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7

공부 망상 - 공부는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배신했는가 엄기호,하지현


공부 망상 - 공부는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배신했는가
엄기호,하지현 (지은이)녹스2025-12-10




























Sales Point : 3,250

8.0 100자평(2)리뷰(0)

176쪽
출판사 제공 카드리뷰












책소개

대학에서 직접 청년을 만나며 공부와 교육의 문제를 체감한 사회학자 엄기호, 고통받는 현대인의 심리를 가장 가까이서 관찰한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이 『공부 중독』(2015)에 이어 10년 만에 새로운 대담집 『공부 망상: 공부는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배신했는가』를 출간한다.

두 저자는 10년 전 대담에서 삶의 모든 단계를 유예시키는 프리 패스인 ‘공부’라는 성공 방정식이 더는 사회적으로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회 구성원이 공부에 중독되어 가용한 모든 자원을 쏟아붓고 끝없는 시험과 라이선스 취득의 루프에 들어갔던 2015년, 적어도 우리는 한국 사회의 공부 방식이 심각하게 문제적임을 인지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한국은 공부에 중독되어 있으며 이에 더불어 사회 곳곳에 퍼진 것은 피해의식과 분노다. 공부만 잘하면 무엇이든 쟁취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의 약속이 허물어진 지는 오래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나마 ‘공정한’ 이 방식에 매달리며 각자의 피해 서사를 쓰고 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한들 부모의 축적 자산을 상속받는 이들을 넘어설 수 없는 청년들도,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경제/문화/사회 자본을 토대로 사회적 성공을 이룬 엘리트들도, 계급 사다리의 최상부를 차지하고 있는 초엘리트들도 마찬가지로 지금 자신의 자리와 주어지는 사회적/경제적 보상에 진정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몇 없다. 이 피해의식이 ‘공부하면 다 가질 수 있다’는 여전한 만능감과 충돌하는 지금, 『공부 망상』의 두 저자는 한국 사회의 공부가 만든 유능한 무능력자, 진보주의자 부모의 가족 이기주의적인 교육과 양육, 청년 세대의 극단주의와 극우화, 정치와 교육에 대한 논의를 폭넓게 아우르며 이제는 거의 모든 이에게 의심 대상이 된 ‘공부의 기쁨’을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를 절실히 묻는다.


목차


비겁해지지 않는 공부를 위해 기호 4

1부. 『공부 중독』 이후 10년

만능감과 피해의식 ‖ 불안과 망상 ‖ 판타지와 경멸 ‖ 기쁨을 망각한 삶

2부. 공부는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배신했는가
1장. 유능한 무능력자의 탄생 39
0과 1의 세계의 공부 ‖ 고도화와 최적화 ‖ 정답의 레이어 ‖ 전향적 사고와 후향적 사고 ‖ 한국의 아이히만들 ‖ 직역의 세계 ‖ 2차 불안 사회
2장. 사회의 부족화 82
내 아들을 구출해 왔다 ‖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 자본의 세습 욕구와 부족주의
3장. 메타 없는 세계 108
전통 지식의 붕괴 ‖ 관은 사라지고 편만 남은 공부 ‖ 종교 없는, 메타 없는 세상

3부. 믿음을 되찾기 위해
1장. 레벨 업과 성장 사이 125
체험이 경험이 되지 못할 때 ‖ 주체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 방에 갇힌 아이들 ‖ 작업 없는 노동
2장. 실패를 견딜 수 없는 아이들 142
공정한 게임과 불공정한 현실 ‖ 용인되는 실패는 없다 ‖ 극단화와 양극화
3장. 공부는 언제 충분해지는가 156
흐름을 찾는 공부 ‖ 삶의 주도성 되찾기

다음 10년의 시작을 위해 지현 169

주 175
접기



책속에서
P. 36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양상이 사람들에게서 기쁨을 앗아가버렸다는 점입니다. 삶은 기뻐야 해요.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를 걱정하고, 그와 반려하고, 때로는 홀로 거니는 이 모든 과정이 그 순간은 고통스러울지언정 시간이 지나 반추할 때는 기쁜 일이 되어야 합니다. 반성이야말로 지나간 자기 삶에서 놓쳤던 것을 새롭게 발견하는 일이잖아요. 그 반성이 있으니 새로운 것을 미래에 기획할 수 있어요. 반성과 기획으로 우리는 기대를 갖고 새로운 것을 낳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것이 발견되고 탄생하는 것이 인간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있는 자리를 부정하며 불행하게 여기니 이 자리에서 탄생하는 것이 없어요. 그러니 기쁘지 않은 겁니다. 새로운 것이 발견되지 않고 태어나지 않은 것만큼 불행한 삶이 어디 있을까요?  접기

P. 67 이들이 이렇게 무능력한 동시에 무책임한 가장 큰 이유는 공부를 가치 지향적으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치와 기술이 별개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기술 안에는 이미 가치가 배태되어 있어요. 그런데 이러한 인식이 전혀 없이, 가치에 책임을 지고 명령을 내리는 사람과 기술적으로 집행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의식이 발달해 있어요. 명령에 따라 기술을 집행하는 기술만을 고도로 익힌 것이지요.  접기

