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2

기독교와 불교, 목표는 하나…신과 하나되어 유한성 극복하는 것 : 벗님글방 : 휴심정 : 뉴스 : 한겨레

기독교와 불교, 목표는 하나…신과 하나되어 유한성 극복하는 것 : 벗님글방 : 휴심정 : 뉴스 : 한겨레:


기독교와 불교, 목표는 하나…신과 하나되어 유한성 극복하는 것

등록 :2022-03-11

도(道)는 아무런 걸림이 없는 허공과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이 균형을 유지하며 완전하여 모양이 없다.(圓同太虛 無欠無餘, 信心銘) 온 세상에는 시공(時空)이 끊어진(마음을 비운) 보편적인 하나님(부처님)으로 충만하여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 즉 마음자리(光明)의 작용을 보게 되며’, 형상(相)이 본래 형상(相)이 아닌 것을 알면 여래(神)의 모습을 보게 된다.(금강경) 하나님은 오직 한(One) 생명으로 온 세상에 충만하며(諸法實相), 그 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 왜냐하면 실상(生命)인 하나님(부처님) 외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헛되고 헛된 허상’(諸法空)으로 꿈과 그림자와 같기 때문이다.(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금강경)


하나(One)의 진리인 하나님(부처님)을 현대물리학은 ‘우주에는 오직 에너지뿐이다’(에너지 一元論)라는 명제로 증명하고 있다. 인도의 성자(聖者)인 라마나 마하리쉬는 “모든 종교가 만나는 그 한 지점은, 신(神)이 모든 것이고 모든 것이 신(神)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예수가 이 세상(코스모스·몸과 마음)에 오신 목적은 우리가 하나(One)의 실상을 바로 보도록 하기 위함이다.(正見)

신(神)은 구약의 질투하고 징벌하는 창조주의 신과 같이 주객이 나누어지는 외부의 신이 아니며, 궁극적 하나(One)의 진리(生命)이다. 따라서 이원적 창조주인 신은 ‘아비 마귀, 살인한 자, 거짓말쟁이 그리고 거짓의 아비’로서 대상의 신이기 때문에 ‘죽음의 신학자’들은 신은 죽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 분(One)이 아닌 주객의 이원으로 나누어지는 신에게 ‘왜 이 세상에 악이 있는가?’(신정신·神正論)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철학자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주장한 것은 20세기 서양인들에게는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예수에게는 원죄·처벌·심판과 같은 관념이 없었으며, 하나님과 인간과의 일체화를 자신의 즐거운 소식으로 살았다’고 하였다. 따라서 믿음은 ‘하나의 진리’(신의 현존)에 대한 신뢰(信心不二)와 마음의 눈(영안·靈眼)을 뜨는 것이다.

‘전체로서 하나(One)인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는 시공(時空), 주객을 초월한 진리(생명)이며(無所不在), 참나(靈)인 내 마음의 본질 즉 본래 성품이다.(我是而成佛) 또한 전적으로 타자(他者)가 될 수 없고, 우주적 생명(One)의 궁극이며 전체적 공동의 생명이 바로 편재하는 하나님이며 부처님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깨달은 자)는 ‘하나님과 하나(One)’가 된 자이며 신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는 우리들이 ‘하나님과 하나(One)’가 되기 위하여 즉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도록’ 간절히 기도하셨다. 즉 타락한 죄인이 구원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원성의 거짓된 나(겉 사람·ego)로부터 벗어나 하나(One)인 참나(속사람·靈)를 깨닫도록 하는 기도이다.

자신의 신적인 본성(神性)을 잊어버린 기독교인은 죄인이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도의 성자 라마크리슈나는 종교의 단일성을 주장하면서 “예배실에 모여서 신을 생각하고, 이름을 부르며, 찬양을 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지만, 영적이어야 하며 더불어 스스로 진리(神性)를 깨우쳐야 한다”고 하였다.

신학자 틸리히는 신비적 현존(現存)인 하나님(부처님)을 ‘존재의 근거’라고, 샤르댕 신부는 ‘순수 에너지’(One)라고, 심층 생태론자는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기독교와 불교가 목표로 하는 것은 우리가 본래 성품인 무한한 하나님(부처님)과 하나(One)가 되어 유한성(ego)을 극복하는 영원한 환희이다.(成佛).

