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2

기도 | 수경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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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수경 (지은이)엘도브2024-05-15






























책소개
‘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 ‘한반도 대운하’ 백지화를 위한 오체투지에 나서서 길바닥을 법당으로 삼아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간구했던 수경 스님. 수경 스님이 이번에는 작은 책을 통해 우리에게 왜 기도해야 하는지, 왜 기도가 필요한지를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들은 스님의 체험을 통해 나온 이야기들로 강한 주장이나 논리로 설득하려는 내용 없이도 우리의 공감을 자아낸다. 체험 없이는 나올 수 없는 이야기의 힘이다. 이 책은 ‘기도에 관한 스님의 체험 이야기’와 ‘화계사 주지로 있을 때 신도들과 기도하며 송독한 기도문’, ‘오체투지를 할 때의 심경을 밝힌 글’ 이렇게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목차


Ⅰ 수경 스님의 기도 이야기
1. 간월암에서 만난 관세음보살
2. “선승이라면서 염불이 웬 말입니까?”
3. 한 할머니의 49재
4. 좋은 삶의 방편, ‘기도’로서의 환경운동
5.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Ⅱ 기도문
1. 화계사 관음기도 발원문
2. 수험생을 위한 발원문
3. 타태아기 영가천혼 기도문

Ⅲ 오체투지
1. 오체투지의 길을 떠나면서
2. 만사가 ‘기도’여야 합니다


책속에서


P. 20 기도란 직면한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바로 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입니다. 그런 기도가 되려면 간절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지요. 목전에 죽음이 다가온 듯 절박해야 하는데, 일생에 그런 일이 몇 번이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일상이 기도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P. 24 기복을 위한 기도를 한다 할지라도 기도가 깊어지면 마음의 길은 마땅히 가야 할 곳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오로지 이기심으로 기도한다 해도 그 과정에서 적나라한 자신을 마주할 수밖에 없으므로 참회가 수반되게 마련입니다.
P. 25 기도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 불완전한 우리의 기도가 성취되었다면 그것은 불보살님들의 본원력이 작용한 것입니다. 그것이 가피입니다.
P. 28 참선, 염불, 간경이 모두 지혜의 완성이라는 한 목적의 다른 수단일 뿐입니다. 참선이든 염불이든 간경이든 중요한 것은 마음을 오로지 하는 것입니다. 간화선의 화두 역시 하나의 수단일 뿐입니다.
P. 45 간절하면 통하는 법입니다. 마음을 한곳으로 모아서 이미 내 안에 갖춰져 있는 원의 성취 조건을 발현시키는 것이 기도입니다.
P. 46 세상사를 보면 많은 사람이 하는 일마다 안 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춰 놓고는 무조건 잘 되기만을 빕니다. 기도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조건을 변화시키는 것이 기도입니다.
P. 49 의심을 달리 일컬어 의정 또는 의단이라고도 합니다. 의단은 의심을 즉물적으로 표현한 말로, ‘의심 덩어리’라는 것이지요. 그 의심 덩어리가 똘똘 뭉쳐서 오직 의심만 홀로 남은 상태를 일러 ‘의단독로’라고 하는 것이고요. 말과 생각의 길이 완벽하게 끊어진, 비유컨대 은산철벽에 가로막힌 상태입니다.
P. 60 작게 살고, 적게 쓰고, 감사하는 것만이 참회의 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오랜 습관과 전생과 금생의 온갖 업이 뒤엉킨 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불교환경운동의 정신적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P. 76 기도는 믿음의 적극적인 표현입니다. 강을 건너는 자가 사공을 믿듯이, 아이가 어머니를 무한정 신뢰하듯이, 불보살님께 모든 것을 믿고 맡기는 것이 기도입니다.
P. 83 현재의 인류 문명은 오만의 극한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인터넷은 이미 바벨탑과 다를 바 없습니다. 특정 종교를 불문하고 현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하심입니다. 불자들도 ‘깨닫기만 하면 너도 나도 부처’라는 태도가 아니라, 부처님께서 이루신 깨달음의 삶을 살아 내는 것이 절실한 때입니다.
P. 114 기도란 세상 속으로 스며드는 일입니다.
P. 117 기도란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P. 119 기도란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세상을 우러러보는 일입니다.
P. 121~123 나는 나의 기도가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를 바로 세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발원할 따름입니다. 세상을 제대로 보고 사물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로 서는 계기가 되어서 내가 변한 만큼이라도 세상이 변하고, 나와 인연이 닿은 생명들과 선한 기운을 나누어 평화의 싹을 틔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P. 130 기도란 상대를 섬김으로써 서로를 높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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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수경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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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화계사 주지 역임.
현 (사)세상과함께 한주.


이 책 맨 마지막 페이지에 실은 수경 스님의 약력은 위와 같이 간략하다. 스님이 그렇게 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스님의 뜻에 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약간의 부언으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수경 스님’ 하면, 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 한반도대운하 백지화를 위한 ‘오체투지’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강한 인상을 남겼고 그로 하여 ‘삼보일배’ ‘오체투지’는 이제 평화적 저항, 사회적 발언의 한 수단이 되었다.
수경 스님의 삼보일배, 오체투지는 어느 날 갑자기 선방 문을 박차고 나와 ‘할’을 외치고 ‘방’을 휘두르듯 한 일이 아니었다. 그 이전에 오랜 시간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떻게 현실 속에 구현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했다. 평생 도반인 도법, 연관 스님 등과 뜻을 모아 ‘선우도량’(1990년 창립)이라는 수행 결사체를 조직하여 ‘청정·화합·헌신의 승풍 진작’과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모색하기 위해 탁마했다. 이런 과정에서 ‘지리산 댐’ 문제가 불거졌고 ‘지리산 살리기 국민행동’ 상임대표(2000년)를 맡게 된 것이 환경 운동에 투신한 계기가 되었다. 이때도 스님의 문제의식은 무조건 지리산 댐 반대가 아니었다. 낙동강 오염 문제를 방치한 채 댐을 세워서 물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문제 해결 방식이 더 큰 문제라고 봤다. 당시 스님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지리산 댐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정부의 물 관리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지요. 현행 정부 정책으로는 지리산 댐을 포기하면 또 다른 곳에 댐을 세우려 할 것이니까요.”(경향신문, 2000.11.10. 조운찬 기자)
“지리산과 낙동강 그리고 내가 따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닌가. 내 수행과 내가 참여하는 운동이 일치하는 길을 찾고 싶었다.”(시사저널, 2001.05.17. 이문재 기자)
수경 스님은 이런 고뇌와 성찰의 시간 끝에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2001)를 맡아 ‘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2003년), ‘한반도 대운하’ 백지화를 위한 오체투지(2008년)에 나섰다. 삼보일배· 오체투지는 가톨릭, 개신교, 원불교, 불교 등 종교계의 성직자와 수행자가 연대하여 이룬 일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삼보일배는 65일 동안 322km, 오체투지는 124일 동안 350km의 길바닥을 교회와 법당으로 삼아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간구하는 기도였다.
현재 수경 스님은 ‘세상과함께’ 회원들이 보살의 길을 걷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으로 뒷방 노인 신세를 면하고 있다. 접기

최근작 : <기도>


출판사 제공 책소개



불안과 혼돈의 시대
수경 스님이 건네는 위안과 성찰
‘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 ‘한반도 대운하’ 백지화를 위한 오체투지에 나서서 길바닥을 법당으로 삼아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간구했던 수경 스님.
수경 스님이 이번에는 작은 책을 통해 우리에게 왜 기도해야 하는지, 왜 기도가 필요한지를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들은 스님의 체험을 통해 나온 이야기들로 강한 주장이나 논리로 설득하려는 내용 없이도 우리의 공감을 자아낸다. 체험 없이는 나올 수 없는 이야기의 힘이다. 이 책은 ‘기도에 관한 스님의 체험 이야기’와 ‘화계사 주지로 있을 때 신도들과 기도하며 송독한 기도문’, ‘오체투지를 할 때의 심경을 밝힌 글’ 이렇게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이유
책 소개에 앞서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연유부터 밝혀야 할 것 같다.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수경 스님은 한반도 대운하 백지화를 위한 ‘오체투지’ 이후 대외 활동을 중단했다. 본디 수경 스님은 오랜 세월 선방에서 화두를 참구한 선승이다. 이런 스님이 기후 위기나 생태 문제, 참선 수행에 관한 책이 아니라 ‘기도’를 주제로 한 책을 냈으니, 조금은 의아할 법도 하다. 당연한 의문인 듯하니, 이에 대해 답을 하는 것이 바른 순서일 듯하다.
애초에 이 책은 수경 스님이 ‘(사)세상과함께’(이하 세상과함께) 회원들에게 무언가 선물을 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세상과함께는 환경과 생태 문제 해결에 매진하는 환경단체와 환경운동가를 지원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나눔의 삶을 실천하는 봉사 단체다. 스님은 세상과함께 회원들이 늘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스님은 이들에게 공양하기 위해 대내용으로 작은 책을 구상했다. 그런데 이를 지켜본 몇몇 사람들이 세상과함께라는 단체의 취지에 비추어 봐도 여러 사람들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스님을 설득했다. 스님은 적이 망설이다가 “이런 얘기가 세상에 무슨 소용이 될지 모르겠으나, 정히 생각이 그렇다면 마음대로 하시오.” 해서 이렇게 『기도』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삶이 기도가 되게 하고, 기도가 삶이 되게
이 책 『기도』는 기도란 무엇인가를 설명하거나, 기도하는 법을 일러 주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왜 기도해야 하는지, 왜 기도가 필요한지를 스님의 체험을 통해 이야기한다. 그야말로 수경 스님의 기도 이야기다. 강하게 주장하지도, 논리적으로 설득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공감된다. 체험 없이는 나올 수 없는 이야기의 힘이다.

수경 스님은 참선 수행에서 화두 거각擧却이 잘 되어 의단독로疑團獨露한 경계와 염불로 일심불난一心不亂하여 삼매현전三昧現前한 경계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난행이니 이행이니, 자력이니 타력이니 하는 분별도 하지 말고 오로지 간절히 구하면 통한다고 말한다. 그 구하고 통하는 바를 삶의 원리로 삼자는 것이, 이 책 ‘기도’의 주제다.
수경 스님이 이 책에서 말하는 기도는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삶과 기도, 삶과 수행이 따로따로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삶이 기도가 되게 하고, 기도가 삶이 되게 하자는 것이다. 이는 ‘일상을 벗어나 따로 구해야 할 도가 없다’는 조사선祖師禪의 도리와도 통한다.

