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TV휴심정
2,139 views Dec 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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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특별한 분을 뵈러 전북 익산에 왔습니다. 저와는 수십년 인연을 맺고 있고, 제가 존경하는 이남곡 선생님을 뵈러왔습니다.
이남곡선생님이 무려 천페이지에 달하는 ‘논어를 연찬하다’는 책을 냈습니다. 한문만 하시는 분보다, 보다 폭넓은 시각, 현실적인 시각과 인문적 시각을 통섭해 낸 책이어서 저도 논어를 참 좋아하고, 많은 논어를 읽었지만, 백미로 꼽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남곡 선생님은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민주화운동을 하며 옥살이도 하시고, 1970년대엔 농촌지역에서 교사를 하며 교육실천연구회 활동도 하고, 법륜스님이 정토회 가장 초기에 설립한 불교사회연구소 소장도 지냈고, 1994년부터 8년은 경기도 화성 산안마을 야마기시실현지 공동체에서 무소유공동체 실험에 동참하시면서 2004년부터는 전북 장수에 정착해 연찬문화연구소 이사장으로서 연찬을 이끌어오고, 그 이후 익산에 머물면서 인문운동가라고 활동하고 계십니다.
2010년에 세상을 떠나신 부인 서혜란 여사님은 여성민우회 창립을 주도한 여성운동, 생협운동가였지요. 20여년전 저도 야마기시에 어린 딸을 데리로 자주 놀러가곤했는데요. 그 때 이남곡 선생님과 서혜란 여사님이 참 다정하게 반겨주셨지요.
이남곡 선생님이 17년전 논어에 대한 첫 책. 즉 이번 책의 원조격인 원고를 제가 보내서 한겨레출판사에서 ‘논어-사람을 사랑하는 기술’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었었지요.
이남곡 선생님께서 우리 시대에 남겨준 정신적 보배인 ‘논어를 연찬하다’를 가지고 연찬의 자세로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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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TV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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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2
그나욱 선생님께서 22년 동안 공자와
함께 살았다고 해도 다름이 없는데요.
공자의 사람됨을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어떻습니까?
어,
[박수]
내가 이제 아마 예술 세 살에
처음으로 논어를 보게 돼요.
왜냐하면
뭐 저 조선도 알다시피
내가 그 당시 어떤 사회 피역 운동을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면 공자에 대해서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겠느냐 하는 거는
팀자이 가지죠. 예전는 우익의 대부
아 보수 반도반도
사상적 원조 정도로 이제
보고 있었는데
그래서 내가 그 논를 볼 당시에 그
세상에 나왔던 책 중에 하나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이런 책이 나와
나올 정도에 있어요.
그렇죠. 그 100만 불 이상 판 책
논에 대한 책이 또 엄청나게 막 저
기초로 쏟아질 때었었는데
내가 논를 접하게 된 거는 당시 이제
장수로 이사를 해 가지고 저 장수에
정착을 해서
내가 정착하다 보니까 주변에 알고
지내는 사람들 뭐 이제 장석에도
있지만은 전주라든지 뭐 이렇게 좀
가까운
몬이라든지 이런 곳에 있는 사람들이
와서 자연히 이제 그 여러 가지
우리가 같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문제들을 논의하는 자리들이 마련해 말
자연스럽게 됐어요. 예. 사람들이 뭐
모이게 되는데 조금만 의견이 달라도
이게 소통이 안 되는 거야.
이해 관계까지가
다르지 않지 뭐 귀농한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 사회 운동하는 사람도 뭐
있는데 그런데도
어 생각이 다르면 이게 소통이 안
돼. 그래서 이게 사실은 하나의 그
단적인 어 그런 현상이죠. 우리 이거
지금 현재 지금이이 뭐 극단적으로
서로 이렇게 적 뭐 적대하고 증화하고
하는 이런 평가름의 이런 퇴성이
나타나고 되는 그
근데 그래서 아이 이렇게 돼서는 좀
서로 소통하기가 힘드니까
무언가 성인급의 사람을 하나 앉혀
놓고
같이 좀 이렇게 이야기 해 보면
어떨까 해서
사람들한테저 우리 한번 성인을 한번
누구 안혀 놓고 한번 이야기 해
보자. 그래서 했더니
어 성인하면 또 오른 사람들
있잖아요.서 이제 석가지 부처님
부처님
부처님을 안쳐놓더라도
또
의견이 다를 것 같아.