우리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은 온 세상에 충만한 하나님(부처님)을 깨닫기 위해서이며, 이러한 하나(One)의 진리를 깨닫는 방법 중 하나는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의 말씀처럼 시간을 초월한 묵상기도, 명상, 참선, 침묵 수행 등이다. 왜냐하면 하나님(부처님)은 모든 감각을 초월한 궁극적 경험의 영역이며, 모든 것은 오직 한(One)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一切唯心造, 화엄경)

글 구자만(개신교 장로· 신학자· 신흥지앤티 회장)


연재[휴심정] 구자만의 종교회통


예수와 부처는 영적인 눈을 뜨게하려 왔다
등록 :2021-12-03

예수와 부처의 가르침이란 온 우주에는 하나(One)의 진리(생명)로 충만하며, 그 외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물의 겉모습인 허상을 진리의 실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 바로 죄이며(요 9: 41), 또한 모든 형상 있는 것은 허망하니, 형상을 본래 형상이 아닌 것을 알면, 진리(One)의 모습을 보게 된다. 우주를 전체로서 하나(One)인 것으로 보는 ‘자유와 구원의 자리인 진리’(요 8:32)는 여러 가지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으며, ‘비유와 상징’ 에 대하여 장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물 안의 개구리에게 바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공간의 구속을 받고 있기 때문이며, 깨달음이 아닌 인간의 유한한 것으로 무한한 것을 이해한다면 결국 위험에 빠질 것이다”.
유한 상대적인 세계(ego)에 살고 있는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한 절대적인 세계(One)인 진리(神)를 논(論)할 때 결국 ‘비유와 상징’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영(靈)의 전체성이 아닌 오직 문자나 언어적 해석’(고후 3:6, 고전 1:17)에 의한 독선과 배타성을 버려야 하며, 또한 ‘영적인 진리’(One)는 오직 기독교만 독점할 수 없다(마 5:45).

 ‘언어의 한계를 넘어선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진리(神)’는 범신론을 주장하는 신플라톤주의자들에 의하여 ‘지고(至高)의 일자(一者)’ 즉 ‘만유가 그곳으로부터 나오고 또 그리로 돌아가는 곳’으로 설명된다. 플로티누스는 ‘일자(一者)란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고, 엑카르트는 ‘하나님 외부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은 전체성이며 세계의 근원이다’고 하였다. 또한 바가바드 기따에서는 ‘영혼이 해방된 자는 모든 것이 브라흐만(神)이라는 확신을 갖는 자’라고 한다. 따라서 말의 지혜로 만들어낸 신이 진짜 신이라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믿도록 강요하는 것은 무지 때문이다(고전 1:17).
모든 것은 시시각각 변화하며 사라지는 꿈과 안개와 같지만(諸行無常), 시공을 초월한 진리(One)는 영원하며, 또한 성경 속에 있는 예수의 가르침(진리)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세계이다. 아인슈타인은 ‘우주는 따로 떼어질 수 없는 에너지의 역동적인 그물(網)이다’(에너지 一元論, E=mc²)라고 ‘하나(One)의 진리(神性)’를 설명한다. 이러한 진리(One)에대하여 현대 과학자들은 ‘물질은 존재하지 않으며 전자기장(電子氣場)의 빛으로 충만해 있다’는 것으로 증명하고 있다.
온 우주에는 ‘생명의 빛인 그리스도로 충만하고”(요 8:12, 롬 1:20), 불성의 광명이 두루 해 있으며(光明邊照), 모든 것은 오직 진리(생명)인 브라흐만(Brahman) 뿐이다. 진리복음에서는 “아버지 자신 외에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가? 만물이 그에게서 나온 것들이다”고 하며(롬 11:36), 만물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된 것이다(요 1:3). 여기서 그리스도는 역사적 나사렛 예수가 아니라 모든 것의 바탕이며, 진리(생명)인 神性(energy)이며, 상대적인 것을 초월한 절대적인 하나(One)이다(골 3:11).
예수와 부처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은 불이의 진리를 드러내기 위한 것(요 18:37) 즉 “나는 본래 신(부처)이다”(我是而成佛, 요 10:34)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함인 ‘영안(靈眼)의 눈뜸’(One)(요 9:39)을 위함이다.