어떻게 일상이 기도가 되게 할 것인가?
이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부분은 수경 스님이 출가 초기 은사 스님을 모시고 살 때부터, 화계사 주지,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로서 살아오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왜 기도해야 하는지를 밝혔다. 둘째 부분은 화계사 주지 소임을 살 때 신도들과 기도하면서 송독한 기도문이다. 화계사라는 특정 사찰과 시점에 구속되지 않는 보편성을 띤 기도문이므로 독자들이 처한 저마다 업의 문제를 감내하고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부분은 오체투지를 할 때의 심경을 밝힌 글이다. 이 글을 읽어 보면 수경 스님의 오체투지가 단순히 환경운동의 수단이 아니라 성찰과 참회의 기도였음을 알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일상을 어떻게 기도가 되게 할 것인지 깨닫는 바가 있을 터이다. 접기







‘그저 기도하라‘라는 책이 아니라 스님의 경험을 통해 사람들과 나눈 소통, 감동, 의로를 줍니다. 특히 <한 할머니의 49재>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였습니다.
야옹이 2024-04-25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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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일배 오체투지의 수경스님의 책!!! 이제껏 수경 스님의 책이 나온 적 없었는데, 너무나 읽고 싶어요 ㅠㅠ 기도라는 주제도 넘 와닿아요. 지금 시대는 정말이지 위안과 성찰이 필요한 듯요.
B.ok 2024-04-25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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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절박하지 않으면 일념을 이루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2. 된다, 안 된다는 생각도 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3.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인간의 불완전성과 유한성을 성찰하는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 세가지 글이 깊이 와 닿네.
박하정 2024-05-17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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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기도

삶을 살아감에 있어 하나의 지표가 되는 책이었습니다.잔잔하게, 때로는 격랑이 몰아치는 감동까지 오랜만에 좋은 글을 만났습니다.^^
별바라기 2024-05-01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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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읽고서...

수경 스님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와 샀습니다. 어찌나 반갑고 좋던지요. 사실 수경 스님이 책 내시는 일은 없으신가 싶어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오체투지, 삼보일배 때 그야말로 길바닥을 법당으로 삼아 구도의 길을 가셨던 수경 스님에 대한 존경심을 늘 마음속에 품고 있었습니다. 이 책을 받고 차례를 먼저 보면서 정말 좋았습니다. 기도에 대한 스님의 체험담부터 우리 모두를 위한 기도문 그리고 환경운동에 대한 스님의 마음까지... 늘 곁에 두고 오래오래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철홍 2024-05-02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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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읽고, 간화선에 대한 오해를 불식하다



지당한 얘기, 특히 종교적 당위에 입각한 글을 읽은 다음, ‘공감’보다는 ‘공허감’을 더 크게 느낄 때가 있다. 이상과 현실, 교리와 실천 사이의 괴리감 때문이다. ‘좋은 말씀, 옳은 얘기인 줄은 알겠는데, 그래서 어쩌라고요.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든데 어떻게 공자님 맹자님처럼 살겠어요’ 하는 반감이 들기도 한다. 그런 한편 마음 한 구석이 저리는 것도 사실이다. ‘남 탓’ ‘세상 탓’으로 자기방어에 급급한 애처로운 나 자신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이 책에서 말하는 ‘기도’는, 불교라는 종교를 떠나 ‘삶의 보편 원리’로서 기도다. 수경 스님이 말하는 기도는 ‘알뜰한 삶, 정성스런 삶’ 그 자체다. 그리고 그 기도의 성취는 ‘좋은 삶의 결과로서 복과 덕’이다. “우리의 삶과 목숨을 알뜰히 여기는 것,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복덕구족’의 삶입니다.”(68쪽)

수경 스님의 기도 이야기는 현실의 지평에 뿌리 내리고 있다. 고원한 이상 추구 같은 ‘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재활용하고, 종이컵 안 쓰는 것이 ‘방생’이라는 인식 정도는 하고 살자”고 말한다. 스님에게 기도는 이런 삶이다. 허투루 삶을 소진하지 않는 것이다. ‘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 ‘한반도 대운화 백지화를 위한 오체투지’를 하며, 세상에서 가장 작고 여린 존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본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이야기다.

한때 선(禪)의 세계를 깊이 동경했다. ‘목불을 태우고(丹霞燒佛)’,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殺佛殺祖)’는 선사들의 파격과 호방에 매료됐다. 선종 사서와 선사 어록을 탐닉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가 빠져들었던 것은 선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신화와 전설로 떠도는 형해화된 선이었다. ‘단하소불’과 ‘살불살조’는 ‘성과 속’의 경계를 허문 소식이었는데, 나는 ‘성상 파괴’라는 새로운 성(聖)을 떠받들었던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계로서 선의 세계에서 꿈인 줄도 모르고 꿈을 꾼 꼴이다.

이 책을 읽고 얻은 과외의 소득은 ‘간화선’에 대한 나의 오해를 풀었다는 점이다. ‘과외의 소득’이라고 말하기에는 얻은 바가 너무 크다. 오랫동안 나는 ‘화두’ 자체에 깨달음이라는 것이 내재돼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한편 1,700 공안의 근원인 수많은 오도 기연, 이를테면 스승과의 문답 가운데 ‘언하에 깨달았다’거나 ‘돌멩이가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확철대오했다’는 식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화두에 대한 앞의 생각과 상반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오도 기연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한 순간이 일, 전무후무 유일무이한 하나의 사태일진대 그것이 지금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깨달음에 대한 하나의 준거로서 참조 사항일 뿐 아닌가. 깨달음이라는 것이 복제가 가능한 물건이 아닌 다음에야 그것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한들 기껏해야 ‘깨달음에 대한 이해’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이런 나의 생각은 모두 오해였다. 이 책을 읽고 그것을 알게 되었다. 길지 않은 한 문장이었다. “화두는 의단 독로를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그 동안 나는 화두를 목적으로 혼동했던 것이다.

이 책에서 수경 스님은 참선 수행에 대해 깊이 거론하지는 않았다. 살아온 얘기를 하면서, “참선과 염불과 간경이 모두 지혜의 완성이라는 한 목적의 다른 수단”이라는 언급에 딸려 나온 정도다. 하지만 그 울림은 컸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그 동안 나는 어디에서도, 평생을 바친 수좌의 살림살이를 이토록 진솔하게 내보인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선(禪)에 관한 대부분의 책들은 웅장하고 신비롭고 고원한 얘기로 가득했다. 여기에 ‘10년 장좌불와’, ‘용맹정진’, ‘무문관’ 같은 처절한 수행담이 곁들여진다. 내가 할 수는 일은 경이와 감탄 그리고 좌절이었다.

이 책을 통해 선의 세계를 충분히 이해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세계는 여전히 높고 멀다. 설령 맹목적이라 할지라도 화두 일념에 매진하는 수행 그 자체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이 책을 통해 내가 깨달은 것은, 선에 대한 나의 오해는 내 스스로 안개를 뿌리고 구름을 만들어 그 안에 선을 가두고 신비화, 절대화 시켰다는 사실이다. 탐내어 들어갈 수 있는 ‘선의 세계’는 없다. 구하여 얻을 수 있는 ‘도’는 없다. 이 또한 속단일지는 모르겠지만, 선에 대해서 나는 영원히 모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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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산 2024-05-08 공감(1)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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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길바닥 법당에서 건져 올린 실천과 성찰의 기록
이 책은 평생을 선방에서 보낸 수좌이자 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 한반도 대운하 백지화 오체투지 등으로 한국 사회에 깊은 울림을 주었던 수경 스님이 최초로 펴낸 참회와 성찰의 기록이다. 책은 스님의 수행 체험담, 화계사 주지 시절 신도들과 함께 읽은 보편적 기도문, 그리고 오체투지 현장에서 기록한 심경 등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님은 사미계를 받은 직후 은사인 응담 스님과 함께 서산 일대에서 행했던 절박한 탁발의 기억을 소환한다. 굴욕감과 낮 뜨거움 속에서 수행하던 중, 그믐밤 개펄 한가운데서 방향을 잃고 고립되어 죽음의 공포와 직면했던 사건은 스님의 수행 인생에 거대한 전환점이 된다. 은사 스님과 진흙탕 싸움을 벌이다 탈진한 극한의 상황에서 터져 나온 <관세음보살>이라는 일념의 절규는 의지처이자 살길을 여는 가피가 되었고, 기도의 본질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체득하는 계기가 된다.  

스님이 정의하는 기도는 고원한 불교 교리의 문학적 성찬이 아니라, 현실의 괴로움을 도피하지 않고 직면하여 바로 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기복을 위한 이기적 기도일지라도 깊어지면 적나라한 자신을 마주하며 참회가 수반된다. 스님은 간화선의 화두 참구 역시 의단독로를 위한 수단일 뿐이며, 참선, 염불, 간경은 모두 지혜의 완성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향한 서로 다른 방편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나아가 환경운동 역시 잘못된 삶의 조건을 변화시키는 기도의 연장선이며, 일상에서 종이컵을 쓰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소한 행동이 곧 현대적 의미의 <방생>이자 기도의 실천이라고 강조한다. 결국 만사가 기도가 되어 삶과 기도가 하나로 융합되는 <여여한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지다.  

평론: 신화화된 선(禪)의 해체와 일상적 복덕의 회복
이 책은 한국 불교계에서 신비화되고 형해화되었던 간화선 중심의 엘리트 수행주의를 과감히 해체하고, 종교의 본질을 평범한 중생의 일상 지평으로 끌어내렸다는 점에서 탁월한 종교적 성찰을 보여준다. 흔히 선방의 수좌들이 보여주는 장좌불와나 무문관 같은 신화적 영웅담 대신, 개펄에서 은사 스님과 엎치락뒤치락 싸우고 탁발 중 조롱을 받으며 굴욕감을 느꼈던 적나라한 체험을 고백함으로써 독자에게 가식 없는 공감과 위안을 선사한다.  

스님이 던지는 가장 날카로운 통찰은 <화두는 의단 독로를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선언에 있다. 대다수 현대 수행자들이 화두 자체에 대단한 깨달음이 내재된 것처럼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여 선을 관념화할 때, 스님은 염불 삼매나 화두 일념이나 마음을 오로지 모으는 본질은 동일함을 천명하여 자·타력의 이분법적 분별을 단숨에 깨뜨린다. <깨닫기만 하면 부처>라는 오만한 태도를 버리고 부처의 삶을 일상에서 살아내야 한다는 <하심>의 강조는 관념적 깨달음의 유희에 빠진 한국 불교계를 향한 뼈아픈 죽비다.  

특히 이 책은 과거 사회운동가로 각인되었던 스님의 삼보일배와 오체투지가 외부를 향한 정치적 저항을 넘어, 내면의 탐욕을 씻어내기 위한 철저한 참회 기도였음을 증명한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나를 바로 세우기 위해> 가장 낮은 자세로 바닥에 엎드렸다는 고백은 종교적 당위가 주는 공허함을 밀어내고 삶의 보편적 원리로서 기도의 가치를 복원한다. 작게 살고, 적게 쓰고, 이웃 생명을 알뜰히 여기는 소박한 실천이 곧 <복덕구족>의 삶이라는 메시지는, 무한 소비와 문명의 오만으로 치닫는 현대인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할 진정한 창조적 실존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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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수경 스님) 1,000단어 요약+평론

※ 현재 업로드된 PDF는 책 전체가 아니라 출판사 소개용 미리보기(약 20쪽)로 보입니다. 목차와 서문, 그리고 첫 장 일부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아래 글은 확인 가능한 부분을 중심으로 한 요약+평론입니다.

요약

<기도>는 수경 스님이 생애 마지막 시기에 남긴 영적 유언과도 같은 책이다. 제목은 단순히 "기도"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기도는 특정 종교의 의례나 개인적 소원 성취를 위한 간청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태도이며, 생명과 세계를 대하는 근본 자세이다.

책의 첫머리에서 수경 스님은 오늘의 시대를 "괴로움 수밖에 없는 세계"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그는 절망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괴로움의 현실을 정직하게 응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삶의 문제를 외면하거나 이상적인 이야기만 반복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삶의 조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살아가고 살아내는 일이다. 스님은 바로 이것이 기도라고 말한다.

