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조던 피터슨’이라는 현상
곽아람 기자
입력 2021.04.20 00:00
학생들과 함께한 피터슨(가운데) 교수. 그는 “인생은 고통이고 악(惡)으로 더럽혀져 있지만 사랑, 믿음, 진실, 용기가 고통과 악의 접근을 막는 무기가 된다”고 했다.
2030 여성들이 좌지우지하는 출판시장에 신기하게도 구매자의 80% 이상이 남성인 책이 있습니다. 3주째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심리학자 조던 피터슨 토론토대 교수의 ‘질서 너머'입니다.
질서너머
피터슨 교수는 ‘PC’라 부르는 ‘정치적인 올바름', 특히 페미니즘에 대해 반대하는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놓는 것으로 명성이 높습니다. 본인들이 페미니즘의 피해자라 여기는 젊은 남성들은 피터슨의 그런 발언을 “사이다”라며 열광합니다. 꼭 반(反)페미니즘을 부르짖어서만 인기가 있는 건 아닙니다. 전작 ‘12가지 인생의 법칙'에서는 “세상을 탓하기 전에 네 방부터 치우라”며 선 굵은 아버지 상을 보여줘 호응을 얻었죠. 인생은 어차피 고통인데 거기에 굴하지 말고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진정한 영웅이라는 것이 피터슨 교수 철학의 핵심입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라”는 조언도 엄격한 기독교 근본주의에 입각한 것인데 여성들 입장에서 받아들이기엔 쉽지 않죠. 논쟁적인 저자 피터슨 교수를 양지호 기자가 줌으로 인터뷰했습니다.
[反페미니즘 선봉 조던 피터슨 교수 “2030 男性이 내게 열광한다”]
피터슨 ‘현상’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 참고할만한 책들도 함께 소개했습니다. 저널리스트들이 쓴 ‘20대 남자'(시사인)과 30대 남성 사회학자 최태섭씨가 쓴 ‘한국, 남자'(은행나무)입니다.
[20대 남성은 왜 페미니즘을 미워하나]
첫 책 ‘12가지 인생의 법칙'이 나왔을 때 제가 한 이메일 인터뷰도 참고로 링크합니다.
["세상 탓하기 전에 네 방부터 치워" 스타 교수의 버럭강의]
사회 모든 곳에선, 특히 신문 지면에선 ‘균형’이 중요하죠.
한쪽 면 톱 기사로 피터슨 인터뷰를 소개하고 다른 쪽 톱으로는 이번주에 나온 페미니즘 책 중 특히 돋보이는 책을 소개한 건 그 때문입니다.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인 변호사 이브 로드스키는 세 아이의 엄마인데 ‘썩 괜찮은 남자'였던 남편이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모든 가사노동을 자기에게 떠맡기고 있다는 사실을 꺠닫습니다. 그 불공정함에 대한 분노를 해소하게 위해 가사노동 분담 게임을 제안하죠. 그가 쓴 ‘페어 플레이 프로젝트‘(메이븐)는 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페어 플레이 프로젝트 /메이븐
[“남편이 집에서 내 말을 듣기 시작했다”]
“2020년은 ‘내향성 인간들의 복수(revenge)’였다나.”
미국에 있는 친구와 비대면과 집콕의 ‘코시국’ 일상을 논하던 중 이 말을 듣고 무릎을 쳤습니다. “나는 원래 ‘집순이’라 그래도 견딜 만한데 활달한 사람들은 힘들 것 같다”고 했더니 안 그래도 저런 농담이 유행한다며 얘기해 주더군요.
사람 만나면 에너지를 많이 빼앗기기 때문에 북적이는 모임에 가느니 집에 혼자 있는 걸 좋아합니다. 사회생활에 걸림돌이 된다 여겼던 성격이 오히려 장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지난 1년간 깨달았습니다. 세상 만사에 음지가 있으면 양지도 있다더니 팬데믹이 준 의외의 ‘선물’이라고나 할까요.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 10주년 기념판 /RHK
내향인의 힘을 짚은 대표적인 책 ‘콰이어트’(RHK) 10주년 기념 특별판이 나왔습니다. 조용한 책벌레 소녀였던 저자 수전 케인은 프린스턴대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후 변호사가 됩니다. 내성적인 성품이 직업과 맞지 않아 고생하던 중 ‘왜 세상은 외향적인 사람을 선호하고 내향적인 사람은 자기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원래 성격을 감추는 걸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죠.
‘내향성의 위대함’을 증명해 보겠다는 목표로 수년간 연구 끝에 펴낸 책이 ‘콰이어트’입니다. 전 세계 40여 국에 소개됐고 국내에선 15만 부 팔렸습니다. 저자는 “사람들은 훌륭해지려면 대담해야 하고, 행복해지려면 사교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외향적인 국가’인 미국에서조차 두세 명 중 한 명은 내향적”이라며 “자신의 기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간 외향적인 척 버텼던 많은 내향인이 ‘나다움’의 이점을 느끼게 된 것이 10년 된 책이 다시 읽히는 힘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옳다 여겼던 모든 가치에 의문을 품게 하는 이 ‘뉴노멀’의 시기를 통과하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숙고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코로나가 끝난 후 인류의 지적 자산은 더욱 풍성해질 겁니다. 곽아람 Books 팀장
#북스#북클럽#뉴스레터
곽아람 기자
문화부 Books 팀장. 독서 에세이 '매순간 흔들려도 매일 우아하게',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어릴 적 그 책', 아메리카 문학기행 '바람과 함께, 스칼렛', 미술 에세이 '그림이 그녀에게', '미술출장', 뉴욕 체류기 '결국 뉴요커는 되지 못했지만' 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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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페미니즘 선봉 조던 피터슨 교수 “2030 男性이 내게 열광한다”
“反페미니즘 선봉에 선 지성인” 조던 피터슨 교수 인터뷰
양지호 기자
입력 2021.04.17 03:00
질서 너머
조던 피터슨 지음|김한영 옮김|웅진지식하우스|460쪽|1만7800원
조던 피터슨(59)은 ‘현상'이다. 그의 책 예약 구매자의 80%, 정식 출간 이후 누적 구매자의 66%(교보문고)가 남성이다. 20대 남성이 23.5%로 가장 많다. 여성이 주도하는 국내 출판 시장에서는 ‘검은 백조’ 같은 존재다. 신간 ‘질서 너머’는 출간 이후 3주 동안 국내 주요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5만부 이상 팔렸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저자가 반(反)페미니즘 선봉에 선 지성인으로 알려져 있다 보니 2030 남성 위주로 인기가 많다”며 “일부 국내 남성 독자는 ’82년생 김지영'보다 많이 팔려야 한다며 소셜미디어 등에서 홍보를 하고 있을 정도”라고 했다.