예수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 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5-26)고 말씀하셨다.
주관과 객관, 선과 악 등의 이원성(ego)을 초월한 절대 무차별의 전체성으로 또한 한결같이 “있는 그대로” 낙관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無爲自然). 우리는 둘이 아닌 근본자리를 깨닫고 만물과 하나(One)가 될 때(요 2:4, 갈 3:28) 즉 진리가 시방세계에 두루 충만하게 있음을 자각할 때 바로 천국을 이루게 된다(요 17:21).
‘개체는 전체’(一卽多)이므로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스스로 진리(One)대로 만족과 평화로움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다. 불이의 진리(One)에 의하여 창조주와 피조물, 신과 인간, 마음(靈)과 물질 등의 이원적 분별은 모두 유기적 관계의 하나 속으로 사라진다. 현대과학은 물질을 형성하는 원자는 텅 빈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든 것은 에너지의 상호변화로서 근원은 하나라고 한다(心物一元, 퇴계). 진리인 ‘근본 성품’(神性)은 우주에 편재하는 영(靈)으로 예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동일하며(요 15:27), “부처의 마음은 중생의 마음과 아무 차별이 없는 하나(One)이다”(화엄경). 미즈마로 교수는 “절대자로서의 신이 상대자인 인간과 상대적인 관계를 맺는다면, 그 신은 절대자 이름을 가진 상대자에 불과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불이의 진리 안에서는 생사문제 조차도 대립이 아니라, 서로를 도와주는 상보적이며, 순리적인 현상이다. 고통을 벗어나 행복하게 사는 길은 영원한 진리인 ‘자신의 생명’(true Self)을 되찾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사물의 본질(One)을 깨닫는 것이다. 즉 생각을 억지로 고요하게 할 것이 아니라, 나와 우주 만물이 “하나(One)의 생명”(神)이라는 것을 믿고, 신의 뜻 즉 천지 우주의 오묘한 순리에 따른 삶이다.
우리의 고통과 공포가 시작되는 것은 ‘무한한 존재’(true Self)라는 참된 성품에 한계를 정하고 유한한 존재라고 여기는 에고(아집)때문이다. 예수는 모든 문제의 해결은 절대(One)에 있는 것이므로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비유하여 ‘하나(One)의 진리’를 설명하고 있다. 공중의 새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날아다니게 하는 영원한 ‘하나의 생명’(true Self)은 똑 같이 우리의 내면에도 신비롭게 작용하고 있다. 남전(南泉)선사가 ‘평상심이 도’라고 한 것같이 집착하지 않는 청정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수행이고, 해탈이고, 도이다.
글 구자만/개신교 장로& 신학박사 &신흥지앤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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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을 넘어서야 절대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
등록 :2021-11-24

