 있으면 영웅인 것이다. 그래서 감동이 있고 정(情)이 있다. 한국적 신파가 단순한 신파로 끝나지 않고 세계적인 신파로 엄청나게 세련된 방식으로 문화화되고 문명화되어가고 있다. 인간의 마음은 동서고금을 관통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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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종교·사상·철학을 결론 맺을 땅은 우리나라

등록 :2022-03-16 
조현 기자 사진


[마음건강법을 인생멘토에게 묻다]

(9) 탄허학 박사 1호 문광 스님―하

문광 스님. 조현 종교전문기자




접촉은 줄고, 접속은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해 활동량과 대면 접촉이 줄면서 활동 반경은 줄고, 불안과 우울 지수는 높아졌다. ‘코로나19’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 못지않게 지나친 불안과 우울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것도 중요한 때다. 똑같은 환경이지만 평안하고 행복한 일상을 누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 지혜를 찾아 <한겨레>가 플라톤아카데미와 공동으로 ‘마음건강법을 인생멘토에게 묻다’ 시리즈를 4주 간격으로 10회에 걸쳐 진행한다. 아홉번째 멘토는 동국대 불교학술원 연구초빙교수인 문광(51) 스님이다.


탄허학 박사 1호 문광 스님―상’에서 이어짐.

―탄허 스님이 30~40년 동안 평생 <천부경>을 연구한 노인에게 가서 현토를 배우고, 천부경을 주역에 앞선 역의 원조라고도 한 이유는?

“<천부경>은 81자로 된 역학의 축소판인데, 그것이 단군시대이니 중국의 요 임금 때라고 보면 중국의 <주역>보다 <천부경>이 앞서게 된다. 일제강점기 때에 우리의 고대사 문헌을 많이 없애고서 실증사학이라 하여 증거가 없으니 거론하지 말라는 식의 식민사관 때문에 <천부경>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경우가 있지만, 우리가 그러한 일본인의 생각을 따라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중국이나 일본에 비교해볼 때 고대역사에 대해서 우리처럼 무기력한 경우가 없다. 조그마한 근거만 나와도 정사(正史)로 공론화하는 중·일에 비해 과한 자기폄하다. 탄허 스님이 <천부경>을 거론하는 데에는 이러한 민족적 자긍심이 바탕에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읽어보면 <천부경>이 얼마나 위대한 문헌인지 알 수 있다. <주역>의 종주국도 한국이라고 탄허 스님이 말했다. 중국은 없는 역사를 만들고, 일본은 엄연한 역사를 속이는데 한국은 버젓이 있는 역사도 챙기지 못한다. 스님도 그것이 안타까웠을 것이다.”

―탄허 스님이 인도와 동남아 등 불교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뒤 인터뷰에서 ‘한국 불교는 세계의 중심이며, 한국이 세계 불교의 종주국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한국이 불교의 진수인 불교 교리와 선 사상을 그 어느 나라보다 제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서다. 특히 고려대장경의 보유만으로도 한국이 으뜸이라는 것이다. 인도에 범어로 된 대장경이 나란다대학의 화재로 별로 남아 있지 않으며, 티베트대장경 역시 수적으로 적으니 세계에서 우리가 보유한 한문 대장경이 최상의 불교 원전이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중국은 문화혁명으로 전통을 말살했고, 일본은 대처를 해서 삼보 가운데 승보가 무너졌다. 탄허 스님은 늘 한국의 모든 전통과 문화를 긍정했고, 국민들이 자존감을 갖기를 바랐다.”

―탄허 스님이 주역의 64괘와 불교의 근본 자리가 같다고 한 이유는?

“주역의 64괘와 태극은 불교 <기신론>으로 볼 때 생멸문과 진여문이라는 거다. 만유를 수렴하면 일심(一心)이 되는데 이것이 태극이고, 펼치면 모든 복잡한 생멸문의 괘상이 된다는 점에서 근본 이치가 같다고 보았다. 스님의 진정한 회통의 저력이 이런 설명에서 나온다고 본다.”



서울 잠실 불광사에서 설법하는 문광 스님. 문광 스님 제공

# 한국 문화는 세계의 단전이어서 세상 사상 철학 종교의 결론을 맺을 것

―한국의 사상 철학 종교 문화는 세상의 사상 철학 종교 문화의 결론을 짓는다고 했는데, 그렇게 보는 까닭은?