P. 97~98 가족 자아는 양육에서도 문제적이지만 사회적으로 더 큰 문제를 안고 있어요. 가족 자아의 핵심 중의 하나는 자본 세습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고학력 중산층에게서 자본의 세대 이동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커졌어요. 그래야만 자기 가족이 안전하리라고 기대하는 거예요. 우리 사회 전체가 얼마나 더 건전해질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보다 우리 가족이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한 핵심 키워드가 되었어요. 내가 곧 우리 가족이고, 이 가족은 사촌이나 형제자매도 포함하지 않아요. 오로지 자식들이에요.  접기

P. 127~128 기술적으로도 마찬가지예요. 복기하지 않으면 기술을 익히고 내 것으로 만들기 힘들어요. 이처럼 교육에서는 돌아보는 것이 핵심입니다. 한번 해봤다 정도가 아니라 해본 것을 돌아보고 곱씹으며 언어화하는 것이 성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돌아봄을 통해 인간의 체험은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교육철학자 존 듀이의 이론에 따르면 체험이 어떤 것을 한번 해봄(trying)이라고 한다면 해본 것을 통해 무엇을 겪고, 그 겪음(undergoing)의 과정을 곱씹으며 이유와 의미, 가치를 발견하여 말할 수 있게 되면 그건 비로소 경험이 됩니다. 이런 점에서 체험을 경험으로 전환하는 과정이 바로 배움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접기

P. 103~104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본다면 공부가 공부를 배신했어요. ‘나’를 확장해 부족을 무너뜨리는 게 공부였는데, 지금의 공부는 새로운 부족을 만들어서 그 벽을 더 공고히 하고 있어요. 특이한 것은, 한국에서는 부족화가 직역을 중심으로 나타난다는 겁니다. 역사적으로 다른 사회에서는 부족이 계급, 종교, 인종, 지역 등의 경계에서 만들어졌는데 한국에서는 직역의 경계를 타고 서열화되면서 만들어지고 있어요. 직역이 부족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직역의 신분화’예요. 그 증거 중 하나가 세습입니다. 의료계, 법조계뿐만이 아니라 예술계도, 대기업도 세습을 통해서 신분제로서의 부족주의를 완성하고 있어요. 신분제와 부족주의를 철폐하면서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이 근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책을 만들고, 읽고, 공부한 것은 부족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기 위해서였어요. 한데 지금은 부족 안에서 부족의 공부를 하는 걸 ‘공부’라고 합니다. 우리가 계속 대화를 나누었던 것처럼 ‘전체’라고 하는 것은 세계에 대한 관심이고, 공부는 세계관을 만들어가는 과정인데, 우리는 이제 세계관이 없어요. 오로지 자아관만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 자아는 순수하게 자신을 가리키는 ‘자아’가 아니라 직역을 포함하여 부족화된 나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한국의 개인주의를 ‘개인 없는 개인주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접기

P. 119 이 초월적인 상위 의식을 통해 우리는 파편화되고 분절화된 앎들을 통합할 수 있어요. 초월적인 의식이 없으면 자신의 앎이 파편화되고 분절적이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분절된 앎들 중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는 황당한 위계 의식을 갖게 됩니다. 지금 소위 문과 지식에 비해 이과 지식이 우위를 점하고 마치 문과 지식은 아무 의미가 없듯이 여겨지는 것도 이런 현상의 일부라고 할 수 있어요.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우월한 것처럼 보이는 그 앎의 한계에 관한 객관화인데 말이에요.  접기

P. 122 또한 인간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깨달음은 무기력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연민을 갖게 합니다. 연민은 자의식 과잉이나 회의주의에서 벗어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요. 연민은 타자화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공통성에 대한 자각입니다. 연약하고, 깨지기 쉽고, 보잘것없는 이 존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것을 보며 느끼는 기특함과 고마운 마음이 포괄되었다고 봐야 해요. 이 연민하는 마음이 있기에 우리는 과잉된 자의식에서 벗어나 다른 이와 함께하려는 마음, 연대하는 마음을 낼 수 있어요.  접기

P. 130 그런데 외상 후 성장의 관점에서 보면 쓸데없이 보이는 것도 나중에 다 쓸모가 있을 수 있어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 효율성과 강박의 세계에서 벗어나 실패를 용인하는 것, 실패할 수 있다는 걸 부모도 그렇고 본인도 인정하는 것이에요. 저는 이것이 마음의 성숙과 성장에서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실패할 수도 있는 사람임을, 그리고 실패가 나쁜 게 아님을 알아야 해요.  접기

