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몸-마음, 젠더, 생태, 평화 Scapbook

Spirituality, Mind-Body, Gender, Ecology, Ageing, Peace, Scrapbook (in English and Korean)

2021/04/19

알라딘: [전자책]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알라딘: [전자책]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eBook]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 노자가 말하는 인재경영의 道
웨이완레이,양셴쥐 (지은이),조영숙 (옮긴이)유아이북스201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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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제공 파일 : ePub(29.91 MB)
TTS 여부 : 지원

종이책 페이지수 368쪽, 약 21만자, 약 5.5만 단어
가능 기기 : 크레마 그랑데, 크레마 사운드, 크레마 카르타, PC,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폰/탭, 크레마 샤인
ISBN : 9788998156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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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노자의 사상을 경영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본다. 즉 <노자>에 담긴 사상을 도(道), 덕(德), 유(柔), 무(無), 반(反), 수(水)라는 여섯 가지 키워드로 나누고, 이를 현대 기업 경영에 적용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책의 특징은 노자 사상에 정통한 중국의 정치학자와 기업 경영에 밝은 경영학자의 만남으로 탄생되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노자>에 나오는 구절을 학술적으로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 기업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한다. 또, 기업의 경영자는 바람직한 리더가 갖춰야 할 자질, 경영 철학, 조직 관리 기법, 사람 관리 기법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목차


■ 머리말...................................5p
■ 프롤로그..................................8p

도道의 장 하늘과 인간은 하나인가, 둘인가...................................17p
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없다...................................19p
하되 하지 않은 것처럼 하라...................................30p
정신과 육체가 하나가 되는 기업 문화...................................37p
사람을 근본으로 삼다...................................48p
음양이 조화를 이루는 경영...................................61p

덕德의 장 낮은 자가 가장 높다...................................71p
억지로 되는 건 없다...................................73p
무위란 무엇인가...................................86p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다...................................95p
결국은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103p
제도가 명분을 만든다...................................110p
사람을 잘 쓰는 법...................................118p
기초가 모든 걸 말한다...................................126p

유柔의 장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135p
노자와 손자의 모략...................................137p
부드러움과 권모술수의 공통점...................................147p
군대가 강하면 무너지고, 나무가 강하면 꺾인다...................................153p
멀리 보면 약한 게 약한 것이 아니다...................................166p
얻고자 하면 먼저 주어야 한다...................................175p
사람을 뽑는 데도 기발한 전략이 필요하다...................................182p
무력은 어리석은 자의 처세법...................................189p

무無의 장 아무 것도 잃을 것은 없다...................................196p
무(無)의 심오한 이치...................................199p
무는 유의 어머니...................................206p
없음이 곧 있음이다...................................215p
꿈 사고와 퍼지 사고...................................228p
의심이 창조를 낳는다...................................238p

반反의 장 극단을 넘어선 통합의 길...................................244p
경영의 역설...................................247p
음과 양이 어울리는 경영의 기술...................................255p
도는 사람의 보편적 이치...................................259p
영원히 변하지 않는 그것...................................265p
무거움은 가벼움의 근본이다...................................272p
화와 복은 서로 기대어 있다...................................278p

수水의 장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284p
물 흐르듯 경영하라...................................287p
리더십이란 곧 영향력이다...................................294p
통나무와 같은 리더의 신용...................................305p
최고의 덕은 마치 골짜기와 같다...................................312p
고요함으로 움직임을 제어한다...................................318p
건강관리도 곧 실력이다...................................326p

■ 부록...................................3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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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웨이완레이 (魏萬磊)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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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런민대학교에서 법학 석사, 칭화대학교에서 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중국청년정치대학 중문과 부주임으로 중국사회 생활사, 근현대 정치사상사, 정치심리학 등을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1930년대 재생파 학자들의 민족부흥 활동》, 《민족주의: 현대를 오가는 다섯 가지 길》 등이 있다.


최근작 :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 총 2종 (모두보기)

양셴쥐 (楊先擧)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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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명문 종합대학인 중국런민대학(中國人民大學) 경영대학원 교수다. 주로 산업기업 관리, 산업경제, 기업문화, 중국문화와 기업경영, 중국고대 경영사상, 경영사례 등을 연구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경영에서 살아남기》, 《병법으로 보는 경영비책 10가지》, 《노자와 기업경영》, 《기업문화 신기록》, 《공자경영학》, 《손자경영학》, 《노자경영학》, 《삼국지 경영학》, 《한비자 이야기》 등이 있다.


최근작 :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 총 2종 (모두보기)

조영숙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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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중국 근현대사 전공으로 석사학위 취득 및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화중사범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으며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나를 성장시키는 한 방울의 눈물』『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등이 있다.



최근작 : … 총 5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노자가 CEO라면 기업을 어떻게 경영했을까?

인류의 영원한 스테디셀러 《노자》. 《노자》에는 시대를 뛰어넘는 세상과 인생의 진리가 담겨 있다. 《노자》가 세상에 나온 지 2000여 년이 지난 지금, 현대의 기업가들은 이로부터 경영의 지혜를 얻는다.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가 없듯이, 기업에 쓸모없는 사원은 없다.

전 세계에서 《성경》과 《공산당선언(共産黨宣言)》 다음으로 많이 보급된 책이 바로 《노자》다. 이 책은 노자에 담긴 경영 사상을 여섯 가지 키워드, 즉 도(道), 덕(德), 유(柔), 무(無), 반(反), 수(水)로 종합해 설명한다.


인류의 영원한 스테디셀러《노자》
이 책은 노자의 사상을 경영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본다. 즉 《노자》에 담긴 사상을 도(道), 덕(德), 유(柔), 무(無), 반(反), 수(水)라는 여섯 가지 키워드로 나누고, 이를 현대 기업 경영에 적용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이 책의 특징은 노자 사상에 정통한 중국의 정치학자와 기업 경영에 밝은 경영학자의 만남으로 탄생되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노자》에 나오는 구절을 학술적으로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 기업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한다. 기업의 경영자는 바람직한 리더가 갖춰야 할 자질, 경영 철학, 조직 관리 기법, 사람 관리 기법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리뷰]

동양 고전과 현대 경영의 만남!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노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훌륭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노자》 덕분이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 또한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값진 보물로 가득 차 있다”고 《노자》를 높이 평가했다.

이처럼 수많은 대가들이 《노자》를 모범으로 받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노자》는 5000여 자(字)로 지어진 짧은 책이지만, 그 안에는 시대를 뛰어넘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노자》는 전 세계에서 《성경》과 《공산당선언》 다음으로 많이 보급되었다. 《노자》는 기본적으로 동양의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서양사회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1987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레이건이 연두교서에 《노자》의 한 구절을 인용한 것이 미국인들에게 《노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뉴욕타임스는 일찍이 세계 10대 작가의 첫 번째로 노자를 꼽기도 했다. 이처럼 《노자》는 시대와 지역을 넘어 끊임없이 읽히고 해석되는 인생의 지침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노자의 사상을 경영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다. 즉 《노자》에 담긴 사상을 도(道), 덕(德), 유(柔), 무(無), 반(反), 수(水)라는 여섯 가지 키워드로 나누고, 이를 현대 기업 경영에 적용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이 책의 특징은 중국의 저명한 정치학자와 경영학자의 만남으로 탄생되었다는 점이다. 저자 웨이완레이는 중국정치학자로 도가 사상에 정통한 인물이며, 양셴쥐는 기업 경영에 밝은 경영학자다. 두 사람은 《노자》에 나오는 구절을 학술적으로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 기업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한다. 일본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노자의 사상을 경영의 길잡이로 삼아 파나소닉을 일본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파나소닉 외에도 중국 최대 전자제품회사 하이얼과 미국의 대표적인 자동차회사 제너럴 모터스 등 현대의 최고 기업들이 노자 사상을 기업 경영의 모범으로 삼았다.
저자가 주장하는 노자식 경영의 핵심은 바로 ‘무위(無爲) 경영’이다. 여기서 ‘무위’란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것을 강요하지 않고 순리에 따른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노자가 말하는 훌륭한 경영자는 사람을 근본으로 삼으며, 인위적인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매우 단순한 이치처럼 보이지만 실제 우리 사회의 경영자는 어떠한가? 물질적 이익에 눈이 먼 나머지 사람보다 업무 관리에 중점을 두어 직원들의 일에 일일이 참견하며 그들 위에 군림한다. 일부 경영자는 직원의 덕을 자신의 덕으로 세우며 업적을 과시하기 바쁘다. 노자는 최고의 지도자란 성과를 이루어도 드러내지 않고, 교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노자의 사상을 현대 경영학에 적용하면, ‘기업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서는 리더의 위치가 낮아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성경》과 《공산당선언(共産黨宣言)》 다음으로 많이 보급된 책이 바로 《노자》다. 《노자》가 세상에 나온 지 2000여 년이 지난 지금, 현대의 기업가들은 이 책으로부터 경영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 없듯이, 기업에 쓸모없는 사원은 없다.


[이 책에 쏟아진 찬사]

《노자》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값진 보물로 가득 차 있다.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내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노자》 덕분이다.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

중국 문화의 근본은 모두 도가에서 기인한다. 《노자》를 읽지 않고는 중국 문화를 알 수 없다.
―루쉰(魯迅), 《광인일기》, 《아큐정전(阿Q正傳)》 등을 쓴 중국의 대표적인 문학가

중국에 도가가 없었다면, 뿌리 없는 나무와 같았을 것이다.
―조지프 니덤(Joseph Needham), 영국의 생화학자이자 과학사가

노자는 중국 철학의 창시자이자 중국 철학사상 최초의 진정한 철학자다.
―후스(胡適), 중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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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노자에게 배우는 인간관리의 지혜




노자는 5천여 자로 지어진 짧은 책이지만, 읽을 때마다 다가오는 내용이 다르다. 고전의 묘미는 그런 것이다. 언제 읽어도 읽는 당시의 나에게 어떤 면으로든 의미를 부여해준다. 색다른 느낌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도움을 준다. 그동안 여기저기에서 주입된 '어렵다'는 고정관념이 나에게 세뇌되었기에 언제 읽어도 '어렵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는 없지만, 때로는 정독을, 때로는 발췌독을 하면서 어느덧 노자의 사상은 나에게 많은 의미를 던져준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고전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명저다.



이번에 읽은 책은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이다. '노자가 말하는 인재경영의 도'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중국런민대학 경영대학원 교수인 양셴쥐, 중국청년정치대학 중문과 부주임으로 중국사회 생활사, 근현대 정치사상사, 정치심리학 등을 연구하고 있는 웨이완레이. 이렇게 두 명이 공동으로 집필했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유가는 쌀가게, 불가는 백화점, 도가는 약국'이라는 비유가 나오는데, 이 부분부터 마음에 와닿는 느낌이었다. 유가는 쌀가게와 같은데, 쌀은 중요한 식량이기 때문에 쌀가게가 문을 닫으면 우리는 일용할 양식, 즉 정신의 양식을 잃게 된다. 불가는 각양각색의 일용품이 갖추어져 있고 언제든지 가서 구경할 수 있는 백화점이다. 돈이 있으면 몇 개 사오면 되고, 돈이 없으면 한 번 둘러보고 오면 되는데, 그 속의 모든 것은 인생의 필수품이자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도가는 약국이다. '병에 걸리지 않으면 평생 그것을 거들떠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일단 병이 나면 도가를 찾게 된다.' 정말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에 손뼉을 치게 된다. 지금껏 살아가면서, 바쁘게 살아갈 때가 아니라 지치고 힘들어 황폐해진 영혼을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에나 노자 도덕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에 더욱 공감하게 된다.



이 책은 양셴쥐 선생의 <노자와 기업 경영>과 <노자 경영학>, 두 권의 책을 기초로 하여 완성된 것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는 도,덕,유,무,반,수, 이렇게 여섯 가지 법칙에 따라 내용을 편집하였다. 각각의 소제목 앞에는 노자 도덕경으로 시작하고, 현대인인 우리가 읽기에 부담없이 글을 풀어나가고 있다. 글 속에는 노자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다양한 사상과 일화가 담겨있어 읽는 맛이 풍부해진다. 저자의 학식이 광대함을 느끼게 된다.



노자의 사상과 현대 경영과의 만남에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기업경영에 어떤 의미를 주어서 적용시킬지 궁금한 생각에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책이었고 연결이 잘 되는 느낌이었다. 언뜻 생각해보면 노자의 사상과 경영과는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 책의 집필이 참신한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시각으로 두 가지를 접목시켜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노자 도덕경이 두고두고 읽어볼 책인만큼 이 책도 한 번 읽어서는 그 의미를 온전히 잡아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장에 꽂아두고 주기적으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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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라스 2014-02-17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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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쓸모 없는 사람은 없다






중국 도가철학의 시조라 할 수 있는 [노자] 또는 [도덕경]은 노자가 지은 것으로 약 5,000자, 81장으로 구성되었고 크게 ‘도경’과 ‘덕경’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줄곧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태도를 가지고 살라는 ‘무위자연’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데 자연의 질서를 인간세계의 질서에 적용시키려 했던 노자의 생각이 깊게 드리워져 있고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노자의 사상을 연구하여 수많은 책으로 탄생되어 인생의 지침서나 처세술 또는 기업의 윤리와 경영에 적용되면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중 중국의 정치학자와 경영학자가 공동 집필한 책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에서는 노자의 사상을 인재경영 측면에서 바라보고 현대 기업 경영에 어떻게 적용하는지 방법들을 설명하였는데 이 책의 특징은 [노자]에 담긴 경영 사상을 도(道), 덕(德), 유(柔), 무(無), 반(反), 수(水)라는 여섯 가지 법칙으로 나누어 전달하고자 하였고, 특히 경영사상을 학문적으로 해석한 후 기업 경영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도(道)








도라는 의미는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가장 근원적인 실체이며, 우주의 생성원리이자 대원칙 그리고 인류 사회의 일종의 규범과 기준입니다. 도는 [노자]의 핵심 사상으로 형이상학적인 실체이지만 모든 만물은 도에서부터 생성되었으니 도를 근본으로 살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데에도 엄격한 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경영자는 직원들에게 엄격하되 애정이 있어야하며 자연법칙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무위’를 강조하며 시대에 발맞추어 전진해야 하고 직원들 간에 동질감을 형성하고 자신감과 결의를 강화할 수 있는 정신과 육체가 하나가 되는 기업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경영의 핵심은 사람을 잘 써야 하는데 개개인의 능력에 맞게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하며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을 바탕으로 직원을 관리해야 하고 인적 자원 관리에 있어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는 이선경영을 해야 만이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이 가능한 기업이 될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덕(德)








덕이란 도가 형상화된 실체입니다. 즉, 도는 본체이며 덕은 그 쓰임입니다. 덕의 근원은 도이며 사회, 정치, 인생에서 도가 작용하는 것이 덕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입니다. 결국 도는 덕을 통해서 인간세상의 사회, 정치, 인생, 윤리 등을 이야기합니다. 노자는 도에서 말한 무위를 덕에서도 경영의 최고의 원칙이라고 여기고, 법칙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도법자연을 경영이 추구해야 할 철학적 가치라고 주장합니다. “자연에 순응하며 억지로 하지 않는다.”라는 높은 덕을 바탕으로 방법을 얘기하는 ‘무위’ 관념에서 나아가 목적을 의미하는 ‘위’의 효과를 포함한 위무위 사상을 경영에서 실천해야 한다고 합니다. [노자] 제60장에 나오는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다.” 라는 구절은 나라를 다스릴 때 백성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비유적으로 표현했는데 이는 사업을 경영하는 일 또한 작은 생선을 삶듯이 처리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전해줍니다. 즉 경영자는 직원관리에 힘쓰고 자신의 언행에 주의하며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노자의 위무위 사상은 여러 구절을 통해서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조직기구의 설립과 관리 조직 결정과 인사업무 및 “사람을 잘 쓰는 자는 자신을 낮춘다.” 는 구절이 사람을 잘 부리는 사람은 아랫사람을 겸손하게 대한다는 뜻인 것처럼 리더십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유(柔)








여기에서는 부드러운 법칙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용병과 관련된 내용을 언급하여 어떤 사람들은 [노자]를 병서라고도 일컫습니다. 과연 다른 병서와 견줄만한 내용이 담겨있을지 의문스럽지만 손무와 별 차이가 없다고 하니 내용이 모두 병법은 아니지만 인정해줄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노자의 전략과 전술과 관련된 내용을 보면 ‘싸우지 않고 이기는 사상’, ‘부드러움을 중시하는 사상’, ‘얻고자 하면 주어야 한다는 사상’, ‘기발한 전략을 써서 승리한다는 사상’이 주를 이루는데 이러한 용병술이 경영에 도입을 합니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강하고 단단한 것을 이긴다.” 라는 대표적인 명언을 통해 부드러운 경영을 강조하게 되는데 이는 바로 사람을 근본으로 하는 경영을 말하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의사결정권을 부여하여 적극성과 창조성을 이끌어 내어 기업 내에 효율성과 성과를 높이는 결과를 얻습니다. “수컷을 알면서도 암컷을 지키면 기꺼이 천하의 계곡이 된다.” 구절처럼 공격과 수비를 조절하면서 경영관리를 해야 만이 기업의 경쟁력이 꾸준히 유지 될 수 있고 그 외 지나친 경쟁은 삼가야 한다는 경영의 지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무(無)








무는 천지를 형성하지 않았지만 곧 천지를 형성할 물질이며 반대개념인 유는 천지가 형성한 후 만물이 생겨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노자가 제시한 유와 무는 도를 나타내는 구체적인 명칭으로 도라는 것이 만물이 생성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무에서 유로 전환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무의 가치는 기업 경영의 전반에 활용되고 있는데 기업이 힘들어졌을 때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 라는 노자의 사상을 통해 독려할 수 있고, 어떤 문제를 볼 때 무가 제시하는 방법론을 통해 전체를 고려할 수 있도록 일깨워주며, 기업을 경영할 때 무를 통해 맑은 정신을 유지하며 성공했을 시에도 무의 실천을 통해 겸손함을 유지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유와 무가 서로를 낳고, 무에서 유가 생긴다는 말에서 기업성장과 관련된 창조적 사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창조는 인류활동에서 끊임없이 실행되어 왔던 것으로 기업에서는 생산력을 극대화 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입니다. 따라서 기업을 잘 경영하려면 올바른 ‘도’의 가치관이 필요한데 창조성이 바로 갖추어야 할 가치관입니다.








반(反)








‘되돌아가다’ 라는 뜻의 ‘반’은 서로 반대되면서도 어울리는 대립 통일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또는 반대 방향으로 전환되고 발전하다는 의미로 자연으로 복귀한다는 뜻도 됩니다. 이런 반은 노자의 변증법적 사상을 나타내는 방법인데 그 예로 위에서 살펴 본 ‘유와 무가 서로를 낳는다.’ 와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와 같은 구절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런 반 이론처럼 역설적이고 이율배반적인 현상은 기업을 경영하면서 항상 부딪히는 문제인데 이는 노자의 변증법적인 사상이나 모순 관계의 기술을 연구하여 해결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립되는 관계 속에서 양자택일의 방법이 아닌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느냐를 꾸준히 고민하고 노력해야 함을 이야기 합니다.








수(水)








[노자] 제8장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는 구절이 있습니다. 노자는 사람을 물에 비유하여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한 일곱 가지 미덕을 만들었고, 최고의 덕을 갖추고자 하는 사람은 물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낮은 곳을 선택하고, 고요하며, 인자하고, 믿음이 있으며, 잘 다스리고,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며, 때를 보아 행동하는 물의 성질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장은 만물을 이롭게 하는 물의 특성을 살려 한 마디로 물의 경영 철학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리더인 경영자의 수양하는 방법과 다른 여러 책에서도 배워 왔던 리더가 갖추어야 할 리더십의 조건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용을 쌓아야 하며 넓은 도량과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고, 타인의 단점과 장점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제일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자신을 낮추라는 말씀입니다.








깊고도 깊은 철학을 맛본 후...








그동안 자기관리 및 경영책을 읽으면서 가끔씩 고전의 예를 들어가며 설명했던 책을 접해 왔었습니다. 그런 책을 읽으면서도 노자나 공자의 사상들이 얼마나 현재에 우리들에게 깊이 있게 다가 설 수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 의문은 해결되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알고 있던 지침이나 방향을 제시한 책의 내용이 상당수 이 책에 담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번 책에서는 노자의 사상이 현대 기업 경영의 원리에 조화를 이루어 매우 적절하게 적용되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습니다. 오래전부터 많은 경영자들이 이 원리와 사상을 이용해 실천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는 사실들도 말입니다. 수천 년을 뛰어 넘고서도 지금까지 이용되고 사람들이 실천하는 노자의 사상을 보며 감탄과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번 독서는 얼마나 전투적으로 책을 읽었는지 모릅니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이 그어진 많은 흔적들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메모지와 접혀진 페이지들이 그 증거를 대신합니다. 제대로 처음 접해 본 노자의 사상이기에 정독을 몇 번에 걸쳐 했습니다. 사실 담겨진 내용의 모두를 가슴에 담아두기엔 저의 내공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것은 기업의 생존 발전에 있어 사람이 가장 근본이 된다는 것입니다. 기업이 오랫동안 지속 될 수 있는 방편인 사람 경영의 방법들이 이 책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기업의 이윤추구만을 위해 직원을 이용가치로만 생각하고 운영하고 있는 경영주가 이 책을 읽는 다면 아마도 반성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비전과 가치창출을 위한 기업을 만들고 싶은 경영자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매우 훌륭한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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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답 2014-02-13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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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노자>는 전 세계에서 ‘성경’과 ‘공산당선언’ 다음으로 많이 보급된 책이다. 중국 내에서 이 책과 관련된 저술만 해도 1700가지 이상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노자’에 대해 “내가 훌륭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노자’ 덕분이다.”라고 말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도 ‘노자’를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값진 보물로 가득 차 있다”고 평가했다.



이 책은 중국청년정치대학 중문과 부주임으로 중국사회 생활사, 근현대 정치사상사, 정치심리학 등을 연구하고 있는 웨이완레이와 중국의 명문 종합대학인 중국런민대학 경영대학원 양셴쥐 교수가 ‘노자’에 담긴 사상을 도(道), 덕(德), 유(柔), 무(無), 반(反), 수(水)라는 여섯 가지 키워드로 나누고, 이를 현대 기업 경영에 적용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이 책은 모두 여섯 가지 법칙으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도(道)의 법칙이다. 도는 ‘노자’의 핵심 사상으로 노자의 모든 논의는 도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데에도 엄격한 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둘째는 덕(德)의 법칙이다. 덕이란 도가 형상화된 실체이다. 즉, 도는 본체이며 덕은 그 쓰임이다. 덕의 근원은 도이며 사회, 정치, 인생에서 도가 작용하는 것이 덕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결국 도는 덕을 통해서 인간세상의 사회, 정치, 인생, 윤리 등을 이야기한다. 셋째는 유(柔)의 법칙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강하고 단단한 것을 이긴다.”는 용병술을 경영에 도입한다. 공격과 수비를 조절하면서 경영관리를 해야 만이 기업의 경쟁력이 꾸준히 유지 될 수 있고 그 외 지나친 경쟁은 삼가야 한다는 경영의 지침을 전한다.



넷째는 무(無)의 법칙이다. 무는 ‘노자’의 중요한 개념이다. 무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실체의 무로, 확실히 실재하는 무를 말한다. 둘째는 허상의 무로, 있는 듯 없는 듯 불확실한 무를 말한다. 셋째는 유를 내포한 무로, 무에서 유가 생겨나고 유에서 다시 무가 생겨난다는 의미다. 다섯째는 반(反)의 법칙이다. 노자는 ‘되돌아 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라고 역설한다. 이런 반은 노자의 변증법적 사상을 나타내는 방법인데 그 예로 위에서 살펴 본 ‘유와 무가 서로를 낳는다.’ 와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와 같은 구절을 들 수 있다. 여섯째는 수(水)의 법칙이다. 노자는 물을 좋아해서 사람을 물에 비유하여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한 일곱 가지 미덕을 만들었고, 최고의 덕을 갖추고자 하는 사람은 물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자는 최고의 지도자란 성과를 이루어도 드러내지 않고, 교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노자의 사상을 현대 경영학에 적용하면, ‘기업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서는 리더의 위치가 낮아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기업이 오랫동안 지속 될 수 있는 방편인 사람 경영의 방법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으므로 현대의 기업가들은 이 책으로부터 경영의 근본적인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 없다면, 기업에 역시 쓸모없는 사원은 없다.



이 책을 통해 ‘기업 경영은 사람 경영’이라는 말처럼 사람을 근본으로 삼아 기본에 충실한 경영을 하게 될 때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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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2014-02-13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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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를 읽고




기업을 경영하면서 고민하게 되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인사라는 말이 있다. 현대와 같이 다양한 직업군과 그리고 다양한 생각이 공유하는 환경 속에서 기업의 경영방향과 맞는 인재를 뽑고 이를 관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런 면에서 지금 만나게 된 책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는 정말 고전에서 얻은 지혜를 담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책이다. 인재관리를 어떻게 하고, 이를 통한 경영 사상을 들려주기 위해 노자의 사상에서 여섯 가지 부분을 가져온 저자들의 깊은 지식이 돋보인다. 그 여섯 가지를 따라서 이 책을 읽어가면 다음과 같이 경영에 꼭 필요한 덕목들과 그 덕목들이 오늘날 의미하는 바를 깨우치게 된다.

첫째, 도의 장, 하늘과 인간은 하나인가, 둘인가?

이 장에서 인재관리의 기본이 되는 하나의 화두를 얻게 된다. 그것은 바로 “無爲”이다. 도를 근본으로 삼고 ‘함이 없지만 또한 하지 않음이 없다(無爲而無不爲)란 말을 원칙으로 삼은 노자의 생각에서 비롯된 무위의 철학을 배우게 된다. 무위의 핵심은 ‘만물이 자연을 따르도록 도우나 감히 억지로 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을 통해 기업 경영을 함에 있어서 대세를 따라야 하며 억지로 함이 없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 덕의 장, 낮은 자가 가장 높다.