“한국 문화를 ‘단전성(丹田性) 문화’로 설명하고 싶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처럼 모든 것이 모여드는 곳이 단전이다. 우리나라가 그와 같은 나라라는 것이 저의 주장이다. 모든 것이 한 곳에 모여들었다가 다시 빠져나가듯이 단전은 그러한 것이고 한국이 바로 그런 요충지이다. 그 특성이 나타나서 모든 것이 다 모여서 정리되고 결론을 내고, 새롭게 다시 퍼져나가도록 시작도 하는 곳이다. 한국은 동북방의 간방인데 만물을 시작하고 만물을 마무리한다는 역학적 의미가 있다. 이것을 저는 ‘단전성 문화’라는 새로운 용어로 설명한다.”

―탄허 스님은 미국이 핑퐁외교로 중국과 수교를 하기도 전에 우리나라와 중국이 통하게 된다며, 제자들에게 중국어를 배우라고 강조한 이유는?

“그것은 정역 8괘에 입각해서 미리 안 것이다. 정역 8괘가 실현되기 전에 문왕 8괘가 완성되는 것인데 문왕 8괘에 진(震)과 태(兌)가 동서를 대표한다. 중국이 미미했을 때에도 이미 중국이 미국만큼이나 성장할 것을 미리 알았고, 중국이 성장하면 당연히 한자문명이 다시 한번 빛을 볼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남방으로 유학을 떠나려는 법산 스님에게 중국으로 박사과정 유학을 권유하기도 했다. 법산 스님은 대만으로 유학을 다녀오셔서 퇴임시까지 동국대 교수를 지냈다.”

―일반적으로는 관상 같은 것은 승가에서 하찮게 보는 술학인데 탄허 스님이 다르게 평한 까닭은?

“‘6신통 가운데 타심통은 불교의 관상학이다’라는 말씀도 했다. 사람의 모습을 보고서 그 마음을 꿰뚫어 보신 것이 부처님의 신통력이었다는 것이다. 공자, 맹자, 노자 모두 각기 사람을 보고 그를 판단하는 고유의 관찰법이 있었음을 강조했다. 해운거사의 <관상학> 책에 쓴 서문에 나온다. 박정희 대통령이 부하인 김재규에게 총살 당할 줄 몰랐다는 것은 관상학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스님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슬쩍 스쳐 지나치면서 인연이 되기도 하는데 한 눈에 그 사람의 속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제대로 된 인재도 양성할 수 있고 남에게 속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씀했다. 물론 생각 끊어진 무심자리를 증득해야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니 결국 불교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문광 스님이 사숙한 탄허 스님. <한겨레> 자료사진

# 이 땅에서 기독교의 종말론적 구원관을 폭발시킨 씨앗은 전통적인 미륵신앙

―원효대사의 미륵상생경종요에서는 미륵을 맞이하는데도 하근기, 중근기, 상근기가 있다는데, 어떻게 다른가?

“출가해서 한국 불교사에서 가장 특별하게 보였던 것이 미륵사상이었다. 삼국시대엔 미륵사상이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그 당시 연구했던 미륵에 관련된 내용들을 이번 <탄허학 연구> 책에 화엄학과 연관하여 많이 수록했다. 그중의 하나가 원효의 미륵사상 해석이었다. 하근기는 미륵이 하생하길 기다리고, 중근기는 미륵이 계신 도솔천으로 10선법을 닦아서 올라가려 하고, 상근기는 <미륵성불경>이라는 이름처럼 자신이 수행하여 성불해서 미륵처럼 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과연 원효는 위대한 한국 사상의 새벽이다.”

―기독교에서는 이 세계는 언젠가 ‘종말’이 오고 ‘심판’이 있는데 이때 예수가 재림하여 구원하게 될 것이라고 가르치고, 특히 우리나라엔 기독교 계통의 ‘종말론’이 등장하는데, 한국 사회에서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는 이런 ‘구원 인플레이션’ 현상의 뿌리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불교에서 말하는 고(苦)의 세계니까 구원을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마음이 해결되지 않는 한 영원한 인류의 과제일 것이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좀 강한 양상을 보인다. 저는 그것을 한국인의 종교 심리 구조 때문이라고 본다. 미륵하생이 예수재림으로 변한 것이다. 한국엔 ‘구원불인 미륵이 와서 중생을 구제해준다’는 강력한 미륵하생신앙이 있었는데, 조선시대에 잠시 유교사회에서 신앙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서학이 들어오면서 예수재림으로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패턴은 유사하다. 그래서 ‘한국인의 종교 심리 구조’라는 표현을 써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비티엔> 유튜브 갈무리

# 1700개 화두가 모두 타파되어야 견성

―선가의 보물로 알려진 고려 진각혜심국사의 <선문염송> 해설서를 곧 낼 예정인데, 수많은 조사어록과 비교해 선문염송의 특징이 무엇이고, 가장 깊게 천착한 내용은 무엇인가?