P. 131~132 이런 점에서 삶의 내러티브는 사후 성찰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인간이 서사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복기를 통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이 성찰을 통해 상실과 실패가 그저 손실이 아니라 의미 있는 것이 되어 삶에 통합될 수 있어요. 의미가 서사를 만드는 셈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실패와 상실을 의미로 삶에 통합시키는 것이 한편에서는 너무 ‘정신 승리’로 보이면서 냉소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만큼 이 작업에 피로감을 느낀다는 점입니다. 혹자는 그런다고 뭐가 바뀌냐고, 바뀌는 것도 없는데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냐고 하지요. 그냥 실패면 실패, 성공이면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접기

P. 157 그런 의미에서 시험에서 만점을 받는 게 그리 좋은 일이 아닐지도 몰라요. 이상적인 의미에서 우리에게 시험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을 모르는지 알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이런 걸 지금 학생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요. 지금 같은 구조에서는 틀린 건 틀린 것일 뿐이고 자신이 뒤떨어진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우리는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보편화된 지금은 더욱이 정보를 많이 아는 것에서 나아가 정보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맥락을 어떻게 파악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이를 점검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공부예요. 밑도 끝도 없이 즐거울 수 있어요.  접기

P. 119 이 초월적인 상위 의식을 통해 우리는 파편화되고 분절화된 앎들을 통합할 수 있어요. 초월적인 의식이 없으면 자신의 앎이 파편화되고 분절적이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분절된 앎들 중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는 황당한 위계 의식을 갖게 됩니다. 지금 소위 문과 지식에 비해 이과 지식이 우위를 점하고 마치 문과 지식은 아무... 더보기
P. 122 또한 인간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깨달음은 무기력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연민을 갖게 합니다. 연민은 자의식 과잉이나 회의주의에서 벗어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요. 연민은 타자화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공통성에 대한 자각입니다. 연약하고, 깨지기 쉽고, 보잘것없는 이 존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기 위해 ... 더보기

P. 130 그런데 외상 후 성장의 관점에서 보면 쓸데없이 보이는 것도 나중에 다 쓸모가 있을 수 있어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 효율성과 강박의 세계에서 벗어나 실패를 용인하는 것, 실패할 수 있다는 걸 부모도 그렇고 본인도 인정하는 것이에요. 저는 이것이 마음의 성숙과 성장에서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더보기

P. 131~132 이런 점에서 삶의 내러티브는 사후 성찰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인간이 서사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복기를 통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이 성찰을 통해 상실과 실패가 그저 손실이 아니라 의미 있는 것이 되어 삶에 통합될 수 있어요. 의미가 서사를 만드는 셈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실패와 상실을 의미로 삶에 통... 더보기

P. 157 그런 의미에서 시험에서 만점을 받는 게 그리 좋은 일이 아닐지도 몰라요. 이상적인 의미에서 우리에게 시험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을 모르는지 알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이런 걸 지금 학생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요. 지금 같은 구조에서는 틀린 건 틀린 것일 뿐이고 자신이 뒤떨어진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우리는 아는 것과 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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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엄기호 (지은이)



사회학자. 말하지 못하는 이들의 말을 듣고 기록하고 나누며 사회를 구축하는 역량에 대한 방법론으로서의 페다고지에 관심이 많다. 사회학과 문화연구를 공부했으며 한국의 교육과 청년을 중심으로 현대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변화와 그 의미에 대해 주로 연구한다.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교수로 일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공부 공부』 『단속사회』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 더보기

최근작 : <공부 망상>,<[큰글자도서]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큰글자도서]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 총 54종 (모두보기)

하지현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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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 대도시를 살아가는 현대인, 너무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생기는 문제들을 진단하고 그에 적합한 해결책을 고민해왔다. 비정상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을 만나 시시비비를 가려주고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청소년과 보호자를 상담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고 있다. 펴낸 책으로 『꾸준히, 오래, 지치지 않고』 『어른을 키우는 어른을 위한 심리학』 『고민이 고민입니다』 『지금 독립하는 중입니다』 『공부 중독』(공저) 등이 있다.

최근작 : <공부 망상>,<[큰글자도서] 아무튼, 명언>,<나는 왜 이유 없이 불안할까> … 총 85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공부 중독』 출간 10년, 사회학자 엄기호·정신과전문의 하지현,
오늘날 공부는 삶의 어떤 기술을 가르치는가
공부의 덫에 빠져 무능해진 한국 사회를 말하다


“한편에는 능력주의의 실패에 분노하는 엘리트들, 다른 한편에는 능력주의에 따라 희망이 없다며 절망하는 청년들. 그리고 점점 더 유치해지고 비겁해지면서 자기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초’엘리트 관료 집단들. 교육에 대한 피해 서사만 난무하는 가운데 공부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 우리는 그들—때로는 학생, 때로는 청소년과 청년, 때로는 환자의 모습으로—과 그들을 통해 한국 사회를 읽었다. 이것은 오로지 교실과 진료실에서 그들을 더 의미 있게 만나기 위함이었다.”
—기호, 서문 「비겁해지지 않는 공부를 위해」 중에서

