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 ①···참알줄(道德經)에 참의 샘이 있다 - 경향신문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 (1)···참알줄(道德經)에 참의 샘이 있다
김종길 다석철학 연구자2021.08.10 06:00 입력
다석 류영모(多夕 柳永模)는 1890년 3월 13일에 나서 1981년 2월 3일에 돌아갔다. 90년 10개월 21일을 사셨다. 올해는 그가 하늘로 돌아간 지 40주기가 되는 해다. 그는, 사는 동안 온통 참을 찾고, 참을 잡고, 참을 드러내고, 참으로 돌아간 ‘참사람’이다. 그러니 그의 철학적 당간지주는 오롯이 ‘참’에 있다고 할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참의 사상가, 참의 말씀, 참의 경전들이 있을 터이나, 그는 오롯한 하나의 참을 오래 궁리했다. 그 참은 쪼개질 수 없는 하나였다. 그 ‘오롯한 하나’에서 숱한 참의 숨이 샘솟았다. 참의 말씀이 터졌다. 그 말씀으로 ‘말숨’이 쉬어졌다. 그는 참의 숨이 ‘얼숨’이요, 얼숨 쉬는 이가 ‘참나’요, 그 참나가 ‘얼나’라고 말했다. 제 잇속만 차리는 ‘제나’를 벗고 얼나로 솟으라고 외쳤다.
몸이 쉬는 숨은 몸숨이요, 말씀으로 쉬는 숨은 말숨이다. 참을 쉬는 숨은 참숨이요, 그 참숨으로 얼을 깨우쳐 늘 쉬는 숨이 얼숨이다. 얼 깨우친 얼숨의 존재가 얼나다. 다석은 동서양의 글과 말로 사유하면서 우리말 한글로 ‘뜻글풀이’ 했다. 처음엔 다소 낯설지만, 자꾸 보면 생각이 커지고 자란다. 2008년 세계철학자대회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철학자로 그를 손꼽은 이유다. 그의 사상으로 한 편의 시로 쓰면 이렇다.
참숨 산숨으로 숨돌이 돌돌돌,
돌아 흐르는 시원한 몸과 마음과 얼.
몸맘얼이 휘돌아 오롯한 하나로 솟는 참,
씨알 터지는 알짬, 산알의 속알, 눈부신 얼빛!
짱짱한 몸 비우고, 비운 마음에 큰 바람 불어,
없이 있는 여기, 저기, 거기.
* 산숨 : 살아 솟는 숨(生氣)
* 숨돌 : 숨이 도는 힘(氣運)
* 산알 : 살아 있는 생명의 알맹이. 생명령(生命靈)이라 부르기도 함
* 알짬 : 다석이 ‘정(精)’을 우리말로 풀어 쓴 말. 쌀을 쓿어 곧은 알맹이만 고른 것의 표현
* 속알 : 다석이 ‘덕(德)’을 우리말로 풀어 쓴 말
그의 40주기를 맞아 그가 온 삶을 궁리한 ‘참’의 온통을 묻는다. <다석일지>에서 그는 <노자(老子)>를 ‘늙은이’로 풀어 놓았다. 뜻글로 번역한 ‘늙은이’는 그의 사상과 철학의 고갱이가 담뿍 담겨있다.
다석 류영모
■다석은 누구인가?
그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나마 조금 안다고 하는 이들도 신천옹 함석헌의 스승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사실, 함석헌의 ‘씨알사상’도 다석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석은 1928년부터 종로 YMCA에서 연경반(硏經班) 모임을 맡아 1963년까지 35년을 강의했다. 동서양의 종교와 사상에 회통했던 그는 우리말로 ‘철학하기’를 실천했는데, ‘늙은이’는 다석철학의 드높은 한 경지를 보여준다. 제자 박영호가 정리한 연보를 간추린다.
1890년 (1세) : 아버지 류명근, 어머니 김완전의 맏아들로 태어나다.
1902년(12세) : 자하문 밖 부암동 큰집 서당에서 3년간 <맹자(孟子)>를 배우다.
1910년(20세) : 남강 이승훈의 초빙으로 2년간 평북 정주 오산학교 교사를 지내다.
1921년(31세) : 고당 조만식 후임으로 오산학교 교장이 되다. 이때 제자 함석헌을 만나다.
1928년(38세) : YMCA 간사 현동완의 간청으로 YMCA 연경반(硏經班)을 지도하다.
1939년(51세) : 예수정신을 믿음 바라기의 줏대로 삼다. 하루 한 끼, 해혼(解婚), 잣나무 널 위 잠자기를 실천하다.
1942년(52년) : ‘성서조선’ 사건으로 종로경찰서에 구금되다.
1943년(53세) : 북악 산마루에서 “하늘을 뚫고 올려보고 땅을 뚫고 내려가다(瞻徹天潛透地)”의 체험을 하다.