"살아가고 살아내고 하는 것" 자체가 기도라는 그의 말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이다.

목차를 보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수경 스님의 기도 이야기>이다. 여기에서는 스님의 수행 경험과 인생 이야기가 소개된다. 간월암에서 만난 관세음보살, 은사와의 인연, 출가 49년의 회고, 그리고 왜 기도가 필요한가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두 번째는 <기도문>이다. 화계사 관음기도 발원문, 수험생을 위한 발원문, 타향살이 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세 번째는 <오체투지>이다. 오체투지 수행을 회고하며 "만사가 기도여야 합니다"라는 주제를 더욱 깊게 전개한다.

미리보기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첫 장인 <간월암에서 만난 관세음보살>이다.

수경 스님은 젊은 시절 간월암에서 수행하던 시절을 회상한다. 당시 간월암은 지금처럼 관광지가 아니라 매우 척박하고 고된 수행처였다. 스님은 은사인 용담 스님을 통해 수행이 무엇인지를 배웠다고 말한다. 은사는 말로 가르치기보다 몸으로 보여주는 분이었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노장님과 함께 갯벌을 건너 부석사로 가던 이야기이다. 갯벌은 깊고 위험했다. 밤에 길을 잃으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스님은 길을 잃고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다. 방향을 잃고 헤매는 가운데 은사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스님은 그 순간 관세음보살을 외치게 된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그 외침은 단순한 주문이 아니라 절박한 생명의 외침이었다. 죽음 앞에서 모든 계산과 집착이 사라지고 오직 삶을 향한 간절함만 남게 된 순간이었다. 결국 그는 길을 찾는다.

이 경험은 이후 스님의 생애 전체를 지배한 영적 체험이 된다. 관세음보살은 어딘가 초월적 세계에 존재하는 신비로운 존재라기보다, 인간이 절망 속에서도 다시 살아가게 하는 자비와 희망의 힘으로 이해된다.

평론

수경 스님은 한국 현대불교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많은 사람들이 수경 스님을 새만금 운동, 4대강 반대 운동, 삼보일배와 오체투지의 지도자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그러한 사회운동의 뿌리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 뿌리는 정치가 아니라 기도였다.

수경 스님에게 기도는 세상을 떠난 수행자의 명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세상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였다.

새만금 갯벌이 파괴되는 것을 보고, 강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생명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그가 거리로 나선 이유도 결국 기도 때문이었다.

그에게 기도는 현실도피가 아니라 현실 직면이었다.

이 점에서 수경 스님은 흔히 종교에 대해 제기되는 비판을 넘어선다. 종교가 현실을 외면하게 만든다는 비판 말이다. 수경 스님의 경우 기도는 오히려 현실을 더욱 아프게 보게 만들었다.

그는 기도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게 되었다.

이는 불교의 동체대비(同體大悲) 정신과 연결된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이 책이 매우 소박하다는 것이다.

철학적 개념이나 복잡한 교리 설명이 거의 없다. 대신 수행 경험과 일상 언어가 중심이다.

"살아가고 살아내는 것"

"괴로움을 외면하지 않는 것"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것"

이런 표현들은 불교를 잘 모르는 독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반면 한계도 있다.

이 책은 철학서가 아니다. 따라서 생명평화 사상이나 생태불교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는 다소 아쉬울 수 있다. 도법 스님의 저작들이 비교적 사회철학적이고 체계적인 논의를 제공한다면, 수경 스님의 이 책은 철저히 체험과 수행 중심이다.

그래서 독자에 따라서는 "구체적인 사회 대안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이 책의 특징이기도 하다.

수경 스님은 사회 변혁 이전에 인간 내면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세상을 바꾸기 전에 먼저 자기 마음을 돌아보라는 것이다.

세진님께서 최근 읽고 계신 도법 스님의 생명평화운동 관련 책들과 연결해서 본다면, 도법 스님이 "생명평화의 사회적 실천"을 강조했다면, 수경 스님은 그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영적 원천"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기도>는 기도에 관한 책이라기보다 삶에 관한 책이다.

수경 스님은 말한다.

삶은 괴롭다.
그러나 그 괴로움을 외면하지 말라.
살아가고 살아내라.
그리고 만사를 기도로 삼아라.

이 단순한 가르침이야말로 수경 스님이 남긴 가장 깊은 유산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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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불교의 생명⋅생태 사상과 그 실천 운동 이도흠 2012

SNU Open Repository and Archive: 한국 불교의 생명⋅생태 사상과 그 실천 운동

한국 불교의 생명⋅생태 사상과 그 실천 운동 : Ecological Application of Korean Buddhism and Its Contemporary Practices

DC FieldValueLanguage
dc.contributor.author이도흠-
dc.date.accessioned2012-04-10T10:09:17Z-
dc.date.available2012-04-10T10:09:17Z-
dc.date.issued2011-
dc.identifier.citation철학사상, Vol.41, pp. 99-125-
dc.identifier.issn1226-7007-
dc.identifier.urihttps://hdl.handle.net/10371/75998-
dc.description.abstract전 지구 차원의 환경 위기를 맞아 한국불교는 어떤 대안이나 지혜를 제시할 수 있는 가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의상의 시간관을 생명론과 결합하면, 생명이란 구세(九世)의 업(業)에 따라, 기존의 경험과 기억과 업
이 축적되어 DNA 사슬에 유전 정보가 새겨진 몸에 식(識)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다른 생명체 및 자연환경과 서로 조건이 되면서 상호작용을 하는 에코시스템 속에서 잠시나마 가유(假有)의 가합태(假合態)로서 오온(五蘊)을 형성하여 대사(代謝)를 하면서 현재의 삶에서 경험한 기억과 지은 업을 유전자와 알라야식에 담아 종족보존을 위한 자기 복제를 하는 가운데 서서히 진화하면서 윤회를 되풀이하는 유기체다.
원효의 화쟁철학을 응용하면, 모든 생명은 서로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관계다. 모든 생명은 선형적으로 서로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서로 조건이 되고 영향을 미쳐, 원인이 결과가 되고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된다. 씨 스스로는 공(空)하지만, 땅에 떨어지면 싹이 나고 잎이 나고 꽃이 펴서 사과를 맺는 것처럼, 이 생명은 저 생명의 먹이가 되어 다른 생명을 살게 한다. 에코 시스템 속에서 공(空)이 생멸변화의 조건이 되고, 이 때문에 생태계의 순환과 균형이 가능해진다. 원효의 진속불이(眞俗不二)를 생태론으로 응용하면, 죽고 사라져 가는 생명의 아픔을 자신의 생명과 서로 상호작용을 하고 서로 조건이 되고 의지가 됨을 깨닫고 자신의 아픔처럼 공감(共感)하는 것이다. 죽고 병드는 생명들을 보면서 마치 내 몸이 죽고 병드는 것처럼 아픔을 공유하는 순간 내 몸 안에 자리하던 불성(佛性)이 드러난다. 이것이 생태계에 대한 깨달음의 눈이요[圓成實性], 이 순간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가 둘이 아니요 하나요, 중생이 곧 부처다.
이런 한국불교의 생태적 인식은 현재에까지 계승되어 도법과 수경 스님을 중심으로 강력하게 실천되고 있다. 도법과 수경스님이 펼친 생명․생태운동 및 평화운동은 무엇보다도 국민과 시민운동 진영에 생태적 패러다임과 삶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앞으로 이 운동은 개인의 깨달음과 시스템 및 체제의 개혁을 종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언제든 제국과 자본주의, 토건카르텔의 탐욕에 포획될 수 있기 때문이다.
We face a global environmental crisis. Korean Buddhism offers the world wise and practical alternatives with which to meet this challenge.
Addressing this possibility, this essay applied the Korean Buddhist philosophy of Wonhyo, Euisang, and Deahyun to ecology. It also examined the prospects and limitations of the practices that Reverend Dobeop and Rev. Sugyeong actively implemented in their life advocacy and environmental movements in the twenty-first century.
By applying the principle of neither-the-same-nor-different (bul-ilbul-i) contained in Wonhyos philosophy of Hwajaeng (和諍, harmonization) Buddhism, we can explain the connection between living beings and nature. The application at this point of Wonhyos Discourse on the Non-Duality of Truth (Buddha) and Convention (sentient being) opens a path through which it is possible to firmly establish a system of life
ethics.
The ecological movement, the peace movement, and the lives of Rev.
Dobeop and Rev. Sugyeong have rendered many contributions. Firstly, these movements opened up new prospects for citizen movements
through their exploration of ecological paradigms and the concept of an ecological lifestyle. Secondly, these movements offered an opportunity to link the Buddhist thought of life and theory of interdependent arising to the global environmental crisis and to find a solution through that connection. Thirdly, these movements converted the cases of the Saemangeum development and the Four Major Rivers project into a social discourse regarding environmental and lifestyle issues. Fourthly, these movements promulgated the value of life. Fifthly, these movements provided an opportunity for the Korean people to engage in a form of
communal self-reflection. Lastly, Rev. Dobeops community movement presents the possibility of an alternative model to a moder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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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language.isoko-
dc.publisher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dc.subject전 지구 차원의 환경위기-
dc.subject한국 불교-
dc.subject화쟁철학-
dc.subject도법-
dc.subject수경-
dc.subject원효-
dc.subject의상-
dc.subject대현-
dc.subject생태-
dc.subjectthe Global Environmental Crisis-
dc.subjectKorean Buddhism-
dc.subjectDobeop-
dc.subjectSugyeong-
dc.subjectWonhyo-
dc.subjectEuisang-
dc.subjectDeahyun-
dc.subjectEcology-
dc.title한국 불교의 생명⋅생태 사상과 그 실천 운동-
dc.title.alternativeEcological Application of Korean Buddhism and Its Contemporary Practices-
dc.typeSNU Journal-
dc.contributor.AlternativeAuthorLee, Do-Heum-
dc.citation.journaltitle철학사상-
dc.citation.endpage125-
dc.citation.pages99-125-
dc.citation.startpage99-
dc.citation.volume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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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흠의 <한국 불교의 생명·생태 사상과 그 실천 운동>에 대한 요약과 평론


요약: 신라 불교의 생태적 해석과 현대 실천 운동

전 지구적 환경 위기 속에서 이 논문은 신라 교종 철학을 생태학적으로 재해석하고, 현대 불교 실천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분석한다.

의상의 시간관에 따르면 생명이란 구세의 업에 따라 유전 정보가 새겨진 몸에 식이 결합한 유기체이며, 에코 시스템 속에서 상호작용하는 가합태다. 원효의 화쟁 철학 중 <불일불이>론은 모든 생명이 역동적 원인과 결과로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하며, <진속불이>론은 타산의 아픔에 공감할 때 불성이 발현됨을 보여준다. 대현 역시 유식지살론을 통해 자비심을 해치는 육식을 금하며 생명 존중을 확장했다.

이러한 사상은 현대에 이르러 도법과 수경 스님의 실천 운동으로 계승되었다. 도법은 실상사를 중심으로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귀농학교, 대안학교 등을 설립하여 생명평화 공동체의 대안 모델을 구축했다. 수경은 새만금 갯벌 간척 반대와 4대강 사업 반대를 위해 삼보일배와 오체투지 등 초인적인 고행을 전개했으며, 이는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으로 이어지며 사회적 대전환의 기폭제가 되었다.