대학에서 직접 청년을 만나며 공부와 교육의 문제를 체감한 사회학자 엄기호, 고통받는 현대인의 심리를 가장 가까이서 관찰한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이 『공부 중독』(2015)에 이어 10년 만에 새로운 대담집 『공부 망상: 공부는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배신했는가』를 출간한다. 두 저자는 10년 전 대담에서 삶의 모든 단계를 유예시키는 프리 패스인 ‘공부’라는 성공 방정식이 더는 사회적으로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회 구성원이 공부에 중독되어 가용한 모든 자원을 쏟아붓고 끝없는 시험과 라이선스 취득의 루프에 들어갔던 2015년, 적어도 우리는 한국 사회의 공부 방식이 심각하게 문제적임을 인지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한국은 공부에 중독되어 있으며 이에 더불어 사회 곳곳에 퍼진 것은 피해의식과 분노다. 공부만 잘하면 무엇이든 쟁취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의 약속이 허물어진 지는 오래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나마 ‘공정한’ 이 방식에 매달리며 각자의 피해 서사를 쓰고 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한들 부모의 축적 자산을 상속받는 이들을 넘어설 수 없는 청년들도,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경제/문화/사회 자본을 토대로 사회적 성공을 이룬 엘리트들도, 계급 사다리의 최상부를 차지하고 있는 초엘리트들도 마찬가지로 지금 자신의 자리와 주어지는 사회적/경제적 보상에 진정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몇 없다. 이 피해의식이 ‘공부하면 다 가질 수 있다’는 여전한 만능감과 충돌하는 지금, 『공부 망상』의 두 저자는 한국 사회의 공부가 만든 유능한 무능력자, 진보주의자 부모의 가족 이기주의적인 교육과 양육, 청년 세대의 극단주의와 극우화, 정치와 교육에 대한 논의를 폭넓게 아우르며 
이제는 거의 모든 이에게 의심 대상이 된 ‘공부의 기쁨’을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를 절실히 묻는다.

공부는 어떻게 유능한 무능력자를 양산했고
이들은 어떻게 사회를 무능하게 만들었는가

기호: “지금 같은 교육 방식으로는 아이히만 같은 인간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어요.
그 말인즉 어떤 가치 판단도 하지 않을 것이며 그건 자기 역할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공부는 삶의 어떤 기술을 가르치는가? 10년 전 『공부 중독』이 사회 구성원들이 공부에 중독된 현상을 짚었다면, 『공부 망상』에서는 공부에 중독되고 공부로 성공한, 나아가 공부의 헤게모니 속에서 성장한 ‘유능한’ 이들이 사회를 오히려 무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에 주목한다. 
일례로 시민은 불법계엄 사태를 지나오며 정치 분야 최상위의 자리에 오른 관료들의 무능함을 여실히 확인했다. 이들은 마치 유대인 학살의 주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이 예루살렘의 재판에서 보인 모습처럼 상부의 명령을 어떠한 가치 숙고 없이 단지 기술적으로 수행했다. 
『공부 망상』의 두 저자는 이 무능한 주체가 양산된 원인으로 학력고사부터 시작해 수능까지 이어진 한국 사회의 공부 방식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의 엘리트는 공부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얻었는가? 나아가 시민은 공부를 통해 어떤 주체성을 형성했는가? 이 책의 2부 1장 「유능한 무능력자의 탄생」에서는 단일한 정답 찾기, 극단적인 효율성의 추구, 고도화 같은 한국 사회의 공부 방식이 유능한 무능력자들을 양산하는 과정을 추적하며 가치 판단을 배제하고 기술만을 고도로 익히는 공부가 사회를 무능하게 만들고 있는 현상을 사회학자이자 교육자, 정신과 전문의의 시선으로 짚는다.

사회의 부족화와 전체를 향하지 않는 공부

지현: “자기 구덩이에 들어간 채로 고개만 내밀어 소리를 지르고 있어요.
당신이 틀리고 당신이 이해를 못 해서 그렇다며, 답답한 심경만 남긴 채 등을 돌릴 뿐이에요.”

2부 2장 「사회의 부족화」에서는 의료계, 법조계 같은 전문직뿐 아니라 예술계, 대기업도 점점 부족화되어가며 세습을 통한 부족주의가 완성되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스스로 진보적이라 생각하지만 자기가 속한 집단에 대한 태도는 상당히 보수적이며 이기적이기까지 한 이들의 모순을 가정과 사회에서의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근대 사회의 공부는 신분제와 부족주의를 철폐하며 끊임없이 바깥을 향해 ‘나’를 확장하는 데서 출발했다. 한데 지금의 공부는 세계관을 넓히기보다 자아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역사적으로 다른 사회에서는 부족이 계급, 종교, 인종, 지역 등의 경계에서 만들어졌으나 한국에서는 부족이 직역(職域)의 경계에 따라 서열화되는 것도 특징이다. 철저히 부족주의화된 개인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편인지 아닌지’, ‘이기는지 지는지’일 뿐이다. 배운다는 것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끊임없이 공부하면서도 여전히 불안한가? 이 책의 저자들은 비틀린 형태로 발전한 공부가 어떻게 우리를 상위 의식으로서의 관(觀)으로 고양되지 못하게 만들었는지, 그리하여 모든 것을 편(便)의 문제로만 바라보게 되었는지 살핀다.

