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영어권에서는 로버트 드 롭의 <Sex Energy: The Sexual Force in Man and Animals> 이후 성을 “하나의 생명 에너지”로 보는 관점이 그대로 이어졌다기보다, 여러 방향으로 분화되었습니다. 큰 흐름은 <성 에너지론의 해체와 재구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성 에너지>는 점차 <성 반응의 생리학>으로 바뀌었습니다. 드 롭은 성을 생명력, 충동, 생식, 동물행동, 인간 의식의 문제로 넓게 보았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영어권 성과학은 더 실험적이고 의학적인 방향으로 갔습니다. 대표적 인물이 <윌리엄 마스터스 William Masters>와 <버지니아 존슨 Virginia Johnson>입니다. 이들은 인간의 성 반응을 실험실에서 관찰하고, 흥분기·고원기·오르가슴·해소기의 네 단계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이 모델은 성을 신비한 에너지라기보다 신체의 관찰 가능한 반응 과정으로 분석한 것입니다.
이 전환은 중요합니다. 드 롭에게 성은 “생명 전체를 움직이는 힘”이었다면, 마스터스와 존슨 이후 성은 <측정 가능한 신체 반응>이 됩니다. 혈류, 윤활, 발기, 근육 긴장, 오르가슴 반응, 불응기 같은 생리학적 언어가 중심이 됩니다. 이것은 성을 도덕의 영역에서 의학과 치료의 영역으로 옮긴 발전이었지만, 동시에 성을 너무 기계적으로 보는 한계도 만들었습니다.
둘째, <리비도> 또는 <성욕> 개념은 점차 단순한 “충동”이 아니라 <흥분과 억제의 균형>으로 재해석되었습니다. 중요한 이론이 <이중통제모델 Dual Control Model>입니다. 존 밴크로프트와 에릭 얀센 계열의 이 모델은 성 반응이 단순히 성적 에너지가 많고 적은 문제가 아니라, <성적 흥분 시스템>과 <성적 억제 시스템>의 상호작용이라고 봅니다. 2009년 논문은 성 반응이 성적 흥분과 성적 억제 과정의 상호작용에 의해 일어난다고 설명합니다. 2023년 검토 논문도 성적 각성은 흥분과 억제의 균형에 달려 있다고 정리합니다.
이것은 드 롭식 성 에너지론보다 훨씬 정교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성적 흥분 체계가 강하지만 억제 체계도 강해서 실제 관계에서는 욕망을 잘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흥분 체계가 보통이어도 억제 체계가 약해 쉽게 성적으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성욕은 하나의 저장된 힘이 아니라, 상황·불안·수치심·관계 안정감·스트레스·몸 상태·문화적 금기의 영향을 받는 조절 체계가 됩니다.
셋째, 여성의 성욕 이해가 크게 바뀌었습니다. 오래된 성욕 모델은 남성 중심적이었습니다. 먼저 성욕이 생기고, 그다음 흥분하고, 성행위로 이어지고, 오르가슴과 해소로 끝난다는 직선적 모델이었습니다. 그러나 <로즈메리 배슨 Rosemary Basson>은 2000년대 초 여성의 성 반응을 다르게 설명했습니다. 그녀의 모델은 여성의 욕망이 언제나 자발적·즉각적 충동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친밀감, 안정감, 접촉, 정서적 맥락 속에서 <반응적으로> 생겨날 수 있다고 봅니다. 2000년 논문은 여성 욕망의 반응적 요소와 그것을 촉발하는 동기 구조를 더 정확히 설명하려는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2002년 논문도 여성의 성욕 이해를 자발적 충동 중심에서 벗어나게 했습니다.
이 흐름은 최근 <에밀리 나고스키 Emily Nagoski>의 <Come As You Are 있는 그대로의 당신으로 오라> 같은 대중서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나고스키는 성욕을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그녀의 공식 자료도 성적 기질, 성적 단서, 억제 요인, 맥락을 파악하는 워크시트를 제공합니다. 이 관점은 드 롭의 성 에너지론을 현대적으로 바꾼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 에너지가 “안에서 솟는 힘”이라면, 현대 성심리학은 “그 힘이 어떤 맥락에서 켜지고 꺼지는가”를 묻습니다.
넷째, 푸코 이후 성은 <자연적 에너지>가 아니라 <권력과 담론이 만든 대상>으로 분석되었습니다.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의 <성의 역사 The History of Sexuality>는 프랑스어 원서는 1976년에 나왔고, 영어권에는 1978년부터 번역되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책은 “모든 개인에게 sexuality가 있다”는 생각 자체가 서구 근대에서 생긴 비교적 최근의 구성물이라고 분석합니다.
푸코의 관점에서 보면, 드 롭의 “성 에너지”도 순수한 자연이 아닙니다. 성을 생명력, 본능, 해방의 힘으로 말하는 방식 자체가 근대적 성 담론의 한 형태일 수 있습니다. 푸코는 억압 가설도 의심합니다. 즉 근대 사회가 성을 단순히 억압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게 하고, 고백하게 하고, 분류하게 하고, 치료하게 하고, 정체성화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은 에너지가 아니라 <진리 생산의 장치>가 됩니다.
이 흐름은 마광수와 비교할 때도 중요합니다. 마광수는 “한국 사회가 성을 억압한다”고 말했습니다. 대체로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푸코식으로 보면, 억압만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는 성을 억압하면서 동시에 성을 고백하게 하고, 평가하게 하고, 병리화하고, 상품화합니다. 그러므로 성해방론은 “말하게 하라”에서 멈추면 안 되고, “누가 어떤 제도 안에서 성을 말하게 하는가”까지 물어야 합니다.
