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 이남곡 인터뷰 4 20251206
공자의 한글자 비법. 자기를 살리는 방법, 타인을 살리는 방법 #이남곡 #공자 #논어를 연찬하다
조현TV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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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증자는 공자의 어떤 개 정신적인 아주
개승자죠. 증자는 공자의 돈은 충과
서일 뿐이라고 했고
공자는 평생 실천할 만한 것을 하나만
든다면 그것은 서라고 했는데서 용서할
때 서
왜 그랬을까요?어서
[웃음]
서라고 하는 거는 사실은 이제
한문으로 용서할 서자인데
용서하고는 다르죠. 그 용서는 뭔가
아 상대가 잘못이 있지만 내가 그걸
좀 용서한다 하는 느낌인데 선은
그렇죠.
어 그런 거 아니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받아들인 상태가 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사실은
아 아집에서 자유로울 때 가능하죠.
그렇죠. 내가 틀림 없다든지 하고
또는 내 중심으로 생각하면
상대를 받아들이기가 어렵죠.
그 서가 돼야 이게 화위 부동이에요.
그렇죠.
화위부동이라는게 사실은 이게 사람
사이 관계에서 일종에 평화인데 이렇게
화합하는 거 평화인 상태인데
그 하나가 부동이거든요. 상대를
나에게 동화시키려고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죠. 상대를 나에게 동화시키로
한다는 건 내가 틀림 없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 방향으로 상대를
끌어뜨리려 하잖아.
그렇죠.
그러면 그건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그래서 대표적으로 이제
소위는 어 동이 불화해. 근데
어 군자는 화위 부동이에요.
예.
이게 사실은 서죠. 서. 그게 서을
아마
좌우명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을
만하다고 이제 저를 이야기하는데
충에 대해서는
선은 공자가 이야기를 해요.
네
기소 불욕 불시어의 네가 원하지 않는
바을
어 남에게도 시키지 마라 이렇게 이제
이야기를 하는데
충에 대해서는 어이 별로 말한게
없어요. 예.
뭐 공자 일반적인 그 말하는 방식인데
뭘게 자세히 설명하거나 정의하듯이
말하는게 거의 없습니다. 사람에
물어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대답하기도
하고. 근데
내가 우연히 그 어떤 걸 보다가 충에
해당하는게 뭐 보통 충하면
어 뭐 나라에 대해서 충성하는 거 뭐
이런 걸 왜냐하면 그 예전에 군주에
대한게 충이죠. 예. 어, 부모는
효고 근데
그런게 이렇게 선입관처럼 있어 가지고
현대인들이 충이란 말을 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이게 젊은 세대일수록 어 그런데
사실은 충의 개념이 그런게 아니다
하는게 내가 논을 보면서 느끼는
거예요. 뭐냐면이
천이 뭘까 하고 나도 나 내름대로
이렇게 그 하다 보니까
14세기 15세기의 그 에르트 기독교
신비주의자
거룩함에 대한 정의를 해 놓은게
있어요. 그 세 가지를 정의했더라고.
하나는
해야 할 일에 다음을 하는 거예요.
그 거룩함의 조건이
해야 할 당위에 다음을 하는 거예요.
아. 두 번째는 아 그 일에 집중하는
거지. 전념 전념하는 거고
세 번째가 아주 중요하더라고.
기쁨이요.
네.
앞에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는 의무나
뭐 이렇게 그런데 사는 거지만 해야
할 일에 다음을 하는 거는
자발성이
아하
진짜 마음에 하고 싶어서 자발 이게
자발성 전념 기쁨 에카로트는 거룩함에
대한 걸 이야기했는데 내가 쭉 그
논를 보면서 나오는 충이라고 하는
단어의 어떤 개념을 생각할 때
이게 이게 비교적 잘 들어맞는 말
같아.
예. 자발적이고 전념하는 거예.
전이라는 건 그에 몰두하는 거니까
소위 그 자기를 잃을 정도로 마
모라적인 어떤 그런 전념 상태가
충이야. 예.