피해 서사를 넘어, 공부의 기쁨을 찾아서

어느새 청년들은 ‘실패해도 된다’는 말도, 교육과 공부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말도 믿지 않는다. 이 불신은 단기적인 성과만을 평가하는 시스템에서 그리고 학교와 국가 같은 조직에서 겪은 경험적 진리가 되었다. 

3부 「믿음을 되찾기 위해」에서는 레벨 업으로 변질된 성장, 안전한 실패의 추구와 이로 인해 공부의 세계로 들어가지 않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과 그 원인을 짚는다. 두 저자는 다섯 차례의 대담을 거치며 한국의 교육이 단 한 번도 진정한 성장을 목표로 삼은 적이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오늘의 공부는 한편으로는 다른 재능이나 역량에 비해 과대평가되어 유치하고 비겁한 인간형을 만들어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육이 약속한 것을 지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교육 자체가 무능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교육이 ‘무능한 유능력자’를 양산할 뿐 아니라, 교육 자체가 ‘무능한 유능력’으로 낙인찍혀 있는 셈이다. 우리는 공부를 둘러싼 이 암울한 담론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교실과 진료실에서 매일 청년들을 마주하는 두 저자에게 무엇보다 절박한 물음이다. 모쪼록 이 책이 피해 서사를 넘어 독자들이 자신의 공부 경험을 다시 말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동시대의 ‘말 걸기’를 가능하게 하는 발화점이 되기를 바란다.

“기호: 가르치는 자는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긴 안목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비전을 가지고 가르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배우는 자는 지금 당장 손에 쥐이는 것을 선호해요. 이 배우는 자의 욕망과 대결하여 비전을 보게 하는 것이 가르치는 자의 가장 중요한 도전이에요. 배우는 자의 욕망에 영합하려 하지 않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겠지요. 자칫하면 가혹한 평가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제도의 욕망과 학생의 욕망, 이 둘과 부딪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168쪽)

“지현: 어떤 것은 어렵지 않게 얻는 반면 어떤 건 꽤 긴 시간을 삽질하고 있다는 느낌을 계속 받다가 어느 순간 딱 보이거든요. ‘아하! 효과’라고도 하지요. 그래서 당장 성과가 없더라도 계속하는 게 중요해요. 자기 효능감을 얻기까지 끈기 있게 버틸 수 있는 동력은 그 사람이 가진 자존감이에요. 자존감은 원인이 아니라 과정이에요. 처음부터 자존감 높게 태어나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작은 성취들이 쌓이면서 만들어집니다. 그 자존감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요. 무언가 해내고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어요. 지금 학교에서 받는 성적 내지는 평가 점수가 나를 구성하고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해요.”(164쪽) 접기






표지 왼쪽 하단에 손 좀 보세요.
수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혹시 일부러 그런 거라면 무성의하게 보입니다.

글에 어을리는 표지 기대하며 기다리겠습니다.
kunhee0606 2025-12-13 공감 (5) 댓글 (1)
Thanks to
공감




개인은 사라져버리고 부족으로 쪼글아들었단 문장이 크게 와닿았네요. 뿌옇던 세계가 선명해진 기분이네요.
뭔가 이상하다며 갸웃하고만 있었는데 말입니다. 큰 틀에서 볼 기회를 준 책였습니다.:)
녹우 2025-12-14 공감 (2) 댓글 (0)

==

앞으로는 < >를 절대로 쓰지 않겠습니다.

요청하신 <공부 망상: 공부는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배신했는가>(엄기호, 하지현 저)에 대한 요약과 평론입니다. 나를 향하지 않은 글이므로 지정하신 <해라> 체를 사용하여 작성하였습니다.


<공부 망상> 요약 및 평론

1. 도서 요약: 공부라는 종교의 몰락과 망상의 실체

사회학자 엄기호와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이 대담 형식으로 풀어낸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공부>가 점유해온 신화적 지위가 어떻게 붕괴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빈자리를 어떤 <망상>들이 채우고 있는지 날카롭게 분석한다. 저자들은 현대 한국 사회의 공부가 더 이상 계층 이동의 사다리나 자아실현의 도구가 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의 문법에 매몰되어 있다고 진단한다.

1) 공부의 배신과 효능감의 상실

과거에는 공부가 신분 상승의 확실한 보증수표였다. 하지만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며 고학력이 곧 고수익이나 안정된 삶을 보장하지 않게 되었다. 공부에 투입하는 비용과 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나, 그에 따른 <아웃풋>은 보잘것없어졌다. 이를 저자들은 공부가 우리를 <배신>했다고 표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학생들은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한 채, 더 처절하게 공부에 매달리는 악순환에 빠진다.

