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8

강남순 예수의 부활, ’주변부적 존재들의 부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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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순

< 예수의 부활, ’주변부적 존재들의 부활’로>

1. 한국보다 시간이 늦은 미국은 오늘(4월 17일)이 부활절이라고 곳곳에서 갖가지 행사를 한다. 부활절은 미국내의 이동인구가 참으로 많은 절기다. 종합 대학교의 체육관까지 문을 닫는다. 자동차를 타고 오가며 듣는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FM 방송에서는 일요일이면 특정 기독교 교회나 단체가 기부금을 내면서 하는 방송이 나오곤 한다. 오늘 외출하여 운전하면서 평소에 듣던 FM 방송을 켜니, 신부와 목사가 방송에 나와서 ‘부활절 메시지’를 전한다. 그 부활절 메시지들은 별로 특이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필경 한국의 많은 교회들에서도 대부분 비슷한 내용으로 부활 메시지가 구성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2. 그 부활절 메시지를 요약하라면 나는 “상투성의 극치”라고 할 것이다. 나는 사람간의 관계에서든 또는 읽기나 쓰기, 듣기나 말하기 행위 등 그 어떤 것에서든 이 ‘상투성’을 극도로 경계한다. ‘상투화’는 우리가 지닌 생명 에너지를 잠식시키는, 삶에 대한 무관심의 결정적 표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상투성의 극치’라고 표현한 부활절 메시지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여 승천하신 우리의 구세주 예수, 악의 세력으로부터 승리하신 구세주”를 그 메시지의 핵심으로 구성된다. 

3. 우리가 접하는 예수의 삶과 가르침은 66권의 책으로 구성된 성서에서 4권의 책이라는 지극히 일부분에서만 등장한다. 그것도 예수 스스로 쓴 것이 아니라 제3자의 시선과 해석으로 구성된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예수의 삶과 메시지에  지속적인 의미 부여를 해야 한다면, 예수의 ‘죽음’과 ‘부활’ 사건은 서로 분리되어야 한다. 이 둘은 각기 다른 ‘사건’이며, 각기 다른 ‘의미와 해석’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과제’로 우리에게 남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부활절에 크고 작은 교회들의 목회자들은 도대체 예수의 ‘부활 사건’을 지금의 한국이나 세계적 정황에서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이들과 어떻게 연관시키는 메시지를 전했을까.
 
4. 스스로 거주할 집조차 없는 사람으로 자신이 ‘노숙인’임을 밝힌 예수, 저학력자 예수, 사회에서 ‘가장 주변부에 있는 이들 (the Least)’에게 환대, 연대, 연민, 사랑을 베푸는 것이 바로 ‘나의 제자’가 되는 것이라고 가르쳤던 그 예수의 삶과 메시지는, 부활절마다 강조되고 칭송받는 ‘승리의 구세주’ 모습과는 참으로 멀다. 오죽하면 3년을 동고동락하던 제자들조차도 소위 ‘부활의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지 않았는가. 이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5. 이제 부활절이 지나고 4월 20일이면 장애인의 날이다. 한국은 장애인에게 극도로 적대적인 나라라는 것을 나는 한쪽 다리만으로 살아가는 소위 장애인 친구와 일 주일간 한국의 여러 곳을 다니면서 몸으로 경험했다. 미국에서 함께 공부하고 그 당시 캐나다의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었던 나의 친구는, 병명을 알 수 없는 이유로 한 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고,  늘 목발을 짚고서 다녀야 했다. 그와 함께 경험한 한국은 대중교통은 물론 음식점, 카페, 책방 등 여러 종류의 건물들, 그리고 장애를 가진 나의 친구를 ‘비정상’으로 보면서 ‘불쌍함의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복합적인 적대의 현장이었다. ‘비장애인’으로 살았던 내가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참으로 마음 아프고 암담한 경험이었다. 우리는 같은 세상에 살아도, 실제로 같은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했던 경험이었다. 장애여부, 젠더, 성적 지향, 국적, 외모 등 갖가지 요소에 의해서 우리는 각기 다른 평등, 환대/적대, 혐오와 배제의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6.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여성의 날, 어린이 날, 장애인의 날,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세계 난민의 날 등 특별한 날에만 호명되는 이들이 있다. 여성, 어린이, 장애인, 성소수자, 난민 등 이렇게 1년에 한 번씩 특별한 날에 호명되는 이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한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다양한 차원에서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존재, 중심부에서 밀려난 ‘주변부적 존재’라는 점이다. 이들을 특별한 날에라도 호명해야 하는 이유는 여전히 차고 넘친다. 한 나라의 선진성 또는 후진성은 이렇게 특별한 날에 호명되는 이들에 대하여 어떠한 사회적-윤리적 책임성이 시민들의 인식 속에 ‘상식’처럼 자리 잡고 있으며, 이들의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매일의 일상 세계에서의 차원은 물론 제도적 보호장치가 확보되는가에 달려있다.