사람을 잘 쓰는 자는 자신을 낮춘다. 이를 다투지 않는 덕이라고 하고, 남의 힘을 활용하는 것이라 이른다. – 노자 제 68장

이 책에서는 “사람을 잘 쓰는 자는 자신을 낮춘다”라는 말에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교훈을 예기하고 있다.

1) 지인(知人)의 중요성

“타인을 아는 것이 곧 지혜로움이라면 자신을 아는 것이야말로 현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知人者智 , 自知者明)

2) 사람을 쓰는 기준은 도라는 견해

3) 사람을 잘 구하다라는 개념

4) 선결이라는 개념

5) 말 없는 가르침이라는 개념

셋째, 유의 장,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여기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사람을 근본으로 하는 경영’을 예기하는 부분이었다.

노자의 생각에 가까운 부드러운 경영이란 사람을 근본으로 하는 경영이다. 부드러운 경영을 도입하여 사람들의 적극성과 창조성을 이끌어내려면, 우선 구성원들이 필요한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중략) 부드러운 경영을 하는 조직에서는 경영자의 권력이 마치 물과 같아서 경영자의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격려, 감화, 계발, 선도 등의 형태로 조직의 공통 가치관과 문화 및 사내 분위기 등에 의해 발휘되는 전체적인 경영 효과는 조직 운영에서 높은 효율과 성과를 거둘 수 있게 한다.

이번 장에서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것을 예기하면서 너무 정공법으로 치고 나가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독점으로 인해 망하게 되는 것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 것들이었다.

넷째, 무의 장, 아무것도 잃을 것은 없다.

다시 한번 더 노자의 사상의 심오함을 느끼데 되었던 장이다. 무의 심오한 이치와 더불어, 무가 유의 어머니라는 이야기에서 들려주는 창조적 사고의 힘은 창조라는 개념을 다시 바라보게 해 주었다. 없음이 곧 있음이기에 포괄적으로 깊이 있게 관찰할 수 있는 지혜가 나오는 것이며, 이를 통해 기존에 있어왔던 습관적인 사고의 패턴도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되었다.

다섯째, 반의 장, 극단을 넘어선 통합의 길

이 부분에서는 음양의 기술, 조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도록 이끌어 준다. 다음의 글귀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던 장이다.

“무거움은 가벼움의 근본이요, 고요함은 조급함의 주인이다.” <노자> 제 26장

경거망동함을 경계하며, 조급해 하지 말 것을 말하는 이 부분에서 이성경영과 감성경영의 관계까지도 살펴보게 된다.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바로 제단하지 않고, 이를 지켜보고 현실에 맞도록 통합하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해 준다. 장자의 다음의 글이 가슴에 남는다.

“저것에도 하나의 옳고 그름이 있고, 이것에도 하나의 옳고 그름이 있다”

여섯째, 수의 장,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흐름 경영을 이야기 하는 이 장에 강조되는 부분은 스스로를 덕으로써 다스리고, 자신을 낮추며, 사사로운 욕망을 줄여 신용을 쌓는 것이 리더의 자격을 이루는 하나의 길이라고 예기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을 수, 물로 마치는 데 있어서 저자들은 노자의 사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수의 장이며, 그러하기에 이런 물의 흐름, 물의 이치를 깨닫는 것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고전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다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대의 한문으로 쓰여진 책들을 현대의 가치와 기준에 적합하게 재해석하고 읽기 쉽도록 세상에 내어 놓아준 저자들의 노고가 책의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다. 단지 논어 한 권에 국한하지 않고, 손자병법이나 장자의 글들도 읽을 수 있으며, 또한 현재 경영학의 시류나 리더쉽을 예기하는 다양한 서적들의 문구를 인용하여 노자의 사상과 비교해 보여주는 부분들도 정말 인상적인 부분들이었다. 이 책 한권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들과 책들을 본 듯하며, 인재경영을 함에 있어서 지혜를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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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mangun 2014-03-0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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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경영관리]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세상에 쓸모 없는 사람은 없다] 저자 웨이완레이 와 양센쥐 작가는 근현대 정치 사가 이고 경영학 교수이다. 합작 해서 중국의 고전을 재 해석 하면서 이를 시대 흐름에 맞게 적용 하며 경영에 합목적인 방식으로 접목 하고자 하는 노력이 돋 보이다. 이력을 좀더 보니 , 노자 뿐만 아니라 손자 , 공자 ,한비자 , 삼국지가 고루 나오니 이 역시 시리즈의 산무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드는 것은 기우 일까 .







아뭏든 노자를 기본으로 한 책 쓰기 이니 만큼 우리 독자들은 노자에 대하여 조금 알 필요가 있다.. 아래 위키디파아의 힘을 빌어 노자의 실체에 대한 구연 설명을 붙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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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司馬遷)은 《사기》에서 노자로 상정되는 인물이 3인이 있다고 하였다. (老子 韓非列傳). 첫째로 이이(李耳, 자는 담(聃=老聃)를 들었다. 그는 초나라 사람으로 공자가 예(禮)를 배운 사람이며, 도덕의 말 5천여 언(言)을 저작한 사람인데 그의 최후는 알지 못한다고 한다. 다음에 든 사람은 역시 공자와 동시대의 노래자(老萊子)로서 저서는 15편 있었다 한다. 세 번째 든 것은 주(周)의 태사담이라는 사람으로 공자의 사후 100년 이상 경과한 때에 진(秦)의 헌공과 회담하였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노자는 은군자(隱君子)'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노자라고 하는 이는 은자로서 그 사람됨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후세에 노자라고 하면 공자에게 예를 가르쳤다고 하는 이이(李耳)를 생각하는 것이 상례이나, 이이라고 하는 인물은 도가의 사상이 왕성하던 시기에 그 사상의 시조로서 공자보다도 위인(偉人)이었다고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전설일지도 모르겠다.[모호한 표현]펑유란(馮友蘭)은 노자가 전국시대의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을 강하게 주장한다. 이에 근거하여 노자가 실존인물이라고 가정한다면 최소한 도덕경 죽간본(BC 300년경) 이전일 수밖에 없으며 한비자(BC 280~BC 233)가 도덕경을 인용하였으므로 한비자보다 앞선다. 또 도덕경에는 유가사상을 비판하는 내용이 많은데 이는 백서본(갑본은 전국시대 말기, 을본은 한나라 초기) 이후가 반유가적인 것이며 죽간본은 덜하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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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약 기원전 600 여년 전의 사람으로 추정 되니 , 지금으로 부터 2000 년 전의 전설상의 인물이 되겠다.. 예수님보다 약 1000 살 정도 앞선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보면 되려나 ... 또한 노자의 말의 전함이라고 일컽는 도덕경의 개요는 다음 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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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말이라고 하여 오늘날 《노자》(老子道德經이라고도 한다) 상·하 2권 81장이 남겨져 있다. 거기서 기술되고 있는 사상은 확실히 도(道)의 본질, 현상계의 생활하는 우수한[모호한 표현] 철학인 것이다. 예컨대 도를 논하여 이렇게 말한다. '도(道)'는 만물을 생장시키지만 만물을 자신의 소유로는 하지 않는다. 도는 만물을 형성시키지만 그 공(功)을 내세우지 않는다. 도는 만물의 장(長)이지만 만물을 주재하지 않는다'(10장). 이런 사고는 만물의 형성·변화는 원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며 또한 거기에는 예정된 목적조차 없다는 생각에서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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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그러한 무위 자연의 법칙을 현세의 경영학에 접목한 기업이 여럿 눈에 뛰는 것이 특이 하다 . 일본의 경영의 신 마스시타 고노스케가 일으킨 파나소닉이 그러하고 , 미국 GM , 등 노자의 사상을 기반으로 물흐르듯 순리를 강조 하여 인간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인문학에 혹은 철학에 견줘서 이야기 하는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나 독일의 당대의 천재적 철학가 니체에 이르르면 그의 사항은 유심론인지 아님 도에 대한 사고 방식은 오히려 유물론에 가까운 무신론에 연결 되는 것이기도 하며, 자연처럼 그러한 것은 인위적인 것으로 거슬을수 없음을 확고히 한다.







그 ( 노자)가 춘추 시대 ( 기원전 770 ~ 403 년 ) 의 초나라의 철학자로 생각 한다면 , 진나라로 통일대국이 완성 되기 전의 춘추 전국 시대의 전반기로 봐야 하며 , 그 정재의 회호리의 한축에 있엇음을 감안 한다면 , 당대를 사는 ㅡ혹은 생존 할 수 있는 인간세상 지혜의 덕목은 과연 무엇일가 하는것이 나의 화두 이기도 하다.







당연히 , 군주와 왕권이 있고, 군사와 백성이 있어서 제 나라의 군민들을 먹여 살리거나 전쟁에서 이겨야만 살아 남는 뛰어난 계략과 지모가 있는 철학자와 정치가가 살아 남는 세상이니 만큼 저마다의 처세술은 남달랐지 안았을가 생각해 본다.







현재의 경영학 및 기업가의 존망도 사실 내부를 들여다 보면 , 춘추 전국시대의 이합 집산과 다를 게 없을 수도 있다, 배경만 첨단 IT 문화와 컴퓨터 , 펜과 , 두뇌로 싸움으 하는 것일 뿐 , 경쟁에서 도태되거나 낙오 하면 기업이 망하는 것은 2000 년전의 춘추 전국시대의 각 나라의 패망사와 닮아 있다...







그 먼 역사의 공간을 뛰어 넘으면서도 후세 사람들에게 변함없는 지혜로 감동받는 부분들이 바로 사람을 다루는 용인술에 있지 않을가 한다.. 전쟁도 사람이 하는 것이도 , 배신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성공의 열정 또한 기업주 입장에선 사람들에게 얼마나의 동기 부여를 주는 가에 따른 결과에 다름 아닐 것이다.







다만 , 공자 , 손자 , 한비자 ,묵가 , 노자 장자 등의 자신들만의 정치 , 철학의 사상이 다른 관계로 제 각각 다른 전략을 채택 하였을뿐 , 근본적인 세상 정치와 민세 지탄을 바라보는 본질은 같지 않았을까 한다...그때 그때 판세에 따른 정세 결정을 누가 얼마나 적절히 하였는지가 후세 역사가들의 평가에 달렸을 뿐이지만 말이다.







사실, 100년을 버티는 노송은 나무의 쓰임새 모적 자체에 벗어난 경우에만 살아 남아서 혹은 간택 되지 않아서 300년 500년 동안 버틸 수 있는 저력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노송의 역설은 경영학 입장에서는 어떤 해석이 가능 할 것인가...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라는 뒤집어 말하기는 누구에게나 쓸모 있는 구석은 있다라는 말과도 일맥 상통 하다면, 사람을 적재 적소에 배치 하여 최고의 효율을 올리게 하는 방법 그 것이 바로 노자의 철학 그본을 아우르는 현대 경영학적 전술이 아닐까 ..







과연 오늘날의 기업 들도 그러한가 반문해 본다... 대개의 기업들은 필요한 부분만을 취사 선택을 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관심이 없는 경우도 많다.. 언재가 빛을 볼 인재를 위해 10년 20년을 기다리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 이라고 판단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 그 시간 낭비되는 요소의 뒤집어 보기를 잘 하면 정답이 있을 수 있다.



사람은 저마다의 달란트가 달라서 이를 인정해주고 알아봐 주는 집단에 충성을 하게되는 본능이 있다.. 조조의 지략에도 , 몽고메리 장군의 지략에도 , 알렉 산더 대왕의 돌격대에게도 몸 바쳐 충성을 다하는 전위병 들이 있었기에 가능 한 승리 들이다...







그 옛날 , 거의 2600 년전의 미이라속에 있는 전설속의 노자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사마천의 언을 빌려서 다시 보든 듣든 곱씹어서 생각 해 볼 수 있는 화두는 < 인간이란 어떠한 방식으로 행동 하고 사고 하는 존재 인가 > 라는 속성에 대해서만큼은 오늘날 아무리 진화론이 진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 그본 인간 양식 패럳음을 꿰 뚫어 보는 철인의 눈매를 피해 가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연유에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도 감동을 받았을 터이고 , 그 깐간한 독일의 철인 , 초 자아의 꿈을 위치는 니체 에게 까지도 영감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높은 산 계곡 속으로 물과 같이 낮은 곳으로 흘러 내리는 순리를 깨치는 순가 그 누군가는 히말라야에서 벌써 태평양 바닷가를 거니는 노자의 발자국을 볼수 있지 않았을까 .....< 책력거99 >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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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jin at April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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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s: 도덕경, 도법, 장자

[국학이야기]천인합일은 통치사상의 기초 - 주간경향

[국학이야기]천인합일은 통치사상의 기초 - 주간경향

[국학이야기]천인합일은 통치사상의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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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시대부터 내려온 민주주의의 뿌리 “백성이 하늘이다”

“단 한번이라도 그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참으로 크게 걱정할 만한 일이 생긴다. 아래 있는 뭇 백성들은 지극히 약해 보이지만 힘으로 겁을 줄 수도 없고, 지극히 어리석어 보인다 해서 지모(꾀)로써 속일 수 없다. 그들의 마음을 얻으면 그들은 복종하지만, 마음을 얻지 못하면 그들은 곧 떠나가버린다. 떠나고 붙는 것이 털끝만큼의 여유도 허락지 않는다.”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인 정도전의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정보위(正寶位)’의 한 구절이다. 고려왕조를 빼앗은 이성계의 역성(易姓)혁명을 천명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조선조 초기의 선비들, 특히 정도전은 정몽주를 통해 처음으로 접한 맹자의 혁명사상에 경도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맹자의 ‘민위귀 사직차지 군위경(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의 영향임에 틀림이 없다. 백성이 제일 귀하고, 사직은 다음이며, 군주는 가볍다는 가치관은 가위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다.

그들은 유학에 새 기풍을 일으켰다. 그것은 군왕도, 사직도 바꿀 수 있지만 백성은 변치(變置)의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백성은 하늘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치관은 하늘의 질서를 인간의 도덕원리로 삼는 천명(天命)과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을 새로운 철학체계로 삼아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들게 했다. 이러한 사유체계는 조선초기의 세종대왕이란 성군을 낳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왕의 자리는 귀하고 높지만, 그 자리(位)를 지키는 방법은 패도가 아닌 인(仁)이어야 했다. 그 자리를 얻는 것도 어짊(仁)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세종대왕을 있게 한 원동력

이 말은 군주가 어질지 못하면 변치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혁명의 논리다. 천지는 만물을 생(生)하는 것으로서 그 마음을 삼고, 만물을 생하는 마음이 천지의 큰 덕이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仁)이라고 여겼다. 천명을 대행하는 군주는 천지처럼, 인간 세상사가 생산적일 수 있도록 어진 마음을 갖출 때 치자로서 그의 보위(寶位)를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인자인야(仁者人也)’, 즉 어질다는 것은 사람답다는 말이다. 백성을 사람답게 여기는 것이 인(仁)이다. 그래야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군주의 마음이 올바를 때 백성의 마음도 편하다. 임금은 ‘천지생물지심(天地生物之心)’을 그 마음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덕이며 인(仁)이기 때문이다. 군주는 생산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나 군주의 뜻을 따라 백성이 대신한다. 이 생산이 군주의 권력 기반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뿌리정신이기도 하다.

이런 천인합일 사상은 맹자 이전인 단군시대, 환웅시대에 시작됐다. 하늘의 형상이 사람이라는 생각은 천부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 천지만물이 하나에서 시작하고 천지의 기운이 사람이 됐다는 사유체계는 세종대왕의 “백성이 하늘이다”란 정신으로,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으로 면면히 전승되었다. 정치적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우리 시대에 천지 마음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야 할 명제다.

이형래〈세계역사문화연구소장〉


원문보기: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10109&code=116#csidx986bb8e37605ce8b3a1818e616c3c65
Posted by Sejin at April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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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 천인합일(天人合一) - 시니어신문

[사자성어] 천인합일(天人合一) - 시니어신문


[사자성어] 천인합일(天人合一)
 이상만 전 성균관도덕부흥운동본부장 
승인 2017.04.25

하늘에는 해와 달과 무수한 별이 공존하고 있듯이 땅에는 온갖 만물이 상존하고 있다. 이 중에 가장 핵심은 하늘의 해와 땅의 사람이다. 이 점에서 ‘태양의 후예’라는 드라마가 공전의 히트를 치며 뭇 사람에게 공감대를 주었다. 전장에서 핀 애정과 우정을 밀도 있게 그림으로서 하늘 향한 인간 정서의 무한함을 보여 준 걸작이다.

마치 땅콩을 쪼개보면 두 개의 콩이 가지런히 있듯이 남녀의 존재를 느낄 수가 있고, 언제나 고소한 맛이 변함없다는 점에서 한 쌍의 연인은 땅콩을 많이 닮았다.

천인합일(天人合一), 요즘에 하늘과 사람이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가면 「귀천(歸天)」이라는 작은 찻집이 있다. 알만한 시인과 유명 예술인들이 들르는 조용한 그곳은 천진(天眞)한 모습으로 살다간 천재(天才) 시인 천상병의 부인이 운영하는 명소이다. 천상병 시인은 어눌한 시대의 희생양이 되어 1993년 4월 28일 향년 63세에 서둘러 하늘로 갔다. 가장 확실하게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그의 대표작 “귀천(歸天)”을 영원히 남기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1967년 당시 정보부 요원들이 남산 부근 그 악명 높은 지하실로 그를 데리고 갔다. 간첩 혐의로 기소된 대학 시절 친구의 수첩에 천상병이란 이름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란다. 그는 물고문과 성기에 충격을 가하는 전기 고문을 받고 불치의 정신장애라는 심신의 상처를 안고 6개월 만에 나왔다. 권력 남용의 어눌한 세태에 한 천재의 운명을 지탱케 해주는 것은 오로지 한 잔의 막걸리였으며 측은하게 여기는 몇몇 문인 동료뿐이었다.

서울의 중심 거리 종로에 가면 대로 옆에 달린 뒷길 피맛골이 있었다. 그 옛날 말달리던 큰길을 피해 드나들던 소시민의 정든 골목길이다. 10여 년 전에 성균관에서 만난 의형인 수필가 신용철 형을 따라 작은 ‘소문난집’ 주점을 자주 가게 되면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우연히 피맛골에서 만나면 용철 형에게 손을 불쑥 내밀며 ‘형, 막걸리 사 먹게 천원만!’ 했다던 천상병이었다고 들은 기억이 떠오르면서 행려시인의 고달픈 삶을 살았던 모습이 새삼 아른거린다. 그런 와중에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고 되내이는 깊은 심중의 소리가 시로 나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비단 천 시인만이 아니리라. 극한 상황을 겪고 살아온 많은 민초들이 의지할 곳은 오로지 하늘이었다. “하늘이시여 굽어살피소서”, “하느님 아버지!”, “하느님 맙소사”,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하느님이 보우하사” 이렇듯 상황이 어려울 때 찾는 것은 저 높고 넓은 푸른 하늘이었고 말없는 하느님이었다.

진정한 인간만이 하늘을 바라보고 하느님을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에 아부하거나 권력을 탐하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정녕 인간의 탈을 쓴 것인가? 왜, 편을 가르고 상대를 모함하고, 자기만이 잘났다고 교만해야 하는가? 왜, 무엇 때문에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가? 왜, 양민을 수탈하고 관직을 사고팔고 탐관오리의 길을 자행했는가? 왜, 비리에 물들고 비정한 도시의 삶을 재물로 향유하려는가?

역사상에도 민초가 들고 일어나면 많은 희생이 따르지만 권력 남용하는 부패한 관료를 지탄하고 심판하며 정의(正義)를 바로 세웠다. 여기서 천벌(天罰)이 생겼고 민심(民心)이 곧 천심(天心)이 성립했으며 천둥 번개를 치며 만물을 깨우듯이 천인합일이 실증된 것이다. 오로지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만이 진정한 사람으로 살다 하늘나라로 간다. 육신은 썩어 흙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지만 하늘 향한 마음은 자유를 노래하며 영원히 남아 풍운(風雲)처럼 구천(九天)을 맴돌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권력에 의지하지 않고 대권에 집착하지 않고 이념갈등에 물들지 않고 모두가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과 같이 높고 넓은 깨끗한 마음을 배우고 천리(天理)에 순응하며 순수한 마음으로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하늘을 바라보고 가르치지 않는 교육자는 스스로 반성하여 양심선언을 하고, 새 정치인은 하늘·땅·사람의 역사를 바르게 알고 춘추대의 정신으로 시대적 사명을 다해야 한다. 세종과 정조처럼 하늘을 바라보고 애민(愛民)정책을 추진한 천인합일 하는 정치가 아쉽다.

옛날처럼 모든 백성이 받들던 제천의식(祭天儀式)을 부활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스스로 이 땅의 주인인 국민으로서, 같은 하늘 아래 세계시민으로서 하늘 사랑으로 거듭나는 일이 남아 있다. 모든 종교를 초월해서 상고 시대 선조의 가르침인 홍익인간 재세이화 접화군생(接化群生)이라는 인생의 나침반이 있으므로 좋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하늘과 사람이 하나 되는 하늘로 다시 돌아갈 수가 있다.

                                      <다음은 경천애인(敬天愛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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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jin at April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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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천인합일(天人合一)은 가능한가? : 네이버 블로그

66 천인합일(天人合一)은 가능한가? : 네이버 블로그

66 천인합일(天人合一)은 가능한가?  중국철학사   
2013. 9. 6. 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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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에서 아주 중요한 명제가 바로 천인합일(天人合一)이다. 이것은 중국고대의 많은 현인과 지사들이 추구하던 최고의 경지이기도 했다. 맹자는 중국철학사에서 천인합일에 대하여 스스로의 해석을 하였는데, 그의 천인합일사상은 두 가지 기본적인 함의가 있다.

 
첫 번째로, 하늘의 기본적인 개념은 인간의 능력 밖에 있지만 객관적이고 필연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소위 "하지 못하는 일을 해냈다면 하느님의 뜻이고, 가능성이 없는 일을 해냈다면 운명이다.(莫之为而者, 天也; 莫之致而致者, 命也.)" 이런 천명은 사람을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놓여있다. 비록 직접적인 인격신의 의미는 아니지만 "하늘은 말하지 않지만 행위와 사실로 그 뜻을 표시한다." 그의 움직임은 가끔 사람의 주관적인 바램과 의지, 행위와 반대된다. 걸출한 사람을 키울 때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그 최종적인 목적은 결국은 사람을 위해서이다. "이런 것을 통하여 그의 경각성을 높이고 마음다짐을 굳게 하며 갖지 못한 재능을 갖추게 한다. (所以動心忍性, 曾(增)益其所不能.)"(『고자하(告子下)』) 하지만 사람 쪽에서 볼 때 사람은 그 주관적인 호오정감(好惡情感)을 버리고 하늘에 순종해야만 하늘이 내리는 중임을 담당할 자격이 있다. "하늘을 순종하는 자는 번창하고 하늘을 거역하는 자는 망한다. (順我者昌, 逆我者亡"(『이루상(离婁上)』)

 
능원자(陵園子)의 천인합일에 대한 견해는 이러했다. 즉 심성(心性)의 관점에서 하늘과 인간의 관게를 밝히고 사람이 외부에 대한 필연적인 관계를 주관적인 의식(마음)으로 전환하여 내적으로 인의도덕적 본성(성(性), 하늘(天))의 관계를 체험하는 것이다. 천인합일은 사람이 마음을 다하여 본성을 알고 하늘을 아는 심성적 체험으로 변화․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른바 "마음을 다 한 자는 그 본성을 알고 본성을 알면 하늘을 알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진심상(儘心上)』) 맹자가 말하는 마음(心)은 그의 본심이거나 양심을 말한다. 그 속에는 인․의․예․지의 도덕본성이 포함되어 있기에 또 "인의의 마음(仁義之心)"이라고 한다. 이렇게 마음․본성은 또 "천작(天爵)" 또는 "하늘이 넘겨 준(天之所於我)" "대체(大體)"라고 불린다. 때문에 마음․본성․하늘은 같은 개념이다. 또 이런 의미에서 맹자는 "萬物皆備于我"라는 유명한 명제를 내놓았다. 만물의 본성은 모두 하늘이 부여한 것이며 천성은 내 마음에 있는 것이다. 내적으로 본성 즉 하늘을 체험하면 만물의 본성은 통하여 사람과 만물을 하나로 융합하는 천일합일이라는 최고의 경지를 실현할 수 있다. 사람한테 있어서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기에 "다시 돌이켜 보아도 내가 인식하고 있는 모든 것에 거짓이 없어 즐겁기만 하다. (反身而誠, 乐莫大焉)" (동상) 맹자의 마음․본성․하늘이 하나가 된다는 관념의 영향으로 후기 유학자들의 심성철학은 기본적으로 이 길을 따랐다.

 
맹자는 사람은 자기의 본성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으면 하늘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하였다. 자기의 심성을 수양하는 것은 바로 하늘을 섬기는 것이다. 이것은 유학의 천인합일사상의 기초가 되었다. 한나라의 동중서(董仲舒)는 사람과 하늘은 기본적으로 같기에 서로 감응할 수 있다고 하였다. 예를 들면 하늘에는 사계절이 있고 사람은 사지가 있고 하늘에는 매년 360일이 있는데 사람의 골격은 360개 이다. 또 하늘은 둥글고 사람의 머리도 둥글며 하늘에는 오행이 있고 사람은 오장이 있기에 하늘은 사람의 증조할아버지인 셈이다. 그는 또 유별에 따라 고찰해 볼 때 하늘과 사람은 같은 부류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천인합일설의 정통적인 의견이다. 이런 천인합일설은 또 "천인상부(天人相副)"라고 하는데 사람은 하늘의 사본이고 하늘은 사람의 范型인 것이다.