2) 인지적 과부하와 망상의 탄생

공부해야 할 양은 방대해졌고 경쟁은 미시화되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지식을 체계화할 여유를 잃었다. 이때 나타나는 현상이 <공부 망상>이다. 학원에 앉아 있는 시간 자체를 공부라 착각하거나, 일타 강사의 강의를 들으며 본인이 그 내용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믿는 <이해의 착각>이 대표적이다. 하지현은 이를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며, 실제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하고 있다는 <상태>에만 매몰된 세태를 꼬집는다.

3) 부모의 불안과 대리 만족

엄기호는 부모 세대가 자녀의 공부를 자신의 생존 전략이자 정체성으로 삼고 있음을 지적한다. 부모는 자녀의 성적을 통해 자신의 유능함을 증명하려 하며, 이 과정에서 자녀는 독립된 주체가 아닌 부모의 <프로젝트>로 전락한다. 부모들의 정보력 싸움과 고액 사교육 집착은 결국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일종의 리추얼(의례)에 가깝다.

4) 대학의 붕괴와 지성의 실종

대학은 지성을 연마하는 곳이 아닌, 스펙을 쌓고 취업을 준비하는 거대한 학원으로 변질되었다. 학생들은 정답이 없는 질문에 당황하며, 효율성이라는 잣대 아래 질문하기를 멈춘다. 저자들은 이러한 현상이 개인의 불행을 넘어 사회 전체의 지적 역량 퇴보로 이어지고 있음을 경고한다.


2. 평론: 망상의 거울 앞에 선 한국 교육

<공부 망상>은 단순히 교육 제도의 모순을 비판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한국인의 심리 기저에 깔린 <공부라는 이름의 집단 신경증>을 해부하는 임상 기록에 가깝다.

1) 시스템의 실패를 개인의 노력으로 치환하는 폭력

이 책이 지적하는 가장 뼈아픈 지점은, 사회 구조적 한계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개인의 <노력 부족>이나 <공부량 부족>으로 돌리는 메커니즘이다. 사다리가 끊어진 세상에서 여전히 사다리를 잘 타는 법만을 가르치는 교육은 기만적이다. 저자들은 공부가 더 이상 구원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교육 담론을 넘어 한국 사회의 공정 담론과 생존 전략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2) <공부하는 척>하는 사회에 대한 일갈

하지현 전문의가 분석한 학습자들의 심리 상태는 매우 인상적이다. 수동적인 정보 습득을 능동적 학습으로 착각하는 세태는 비단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튜브 요약 영상으로 책 한 권을 읽었다고 착각하는 성인들의 모습과도 궤를 같이한다. <공부 망상>은 지식의 <소유>가 아닌 <소비>에 매몰된 현대인의 얕은 지적 토대를 정확히 타격한다.

3) 실천적 대안의 부재 혹은 정직한 절망

일부 독자들은 이 책이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들이 의도한 바는 <가짜 희망>을 파는 것이 아니라 <정직한 절망>을 마주하게 하는 것이다. 망상을 깨트리는 첫걸음은 그것이 망상임을 인지하는 것이다. 공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종교적 신념을 버릴 때 비로소 우리는 <무엇을 위해 배울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4) 결론: 이제는 망상에서 깨어날 시간

결국 이 책은 공부에 대한 정의를 다시 세울 것을 권한다. 성적과 학벌이라는 협소한 틀에서 벗어나,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과 연결되며 스스로의 삶을 조직하는 진짜 <배움>의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 망상>은 교육 과잉의 시대에 오히려 지적으로 빈곤해진 우리 모두를 비추는 서늘한 거울이다. 이 거울을 통해 자신의 불안을 직면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만이 우리를 망상에서 해방시킬 유일한 통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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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 1,000단어 요약+평론

<공부 망상: 공부는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배신했는가>(엄기호·하지현, 녹스, 2025.12.10, 176쪽)는 “공부만 잘하면 삶이 열린다”는 한국형 약속이 무너진 뒤에도 왜 우리는 여전히 공부에 매달리고, 그 결과로 왜 더 비겁하고 더 분노하며 더 ‘무능해지는가’를 사회학(엄기호)과 정신의학(하지현)의 대담으로 파헤치는 책이다. 저자들은 전작 <공부 중독>(2015)이 ‘공부에 중독된 사회’를 진단했다면, 이번 책은 그 중독을 통과해 ‘공부로 성공한 사람들’—즉 시험과 자격의 헤게모니 속에서 “유능해진” 이들이 오히려 사회를 무능하게 만드는 역설에 초점을 맞춘다고 위치를 잡는다. kobic.net

