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04

“인간화 실현된 세계야말로 예수의 하느님나라” : 종교 : 사회 : 뉴스 : 한겨레



“인간화 실현된 세계야말로 예수의 하느님나라” : 종교 : 사회 : 뉴스 : 한겨레




“인간화 실현된 세계야말로 예수의 하느님나라”

등록 :2019-06-05

인터뷰 | 원로 신학자 송기득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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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미신
십일조 목매는 한국 기독교 낳아
예수가 대신 속죄한다는 ‘대속론’
희생양 바친 유대교 제사에서 유래
인간을 비주체적 노예로 전락시켜

자유·평등·평화·정의 구현하는
인간 회복이 곧 하느님나라 만들기
예수는 로마 압제에 저항한 정치범


중학 시절 설교 듣고 평생 목사 결심
더 좋은 목자 되려 대학은 철학과로
류영모 강연 듣고는 더 넓은 세계로
늦깎이 교수 되곤 토착신학 길 개척
먼저 간 아내에게 쓴 편지 10권 출간


송기득 교수 앞에 그가 매일 산책길에서 주워 병상의 부인에게 선물했다는 솔방울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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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전남 순천시 봉화산 기슭에 머물고 있는 송기득(88) 교수를 찾았다. 봉화는 공동체의 위기에 타오른다. 그는 봉화다. 그러나 송 교수는 자신을 다 타버린 숯인 양 “이제 죽을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어인 발걸음이냐”고 했다. 대학을 정년 은퇴한 뒤 2001년부터 계간지 <신학비평>을 내고 이어 낸 <신학비평너머>마저 지난해 말로 폐간시켰으니 허언만은 아니다.


그런 그가 끝내 놓지 않는 단 하나의 글이 있다. ‘아내 정순애에게 보내는 편지’다. 그의 아내는 2016년 7월22일 96살을 일기로 ‘몸옷’을 벗었다. 대학생 때 여순사건으로 졸지에 남편을 잃고 전도사로 살며 아이 셋을 키우던, 11살 연상의 아내를 만나 그는 63년을 해로했다. 아내가 떠난 뒤 그는 매일처럼 870통의 편지를 써 10권째 책을 냈다. 별난 사랑이다. 아내는 63년을 살면서 늘 따뜻한 미소를 짓고, 한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쌍둥이 큰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 어릴 때도 엄마가 그랬느냐’고. 그중 한 딸은 어린 시절 너무 배가 고파 남의 집 고구마를 훔쳤는데, 그때 딱 한 번 어머니에게 매를 맞았다고 했다. 그때 고구마 주인이 집에 쫓아와 “전도사 딸도 남의 고구마를 훔치느냐”고 힐난하자 평생 말대답을 삼가던 어머니가 “전도사 딸은 사람이 아니다요?”라고 했단다. 인근 요양원에 사는 81살의 그 딸이 거동도 힘겨운 노구를 이끌고 점심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 수양아버지의 식사를 챙겨준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인간 송기득’만의 삶은 ‘특별한 사랑’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는 해창만이 바라다보이는 전남 고흥의 빈농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곱 식구 끼니가 어려운 집안 형편상 중학교 진학은 어렵다는 부모 몰래 연락선을 타고 여수로 가서 수산중학교에 합격하며 그의 신산한 삶이 시작됐다. 선산에서 소나무 몇 그루를 베어 판 돈으로 입학금을 내고 한 달에 쌀 한 말, 된장 한 단지, 간장 한 병 이외 더 이상 지원은 요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겨우 진학은 했으나 불도 때지 않는 토굴 같은 방에서 한겨울을 지내며 굶기를 밥 먹듯 했다. 그나마 수산중학교 1학년 때 1등을 하자 고향 수협의 추천으로 수산청에서 수산대학 졸업 때까지 장학금을 주겠다고 해 고생을 면할 만하자 그는 순천 매산중학교로 전학을 단행했다. 고향 교회에 봉사하러 왔던 여수 손양원 목사의 설교를 듣고는 ‘나도 목사가 되어야겠다’고 한 결심을 실행하기 위해 인근에 하나뿐이던 ‘미션스쿨’로 간 것이다.