 
송나라의 장재(張載)는 하늘은 넓은 허공(虛空)인데 허공은 기이다. 사람은 기가 모여 생긴 것이다. 사람의 정신과 본성은 기 안에 있는 고유한 존재이다. 때문에 "천인일물(天人一物)"이다. 즉 그는 하늘과 사람은 같은 존재물이라고 했으며 "천인합일"의 개념을 완벽하게 정리했다. 정호와 정이는 사람은 기가 모여 된 것이고 기 안에는 이가 있고 이는 기의 지배자이며 이 이는 바로 하늘의 이치라고 하였다. 사람의 본성과 마음이 바로 하늘의 이치이기에 하늘과 사람은 원래부터 하나이지 둘로 갈라진 것이 아니라고 보았기에 "합(合)"이란 말을 할 필요조차 없다고 하여 천인합일설을 더욱 철저하게 밀어붙인 것이다.

 
동중서는 주로 형체의 외부구조로부터 하늘과 사람이 일치하다고 말하였고 송대의 유학자들은 사람의 정신에서 천인합일 또는 천인위일, 천인일체를 논하였다.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사람은 하늘이 낳은 것이고 사람의 본성은 하늘은 부여한 것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주돈이는『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 태극을 음양으로 가르고 음양을 오행으로 가르며 음양오행의 정화가 모여서 사람이 되었으며 오행의 성질이 사람의 본성을 구성한다고 하였다. 왕부지는 그의 논리가 천인합일의 근원을 철저히 해석하였다고 보았다.

 
 
 
[출처] 66 천인합일(天人合一)은 가능한가?|작성자 초보작가


Posted by Sejin at April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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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의 ‘천인합일(天人合一)’사상에 대한 현대적 해석 - 성(誠)과 성실(誠實)을 중심으로-

유학의 ‘천인합일(天人合一)’사상에 대한 현대적 해석 - 성(誠)과 성실(誠實)을 중심으로-




유학의 ‘천인합일(天人合一)’사상에 대한 현대적 해석 - 성(誠)과 성실(誠實)을 중심으로-
关于儒学“天人合一”思想的现代诠释: 以“诚”和“诚实”为中心


한글판<유교문화연구>

2011, vol.1, no.18, pp. 37-62 (26 pages)

UCI : G704-SER000000346.2011.1.18.003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연구분야 :
인문학 >
유교학윤사순 /Youn, Sa-Soon 1


1고려대학교



초록


천인합일사상은 안신입명(安身立命)을 지향하는 ‘유학의 궁극적 이상’임과 아울러 유학 사상을 사실상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유학의 한 대표적 특징’이다. 그런 만큼 이 사상에 대한 현대적 해석은 유학의 현대적 실용성을 탐색하는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고 판단된다. 

유학 가운데서도 천인합일을 가장 구체적으로 논한 서적은 『중용』인데, 거기서는 그 실현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오직 천하의 지성(至誠)이라야만 그 성(性)을 다 할 수 있고, ....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으면 천지와 더불어 병립(參)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에 더해, “성(誠者)은 천도(天之道)이고. 성하려는 것(誠之者)은 인도(人之道)”라고도 한다. 

이로 보면, 천인합일의 성취방법은 두 가지로, 
  • ‘성(誠)에 기초한 진성(盡性)’의 방법과 
  • 인도를 천도에 합치시키는 ‘원리(原理)차원’의 방법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의 구사로 천인합 일을 구현하려 할 때, 그 구현을 불가능한 듯이 보이게 하는 사유가 발견된다. 
  • 그 하나는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이 이질적 성(性)이므로, 그것들의 일원화(一元化)를 전제한 천인합일은 구현될 수 없지 않느냐는 사유이다. 
  • 또 하나는 도(道)로서의 ‘리(理)’개념의 의미 가운데는 소이연(所以然)과 소당연(所當然)이 드는데, 이것들 또한 동일하지 않은 의미이므로, 인도와 천도의 원리적 합일에 난관으로 인지된다.

 이것들의 극복이 천인합일의 성취에 있어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먼저 알아야 할 점으로, 이 두 가지 사유는 특히 사회의 대인차원에서 선악(善惡)의 야기를 감안하여 ‘본성’과 ‘기질성’을 이분화한 관점에서 고려되는 사유이지, 자연에 대한 대물차원에서 고려하는 사유가 아니라는 점이다. 

더욱이 천인합일 논의는 물성인 기질성이 가치중립(價値中立)임을 전제 하고, 본성과 기질성의 원천인 생명(生命)자체의 ‘생성현상(生成現象)의 특성’만을 논하는 경우이다. 따라서 두 문제의 해결은 다 형식논리를 벗어나 ‘생성논리’를 적용함으로써 가능해진다. 

  • 첫째 본성을 대표하는 인(仁)이 그 본래의 애인(愛人)의 의미를 간직하면서도, 그것을 대물차원에로 확대하여 애물(愛物)과 생의(生意)와 생물(生物), 및 산물(産物) 의미로 운용해야 한다. 이는 본성을 보존하면서도, 그것을 기질성과 동일시하도록 하는 작업이다. 
  • 둘째 우주 생명체관에 입각하면, 그 생명체(有機體)에서 소이연과 소당연이 ‘하나의 일치된 상태’로 생성함을 본다. 

생명체의 생성은 각 부분으로는 일종의 기계론적•필연적으로 일어나는 듯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마치 목적론적•당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논자가 생성논리라고 한 것은 이러한 이론을 가리킨다. 천인합일을 성취시키는 기본요건인 ‘성(誠)’의 개념에 대한 해석도 성찰할 부분이다. 일찍이 주희는 성(誠)의 의미를 ‘진실무망(眞實而無妄)’으로 해석했다. 
이는 적합한 해석이지만, ‘정성’의 의미로 미루면, 사실적 ‘진실’ 의미와 함께 티(瑕疵) 없는 ‘순수(純粹)’ 의미를 더해야만 그 의미가 더 충실해진다고 논자는 판단한다. 
이렇게 해석해야 성(誠)의 진실이라는 객체적 성격과 함께 그 주체적 의지적 성격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誠)을 구현하려는 태도는 곧 성실(誠實)이다. 

성실할 때 인의(仁義) 같은 선한 본성이 발현된다. 성실은 본성 발현의 근본조건이다, 이는 성(性)이 성(誠)의 조리에 해당함을 시사한다. 이렇게 성실이 그 조리인 성(性)을 드러내는 사실은 성(誠) 자체와 아울러 성실(誠實)을 원리화 할 수 있도록 하는 현상이다. 성(誠)자체는 ‘진실과 순수함’의 가능태로서 보편성과 객관성을 지닌 것이라는 점에서 천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구현인 성실은 ‘진실함과 순수함’의 현실태로서 당위적(요청적)으로 주체화된 보편성 객관성(곧 조리)을 띠는 점에서 인도라 할 수 있다. 성(誠者)이 천도이고 성실의 태도가 인도라는 규정은 이런 사유에서 나왔다고 해야 한다. 성(誠) 또는 성실(誠實)을 천인합일 성취를 위한 기본원리로 규정하는 사유는 성실이 천인합일 성취의 ‘핵심적 열쇠(키워드)’임을 가리킨다. 성실의 이런 위상은 붇다(佛陀)의 경지를 초래하는 선(禪)에 견줄만하고, 노장사상의 자연 상태를 가능케 하는 무위(無爲)에 견줄만하다. 이렇게 이해하면, 천인합일 경지에서 이루는 안심입명의 내용이 불교나 노장사상의 것과 다르다. 성실로 뒷받침되는 안심(安心)은 일단 불안해소를 이룬 점에서 ‘행복(幸福)의 상태’임을 지칭한다. 그렇지만 불교의 무심, 노장사상의 망아나 무아와 달리, 이 상태의 행복은 소아적 이기심으로 인한 방황을 끝내고 대아적 이타가 가능해진 ‘여유로운 심리상태’이다. 이는 성실이 주는 활력(活力)으로 인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상태임을 시사한다. 입명(立命) 또한 운명에 순종하는 순명(順命)을 넘어, 운명의 충실화를 도모하는 무명(務命)과, 운명을 끊임없이 개척하는 개명(開命)에 든 내용이다. 이런 점은 유학이 지닌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며 실제적인 특징의 바람직한 실현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지에 든 ‘성인상(聖人像)’도 노장과 불교에서 말하는 성인(聖人)과 다를 수밖에 없다. 노자의 무위로 이룬 진인(眞人), 불교의 고통과 고뇌에서 해탈한 불타와 변별되는 인간이 이 경지의 성인이다. 그는 이미 ‘생명의 광장’에 들어선 까닭에, 일생 동안 생성적인 자강불식을 하면서, 사회와 자연에 대해 스스로 ‘무한책임 의식’을 지니고, 항상 ‘공인(公人)의 태도’로 살아가는 성숙한 인격자이다. 이런 인간상이 오늘날 요청되는 인간상임은 물론이다. 성실을 바탕으로 자신의 인품을 고양하고, 화해로운 사회를 이루면서, 우주 자연의 균형 있는 생성을 저해하지 않고, 그 자연과도 조화로운 생활을 기하려는 ‘천인합일사상’이야말로 현대사상으로서 이용해야 할 실학적인 실용성을 충분히 지닌 사상이다. 현대의 실상을 정시할 때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为了探索儒学在现代的可用性,笔者试图用现代的理念诠释儒学的终极理想“天人合一”思想。之所以考察此思想是因为笔者认为“天人合一”思想是儒学思想的代表性特征。自古以来,儒学者们把“天人合一”视为理想的原因在于认定此境界使“安身立命”成为可能,并且已经在现实里实现之。《中庸》提示了实现天人合一的方法论,即“唯天下之至诚,为能尽其性。能尽其性,则能尽人之性。能尽人之性,则能尽物之性。能尽物之性,则可以赞天地之化育。可以赞天地之化育,则可以与天地参矣。”进而言之,“诚者天之道,诚之者人之道也。”由此看来,天人合一的成就方法有二:以“诚”为基础的“尽性”之方法和将“人道”与“天道”合而为一的原理层面上的方法。通过实践躬行,可以使“天人合一”变为可能,这就是《中庸》所蕴含的思想。当用上述两种方法来实现“天人合一”时,就会发现如下困难:一,由于人性和物性相区别,二者又具有异质性,而此异质性是阻碍其一元化的因素;二,由于“理”这一概念所蕴含的“所以然”与“所当然”之涵义的不同,因此“人道”和“天道”的原理性合一也难以实现。以上两种因素成为“天人合一”所需解决的课题。这里需要正确理解的是,无论是人性和物性的异质性还是“所以然”和“所当然”的区别,都属于社会对人的层面的因素,而不是自然界里对物层面的因素。以上均源自将“本然之性”和“气质之性”视为异质、二分化的思维。而“天人合一”应该在作为物性的“气质之性”价值中立的基础上,只探讨“本然之性”和“气质之性”的源泉-生命本身“生成现象的特点”即可。因此,只要脱离“形式讨论”而进行“生成讨论”,那么以上两种问题的解决就成为可能。进行“生成讨论”时“本然之性”和“气质之性”的二分化思维问题才得以解决。首先,将代表本然之性的“仁”理解成“爱人”,同时把“仁”扩展到对物层面上,运用在“爱物”、“生意”、“生物”以及“产物”里。这既保存了本然之性,又使之等同于气质之性。其次,根据宇宙生命体观,从生命体(有机体)里可观察到“所以然”与“所当然”同一化的现象。虽然生命体的生成呈现出机械的、必然的生成过程,但是整体上看仍属于有目的的、当为的现象。笔者所指的生成探讨就是指此理论。使“天人合一”成为可能的基本因素“诚”之概念也成问题。朱熹则将“诚”解释为“真实无妄”。这种解释算很恰当。笔者则在此基础上添加事实的“真实”涵义与无瑕疵的“纯粹”涵义,认为只有这样,“诚”之概念才能变得更加充实。这是因为只有这样,“诚”之“真实”这一客体性格和其本来的主体意志性格才得以体现。此时仍需准确把握“诚和性的关系”。“性”即是指“诚”的体现-“诚实”之“法则性条理”。“诚实”实现其条理的“性”的过程就是“诚”与“诚实”原理化的过程。“诚者天之道,诚之者人之道也”,也出自此思维。将“诚”和“诚实”视作是成就“天人合一”之原理的思维,已将“诚实”看作成就“天人合一”的关键所在。“诚实的地位”也在于此。这时的诚实可与使佛教的理想境界“佛陀”成为可能的“禅”相匹敌,也可与使老庄思想的理想境界“自然”成为可能的“无为”相媲美。只有这样,才能重新解读以诚实为基础的“天人合一”之境界。此境界无疑与“安身立命”即“安心立命”有关,但是此时的“安心立命”有别于佛教和老庄思想的“安心立命”。以诚实为基础的安心可消除不安的状态,使个人达到“幸福的状态”。这有别于佛教的无心和老庄思想的忘我和无我。儒学的此状态下的幸福结束了因小我的利己心而彷徨的状态,使之进入“大我的利他”的“充裕的心理状态”里。这表明“诚实”所带来的“活力”开启了人生新的生活。“立命”则超越了服从于命运的“顺命”,包含使生命更加充实的“务命”和不断开拓命运的“开命”之内涵。以上皆是儒学所蕴含的现实的、实用的、实际的特点最理想化的实现状态。此境界里的“圣人像”也区别于老庄和佛教的圣人。与老子的无为的“真人”和佛教的超脱了痛苦和烦恼的“佛陀”相区别的人就是儒学里所讲的圣人。他由于已进入“生命的广场”,一生都自强不息,对社会和自然怀有“无限的责任意识”,以“公人的态度”生存下去的成熟的人格体。此形象无非是现今社会所需的。以诚实为基础、提高自身的人品、构建和谐的社会、顺应宇宙自然的均衡状态、与自然协调发展的“天人合一思想”才是当今社会所需的实学的、实用性的思想所在。面对现代的状况,我们不得不承认此思想。


키워드

천인합일(天人合一),
진성(盡性),
성실(誠實),
천도(天道),
인도(人道)

天人合一, 盡性, 誠實, 天道, 人道

참고문헌(10)

KCI에서 이 논문을 인용한 논문의 수는5건입니다.
Posted by Sejin at April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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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s: Doctrine of the Mean, 중용

천인합일설(天人合一說)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천인합일설(天人合一說)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천인합일설(天人合一說)

유교개념용어

 유학에서 하늘과 사람은 합일체라는 학설.   유교교리.

 정의
유학에서 하늘과 사람은 합일체라는 학설.유교교리.

내용

『중용』에서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라 하여 인간 존재의 본질인 성(性)을 천명과 동일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성이라는 글자의 모양이 ‘忄(心)’와 ‘生’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살려는 마음’·‘살려는 의지’로 이해할 수 있는데, ‘살려는 의지’는 인간의 지각(知覺)이나 의식(意識)을 초월한 본질적인 것으로서 깊은 잠에 들었을 때도 심장을 움직이고 호흡을 하게 하는 근원자인 것이다.

인간 존재의 본질로서의 성은 한 개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동일한 것이며, 또한 만물에 내재되어 있는 생(生)의 본질과도 동일한 것이다. 말하자면, 개체의 본질이 바로 전체의 본질인 것이다.

다만 개체의 본질을 가리켜 말할 때는 성이라 하고 만물 전체의 본질을 가리켜 말할 때는 하늘의 작용이라는 의미로서 천명이라고 한 것이지, 성과 천명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개체적 존재이면서 본질적으로는 전체적 존재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하늘과 사람은 합일체라는 것이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감각 기관이 발달하게 되는데 이 감각 기관은 육체를 중심으로 하여 남과 나를 구별하는 쪽으로 작용하여 점차 인간은 전체적 존재로서의 본질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전체적 존재로서의 본질을 잃지 않은 상태의 인간이란 바로 갓 태어난 아기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맹자는 ‘대인자 불실기적자지심자(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라 하여 그가 이상적 인간으로 설정한 대인은 갓 태어난 아기 때의 마음을 잃지 않고 보존하는 자라고 설명하였다. 이 때의 대인은 천인합일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맹자는 이미 전체적 존재로서의 본질인 천명의 성을 잃어버린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과제로서 학문을 설정하고, 학문의 길은 잃어버린 마음을 다시 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는 또 ‘진기심자 지기성야 지기성 즉 지천의(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 則知天矣)’라 하여 전체적 본질로서의 성을 다시 구하는 과정으로서 학문의 길을 진심(盡心)·지성(知性)·지천(知天)의 세 단계로 세분하였다.

『중용』에서는 성을 다시 구하여 천인합일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성(誠)의 실천을 제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오직 천하의 지성(至誠)이라야 능히 자기의 성을 다하니 자기의 성을 다하면 남의 성을 다하고 남의 성을 다하면 물(物)의 성을 다하며 물의 성을 다하면 천지의 화육(化育)을 도울 수 있고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으면 천지와 더불어 그 작용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심(心)을 다하여 성(誠)을 실천하고 천명의 성(性)을 다시 구하여 천인합일이 되면 인간은 개체적 존재를 극복하여 전체적 존재를 실천하게 되는데, 그러한 때의 인간 행위의 구체적인 표현으로 맹자는 ‘여천지동류(與天地同流)’라 하였다.

『주역』에서는 “천지와 그 덕을 합하고 일월(日月)과 그 밝음[明]을 합하고 사시(四時)와 그 차례[序]를 합하고 귀신과 그 길흉을 합하여 천지와 혼연일체가 되어 같이 흐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아니하였다”라고 한 공자의 실천 세계도 또한 천인합일의 세계로 이해할 수 있다.

천인합일사상은 인간을 본질적으로 전체적인 조화 속에서 존재하는 자로 봄으로써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성선설을 도출하게 되는데, 전국 시대 말기에 태어나 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사회적 현실을 직시하면서 투쟁에 염증을 느끼고 그 해결 방법을 모색하려던 순자(荀子)는 성선설이나 천인합일사상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는 투쟁의 직접적인 해결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인간은 본질적으로 서로 투쟁하게 되어 있다고 봄으로써 성악설을 제창하고 아울러 천인분리사상을 주창하여 인간은 천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힘에 의해 인간 사회의 조화와 질서를 이루어야 한다고 하고 그 원리로서 예(禮)를 강조하였다.
한대(漢代)의 동중서(董仲舒)는 “하늘도 인간과 같은 희로애락이 있다”고 설명함으로써 천인합일사상을 더욱 발전시켰다.
당말(唐末)의 이고(李翺)는 천인합일의 방법론으로서 복성론(復性論)을 제창하고 다시 복성의 방법으로서 성(誠)의 실천과 멸정(滅情)을 제시하였는데, 주돈이(周敦頤)에 이르러 이는 성(誠)의 실천과 무욕(無欲)으로 계승되고 또 복성의 객관적인 방법으로서 우주론이 전개되었다.
주돈이의 사상은 다시 장재(張載)·정이(程頤) 등을 거쳐 주희(朱熹)에 이르러 성리학으로 완성되는데, 주희는 성의 실천과 무욕을 거경(居敬), 우주론을 궁리(窮理)로 집약하여 복성의 방법을 거경과 궁리로 정리하였다.
한국 유학에서는 천인합일사상보다 더욱 밀도가 높은 천인무간사상(天人無間思想)이 발달하였다. 천인합일이 천과 인이 분리되었다가 다시 합일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면 천인무간은 천과 인이 애당초 간격이 없이 하나라는 의미이다.
천인무간사상에서 나타나는 한국적 특징으로는 궁리보다도 복성의 직접적인 방법인 거경을 중심으로 하는 고도의 수양철학(修養哲學)과 지치주의운동(至治主義運動)과 같은 강렬한 정치적 실천 의욕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천인무간의 사상은 인간의 감정까지도 긍정하게 되어 천의 의지를 인간이 따른다는 천 중심의 천인합일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를 천이 따른다는 인간 중심의 천인합일사상으로서 인내천사상(人乃天思想)이 발달하게 된다.



 참고문헌
  • 중용(中庸)

  • 맹자(孟子)

  • 주역(周易)

  • 입학도설(入學圖說)

 집필자
집필 (1996년)
이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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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항목
  • 사회사상사회 문제에 대한 관점과 사상체계를 가리키는 사회학용어.
  • 군도군군신신(君君臣臣)의 정명사상(正名思想)처럼 임금이 행하여야 할 도리를 가리키는 유교용어.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천인합일설(天人合一說))]
Posted by Sejin at April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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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s: Doctrine of the Mean, 중용

동양포럼/ 오늘의 한국에서 ‘나이 듦’을 함께 생각한다 < 동양포럼 < 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동양포럼/ 오늘의 한국에서 ‘나이 듦’을 함께 생각한다 < 동양포럼 < 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오늘의 한국에서 ‘나이 듦’을 함께 생각한다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20.09.27 
김양식 박사의 신간 나이듦, 가슴 뛰는 내일 서평




[동양일보]우리는 우리 주변이나 가깝게 있는 것들을 소홀히 여기기 쉽다. 그러나 거기서 뜻하지 않는 값진 보물을 다른 사람이 찾아내고서야, 비로소 뒤늦게 등잔 밑이 어둡다는 진실을 깨닫게 되는 일이 드물지 않다.

동양일보 조철호 회장의 선도 아래 동양일보의 기획 사업으로 추진했고, 나와 유성종 전 충청북도교육감이 각각 주간(主幹)과 운영위원장을 맡아 동양포럼을 관리한지 5년이 되었다. 그 동안 정상혁 보은군수가 대표적인 장수마을의 특성답게 ‘노년철학 국제학술회’를 주최하고, 동양포럼이 주관한 ‘한일 노년철학 대화회의’가 6차에 걸쳐 진행된 성과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충북학연구소장 김양식 박사의 최신저서 <나이 듦, 가슴 뛰는 내일>(수류책방, 2020)은 저자 자신이 ‘책을 펴내며’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한일 노년철학 대화회의’의 제2차 회의에 참석한 것이 인연이 되어, 많은 성찰과 독자적인 관점·입장·견해를 다양·다원·다층으로 표출하고, 특히 ‘인생 100세 시대에 행복하게 나이 드는 삶의 지혜를 간명하게 제시해 준 마음 흐뭇한 역작이다.

더구나 그것이 어느 먼 곳에 있는 낯선, 그래서 접근하기 쉽지 않은 고명인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같은 고장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면서 일상적 생활세계를 함께 살아가는 고장사람의 친근한 숨결·삶결·살결이 담긴 글모음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진실을 깨우쳐 주는 것은 먼 곳에서만 높은 곳에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아주 가까운 우리 주변에서도 노력만 한다면 얼마든지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을 실증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나이 들어간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어 이 세상을 아주 떠나게 될 때까지, 한 순간도 멈춤 없이 한결같이 계속해서 우리는 나이 들어간다.

삶이란 나이 듦이다. 그런데 ‘나이를 잊고 산다’는 것이 자랑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은 ‘아직 철모르는 삶’일 수밖에 없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 자신이 70대까지는 나이를 잊고 살았다. 그러나 80대에 들어서면서 내 인생도 잘 생각하여 보면, 결국 나이 듦의 과정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 나이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한 나이 듦인 것인가를 생각해볼 겨를이 없이, 그냥 바쁘게 살았구나, 좀 더 뜻있게 나이 들 수도 있었을 터인데,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더 준비를 하고 80대 인생을 시작할 수도 있었을 텐데. 후회막급, 지금에야 그런 회한을 거듭해보아도 소용이 없다. 김양식 박사는 이제 막 60대에 들어선 신중년 OPAL세대에 속하는 활기차고 긍정적 마음의 습관을 지닌 충북학 연구자이다.

그에게 다가오는 인생 3막의 인생설계를 스스로를 위해서, 그리고 동년배와 보다 젊은 세대를 위해서, 열심히 살피고 끈질기게 연구한 각고의 노력의 성과를 부드러운 목소리로 우리 모두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고 싶어 한다. 나는 그가 여기 소중히 여기는 해월 최시형 선생의 ‘사인여천(=사람을 섬기되 하늘 섬기듯 한다)’의 정신과 실천의 삶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의 책을 읽으면 전문가들의 권위의식도 없고, 누구처럼 현학적 오만도 없다. 그저 자기가 절차탁마를 통해서 ‘나이 듦’의 뜻과 보람을 진솔하게 전해준다. 그는 힘주어 그러나 겸허하게 말한다. ‘이 책에서 지향하는 나이 듦은 조화로운 삶을 통해서 영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나이 들어가는 것으로, 궁극적인 목표는 노년초월이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슈 초인이 되는 길이자, 대자유의 세계에서 생의 마지막을 향유하는 것이다’라고.

그렇다. 김양식 박사의 규정대로, ‘60대~70대는 인생의 황금기일 것이다. 계절에 비유하면 가을이다. 가을이니 곱게 물들어야 하고 무르익어야’하겠지. 그는 자기가 속한 나이 세대에 충실하게 나이 듦의 보람과 목표를 성심껏 제시하고 있다.

주의 깊게 읽고 난, 80대 후반을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의 개인적인 소견은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는 김양식 박사의, 그리고 그와 동년배들의 나이 듦에 이어지는 진짜 노숙년기 인생도 제발 ‘가슴 뛰는 내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때도 똑같이 가슴 설레는 나이 듦이 계속될 것을 믿고 싶다. 나에게 있어서 80대~90대~100대는 웬지 원시반본하는 시기이다. 한 삶이 애초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시기이다. 계절로 따지자면 겨울이다. 겨울의 뜻을 아는가?

나는 봄도 여름도 가을도 나름대로 좋아한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겨울이 좋다. 겨울은 흰 눈 덮인 땅속 깊게 모든 것이 저장되고, 거기서 새로운 생명의 태동이 예비되는 때다. 김양식 박사의 가을 예찬을 내 겨울송가와 오버랩시킨다.