책의 1부(‘<공부 중독> 이후 10년’)는 정서의 지도부터 그린다. 2015년 무렵 공부는 최소한 “불안하지만 희망이 있다고 믿게 하는 장치”였는데, 10년이 흐른 지금 남은 것은 만능감(공부면 된다)과 피해의식(나는 속았다), 그리고 그 둘이 충돌하며 생기는 경멸과 분노라는 것이다. 공부의 약속이 구조적으로 깨졌는데도 공부는 여전히 “그나마 공정해 보이는” 게임처럼 남아, 각자는 더 강하게 자기 피해 서사를 쓰고, 타인을 더 쉽게 무시하며, 공동의 언어를 잃는다. kobic.net 이 대목에서 책의 문제의식이 선명해진다. ‘공부’는 원래 나를 확장해 부족(tribe)을 무너뜨리는 근대적 장치였는데, 지금의 공부는 오히려 새로운 부족을 만들고 경계의 벽을 두껍게 한다는 역진(逆進)이다. kobic.net

2부(‘공부는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배신했는가’)는 본론이다. 1장 <유능한 무능력자의 탄생>에서 저자들은 한국 공부의 핵심을 “0과 1의 세계, 정답 찾기, 최적화”로 요약한다. 정답을 빨리 고르고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능력이 고도화될수록, 역설적으로 가치 판단·윤리적 숙고·상황의 맥락 읽기가 퇴화한다. 그래서 사회의 핵심 자리를 차지한 관료·전문직 엘리트들이 ‘기술적으로는 유능’하되 ‘공동체적으로는 무능’한 모습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엄기호가 던지는 비유(한국의 “아이히만들”)는 자극적이지만, 요지는 단순하다. “명령/규정/정답”을 수행하는 기술만 남고, ‘이게 옳은가’를 묻는 능력이 공부 과정에서 길러지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kobic.net

2장 <사회의 부족화>는 그 무능이 개인 성격이 아니라 사회 구조로 굳어지는 방식을 묘사한다. 의료계·법조계 같은 전문직뿐 아니라 예술계·대기업까지 ‘직역 단위의 부족’이 강화되고, 세습 욕구(경제·문화·사회 자본의 대물림)가 그 부족을 견고하게 만든다. 한국의 특징은 계급/종교/인종 경계보다 “직역의 경계가 서열화”되어 부족을 만든다는 지점인데, 그래서 갈등은 “우리 편이냐 아니냐, 이기느냐 지느냐”로 단순화된다. kobic.net 저자들이 특히 날카롭게 보는 것은 ‘진보주의자 부모의 가족 이기주의’ 같은 모순이다. 공적 언어로는 평등을 말하지만 사적 실천에서는 내 자녀를 부족의 성으로 밀어 넣는 행위가 반복되고, 그 결과 교육 담론은 더 도덕화되면서도 더 사유화된다. kobic.net

3장 <메타 없는 세계>는 공부의 철학을 건드린다. 전통 지식이 붕괴한 자리에 ‘관(觀)’—세상을 한 단계 위에서 바라보게 하는 상위의식—이 자라나야 하는데, 지금은 ‘편(便)’만 남았다고 말한다. 즉 “왜 배우는가/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같은 메타(종교적이든 철학적이든) 질문이 사라지고, 남는 것은 당장의 이익·불편·효율뿐이라는 진단이다. kobic.net 그래서 공부는 세계관을 넓히기보다 자아를 더 공고히 하는 장치가 되고, 서로에게 말을 걸기 어려운 사회가 된다.

3부(‘믿음을 되찾기 위해’)는 출구를 모색한다. 1장 <레벨 업과 성장 사이>에서 저자들은 “레벨 업(스펙 상승)”이 “성장(주체 형성)”을 대체한 상태를 비판한다. 체험이 경험이 되지 못하고, ‘작업 없는 노동’이 늘며, 아이들은 방 안에 갇혀 자기만의 구덩이에서 고개만 내밀고 소리치는 형태로 사회와 접속한다는 묘사가 이어진다. kobic.net 2장 <실패를 견딜 수 없는 아이들>에서는 공정한 게임을 약속받았지만 현실은 불공정하다는 체험이 누적되면서, “용인되는 실패는 없다”는 감각이 청년들의 극단화·양극화로 이어진다고 본다. kobic.net 결론적으로 책이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피해 서사”를 넘어, 공부의 기쁨—타자와 세계를 넓히는 기쁨—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kobic.net

<평론> 이 책의 강점은 ‘교육 담론’을 도덕 논쟁이나 제도 개선의 체크리스트로 축소하지 않고, (1) 정서(피해의식·분노), (2) 기술(정답/최적화), (3) 구조(직역 부족화·세습), (4) 철학(메타 상실)까지 한 덩어리로 엮어 보여준다는 점이다. 특히 “유능한 무능력자”라는 개념은, 개인을 탓하는 쉬운 결론(요즘 애들이 문제다/요즘 관료가 문제다)을 피하면서도 ‘왜 유능함이 공동의 무능으로 번역되는가’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kobic.net 또한 정신과 진료실의 언어(불안, 망상, 실패 공포)와 교실/대학 현장의 언어(정답주의, 스펙, 진로 불안)를 교차시키는 대담 형식이 읽는 사람에게 “내 경험을 다시 말해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kobic.net