근데 그것이 그다음 세 번째가 중요한
기쁨이야 돼.
요게 충이지 않을까? 그래서
적어도 이거는 충이라 하는 건 자기를
자기를 가장 잘 살리는게
충이고
네.
선은
상대
다른 사람을 살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충과 서가 어울려야 자기도 살고 다른
사람 살게 되는
가장 중요한 등목이지 않을까? 아,
그 실제로 나는 협동조합의
어떤 어 가능성이라든지 중요성 같은
거를이 좀 많이 생각했기 때문에
협동하는 사람들하고 많이 만났습니다.
그동안에 주로 만나면서
그 이제 임문 운동가로서 만났을 때
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는 춤과서가
바로 협동 운동이 성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등목으로 충과 서를
이야기해요. 그래서 아마 저는 그렇게
봅니다. 충과서를. 예. 그 예.
충과서에서
이제 충은 한자로 가운데 중에
마음심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이 제가
보기에는 이제 굉장히 중요한 거
같아. 그러니까 마음의 중심을
잡는다는게 자칫하면은
어떤 주체적인 어떤 고정관념, 자기의
주대 이런게 아니고 우리는 어떤
상처에 사로잡히거나 편견에
사로잡히거나
분노에 사로잡히거나 우울에
사로잡히거나 어떤 그런 것에 어떤
감정적인 것 하나의 편벽된 생각에
사로잡혀 가지고 완전히 거기에 푹
빠져 버리면은 마음의 중심을
잃어버리는데 어떤 사로잡히는 상태
사로잡히는게 이제 결국 그게 아집이
돼 버리는데 뭐 그게 사상이 됐든
철학이 됐든 감정이 됐든 그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는게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이
아닌가 저는 이제 그 그리고 마음의
중심을 그렇게 사로잡히면서 일단
벗어나면은 이제 서가 좀 쉽게 되는
서라는 것은 이렇게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그 말을 받아들이고 또
듣는 건데 자기가 뭔가의 편견에
사로잡 잡혀 있으면 상대방의 말이
쉽게 곡회가 되고 오해가 되고
그러는데 이렇게 자기가 어떤
사로잡히면서 벗어나면은 어가 이렇게
자기가 어떤 옳다는 것에 딱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에서
좀 벗어나 있으면은 자유로운 상태
평안한 상태가 되면은 상대방이 있는
마을을 있는 그대로 그 말을 이렇게
수용하는 입장받고 생각하는 이런 서의
자세가 좀 더 쉽게 되지 않을까 이제
이런 어 생각이 듭니다. 우리 이남욱
선생님은
그 삶에서서 늘 삶의 태도 자체가
서가 잘 되시는 분이에요.
아 그거는 잘 모르는게
이제 그렇게 하려고 부담히 노력하는
사람이죠. 예. 사람인데
그 이야기하다 보니까
예
아 사실은 공자의 제자 가운데 내
기억에 이렇게 첫도 오르는 사람이
셋이에요.
예
이제 하나가 공자가 가장
어 자기 지위로 생각했던 유일한
제자가 안회죠. 예.
그다음에
아연은 굉장히 가난한 사람이뭐 공자의
제자 가운데서
쌍벽이라고 생각하는데 자공입니다.
자공. 음. 청자나 이런 사람들은
나중에 이제 논창 과정에 뭐 이렇게
해서 그 사람들이 마이 상당히 좀
하는 거 같지만 실제 공자 시대 논을
보면은
예.