80대 인생은 니체의 위버멘슈의 단계를 지나, 초월의 단계를 음미하고 나서, 다시 돌아와 다음세대들과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숨김없는 대화를 나누는 시기이다. 미지의 새 삶을 시작하기 전에 이생을 품위 있고 우아하게 끝맺음할 수 있도록, 다음세대와의 인간적 성심을 다하는 최후의 사귐에 진력하는 시기임을 보여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둘째는 김양식 박사가 왜 니체의 초인을 언급하고, 의암 손병희 선생의 ‘인내천’을 말하지 않았는가 하는 아쉬움을 느낀다. 니체 이후 많은 서양의 철학자들이 초인의 모습을 그리다가 마침내 최근에 와서 이스라엘의 역사철학자 유발 하라리가 ‘호모데우스’(말 그대로 직역하면 ‘인간신’ 또는 ‘인간 즉 신’)라는 신조어를 통해서 전망했고, 미래의 인간상, 아니 관점을 바꾸어 말하면, 나이 듦의 궁극적 경지를 묘사하고 있고, 그것이 전세계적 화두가 되고 있는데, 그보다 100년이나 앞서서 ‘인내천’을 설파했던 손병희 선생의 선견지명을 내세워도 좋지 않았을까? 의암 선생도 청주인이다. 청주에서 김양식 박사가 손병희 선생이 사람의 삶의 궁극적 실상을 깊게 파고 들어가는 가운데, 마침내 만나게 된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계기가 되었을 터인데. 어디까지나 나 개인의 개인적인 아쉬움이다. 다른 사람은 다른 소감이 있을 테니까. 김양식 박사의 계속되는 나이 듦의 탐구를 기대한다. 80대의 김양식 박사는 어떤 메시지를 전해줄까?

여기서 김양식 박사가 지금까지처럼, 아니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삶과 나이 듦의 새로운 차원·지평·세계를 열어가기 위해서, 그러나 남의 나라와 사람들의 말과 글, 거기에 담긴 역사적 경험과 개인적 견해들에의 의존도를 반성적으로 줄이고, 보다 우리의 역사적 공동체험과 인간적 공유인식의 가능성과 실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해 주기를 기대한다.

한 가지 실례로 말씀드리면, 김 박사는 역사학자이고 동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나이 듦의 과정을 수운 선생의 ‘시천주’와 해월 선생의 ‘양천주’, 그리고 의암 선생의 ‘체천주’의 체험심화·공감확대를 통해서 마침내 의암 선생이 설파했던 ‘인내천’에 함께·더불어·서로 이르게 되는, 충분히 실존개벽적이면서 세상개벽적인 ‘다시개벽’을 함께·더불어·서로 실현시켜 나가는 존재·생명·인격의 3차원 상관연동으로 뜻풀이·자리매김·대화활동으로 해명해나가면 어떻겠는가?

나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소견으로는 활명삼소방을 통해서 꾸준히·한결같이·성심을 다해서 연재하고 있는 김용환교수의 ‘해월신사 법설·무체법경 단상’은 다른 어느 외국인 저작에서보다 우리 삶결과 숨결이 담긴 진실을 전해주고 있고, 가까운 곳에서 늘 살아 움직이고 있는 실존적 공감을 가능하게 해주는 또 하나의 보물이다.

함께 나이 듦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가는 데 적지 않은 힘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가까운 사람들의 힘과 열과 에너지를 모으고 기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2020년 9월 18일.







이 책은...

행복하게 나이 먹는 삶의 지혜를 소개하는 책, <나이듦, 가슴뛰는 내일>은 역사학자이자 명상가이며 문학박사인 김양식(60·사진) 충북학연구소 소장이 펴냈다.

책에는 인생 3막을 열어가는 삶의 태도 12가지가 담겨 있다.

김 소장은 책을 통해 △오늘이 내 생애 가장 빛나는 하루, 나이듦을 즐긴다 △모든 것을 수용한다 △언제 어디서나 미소 짓는다 △단순한 삶을 산다 △배우는 것을 즐긴다 △도전한다 △세상과 소통한다 △규칙적인 운동을 습관화한다 △나이 들어가는 미덕을 실천한다 △내면의 고요함을 즐긴다 △자연과 대화를 나눈다 △죽음을 초월한다 등의 12가지 습관을 제시했다.

저자는 한국요가문화협회 부회장,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 청주대 평생교육원 명상 강사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지리산에 가련다>, <한국 근대 사회변동과 농민 전쟁>, <근대 권력과 토지>, <새야 새야 파랑새야>, <근대 현대 충북의 역사와 기억>, <충북 하늘 위에 피어난 녹두꽃>, <청주학 이야기> 등이 있다. 
Posted by Sejin at April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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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s: 김용환, 동양포럼, 명상

동양포럼/ 불교에서의 존엄 개념 < 동양포럼 < 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동양포럼/ 불교에서의 존엄 개념 < 동양포럼 < 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불교에서의 존엄 개념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21.01.24 19:18


기타지마 기신 욧카이치대학(四日市大學) 명예교수


[동양일보]시작하며

2020년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씨가 백인경찰에 의해 질식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인종적 만행의 영상이 SNS에 의해 전 세계에 발신되자, 인종차별반대 운동이 1960년대의 ‘공민권운동’에 버금갈 정도로 전개되어,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프랑스, 캐나다, 일본 등으로 확산되었다. 미국에서 일어난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BLM운동이 전 세계에 퍼진 것은 그 근원에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물음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공민권운동을 지도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인종차별에 저항한 앨라바마주 몽고메리의 버스 보이콧 운동이 계기가 되어, 1956년에 ‘앨라바마에서의 버스 인종분리는 위헌이다’고 하는 최고판결이 내려진 직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새로운 흑인은 사고를 정지시켜 복종하고 감각을 둔화시켜 현상에 만족하는 것은 단호히 거부한 상태에서, 존엄과 사명이 있음을 새롭게 실감하면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몽고메리의 새로운 흑인은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자존심을 새롭게 실감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유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획득하겠다는 결의를 새롭게 하고 있었다.”

(山本伸 外 共編, <ブラック・ライブズ・スタディーズ>, 東京: 三月社, 2020, 92쪽)



1963년의 버밍햄에서 기도를 하기 위해 행진하는 수백 명의 흑인에 대해서 경찰서장불 코너(Bull Connor)는 비라프스 목사에게 해산할 것을 명령했는데, 목사는 그것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서장은 부하들에게 방수(放水)를 위해 소화용 호스를 열라고 명령했지만, 부하들은 차마 하지 못했다. 흑인의 당당한 태도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흑인들은) 무릎을 꿇은 채 코너의 경찰견이나 경봉(警棒), 소화용 호스에 맞서 자신의 육체와 영혼의 힘만으로 대항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두려워하거나 움직이지 않은 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코너의 부하들은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손에 들고 있던 호스를 늘어뜨리면서 뒤로 물러섰다.” (山本伸 外 共編, <ブラック・ライブズ・スタディーズ>, 東京: 三月社, 2020, 94쪽)



여기에서 우리는 존엄의 구체적인 현현으로서의 비폭력이 적대자도 바꾸는 모습을 볼수 있다.

사실 킹 목사는 인도인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운동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남아프리카에서 백인이 인도인을 차별한 근간에는 만족할 줄 모르는 물질적 욕구의 추구라고 하는 굳건한 자기중심주의가 존재하고 있고, 그것이 위협받는 경우에는‘서양근대문명’을 지키기 위해‘ 자기 방어의 최고 권리’로서 상대방을 정치적으로 억압하는 구조가 존재하고 있음을 간디는 파악했다.

이 자기중심주의의 포기 이외에 인간의 평화적상생의 길은 있을 수 없지만, 그것은 ‘서양 근대’의 틀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생겨난 것이 인도의 토착사상에 기초한 ‘사티아그라하’ 운동이다.



1. 사티아그라하(satyaagraha) 운동에서의 ‘존엄’ 개념

1907년 인도인이 ‘암흑법’이라고 부르는 인도인 거주권을 박탈하는‘아시아인 등록법’이 남아프리카 트랜스발의 백인정부에 의해 입법화되었다.

이 ‘등록’을 거부하면, 인도인은 벌금이나 투옥 또한 강제송환된다. 간디는 이‘암흑법 철폐’를 위한 저항운동을‘사티아그라하’운동이라고 명명했다.


고대 인도의 산스트리트어인‘사티아(satya)’는 ‘진리’를 의미하는데, 이 이외에도‘어떠한 위험도 없는 상태’즉 비폭력이라는 뜻이 있다(이 반대편에 있는 것이 폭력을 합리화하는 자기중심주의다).

동시에 우리에게 작용을 가하는‘신’이나 역사를 초월한 진실의‘존재’라는 의미도 있다. ‘아그라하(aagraha)’는‘고수하는 것’,‘열정’을 의미한다. 따라서‘사티아그라하’운동이란 비폭력에 의한, 역사를 초월하여 변하지 않는 보편적 실재로서의 ‘진리’(신)의 작용(영성의 작용)에 의한 ‘자기중심주의’로부터의 탈각을 자타에게 모두 촉구하고, 존엄성을 지향하게 하는 운동을 의미한다.

간디에게 있어서 비폭력이란 ‘진리’에 이르는 길로 “어떠한 생명체에 대해서도 고통을 주거나 괴롭히거나 살해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지, 사회로부터의도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진리’는 신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에게 내재하는데, 그 작용을 봉쇄하고 있는 것은 자기중심주의이다. 이것을 제거하는 방법은 간디에 의하면 ‘지금까지 만난 가장 가난하고 가장 무력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려’ 자신이 ‘의도한 것이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를 자문하는 것’이다.

간디는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에 서술되어 있듯이, 크리슈나신은 모든 인간에 내재함과 동시에 초월적인 신으로, 개인을 뒤흔들고 동요시킨다.

억압하는 백인에게도 크리슈나신은 내재하기 때문에 자기중심주의로서의 아집을 버리기만 하면 상이한 자들끼리의 평화적 상생도 가능해진다. 억압자로서의 영국인(백인)과 피억압자로서의 인도인 사이의 대립의 극복은 어느 한편에 의한 다른 한편의 굴복에 의해서는 불가능하다.


간디는 토착적 사상과 차별철폐라는 당면과제를 결합시켜 사티아그라하 운동을 전개하였다. 거기에는 서구 근대에는 볼 수 없는 외부성으로서의 타자 우선, 타자를 매개로 한 자기초월, 자타동일, 인간의 이중화와 같은 시점이 존재하고, 자기중심주의의 어리석음에 눈을 뜨라!”는‘동요’를 일으키는 영성의 작용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힌두교도뿐만 아니라 인도인 이슬람교도도, 최종적으로는 영국인(백인)도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 운동은 백인의 지지도 얻어서 최종적으로는‘암흑법’을 철폐시켜, 평화적인 상생사회의 출발점을 형성할 수 있었다.

킹목사가 간디의 사상에 공명한 것은 거기에서 특정 종교를 넘어서 차별과 억압을 극복하고, 평화상생으로의 길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초월적 신은 모든 인간에 신이 내재한다는 것을 영성의 작용으로 보여주고, 그것을 통해서 적대자도 자기 안에 내재하는신을 자각하도록 한다. 이 자각은 인간의 존엄에 대한 자각이다. 이 존엄을 자각할 때 자기중심주의는 붕괴된다. 이 개념을 명확하게 제기한 것은 대승경전 <대반열반경>이다.



2.<대반열반경>에서의 불성과 존엄

<대반열반경> 제8권에는 ‘일체중생실유불성(一體衆生悉有佛性)’, 즉 ‘모든 사람에는 불성이 내재해 있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이 불성은 번뇌라는 자기중심주의에가려져 있기 때문에 스스로는 볼 수 없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비유가 나온다. 가난한 여성이 자기 집에 금고가 있는 줄을 모르고 있다가 붓다의 말을 통해 처음으로 그것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비유는 번뇌를 가진 인간은 스스로는 자기에게 불성이 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것을 알게 하는 것은 외부성으로서의 절대자(붓다)의 영성의 작용에 다름 아니다. <열반경>에서의 ‘불성’은 산스크리트어 ‘붓다 다투(buddha dhaatu)’, 즉 ‘붓다가 되게 하는 근본 실체’의 번역어로 완성체로서의 ‘붓다 그 자체’를 의미하고, 그 내용은 ‘고귀하고 엄숙한’ 존엄성을 함축한다.

구체적인 개체로서의 인간과 불성의 관계에 대해서 신란(親鸞. 1173~1262)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불성은 곧 붓다 그 자체다. 이 붓다는 무수히 많은 모든 세계에 가득 차 있다. 그것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에 내재하는 마음(心)이다. 인간은 이 마음을 통해 붓다에 의한 구제의 맹세를 받아들이고 믿기 때문에 이 신심(信心)은 곧 불성이다. 나에게 내재하는 이 불성은 초월적 세계의 붓다의 영성의 작용에 의해 자각된 것이기 때문에 초월적 세계의 붓다, 진여와 동일하다. 초월적 세계의 붓다와 나에게 내재하는 붓다는 불이일체(不二一體)의 관계에 있다. 초월적 세계의 붓다는 진여로서, 색도 형체도 없다”(<유신초문의(唯信抄文意)> 1250년)



신란에 의하면 초월적 세계에 존재하는 진여는 그 자체로는 작용하지 못하고, 사람들을 미혹으로부터 구제하기 위해서 자기를 한정시켜 개체의 형태를 취해서 현실세계에 나타난다. 따라서 이 현실세계에서의 모든 개체, 개개의 인간은 자기 안에 붓다를 모시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성으로서의 붓다의 영성의 작용, “자기중심주의의 어리석음을 자각하라!”고 하는 외침, 인간 석존에게 나타난 아미타불의 외침을 들을 때, 번뇌에 의해 불성이 가려져 있어도 누구나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 때 우리는 붓다와의 일체성, 절대자와의 일체성에 눈을 뜨는 것이다. 이 상태가 존엄성의 자각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버밍험에서는 기도를 드리기 위해 행진하는 흑인들로부터 존엄성의 구체적인 현현을 보았기 때문에 경찰들은 방수(放水) 명령을 집행할 수 없었다. 경찰들은 흑인의‘증오’가 아니라 당당한 모습, 존엄성(불성, 신)의 구체적인 모습에 저항하지 못한 것이다. 흑인을 탄압하는 경찰들에게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존엄성(불성, 신)이 내재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 불성은 악인이나 불법을 매도하는 자에게도 내재해 있다.

정토경전 중에 가장 중시되고 있는 <불설무량수경(佛說無量壽經)>은 “유제오악비방정법(唯除五逆誹謗正法)”, 즉 “악을 범한 자, 불법을 매도한 자는 붓다의 구제에서 제외된다”고 하면서도, 그런 행위를 한 자도 회심참회(廻心懺悔)하면 모두 구제받을 수 있다는 함축이 들어 있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선도(善導, 613-681)의 <법사찬(法事讃)>(上)에 나오는 “방법천제회개왕(謗法闡提廻皆往)”, 즉 “죄를 범한 자도 불법을 매도하는 자도 회심참회(廻心懺悔)하면 모두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그것의 구체적인 예를 신란은 <대반열반경> ‘범행품(梵行品)’을 인용하면서, 아버지를 살해한 아사세(阿闍世) 왕자의 회심참회(廻心懺悔)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탐욕에 의한 착란’으로 살해를 범한 것으로, 살해에 대한 자각과 참회가 있기 때문에 당신의 행위는 죄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석존으로부터 듣고, 아사제 왕자는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약에 세존을 뵙지 못했다면 셀 수없을 정도로 오랜 기간 지옥에 떨어져, 끝없는 고통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 부처님을 뵈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얻으신 공덕을 받들어서 중생의 번뇌를 끊고 나쁜 마음을 깨트리고 싶습니다.”

(親鸞, <顕浄土真実教行証文類(現代語版)>, 本願寺出版社, 296쪽)



아사세 왕자는 인간 석존에게서 붓다를 본 것이다. 그 붓다의 외침을 듣고 번뇌에 가려져 있던 내재적 불성은 활성화되고, 가해자였던 그는 진실에 눈을 뜨고, 아무런 두려움 없이 새로운 인생을 결의한다. 존엄성을 회복한 아사세 왕자는 석존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존이시여! 만약에 제가 틀림없이 중생의 온갖 나쁜 마음을 깨트릴 수 있다면, 저는 항상 무간지옥(無間地獄)에서 무수히 많은 시간 동안 사람들을 위해서 고뇌를 받게 되더라도 그것을 고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296쪽)



그리고 자신이 다스리는 마가다국(摩伽陀国)의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무상보리심(無上菩提心), 즉 진실의 깨달음을 바라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였다. 아사세는 존엄성을 얻고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시의(侍醫) 지바(耆婆)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바여! 나는 목숨이 다하는 일 없이 이미 깨끗한 몸이 되었다. 짧은 목숨을 버리고 긴 목숨을 얻었고, 무상(無常)한 몸을 버리고 불멸의 몸을 얻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무상보리심(無上菩提心)을 일으키게 하였다.(297쪽)



자기에게 내재하는 불성에 눈을 뜬 인간은 육신은 유한하지만 마음은 진실세계(정토)의 붓다와 같다. 신란은 그와 같은 인간을 내용적으로 ‘여래와 동등하고’ 현실의 모습으로서, 붓다가 되는 것이 정해진 ‘미륵과 같다’고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자대비’(광대한 타자 구제심)는 불성이라고 <대반열반경>은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불성을 자각한 인간은 보답을 구하지 않고, 타자구제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각’을 얻은 인간의 행동은 붓다와 일체가 된 행동으로, 미륵보살이 행하는 것과 동일한 행동이다. 거기에는 완성은 없고, 항상 완성을 지향하는 ‘탈피’가 계속된다. 그런 인간의 모습을 접한 사람들이 느끼는 감동적인 ‘실감’이 존엄성이다.

불성의 자각은 불합리한 현실변혁을 위한 행동을 낳는다. 자기에 내재하는 불성을 자각한 인간은 외부성으로서의 붓다의 작용에 의해서 타자에게도 적대자에게도 동일한 불성이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기에서 인간의 상생의 근거가 생겨난다.



3. 불교에서 불성=존엄성의 현대적 의의

서양 근대는 초월적 신을 내재화하고, 그것을 이성과 양심으로 파악하였다. 서양 근대에서 인간은 이상과 양심을 안에 지니는 존재로, 그것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내재화된 신은 개인의 마음 속에 한정되고, 개인의 양심과 일체화된다.

이것이 서양 근대의 개인주의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 외부성으로서의 절대자=신은 교회권력으로부터 분리되어 이성과 양심을 내재하고 있는 ‘평등한 개인’으로 구성되는 국민국가로 이동되고, 세속국가 자체가 신적인 절대성을 체현한다. 이렇게 해서‘국가의 정의’라는 이름 하에 전쟁이나 식민지 지배가 정당화된다.

이성·양심을 안에 지니는 개인이 자기를 묻는 경우, 자기(개체로서의 나)를 뿌리치고 그런 자기(개체로서의 나)를 보는 ‘또 다른 새로운 자기’를 탄생시키는 절대자, 즉 자기 객관화를 가능하게 하는 외부성으로서의 초월적 절대자는 부재하고, 이성·양심이 자기 내부에서 자기를 묻게 된다.

그 결과 자기 초월(현재의 자기를 초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는 이성·양심은 쉽게 자기중심주의와 일체화될 수 있다. 수 있다.

현대 일본에서는 존엄사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 말에는 ‘인간답게’, ‘나답게’ 죽음을 맞이한다는 함축이 담겨 있는데, 거기에는 자기객관화가 없는 외부성으로서의 타자와의 상호관계성을 결여한‘둘도 없는 나’를 강조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인간의 존엄’ 개념은 ‘인간의 내적 가치’이고, ‘자율개념’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 경우에 초월적 존재와의 상호관계를 부정하면 자기중심주의라는 틀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런 입장에 선 주체자로서의 인간에 주위 사람들은 영혼을 울릴 정도의 존엄성을 느낄 수 있을까? 거기에는 이‘나’를 살게 하려고 필사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체의 모든 기관에 대한 깊은 감사와 존경도 없을뿐더러, 자기와 일체화된 붓다에 대한 존경심도 없고, 오로지 자기중심주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을 고수하는 것이 서구형 근대적 사고에 다름 아니다. 불성론은 인간에 내재하는 존엄성으로서의 붓다와, 그것을 자각하게 하는 외부성으로서의 절대자의 작용에 의한 자아고집・아집으로부터의 해방의 길을 제시할 수 있다.

서양 근대에는 구조적으로 우열의 이항대립적 사고, 타자를 거부한 자아중심주의가 존재하고, 그것이 사회체제와 일체화되어, 마치 보편적 원리인 것처럼 세계에 퍼지고 있다. 마하트마 간디나 루터 킹 목사는 이와 같은 서양 근대의 틀을 넘지 않는 한, 억압이나 차별 그 자체의 철폐와 인간 상생 현실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이에 대한 해결의 길은 내재적 절대자와 외부성으로서의 절대자의 변증법적 통일의 논리이다. 이 논리에 기초한 행동이 서양 근대가 해결하지 못한 상이한 인간들 사이의 상생의 기반을 제한 것이다.



맺으며

오늘날 일본에서 볼 수 있는 존엄론에는 내재와 초월의 상호관계를 심화시키는 시점이 희박한 것 같다. 그것은 학문 자체가 서양 근대에 특징적인 이항대립적 사고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이항대립적 구조로부터의 탈피를 시도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대반열반경>의 불성론이다.

이 사상은 13세기에 가마쿠라신불교(鎌倉新仏教)의 대표자 중의 한 사람인 신란(親鸞)에 의해 이론화되었는데, 일본에 정착하였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그것이 반(反)권력의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주요 불교 교단의 하나인 진종(真宗) 교단뿐만 아니라 다른 불교 교단도 그와 같은 불성론을 기본적으로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민중 속에 정착하는 일은 없었다.

1945년 패전 후에 근대 천황제를 지탱한 국가신도(国家神道)의 부정과 서양 근대적 개인주의가 일본에 확산되는 가운데,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종교와의 밀접한 관계를 경원시(敬遠視)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 거기에는 서양 근대는 종교를 지양(aufheben)했다고 하는 환상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존엄 개념을 종교와 관련시켜 심화시키는 방향은 주류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의 내용에는 비폭력과 평화, 상호관계성, 차이와 평등의 병존, 공동체와 개인, 우애, 일즉다( 一卽多), 수복적 사법(修復的司法), 용서와 화해 등등, 오늘날의‘난제’를 해결할 개념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이 개념들은 하나같이 존엄성과 관련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에도 종교와 관련지어 존엄 개념을 심화시키는 작업의 의미는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다룬 <대반열반경>의 불성론에는 약자와 피해자가 존엄성을 획득하도록하는 용기부여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아사세의 회심참회’에서 볼 수 있듯이, 가해자와 강자도 구제받는 시점이 명확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이 불성론에는 절대자의 내재와 초월의 상호관계성을 볼 수 있고,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의‘시천주(侍天主)’ 개념과 상통하는 점도 존재한다. 이렇게 보면 불성론으로 위치지워지는 존엄 개념에는 오늘날 인간의 평화적 상생을 생각하는데 있어서 서구 근대에는 존재하지 않는 명확한 방향성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번역 조성환



동양일보 dynews@dynews.co.kr
Posted by Sejin at April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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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s: 동양포럼, 조성환

동양포럼(138) 오구라 기조(小倉紀藏) 교수의 群島의文明과大陸의文明 을 읽고서 < 동양포럼 < 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동양포럼(138) 오구라 기조(小倉紀藏) 교수의 群島의文明과大陸의文明 을 읽고서 < 동양포럼 < 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동양포럼(138) 오구라 기조(小倉紀藏) 교수의 群島의文明과大陸의文明 을 읽고서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21.02.07 21:46

유성종 동양포럼 운영위원장



오구라 기조 교수의 群島의文明과大陸의文明



오구라 선생의 <群島의文明과大陸의文明>을 받은 것은 12월 10일의 한 모임에서 김태창 박사를 통해서였다. 그분의 신간이 반갑고 고마웠다. 집에 들어와 이내 그 책을 폈다. 그리고 하루에 다 읽었다. 읽히는 글이었다. 읽게 만드는 책이었다. 나의 나쁜 버릇인 노루글(노루가 껑충껑충 뛰듯 책을 읽는) 이른바 적독(摘讀)을 하지 않고, 드물게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모두를 읽었다. 기쁘고 즐겁고 가슴이 후련하게 트임을 느끼면서.

오구라 선생과의 만남은 나에게 또 하나의 배움의 계기가 되었고 큰 가르침이었다. 글(文章)로써는 2016년 5월 9일자 동양일보의 동양포럼(5)에서부터, 대면(對面)한 것은 2016년 10월 1~3일의 동양포럼의 국제학술회의Ⅱ로 시작해 4번, 일본에 가서 1번이며, 그분의 저작(著作)에서는 <韓國은 하나의 哲學이다>(1998, 개정판 2011. 조성환 번역서 2017), <새로운 論語>(2013), <朝鮮思想全史>(2017), <京都思想逍遙>(2019), <群島의文明과大陸의文明>(2020)을 내가 가지고 있는 도서(圖書)이다.

오구라 선생의 모든 저술과 발표 내용이, 우리나라의 학자들은 많은 경우 ‘00은 이렇게 말했다’ 류(類)인데, 그분은 ‘00은 이것이다’라고 하는 것이라, 참다운 ‘자기의 학문과 그 깊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는 ‘예지(叡智)와 온축(蘊蓄), 양심(良心)과 덕조(德操), 청빈(淸貧)과 열정(熱情)’의 학자 세분 중의 한분이라고 생각하여 달리 보고 있다.