1977년(87세) : 방랑길을 떠났으나 3일 만에 산송장이 되어 경찰관에 업혀 오다.
1981년(91세) : 숨지고 돌아가다.
(*다석학회 누리집에서 전체 연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스스로 책을 남기지 않았다. 1955년 4월 26일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해 1974년 10월 18일까지 20년을 지속했다. 첫 일기는 ‘하루 때문’이라 썼고, 마지막 일기는 ‘실알 마올’이라 썼다. ‘하루살이(오늘살이)’는 시간 없는 하루의 전체, 즉 찰나의 영원한 시간을 하루로 산 그의 ‘오! 늘’의 정신을 보여준다. ‘실알 마올’은 “생각실, 말씀실, 목숨실, 일도, 몬도, 時도 空도, 大도, 地도, 史도, 國도 : 한 실오래기. 므로 살려는 이는 실올을 바로 알아, 올바로 산다는 것이오.”라고 쓴 일기에서 그 뜻을 살필 수 있다. 실은 한 실오라기의 생명줄이다. 알은 한 실오라기 생명줄의 참이다. 마는 마음이요, 올은 올바름이다. 이어 묶으면 “한 실오라기 숨줄의 참으로 마음 올바름”이란 뜻이 된다. 김흥호는 “실은 생명, 알은 진리, 마는 허공, 올은 이치”로 풀었다. 다석은 마음에 무슨 실올을 가득 담아 두는 게 아니고, 모든 올을 퍼낼 수 있는 ‘됫박’, 즉 빈 바가지 같은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일기를 끝낸다.
다석일지, 1974년 10월 18일, 마지막 문장이다.
풀면, “그러므로 마침내는 저 마음 스스로 깨끗이 : 참 보이는 마음으로 돌아가고 오는 자리에 딛고 서! 온통 올바름의 바른 올 가득한 마음으로. 실알 마올. 옴.”이다. ‘하루’로 시작해 ‘옴’으로 끝낸 그의 20년 일기가 <다석일지(多夕日誌)>(홍익재, 1990)다.
<다석일지>가 그의 사상을 함축적으로 살필 수 있는 손 글씨 기록이라면, 2016년에 개정판으로 펴낸 <다석 강의>(교양인)는 1956년부터 57년까지 43편의 강의 속기록을 다듬어 엮은 1005쪽 분량의 방대한 강연록이다. 다석철학의 정수가 여기에 있다.
■왜 다석의 ‘늙은이’를 푸는가?
그는 말한다. “이 사람이 <성경>만 먹고사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유교의 경전도 먹고 불교의 경(經)들도 먹습니다. 살림이 구차하니 정식으로 먹지 못하고, 구걸하다시피 여기서도 얻어먹고 저기서도 빌어먹어 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의 것이나 인도의 것이나 다 먹고 다니는데, 이 사람의 깜냥(消化力)으로 소화시켜 왔습니다. 그렇게 했다고 하여 내 건강이 별로 상한 일은 없습니다. <성경>을 보나 유교 경전을 보나 불교의 경을 보나 그리스의 지(智)를 보나 종국은 이 ‘몸성히’, ‘맘뇌어’, ‘뜻태우’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다석학회, <다석 강의>, 현암사, 2006, 606쪽)
“몸성히, 맘뇌어(맘놓이), 뜻태우”의 세 공부를 위해 생각의 불꽃을 피워 올리면서 하루하루 수행과 수련을 쉬지 않고 실천한 그의 ‘오늘살이’는 20세기 한국철학의 부재를 간단없이 채우고도 남는다. 그리고 그의 나이 일흔에 푼 ‘늙은이’는 다석 한글철학의 정수다.
‘늙은이’는 제자 박영호가 <빛으로 쓴 얼의 노래>, <노자와 다석>으로 이미 풀어서 엮은 바 있다. 박영호는 책의 부제에 “다석 사상으로 다시 읽는 도덕경”이라 했는데, 다석과 노자를 한데로 엮어내는 눈이 놀랍다. 하지만 다석이 우리 토박이말로 바꾸면서 거기에 담은 뜻글로서의 한글은 아직 다 풀리지 않은 것 같아 하나의 과제처럼 보인다. 사실, 다석은 노자를 푼 것이 아니라, 한문을 ‘뜻글의 한글’로 뒤바꾸는 창조적 번역을 완성했을 뿐이다. 노자에 대한 풀이(注)는 단 한 줄도 쓴 적이 없다. 그렇다면 뜻글로 뒤바꾼 한글판 ‘늙은이’를 다시 뜻풀이하는 작업이 제자의 과제가 아닐까.