평론: 깨달음의 사회화와 구조적 저항의 변증법

본 논문은 박제화된 전통 불교 사상을 현대의 전 지구적 환경 위기와 연결하여 역동적인 생태 철학으로 부활시켰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학술적·실천적 가치를 지닌다. 특히 서구 중심의 물질적 생명관을 넘어 연기론과 윤회설을 유전자 및 문화유전자 개념과 융합한 시도는 불교 생태학의 지평을 한 단계 높였다. 또한 실상사 공동체를 통해 개인의 수행과 사회적 삶이 일치하는 대안적 삶의 양식을 구체화한 점은 현대 자본주의 소외를 극복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논문이 직시하듯, 저항의 화살을 내면으로만 돌리는 고행 중심의 운동은 자칫 <체제 순응적 개량주의>나 <에코파시즘>으로 전락할 위험을 내포한다. 환경 파괴의 근본 원인이 자본주의 확대재생산 메커니즘과 토건 카르텔이라는 거대 구조에 있다면, 정치경제적 분석과 권력에 대한 조직적 저항이 배제된 순수 생명 운동은 무력할 수밖에 없다. 숭고한 종교적 초월성이 현실의 모순을 은폐하는 기제로 작용하지 않으려면, 거버넌스 구축과 같은 제도적 개혁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한국 불교 생태 운동의 미래는 개인의 내적 각성과 시스템 혁신을 어떻게 화쟁적으로 종합하느냐에 달려 있다. 자발적 소욕지족의 주체를 형성하는 동시에 생태평화복지국가를 향한 구조적 투쟁을 전개할 때, 불교 생태학은 단순한 은유 놀이를 넘어 문명사적 대안으로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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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의 생명·생태 사상과 그 실천 운동> (이도흠) 요약+평론

이 글은 한국 불교가 오늘날의 환경위기와 생태위기에 대해 어떤 사상적·실천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가를 탐구한 논문이다. 저자 이도흠은 원효, 의상, 대현 등 신라 불교사상가들의 철학을 현대 생태학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이를 계승한 도법 스님과 수경 스님의 생명·생태운동을 분석한다. 논문의 핵심 주장은 한국 불교의 연기론과 화쟁사상이 단순한 종교 교리가 아니라 현대 문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생태적 세계관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먼저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환경위기를 지적한다. 기후변화, 생물종 멸종, 핵발전소 사고, 생태계 파괴는 더 이상 특정 국가나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생존 문제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사례는 인간 사회와 자연이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새로운 문명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논문의 가장 독창적인 부분은 신라 불교철학에 대한 생태학적 해석이다. 저자는 의상의 화엄사상과 시간관을 현대 생물학과 연결한다. 생명이란 단순히 유전자에 의해 구성된 물질적 존재가 아니라 업(業)과 식(識), 그리고 오랜 진화의 역사가 결합된 존재라고 본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수십억 년 동안 축적된 관계와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이는 현대 생태학이 말하는 생태계의 상호연결성과도 통한다.

특히 원효의 화쟁사상은 생태윤리의 철학적 기초로 해석된다. 원효의 "불일불이(不一不二)" 개념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 사과와 씨앗이 서로 다르지만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인간과 자연도 서로 독립적이지 않다. 생명체들은 선형적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순환한다. 따라서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거나 착취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또한 저자는 원효의 진속불이(眞俗不二) 사상을 생명윤리로 확장한다. 다른 생명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는 공감 능력이야말로 불성을 드러내는 길이라는 것이다. 죽어가는 생명과 파괴되는 자연을 보며 자신의 몸이 상하는 것처럼 느끼는 순간, 인간은 생태계와 자신이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생태적 감수성과 종교적 깨달음이 연결된다.

이러한 사상은 현대에 와서 도법 스님의 생명평화운동으로 이어진다. 도법 스님은 화엄의 연기론을 바탕으로 생명평화경을 만들고, 생명평화탁발순례와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운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실상사를 중심으로 귀농학교, 대안학교, 생협, 공동체운동을 조직한 것은 생태적 가치가 단순한 사상이 아니라 생활양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러한 운동이 한국 사회에 생태적 패러다임을 확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수경 스님의 환경운동도 중요한 사례로 소개된다. 새만금 간척 반대운동, 삼보일배, 4대강 사업 반대운동 등은 단순한 정치적 저항이 아니라 불교적 참회와 보살행의 실천이었다. 수경 스님은 자신의 몸을 희생하면서까지 생태계 파괴에 저항했고,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해된다. 저자는 이를 현대 한국 불교가 보여준 가장 강력한 생명존중 실천 가운데 하나로 본다.

평론을 하자면, 이 논문은 한국 불교를 단순한 수행 종교가 아니라 생태문명의 대안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특히 원효와 의상을 현대 생태학과 연결시키는 시도는 창의적이며 설득력이 있다. 도법 스님과 수경 스님의 운동을 단순한 종교 활동이 아니라 사회운동과 환경운동의 관점에서 분석한 점도 돋보인다.

반면 한계도 있다. 저자는 생태위기의 원인을 자본주의, 산업화, 토건 카르텔 등 구조적 문제에서 찾지만, 실제 대안은 여전히 도덕적 각성과 공동체 운동에 많이 의존한다. 개인의 의식 변화가 중요하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와 국가 권력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구체적 전략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저자 자신도 이를 인식하고 있으며, 생명운동이 체제 개혁과 결합되지 않으면 한계를 가질 수 있다고 비판한다.

세진님의 관심사인 생명평화사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논문은 도법 스님의 저작들인 <내가 본 부처>,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 <화엄의 길 생명의 길>을 이해하는 철학적 배경을 제공하는 글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모든 존재는 그물코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인드라망 세계관은 생명평화운동의 핵심 사상을 잘 보여준다.

종합하면, 이 글은 한국 불교의 생태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그것이 현대 사회운동으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논문이다. 불교를 개인 해탈의 종교로만 이해하는 시각을 넘어, 생태위기 시대의 사회윤리와 문명전환의 철학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다만 앞으로는 개인의 깨달음과 공동체 실천을 넘어 경제·정치 시스템 개혁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가 남은 과제로 보인다. 이는 저자 자신이 마지막에 강조한 핵심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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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한국 불교의 생명⋅생태 사상과 그 실천 운동
이 도 흠
【주제분류】불교생태론
【주요어】 지구 차원의 환경 기, 한국 불교, 화쟁철학, 도법, 수경, 원효, 의상, , 생태
요약문】 지구 차원의 환경 기를 맞아 한국불교는 어떤 안이나 지 혜를 제시할 수 있는 가에 하여 알아보았다. 의상의 시간 을 생명론과 결합하면, 생명이란 구세(九世)의 업(業)에 따라, 기존의 경험과 기억과 업 이 축 되어 DNA 사슬에 유 정보가 새겨진 몸에 식(識)이 결합되어 이 루어진 것으로 다른 생명체  자연환경과 서로 조건이 되면서 상호작용을 하는 에코시스템 속에서 잠시나마 가유(假有)의 가합태(假合態)로서 오온 (五蘊)을 형성하여 사(代謝)를 하면서 재의 삶에서 경험한 기억과 지은 업을 유 자와 알라야식에 담아 종족보존을 한 자기 복제를 하는 가운데 서서히 진화하면서 윤회를 되풀이하는 유기체다. 
  원효의 화쟁철학을 응용하면, 모든 생명은 서로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 닌 계다. 모든 생명은 선형 으로 서로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역동 으로 서로 조건이 되고 향을 미쳐, 원인이 결과가 되고 결과가 다시 원 인이 된다. 씨 스스로는 공(空)하지만, 땅에 떨어지면 싹이 나고 잎이 나고 꽃이 펴서 사과를 맺는 것처럼, 이 생명은  생명의 먹이가 되어 다른 생 명을 살게 한다. 에코 시스템 속에서 공(空)이 생멸변화의 조건이 되고, 이 때문에 생태계의 순환과 균형이 가능해진다. 원효의 진속불이(眞俗不二)를 생태론으로 응용하면, 죽고 사라져 가는 생명의 아픔을 자신의 생명과 서 로 상호작용을 하고 서로 조건이 되고 의지가 됨을 깨닫고 자신의 아픔처 럼 공감(共感)하는 것이다. 죽고 병드는 생명들을 보면서 마치 내 몸이 죽 고 병드는 것처럼 아픔을 공유하는 순간 내 몸 안에 자리하던 불성(佛性) 이 드러난다. 이것이 생태계에 한 깨달음의 이요[圓成實性], 이 순간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가 둘이 아니요 하나요, 생이 곧 부처다.    이런 한국불교의 생태 인식은 재에까지 계승되어 도법과 수경 스님 을 심으로 강력하게 실천되고 있다. 도법과 수경스님이 펼친 생명․생태 운동  평화운동은 무엇보다도 국민과 시민운동 진 에 생태 패러다임 과 삶으로 환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앞으로 이 운동은 개인의 깨달 음과 시스템  체제의 개 을 종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언제든 제국과 자본주의, 토건카르텔의 탐욕에 포획될 수 있기 때 문이다.