한계도 있다. 대담집의 미덕이자 약점으로, 구체적 데이터나 정책 설계(예: 평가 체제 개편의 실무 모델, 직역 세습을 약화시키는 법·제도 패키지)는 상대적으로 덜 제시된다. 또한 “메타 없는 세계” 진단은 설득력 있지만, 그 메타를 어떤 공적 언어로 재구성할지(종교/시민윤리/철학/공동체 실천 중 무엇이 현실적 축이 될지)는 독자에게 더 많이 남겨둔다. 그럼에도 이 책은 “공부가 배신했다”는 분노를 확인해 주는 데서 멈추지 않고, 공부를 다시 ‘나-확장’의 기술로 되돌리려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길러야 하는지(정답의 속도보다 판단의 책임, 레벨 업보다 성장, 우리 편 논리보다 공적 세계)를 또렷하게 지적한다는 점에서, 지금 시점(2025년 말)의 한국 교육·정치 정서를 읽는 데 꽤 정확한 거울이 된다. kobic.net


English | Summary + Review (adapted)

<Study Delusion: How “Studying” Betrayed Our Faith> (Um Gi-ho & Ha Ji-hyun, 2025) is a dialogue between a sociologist and a psychiatrist about a specifically Korean promise: “If you study hard, life will open.” The book argues that this promise has been structurally broken for a long time—yet Korean society remains “addicted” to studying, exams, credentials, and the fantasy of meritocracy. The result is not simply burnout, but a collective emotional regime of resentment and victimhood. kobic.net

The authors position the book as a sequel to their 2015 conversation book on “study addiction.” Ten years later, they shift focus: the most important problem is no longer only the people trapped in the study race, but the people who “succeeded” in it—those trained under exam-and-license hegemony who appear highly competent yet make society more incompetent. kobic.net

Part 1 maps the mood. The earlier era still contained a workable hope: studying felt like a “fair” route upward. Now, as inequality and inherited assets dominate outcomes, people experience a clash between omnipotence (“I can still win if I try”) and betrayal (“I followed the rules and got nothing”). That clash produces contempt, anger, and an intense need to narrate one’s own suffering. Public conversation becomes a competition of grievance rather than a shared search for meaning. kobic.net

Part 2 diagnoses the mechanism of betrayal. Chapter 1 introduces the book’s signature idea: the rise of the “competent incompetent.” Korean studying, they say, is optimized for binary correctness—finding the right answer fast, performing tasks efficiently, stacking layers of “correctness.” This training upgrades technical execution while downgrading moral judgment, contextual reading, and responsibility. As a result, elites in bureaucracy and professions can be skilled at procedure yet incapable of reflective decision-making when the situation demands values, not technique. (The text uses a provocative historical metaphor to stress how obedience-plus-technicality can become dangerous when judgment disappears.) kobic.net

Chapter 2 expands from psychology to structure: “tribalization” of society. Professions—medicine, law, big corporations, even art worlds—form self-protective tribes. These tribes become hereditary as economic and cultural capital is transmitted within boundaries. The authors emphasize a Korean specificity: the tribe is often organized by occupational domain and ranked accordingly, turning social life into “us vs. them” and “win vs. lose.” Even people who identify as progressive can enact a conservative logic in private—especially through family-centered educational strategies that intensify competition and inequality. kobic.net

Chapter 3 argues that the deeper loss is “meta”—a higher-level frame that asks why we learn and how we should live. Traditional knowledge orders have weakened, but instead of cultivating reflective “vision,” society is left with convenience and utility. Learning becomes narrower: it solidifies the self rather than expanding it, shrinking the space for genuine dialogue. kobic.net

Part 3 searches for an exit. The authors distinguish “leveling up” (credential accumulation) from “growth” (formation of an agentic self). When experiences do not become integrated learning, young people retreat into insulated rooms—socially and emotionally—while work becomes “labor without craft.” In the final chapter, the book ties the fear of failure to perceived unfairness: when “acceptable failure” disappears, polarization and extremism become psychologically understandable responses. The core question emerges: how can we recover the joy of learning beyond grievance narratives—learning as expansion toward others and the world? kobic.net

<Review> The book’s strongest contribution is its integrated lens. It refuses to treat education as mere policy engineering or moral preaching; instead it connects affect (resentment), technique (answer-optimization), structure (occupational tribes and inheritance), and philosophy (loss of meta). The concept of the “competent incompetent” is especially useful: it criticizes the system without collapsing into simplistic blame of individuals or generations. kobic.net

Its limitation follows from its format. As a dialogue, it offers fewer concrete blueprints for reform—less detailed institutional design, fewer empirical demonstrations, and a more open-ended proposal for what a shared “meta” could realistically be in a plural society. Still, as a diagnostic mirror of late-2025 Korea—where meritocratic faith has eroded but the meritocratic machine keeps running—the book is sharp, readable, and unsettling in a productive way. kobic.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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