다섯째, 페미니즘과 젠더 연구는 성 에너지론의 남성중심성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1970년대 이후 영어권 페미니즘은 성을 단순한 해방의 영역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성은 쾌락의 장이면서 동시에 강간, 가정폭력, 성희롱, 포르노그래피, 성매매, 재생산 통제, 임신과 낙태, 의료 권력의 문제와 연결됩니다. 즉 “성욕을 해방하자”는 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누구의 욕망이 해방되는가, 누가 대상화되는가, 동의는 어떻게 성립하는가, 경제적·젠더적 권력 차이는 어떻게 작동하는가가 핵심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드 롭의 성 에너지론은 낡아 보입니다. 그는 성을 생명력과 의식의 문제로 넓게 보았지만, 젠더 권력과 동의의 문제를 오늘날 기준만큼 깊이 다루지는 못했습니다. 마광수도 비슷한 한계를 가집니다. 성적 자유를 옹호했지만, 그 자유가 남성의 욕망 표현 자유에 치우칠 때 여성에게 어떤 부담을 주는지는 충분히 분석하지 못했습니다.
여섯째, 퀴어 이론은 성을 <남녀의 자연적 결합>이라는 틀에서 해방시켰습니다. 킨제이 연구는 이미 1940~50년대에 성적 행동과 욕망이 이성애/동성애의 단순한 이분법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킨제이 연구팀은 수천 명을 인터뷰했고, 성적 행동·생각·감정이 시간에 따라 변하며, 배타적 이성애/동성애 범주에 항상 들어맞지 않는다는 점을 제시했습니다. 이후 퀴어 이론은 성적 정체성 자체가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역사적·사회적·언어적 구성 속에서 형성된다고 보았습니다.
이것도 드 롭의 틀을 크게 넘어섭니다. 드 롭은 인간과 동물, 암수, 생식, 성충동의 연속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퀴어 이론은 성을 생식과 암수 이분법으로 환원하지 않습니다. 성은 쾌락, 정체성, 수행, 관계, 몸의 양식, 사회적 인정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현대 영어권 성론에서 성 에너지는 더 이상 “남녀를 끌어당기는 자연력”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양한 몸과 정체성, 관계 형식 속에서 다르게 조직되는 욕망의 장입니다.
일곱째, 진화심리학과 생물학은 드 롭의 자연사적 관심을 새롭게 이어갔습니다. 데이비드 버스 David Buss, 사라 블래퍼 허디 Sarah Blaffer Hrdy, 제프리 밀러 Geoffrey Miller 같은 저자들은 배우자 선택, 질투, 성적 경쟁, 부모투자, 성선택, 인간 짝짓기 전략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이 흐름은 드 롭과 가까운 면이 있습니다. 인간의 성을 동물성과 진화의 연속선에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대 진화심리학은 드 롭보다 더 자료 중심적이고, 통계·비교문화·실험 연구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 흐름도 비판을 받았습니다. 진화심리학은 때로 현대의 젠더 불평등을 자연화하거나, 남성의 성적 공격성과 여성의 선택성을 지나치게 본질화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생물학적 설명과 사회구성주의 설명을 함께 보려는 방향이 강합니다. 성은 진화의 산물이지만, 그것이 곧 현재 사회의 성규범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덟째, 성치료와 관계심리학에서는 <성적 수행>보다 <쾌락, 친밀감, 의사소통, 동의>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초기 성치료는 발기, 오르가슴, 사정, 불감증 같은 기능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성적 만족, 관계의 안전감, 트라우마, 수치심, 스트레스, 노화, 장애, 약물, 우울, 장기 관계의 욕망 변화 등을 함께 봅니다. 나고스키의 최근 논의도 장기 관계에서 “항상 불꽃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신화를 비판하고, 신뢰·쾌락·우정·의도적 연결을 강조합니다.
정리하면, 드 롭 이후 영어권의 발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 에너지> → <성 반응의 생리학>
<리비도> → <흥분/억제의 조절 체계>
<본능적 성욕> → <맥락 속에서 생기는 욕망>
<자연적 성> → <권력과 담론이 구성한 sexuality>
<남녀 생식 중심> → <퀴어한 몸과 정체성의 다양성>
<해방으로서의 성> → <동의·권력·젠더 정의의 문제>
<수행 중심 성치료> → <쾌락·친밀감·관계 윤리 중심 성치료>
제 평가로는, 드 롭의 성 에너지론은 오늘날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넓고 느슨합니다. “성 에너지”라는 말은 생물학, 심리학, 욕망, 영성, 창조성, 생식력을 한꺼번에 담기 때문에 매력적이지만, 분석적으로는 애매합니다. 하지만 그의 장점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는 성을 부끄러운 사생활이나 도덕 문제가 아니라, 생명과 인간 이해의 중심 문제로 보았습니다. 그 직관은 맞았습니다.
현대 영어권 성론은 그 직관을 더 정교하게 만들었습니다. 성은 단순히 몸 안에 쌓인 에너지가 아닙니다. 성은 신체 반응이고, 뇌의 조절 체계이고, 관계의 맥락이고, 권력의 산물이고, 문화적 언어이고, 쾌락의 기술이며, 윤리적 책임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오늘 드 롭을 다시 읽는다면, 그는 <성 에너지론의 완성자>가 아니라 <성에 대한 통합적 질문을 던진 초기 대중 사상가>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의 뒤를 이은 영어권 논의는 그 에너지를 여러 층위로 쪼개어, 훨씬 더 복잡하고 현실적인 성 이해로 발전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