“저는 선 사상에서도 한국학의 관점으로 보았다. 중국에 <전등록> 30권이 있다면 우리에겐 고려 송광사에 진각혜심의 <선문염송> 30권이 있었다. <전등록>에 비교해서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저는 <선문염송>을 중심으로 조사의 어록을 보았다. 과거 7불이 없고, 경전에서 화두를 뽑아서 불법승 3보를 갖춘 체계를 구성했다. 제가 이 책을 열심히 본 것은 화두참선을 저의 수행으로 삼았기 때문에 소의경전으로 꾸준히 본 것이다. <선문염송> 전체를 본 뒤에 제가 모르겠는 향상구 화두들을 중점적으로 보게 되었다.”

―스님이 <비티엔>에서 선문염송 1463 화두공안 가운데 16화두의 염과 송을 강의하는데, 그중 14개가 향상구 공안이다. 향상구 공안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화두는 모두가 같은 경지에 있는 것이 아니다. 법신변사(法身邊事)의 진리가 있고, 법신향상사(法身向上事)의 진리가 있으며, 그 사이에 해당하는 여래선의 경지가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난해한 공안들이 향상구(向上句)이다. 공부가 처음 열리면 누구나 법신변사가 열리게 된다. 온세상이 한 덩어리이고, 불이(不二)이며, 주객이 끊어지는 체험을 한다. 법신변사의 공안도 모두 동일하지 않다. 경계가 다 다르다. 하지만 법신변사가 완전히 투득되어도 향상구의 화두는 아무리 보아도 알 수가 없다. 제가 향상구에 막혀서 앞이 캄캄했던 체험을 했기 때문에 <선문염송 요칙>이라는 책을 엮어서 향상구 공안을 중심으로 역해해서 누구나 자신을 점검해볼 수 있도록 하게 된 것이다. 조그마한 진리를 알았다고 공부가 끝났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향상구 공안에 막힘이 하나도 없다면 모를까, 그러기 전에는 재참(再參)해야 한다.”

―스님도 간화선 수행을 한다고 했는데 스님의 간화선 수행 경험이나 체험은?

“조계종 제10대 종정이셨던 혜암 스님의 마지막 시봉행자였는데 스님께 ‘만법귀일’ 화두를 받았다. 스님이 입적하기 2달 전의 일이다. 은사 스님께서 한문을 볼 줄 아니 너는 동국대에 가서 경율론을 모두 한번 보라고 했다. 하지만 저는 대학 가려고 출가한 것이 아니라고 버티다가 결국 스님 뜻을 따라 동국대에 입학을 했다. 대학원 석사를 수료하고 출가해 참선이 하고 싶었는데 동국대 학부를 다니게 되었으니 생식을 하며 독하게 참선했다. 큰스님께 받은 화두를 5년 만인 2006년에 타파하게 되었다. 정말 박살이 나는 특별한 체험이었고 그 뒤에는 교학적으로 잘 모르겠던 교리들이 환해졌다. 지금 유튜브에 올라 있는 화엄사법계라든지 선지(禪旨)들은 그때 터져서 알았던 내용들이다. 그렇게 공부가 다 된 줄 알고 1년을 지내다가 동국대 백상원 기숙사에 대중공양으로 나눠준 진제 스님의 법어집 <고담녹월>을 보았는데 처음부터 모르는 공안들이 여러개가 이어서 나왔다. 나는 분명히 화두가 타파가 되었는데 왜 이 공안들은 모르겠는지 궁금했다. ‘덕산탁발화’, ‘마조일할’ 이런 공안이었다. 그 뒤에 최고의 선정에 들어가서 향상구 공안이 타파되어야 이 공부가 끝이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진제 스님을 찾아 뵙고 법거량을 하고 화두를 다시 받아서 봉암사 선원과 해운정사 선원에서 수좌로 정진을 했다. 깊고 깊은 선정에 들지 않으면 향상구 공안은 타파되지 않는다. 1700공안 가운데 단 하나라도 모르는 게 있으면 견성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 간화선 수행의 기본규칙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