Ⅰ. 머리말
후쿠시마 원 의 방사능 출은 지 도 진행 이다. 방사능은 편 서풍을 타고 태평양을 건 미국과 유럽, 이어서 다시 아시아에 향 을 미쳤고  세계인이 공포에 떨었다. 이는 한 지역에서 일어난 아 주 사소한 실수나 사고로도  지구의 자연환경이 기에 놓일 수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 가운데 40%가량의 생물이 멸종 기에 있고, 살아남은 생명들, 심지어 북극 곰까지도 환경오염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 
지 지구 생태계의 균형을 지속시키던 빈틈이 거의 사라져버렸다. 무 (無爲)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빈틈[虛]을 만드는 것이 며, 이 빈틈이 있을 때 자연(自然)은 말 그 로 스스로 그 게 존재한
다.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긴 하게 연 된 에코시스템(eco-system) 을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재 지구에서 그 빈틈들이 곳곳에서 사 라져버렸고 속히 오염되고 있다. ) 2008년엔 도시 인구가 농 인구 를 월하 다. 쓰 기를 버려 엔트로피를 속히 증가시키고 지구상 의 빈틈을 빠른 속도로 없애버리는 임계 을 넘어선 것이다. 한마디 로 말하여, 우리는 환경문제 하나만으로도 인류 문명이 머지 않아 종 말을 고할 지도 모르는 시 에 살고 있다. 
이처럼  지구 차원의 환경 기를 맞아 한국불교는 어떤 안이 나 지혜를 제시할 수 있을까. 한국 불교에 생명과 생태 사상과 련 을 맺는 사상이 있는가.  이는 재로 계승되고 있는가. 선의 생명⋅ 생태사상에 해서는 이미 잘 정리한 것이 있으므로 이에 미루고, ) 교종, 그 에서도 원효(元曉: 617∼686), 의상(義湘: 625∼702), 大賢 (?-?) 등 신라의 불교철학에 나타난 생명과 생태 사상을 살피고, 21 세기 오늘 이를 계승하여 생명⋅환경운동을 활발하게 실천하고 있는 도법과 수경스님의 사례를 심으로 그 공과 한계를 밝히고자 한다.
Ⅱ. 신라 불교 철학의 생명⋅생태론적 해석
한국인은 굶주리는 와 에도 새들을 해 까치밥을 남겨두고 열매
를 땄다. 고유 사상인 풍류도에선 모든 생명은 물론이고 산과 내 등 천지만물에 신격이 깃든 것으로 생각하고 숭배하 다. 불살생(不殺生) 을 계율로 하는 불교가 들어와 통 사상과 합쳐지자 생명에 한 존 심은 더욱 강렬해졌다. 아쇼카 왕 이후 권력자가 불살생의 이상 을 구호로 외치고 이데올로기로 이용할 뿐이었고 이를 자신은 물론  백성에게 실천할 것을 명한 는 드물다. 하지만, 한국사에서는 
세 명의 군주, 곧 백제의 法王(?∼600년, 재 : 599년∼600년), 신라 의 法 王(?∼540년, 재 : 514년∼540년)과 聖德王(?∼737년, 재 : 702년∼737년)이 이를 실천하 다. 법왕은 살생을 하고 민가에서 기르는 매와 새매를 놓아 주도록 하 으며, 온 나라 안에서 고기를 잡고 사냥하는 도구들을 태워버리라는 명령을 내리기까지 하 다.4) 법흥왕은 16년에 살생을 하는 명령을 내렸으며,5) 성덕왕도 4년에 같은 명령을 내렸다.6)
이런 바탕에서 삼국의 불교는 생명을 존엄한 것으로 여기고 온 우
주의 삼라만상이 서로 조건이 되고 상호작용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 고 업에 따라 시간 으로도 긴 한 연 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악하 다. 
서양의 패러다임에서는 생명을 “DNA 사슬에 새겨진 유 정보에 따 라 만들어진 몸을 가지고 외부와 끊임없이 사를 통해 물질(특히 단백 질)을 만들며 살아가다가 자기복제를 하면서 진화하는 유기체”7)라고 물 질 으로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식(識, viññāņa)을 필수 조건으로 삼아 名色이 있다.”8)라며, 수정란에 식이 들면서 정신인 명
(名, nāma)과 육체인 색(色, rūpa)의 복합체인 명색(名色, nāmarūpa)이 될 때 생명은 시작한다. 
모든 생명이 이런 과정을 겪어서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것이므로 생명들 사이의 본질 차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럼에도 왜 생명은 크고 작은 외형에서 강하고 약하며, 오래 살고 짧게 사는 것에 이르
4) 󰡔三國史記󰡕, 「百濟本紀」, 法王 一年條: “冬十二月, 下令禁殺生, 收民家所養鷹鷂, 放之, 獵之具焚之”.
5) 󰡔三國史記󰡕, 「新羅本紀」, 法 王 十六年條: “下令禁殺生”.
6) 󰡔三國史記󰡕, 「新羅本紀」, 聖德王 四年條: “下敎禁殺生”.
7) Encyclopaedia Britanica, Macropedia, Vol.10., 1975, pp.893∼894. 
8) Maha-nidana Sutta, Digha Nikaya. (tr). Thanissaro Bhikkhu (www.accesstoinsight.org/tipitaka/dn/dn.15.o.than.html).
기까지 차이가 있을까. 이는 업(業)이 깃들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은, 의식 이든 무의식 이든, 마음으로[意業], 말로[口業], 몸으로[身業] 짓는 업에 따라 차이를 갖는다. 
여기에 의상의 시간 을 응용하면, 서양의 생물 개념과 결합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다. 한 생명에는 구세(九世)의 업이 어 우러져 있고 업력이 십세(十世)로 작용하고 있다. 한 생명이 다른 생 명체와 소통하고 상호작용을 하면서 나 스스로 닦은 마음은 문화유 자(meme)에 새겨지고, 각자 생명들이 다른 생명을 포함한 자연환경 에 하여 선택하고 응하고 응한 몸은 생물유 자(gene)에 깃든
다. 38억 년의 지구 생명체 역사를 통하여 한 생명이 다른 생명체와 상호작용을 한 것은 생물유 자와 문화유 자를 남기며 수 십억 년 동안 자기복제를 거듭하면서 오늘 나의 생명체로 이어지고, 지 내 가 다른 생명체와 상호작용을 하는 것은 나의 몸을 형성하다가 미래 의 생명으로 계승된다. ) 
이 게 볼 때, 생명이란 구세(九世)의 업(業)에 따라, 기존의 경험 과 기억과 업이 축 되어 DNA 사슬에 유 정보가 새겨진 몸에 식 (識)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다른 생명체  자연환경과 서로 조건이 되면서 상호작용을 하는 에코시스템 속에서 잠시나마 가유(假
有)의 가합태(假合態)로서 오온(五蘊)을 형성하여 사(代謝)를 하면서 재의 삶에서 경험한 기억과 지은 업을 유 자와 알라야식에 담아 종족보존을 한 자기 복제를 하는 가운데 서서히 진화하면서 윤회를 
되풀이하는 유기체다.10) 
이 듯 한 생명은 그것 그 로 다른 생명과 무한한 연 을 가지면
서 자기 의미를 갖는 존재이기에 불교는 모든 생명에 불성(佛性)이 있다고 보고 불살생(不殺生)의 계를 추구한다. 불교는 연기론과 윤회 설에 입각하여 동물은 물론이거니와 식물과 흙과 물까지 방생하는 윤 리를 펴고 있다. 이 게 볼 때 제기되는 문제는 식물 내지는 물에 까지 불살생을 확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하는 이다. 식물을 해치 는 것도 계를 범하는 행 가 되는데,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식물이 생의 거주처이기 때문이다.11) 이보다 더욱 그럴듯한 이유는 모든 생명이 연기 계에 있기 때
문이다. 원효 화쟁의 불일불이(不一不二)론은 이를 잘 설명해 다. 사과와 씨의 계처럼 이 생명과  생명은 같지 않으므로 하나가 아니다. 하지만 이 생명이 있어서  생명이 삶을 살고,  생명이 죽으면 이 생명도 향을 받으며, 것이 죽으면 이 생명도 죽는다. 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의 삶과 죽음만이 아니라 
 