독일 신학자인 불트만은 성경을 설명하고 있는 서구신학의 세계관과 하나님의 개념은 현대과학의 인식에서 보면 시대에 맞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동양신학은 현대과학의 발전 특히 양자 물리학과 상대성 이론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으며, 또한 진리는 둘이 아니라 하나(One)라는 “예수의 온전한 가르침”을 잘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가 점점 쇠퇴하고 있는 원인은 동양사상과 현대 과학이 증명하고 있는 불이일원론(不二一元論)과 유기체적 통합성인 “하나(One)의 진리”(마 23:9, 갈 3:20)를 외면하고, 이원성의 서구적 사유(ego)로 성경을 해석함으로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외면한 탓이다. 다원신학(多元神學)을 펼친 함석헌선생은 “진리는 하나(One)라는 것을 거부한 모든 종교는 장래에 결국 몰락할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점점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 원하시며(딘 2:4), 모든 만물과 사람 안에서 활동하고 계신다.(행 17:28) 따라서 이 말씀이 진리라면 기독교 외의 다른 사상에서도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시므로 동양사상 역시 “하나님의 보편적인 계시”(롬 1:20)로 보아도 무방하다. 과거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드류 신학대 석좌교수인 스위트는 “성경연구를 나누고 쪼개는 분리(ego)의 서구식이 아니라 상반된 요소를 통합적(One)으로 접근하는 동양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뉴욕 유니온 신학대학원의 폴 니터교수가 대학원의 강의 교재로 출판한 <붓다 없이 나는 그리스도인 일 수 없었다>는 책 역시 둘이 아닌 진리(One)의 보편성을 설명하고 있다. 분석심리학자인 융은 동양사상이 점점 많은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면서 “유한한 물질적 삶에 지친 현대인이 정신적 삶에 매혹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학자 데이비드 트레이시는 “다른 동양의 종교들과 심각한 대화를 하지 않고 기독교 조직신학을 논의하는 것은 이제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하면서 서구 이분법적 사상으로는 과거와 다른 현대인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음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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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리는 희랍의 철학에 영향을 받아 전체성을 보지 못한다. 뜨거운 사막만 계속되는 건조한 사막문화와 기계론적 세계관에 의해 “이것이냐 저것이냐”(either-or)로 서로 나누는 서구의 배타주의 방식의 틀 아래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분리를 강조하는 서구의 “상대적이며, 이원론적인 세계관”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는 적절하지 않다는 “현대물리학이나 ‘이것도 저것도’(both-and)의 전일성(One)과 상보성을 주장하는 동양사상” 이원론적 세계관인 기독교는 비이원론적인 “현대물리학과 동일하게 주장하는 동양의 사상”에 의하여 심각한 자기정체성의 위기에 직면에 있다. 양자역학의 탄생에 크게 기여한 하이젠베르크는 “주체와 객체, 신과 인간, 육체와 영혼으로 나누는 것은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고, 아인슈타인은 “물질은 에너지이며, 물질과 공간은 단일한 전체의 분리될 수 없는 상호 의존적인 면이다”고 증명하였다. 따라서 성경은 기존 이원적 서구식 문화를 배척하는 새로운 시대(New Age)와 신과학시대에 따라 비이원적 동양사상 즉 “일체 존재의 모두가 신성(불성)뿐이다”(막 12:32)고 하는 ‘하나(One)의 진리(생명)’에 의하여 재해석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이다.
즉 무(無), 공(空), 기(氣), 선(禪) 등의 비이원성과도 다르다. 독일 신학자인 몰트만교수는 “21세기 신학의 과제는 유럽중심에서 아시아중심의 신학으로 옮겨야 한다.”고 하였다. 미국의 성공회 주교인 존 쉘비 스퐁 주교가 쓴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책 제목이 시사하듯 작금의 상황을 냉철하게 인식하여, 성경을 동양적 하나(One)의 진리로 재해석하여 서구적 이원론으로 왜곡된 현재의 교리를 시정하고, 기독교의 부흥을 위하여 새로운 신학을 정립하여야 한다. 즉 하루속히 하나(One)의 영적운동으로 물질주의라는 수렁에서 벗어나야 한다.
루터가 “본질로 돌아가자”고 말한 것처럼 지금의 세계 흐름은 초종교적 영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불안이 가득 찬 현대 사회는 믿음을 넘어 “불이(不二)의 진리”(One)를 바로 알고, 성공과 실패, 삶과 죽음 등을 초월함으로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누리는 거듭남이 요청된다(요 8:32). 이러한 하나(One)로 거듭남(覺)은 예수의 말씀을 불이인 동양적 문화로 잘 이해함으로써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지니는 새사람(true Self, 엡 4:24)이 되게 하며, 분별과 시비(ego)를 초월한 자타일체(自他一切)의 무한한 사랑과 용서가 넘치게 한다. 하나(One)의 진리인 신성(true Self)의 자각은 “진리(One)에 눈을 뜨게 하며”(눅 10:23), 인격의 완성과 더불어 자아(ego)중심에서 실재(One)중심으로 변화되게 한다. 즉 개체적인 삶(ego)의 고통에서 벗어나 전체적(영적)인 삶(One)의 절대행복의 경지를 맛보게 한다.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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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궁극적 의미와 그에 따른 인생을 어떻게 살지를 고심하는 자, 문자주의를 벗어나 예수의 온전한 진리(One)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는 자(요 18:37), 거듭남으로 많은 선지자들이 보지도 듣지도 못한 진리(One)를 체험하길 원하는 자(눅 10:24), “이 세계는 무엇이며,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자각하여 올바른 인생관과 가치관을 정립하고자 하는 자, 진리에 대한 無知 타파와 “참된 나”(神性)의 깨달음으로 영성을 더욱 풍성히 하려는 자, 아집을 버림으로 무아(無我)의 진리(One)를 깨달아 지금 여기서 천국의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 자(눅 17:21), 영혼을 정화시킴으로 높은 수준의 영적 성장을 이루고자 하는 자, 여러 가지의 문제 특히 악과 고통을 치유하고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여 자유와 행복인 “영생의 구원”(One)을 추구하는 자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아시아적 문화인 불이의 진리(One)로 역사하시는 성령에 귀를 기울어야한다.
지금의 상황은 이원성(二元性) 시대의 산물인 “서구 신학”을 벗어나 현대 과학시대와 초종교적 영성 시대의 산물인 “비이원성(One)의 신학”의 출현이 요구된다. 전 감리교신학대학 변선환 학장은 “종교의 등불은 달라도 빛은 하나이며, 타 종교에도 구원의 길이 있으므로 지구촌에서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현실과 그 진리성을 인정하되 종교간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종교를 배워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새로운 신학이 정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원적인 현 시대에 맞는 새로운 보편종교로서 합리적이면서, 하나(One)의 진리인 “동양신학(歸一神學)”이 움트는 계기를 기대한다. 또한 예수의 말씀인 “보아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마 13:13)의 영적 의미를 잘 이해하여 이 땅에 종교 간의 대화가 풍성해지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이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 모두 신성(참된 나)을 회복하는 깨달음(거듭남)을 통하여 지금 여기서 절대 행복인 “천국의 삶”(One)을 맛보길 기도한다(요 3:3).
글 구자만/신흥지앤티 회장 &신학자 &장로교회 원로장로
<필자소개>

구자만 신흥지앤티 회장 &신학자 &장로교회 원로장로.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자마자 신흥목재사를 차려 50년간 운영해온 신흥지앤티 구자만 회장이다. 연세대에서 석사를, 강남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며 신학을 공부한 신학자이자 장로교회 원로장로다. 좋아하던 골프까지 팽개치고 성경과 불경을 연구해 ‘신심명을 통한’<성경과 도마복음의 새로운 풀이>에 이어 <하나의 진리, 예수의 가르침>을 펴냈다. koojm@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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