오구라 선생은 위와 같은 풍도(風度)의 학자인 것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연 국제회의마다 당신이 가르치고 있는 여러 국적의 대학원박사과정 학생들을 국제 감각에 익숙하게 하려고 여비를 마련하여 데리고 왔고, 세션이 끝날 때나 휴식시간에 그들을 불러서 찰찰히 귀띔해주는 것을 보고 나는 참교육자의 모습이라고 감탄하면서, 그분의 지도를 받는 학생들은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가? 하고 우리의 교육풍토를 반성하였었다.

여비를 보상하려고 항공료 영수서를 청하면 대학의 출장비로 왔다면서 발표 사례비조차 받은 일이 없었다. 그리고 한국에 나오면 누구에게나 유창한 한국어로 대화하고, 결코 일본말을 일언반구도 쓰지 않는다는 배려로 한국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분이다.
오구라 기조 일본 교토대 교수



Ⅱ.

<群島의文明과大陸의文明>은 제1장서부터 제9장까지의 내용이 첫째는 그 언설이 독특하고 예리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사상과 주장이 참신하기 때문이고, 셋째는 인격과 지향이 청랑(淸朗)하고 고상(高尙)하기 때문에 매료(魅了)된 것이다.

그 제1장에서 2장까지를 방법론과 개념규정으로 보고, 제3장에서부터 7장까지를 생명론, 특히 제3의 생명론으로 보며, 제8장은 경제론이고, 제9장을 코로나 재화 이후의 전망으로 매듭짓는 것으로 나누어 적어본다.

방법론에서 문명/ 문화/ 사상을 비교 조명해야 하는데, 거기에서 ‘문화민족주의를 배제하고, ①문명/ 문화/ 사상을 어떤 국가와 본질적으로 결부시키는 사고방식은 기본적으로 배제한다. ②문명/ 문화/ 사상을 국가나 민족 등으로 틀을 짜지 말고, 그 지역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성에서 이해하는 시좌를 구축한다. ③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가장 근저의 부분으로 항상 되돌리면서, 그 인간이 만드는 다양한 결말의 상호관계를 인식하여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비교문명적·비교문화적·비교사상적 사고는 텍스트의 내부만을 탐색하는 것으로는 소용이 없다. 역사학, 경제학, 법학, 사회학 등의 많은 지혜와 교감하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그것들 사상과 철학을 만들어낸 하부구조에의 이해도 매우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나에게는 큰 가르침이다.

그 다음에 ‘군도문명과 대륙문명’의 개념인데, 군도문명을 해양문명과 굳이 구별하는 것은 일본이 독특한 문명과 사상성을 이룬 것이, 자연과의 조화라는 지정학적인 요구조건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やまと(大和=일본의 다른 이름)의 화(和)로서, (중국)대륙의 합치지 않으면 안 되는 합(合)의 이념과 구별하려는 것이라, 합당한 비교라고 보았다. 일본을 ‘자연재난의 보고’라서 중국시스템에 동화되지 않았다는 해석도, 특히 우리 한국의 경우와 비교하여 얼마나 은유적인 것인가? 역시 동아시아를 통(通)하고 통하게 하는 혜안(慧眼)이고 시각(視覺)이라고 생각하였다.



Ⅲ

제3장 군도문명과 ‘논어’의 애니미즘, 제4장 제3의 생명, 제5장 세 가지 생명으로 문명을 해독함, 제6장 세 가지 생명으로 일본사상사를 해독함, 제7장 일본문화와 미의식인데, 이것들을 통틀어 핵심은 ‘제3의 생명’이라는 오구라 철학론의 가장 독특한 개념이다. 내가 그 ‘제3의 생명’론을 들은 것은 3년 전이었는데, 그때 나는 그것을 잘 알아듣지 못하였었다.

이번의 <群島의文明과大陸의文明>에서 ‘애니미즘과 제3의 생명’을 4개장에 걸쳐서 곡진하게 논술하고 있어서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는데, 공자(孔子)의 인(仁)도 제3의 생명이 빚어낸 보람이며, 맹자(孟子)는 공자의 사상을 역전시켰다고 하는 것 등은 얼마나 참신한 탁견인가?

애니미즘·샤머니즘·일신교를 세 가지 생명론으로 풀이하고, ‘제1의 생명’은 인간과 보통 우리가 생명이라고 하는 것, 곧 육체적 생명과 생물학적 의미의 생명이다. ‘제2의 생명’은 인간이 유한한 육체적 생명에서 오는 허무감이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절대적 생명의 비원(悲願)에서 비롯된 절대적 생명에의 동경과 소망으로, 인간은 어느 민족이든 종교로서 정신적(spiritual) 생명, 영(靈)의 생명, 제1의 생명의 유한성에 대하는 영생(永生)의 생명을 그리게 되었는데, 그것이 ‘제2의 생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새로운 논리인 ‘제3의 생명’이란, ‘개인적 육체적 생명’도 아니고, ‘영생하는 영적인 생명’도 아닌 것이 우리에게는 있는데, 인류의 사상사(思想史) 종교사(宗敎史)에서 거의 무시되어 왔고, 혹은 주제화 초점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물건 ‘사이’, 어떤 경우에는 물건과 물선 ‘사이’에 우발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 ‘생명’, 그것을 ‘제3의 생명’으로 한다는 것이다.

언제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가엽다’나 ‘화기애애하다’로 표현하여온 ‘상태’, 좀 더 광범위하게 말하면 미(美, 아름다움)라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문화의 미의식에서 ‘もののあはれ=가여움’, ‘わび=스며드는 정취(情趣)’, ‘さび=한적(閑寂) 또는 청한(淸閑)’ 등은 우리가 말하는 ‘느꺼움’의 차원이다.

그분이 자신 있게 구사하는 한국어의 ‘아름답다’를 어근·어간·어미의 어원적으로 분석하면서 일본의 미의식을 말하는데, ‘아름답다’에서 아람(實⟶球)·알다(知)·알(卵)-알차다(充實)-차다(滿) -참(眞)으로 연상하고, 그래서 우리의 ‘아름답다’는 생명, 완벽, 공(球), 진리, 지식 등의 관념이 있다고 설파한다. ‘아름답다’는 말로 표현되는 한국의 미의식에는 보편성에의 강력한 지향성이고, 그와 함께 현저한 도덕지향성이라는 추리에, 나의 의식세계를 그분이 이렇게 꿰뚫고 있다는 생각에서 흠신(欠身)했다.

또 ‘くはし’와 ‘곱다’가 ‘예쁘다’는 뜻으로 동근(同根)이라고 하면서, ‘곱다’를 섬세한 미를 나타내는 말이며, ‘くはし’의 어근을 kuph라 하고 ‘곱다’의 어근 kop와의 유사성을 들고 있는데, 그것의 개별성과 시간성의 미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깨우치는 것이다.

그리고 ‘아름답다’에서 본 ‘아람’과 ‘알’의 형상인 둥근꼴의 공(球)은 일본어에서는 ‘たま(玉)’인데, 그것은 일본의 고대어에서는 사람과 사물의 안에 있으면서 그 본질적인 생명력에 내장하는 ‘정령(精靈)’이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언령(言靈)/ 진혼(鎭魂)=영혼(靈魂)을 예거(例擧)한다.

그리고 ‘たま’는 ‘-しい(←ひ)’라는 접사를 붙이어 ‘たましい’가 되어서 ‘혼(魂, soul+spirit)’을 뜻하는 말로 쓰이는데, ‘아름답다’의 ‘알’이 음성(陰性)모음으로 전성하면 ‘얼’이 된다고, 그러면 일본어의 ‘たましい’와 한국어의 ‘얼’은 뜻에서 근접성을 가지게 된다고 해석한다.



Ⅳ

제8장의 경제론을 열었을 때에서는 의아해했다. 이분이 경제까지 관심하고 계신가? 학고. 그러나 이내 수긍했다. 철학적으로 보는 관점이기 때문이다. 일본경제의 침체를 보고, 소련의 붕괴를 보고 논단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두 가지 축을 물(物)자본주의와 돈(貨幣)자본주의로 보면서, 물물교환의 가치시대에는 생명유지라는 애니미즘 곧 ‘제3의 생명’이 존중되었는데, 돈의 자본주의 시대가 되면서 생명유지가 아니라, 잉여(剩餘)의 활동과 나아가서 선진국에서는 취미나 여가를 위하여 대량생산과 유통을 하게 되었다는 것, 여기에서 일본 경제의 침체는 당연한 것이라는 본다.

공산주의는 왜 실패하였는가를 다루어서, 유물론(唯物論)이 생명도 물건도 물질이고, 모든 것은 물질적 기반으로 환원되고 설명하는데, 그것이 ‘제2의 생명’이다. 권력은 그 물질적 기반으로부터 생기고, 그 정신이야말로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제2의 생명’으로서, 권력에 무한정의 힘을 부여하게 된다. 그 가장 성공한 나라가 북조선인데, 김일성이 국민에게 준 사회정치적 생명은 영원히 산다고 하는 것, ‘제2의 생명’이 비대하여진 까닭으로 국민의 ‘제1의 생명’은 피폐하고 마모하여서 국민의 생명유지라는 점에서 실패하여 붕괴직전이지마는, 국가의 생명은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제도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공산주의의 실패를 ‘인간의 의욕=성취욕을 간과(看過)한 데’서 보아왔는데, 오구라 선생은 국민의 ‘제1의 생명’ 유지라는 명목으로 국가의 ‘제2의 생명’을 강화하여, 그 근본인 ‘제3의 생명’을 철저하게 멸시 내지 도외시한 데 있다고 한다. 마르크스가 물신숭배(物神崇拜)라는 말로 ‘제3의 생명’을 적대시한 일이 실패의 연원이라고 한다. 섹스피아의 큇프로쿠(quid pro quo=something for=되갚음/ 대상물)를 나쁜 것으로 비판했는데, 그것이 곧 ‘제3의 생명’의 근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경제는 지금 ‘가진 자는 더욱 더 소비하지 않고, 안 가진 자는 더욱 더 싼 것을 산다.’는 20년의 풍토로 자본주의를 붕괴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곧 우리의 삶을 부정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 해결책은 오직 하나, 경제활동과 생명과의 관계를 재정의(再定義)하는 일이라 하고, 일본경제의 지난 잃어버린 30년의 결점은 ‘물(物)에 대한 감성의 상실’이니, 이제는 생(生)/ 생명이 빛나는 경제를 위한 두 가지로—하나는 물의 생생한 단면을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이(間)철학’에서, 사(私, 제1의 생명)도 아니고 공(公, 제2의 생명)도 아닌 공(共, 제3의 생명) 곧 공공(公共)하는 경제행위— 가야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제를 근원적으로 부활시키는 것은 물의 생생함을 느끼는 것과 교환/ 보수의 순간에 ‘제3의 생명’을 나타내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경제에서는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우선 젊고 어린 세대들이 지금 물건 아까운 줄을 모르고 자라고 살고 있지 않는가?



Ⅴ

이제 코로나 사태라는 지구촌 미증유의 환난을 격고 있는 세계를 생각하면서, 그 이후의 정세를 살펴나간다. 그 환난을 겪으면서 모든 나라들이 ‘제나라’라는 경계로 사물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하나는 국경을 개폐(開閉)하는 고민, 또 하나는 UN이나 EU나 WHO 등 주권국가를 넘는 조직이 무력함을 드러냈다는 자각에서, 주권국가만으로 사물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변화의 불가피성을 말한다.

강대국도 선진국도 그 허울과 너울이 적나라하게 벗겨지고 말았는데, 미국/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이란 무엇이며 선진국이란 무엇인가를 분석하고, 더는 그 허망에 의존할 수 없다고 한다. 이제 ‘영향력 있는 국가’란 상대방을 끌어당기는 비전인 ‘soft power’ 곧 ‘제3의 생명’을 가져야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제3의 생명’만으로는 안 되고, 개별적인 군사력 곧 ‘제1의 생명’과, 보편적인 이념적 파워 곧 ‘제2의 생명’과, 상대방을 끌어당기는 ‘사이’의 힘 곧 ‘제3의 생명’을 모두 강대하게 갖춘 주권국가라야 영향력 있는 국가라고 말한다.

이제는 ‘붉은 시대’도 지나갔고, 그러면 동아시아에서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라는 구도는 동일화할 수 없으며, 세계가 중국적인 강권과 초월적 이념에 의하여 통어(統御)된다면, 일본은 인류를 위하여 스스로의 귀납주의적 경험주의적 반초월주의적 세계관의 존속‧ 갱신을 짊어지고, 몸을 던져서 군도성(群島性)을 발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군도문명은 대륙문명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포섭하고 포월(包越)하는 것뿐이다. 결코 일본의 민족주의에서가 아니라, 동아시아의 새로운 문명을 일본이 이끌지 않고 어쩌겠는가라는 것이다.

(이웃에 한국이 있어서) 한국은 어찌되고 있는가? 한국은 군도이면서 해양국가라는 말을 하지만 군도국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더구나 지금의 문정권은 주체성을 북한에 접근하려 하기 때문에 점점 군도성에서 멀어져 간다. 문명론적인 의미에서도 지금의 한‧ 일은 떨어져 가는 중이라고 본다.

한국은 ‘절대적인 진리’를 희구하는 니라이다. 한국의 정치방법은 중국의 ‘하달(下達)’식이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아래에서 위로 저항한 것이나, 그것도 애니미즘은 아니었다. 한국은 미국중심의 세계적 가치를 자국에 가져오는 인재가 힘을 얻고 있다. 왕년의 한국 지성인은 보편주의적인 세계관을 가진 주체들이었고, 패권주의나 부정의에 대하여 강력한 비판정신을 가진 참다운 지성이었으나, 지금의 주체들에게서는 그러한 비판정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한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으로 퍼져가고 있는데, 이것을 ‘동아시아의 위기’라고 우려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구라 선생은 ‘공창하는 동아시아의 연대’에 희망을 가지는 것이고, ‘논어’도 새로운 각도에서 본 것처럼, 미래도 어디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새로 함께 만들고, 도덕도 누구를 본뜨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새로 함께 만들며, 참다운 논어의 방법은 귀납적으로 ‘사이’에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공(公)’과 ‘사(私)’를 매개하는 ‘공(共)’ 곧 모두 함께 만들자는 세계관이, ‘공창(共創)’이라는 것이다.

‘진리’나 ‘생명’만이 아니라, ‘자아’라는 것도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사이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것이 바로 논어와 군도문명이라고 생각이라고 한다. 이 4반세기 동안 일본에서 ‘공공철학(公共哲學)’을 제창하고 있는 김태창 박사는 ‘내발(內發)’이 아닌 ‘간발(間發)’이라고 하는데, ‘진리’와 ‘공공성’과 ‘도덕’과 ‘생명’과 ‘나(自我)’는 내면이나 외면이나 초월적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이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이제부터의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강력한 방향성이 여기에 있다고 한다.

‘사이의 철학’이라는 것은 ‘사이의 생명’인 ‘제3의 생명’을 어떻게 구현할까 하는 철학이다. 곧 ‘공창(共創)’이라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 세계에 이 ‘사이’의 가치가 인식될 때, 그 선구적 구실을 할 수 있는 책임이 일본에 있지 않겠느냐고 맺고 있다.



Ⅵ 맺음—오구라 선생을 위한 기도

책을 덮고 느끼는 것은 현하(懸河)의 웅변을 듣고 강력한 어조와 정곡을 찌른 정론에 감복하여 자리를 뜰 수 없는 것과 같았다. 공감으로 자신을 깊이 뉘우치고 뉘우쳤다. 그리고 오구라 선생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우리가 갈구하는 동아시아의 공통가치, 곧 공복(共福)을 향한 지남(指南)이고 빛(光明)이라고 생각한다.

타의에 의하여 이 졸고를 폈으나, 나의 소졸함으로 오구라 선생의 넓고 크고 높고 깊은 학문적 서술이 오독-오판-왜곡으로 손상될까 두려운데, 제발 그런 착오가 적었기를 바라면서, 그분의 구도적 탐구의 전도가 더욱 탄탄하고 그 결실이 풍성하기를 기도한다. 정치와 경제와 사회의 지도자라는 위인(爲人)들이 사람을 잡고 질서를 파괴하는 풍랑(風浪) 속에서, 양심과 진리로 인간사회의 정도(正道)를 찾아 깨우치는 오구라 선생의 거조(擧措)에 건강한 정진만이 이어지기를 기도한다. 오구라 선생의 저술의 행간(行間)에서 넘치는 에너지를—그 은유와 함축이 무엇인지 폭발할 것 같은 힘— 보는데, 오구라 선생의 연구와 봉사가 ‘미래공창(未來共創)하는 동아시아에’의 소망 그대로 성취되기를 기도한다.

이상이 내가 오구라 선생의 신간 ‘群島의文明과大陸의文明’을 읽은 소감인데, 꼭 하나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이 책에는 방법론으로 시작하여 끝까지 시종일관 한국과 한국인 학자의 주장을 비교 인용한 것이 적지 않다. 우리 학계에도 좋은 자극이 될 것으로 여겨서, 우리말로 번역된 책이 나와 널리 읽혀지기를 기대한다.
유성종 동양포럼 운영위원장

 

Posted by Sejin at April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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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철학 2회 국제회의 한·일의 노인상 대비 : 새로운 노인상을 찾는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노인상 < 동양포럼 < 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동양포럼/ 노년철학 2회 국제회의 한·일의 노인상 대비 : 새로운 노인상을 찾는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노인상 < 동양포럼 < 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동양포럼/ 노년철학 2회 국제회의 한·일의 노인상 대비 : 새로운 노인상을 찾는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노인상

기자명 박장미
입력 2018.09.11 20:07


일본 미래공창신문 편집인 야마모토 쿄시(山本恭司)
야마모토 쿄시(일본 미래공창신문 사장)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도덕규준이 있어야 된다. 옛 시대에 옛 도덕규범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새롭다 시대란 21세기의 세계를 가리킨다. 이제 세계는 한 사람의 반딧불 같은 언론이 순식간에 세계를 돌아다닌다. IT에 의한 정보전달 기능의 발달로 인해 언론계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근현대는 과학기술의 발달이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었으나 한편으로 인류 멸종으로 이어질 수 있는 궁극병기까지도 만들어버렸다. 역사는 앞으로 나아갈 뿐이기 때문에 이 현실을 먼저 직시하고 나서 21세기 인류의 방향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근현대의 패러다임은 ‘과학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과학 그 자체에 보편적인 철학은 없다. 과학을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오는 여의봉처럼 착각한 데에 근현대의 잘못이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과학의 진보는 불가역인 만큼 우리들은 과학의 선과 악을 어울러서 과학을 포월(包越)할 새 시대를 열어갈 사명을 하늘로부터 받고 있다. 그 사명을 다할 원동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언론이다.

일찍이 인생 40년이나 50년이라고 말해졌다. 21세기는 인생 100년이라고 말해진다. 인류가 의학과 위생을 눈부시게 발달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60세나 65세를 넘어서 살아 있는 사람들을 ‘노인’이라고 부른다. 현역을 그만두고 나서 30년, 40년 동안 계속해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산다거나 취미만으로 살 수 있을까? 현대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직시하지 않는, 시각이 접어진 노인에게 미래는 없다. 부언하면 여기서 말하는 ‘미래’란 희망을 뜻한다.

노년세대는 가꿈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돼서야 발버둥 쳐도 이제 늦다. 그러기에 인간은 유년기, 소년소녀기, 청년기, 장년기에 올바르고 지혜로운 삶의 습관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젊은 세대에 대해 인간으로서 책임 있는 삶을 살게끔 지도할 수 있는 것은 노년세대이다. 노년은 젊은 세대에 대한 무한의 책임을 지고 애정을 쏟아 부어야 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지금 살고 있는 노인에게 이러한 도덕을 이야기해도 들을 귀가 없는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노인상을 나는 들을 귀를 가진 사람에게 먼저 전하고자 한다.

과학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닌 ‘무기(無記)’이다. 2000년 전의 고대세계와 대도시의 화려한 번영을 누리는 세계를 비교해 보면 고대인과 현대인은 격이 전혀 다르게 보일지 모르지만 같은 뇌와 몸과 양심을 각각 가지고 있는 호모사피엔스임은 다를 바 없다. 호모사피엔스가 IT기술의 획기적인 진보와 장수를 실현시킨 반면으로, 핵무기에 의한 세계파괴의 위협, 지구환경의 심각한 악화에 따를 재해의 극대화, 세계에 400군데 이상 만들어진 원자력 발전에 의한 지구 오염과 같은 피하기 어려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노인은 체력으로도 지력으로도 날마다 쇠약해지기 때문에 장년시대처럼 정력적으로 활동하기는 힘들지만 지금까지 축적해 온 지적 재산이 있고 사람에 따라서는 안정된 재력도 있다. 장청년 세대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일하거나 가정과 가족과 아이를 돌보거나 해서 일상생활에 쫓기고, 과학이 가져온 폐해적인 측면에 대응할 여유가 없다는 것은 청장년 시대를 경험해 온 노인들은 잘 안다.

노인은 스스로 걸어온 인생을 되돌아보고 부감할 지평에 도달되어 있는 것과 같이 인류의 역사를 부감하면서 그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일’을 떠나서 자유로운 언론 활동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노인이야말로 세계의 위기 타개를 기원하여 외침소리를 올릴 의무가 있다. 오늘날 선진국의 노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비참함을 부모 세대에서 들어 익히 알고 있다. 전쟁이 얼마나 불모(不毛)한 것인가를 말이다. 그러나 세계에는 전쟁으로 돈벌이와 생계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역시 살아야 될 권리가 있기 때문에 그 인격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다행히 그렇게 딱한 ‘일’에 종사하지 않는 노인들은 세계에서 비참한 전쟁을 없애야 된다고 소리 높게 외칠 의무가 있다. 지식층이라면 더욱 그렇다. 언론계에서 벌어먹었던 전직 신문기자나, 행정직으로 지적 노동에 종사해온 전 공무원이나,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하고 젊은이들의 인격 함양에 힘써 온 전 교사나, TV 프로그램 제작을 통해 환경문제로 경종을 울렸던 전 TV 관계자들이 노년이 되었다고 자위적 오락에 빠져 있어서야 되겠는가?

남은 시간을 헛되이 살면서 자기가 죽을 때까지 무사하게 살 수만 있다면 된다고 ‘난 몰라라’ 식으로 세상을 등지고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젊은 세대와 아직 오지 않는 장래세대가 곤경에 처하지 않도록, 행복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

 감사할 줄 모르는 노인은 살 가치가 없다. 비록 병상에 누워 있어도 돌보아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합장하는 영혼을 가지는 노인은 한없이 아름답다. 건강과 외모를 유지하며 여행하고 친구들끼리 취미오락을 즐기는 것밖에 관심이 가질 수 없는 노인은 보기 흉하다. 그런 의미에서 아름다운 노인이 되어야 된다는 것은 옛 시대에도 새로운 시대에도 요구되는 노인의 규범이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노인은 무상(無償)의 행위에 깨어 있어야 된다. 청장년 시대에는 노동과 급료를 등가교환(等價交換)해 왔다. 하지만 의식에 오르지도 않고 눈에도 보이지 않는 모든 사람들, 선인들, 동식물 등등의 덕을 받고 있으며, 노인 특유의 신체적 쇠퇴를 맞이하고 있어도 이렇게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할만한 일이다. 눈에 보이고 보이지 않는 은혜를 받고 있다. ‘보은’은 노인이 으뜸으로 유념해야 될 도덕규범이다.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매문(賣文)’ 행위이다.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가 고민한 것 중 하나가 글로써 생계를 유지하는 것과 이상주의와의 갈등이었다. 지금 세상의 언론활동은 대부분 ‘매문’을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고 자각하지도 않는 매문업(賣文業)이 되어 있지 않을까? 그것은 영혼의 낮잠이다. 심지어 지록위마(指鹿爲馬) 식으로 권력자를 아첨하여 그 정책을 그럴싸하게 찬양하는 매문은 바로 혼을 팔아넘기는 것이다. 노인이 되어서도 매문을 하면서 죽을 때까지 먹고 살자는 것인가?

깨어 있는 노인은 바로 언론활동이 21세기 지구의 문제 해결과 인류 구제를 위한 가장 중요한 ‘무기’이자 원동력임을 자각하면서 언론계의 정상화, 청정화, 공정화, 공공화에 노력해야 된다. 또 깨어 있는 노인은 양심적인 언론계의 공창(共創)과 연대의 고리를 만들어가야 된다.

근현대에는 마치 돈이 만능한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돈은 생활의 수단으로서는 소중하지만 영혼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동아시아의 분단 상황을 해소해야 된다. 동아시아가 영혼의 자유에 눈뜨고 미래공창을 위해 연대하는 것은 긴요한 요청이다.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는 <영성적(靈性的) 일본의 건설>이라는 책에서 마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영성(spirituality)이라고 설파했다. 노인이야말로 영성에 눈뜨고, 깨어 있는 사람들이 서로 맺어지고 연대하며 희망찬 지구를 함께 만들기 위해 일어서야 된다. 우리들은 국가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 나라의 경제기반이 확립되지 않으면 자기 생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언론계는 마치 ‘경제’가 잘 되기만 하면 국가도 국민도 행복해지는 것처럼 말한다. 인간은 이코노믹 애니멀(경제적 동물)이 아니라 양심과 혼과 영성을 지닌 영장류이다. 영성을 발휘한 언론활동을 활성화시키는 데에 노인이 이바지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노인은 어린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지혜를 돌려야 된다. 자기 어린 시절을 상기해 보면 좋다. 어린이는 온갖 가능성을 간작하고 있다. 그 어린이들과 더 많이 대화를 나누고 돈과 향락보다 아름다운 영혼이 더욱 진정한 세상의 보배임을 전할 의무가 있다. 어린이를 우습게보면 안 된다. 어린이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하고 장래세대의 기수(旗手)인 어린이가 행복하고 제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인들은 지혜를 짜야 될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의 본질은 저출산에 있다. 왜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가? 그것은 곧 어른이 만들어낸 오늘날의 이 세계가 아이들에게 행복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어른들 스스로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알고 있기 때문이다. 태어난 어린이가 바르고 밝고 명랑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는지를 노인들은 그 언론활동을 통해 전해야 한다. 허나 언론활동이라고 해도 꼭 신문과 잡지와 서적 등을 집필하는 것만으로 한정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정보화시대의 무기로써 언론의 힘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노인들의 연대는 먼저 새로운 언론계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관건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생 100년대인 만큼 노인들에게는 엄청난 사명과 책임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다시 자각하시기를 바른다. 그러한 노인들이 한 사람이라도 늘어나게 되면 그만큼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혐노(嫌老)의 풍조도 장차 해소될 것이다.