무량겁이 곧 한 생각이요/한 생각이 곧 무량겁이어라./九世, 十世가 서로 相卽하여/어지러이 뒤섞이는 일 없이 따로 떨어져 이루었어라.(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九世十世互相卽 仍不雜亂隔別成)”이다. [義湘 󰡔華嚴一乘法界圖󰡕 東國大學校 佛典刊行委員 編, 󰡔韓國佛敎全書󰡕(이하 ‘韓
佛全’으로 약함) 동국 부, 1979, 제2권, 1-上]
10) 상세한 논증은 이도흠, 「생명 기의 안으로서 불교의 생명론과 생태론」, 󰡔생명의 이해-생명의 기와 길찾기󰡕, 서울: 동국 출 부, 2011, 279- 285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11) 김성철, 「불교의 생명 개념과 불살생계」, 󰡔불교평론󰡕, 제37호, 2008년 12 월 10일, p.183.
그것의 호흡마 도 주변의 자연환경과 생명들에 향을 미치고 그것 은 다시 그 미생물의 삶과 죽음에 향을 미친다. 이처럼 모든 생명 은 선형 으로 서로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역동 으로 서로 조건 이 되고 향을 미쳐, 원인이 결과가 되고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된다. 그러니 둘도 아니다. 씨 스스로는 공(空)하지만, 땅에 떨어지면 싹이 나고 잎이 나고 꽃이 펴서 사과를 맺는 것처럼, 이 생명은  생명의 먹이가 되어 다른 생명을 살게 한다. 물고기가 죽으면 그를 미생물이 분해하고 미생물을 물고기가 먹는다. 생태계에서는 이 순환이 겁으 로 일어난다. 그러니 에코 시스템 속에서 공(空)이 생멸변화의 조건이 되고, 이 때문에 생태계의 순환과 균형이 가능해진다. )
그럼 다음의 문제는 인간이 다른 생명에 해 갖는 윤리의 문제다. 다른 생명을 죽여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하고 자신의 유 자를 더 많이 복제하려는 욕망을 가진 인간이 생명의 윤리를 확립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하나는 업이다. 시간이 업과 얽히면서 업은 시간에 따른 존재의 변 이가 정의롭게 일어나도록 통제하는 원리가 된다. 짧고 직선 인 시간 만으로 보면, 착한 자가 고통을 받고 선한 일을 하면 손해 보는 부 조리로 만연한 곳이 이 세상이다. 그러나 길고 둥그런 시간 으로 보 면, 선한 자가 고통을 당하는 것은 생의 죄업을 씻는 과정이다. 곧 선한 자가 고통을 받는 것은 생에서 죄업을 지었기 때문에 그 원인 으로 고통을 받는 것이며, 지 의 고통은 고통이라기보다 선업을 쌓는 과정이요, 다시 이 선업이 원인이 되어 나의 후생은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다. 업의 원리에 따르면, 내가 지 생명을 해치는 짓은 내 마음 과 몸에 업으로 쌓이고, 문화유 자(meme)와 생물유 자(gene)에 깃 들어 후손에도 향을 미친다. 신라인은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계율 을 지키고자 하 으며, 이 업을 면하기 하여 참회를 하 다. 죄 에서도 어머니와 아버지와 아라한을 죽이는 일은 무간지옥(無間地獄) 에 떨어질 다섯 가지 악행인 오역(五 ) 가운데 셋이며, 살생은 십악 (十惡)에서도 으뜸이었다. 신라인은 내가 생에서 지은 죄만이 아니 라 생이나 미래세에서 지은 살생의 업을 소멸하고자 목륜(木輪)을 던져 알아본 후 이 죄업이 있으면, 󰡔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 의 가르침에 따라 참회하 다. ) 
다음으로 의상과 원효가 설 한 화엄의 연기론을 깨달으면 지혜가 
생긴다. 그 지혜란 우주 삼라만상이 모두 원인과 결과로 맺어지고, 서로 조건이 되고 하게 련되어 있어 아(我)란 없으며 공(空)임 을 깨닫는 것이다. 내가 오온(五蘊)의 가합태(假合態)에 불과한 것인 데 나를 내세우고 동일성을 강화하면서 타자를 해하는 것은 나를 자 성(自性)을 가진 존재로 착각하 기 때문이다.
연기를 깨닫고 나면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뿐만 아니라 모 든 타자들, 지구의 모든 생명체들, 우주의 구성 성분들 모두가 ‘우리’ 의 범주에 들어온다. 길거리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던 두 사람이 제3 자로부터 실은 두 사람이 이복형제라는 소리를 들으면 싸움을 지하 고 포옹할 것이다. 어머니가 자식을 해, 독립투사가 나라와 백성을 하여 기꺼이 목숨까지 희생하는 것에서 보듯, 각 존재자는 우리의 범주에 들어온 타자를 해 자신의 욕망을 자발 으로 제한다. ) 더불어 이에서 더 나아가 이제껏 타자로 간주하던 다른 생명이 나와 깊은 연 을 맺으면서 서로 조건이 되는  다른 나라는 실상을 깨 닫고서 동치 비(同體大悲)의 보살행이 생긴다. 유마경의 말 로 생이 아 면 보살도 아 다. 그러니, 연기에 한 깨달음은 자연스 생명평화 사상과 보살행으로 이어진다. 이에 (大賢)은 불살생(不殺生)의 계율만이 아니라 육식을 하며 유식지살론(由食至殺論)을 편다. “육식을 하면 생들이 자비의 힘이 없이 생명을 살해하려는 뜻을 품기에 이런 연고로 고기를 먹지 말라 하는 것이다.” )라며 자 비의 마음과 힘을 상실하기에 육식조차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원효의 진속불이(眞俗不二)론을 응용하면, 더욱 생명의 윤리 를 확고하게 정립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생의 마음은 본래 하늘 처럼 청정하고 도리에 더러움이 없기에 생은 이 생명과  생명을 경계를 지어 바라보지 않는다. 다만 본래 청정한 하늘에 티끌이 끼어 더러운 것처럼 무명(無明)에 휩싸여 경계를 지어 생명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본디 이 경계는 허망한 것이다. 이 모두 마음의 변화로 인하 여 생긴 것이니 만일 마음에 허망함이 없으면 곧 다른 경계가 없어 지고 생 한 본래의 청정함으로 돌아간다. 유리창만 닦으면 하늘 이 다시 청정함을 드러내듯, 무명만 없애면 본래 청정한 생 속의 불성이 스스로 드러나 생이 바로 부처가 된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생명이 나와 깊은 연 을 맺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지혜이고, 그를 하여 그리로 가 그들과 함께하며 그들 의 고통을 없애 주는 것이 바로 자비행이다. 타자를 구원하거나 계몽 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 속에 숨어 있는 생명에 한 자비심을 드러 내며, 이 순간 나 한 부처에 이르는 것이다. 이를 생명사상에 용 하면, 죽고 사라져 가는 생명의 아픔을 자신의 생명과 서로 상호작용 을 하고 서로 조건이 되고 의지가 됨을 깨닫고 자신의 아픔처럼 공 감(共感)하는 것이다. 죽고 병드는 생명들을 보면서 마치 내 몸이 죽 고 병드는 것처럼 아픔을 공유하는 순간 내 몸 안에 자리하던 불성 (佛性)이 드러난다. 이것이 생태계에 한 깨달음의 이요[圓成實性], 이 순간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가 둘이 아니요 하나요, 생이 
곧 부처다. )
Ⅲ. 도법 스님의 생명평화 운동
남 남원 실상사의 회주이자 조계종 화쟁 원회 원장인 도법스 님은 생명평화운동을 활발하게 개하고 있다. 그는 화엄연기론을 바 탕으로 󰡔생명평화경󰡕을 만들었다. 이는 A4용지로 채 두 쪽이 되지 않는 짧은 내용이다. 짧지만, 이 안에 생명평화 세계 , 생명평화 사 회상, 생명평화의 성찰과 참회, 생명평화의 인간상, 생명평화의 과 태도, 생명평화의 다짐을 간략하면서도 명쾌하게 함축하 다. 
생명평화의 세계 은 이것과 것이 조건이 되고 상호작용을 하면 서 역동 인과 계를 이루는 연기 세계 이다. 생명평화의 사회상 은 나와 이웃, 나와 국가, 나와 세계, 나와 자연이 서로 의지하는 공 존공 의 공동체이며, 모든 존재와 생명은 진리의 길에 있을 때 평화 롭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명평화의 성찰과 참회 장에선 이런 연기 계를 무시하고 자기, 내 가족, 내 나라 심으로 소유, 독
, 힘, 공격, 승리의 논리로 살아온 이기 삶을 참회한다. 생명평화 의 인간상은 생명의 실상을 달 하는 안목을 가꾸고 소박한 삶에 스 스로 만족하며 진리의 삶을 사는 자다. 그는 자연을 병들게 하고 이 웃을 불안하게 하는 이기 삶을 버리고 이웃과 생명의 가치의 존귀 함과 고마움과 함에 하여 지극히 겸허한 마음으로 존 하고 감 사하고 찬탄하면서 진리의 삶을 산다. 이에 생명평화의 과 태도 를 유지하며 항상 깨어 있으면서 진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잘 사 유하며 온몸과 마음을 다하여 실행하여야 한다.
도법스님이 볼 때, 생명이란 그물의 그물코처럼 온 우주가 참여하
여 이루어진 총체 계의 존재이자 지 여기에서 상 와 조화로운 계 속에 온 히 살아있는 것이다. 이는 홀로 분리되어 독립하거나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총체 계 속에 끊임없이 변화 하며 존재하는 자기 존재이다. 이면서 나이고 나이면서 이며(自他不一不二), 우주가 곧 나이고 내가 곧 우주인 원과 무한의 자기 존재이다. 
스님이 생명의 문제를 가장 요하게 제기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재 지구 생명체의 40%가 멸의 기에 놓인 상황에서 이는 구 에게나 닥친 가장 실한 자기 문제이자, 국가, 종교, 이념, 진보, 보 수 등 그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명들 은 서로 조건이 되고 깊은 연 계에 있다. 생명들 모두가 에코시스 템(eco-system)의 부분이자 체일 뿐 아니라 서로 조건이 되고 연 을 맺으면서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그 계 자체가 에코시스템이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그 생명들이 홀로 살려고 다른 생명을 해치려 할 때 외려 모두 죽을 수 있다. 서로 공존공 의 상생을 모색해야 나 도 살고 도 산다. 그러니, 생명은 평화와 상생의 보살행을 수행해 야 한다. 도법 스님은 90년 11월에 승가개 운동 결사체인 선우도량(善友道
場)을 창립한다. 선우도량은 98년까지 매년 두 차례씩 총 14차례의 ‘수련결사’를 열어, 부처님의 근본정신을 회복하고 교단의 승풍(僧風) 을 진작시켰다. 94년에는 개 회의 상임 부 원장직을 맡아 종헌⋅종 법 개정과 승가 교육 개 에 힘을 쏟았다. 그는 개 회의가 해산한 직후 자신의 은사인 월주 스님의 총무원장 당선을 뒤로 하고 실상사 로 떠났다. 그리고 4년 만인 98년,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3선공방과 총무원 청사 거 등 폭력사태가 일어나자, 조계 종 총무원장 권한 행에 임명되어 도의 입장에서 공정하게 사태를 수습하고는, 총무원장 등 모든 자리를 마다하고 다시 홀연히 실상사 로 내려갔다. 
2001년엔 지리산 달궁 계곡에서 ‘생명평화 민족화해 지리산 령 제’를 지내고, 이후 좌우의 이념 립과 개발에 쓰러져 간 숱한 사람 과 생명을 하여 ‘생명평화 민족화해 평화통일 지리산 천일기도’를 수행하 으며, 이를 기반으로 2003년엔 ‘지리산 생명평화결사’를 창 설한다. 마침내 2004년 3월 1일엔 지리산 노고단을 출발하여 ‘생명평 화탁발순례’의 장정을 시작하 다. 스님은 2008년 12월 13일까지 장장 5년간에 걸쳐 국 방방곡곡 총 1만2000여㎞(3만여 리)를 돌며 
8만여 명의 사람들과 만나 화하고 그들에게 생명평화의 싹을 심었
다. 한 로 서서 침묵하며 걷고 탁발하여 얻어먹는 그 자체가 고된 수행의 길이었다. 많은 이들과 화를 하는 가운데 그들의 마음  깊은 속에 있는 생명을 시하고 평화를 갈망하는 싹들에게 흠뻑 물 을 주었다. 이로 생명 평화사상은 표 인 진보이념과 운동으로 자 리를 잡고, 많은 풀뿌리지역운동들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으며 이 들끼리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를 계기로 도법스님 의 생명평화운동, 수경스님의 환경⋅생명운동, 법륜스님의 평화운동이 불교계를 넘어  사회에 걸쳐 도덕 헤게모니를 갖게 된다.
도법스님은 우주와 자연과 내가 본래 공동체이기에, 인간 심의 
이기 삶의 방식 자체가 이에 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마 을에 공동체를 만들려 하는 것은 마을이야말로 인류 문명사회의 원형 이요 뿌리요 고향이자, 생명평화의 삶을 구체 으로 바람직하게 실 할 수 있는 마당이기 때문이다. 구나 서로 이웃이 되어 서로 돕고 고통과 기쁨을 나 고 주민 스스로 서로 주체가 되어 주체 이면서도 자립 이고 창조 으로 자신을 실 하고 마을을 가꾸어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99년 종단 사태 이후 실상사로 돌아온 스님은 이곳을 심으로 안 의 공동체 건설에 매진한다. 가장 먼 실행한 것은 귀농학교다. 1998 년 3월 불교귀농학교를 개설하 고(재 25기), 1998년 9월에는 실상 사귀농(문)학교를 개설한다(재 23기). 두 학교를 거쳐서 농부가 된 이들은 500여 명에 달하며, 그  70% 정도가 실상사 주변에서 유기 농 농사를 지으며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1999년 9월11일 인드라망 생명공동체가 출범한다. 이 공동체는 도 시와 농 공동체 사이의 력과 연 , 인드라망 세계 을 통한 총체  생명 기에 응하는 생명살림운동 개, 삶의 양식과 문화양식을 
총체 으로 바꿀 수 있는 개인 수행과 각성을 통한 깨달음의 사회 화를 목표로 출발하 다. 지 회원은 1,200명에 달하며, 불교귀농학 교, 실상사귀농학교, 장귀농학교를 심으로 한 귀농운동, 인드라망 생활 동조합를 바탕으로 한 생활 동조합운동, 실상사작은학교와 비과정인 마을 학을 심으로 한 안교육운동, 사단법인 한생명을 심으로 한 지역공동체운동  생명평화운동을 개하고 있다. 불교계 최 의 안학교인 실상사작은학교는 2000년에 설립하여 2011년 재 11기에 이르고 있다. 처음엔 학교 과정으로 출발하 으나 이제 고등학교를 포함하여 5년 과정으로 운 하고 있다. 학생 수는 총 45명 정도이며, 교사는 15명이다. 산자락의 작은 터 엔 입 시지옥과 탐욕과 경쟁의 삶에서 벗어나 자연과 어울리고 명상을 하면 서 생명과 평화와 공존을 추구하는 학생들이 마음껏 뛰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노래하며 지낸다. 
2002년 설립된 한생명은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의 남원과 함양지역 회원 138명으로 구성된 조직이다. 이 조직은 인드라망 제1실 지로서 산내면을 심으로 한 생태 안 지역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를 해 한생명은 복지, 문화, 여성, 교육 등 지역 내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한생명은 지리산 청소년 쓰기 한마당, 산내 족구 회, 보름맞이 연날리기 한마당, 산내문화제, 실상사 사부 공동체 나 눔화합 수행의날, 청소년  어른 인문학교실 등 다양한 사업을 개 하고 있다. 2003년에 창립된 ‘인드라망 생활 동조합’은 사찰에 생 매장을 만들고 생산자와 사찰, 회원을 연결시켜 유기농산물을 생산하 고 유통하는 매개자 구실을 하고 있다.
이처럼 지리산을 터 으로 삼고 실상사를 마당으로 하여, 한생명, 인
드라망생명공동체, 생 , 안학교, 귀농학교, 스님과 학생과 활동가와 농부와 마을 주민이 서로 구분이 없이 인드라망 존재가 되어 상생의 공존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 실상사사부 공동체의 실상이다.17) 
2010년 6월 8일 도법스님은 원효의 화쟁철학을 바탕으로 4강 사 업을 비롯하여 불교계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을 해 결하고자 만들어진 화쟁 원회의 원장을 맡았다. 그는 4강 사업 과 같은 환경문제만이 아니라 한진 공업 사태처럼 노동모순에 얽힌 
 