또 그는 음으로 양으로 돌봐주던 보이열 선교사가 형편상 등록금이 싼 지방국립대를 가라고 하는데도 기어코 ‘미션스쿨’인 연세대에 합격했고, 연세대에 가려면 신학과를 가라는 요구도 거절하고 ‘무식한 목사가 안 되려면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며 철학과 진학을 결행했다. 그는 철학과 수석을 놓치지 않아 전 학년에서 한 명만 주는 전액 장학생으로 형편이 좀 나아지는 듯했으나 4학년 때 폐결핵으로 무려 3년 반이나 사투를 벌였다. 당시 광주 동광원에서 요양하면서 수양회 강연을 온 류영모의 강연을 들은 그는 “기독교 외엔 무지했고 알 필요도 없다고 여겼던 ‘좁은 우물’에서 나와 그리스도교만이 아닌 드넓은 보편 세계에 눈을 떴다”고 한다.



송기득 교수와 부인 정순애씨의 다정했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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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 뒤 그를 너무도 아낀 교수들의 천거로 학부 졸업생임에도 연세대 문과대 전임조교가 됐으나 5·16 쿠데타가 터져 군 미필자를 몰아냈다. 폐결핵을 앓다가 군대를 못 간 처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토건설단에 지원해 강원도 정선 탄광에서 1년간 중노동으로 군복무를 마쳤지만 복직을 시켜주지 않았다. 그는 그때 2개월 동안 무일푼으로 거지 행각을 하며 민초 구원자들을 만났다.

그는 폐결핵을 치료해주던 여의사 여성숙 선생이 시작한 목포의 한산촌에 내려가 불모지에서 폐병 환자 수용소를 짓기 시작했다. 여 선생의 친구로 한산촌에 자주 내려와 글을 쓰던 민중신학자 안병무와 인연을 맺은 것도 그때였다. 가난한 폐병 환자였던 그는 한산촌이 갈 곳 없는 폐결핵 환자들의 안식처로 계속 남기를 희망하며 헌신했다. 그러나 한산촌에 디아코니아수도회를 설립하기를 원했던 안병무·여성숙 선생에 의해 하루아침에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그로부터 53살에야 목원대에 안착할 때까지 10여년을 보따리 강사로 지내야 했다. 그는 목원대에서도 늦깎이 교수로 머물지 않고 민중신학과 여성신학, 한국신학을 개설해 토착신학의 길을 개척해갔다.

그는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미신이 그저 성서와 찬송가를 끼고 교회만 가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십일조만 바치면 복 받는다는 수준의 ‘한국 기독교’를 만들었다”고 한탄한다. 그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외골수 보수 기독교인에서 ‘탈신학’까지 치열히 고군분투하며 변신한 결과, 지금 ‘정통’이라는 이름의 기독교가 말하는 그리스도는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고 한다.

“당시 로마의 법은 신성에 대한 죄는 돌로 내려쳐 죽이고, 십자가형은 정치범에게만 하는 것이었다. 예수가 성전을 뒤엎은 날도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해방된 유월절이다. 예수는 로마 압제에 저항하다 정치범으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는 기독교의 핵심 진리인 ‘대속자 그리스도’는 예수 이전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한다. 즉 ‘자신이 저지른 죄를 예수가 대신 받아 자신의 죄를 사함 받는다는 대속론은 양이나 소, 순결한 처녀 같은 가엾은 희생제물을 바친 유대교의 제사 전통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예수는 ‘사람은 안식일(모든 것)의 주인’이라며 주인됨과 주체성을 천명했는데 대속론은 인간을 비주체적인 노예로 전락시킨다”고 지적했다. 노학자의 대미는 ‘인간’으로 귀결되었다.

“예수의 하느님나라 운동은 로마의 지배세력과 헤로데의 독재권력,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 체제의 집권자들이 일삼은 탄압과 착취로부터 이스라엘 민중이 해방되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실현하기 위한 인간 회복 운동이었다. 실제 예수는 하느님의 나라를 이 역사 안에 실현하기 위해서 온 삶을 다해 살다 처형당했다. 해방과 자유, 평등과 평화, 정의와 구원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인간화가 실현된 세계가 예수의 하느님나라다.”

그와 아내는 가정에서부터, 또 한산촌에서, 대학에서 그런 삶을 구현했다. 병상의 아내에게 산책길에서 주워 매일 선물했다는 솔방울을 보는 노신학자의 눈이 촉촉했다.

순천/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896702.html#csidx69d5e8e5cebf9c29f3d42d83b968e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