(번역: 원광대학교 연구원 야규마코토柳生眞)
Posted by Sejin at April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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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 / 생각하는 노년, 수양하는 사회 < 동양포럼 < 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동양포럼 / 생각하는 노년, 수양하는 사회 < 동양포럼 < 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동양포럼 / 생각하는 노년, 수양하는 사회

기자명 박장미
입력 2018.09.11 20:06
조성환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
조성환 원불교사상 책임연구원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말이 없는 스승

유학의 창시자인 공자가 어느 날 제자들에게 충격적인 선언을 하였다: “나는 이제부터 말이 없고자 한다(予欲無言).” 이에 놀란 수제자 자공이 반문한다: “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지 않으시면 저희들은 (후대에) 무엇을 전술합니까[述]?” 그러자 공자는 뜻밖의 대답을 하였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사시가 운행되고 만물이 생성되지만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논어>‘양화’)

이 대화는 내용상 공자의 노년의 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대개 사람이란 젊었을 때는 혈기왕성하여 자기 주장을 장황하게 늘어놓다가도 나이를 먹고 인생을 알아갈수록 말수가 적어지고 사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실제로 나를 키워주신 노년의 고모님의 모습이기도 하였다. 이 모습을 공자는 하늘에 비유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위의 대화는 공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노년상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늘이 만물을 운행하고 생성하는 작용은 동아시아의 사상언어로 말하면 ‘덕’에 해당한다. ‘덕’이란 기본적으로 ‘힘’ 또는 ‘작용’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역>에서도 “자연의 가장 큰 덕은 생성하는 작용이다”(天地之大德曰生)고 하였다. 그런데 공자가 보기에 자연은 인간처럼 말을 하지 않아도 이런 덕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유덕무언(有德無言)의 존재이다. 공자는 이런 하늘의 덕, 자연의 덕을 닮고 싶다고 어느 날 제자들에게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공자가 선생이라는 점이다. 후학을 가르치고 지식을 전달하는 스승이 어떻게 말이 없을 수 있는가! 노자식으로 말하면 “말하지 않는 가르침”(不言之敎)인 셈인데, 이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자공의 반응은 너무도 당연하였다.



영성과 성학(聖學)

대개 ‘말’(言)이란 남에게 자기를 표현하거나 지식을 전달할 때 사용한다. 그런 점에서 말을 하는 유언(有言)은 이성과 감성의 차원을 말한다. 흔히 철학이란 이성의 세계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고(서양철학적인 기준이기는 하지만), 문학이란 감성의 세계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공자와 같이 정치나 교육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철학과 문학에 탁월해야 한다. 왜냐하면 말이 논리적이고 감동적이어야 듣는 이들을 납득시키고 설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자가 말하는 ‘무언’(無言)은 어떤 차원을 말하는 것일까? <주역>에서 말하는 생성작용으로서의 ‘덕’이 말이 없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이성이나 감성과는 다른 어떤 차원을 말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은 학문적으로 어떤 세계에 해당하는 것일까? 여기에서는 그것을 ‘영성’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영성은 무언가를 생성해내는 힘을 말한다. 가령 만물을 생성하는 하늘의 덕은 가장 큰 영성의 힘을 가리킨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영성은 고전어로 바꿔 말하면 덕 또는 덕성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것을 기르는 학문은 성학(聖學)에 해당한다.

물론 고전어의 덕(성)이 단지 영성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성과 감성까지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덕목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마찬가지로 성학 또한 철학과 문학까지를 포함하는 폭넓은 학문세계를 말한다. 그래서 성학은 “이성과 감성과 영성을 포괄하는 덕성을 기르는 학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다만 문학(文學)이나 리학(理學)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성학(聖學)이라고 할 때의 ‘성(聖)’에는 영성의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거칠게 말하면 ‘성학’은 ‘영성학’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영성의 가장 큰 차원이 하늘의 생성의 덕이라고 한다면, 성학=영성학은 하늘의 영성을 닮고자 하는 ‘하늘학’ 또는 ‘천학(天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자가 보기에 사람들은 대개 젊어서는 이성과 감성이 발달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영성이 발달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영성의 힘은 마치 하늘처럼 말이 없어도 조직을 움직이고 사람들을 길러준다. 영적으로 성숙한 인간, 하늘을 닮아가는 사람, 이것이야말로 공자가 생각한 바람직한 노년상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공자가 제자들에게 전술하고[述] 싶었던 것은 이성이나 감성이 아닌 영성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노년의 공자의 학문세계는 이성교육이나 이성철학 또는 이성정치에서 영성교육과 영성철학, 영성정치로 중심이 이동한 것이 아닐까?



없는 듯 있는 존재

공자의 “말이 없는 하늘”에서 ‘없음’(無)이 단지 언어의 영역뿐만 아니라 모든 차원으로까지 확장되면 다석 유영모의 “없이 계신 하느님”이 될 것이다. 유영모가 보기에 하늘은 “없는 듯 있는” 존재이다. 마치 장자에 나오는 애태타가 아무런 존재감이 없지만, 그를 한번 보는 사람은 평생 그를 잊지 못하듯이, 하늘 또한 가시적인 존재감은 없어 보이지만 만물은 그 하늘 아래에서 살아간다.

이것은 일종의 ‘없음’(無)의 존재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없는 듯 하지만, 그것이 없으면 다른 것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공자나 다석이 하늘을 닮고자 했다면 이런 ‘없음’의 존재방식을 닮고자 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인간이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이러한 ‘없음’의 존재방식을 닮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없음’(無)의 존재방식에 도달할 수 있을까? 동아시아인들은 그것을 ‘비움’(虛)이라고 보았다. 즉 자기를 비우고 비워서 자기가 없는 영역에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애태타가 사람들에게 주는 편암함은 여기에 있다. 자기를 비우니까 그 자리에 상대가 들어오는 것이다. 장자는 이것을 “나는 나를 상실했다”(吾喪我)거나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자기가 없다”(至人無己)고 하였다. 공자식으로 말하면 ‘자기’의 자리에 텅 빈 ‘하늘’이 들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의 “나는 말이 없고자 한다”는 “나는 하늘처럼 텅 비어 있고자 한다”고 바꿔 말할 수 있다.



미래에 대한 생각

하늘이 만물을 길러낼 수 있는 것은 자기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가 없다는 것은 자기를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를 고집하지 않는 사람의 모습은 텅 빈 그릇이나 거울과 같다. 그릇은 자기를 비워서 상대를 포용하고, 거울은 텅 빈 상태에서 상대를 있는 그대로 비추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릇에 자기가 들어 있다면 배제되는 상대가 있게 마련이고, 거울에 자기가 묻어 있다면 자기 의도대로 상대가 비춰질 것이다.

그래서 영성의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비우는 수양이 요구된다. 자기 고집과 자기 주장을 스스로 거부할 수 있는 자기 부정의 노력이 필요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이런 수양이 쌓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이성의 힘은 약해질지 몰라도 영성의 힘은 강해진다. 즉 덕이 축적되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덕은 쌓는다/길러준다”(德畜之)고 하였다.

이 축적된 덕의 힘은 지금 세대뿐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까지 미친다. 공자가 “과거 세대를 잇고 미래 세대를 열었다”(繼往開來)고 평가받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래서 영성은 “미래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이 미래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지옥이 된다. ‘헬조선’이라는 말은 한국의 기성세대의 영성의 약화를 꼬집는 젊은이들의 비판이다.

미래세대에 대한 배려를 세종은 “시후지도”(示後之道)라고 하였다(세종실록 24년 6월 16일). “시후지도”는 “후세에게 보여주는 도”라는 뜻으로, 세종이 평소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정치를 했는지를 말해준다. 즉 그에게 있어서 정치란 단지 지금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 ‘생각’하는 일종의 영성의 활동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세종의 성학(聖學)이자 영성의 정치였다.

영성없는 근대

한국말의 ‘생각’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하나는 이성적이고 개념적인 사유를 말하고, 다른 하나는 무언가에 대한 배려나 관심을 의미한다. 가령 “넌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니?”라고 할 때에는 전자에 가깝고, “너 평소에 그 사람 생각하니?”라고 할 때에는 후자를 말한다. 그래서 두 가지 의미를 아우르면 “생각은 배려가 동반된 사유”라고 정의할 수 있다. 가령 “생각 좀 하고 살아라!”고 할 때의 ‘생각’은 “자기 인생이나 세상에 대한 고려가 동반된 사유”를 말하듯이 -.

함석헌이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했을 때의 ‘생각’은 상식적으로는 철학적인 사유를 말하지만, 그리스도교적인 배경에서 나온 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하늘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뜻도 된다. 전자를 이성적 차원의 생각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영성적 차원의 생각이라고 볼 수 있다. 세종의 “생각하는 정치”는 이 두 차원이 결합된 정치이다.

흔히 “잘 살아보세!”로 대변되는 한국의 근대화는 영성보다는 이성이 강조되는 시기였다. 일단 배가 고프니까 배를 채워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도구적 이성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중장년층들은 이 시대를 살아온 세대들이다. 즉 한 방향의 ‘생각’만 사용한 셈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영성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원불교처럼 “이성이 발휘되었으니 영성을 추구하자”는 운동이 사회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원불교의 슬로건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이다)

문제는 그 영향이 다음 세대에까지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앞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시후지도”라고는 이성적 생각이 고작이다. 그래서 그 차원에서만 사태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을 ‘헬조선’이라고 부르고 있다. 헬조선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방법을 찾을 수 없는 젊은이들. 우리는 이 곤경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 것인가? 이 생각의 불균형을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을까?

나는 여기에 노년세대들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노인이 많아진다는 것은 이상적으로는 사회가 영성으로 충만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사회적으로 생각의 균형이 잡히는 것을 말한다. 젊은이들의 이성 중심의 생각을 노인들의 영성 중심의 생각으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노인들만이 만들 수 있는 공공세계의 모습일 것이다. 이 ‘공공’(함께 한다)의 범위에는 과거 세대와 미래 세대가 모두 들어 있다. 영성의 힘을 가진 자라야 이 보이지 않는 세대까지 ‘생각’할 수 있다.



생각하는 도덕

영성으로 충만한 이들은 설교하기보다는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설교하기 좋아하는 어른들을 요즘 젊은이들은 ‘꼰대’라고 부른다. 이런 비판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젊은이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신호를 보내 왔다. 다만 어른들이 들으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1994년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부른 ‘교실이데아’라는 노래는 “됐어, 이젠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학생들의 ‘생각’은 들으려 하지 않고 선생들의 ‘가르침’만 주입하려는 답답한 교실의 풍경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20년 뒤, 방탄소년단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한국사회 전체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언론과 어른들은 의지가 없다며 우릴 싹 주식처럼 매도해. 왜 해보기도 전에 죽여 걔넨. enemy enemy enemy.”(‘쩔어’) 이들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은 이 사회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교실이기 때문이다. 오구라 기조 교수식으로 말하면, 이 사회가 하나의 거대한 “도덕지향적” 교실이기 때문이다(

박장미 pjm8929@dynews.co.kr
Posted by Sejin at April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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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s: 동양포럼, 오구라 기조, 장자, 조성환

동양포럼- 노년철학 2회 국제회의 감상문 / 이은선(세종대 명예교수, 한국 信 연구소) < 동양포럼 < 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동양포럼- 노년철학 2회 국제회의 감상문 / 이은선(세종대 명예교수, 한국 信 연구소) < 동양포럼 < 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동양포럼- 노년철학 2회 국제회의 감상문 / 이은선(세종대 명예교수, 한국 信 연구소)

기자명 박장미
입력 2018.10.07 18:55


동아시아의 미래와 한·일 노년철학 —노년철학 제2회 국제회의에 다녀와서—
이은선(세종대 명예교수, 한국 信 연구소)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동양포럼- 노년철학 2회 국제회의 감상문

동아시아의 미래와 한·일 노년철학

—노년철학 제2회 국제회의에 다녀와서—



이은선(세종대 명예교수, 한국 信 연구소)



1. 지난 9월 11일부터 13일에 걸쳐서 보은 속리산 숲체험 휴양마을에서 열렸던 ‘노년철학 제2회 국제회의’에 다녀왔다. 한일 국제회의라고 하지만 그렇게 많은 인원이 참석한 것은 아니고, 일본에서 오랜 기간 ‘교토포럼’을 운영하시던 김태창 선생님이 한국으로 돌아와서 충북 청주의 지역신문 <동양일보>와 손잡고 진행하고 있는 ‘동양포럼’의 일환으로 열린 작은 모임이었다. 20여 명 참석자의 면면은 다양하여 학자와 언론인, 시인, 공직자와 지방 연구소의 정책연구가 등이었는데, 독특하게도 대부분 참석자는 이 포럼에 오기 전에 먼저 노년과 나이 듦, 바람직한 노인상 등과 관련해서 각자 짧은 성찰의 글을 보내야 했고, 그것이 <동양일보>에 기사화되어서 우리 토론의 주제와 성찰의 구체적인 내용물이 되었다. 한일 양국의 참석자들이 소개한 노인상으로는 한국 측에서 퇴계 이황(1501-1570), 해월 최시형(1827-1898)의 노년기가 있었고, 우리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충북 보은의 성리학자 대곡 성운(成運, 1497-1597)이 있었다. 일본 측 참석자가 소개한 바람직한 노년상으로는 일본 현대 선불교 철학자 니시타니 게이지(1900-1991)가 있었고, 일본 에도시대(1603-1868)의 유학자이면서 박물학자인 카이바라 에키켄(1630-1714)과 그와 동시대인 쿠마자와 반잔(熊澤蕃山), 그리고 오늘날 일본에서 가장 큰 불교 종파인 정토진종의 창시자 신란(1173-1263)이 있었다. 발표자가 참석은 못 했지만 노년기 주자(朱子, 1130-1200)의 삶과 사상도 짧게 다루어졌고, 일본 측 학자가 소개한 한국의 혜강 최한기(1803-1877)도 조명되었다.



2. 왜 지금 ‘노년철학’인가? 예전에 ‘노년철학’이라는 말이 있기나 했나? 어린 시절부터 한국과 일본, 서양 문화를 두루 접하면서 동아시아의 불행한 현대사를 치유하고 화해시키는 일에서 자신의 시대적 소명을 본다는 김태창 선생은 포럼의 서두를 여는 말로 뜻밖에도 프랑스의 여성 철학자 시몬느 보부아르를 언급했다. 보부아르가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그때까지 ‘제2의 성’으로 살아온 여성들의 삶을 복권시키고자 한 것처럼 그렇게 이제 노년의 삶도 온전히 나름의 독자성과 고유성을 가진 유의미한 시간임을 새롭게 드러내고자 한다는 것이다. 김태창 선생은 그렇게 현대 페미니즘 운동의 문을 연 시몬느 보부아르가 바로 ‘노년’의 삶에 대해서도 새로운 인식을 주창하는 글도 썼고, ‘아동’(어린이)의 발견도 역시 유사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매우 탁견이라고 생각했고, 이어지는 선생님 자신의 노년적 삶에 관한 이야기는 많은 생각거리를 주었다. 이제 80대 중반을 지나고 손주를 보게 되면서 노년이 시작된 것을 생각한다는 이야기, 매일 아침 6시에 동네에 나가서 자신의 집 주변 사방 100m 내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우면서 젊은 사람들이 힘들게 사느라고 하지 못 하는 일을 자신이 한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 젊은이들을 나무라거나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고 70세를 넘어서 산다는 것은 이미 사회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은 것이니 노년의 삶은 ‘보은의 삶’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 그래서 세대 간의 상생을 이루고 노년이 단지 복지의 대상이거나 도움만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가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바를 찾아서 해야 한다는 당부 등, 많은 따뜻한 감성과 인성의 이야기가 나왔다. 이러한 담화들은 지금까지 ‘(공공)철학’ 운동을 주도해 온 선생으로부터는 쉽게 상상되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들려졌고, 이와 더불어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기독교 신앙을 말하고, 자신의 어머니가 독실한 성결교 신자였다는 것을 밝히면서 ‘영성’에 대한 강조를 한 것이다. 선생은 지금까지 철학자로 살면서 신앙이나 영적 지혜, 영성 등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온 것 같은데, 이제 노년이 되어서 종교와 영성의 차원에 대한 의식을 강조하는 입장에 선 것 같았다.




3. 이번 노년철학 포럼에서 특히 강조된 것 중의 하나는 노년철학과 우리 나이 듦의 지향이 결국 ‘영성’(spirituality)의 차원과 연결되며, 또한 바람직한 노인상의 정립은 한 인격 안에 ‘여성적인’ 덕목을 통합하지 않고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나도 “노년, 여성, 영성”이라는 짧은 성찰의 글을 보냈고, 여류시인 김영미 선생은 “나이 들수록 아름다운 두 여류시인”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김남조(1927-)와 유안진(1941-) 시인을 잘 소개해 주었다. 또한 이에 앞서 그녀가 소개한 정현종의 ‘방문객’과 같은 시는 참석자로서 사회를 보던 김봉진 교수(일본 기타규슈대학)의 마음을 크게 움직여서 눈물을 자아내게도 했고, 이렇게 인간의 감성과 마음을 움직이는 여성적이고도 감성적인 차원이 바람직한 노인상에 통합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웠다.

이번 포럼의 또 다른 여성 참석자 황상희 박사는 퇴계 이황의 삶과 사상을 특히 ‘영성’ 추구의 그것으로 풀어주었다. 우리가 보통 퇴계의 ‘경’(敬) 사상으로 많이 알고 있는 그의 사상이 단순히 좁은 의미의 이성적 도덕철학의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오십의 나이가 되어가면서는 지속해서 공직으로부터 물러남(退)을 청하면서 당시 반복되는 사화의 분쟁 속에서 조선 사회를 구할 ‘천년의 기초’(訂千年)를 찾기 위한 간절한 정신적 추구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퇴계 선생은 하늘이 우리 안에 ‘상제’로서 내재해 계시는 것을 깊이 느끼는 신앙(對越上帝)을 표현했고, 그 각성이 만물과 더불어 한 가족임(‘우주적 가족공동체’)을 느끼는 큰 존숭과 떨림(敬)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저자는 한국 사상사에서 이러한 종교적 차원에 대한 재인식과 발견을 강조한다.



4. 퇴계 선생과 동시대의 사람으로 이번 노년철학 포럼을 통해서 알게 된 대곡 성운의 삶도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 당시 시대의 혼돈과 좌절을 뒤로하고 처가인 충북 보은으로 내려와서 30년 이상의 시간을 보낸 성운의 삶을 김양식 소장(충북연구원)은 충북 보은이 배출한 바람직한 노년상으로 소개하며 오늘 우리 시대의 귀촌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남명 조식이나 서경덕, 토정비결의 이지함 등이 그를 찾아올 정도로 학문과 인격을 갖추었지만, 그는 거문고를 타다가도 남이 칭찬하며 청하면 그만두었을 정도로 자신을 내세우는 것을 삼갔다고 한다. 속리산을 특히 좋아하여 홀로 산에 들어가서 며칠씩 지내다 오곤 했다는 그에 대해서 김양식 소장은 “귀촌한 이후 ‘도시’를 꿈꾸지 않았다.”라고 서술한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많은 사람이 귀촌하여 노년을 보내고자 하지만 그중 상당수 사람이 다시 도시로 떠나는데, 성운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사대부의 삶을 떠났지만, 참된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통해서 ‘지성’의 끈을 놓지 않았고, 온화하고 단아하며 큰 이해심으로 주변의 사람과 잘 지내는 ‘인성’을 잘 가꾸었고, 이와 함께 때때로 집에서 몇 리 떨어진 산수를 찾아가서 홀로 거문고를 타면서 몇 날을 보낼 정도로 순수하게 자연과 하나 되는 자유와 즐거움을 느낄 줄 아는 ‘영성’의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했을 때 한 인간의 살아온 삶은 자연스럽게 그가 살았던 공간(지역)에 선한 영향을 미치는데, 성운도 그가 보은 산골로 귀촌함으로써 충청도 최초의 서원인 ‘삼년성서원(현 상현서원)’이 세워졌고, 그래서 충청도 지역의 성리학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자신의 귀촌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5. “생각하는 노년, 수양하는 사회”라는 글로써 바람직한 노년상을 특히 ‘영성’의 실현에서 보는 조성환 박사(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는 “노인이 많아진다는 것은 이상적으로는 사회가 영성으로 충만해진다는 것을 뜻한다.”라고 밝힌다. 그러면서 여기서 그가 이해하는 영성이란 어떤 초자연적이고 탈세상적이거나 지성이나 인성과 상관없는 무슨 비의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된 영성은 진정으로 자신을 비울 수 있고, 자기를 無로 만드는 자기 비움의 능력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에 따르면 노인 세대에 대해서 젊은이들이 지적해온 ‘꼰대’라고 말은 ‘설교’하기를 좋아하고, ‘말’이 많은 것을 지적하는 것이라면, 설교나 말보다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배려하고 포용하는 생각하는 노인상이야말로 바람직한 노인상이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그도 밝혔듯이 이처럼 현실과 이 세상에서의 구체적인 살림과 치유에서 드러나는 노년의 영성을 한국 역사에서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1827-1898) 선생만큼 진실하게 체현한 사람이 또 있을까?

이번 포럼에서 김용환 교수(충북대)는 노년기 최시형의 삶과 사상을 21세기 바람직한 노인상으로 소개하면서 첫 번째 발제를 담당했다. 알다시피 해월은 한국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의 뒤를 이어받아 스승이 1864년 처형당하자 무려 36년 동안이나 보따리 하나를 가지고 도피생활을 하면서도 스승의 도를 최고의 경지로 전개시킨 인물이다. 그의 사상의 핵심을 김용환 교수는 ‘사인여천’(事人如天, 사람들을 하늘과 같이 섬김)과 ‘양천주’(養天主, 내 안의 천주를 잘 모심)로 소개하는데, 당시의 상황에서 그의 사상은 내우외환으로 쓰러져가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자주의식으로 표현되었고, 신분제를 타파하여 모든 사람이 주인이 되는 평등 세상을 이루고자 하는 해방과 평등의 정신으로 전개되었으며, 가정의 주인이 부인임을 알고 여성과 부인을 섬기고 태아와 아이들을 존중하는 여성해방과 아동중시 사상이 되었다. 노년의 최시형은 그렇게 오랜 기간을 쫓겨 다니면서도 틈나는 대로 자기 수련에 몰두했고, 스승의 남은 가족들을 극진히 보살폈으며, 스승의 신원운동과 척왜운동, 동학의 체계화와 정비에 힘을 쏟았다. 그는 어느 곳을 가든지 그냥 있지 않고 새끼를 꼬고 꽃나무를 심고, 1899년 72세의 나이로 원주에서 체포되기 전날에도 그 일을 멈추지 않았다고 하는데, 마지막 잡히는 과정에서도 그는 더 도피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평소에 중요하게 펼친 ‘용시용활’(用時用活, 때를 살려서 쓸 것)의 도와 영적 혜안을 따랐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는 자신 삶의 시간과 때가 도달했다고 여겼고, 그래서 더 이상 죽는 것도 두렵지 않았으며, 따르던 사람들에게도 두려워하지 말고 반드시 새로운 세상이 오니 오직 믿음에 더욱 서라고 당부할 뿐이었다고 한다(道源記書).




6. 이렇게 우리가 지향하는 바람직한 노인상의 모습에는 우리의 일반적인 지적 능력이나 감성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높은 영적 능력과 통찰력이 포함된다. 거기에 ‘죽음’에 대한 통찰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한일 노년철학 포럼을 통해서도 우리 몸의 끝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 여러 각도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일본 측 참여자들에 의해서 몸의 늙어감과 보통 그 끝이라고 생각되는 죽음을 어떻게 보는지가 주목되었는데, 포럼이 열리는 당시 일본에 몰아친 태풍으로 직접 참석지는 못했지만 데구치 야스오(교토대) 교수는 현대 선불교 철학자 니시타니 게이지의 ‘한산시’(寒山詩, 1974)를 통해서 그의 ‘공(空)의 철학’이 밝히는 늙음과 죽음을 소개했다. 한산은 원래 중국 당나라 시대의 불교 성지인 천태산의 은자였다고 한다. 그가 실제 인물이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그가 사라진 후 깊은 산속의 바위 등에 남겨진 수많은 시에 따르면 한산은 오히려 깊은 산속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춥고 음습한 풍경의 절망을 ‘바람직하다’라고 하고 ‘즐기는 경지’까지 갔다고 한다. 니시타니는 그로부터 노경의 늙어감과 외로움, 죽음으로 가는 내리막길을 오히려 자아와 타자, 존재와 비존재 등의 모든 분열과 틈새를 넘어서는 ‘공’(空) 과 ‘천공’(天空) 체현의 기회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한 쇠락함과 죽음과 허무를 넘어서는 큰 허무의 자유로움과 명랑함, 밝음, 너그러움을 말한다. 그것을 그는 “화해정의”(和解情意)의 일이거나 “죽음을 살다”, “지속적이고 체험 가능한 죽음”, 또는 삶과 늙음을 다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을 위해 “타자의 늙음을 늙는다는 것” 등으로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우리의 생물학적인 죽음 이후에도 확실한 것은 “죽음 앞에 보이는 푸른 하늘”일 것이라고 말한다.