17) 지 까지의 논의는 도법스님의 서- 󰡔화엄경과 생명의 질서󰡕(세계사, 
1990), 󰡔길 그리고 길󰡕(선우도량, 1995), 󰡔화엄의 길 생명의 길󰡕(선우도량, 1999), 󰡔청안청락하십니까󰡕(동아일보사, 2000), 󰡔내가 본 부처󰡕(호미, 2004),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불 , 2008)-와 인드라망공동체의 이향민 사무 총장, 한생명의 이귀섭 사무국장의 진술, 필자가 인드라망생명공동체의 문 원과 실상사 화엄승가 학의 외래 교수로서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 다. 
문제 해결에도 생명 사이의 화쟁을 화두로 108배를 하고 법회를 하 며 다양한 실천을 하고 있다.
Ⅳ. 수경스님의 환경⋅생명운동
서울 삼각산 화계사의 주지를 역임한 수경스님은 거의 목숨을 내걸 고 자연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운동을 개하 다. 그는 2000년에 지리 산 살리기 국민행동과 범불교연 의 상임 표를 맡았으며, 2001년부터 불교환경연 의 상임 표를 맡으면서 본격 으로 환경운동에 뛰어들어 새만 갯벌 간척 반 운동, 4강 사업 반 운동 등을 선두에 서서 이끌었다. 정부가 401km2에 달하는 활한 새만 갯벌을 간척하여 농 토와 공업부지로 삼는 계획을 추구하 다. 이에 수경 스님은 지율 스 님, 문규 신부 등과 함께 스페인 발 시아에서 열린 제8차 람사 약 당사국총회에서 2002년 11월 17일부터 25일에 걸쳐 형사진 시회, 래카드 게시, 선 물 배포 등의 활동을 함과 동시에 3보 1배의 시 를 하 다. 이는 자신을 희생하여 생명에 존엄성을 표하고 자신에 가하 는 고통을 통해 생명 괴행 를 참회하자는 취지 다. 
수경스님은 새만 갯벌을 지키기 하여 인 인 투쟁을 개하 다. 그는 문규 신부와 함께 2003년 3월 28일 부안 새만 의 해 창갯벌을 떠나 5월 31일까지 65일간 총 305km를 3보 1배를 하면서 새만 간척사업의 단을 호소하 다. 건장한 청년도 1km를 따라서 하고 한 달을 앓았다는 이 인 인 운동을 개하면서 그는 수차례 혼 하고 병원에서 링거를 맞았으며 결국 체어에 의지하여 운동을 마쳤다. 이 운동의 향으로 연골이 거의 닳아버리고 몸이 훼손되어 그는 다리를 고 시력을 잃었다. 
이명박 정권이 4강 사업을 시작하자 그는 2008년 2월 11일부터 5월24일까지 100일간 종교⋅시민사회단체 표자들과 함께 한반도 운하 반 활동의 일환으로 ‘생명의 강 살리기 순례 장정’을 개 하 다. 이들은 도보로 한강 하구를 출발하여 남한강을 거슬러 올라 낙동강 하구까지 경부운하 정지를 돌아본 뒤, 이어 산강과 강 등 충청⋅호남운하 정지를 방문하는 등 한반도 운하 정지 역 을 도보로 직 찾으며 참회하 다. 
2009년 11월 5일에 스님  재가불자, 학자, 시민활동가, 언론인을 망라한 40여 명의 연구 집단을 결성하여 4강 사업의 문제 과 안에 해 불교, 환경생태, 문화사회, 정치경제 등 4개 분과별로 나 어 연구를 하고 장을 답사하 다. 참여자들은 2010년 3월 4일 
스센타에서 ‘4 강개발 다른 안은 없는가-생태 발 을 한 원칙과 4강 사업’라는 주제로 발표하 다. 그 후 이 결과물을 보도 자료, 단, 성명서, 소책자 등 여러 가지 본으로 만들어 불교계와 시민사회에 배포하 고, 이는 불교세력  종단이 4강 반 운동의 면에 나서는 기폭제 구실을 하 다. 
2010년 4월 17일에는 불교환경연 와 에코붓다, 한불교조계종의 주최로 4 강 사업을 반 하고 생명을 살리기 한 수륙 재를 열었 다. 이날 1,000여 명의 스님을 비롯하여 1만여 명의 불자들은 온 마 음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미명 아래 삶의 근간과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개발지상주의를 비 하 다. 이날 참가자들은 천지가 모두 한 뿌리요, 만물은 모두 한 몸이라는 부처님 가르침을 받들어 하고 참회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보살행으로 온 생명이 평화롭게 살아 가는 정토로 가꾸어 갈 수 있기를 일심으로 소망하 다. 이어서 그는 4 강 이 건설되고 있는 여주의 강가에 여강선원(如江禪院)을 짓고 매일 기도하고 참회하며 매주 토요일 생명을 한 수륙재를 열었다. 그러던  이에 향을 받아 문수스님이 소신공양하 다. 2010년 5 월 31일에 경북 군 군의 지보사 문수스님(세납 47세)이 4강 사업 을 반 하고 생명을 살리고자 유서를 남긴 채 낙동강 둑방에서 소신 공양하 다. 유서에 다른 내용도 있지만 소신공양의 동기와 은 4 강 사업이다. 군 지보사에서 무문 을 수행하던 문수스님은 4 강에 한 문건과 정보를 하면서 “생이 아 면 보살도 아 다.” 라는 유마경의 말 로 4강 사업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생명에 해 동체 비의 자비심을 품고 이를 해 무언가 해야 하는 것이 아 니냐고 주변 사람들에게 반문해 오던  유서를 남기고 소신공양을 결행하 다.
이는 그동안 4 강사업에 온몸으로 항해온 수경스님을 비롯한 
수많은 스님과 불자만이 아니라 이웃종교인, 시민운동 진 , 진보진 에도 강력한 향을 미쳤다. 문수스님의 소신공양은 4강 반 운동 에 불을 지펴 ‘불교환경연 ’, ‘4강생명살림연’를 심으로 생명 평화한마당, 108배 정진, 추모재, 49재행사가 이어졌고, 이 행사에 많 은 불자와 들이 참여하여 생명의 고귀함과 소신공양의 의미를 가 슴에 새겼다.
이를 두고 일부 불자와 스님들이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것이  
하나의 살생이 아닌가 라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 다. 하지만, 󰡔법 화경󰡕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 ‘보살의 소신공양’(燒身供養) 편에서 소신공양에 한 거(典據)를 찾을 수 있으며, 굶주림에 지친 짐승을 해 벽 에서 몸을 던져 법망구(爲法亡軀)를 실 한 부 처님 생의 례가 있다. 무엇보다도 깨달음이란 육신의 집착을 완 히 버릴 때 가능한 것인데, 문수스님은 무문 뿐만 아니라 일종식 을 하여 몸을 비우고, 한 말 이상의 기름을 마시고 소신공양을 단행 하여 육신을 말끔히 태우려 하 고, 그 극단의 고통 속에서도 편안한 표정을 남기었다.18)
문수스님이 소신공양을 하자 수경스님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고, 서
울 조계사에 서울선원을 세우고 여강선원에서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 4 강 반 운동을 더욱 극 으로 개하 다. 이의 향으로 4강 반 와 무상 식을 면으로 내세운 6⋅2 지자체 선거에서 야권이 압도 인 승을 거두었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권이 4강 사업에  변화를 주지 않자 수경스님은 홀연히 잠 하 다. 
18) 졸고, 「4 강 개발의 본질과 문수스님 소신공양의 의미」, 한 불교조계 종 문수스님 소신공양 추모 원회, 󰡔문수스님 소신공양 추목 학술세미나 자료집󰡕, 2010년 8월.
이원규 시인은 “삼보일배로/이미 다 닳은 무릎 연골은/뚝 뚝 온 몸 삐걱거리면서 빛나는 사리요/오체투지로 더욱 침침해진 두 이야 말로/마침내 살아 청청 진신사리”라고 노래했지만, 생명이 죽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흘리시던 스님의 물이야말로 진신사리 의 진신사
리 다.19)
Ⅴ. 생명⋅환경운동의 공과 한계
다리를 고 시력마 잃은 수경스님 앞에서, 소신공양한 문수스님 
앞에서 그 가 감히 실천을 논하고 환경과 생명을 거론할 수 있겠 는가. 하지만 운동은 반성과 성찰을 통하여 진보를 이루며, 아무리 정당성이 확고하고 실천성이 담보된 운동도 발을 디디고 있는 사회 실의 맥락에 따라 평가를 달리 하며, 당 에 성공한 운동도 역사 안에서 언제든 실패로 귀결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운동을 평가하고 자 한다.
도법, 수경, 문수스님이 펼친 생명⋅생태운동  평화운동은 무엇 보다도 국민과 시민운동 진 에는 생태 패러다임과 삶으로 환하 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제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다른 길이 없다. 지 까지와  다른, 불일불이(不一不二)처럼 새로운 생태론  패러다임으로 신하여야 하고 이 패러다임에 따라 모든 사회 시 스템과 제도를 엔트로피가 제로 상태인 순환의 시스템으로 환하여 야 한다. 강을 막아 얼마의 기를 생산하고 공업용수를 확보하고 땅 값이 얼마 올랐다는 데서 을 해체하여 그 강에 몇 마리의 은어가 올라오고 그런 강가에서 천렵을 하고 산책을 하고 명상을 하면서 사 람들은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지로 발 , 경제, 부, 삶의 기 을 바꾸
 