노자가 아닌, 오롯이 다석의 한글판 ‘늙은이’를 풀어야 그의 사상의 골수가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직 그 생각으로 1959년 <다석일지>에 쓴 ‘늙은이’를 보고, 또 제자들을 위해 그가 손 글씨로 정리한 ‘늙은이’를 여러 차례 살폈다. 그 부분만 복사하고 제본해서 글씨의 구조를 살피고 한글 씨말의 뜻을 비교했다. 심지어 한 편 한 편을 컴퓨터로 다시 입력하면서 그의 글쓰기를 흉내 내었다. 글쓰기로 그의 생각에 가 닿기를 바랐다. 그러다 발견한 놀라운 사실 하나는 다석의 ‘늙은이’가 아름다운 한 편 한 편의 시(詩)로 탄생했다는 점이었다.
한문을 한글로 바꿀 때의 뜻글 표기도 어느 것 하나 틀린 구석이 없었다. 그의 쓰기와 사유는 엄정했다. 곧고 올바랐다. 어떤 것은 뜻글 개념어였고, 어떤 것은 그저 한문의 한글 바꿈이었다. 말씨, 씨말의 기표와 기의가 똑발라서 다석의 한글판 ‘늙은이’는 그 자체로 ‘참나’의 길을 제시하는 얼빛 노래였다.
이제부터 ‘늙은이’를 풀려고 한다. 여러 사상의 줄기가 새끼줄 꼬이듯 꼬인 비단실 실타래이니, 푸는 방식도 딱딱한 논문이나 평론이 아닌 산파술의 대화체로 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다른 생각을 가진 여섯 명의 인물이 쟁론을 펼치듯 떠드는 방식인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독자들도 그들 사이로 슬쩍 끼어들어 생각을 섞다보면 더 쉽게 다석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도덕경이 ‘참알줄’이라고?
다석은 도(道)를 ‘도’라 하지 않고 줄곧 ‘길’이라 했다. 우리말의 어원에는 한자에서 유래한 말이 적지 않다. 한자와 우리말이 붙어서 생긴 말들도 많다. 도를 도라 하는 것도 도라는 말이 한자이면서 동시에 우리말로도 쓰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또 도를 길이라 하면 ‘도학(道學)’, ‘도교(道敎)’가 표방하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도의 개념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석이 도를 길로 바꾼 것은 우리말의 구조, 뿌리, 뜻으로 그 도를 표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말의 바른소리(正音)를 알아야 참뜻의 오묘한 깊이에 가 닿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잠깐, 한글 바른소리의 의미를 살핀다.
한글의 닿소리(첫소리 : 初聲)는 어금닛소리, 혓소리, 입술소리, 잇소리, 목소리인 ‘ㄱㄴㅁㅅㅇ’을 만들고, 소리 세기에 따라 획을 더해서 만들었다. 이 다섯 소리는 木(ㄱ)火(ㄴ)土(ㅁ)金(ㅅ)水(ㅇ)의 5행(五行)과 이어진다. 또 원방각(圓方角)이 뜻하는, 원(○)은 사람의 머리, 방(□)은 사람의 몸, 각(△)은 손발, 각(角)은 만물이 싹트는 모양, 방(方)은 잎이 넓게 자라고, 원(圓)은 열매 맺는 모양이 숨어 있다.
그 외 된소리, 입술가벼운소리도 있는데, 그것들을 다 살피면, 어금닛소리(牙音)는 ‘ㄱㄲㅋㆁ’이고, 혓소리(舌音)는 ‘ㄷㄸㅌㄴ’, 입술소리(脣音)는 ‘ㅂㅃㅍㅁ’, 잇소리(齒音)는 ‘ㅈㅉㅊㅅㅆ’, 목구멍소리(喉音)는 ‘ㆆㅎㆅㅇ’이다. 첫소리 다섯 음을 줄여서 아설순치후(牙舌脣齒喉)라 한다.
훈민정음해례 2장에 “무릇 사람이 소리를 가지고 있음은 5행에 근본을 둔 것(夫人之有聲本於五行)”이라 했는데, 닿소리의 뜻과 구조가 5행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뒤를 이어 해례본은 이렇게 적고 있다.
牙錯而長 木也 於時爲春 於音爲角(아착이장 목야 어시위춘 어음위각)
어금니는 어긋나고 길어서 오행의 나무에 속한다. 계절로는 봄에 해당하고, 오음으로는 각(角)에 속한다.
舌銳而動 火也 於時爲夏 於音爲徵(설예이동 화야 어시위하 어음위징)
혀는 날카롭게 움직여서 오행의 불에 속한다. 계절로는 여름에 해당하고, 오음으로는 징(徵)음에 속한다.
脣方而合 土也 於時爲季夏 於音爲宮(순방이합 토야 어시위계하 어음위궁)
입술은 모나지만 합해 짐으로 오행의 흙에 속한다. 계절로는 늦여름에 해당하고. 오음으로는 궁(宮)에 속한다.