니시타니는 우리 존재에서 삶과 죽음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원성을 넘어서는 ‘늙음’을 “제3의 범주”로 간주할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것은 몸과 마음이 극도로 쇠약해지고 죽음을 곧 앞에 두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아직 살아있지만 머지않아 죽는다.’라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아직 장래에 머무는 한 역시 살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것을 그는 ‘죽음을 살고’, ‘죽음을 체험’하는 것 등으로 표현하는데, 여기에 진정한 노경의 품격이 있고, 참된 늙음이 있음을 밝힌다. 데구치 교수는 이것은 전통적인 불교의 사생관인 고통으로서의 죽음관을 넘어서서 정의적으로 죽음과 화해를 이루는 시각이었다고 해석한다. 그런데 나는 뜻밖에도 여기서 서구의 한나 아렌트도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대목을 들어서 제안한 방식이 생각났다. 즉 그것은 우리가 모두 죽는 사멸성의 존재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죽음을 향해서 사는 것으로 여기지 말고, 그보다는 매 순간의 삶에 더 몰두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렇게 일본 선불교 철학자가 서구와의 대화를 통해서 노년의 의미와 그 독자성을 밝혀주고, 생물학적 죽음을 상대화시키는 이야기는 오늘 늙는 것과 몸의 끝을 극도로 혐오하는 우리 세대에게 확실히 줄 것이 많아 보인다.



7. 이상의 철학적 성찰보다도 훨씬 더 강력하게 죽음과 늙음의 힘을 상대화시키는 가능성을 일본 측의 또 다른 참석자 기타지마 기신 교수(욧카이치대학)는 일본 정토교의 창시자 신란 연구를 통해서 이루고자 한다. 익히 아는 대로 신란은 12세기 일본에서 16세기 서구 개신교의 마틴 루터보다 훨씬 더 일찍이 ‘믿음’(信)을 통한 구원을 설파하여 일본의 마틴 루터로 여겨지기도 한다. 기타지마 교수에 따르면 신란은 노년기에 일관되게 ‘정정취론’(正定聚論)을 펼쳤다. 정정취란 ‘신앙, 신심(信心)을 통해서 죽어서 부처가 되는 것이 확정된 사람들의 무리에 속한다.’는 의미인데, 따라서 이제 여기서 아미타 부처의 도움으로 믿음을 통해서 구원과 극락왕생이 확정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거나(卽得往生) 자아를 주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깨달음의 위계에 오른 사람들은 온전히 평등한 신앙공동체를 형성하여 자신의 남은 힘을 현실 세계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쓰는 것을 말한다. 신란은 말년에도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전혀 갖지 않았고, 세속의 모든 가치관을 상대화할 수 있는 영적 힘을 가지고 심지어는 84살의 노년에 이러한 자신의 신앙과 신념에 부응하지 못하는 친아들 젠란에게 의절장을 보내 절연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염불하는 사람들은 신심이 결정되면, 자신의 왕생을 위해서라고 생각하지 않고 국가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염불을 하면 됩니다. ... 자신의 왕생이 정해졌다고 생각하는 분은 구원받기 위한 염불은 필요 없고, 구원해주신 부처님의 은혜를 자각한다면 보은을 위해서 마음을 담아 염불을 하고, 세상이 태평하도록 염불이 퍼질 수 있기를 바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親鸞, 唯信鈔文意)라고 선언한다.

오늘 한국 기독교 개신교의 어느 강력한 구원론을 생각나게 하는 이 믿음의 선포는 그러나 자칫하면 위험한 신앙적 배타주의와 결정론으로 화해서 오히려 지독한 이기주의와 자기 폐쇄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미 죽음 이후의 구원과 극락까지 확보해 놓았다는 믿음은 노년의 삶을 편안하게 하고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고 하지만, 오늘의 과격한 세속주의 사회에서 그것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 신란에 대한 성찰을 발표한 기타지마 교수 자신이 일본 사회에서 불교 성직자이기도 하고 뛰어난 사회운동가로서 동아시아 평화의 일에 몰두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신란 정정취론의 긍정적인 역할을 생각해 볼 수도 있었지만, 오늘 점점 더 폐쇄적이 되고 우경화하는 일본 사회, 특히 그 노년 세대의 현실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다른 참석자 오오하시 켄지(일본스즈카의료과학대학 강사)의 이야기는 그 한계를 돌아보게 한다.

오오하시 선생이 소개한 일본의 또 다른 바람직한 노인상은 17세기 에도시대의 유교적 무사 쿠마자와 반잔이었다. 발표자 자신도 그렇듯이 에도 막부시대의 반잔은 양명학을 배운 후 유교 실심과 실학의 입장에서 이론으로서의 학문이나 사적 이익을 위한 배움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도를 이루려는 유교 이상주의와 경세제민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분투한 사상가 겸 행동가였다고 한다. 에도시대 무가(武家)의 가신으로서 번(藩)의 행정을 주도하여 구휼, 치수, 교육 사업 등을 담당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그는 특히 “어려서는 배우고, 자라서는 행하며, 늙어서는 가르친다.”라는 모토를 강조했다고 전한다. 그런데 여기서 늙어서 가르친다는 말은 단순히 연장자로서 지식이나 경험을 연소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즉 노년에 이를수록 보다 나은 미래사회를 위해서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일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그에 따른 활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단순히 강압적인 권위나 나이 듦을 내세워서 ‘스승’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서 ‘함께’ 힘을 다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고, 그렇게 배우는 사람만이 참된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가르치는 것이 동시에 배우는 것’이고 그것이 ‘교육의 진수’라고 말한다. “사람이 어려서 배우고 자라서 실행하며 늙어서 가르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것과 어긋난 사람을 국적(國賊, 나라의 도둑), 혹은 밥도둑(穀賊)이라고 부른다. 늙어서 현역에서 물러가고 고향에 돌아가서 자제와 이웃 아이들을 가르치고 하늘에서 내려주신 생명 정신을 헛되게 하지 않는 것을 불곡(不穀)이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여기서 짧게 소개된 반잔에 따르면 바람직한 노인상이란 노년이 될수록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는 일에 대한 책임을 크게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남은 생을 홀로 즐기는 일에 몰두하거나 다가오는 죽음을 염려하며 경직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세계를 향해서 활짝 열고 타자와 함께 공동체의 안녕과 미래세대를 위한 활동 속에서 자기완성을 추구하는 방식을 사는 일을 밝혀준다.



8. 이번 노년철학 한일 국제회의를 주관한 동양포럼은 알다시피 김태창 선생이 지난 시간 일본에서 오래도록 주도해온 교토포럼에 이어서 한국에 돌아와서 ‘동양일보’와 손잡고 그 모토를 “동아시아의 공동 가치를 찾아서”라는 것으로 하면서 이끄는 모임이다. 이번 노년철학도 그 지향대로 한일 양국의 바람직한 노년상을 찾아내어서 공통분모를 얻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고, 과거와는 달리 ‘평화’와 ‘행복’의 동아시아를 이루는 일에 더욱 다가가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 화해와 평화의 일을 위해서 ‘노년’에 주목하는 것이 매우 적절하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노년이 된다는 것은 그 이전의 삶의 시간 속에서 국적이나 성별, 계급 등의 차이로 인해서 첨예하게 갈등을 일으킨 요소들이 바로 모두의 보편적인 나이 듦과 죽음 앞에서 크게 완화되기 때문이다. 또한 노년철학의 구성을 위한 중요한 축은 오늘날 100세 시대를 구가하는 일이 점점 더 보편적으로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오늘의 노년세대야말로 그 삶이 점점 핍절해지는 젊은 세대에 비해서 이미 축적해서 줄 것이 많고, 그래서 그것을 동아시아의 선한 미래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노년은 복지의 수혜자이고, 사회의 부담이라고 여기지만, 그리고 물론 우리 주변에 어렵고, 공동체의 돌봄이 있어야 하는 노인들이 많이 있지만, 동양포럼의 노인철학은 그보다는 앞의 반잔의 노년 철학에서 보았듯이 그와 같은 일반적인 노년 이해에 제동을 걸면서 점점 더 길어지는 생애의 시간을 살아야 하는 “멀쩡한 노인들”, 단지 복지의 대상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노년세대에게 철학하고 성찰하는 노년상과 그 일을 통해서 ‘공공’(公共)하는 노년의 삶을 제시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런 노인철학을 가지고 운영되는 동양포럼이다 보니 그 일을 이끄시는 분들의 면면이 바로 그 철학의 화신인 경우가 두드러졌다. 앞서 말한 김태창 선생은 말할 것도 없고, 3박 4일의 회의기간 내내 뒤에서 참된 성실과 친절, 겸손으로 회의 전체를 세밀히 살피며 이끄시는 유성종 운영위원장님, 한국 최고령 3선 군수로서 충북 보은을 행복과 돌봄의 고장으로 만들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정상혁 군수님, 30여 년 전에 기자로서 신문을 창간하여 지역 언론을 통해서 좋은 담론을 형성하고 성찰하는 사회를 만들려고 고투하는 조철호 <동양일보> 회장 등이 그런 분들이다. 또한 한 아침에 회의장을 찾아서 한국 농촌의 현실과 보은군의 노인 현황, 본인의 삶의 자리에서 나온 바람직한 노인 정책 등을 제안하며 감동 있고 힘 있는 말씀을 들려주신 대한노인회의 보은군지회 이응수 회장님이 있었다. 그와 더불어 교토포럼에 이어서 동양포럼의 핵심 멤버이신 일본 <미래공창신문>의 야마모토 쿄시 사장은 그의 발제에서 노년들이 특히 언론활동을 통해서 사회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도덕 규준이 있어야 한다.’는 철학 아래서 그는 노년들이야말로 그 체력적 한계를 넘어서서 언어와 말과 글을 통해서 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 있고, 다음 세대와 어린이들을 위해서 사람에 따라서는 가지고 있는 축적해 온 지적 재산과 안정된 재력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래서 그는 ‘매문’(賣文), 즉 글을 파는 행위를 특히 경계했고, “정보화시대의 무기로서 언론의 힘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노인들의 연대는 먼저 새로운 언론계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관건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생 100년대인 만큼 노인들에게는 엄청난 사명과 책임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다시 자각하시기를 바란다.”라고 역설한다.



9. 하지만 이런 모든 안목과 제안에도 불구하고 요사이 한일 양국은 모두 더욱더 부패하고 있는 언론과 우경화, 보수화를 거듭하고 있는 ‘기득권’ 노년세대로 인해서 몸살을 앓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소위 ‘태극기 부대’라고 불리는 주로 노년층과 특히 보수 종교계에서 자신들의 종교적 특권을 주창하는 사람들이 펼치는 ‘가짜 뉴스’(fake news) 문제로 점점 더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은 특히 그동안 한국 사회가 크게 고통받아온 냉전과 남북분열의 시간을 극복하고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열려는 사회 진보적 노력을 각종 가짜 뉴스와 과거체제 고착적인 시각으로 왜곡시키고, 변질시키며 끌어내리려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까지 노년철학을 다각도에서 탐색했고, 더군다나 노년세대가 이바지할 수 있는 공정하고 깨끗하며 공공적인 언론을 위한 기여에 대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자리에서 김태창 선생은 가짜 뉴스라는 것을 누가 판정할 수 있으며, 오늘 한국사회가 너무 편파적으로 치우쳐 있다는 등의 언급을 하면서, 그 태극기 부대를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하시는 것을 듣고 나는 실망감과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모든 철학을 말하고 높은 영성을 구하며, 남이 보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행할 수 있는 노인철학을 구성하려고 한다면서도, 그 일이 한갓 오늘 우리 사회의 보편적 ‘상식’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면, 그 허구성과 비현실성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서 사실 이번 노년철학 회의가 영성과 더불어 ‘여성’적인 가치에 대해 주목한다고 했지만, 오늘 상식적인 여성들의 보편인 우리 사회의 ‘미투 운동’조차도 소수의 여성이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얻으려는 왜곡이라고 평가하는 것을 듣고는 참으로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이런 현실들을 목도하니 그동안 꼬박 하루 거의 8시간 이상을 노년철학을 위해 ‘대화’해 온 자리라는 것도, 사실 서로간의 대화가 아니라 거의 일방적인 강술이었고, 모든 담화의 마지막 결론은 항상 선생 한 분의 입장과 시각으로 정리되고 마무리되는 것을 보면서 당혹감을 감출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아무리 자신을 비우는 노년철학을 말하고 바람직한 노년상을 위해서 타자와 낯선 것에 대해서 개방하는 것을 강조해도, 그것이 실제로 실천되는 일은 그처럼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퇴계 선생은 ‘학자의 큰 병은 자신을 버리고 타인을 따르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것’(不能捨己從人 學者之大病)이라고 하셨고, 전설적인 성인(聖人) 순임금의 가장 뛰어난 덕목이 바로 ‘사기종인’이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선을 행하는 것’(善與人同)이었다는 것이 다시 의미 있게 다가왔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바람직한 노인상을 위해서 제일 중요하고 긴요한 것은, 끊임없이 과거의 자신을 내려놓고 그것을 고집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것과 다른 것에 자신을 개방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다시 실감한다. 그래서 어쩌면 그 일은 우리 개인적 의지나 인간적 노력을 넘어서, 다시 어떤 신적 은총이나 전혀 낯선 것의 은혜를 구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하면 철학만으로는 안 되고 한 인격의 진정한 변화와 새로워짐은 ‘종교’나 ‘영성’의 차원이 꼭 함께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의미로도 받아들인다.

노년의 삶 속에서 여성적 측면을 인정하는 일에서도 가장 간단하고 단순하게 말해보면 어떤 회의나 대화의 장소에서 말하는 시간의 양을 적절하게(평등하게) 나누는 것만큼 실제적이고 상식적인 것이 더 있을까 생각한다. 참석자의 면면은 물론이고 말하는 시간의 분배가 거의 한 특정한 남성에게 쏠려있다면 그가 강조하는 여성적 가치의 중시는 한갓 빈말일 수 있다. 이번 회의에서도 많은 사안과 주제에 대해서 여성의 관점과 남성의 관점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속리산 보은에서의 은둔적 성리학자 성운의 삶과 사상을 논하는 데서도 김영미 시인은 여성들은 그처럼 생계나 일상의 관계와 살림살이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그 남성 선비의 은둔상이 오늘 귀촌의 바람직한 상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을 했고, 또한 많은 발제가 노년의 삶을 너무 무한한 사회적인 책임과 공적 의무의 차원에서 논해지는데 자신은 노년의 삶을 좀 더 쉬고 자신에게 관심하는 일로 보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유사한 맥락에서 마지막 날 회의에 함께한 김연숙 교수(충북대)는 노년 철학의 노년 이야기에서 정작 노인의 목소리는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고, 최근에 마당에 호박을 심어보는 경험 속에서 시들어가고 소멸해 가는 것의 열정과 아름다움을 새롭게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마지막 발언으로 요즈음 자신에게는 삶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acting’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undoing), ‘그만둘 수 있는 것’인 것 같다고 하는데, 이런 발언들에서 여성적 사기종인의 지혜와 덕이 더욱 느껴졌다.



10. 동아시아의 공통 가치를 찾아서 한일 간의 화해와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일은 지난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도 그 긴 시간을 힘써 이루어 오신 포럼의 관계자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종종 거기에서도 유사한 모순과 거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번 회의의 일본 측 참석자에 속해 함께 한 김봉진 교수는 30여 년을 일본에서 지내오면서 일본 사회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거의 저버렸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아베 정권의 아베는 거의 확신범 수준이지만 이번에 다시 수상에 오를 수 있었고, 후쿠시마 원전 폭파의 처리가 어떻게 되어가는 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인데도 언론 통제와 보도 통제가 심한 가운데 사회는 점점 더 우경화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시각과는 달리 김태창 선생의 언어에는 무심코 던지는 말에서도 한국사회를 폄하하는 듯한 말들이 종종 나온다. 특히 한국의 촛불 혁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나는 이런 모습이야말로 그분이 어린 시절 일제 식민지시기를 보내면서, 그리고 오랜 기간 일본에서 지내면서 무의식적으로 얻게 된 한국 노년세대의 자기비하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일의 극복이 어떻게 가능한가가 오늘 우리 사회 노년세대의 중요한 과제라고 여기고, 바로 그럴 때 참다운 세대 간의 상생과 나눔, 대화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본다.

이제 나는 그렇지만 모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참관기의 마지막 말을 맹자의 언어를 빌어서 하고자 한다. 그것은 그가 오래된 것, 나이 듦에 대한 존숭(警長)이야말로 한 공동체의 義의 토대가 된다고 밝힌 말이다. 이 가르침은 오늘의 우리가 있기 위해서 과거에 이루어졌던 수고를 공정하게 알아주고, 갚아주고, 감사하며 보은하는 마음이 현재의 모든 삶에서의 공정과 정의의 기초가 된다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이제 스스로가 나이가 들어서 노년이 되었지만, 자신을 감사와 보은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대신에 먼저 받은 은혜와 수고를 생각하면서 그것을 갚으려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 나는 이것이 바람직한 노인상의 토대가 되며 그 길이 우리 몸과 마음을 경직되지 않고 보수화되지 않게 하는 길이라고 본다. 또한 그 일은 우리 삶에서 오랜 기간 행해온 孝의 의미와도 잘 통하는데, 일본 측의 참석자 야규 마코토 박사(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가 17세기 일본의 에키켄과 19세기 조선의 최한기에게서 공동으로 발견한, 만물을 낳고 살리는 하늘 부모에 대한 孝가 노년의 양생과 바람직한 삶을 위한 근본이 된다고 한 가르침과도 상통함을 본다. 이런 의미에서 그동안 김태창 선생님과 포럼이 한일간의 화해와 새로운 관계 맺음을 위해서 들인 노력은 그 여러 가지 반박점에도 불구하고 우리 감사와 보은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또한 나 개인적으로는 이번 보은에서의 회의가 내가 학문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셨고 아이들을 돌봐주신 시어머님의 고향이었으므로 그분의 수고와 은혜를 더 기억나게 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게 했다. 또한 거기서 멀지 않은 청주의 한 요양소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불효를 겪었으니 이번 노년철학을 논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또 돌아보게 되었다. 이런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해주신 김태창 선생님과 동양포럼, 그리고 보은군의 베풂에 감사드린다. 앞으로 새롭게 시작된 노년철학이 더욱 전개되고 발전되어서 동아시아의 미래뿐 아니라 세계를 더 좋은 인간적 삶의 터로 화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하기를 바란다.



박장미 pjm8929@dynews.co.kr
Posted by Sejin at April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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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s: 김용환, 김태창, 동양포럼, 야규 마코토, 이은선, 장자, 조성환, 최한기

동양포럼/존엄성의 가치를 노년 철학에 적용하기(상)(하)


동양포럼<141> 존엄성의 가치를 노년 철학에 적용하기 -상-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21.03.21 19:41

원혜영 충북대 윤리교육학과 강사


원혜영 박사

[동양일보]나는 여기서 노년 철학에 관련한 두 권의 책을 소개하기 전에, 최근 영화배우인 안젤리나 졸리가 GEEF 2021(Global Engagement & Empowerment Forum, 2월 5일)에서 난민과 이민자의 어려움에 대해, 그리고 여성과 아이가 겪고 있는 인권 훼손에 대해 강조한 부분을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나 자신이 여성이기에 공감을 크게 받은 것도 있지만, 우선적으로 그녀가 가진 영향력을 영화배우로 한정하지 않고, 인류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을 가졌기에 공유하고 싶다. 여성은 남성보다 인류에 대한 깊은 사랑과 관심을 감성적으로 가졌다.


예전에는 단순히 여성이 모성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여성은 태어나는 그 태생부터 자신이 소수자이고, 약자로 사회적 공동체에서 인정받기까지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고 적응하면서부터 감성적인 존재였다. 사회적 차별과 태생적으로 공동체에서 온전한 인정을 경험하지 않은 존재는 그런 감성이 불합리하고 자신감 없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여성이 아이와 노인을 감성적으로 이해하고 가치 있게 대한다는 사실에서, GEEF 2021에서의 토론은 풍부하고 귀중한 통찰력을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교류를 위한 발판이 되었다.

소수 약자에 관련한 인간 존엄성의 실상이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면서도 여전히 퇴행적으로 진행되고 있어서 안젤리나는 실망스럽다고 전한다. 그녀에게 인상 깊게 느꼈던 점은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한다는 것이며, 그녀가 전문학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통찰력을 가졌다는 점이다. “아이와 여성에 대한 투자는 어떠한 것보다 실용적이고 발전적이며 공동체에 이익이 크다”라고 한 그녀의 말은 나에게 깊이 새겨졌다. 미래지향적인 공동체를 꿈꾼다면 지금 한없이 보호받아야 할 존재인 아이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 공동체 일원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게 되고, 나약한 여성이 사회적 존재로 자리하면서 직· 간접적으로 인류 공동체를 위해 도움을 주고 있기에 관심을 끈다. 전폭적인 지원이 아이와 여성을 위해 쓰이는 것은 미래를 위한 것임을 우리는 종종 간과한다. 제도와 인식이 변하기를 바라는 그녀의 희망은 언제쯤 실현될지 모르겠다. 그녀의 희망이 우리 모두의 희망이기도 하다.

과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뿌리 깊은 이해가 전 지구적으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건들, 과정들, 그리고 법률이 있어야 할까? 이런 일들에 앞장서는 사람이 따로 있고, 여전히 유린당하고 침해하는 제도, 국가, 민족 그리고 개인이 존재한다. 공동체란 정말 미묘하면서 복잡하다. 모든 구성원이 함께 공유하고 연관되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기에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항상 해결책과 대안에 관련된 모색은 뒷전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전염병의 시대에도 인간은 서로를 보듬어 나가기보다는 이기적인 본성을 드러낸다. 팬데믹 현상이 전 지구가 연결되어 있다는 소중한 교훈을 주고 있는데도 말이다. 지식층과 미래학자들은 소수 약자 및 소외된 인간에 대한 배려를 존엄성이란 이름으로 강조한다. 팬데믹 시대는 우리가 우리의 공동선과 인류의 발전을 위한 열망과 함께 집단 및 모임의 얼마나 중요한 시간이었음에 큰 영감을 주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아이와 여성뿐만 아니라 노인은 사각지대에 놓인다. 사회는 소수 약자에 대한 유린, 학대, 폭행 등의 사건에 대한 묘사와 문제 제기가 공감대를 얻기까지 무수히 반복되기만 하는 것 같다. 대안과 제도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느리기만 하다. 더 큰 문제는 인식의 전환이 사회적인 공감대를 얻고 삶의 실생활에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철학적이고 인문학적 토대가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까? 사건 사고의 단편적 상황인식이 아니라 이제는 뿌리 깊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다. 인식의 전환이 개개인을 변화시킬 때 효과는 크다.

최근 나온 두 권의 책은 인식적 전환으로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어 권장한다. 나름대로 대안 및 철학적 안목을 가지고 있어서 소개한다. 특히 노년 세대에 관련한 인식의 변화에 의미 있는 진전을 기대할 수 있기를 바라는 목적을 가졌다. 두 학자 모두가 남성이기에 냉철하고 합리적이기도 하다. 이들은 한일 양국에서 노년철학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왔다. 그들은 노년기를 보내는 동안의 생활 흐름에 익숙한 서술을 위주로 논의한다. 대상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갖추었다. 여성 작가라면 더 감성적이고 노골적이며 직접적으로 서술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비교와 아쉬움도 있다. 아들이 늙으신 아버지를 보고 느끼며 드러내지 않는 깊은 감정처럼 느껴졌다. “아버지, 이렇게 노년을 여유롭게 즐기며 사십시오.”라며 말하는 듯하다. 딸들이 살뜰하게 부모를 챙기는 것과는 다른 거리두기가 느껴진다.

그들의 글은 철학적인 인간존재의 객관화를 위한 것이다. 늙으신 아버지에게서 얻을 수 있는 장점, 배우고 싶은 점, 그리고 존경보다는 그들에게 이제까지 수고스러운 삶을 내려놓고 편안한 노후를 권하며, 그 과정을 그대로 서술한다.

김양식의 <나이듦, 가슴 뛰는 내일>(수륙책방, 2020)은 인문학적인 사고를 토대로 하여 나름의 대안을 위주로 다루었고, 오하시 겐지(大橋健二)의 『노년철학 하기』는 철학적 배경을 가지고 흥미롭게 서술한다.


<나이 듦, 가슴 뛰는 내일>에서는 한국사회의 노년기에 접어든 계층에게 “나이 들면서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실을 인정하고, 현재의 모습에서 기쁨과 행복을 찾을 필요성”(김양식, 위의 책. 116)으로 설득한다. 일반적으로 한국사회의 노년층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취약하다. 황금의 노년기를 맞이하는 계층은 취약한 노년기를 보내는 부류와는 상대적으로 차이가 크다. 노년기에 접어든 모든 계층이 ‘가슴 뛰는 내일’을 맞이할 수는 없다. 후손들의 불안한 삶이 노년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 책은 어느 정도 안정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 그리고 인문학적 지식이 탑재되어 있을 때, 공감하기 쉽다. 나이 듦은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성찰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단조롭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활기차게 삶을 살도록 독려한다. 책의 소제목들에서 느낄 수 있다. ‘모든 것을 수용한다. 언제 어디서나 미소 짓는다. 단순한 삶을 산다. 배우는 것을 즐긴다. 도전한다. 세상과 소통한다. 규칙적인 운동을 습관화한다. 나이 들어가는 미덕을 실천한다. 내면의 고요함을 즐긴다. 자연과 대화를 나눈다. 죽음을 초월한다.’(김양식, 위의 책. 124-153) 등등이다. 열심히 살아온 노년기의 인생에 보너스처럼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이 든다는 것 자체를 즐기는 노년기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어렵고 힘든 노년을 맞이하는 인생도 여기에 공감하길 바란다.