7.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형교회들’이 곳곳에 있는 한국의 기독교회들에서, 부활절에 어떠한 부활절 메시지들이 전해졌을까.  예수 부활의 현대적 의미를 ‘주변부적 존재들의 부활’로 해석하고, 그 주변부적 존재들이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도록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고, 사회적-법적 장치를 개선하고자 결단하는 ‘변혁의 날’로 만든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으로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라고 나는 본다. 돈과 권력을 지닌 한국의 대형교회들에서 예수 부활의 의미란 결국 예수의 삶과 가르침의 부활, 즉 ‘주변부적 존재들의 부활’ 이라고 하는 인식을 확장하기만 해도, 한국사회는 그 후진국성에서 한 걸음 벗어나는 계기를 만들게 될 것이다. 

8. 고정된 교리안에 갇힌 예수, 그리고 그 예수의 ‘부활’이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비인간화의 현실세계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면, 도대체 한국에서 기독교회들의 존재 이유란 무엇인가. “유일한 크리스쳔이 있었는데, 그는 십자가에서 죽었다(There was only one Christian, and he died on the cross)”는 누군가의 탄식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25 comments
Felix Hwang
오랜만에 접하는 교수님 명징한 글에 감사하고,
저 또한 ‘상투성’ 가득하게
보내는 개념과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네요.
철학자 예수를 생각하며…
14 h
강남순
황해원 네, 오랜만에 페북에 글을 남깁니다.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나누고 싶은 생각들이 많은데, 어찌보면 너무 많아서 차라리 침묵하게 되는 것 같네요. 제 글을 이렇게 늘 열린마음으로 읽으시는 그 시선, 고마워요.
13 h
賞心悦目
한국 기독교 교회들의 존재 이유는 "나는 선택받았다. 따라서 내겐 너에게 없는 권리가 있고 우리의 규정을 따르면 그 멤버쉽을 나눠준다"는 취지로 세운 걸로 보입니다. 부활절 자체를 성탄절보다 덜 중요시하기도 하구요.
14 hEdited
박기헌
기후생태 위기 시대, 탈성장, 저성장, 탈동조 등 여러 패러다임을 이야기하는데 대형교회, 과소비에서 벗어나 '작은 것', 예수의 가난, 청빈을 꼭 좀 다시 떠올렸으면 합니다.
14 h
Young Ok Park
3. 66권
14 hEdited
강남순
Young Ok Park 제가 왜 66권을 63권이라고 썼는지 모르겠네요.🙂 세밀하게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13 h
Young Ok Park
강남순 상투적인 말이 난무하는 시대에 올곧은 사고를 하고 올곧은 삶을 살도록 올곧은 목소리를 내어주셔서 늘 고맙습니다.
12 hEdited
Young Mae Kim
교수님 잘 계시겠지…했지만 페북 포스팅을 보니 반갑고 안심이 됩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지만 멈춰 생각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살아있음, 살아감, 살라는 명령…부활은 불가능한 것에 도전한다는 표현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건강하세요!!
13 h
강남순
요즈음 여러 일들로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그래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김 선생님처럼 저를 염려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니 든든하네요.🙂 선생님도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잘 지켜내시며 지내시기 바래요.