19) 수경 스님에 련된 사항은 불교환경운동연 명계환 사무국장으로부터 넘겨받은 자료와 필자 한 이 단체의 회원  자문 원으로 4 강 사업 반 와 련하여 성명서와 단, 보고서 등 수경스님으로부터 의뢰받은 을 쓰고 다양한 집회에 함께 참여한 경험을 기 로 구성하 다.
고 국가에서 마을에 이르는 모든 시스템과 정책을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추어 개 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스님의 운동은 들이 생태론  패러다임을 갖고 세계를 바라보는 을 제공하 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다양한 장에서 이를 네트워킹을 하며 사회 실천을 행하는 계기를 마련하 다.
불교계만으로 좁 서 볼 때, 이들의 운동은 불살생의 계율과 연기  생명론을  지구 이 직면한 환경 기와 연 하여 해석할 수 있
는 계기를 제공하 으며 참다운 보살행을 실천한 범을 보여주었다. 그동안 불교는 2,500년 의 시간에 머물러 박제화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이에 불교의 화 작업이 요청되었고, 이는 재 생들이 맞고 있는 삶과 그들이 당면한 삶의 문제로부터 불교 교리를 다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모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운동은 불살생의 계율과 연기 생명론을  지구차원의 환경 기, 인간 심의 산업화  자본주의화  무부별한 개발과 연 시켜 해석하고 죽어가는 생명들을 돌아보며 참회하는 계기를 제공하 다. 더 나아가 한국 불교가 사회 실천이 부족하여 으로부터 차츰 외면당하는 상황에서 죽어가는 생명을 한 보살행의 범을 잘 보여주었다.
이 운동은 새만 문제, 4 강 사업 등을 요한 안건으로 부각시 키는 한편, 환경과 생명의 문제를 사회 담론으로 끌어 올렸으며, 생 태론 이고 생명론 인 가치를 확산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 다. 2011 년 5월 28일 재 구 에서 ‘문수스님’으로 검색을 하면 2,600,000개 의 일이 뜬다. 그는 도법과 수경스님과 달리 서도, 이 다 할 경 력도 없이 은 나이에 소신공양을 하 다. 그런 그에게 련된 기사 나 이 수백만 개에 달한다는 것은 정부의 언론 통제 속에서도 그 의 행동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향을 미쳤음을 의 미한다.
이들의 운동은 항의 화살을 바깥으로 돌리기보다 나의 고행을 통하여 내 안의 탐욕과 폭력성, 어리석음을 반성하자는 것으로 자기 성찰의 계기를 마련하 다. 연기를 깨달으면 ‘욕망의 자발 제’가 가능해진다. 원자력 발 소를 지시키거나 괴하는 것보다 더 요 한 안은 우리가 일상에서 나와 타인의 행복과 건강을 하여 탐욕 을 이고 기를 약하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이들의 운동은 들이 스스로 탐욕을 버리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실천의 길을 제시하 다.
특히 도법스님이 행하고 있는 사부 의 공동체 운동은 산업사회 와 자본제하에서 서로 경쟁하고 서로를 타자화하고 소외시키면서 환 경오염을 심화하고 있는 사회에 안의 모델을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다른 요인도 있지만, 사회주의 공동체는 사회는 개 하 지만 개인의 깨달음이 따르지 않은 데 결정 실패요인이 있었다. 숱 한 기독교 공동체는 개인의 혼을 거듭나게는 했지만 사회를 바꾸지 는 못하 다. 특히, 발을 디디고 있는 실에 한 각성과 자연과 인 간이 공존하는 생태 삶의 양식은 부족하 다. 이런 면에서 실에 한 각성을 바탕으로 하고, 생활과 수행과 일이 일치하는 삶을 추구 하며, 인간과 뭇생명이 한데 어울려 모두가 본래 부처를 되찾자는 실 상사 공동체는 양자의 한계를 극복한 공동체의 형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다. 앞으로 내부 으로 독립할 수 있는 재정 시스템 의 마련, 원주민과 완 한 화합, 교육 로그램의 신, 사회 기업 을 통한 경제 자립과 유기 인 도농공동체 완성, 진정한 공동생산과 공동분배의 길 등의 과제를 수행한다면 그 미래는 밝다.
하지만 운동에서 극복해야 할 도 있다. 하나는, 개인의 깨달음과 
시스템  체제의 개 을 종합해야 한다는 이다. 운동의 방향이 사 회  시스템을 개 하는 데로 향하지 않으면, 언제든 제국과 자본주 의, 토건 카르텔의 탐욕에 포획될 수 있다. 도법과 수경 스님의 설법 을 듣고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깨닫는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하지만 환경 괴, 쟁과 살생, 착취와 소외를 야기하고 심화하는 것은 구조 와 시스템이다. 환경 괴 문제를 를 들더라도, 이것이 일어나는 원 인은 산업화, 도시화, 인구증가, 자본주의 체제의 욕망증식과 확 재 생산 메커니즘과 이로 인한 과잉소비의 산업  생활양식, 심국과 다국 기업의 제3세계 수탈 체제, 토건 카르텔의 탐욕 등이다. 연기 론을 깨달아 우리의 욕망을 자발 으로 제하는 것과 함께 패러다임 을 환하고 이 체제와 시스템 자체를 뒤엎지 않는다면, 토건 카르텔 을 해체하고 생태평화복지국가로 이 나라를 개 하지 않는다면, 세계 체제를 서양의 강 국과 제3세계가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체제로 환하지 않는다면 지 의 환경 괴는 인류 멸의 길을 향해 계속 치달을 것이다. 진속불이(眞俗不二)의 정신으로 나의 깨달음을 모든 생을 구제하기 한 사회개 으로 향하게 하고, 사회를 개 하 다 하더라도 깨달음이 곧 집착이라는 정신으로 나를 끊임없이 참회하며 완 한 깨달음의 길에 이르려 할 때 자타성불(自他成佛)이 동시에 이 루어질 수 있다.
도법과 수경스님의 실천은 종교 으로 볼 때 지극히 숭고한 운동
이지만, 운동의 차원에서 볼 때 정치경제 분석과 실천의 부족으로 자칫 에코 시즘으로 락할 수 있다. 도법과 수경스님이 나름 로 정치 식견도 갖추고 있고 이에 해  발언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만, 4강 사업 반 집회 때마다 연단에 올라온 스님이나 성 직자의 일성은 정치성을 배제하고 각 종교가 가지고 있는 생명 에서 운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총칼과 정보력이 없는 시민계층이 자 본  국가에 맞서서 싸울 수 있는 무기는 도덕 헤게모니와 정의 와 평화를 향한 열정이다. 간디의 사례처럼, 도덕성과 생명에 한 외경심을 근본으로 해야 싸움도 정당성을 갖고 끝없이 이어갈 수 있 다. 하지만, 새만 도, 4강도, 지리산 도 모두 정치 과 장 기집권의 술책에서 시작되었다. 생명을 죽이고 갈등과 쟁을 통해 이득을 얻으려는 세력이 정치 인 략과 술을 구사하는 장에서, 정치 을 포기하는 그 순간 싸움은 이미 패배를 상정한 것이다. 더구나 이는 자신들만의 고귀한 싸움, 혹은 자기만족으로 귀결될 가 능성이 크다. 모든 정책에 정치성이 스며들고 권력의 이해 계가 얽 힌  사회에서 정치성을 배제하는 그 자체가 정치 이다. 생명을 죽이고 갈등을 조장하고 양극화와 소외를 심화하는 체제  시스템을 뒤엎는 운동이 따르지 않는 생명평화운동은, 조선조의 목숨을 건 선 비의 상소가 외려 조선왕조를 500년 동안 유지시킨 기제로 작용한 것처럼, 체제를 공고히 하는 개량 인 작업으로 변할 수 있다. 정치 경제 과 항을 수반하지 않는 생명운동은 ‘운동의 (종교 , 혹 은 사상 ) 순수성’이라는 이름 아래 다른 모든 항을 무력화하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하기 십상이다. 구체 실천과 항이 빠진 불교 안은 동양의 신비주의나 성 들의 은유 놀이에 빠질 수 있다. 
정치 략으로서 단기 으로는 환경을 보호하는 자들을 지방의회 
의원  군수로 선출하는 운동을 하고 장기 으로 모든 개발이 지역 주민의 치(協治)에 의해서만 가능하도록 거버 스 시스템을 구축해 야 한다. 경제 략으로서 개발이익에 혹되어 이를 지지하는 주 민들을 깨어있는 주체로 의식화하고, 토건 카르텔을 해체하는 방향으 로 운동을 개해야 하며, 장기 으로는 생태 순환이 가능한 도농 공동체(都農共同體)를 곳곳에 세워야 한다. 사회문화 략으로 과도 한 욕망이 외려 불행을 야기하고 나 고 배려하고 섬기는 소욕지족 (欲知足)의 삶이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의식의 환을 유도하고, 모 든 생활의 장에서 생태론 이고 생명론 인 가치를 지향하는 운동을 개해야 한다. 
이제 개인 한 ‘연기 -주체’가 되어 나의 삶이 다른 타자들, 나
아가 모든 생명들과 긴 하게 연 되어 있음을 깨닫고, 그를 하여 나의 욕망을 자발 으로 제하고, 그들을 더 자유롭게 하는 실천 속 에서 실존의 의미를 찾고 자신의 주체성을 확인하며, 이런 순간 희열 을 느끼는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 평화 으로 모든 것을 아우르되, 더 큰 아우름을 향하여 이를 방해하고 억압하는 세력에 해서는 항해야 한다. 한 마디로 말해, 이 깨달음에 이르고 비 이고 소통 이며 생태 인 합리성으로 각성을 하는 것과 구조와 시스템의 개 이 ‘함께 화쟁 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
Ⅵ. 맺음말
이처럼 한국 불교는 원효와 의상, 과 같은 고승들의 지혜를 바
탕으로 삼국시 이래 체계 인 생명과 생태 사상을 펼쳐왔고, 이는 재에까지 계승되어 도법과 수경 스님을 심으로 강력하게 실천되 고 있다. 한계도 보이지만, 이는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을 통하여, 실 천 속의 시행착오와 성찰을 통하여 개선되리라 본다. 
우리가 이 세계를 자연과 인간으로 나 후 인간에게 우월권을 주 어 자연을 인간의 의도와 목 로 개발하고 착취하는 것을 문명 내 지 근 성이라 불 다. 이처럼 실체론과 이분법이 만든 폭력 서열 제도로부터 환경 기가 비롯되었다고 볼 때, 이를 넘어서서 에코시스 템에 있는 모든 존재를 연기의 계로 악하는 불교는 안의 패러 다임이다. 의상의 화엄사상, 원효의 화쟁, 의 유식지살론 등은 생 명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이며 서로 어떤 계를 형성하고 있고, 그 러기에 이에 한 윤리는 무엇인지, 더 나아가 우리가 마주친 환경문 제에 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어떤 실천을 행할 것인지에 해 지 혜의 빛을 비춘다. 우리 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조차 지 나의 삶 에 계를 하고 상호작용을 하고 있음을 깨달으면, 생명의 죽임과 자 연의 괴를 행할 수 없다. 모든 죽어가고 사라지는 것에 공감을 하 면 타자에 한 폭력은 사라지며, 더 나아가 그들을 살리기 한 정 의로운 실천이 가능해진다. 
이도흠 한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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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695 
ABSTRACT
Ecological Application of Korean Buddhism and Its Contemporary Practices
Lee, Do-Heum
We face a global environmental crisis. Korean Buddhism offers the world wise and practical alternatives with which to meet this challenge. Addressing this possibility, this essay applied the Korean Buddhist philosophy of Wonhyo, Euisang, and Deahyun to ecology. It also examined the prospects and limitations of the practices that Reverend Dobeop and Rev. Sugyeong actively implemented in their life advocacy and environmental movements in the twenty-first century.
By applying the principle of “neither-the-same-nor-different (bul-il- bul-i)” contained in Wonhyo’s philosophy of Hwajaeng (和諍, harmonization) Buddhism, we can explain the connection between living beings and nature. The application at this point of Wonhyo’s “Discourse on the Non-Duality of Truth (Buddha) and Convention (sentient being)” opens a path through which it is possible to firmly establish a system of life ethics. 
The ecological movement, the peace movement, and the lives of Rev. Dobeop and Rev. Sugyeong have rendered many contributions. Firstly, these movements opened up new prospects for citizen movements through their exploration of ecological paradigms and the concept of an  ecological lifestyle. Secondly, these movements offered an opportunity to link the Buddhist thought of life and theory of interdependent arising to the global environmental crisis and to find a solution through that connection. Thirdly, these movements converted the cases of the Saemangeum development and the Four Major Rivers project into a social discourse regarding environmental and lifestyle issues. Fourthly, these movements promulgated the value of life. Fifthly, these movements provided an opportunity for the Korean people to engage in a form of communal self-reflection. Lastly,  Rev. Dobeop’s community movement presents the possibility of an alternative model to a modern society. 
However, these movements demand certain improvements as well. For one, there is a need for the synthesis of systemic or structural reform and individual enlightenment. If we are compelled toward an awakening to the fundamental oneness of all creation through a conscientious social reformation, then at that time the enlightenment of the individual might make possible the simultaneous awakening of the community.
Keywords: the Global Environmental Crisis, Korean Buddhism,
Dobeop, Sugyeong, Wonhyo, Euisang, Deahyun, Ec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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