齒剛而斷 金也 於時爲秋 於音爲商(치강이단 금야 어시위추 어음위상)
이는 단단하여 끊으니 오행의 금에 속한다. 계절로는 가을에 해당하고, 오음으로는 상(商)음에 속한다.
喉邃而潤 水也 於時爲冬 於音爲羽(후수이윤 수야 어시위동 어음위우)
목구멍은 깊숙한 곳에 젖어 있으니 오행의 수에 속한다. 계절로는 겨울에 해당하고 오음으로는 우(羽)음에 속한다.
홀소리(가운뎃소리 : 中聲)는 하늘땅사람(天地人)의 ‘ㆍ’, ‘ㅡ’, ‘ㅣ’을 본떴다. 글자는 이 세 홀소리를 맞추어 만든 것이다. ‘ㅗ,ㅏ’에서 ‘ㆍ’가 위와 바깥에 있는 것은 위 두 소리가 하늘에 속한 양(陽)이기 때문이다. ‘ㅜ,ㅓ’는 아래와 안에 있는데, 이 두 소리는 땅에 속한 음(陰)이기 때문이다. ‘ㆍ’의 쓰임이 음양론(陰陽論)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석은 노자의 <도덕경> 세 글자를 우리말 길(道), 속알(德), 줄(經)로 새겼다. 도를 길이라 한 것은 이미 앞에서 살폈으니 덕(德)을 보자. 이 말의 사전적 뜻은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행하려는 어질고 올바른 마음이나 훌륭한 인격”이다. 덕이라는 말을 쓸 때 우리는 ‘덕이 높다’, ‘덕을 베풀다’, ‘덕을 보다’라고 한다. 사전의 뜻을 줄여 ‘어질고 올바른 마음’이라고 할 수도 있을 터인데 너무 길다.
다석 류영모 사상은 ‘참’ 에 있다. YMCA연경반 제자들과 산날 2만2000일 기념강연을 마치고 찍은 사진이다. 앞줄 가운데 한복입고 수염 기른 이가 그다. 왼쪽 네 번째 앉은 이는 제자 함석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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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은 어질고 올바른 마음을 가진 이를 ‘속(裏)이 찬 사람’으로 본 듯하다. 그래서 ‘속알’이라고 썼는데, 그 말은 ‘알맹이’(평북), ‘고갱이’(충북)의 방언이기도 하니 아예 없는 말도 아니다. 또 속생각을 낮잡아 쓰는 말로 ‘소갈머리’라는 말도 있잖은가. 속알은 알이니 덕을 알로 바꾸어도 무방할 것이다.
경(經)이라는 말은 실(絲)과 지하수(巠)를 더한 것인데, 실이 물처럼 흐르는 모양에 빗대어 ‘세로 줄’의 ‘날줄’을 뜻하게 되었다. 베틀의 날줄을 잘 잡은 뒤에야 씨줄을 넣을 수 있다. 길쌈은 이 줄잡기가 일의 반이다. 경(經)은 그러므로 ‘바른 줄잡기’로서의 ‘줄’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런데 나는 ‘길’을 다시 ‘참’으로 바꾸었다. 왜 ‘참’으로 바꾸었는지는 제1장에서 다시 이야기할 터인데, 다석이 푸는 방식으로 풀어 말하면 이렇다. ‘길’은 하늘이 땅 그리워 내리 그은 기역(ㄱ), 그 옆에 사람이 서 있는 이(ㅣ), 아래에 쉬지 않고 끊이지 않음을 뜻하는 리을(ㄹ)로 풀린다. 그것은 그대로 길을 닦고 길을 실천하며, 길의 삶을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것이 길의 ‘참길’인 것이다. ‘참길’을 밝힌 책이니 또한 ‘경(經)’인 것이고.
그러므로
도덕경(道德經)은 참알줄이다!
참길의 줄잡기!
속알의 줄잡기!
참, 알, 줄!
참알줄!
참을 아는 줄!
다석이 <다석일지』> 마지막 문장에 쓴 ‘실알 마올’이 ‘참알줄’이다.
자, 이제 ‘늙은이’ 마당으로 오시라!
■김종길은
다석철학 연구자다. 1995년 봄, 박영호 선생의 신문 연재 글에서 다석 류영모를 처음 만났는데, 그 날 그 자리에서 ‘몸맘얼’의 참 스승으로 모셨다. 다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민중신학과 우리 옛 사상, 근대 민족 종교사상, 인도철학, 서구철학을 좇았다. 지금은 그것들이 모두 뜨거운 한 솥 잡곡밥이다. 함석헌, 김흥호, 박영호, 정양모, 김흡영, 박재순, 이정재, 심중식, 이기상, 김원호 님의 글과 말로 ‘정신줄’ 잡았고, 지금은 다석 스승이 쓰신 <다석일지>의 ‘늙은이’로 사상의 얼개를 그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