공자 시대는 자공 아 이제 안회하고
자공이 쌍벽을 잃어요. 어 자공은
부자야. 상당한 부자로서
공자 학단의 그 물질적인 그 기초
규척을 제공하는 사람인데이
사람도 대단한 사람이죠. 대단한
사람인데 어 자공이 한번 자공일
거야. 그 공장한테
그런 이야기를 해야 기소 무시어인
내가 원하지 않는 걸 다른 사람
시키지 않겠다 했더니 공자 말이
너는 아직 그럴 만한 저게 못된다라고
얘기해. 그래서 예 사실은
공공자님도 굉장히 정론 집필이 찍는
소리를 하시 그 아 그럼 아 그 저
무색깔 정도로 해 버린다고 이럴테면
뭐 저 자로가 아이 어 삼 뭐삼군을
뭐할 때는 뭐 누가고 하겠습니까 너는
아니야
그렇죠 너처럼 맨손으로 호랑이나
때려잡으려는 만용이나 부르는
인간하고는 같이 위태로 같이 하면 그
하여튼간에 그런 식인데
그 이야기들 들어서 내 이야기 하기
나도 그렇게 알고 노력할 뿐이지 그
참 쉽지 않습니다. 아 쉽지 않아요?
아니이 선생님은 잘하시고 또이
선생님도 공자님 못지 않게 찍는
말씀을 해 놓으셨더라고이 대목에서
뭐라고 하냐면 협동조합하는 사람들이
제일 협동적이지 못하고 민주화를
부르짖는 인간이 독재적인 인간이 많고
또 경천 공감 프로그램을 이렇게
한다는 인간들이 경천 공감이 안 되고
그래서 속이 엄청 찔리더라고. 저도
이제 경천을 그 강조하는 나차람
프로그램 하는데 그래서 이제 저하고
집에서 모시고 사는 분이 아니 경감
그렇게 강조하면서 경청 공감 안 되고
있잖아 지금. 저도 이제 집에서
이렇게 당하고 사는데이 책에서도
이렇게 탁 또 아픈 대목을 확세 놓고
아이 또 예리하게 내가 많이 경험을
해 봐서 알아요. 내가 경험하는게
뭐냐면
공동체 운동이나 협동 운동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보니까
그것이 좋은 거거든.
네. 그게 좋은 방향이니까 하는데
그 좋은 것이니까 하는데 그 대신에
그게 뭐라면 거기에 대한 아집이
강해집이 강하다고 하는 거는
소통이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지
않습니까? 왜냐면 자기 성경에 틀림
없거든. 실제로 협동 운동을 하건
공동체 운동을 하건 마을 운동을 하건
여기 가장 중요한 거는 소통인데
네
그러니까 그 그 좋은 가치들이
머릿속에 있는데 실제 자기
성격상으로는 아집이 강한 거예요.
근데 처음에 내가 그게 좀 꽤 아 꽤
심하다 보여튼간에 좀 어 좀 난처
거야 실제 왜냐면 많이 내가 그거 좀
봤으니까 그 많이 봤찬데 앞뒤가 다른
모습
예 근데 그거를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라고 하는 생각이 있어 왜냐하면
머릿속에서라도 아 이게 좋은거다 하는
것만 해도 사실은 좋은 거예요.
음
근데 다만 그것이 체득이 안 돼
있어. 안 있고 그걸 달성하려고
나가는 그 실천을 하는 데는 장애가
돼 버려요. 성격적으로. 그 성격이
뭐냐면 내가 생각하는게 틀림이 없이
옳다.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게
있기 때문에 사실 이게 소통의 장애가
되지. 그래서
어 나는 좀 그걸 아주 비난만한 쪽에
사고는 내가 버렸어요. 아 저렇게
생각하는 거 말도 훌륭해. 음.
아, 진짜이
선생님 말씀하시니까 그게 그 진짜
옳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저도
이제 경청 공감을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가 내전에 그런 것이 안 됐을 때
내가 옳다는 이렇게 생각 속에 빠져서
살 때에 나의 그 심리적 공함과 그
피곤함, 피폐함을 너무 절실히 깨닫기
때문에 아직도 잘 안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강조하는 거지. 네가
하지도 못한 것을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이제 비난을 물론 받을 수는
있지만은 내가 스스로 안 돼서
힘들었던 삶을 성찰한 결과 아 그게
절실하고 필요하고 조금이라도 그래도
조금 그걸 열고 보니까 더 편안해지고
그런 걸 이제 깨닫는 것이지 그걸 또
완전히 정론 직필로 또 너도 안 되는
것을 그렇게 그럴 그럴 그럴 일을
예 감사합니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