그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지친 2030 남성의 대변자로 자리매김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전작 ‘12가지 인생의 법칙'에서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고 했던 그는 신작에서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말라”고 한다. 따르고 싶지 않은 ‘정치적 올바름’은 따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그를 최근 줌 인터뷰로 만났다. 그는 “나는 약자를 대변해서 욕을 먹는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약자는 2030 남성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정치적 올바름을 신경 쓰지 않는 발언으로 인기를 얻은 조던 피터슨 토론토대 심리학과 교수. 그는 인터뷰에서도 “남자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을 더 매력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등 발언을 이어 갔다. /웅진지식하우스
–당신을 공격하는 사람이 많다.
“난 약자를 대변한다. 대부분 그래서 비난받는다. 내가 말하는 ‘약자(dispossessed·빼앗긴 자들)’란 정치적 올바름이 지배하는 세상 때문에 유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500만부 이상 나간 전작 ’12가지 인생의 법칙'은 국내에서 30만부 이상 팔렸다. 한국 남성 독자가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특정 독자층을 생각하고 책을 쓰지 않았다. 문화가 다른 한국에서 남성 독자가 내 책을 많이 읽는다는 건 내게도 흥미롭다. 남성들에게 ‘네 꿈을 이뤄도 돼’라고 말해주는 메시지가 먹히는 것이라 추측한다. 일각에서는 ‘약탈적이고 위계적인 남성적 문화’가 현대사회를 지배하고, 모든 남자는 자라나서 폭군 같은 가부장이 될 거라 공격한다. 터무니없을뿐더러 위험한 주장이다.”
–한국에서 남혐·여혐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먼저, 여자가 남자를 싫어하고, 남자가 여자를 싫어하는 것은 잘못이다. 다른 성에 대한 증오는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가부장적 사회구조는 문제다. 사법 시스템이 특정 성별에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혐오를 정당화한다면 그건 실수다.”
−당신은 행복보다 책임이 중요하다며 부모가 돼 책임을 지라고 한다.
“행복은 찰나에 불과하다. 삶을 가장 든든하게 지탱해주는 의미는 책임을 받아들이는 데서 나온다. 이는 행복과 달리 스쳐 지나가지 않는다. 부모가 되는 것은 가장 심오한 책임을 지기로 하는 것이다. 결혼해서 애 안 낳고 뭘 대단한 일을 할 텐가(What the hell else you gonna do?)?”
−한국은 출생률(0.84명) 꼴찌 국가다. 여성들은 ‘경력 단절’에 대한 걱정이 크다.
서구 문화는 젊은 여성들에게 ‘성공적인 커리어가 가장 중요하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틀렸다. 내가 봐온 절대다수의 여성은 30대가 되면서 학력이나 지성과 상관없이 아이에 대한 애착이 커졌다. 내 대학원생 여성 제자들 여럿도 그랬다. 진심으로 충격받았다. 아이를 낳자 커리어보다도 ‘내 아들’ ‘내 딸’이 가장 중요해졌다.”
−남성 육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남자는 신생아 육아를 위해 만들어져 있지 않다. 젖도 안 나온다. 또 여성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에게 매력을 느낀다. 남자가 집에서 애만 보고 있으면 남편에게 느끼는 매력이 급락(nosedive)할 가능성이 크다.”
−당신은 보수인가.
“정치적으로 보수라고 할 수 있다. 사회과학 전공자로서 ‘(정부의) 바보 같은 개입이 이뤄지면 의도했던 결과가 아닌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을 익혔다. 합리적인 사회과학자라면 모두 아는 얘기다. 학문적으로는 굉장히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책에서 12가지 법칙을 제안한 피터슨은 신작에서도 12가지 법칙을 제안한다. ’이데올로기를 버려라' ‘고통스러울지라도 감사하라' 등이다. 그는 책임지는 삶을 살라는, 징징대지 말고 어른이 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는 항우울제 부작용으로 지난해 병원을 드나들었고, 자살 충동에도 시달렸다. 인터뷰 중 두어 번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는 “이 책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죽음에서 구해줬다”고 했다. 1993년 미국 하버드대 교수로 임용됐고, 1998년 고국인 캐나다 토론토대 심리학 교수로 옮겼다. 현재는 휴직 중. 그는 “교편을 다시 잡을지는 고민하고 있다”며 “유튜브 등에서 대중을 대상으로 심리상담은 계속 할 계획”이라고 했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전 세계적으로 350만명이 넘는다.
왜 젊은 남성은 조던 피터슨에 열광하는가?
젊은 남성의 지적 영웅으로 떠오른 '조던 피터슨 현상'의 이면을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