인생에 모든 것을 성취해서 걱정 없이 보내는 부류보다는, 자신들의 입지와 자식들의 형편을 걱정하고 근심하면서 보내는 부류가 읽기에는 많은 것들이 마음에 와닿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의 하루하루의 처지를 걱정하며 빈곤하고 외로운 노년기에 ‘좋은 습관 길들이기’(김양식, 위의 책. 215)는 이제까지의 가져왔던 자신의 습관을 고치기에는 더욱 어렵게 만들지 않을까 생각된다. 환경이 좋은 노년기를 맞이하는 노인들에게 개선하고자 하는 여유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도 이제까지의 습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높은 교육 수준과 자기관리에 철저한 삶을 살았던 노년에게 이런 것들은 쉽다. 더 유유자적하고 평온하게 보내길 바라는 것은 경직된 습관을 가졌던 노인들에게 어려울 수 있다. 노년기의 삶의 질은 습관이 좌우한다. 다시 자신의 습관을 고치고 바꾸는 것이 노년기에 가능할 수 있다면, 노력을 많이 해야 할 것이다.

‘삶의 공간이 점점 좁아져 끝내 집안에 고립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김양식, 위의 책. 240)라는 문구는 이제 이것은 노년기의 일상만이 아니다. 코로나 시대에 전 인류에 해당하는 말이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노년의 삶을 역지사지하는 상황에 놓였다. 단순히 정착하고 고정된 삶이 노년기에만 해당하지 않는 현실을 목격한다.

다양한 인간존재의 어느 순간의 단편적인 상황이 아니라 전 인류의 상황임을 새삼스럽게 알아차린다. 나이 들어가면서 그 이전의 활발한 생활, 즉 모임이 소중했음을 깨달았던 것처럼, 인류는 지금 노년의 생활처럼 예전의 생활을 그리워한다. 놀라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인류의 이기심에 경종을 울리고 반성하는 계기를 이번 팬데믹 상황이 알려준다. 노인들도 젊은 날의 치기와 이기심, 그리고 배려 없는 마음들을 지금의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며 반성할 수 있다. 팬데믹을 겪은 우리가 지난날의 활기찬 삶을 잃어버리고 그리워하고 후회하는 것처럼 말이다.

노년의 삶에 명상 수행하는 것은 죽음을 좀 더 친숙하고 두렵지 않게 보낼 수 있는 좋은 방편이다. 명상 수련의 기본적 자세는 과거의 후회도, 미래의 걱정도 잊고 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기본적 자세의 중요성을 인식시킨다. 노년기의 삶에서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노년기 모든 계층에게 일반적이다. 노년을 행복하게 보내는 부류와 불행하게 보내고 있는 부류의 양쪽에 명상 수행은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평화로운 일상을 행복하게 보내는 마음 자세이다. 노년기에 새로운 번영이나 파트너십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평온과 잔잔한 미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관계보다는 옛 동지를 챙기기 마련이다. 이기심에 시달리고 젊었을 때처럼 아직도 잡고 싶은 욕심이 있는 노인들에게 이 책은 좋은 주제들을 선사한다.

또한 노인은 TV를 시청하는 것에 시간을 소비할 정도로 비생산적으로 시간 죽이기를 하고 있고, 바둑만 두거나, 온종일 탁구만 치거나, 서재에서 책만 보는 것도 바람직한 시간 관리가 아니라고 제시한다. 사회활동이 줄어들고 외부정보에서 차단될 위험성이 있는 수동적인 자세보다 적극적인 시간 관리와 활동을 권장한다.(김양식, 위의책, 247-249)

시간 관리는 성숙한 나이 들기의 연장선임으로 젊을 때와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하는 것이 맞지만, 그렇게 하기 쉽지 않다. 좋은 습관이 들었다면 다행이지만, 고쳐지지 않을 수 있다. 나이 들면서 더 편안하고 느슨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을 나는 추천하기에 저자의 의도와 맞지 않을 수 있다. 김양식의 <나이 듦, 가슴 뛰는 내일>에서 우리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있을 노년기의 다양한 삶의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보고 행동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오오하시 겐지의 <노년철학 하기>는 일본에서 노년기의 다양한 논의를 토대로 한다. 철학하기라는 제목으로 업그레이드된 저서이다. 종전의 일본 노인 문제에 대한 비판서이기보다는 사실 그대로의 서술을 토대로 철학적 생각하기이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꼰대’라는 닉네임처럼 외부 대상화하기보다는 노인 자체의 내부적인 감성으로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는 면도 놓치지 않았다. 현실적인 문제도 그대로 드러낸다. 연금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노인들, ‘악몽의 노후’에 대해서도 ‘하류 노인’이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온후한 노후를 맞이해야 할 노인들이 소매치기가 되는 초고령사회의 어두운 현실도 솔직하게 말한다. ‘괴롭다’, ‘외롭다’, ‘쓸쓸하다’, ‘슬프다’라며, 너무나 긴 노후를 ‘생지옥’이라고 한다. (오하시 겐지, 위의 책, 36-38)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노인의 비극을 말한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한국은 일본보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고독에 괴로워하는 노인의 실체를 말할 수 있는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노년철학 하기>는 단순히 노년기의 생활에 집중하지 않고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특수성을 내재화한다. 즉, “일본에는 내부로 향하는 전개가 있어서, 그 논리가 일본의 모든 공간성에 각인을 남기고 있다”라고 한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크게 확대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항상 내부로 작게 하나로 뭉치려 한다는 것이다.

한국 학자 이어령도 단적으로 ‘축소지향의 일본’(1982)이라고 한다. 오하시 겐지는 종속, 의존하는 회사 시스템이 건전한 시민의식을 형성하게 만들지 못하고, 자유로운 시민사회정치의 존재도 없게 만들었다고 한다.(오하시 겐지, 위의책, 96-98) 그는 일본 사회가 가진 통합력이 장점으로 발휘되고도 있지만, 개인의 인격과 존엄성의 훼손을 간접적으로 말한다. 일본 사회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한다. 그런데 한국은 일본보다 자유로운 시민사회정치가 발달했다고 보이는데, 노년의 존엄성과 인격 모독은 일본보다 더한 이유는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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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존엄성의 가치를 노년 철학에 적용하기(하)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21.04.11 20:39

댓글 3

[동양일보]오오하시 겐지는 노년철학을 특별한 관점으로 이야기해서 주의를 끄는데, 그것은 현대 일본사회가 가진 단점을 보완하려는 의지에 따른 것이다.

노년철학에 대해 말하는 그는 슈펭클러, 마키의 말을 인용하면서 자신이 가진 생각을 나타낸다.

“식물은 우주와 일체로서 자기의 신체의 연장이 우주 그 자체인 것에 반해, 동물은 우주를 자기의 몸속으로 받아들여 버린다는 점에서 소우주적 존재라고 말한다. 식물은 우주와 일심동체이지만, 동물은 우주에 대해서 자폐적이다.”

침묵의 자세 안쪽에 완만하게 생동하는 영혼을 숨기고, 항상 하늘을 우러러 대지에 서며, 우주의 생체리듬에 조용히 몸을 맡겨 살아가는 식물의 모습에 주목한다. 그것은 직립의 모습으로 우주와 맞아떨어진다. 뇌의 폭주를 허용하지 않는다.


우주와 일심동체의 관계 속에 삶을 영위하려는 동물과는 다른 하나의 생명이다. 이러한 생명의 본연의 자세는 늙은 인간에게 어울린다고 한다.(오하시 겐지 위의 책, 192)

그는 또한 구마자와 반잔(態沢蕃山)의 팬이다. “나이 들어 가르치라”라고 하는 구마자와 반잔의 말을 좋아한다. “나이 들면 조용히 지갑을 열고 사라지라”는 한국인들의 말과는 역설적으로 다르다.

구마자와 반잔은 각 세대에 맞는 삶의 방식으로 “어릴 때는 배우고 청년일 때는 행동하고 나이 들면 가르쳐라”(<集義和書> 제1권)를 강조한다. 나이 든 사람이 가르쳐야 할 것은 단순히 지식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조화의 필연으로 생을 얻는 존재로서 사람들과 함께 만물을 만들고 길러야 한다. 즉 <하늘>의 조화의 움직임에 동조하고, <대지>의 삶을 영위하며 지속적인 관계를 갖고, 더 좋은 미래와 새로운 세계를 창출할 책임이 있다.

나이 든 인간이 삶과 이야기로 보여주고 가르쳐야 한다.(위의 책, 196) 한국사회는 노인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보다는 다음 세대로 자리를 양보하는 것에 방점을 둔다. 한국에서 나이 든다는 것은 자신의 위치와 지위에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일본의 노인이 사회적인 참여에 활발하게 여지를 남겨 두는 것과는 다른 인식적 차이로 대비된다. 공동체에서 배제되는가, 아니면 그대로 일원이 되어 있는가의 차이가 있다.

한국과 일본 모두 근대 세계가 요구해 온 인간 모델은 “무엇을 이루었는가? 어느 정도 위대하며, 얼마나 벌었는가?”라는 행동 가치, 성과가치를 중시하는 ‘human doing’형이다.

이것은 세속적인 보람이나 평생 현역, 1억 총활약, 혹은 생산성 등을 강조하는 것이다. 정관(靜觀)이나 관조(觀照)의 깨달음과 관련된 명상 형태는 정반대로 주어진 생명 자체를 존중하는 존재가치인 ‘human being’형의 마음 사용법이다.

그저 멍하니 눈앞에 펼쳐진 자연을 바라보며, 나뭇잎이 흔드는 바람의 시원함을 느끼고 온종일 느긋하게 마음을 놀게 해주는 ‘생명’을 맛본다. 생명이 출현하는 이런 ‘무위의 시간’에 마음을 놀게 해주는 즐거움만큼 오늘날 일본 사회가 잃어버린 것은 없다.(위의 책, 200)


김양식의 <나이듦, 가슴 뛰는 내일>에서도 이점을 강조하고 있어서, 한일 양국이 명상 수련이 노년기에 필요하다는 관점에는 이견이 없다. 한국은 기(氣) 철학의 생사관을 가지고 있다면, 일본 고유의 생사관은 풍부한 자연환경이 낳은 자연과의 일체감과 현세 긍정적 낙천주의로 통하는 곳에는 그들만의 ‘즐거움’이 있다.

이 책에서 특별한 점은 인간, 여기서는 이목이 총명한 남자만 해당한다는 조건의 서술이 있었다. 하늘과 땅, 양극의 왕래는 진정한 여행자 또는 지덕이 뛰어난 남성을 조건으로 한다.

“움직이는 자의 몸은 가로, 뿌리내리는 자의 몸은 세로, 사람은 제대로 가로로 되어야 하며 그 반대가 세로이다”<皇極經世書>

새와 짐승 등 모든 동물의 몸은 타고난 가로 방향이다. 몸이 땅에 평행하므로 활동적인 동(動)이다. 초목 등 모든 식물의 몸은 타고 난 세로 방향이다. 몸은 땅에 수직으로 세우기 때문에 부동(不動)이다. 동물인 인간의 몸은 본래 수평이지만 식물처럼 수직이다.

인간은 만물 가운데 가장 존귀하다. 동(動, 가로)으로 부동(不動, 세로)을 겸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자연을 거스르는 인간 본성의 이기성과는 다른 관점이다.

프랑스 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인간의 이러한 강직한 수직 몸을 나쁜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이 인간 고유의 경직된 자아, 이기주의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기주의가 순수 자연에서 분리된다. 그것은 지면에서 위쪽 수직으로 향한 인간의 신체가 높은 곳으로 향하는 방향을 정해졌기 때문이다” 높이로 향하는 방향은 착각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생기(生起)이며, 지워 없앨 수 없는 증언이다.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말은 이 높이에서 나오는 것이다.(<전체성과 무한>, 김도형, 문성원, 손영창 옮김, 그린비, 2018; 위의 책, 302-303)

하늘로 향하는 식물 축과 대지에 귀속하는 동물 축을 겸비한 양극적인 인간 신체가 천지를 왕래한다. 이런 견해로 인해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소우주를 대우주에 한없이 개방하는 거룩한 실천을 하는 존재로 귀결하고 있다.

오오하시 겐지가 논하는 이 지점은 훌륭하지만, 총명한 남성에 해당한다는 부분에서는 노년 철학이 늙어가는 남성에게만 특권적 의식을 주어서 국한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된다. 또는 지덕이 뛰어난 남자만 거론하고 있어서, 인간의 범주에 다른 인종들(여자, 아이, 지덕이 없는 노인 등등)을 포함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제외하고는 상당한 식견을 주고 있어 흥미로움을 떨어뜨리지는 않았다.

특히 노년의 시간은 속세에서 떨어져 나와서 나와 마음을 넓게 함으로써 자연을 무한히 받아들이는 ‘무위의 시간’에서 생기는 즐거움이라고 소개한다.

고대 유교의 천인합일 사상을 받들어 ‘천지 뜻에 순종하는’ 정관(靜觀)을 강조한다.

“한가함은 항상 즐거움이 많다. 바쁜 사람도 가끔 여유를 찾아 마음을 기르는 것이 좋다. 한가하고 조용한 마음이 아니면 재미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라며(<낙훈> 上) 정관과 한가함에서 생기는 재미를 말한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피타고라스, 아낙사고라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말한 관조(觀照)를 상기시킨다. 하늘의 관조야말로 인간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한 그들처럼, 자연의 모습과 변화가 눈 앞에 펼쳐진다. 생생히 약동하는 천지를 바라보는 것이 인생의 큰 즐거움이라고 본다.(위의 책, 198-199)

한국에서는 코로나로 인하여 노년기의 보내는 정관 및 관조의 즐거움을 젊은 층도 누리고 있다. 일명 ‘불멍’이라고 하여 불을 피워놓고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을 즐기거나, ‘물멍’이라고 하여 수족관에 물고기를 기르면서 ‘멍!’ 때리며 바라보는 시간을 즐긴다.

노년기의 생활인 한가롭고 조용한 마음을 젊은이들도 누린다. 코로나를 겪은 세대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비대면의 생활에 익숙해지고, 느긋하고 평온한 삶에 관심을 더 기울인다.

노년기에만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코로나로 인해 젊은 사람들의 시간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이런 확대된 양상은 예측하지 못한 것들이다.

인생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 스웨덴학자 랄스 토르스탐(Lars Tornstam)이 제창한 “노년이 되면 인간은 자기중심적인 합리적 세계관, 즉 물질만능주의, 개인주의, 역할기대, 사회적 평가, 사회적 배려로부터 이탈한다. 물건이나 사회적인 것에 연연하지 않는 집착 초월과 자기중심성이 감소하는 자아 초월을 거쳐, 일원론적 세계를 벗어난다.

‘우주적 초월’로 이행하여 최종적으로 깊은 행복감을 맛본다고 한다. 일명 ‘노년적 초월’이라는 노인론이다. 이런 세계관은 동양권에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도교의 생사일여(生死一如), 천인합일(天人合一), 천지만물일체설이 그것이다. 우주적 차원으로 향하면서 지상적인 자타 일체감에 심신을 맡겨 인식한다.(오하시 겐지, 위의 책, 196)

‘속세에서 떨어져 나와 오감을 작동하여 달맞이꽃을 음미하고 산수를 감상하고 바람을 노래로 읊는’(오오하시 겐지, 위의 책, 198) 여유로운 생활이 노년의 시기가 아니라, 지금 전 인류에게 요구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코로나로 인하여 노년의 시기를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알게 되었다. 고립감, 소외, 거기에 관련된 인권 및 존엄성의 가치를 알아가는 노력을 하기도 전에, 노년기의 입장에 자연스럽게 젊은이들이 자리 잡아서 이해하게 되었다.

인류는 코로나의 불행한 시기에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고 얻어가는 경험을 하게 될 줄 알았을까? 그리고 노년기에 관련된 글을 쓴 양국의 한·일 학자들은 이렇게 젊은 세대들이 노년기에 접어들지 않아도 충분하게 ‘무위의 시간’을 경험하게 될 줄 알았을까?

동양일보 dynews@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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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1-04-12 15:51:04
더보기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항거해온 패전국奴隸.賤民불교Monkey서울대.주권,자격,학벌없는 서울대.추종세력 지속청산!

http://blog.daum.net/macmaca/733

http://blog.daum.net/macmaca/2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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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1-04-12 15:50:15
더보기덤비며(창조신내리까는 부처처럼)유교부정,불교Monkey일본.하느님보다높다는 성씨없는 일본점쇠賤民.후발천황(점쇠가 돌쇠賤民.불교Monkey서울대 전신 경성제대설립)옹립.한국은 세계종교유교국.수천년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숭배.해방후 조선성명복구령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복귀.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세계종교국중 하나인 한국이 불교Monkey 일본의 강점기를 겪으며 대중언론등에서 유교가 많이 왜곡되고 있음.

http://blog.daum.net/macmaca/3131

@ Royal성균관대(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교육기관 성균관승계,한국 最古.最高대).Royal서강대(세계사반영,교황윤허,성대다음예우)는 일류,명문.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항거해온 패전국奴隸.賤民불교Monkey서울대.답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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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1-04-12 15:47:38
더보기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주권없음. 강점기에 피어난 신흥종교인 원불교등도 주권없음.

주권없는 패전국잔재 奴隸.賤民이자, 하느님.창조신을 부정하는 Chimpanzee계열 불교일본서울대Monkey와 추종세력들이 학교교육 세계사의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윤리의 종교교육 유교, 국사등과 달리, 일본강점기때 일본이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했으니까, 유교가 종교아니라고 최근 다시 왜곡하는데,이는 일제잔재 대중언론에 포진하여 루머수준으로 유교에 도전하는것임.한국은 미군정때,조선성명복구령으로 전국민이 조선국교 유교의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는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임은 변치않으며 5,000만이 유교도임.

@

인도에서 불교도는,불가촉賤民.조계종승려賤民한국과비슷.강점기 하느님에
Posted by Sejin at April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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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s: 동양포럼, 명상

Taein Jung 현 정부-여당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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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in Jung
4 h  · 
나는 현 정부-여당(관료 포함)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아니 10%만 줄여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등 떠밀려 넷제로를 선언한 뒤에 한 일이 도대체 뭔가? 대통령은 파리회의에 제출한 감축안이 정말 부끄러운 수치라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기후위기를 극복하려면 완전히 새로운 “전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현재의 여당이 상전벽해 수준의 개과천선을 하거나 아니면 다른 정치 세력으로 교체되어야 한다. 

아뿔싸, 또 다른 40% 지지는 원자력 밖에 아는 바 없는 또 다른 수구정당이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야 “깨어 있는 시민”이다. 마약에 의한 각성은 파멸을 부를 뿐이다.

Posted by Sejin at April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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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8

뉴라이트 학자, 美의회서 "촛불혁명은 사악한 기획..한국, 전체주의로 가"

뉴라이트 학자, 美의회서 "촛불혁명은 사악한 기획..한국, 전체주의로 가"



뉴라
이트 학자, 美의회서 "촛불혁명은 사악한 기획..한국, 전체주의로 가"입력 2021. 04. 16. 09:11 수정 2021. 04. 18. 02:09 댓글 306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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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의회, 대북전단법 청문회..이인호 전 대사 등 일부 증인들 문재인 겨냥 '맹폭'


[전홍기혜 특파원(onscar@pressian.com)]
"한국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이후 일어난 일은 단순히 정권 교체가 아니었다. 촛불 혁명은 세밀하게 잘 짜여진 각본과 흥분한 미디어에 의해 추동됐다. 부패척결, 경제정의, 북한과의 평화, 기회의 평등과 같은 매력적인 구호를 내걸고 급진적인 뒤집기가 일어났기 때문에 그 뒤에 숨겨진 사악한 기획을 의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한국은 전체주의적이 되어 가고 있다. 집권세력은 국회 의석의 5분의 3을 차지한 뒤 대담해져서 진정한 이념적 색채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집권세력은 비판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코로나19 상황을 이용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고 이를 범죄화하는 것은 김정은의 뜻에 반하는 행동은 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일이다...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국가의 방향이며 이미 많은 가치가 파괴되었다. 나는 진심으로 큰일이 날 것 같다."

이인호 전 주러시아 대사(서울대 명예교수)는 15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의회의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에서 주최한 한국의 대북전단금지법 관련 화상 청문회('한국의 시민적·정치적 권리 : 한반도 인권에의 시사점')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이 청문회는 지난해 연말 한국 국회에서 통과된 대북전단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는 문제의식에 기반해 열렸으며, 이 법에 대해 따로 개인 성명을 낼 정도로 비판적 문제 의식을 가진 크리스 스미스 공화당 하원의원이 주도해 성사됐다. 스미스 의원은 이 위원회 공동 위원장이기도 하다.

이인호 명예교수는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과 연관이 있고, 뉴라이트 사관이 반영된 '교학사 교과서'를 적극 옹호한 인사다. 친일파 청산이 '소련의 지령'이라고 주장했고, 박근혜 정부 시절 KBS 이사장을 지내면서 '이승만 미화' 등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인호 전 대사, 美 의회 청문회에서 "문재인 정부, 허울뿐인 민주주의"

대북전단법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 의식에 기반해 열린 만큼 이 법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 상대적으로 많이 제기됐다. 이인호 교수처럼 대북전단법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는 발언자들도 있었다. 이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급진적 포퓰리즘이 허울뿐인 대의제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보수논객인 고든 창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 '공포의 통치'라고 마치 독재자인 것처럼 비판하기도 했다.

청문회를 주도한 스미스 의원은 "문재인 정부는 대북전단금지법으로 북한으로의 모든 정보 유입을 범죄화했다"며 "나는 이 법을 성경 금지법, BTS 금지법이라 부른다"고 말했다. 그는 "이 법은 한국 헌법이 명시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위반"이라며 "ICCPR 규약상 같은 회원국인 미국 정부나 의원은 이런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이 지난해 6월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는데 독재자 김정은의 동생인 김여정이 대북전단을 문제 삼자 문 대통령 소속 정당 의원들이 바로 이걸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며 "한국의 민주주의가 부식됐다"고 문재인 정부를 맹비난하기도 했다.

이 위원회의 공동의장인 제임스 맥거번 민주당 하원의원은 접경 지역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를 언급하기도 했지만 대북전단법에 대해 "한국 의회는 국제적 가이드라인에 맞게 이 법안을 수정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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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호 전 주러시아 대사 ⓒ프레시안(전홍기혜)

전수미 "다수 탈북자들이 대북전단에 비판적...미국이 다양한 탈북자들과 소통 희망"

여기에 남북 대치 중인 한반도 상황, 대북전단 자체의 정치적 성격, 접경 지역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북전단금지법을 찬성하는 이들의 근거였다.

제시카 리 퀸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대북전단 억제는 최소 1972년 이후, 진보 정권만이 아니라 보수 정권도 추진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리 연구원은 특히 북한 이슈는 남한 내에서 굉장히 정치화되어 있는 측면도 있다면서 "미국의 관여는 한반도 평화라는 관심과 직결시켜야 하지 불필요하게 정치화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리 연구원은 또 일부 증인들이 문재인 정부에서 정치적 비판 등을 포함한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한국에서 정부 비판은 자유롭다.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반 대중들도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나 정부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자유롭게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수미 변호사(화해평화연대 이사장)는 자신도 한때 활동하면서 국내 접경지역에서 대북전단을 날리기도 했지만 실제 탈북자들은 대북전단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전 변호사는 특히 대다수의 대북전단이 구체적인 근거 없이 김정은 정권을 맹목적으로 비판하는 자극적인 내용이라며 실제 전단지를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무자비한 독재정권의 최후"라는 빨간 글씨 아래 김정은 위원장의 사진이 있고 그 다음에 2011년 시민군에 의해 체포돼 사살된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의 사진이 배치되는 등 일방적인 비난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자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가족이 북한에 남아 있는 탈북자들은 오히려 대북전단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라고 전 변호사는 주장했다. 전 변호사는 미국 의회 내 대북전단에 대한 높은 수준의 비판적 여론은 일부 탈북자들(국민의 힘 지성호 의원 등 보수 성향의 탈북자들)의 주장에 편향된 측면이 있다면서 미국이 다양한 탈북자 집단과 소통하는데 열려있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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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미 변호사 ⓒ프레시안(전홍기혜)

"미국도 지난 4년간 난민에게 피난처 제공 실패했는데..."

한편, 일부 증인들이 문재인 정부 들어 남한이 탈북자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는데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하자 이인호 교수는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이에 대해 맥거번 의원은 "미국도 지난 4년간 난민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는데 실패해왔다. 나는 그동안 국경 지역에 여러 차례 가보았고 정말 많은 난민들이 국경을 넘으려다 죽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런 문제를 말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일방적인 여론몰이에 대해 제동을 걸기도 했다.

이날 청문회를 개최한 랜토스 인권위원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었던 톰 랜토스 전 의원의 뜻을 잇고자 만든 의회 내 기구다.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이 공동 위원장을 맡고 있는 초당적 기구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권위를 인정받지만 법이나 결의안을 자체 처리할 권한이 있는 상임위는 아니다. 따라서 이날 청문회는 일종의 공청회라고 보면 된다. 청문회가 열린 이날 김일성 북한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이라는 점에서 의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전홍기혜 특파원(onscar@pressian.com)]
Posted by Sejin at April 1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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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의식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 놓아버림

Posted by Sejin at April 1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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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성(佛性) 목종스님 법문 불성(佛性)이란? 깨달음의 본성 즉, 중생들이 부처가 될 수 있는 근본성품


활발발[17]_불성(佛性)
*목종스님 법문
*불성(佛性)이란? 깨달음의 본성 즉, 중생들이 부처가 될 수 있는 근본성품
Posted by Sejin at April 1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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