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11

[김조년] 차렷! <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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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차렷!
기자명 금강일보   입력 2021.08.09 
 
한남대 명예교수

[금강일보] ‘차렷’이란 말을 처음 듣고 내 몸으로 실천해 본 적이 언제였을까? 아마도 6·25 전쟁이 끝나갈 무렵, 아니면 1·4 후퇴 때 겨울이지 않을까 싶다.

그 때 우리 마을에 한 국군 부대가 들어왔다. 겨울이었다. 그들은 각 집에 분산되어 숙소를 정하고, 새벽이나 이른 아침에 동네 앞 꽁꽁 언 평평한 논에 모여 아침 체조를 하였다. 노래도 우렁차게 불렀다. 그 때 들은 구령이 ‘차렷’이요 ‘열중 쉬어’였다. 군인들은 그 구령에 맞추어 양 다리를 모으고, 손을 양 다리 옆으로 내려 꼿꼿이 서기도 하고, 다리를 벌리고 양 손을 뒤로하여 허리에 대는 행동을 했다. 그런 모습을 본 우리 어린애들은 자기 집에서 그것을 흉내내며 놀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앞으로 나란히’ ‘차렷’ ‘경례’ ‘열중 쉬어’라는 구령을 선생님들로부터 듣고 우리도 따라 했었다. 그러면서도 그 뜻이 무엇인지 나는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세월이 지나 군대에 입대하였다. 그 때 하루에도 몇 수십 번씩 그 구령을 듣고 살았다. 쉬어자세는 쉬는 것이 아니고, 차렷자세는 가만히 서 있는 것만이 아님을 알았다. 차렷자세는 모든 행동의 근본이었다. 그것은 몸과 맘과 정신을 오로지 하여야 하는 자세였다. 힘을 꽉 주는 자세이면서 아무 것도 채워지지 않은 텅 빈 자세였다. 비운다고 흐느적거리는 것이 아니고, 꽉 채운다고 굳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명령이 떨어져도 즉각 수행하여야 하는 유연한 자세이면서, 어떤 도전이 와도 금방 올바른 대응을 하고 반응을 할 수 있는 굳건한 자세였다. 그러니까 차렷자세는 꽉 찬 듯 비어 있고, 비어 있는 듯 꽉 찬 자세였다. 힘이 들어가고 빠지는 아주 예민한 경계선에 선 자세가 바로 그것이었다.

최근 여러 날 진행된 도쿄올림픽 경기 몇 종목을 보았다. 모든 경기 종목에서 나는 ‘차렷’과 ‘쉬어’가 모든 동작에서 반복되는 것을 보았다. 달리기에서 출발선에 설 때, 배구나 탁구 또는 배드민턴에서 서브하고 받을 때, 펜싱이나 양궁 또는 장대높이뛰기 할 때 모든 선수들은 한결같이 숨을 고르고 몸을 다듬고 가장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았다.

공격하거나 방어할 때도, 달리고 뛰는 모든 순간과 자세에서 차렷과 쉬어의 자세를 반복하는 것을 보았다. 자신들이 실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모든 힘을 집중하면서 비워주는 차렷자세가 온갖 곳에 다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까 상당히 오래도록 훈련하고 연마한 모든 기술이 제대로 발휘되도록 하기 위한 자세는 바로 차렷자세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순간에는 모든 선수들이 다른 어떤 생각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로지 출발할 때의 그 순간을 어떻게 채움과 비움의 조화를 최상으로 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듯이 보인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공격과 방어가 모두 같다. 결국 그때까지 갈고 닦은 기술의 성공과 실패는 차렷자세에서 갈린다고 보았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내 삶과 우리 사회의 공동생활을 떠올렸다. 내가 잘 걸으려면 일단 잘 서야 한다. 빨리 뛰고 멀리 뛰거나 높이 뛰려면 걷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 학교에서나 군대에서 왜 그토록 열심히 서는 것을 기초로 닦게 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바로 선다는 것은 무념무상의 상태를 유지하는 일이다. 그 상태에서라야 읽고 쓰고 분석하고 판단하며 종합할 수가 있다. 그림을 그리고 어떤 상을 조각하는 것이나, 글씨를 쓰고 악기를 연주하는 것에서 차렷과 쉬어는 가장 기본 되는 자세다. 곧 무념무상의 상태에 들어가라는 명령이다.

이러한 자세는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절대로 필요한 일이다. 물론 사회를 위한다거나 나라를 위한다고 나서는 사람들은 더욱 더 이 문제에 조심해야 할 일이다. 자기를 과신해도 안 되지만, 자기를 너무 비굴하게 낮추어 자신감이 없게 보아도 안 된다.

또 자신을 높이기 위하여 남을 깎아 내리는 가장 비굴하고 비겁하고 쪼잔한 일을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지금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자기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모으려고 온갖 수단을 다 쓴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차렷자세다. 무념무상, 비움과 채움의 경계선에 자신을 세우고, 이제까지 살아왔던 모든 자기의 삶과 사회와의 관계를 아주 날카롭게 분석해 보아야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정말로 개인과 사회 전체, 순간과 역사, 물질과 정신을 살릴 수 있는 삶을 이제까지 살아왔으며, 그것을 기초로 모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이런 것을 살필 때 역시 차렷자세가 필요하다.

인간은 누구나 깨끗하고 더러운 것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러니 남의 더러움을 너무 아프게 파헤치지 말라. 그런 것을 보고 잘한다고 박수하며 지지할 사람은 없다. 그 대신 자신이 어떻게 자기를 갈고 닦았는가를 정성스럽게 내보이라. 겸손한 자세로 시민과 어떻게 앞으로를 일구어나가겠다는 것을 밝혀라. 일반 시민들은 정치하겠다고 나섰거나 이제까지 높은 관직이나 정치일선에서 일한 사람들을 다 똑똑하고 맑고 깨끗하고 믿을 만 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어쩔 수 없으니 저렇게 나선 사람들 중에서 그래도 좀 덜 한 이를 뽑겠다고 생각하고 마지못해 표를 주는 이가 많을 뿐이다. 그러니 잘났다고 껍적거리지 말고 맘을 오로지하여 차렷자세로 돌아가라. 언제나 시민은 그런 자세를 가진 자를 차렷자세를 가지고 살피고 찾는다. 아니지. 시민들이야말로 누구에게 지지 않게 차렷자세로,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아주 냉철하게 후보를 살펴야 한다. 경거망동, 부화뇌동은 금물이다. 시민이 차렷하고 설 때 나라와 사회는 자연스럽게 아름답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