13 h
지희경
며칠 전에 정우목 쌤 포함한 이론그룹원 몇 명이 모여서 나누었던 토론내용 중 한 가지에요^^ 우리모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다 결이 비슷할 거란 말을 했었는데, 이 글을 보니 역시 닮았어요!
공유합니다.
13 hEdited
김미옥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장애인에게 적대적인 나라, 현실에 고개 돌리는 교회의 나라... 오늘 선생님 글에 눈이 충혈됩니다.
13 h
강남순
김미옥 한국에서 주변부인들에 대한 적대적 현실을 아픔으로 느끼시는 선생님 같은 분들이 계시는 것--그래도 깊은 절망의 늪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충혈된 눈'--무엇보다도 소중한 연민과 연대의 몸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을 이 공간에 남겨주셔서 반갑고 감사합니다.
8 h
임원
차별 혐오 배제라는 죽음으로부터 부활이군요
12 h
JeongHyun Yoo
강남순교수님
감사합니다.
12 h
한인섭
  · 
마태 27:52-53. 부활을 단독자가 아니라 다수자의 사건으로 쓰고 있는데, 버려도 되는 구절인지요?
12 h
강남순
한인섭 성서는 (특히 예수와 연관된 성서구절들은), 사실적 표현이 아닌 은유적 표현으로 가득하지요. 예수가 '다시 태어남'의 메시지도 생물학적인 사실적 다시 태어남이 아닌 것 처럼요.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하자면, 저는 교수님께서 언급하시는 이 구절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략 의역하자면 '무덤들이 열리고, 깊은 잠속에 빠졌던 거룩함을 받은 이들이 일어났다고 하는 것, 예수의 부활이후 그들이 무덤으로부터 나와서 거… See more
8 h
이상옥
부활절 예배를 여울교회 오현선 목사님과 비대면 줌 예배로 드렸습니다.
교수님이 하신 말씀과 핵심은 같았습니다. 근래 로보트 프라이스의 신약성서의 탄생을 읽고 있는데 망치로 머리를 한대 맞은 기분입니다. 빛고을에 오신다는 소식들었습니다. 뵐 날이 기다려집니다. 감사합니다.
11 hEdited
강남순
이상옥 아 그러셨군요. 의미로운 부활절 예배를 드리셨군요. 네, 6월 21일 오후 7시에 광주의 <다문화평화연구소>에서 '인권과 철학'을 주제로 강연을 합니다. 광주에서 반갑게 뵙게 되기 바랍니다.
8 h
Hs Kang
4권의 복음서중 예수가 가장 화를 냈던 부분이 바로 성전에서 장사하던 이들을 향해 채찍을 휘두르던 성전정화 사건이죠 교수님 글을 읽으며 비로서 예수 분노의 포인트를 봅니다 그들이 돈을 벌던 대상이 '주변부적 존재' 였던거죠 그들을 챙기고 보살핌이 교회의 사명이고, 더불어 그들의 삶의 부활을 위해 제도적보완장치의 확보에 동참하는 것이 크리스찬의 몫임을 다시금 가슴에 담아봅니다 고맙습니다
Living well together ❤️
11 hEdited
강남순
Hs Kang 이렇게 저의 글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적용하시니, 반갑고 감사합니다. 제가 <이론 그룹>에서 종종 언급하던 데리다의 말도 이렇게 잘 기억하고 계시니, 더욱 반갑구요.
8 h
Chung Jinyoung
선생님 강의도 여러 차례 듣고, 올리시는 글도 빼놓지 않고 읽고 있습니다만, 이땅의 교회와 사회 전반을 향해 백 번 천 번 말해도 넘치거 지나치지 않는 말들입니다. 고맙습니다.
10 h
강남순
Chung Jinyoung 저의 말과 글을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신다니, 제게 에너지를 주시네요. 감사합니다.
8 h
범은경
교수님 포스팅이 부활절을 보내는 제게 가장 큰 은혜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