불교를
저거하는 사람 믿는 사람하고 또
반대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렇죠. 그렇죠.
예수님을 안쳐라도 예수님 마찬가지야.
예수님 안쳐라도 또 이게 제일 만만한
사람을 골라보자. 이건 누가 누가 막
그냥 요구를 하고 뭘 해도 예예.
별로 그 뭐 그 괜찮은 사람 딱
공자야. 그 당시에 왜냐면 공자 이미
막 비난을 많이 받고 있거든다.
그리고
어 우리나라에서도 사대 종교에서도
빠져버렸어.
유결하는 거. 그러니까이
뭐 권력이 없는 거야 이게. 예.
그래서 앉혀 놓고 해서 저도 뭐 큰
기대 안 하고 처음 보니까 사실
이렇게 보다 보는데
어느 순간이다 보니까 점점 공자의 그
진수가 이렇게 나한테 이게 뭐 내
시각이죠. 내 감각이지만 보여 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마 내가 주자 승리학에
바탕을 체계적인 학습을 했던
사람이라면 보이지 않았을게 보이는데
그 보이는게 보이게 했던 요소가 내
자신의 경험들이에요. 변역 운동에
대한 경험들 그리고 그 저 어 감옥에
서였던 성찰 그 나와서 어 이게
불교사 연구소에서 같이 탐구하던 거
그리고 하나 더 나가 가지고 실질 해
보고 싶어서 무소위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이거 했던 연찬 이런 부분들에
의해서 공자가 하는데
네
아마 그런 면이 아마 나중에 이렇게이
이런 책을로 나옵니다만은
어 그중에서도
어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내가
뭐 뭔가 어떤 걸 발견했을 때 그런
느낌이 있잖아. 아 그런 느낌이 있던
문장이 하나 있어.
그죠? 어허
그것이 전체 노는 문장 가운데 아마
다른 사람들은 별로 별로 그렇게 흘러
버리는 문장인데에
노노 자한편 이게 9편이죠. 9편
7장에 나오는 문 예
어 말은 간단합니다.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아는 것이 없다.
아하. 아 무지야 무지야.
이게 내가 이제 한 분도 별로 내가
공부해 본 사람이 없지만 내가 논어
보면서 이제 한문도 더듬더듬
문법도 이해하기도 하고 하는데
무지 야야야 야 야라고 하는 거는
상당히 강한 표현이에요.
예. 에 호라고 하는 거는 좀 강한
표현이 아니고 뭐 그거는 뭐 좀 질문
비슷하게
약한 표현인데
야하는 상당히 강한 편현이에요.
무지 무지야 이거
무지하고
그다음에 하는 말이 그런데 그런데라는
건 내가 이제 좀 고친 거고
어 누구라도 와서 물어보면는게
유비부
문어 비부라 하는 거는
별로 볼 이렇게 평범한 사람이요.
아주 저 똑똑한 사람이라든지 뛰어난
사람이 아니고 비부
누구라도 와서 비부 비부가 어떤
비부가 나한테 물어오면 유비부 문어
물어보면
그다음이 재밌어요. 요게 요게요
해석이
아마 일반적인 논의 해석하고는 많이
다를 겁니다.
공공여야란 말이 나와. 공공여야
빌공자가 두 번 공공여야
텅빈서란
말이에요. 음
텅빈돼서 해 가지고 그다음에 나오는게
내가 그 양끝을 두들겨서이
한문으로 말하면 아고기양단
음
고는 이게 두들긴다는 게
내가 그 양끝을 양단을 두들겨서
갈른이
갈인데
끝까지 끝까지 밝혀 보겠다. 끝까지
밝혀 보겠다.
이게 사실은 평 이게 보통
논어에서는이 문장 논어 자한편
9편 7장 7장에 나온이 문장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요.
그 대수럽지 않게 넘어가는 것 중에
상당한 해석이 어떻게 하는가 하면
무지를 공자는 말이지 스승 중에
스승을 알려 준 사람인데 무지야
했거든. 그니까
겸손한 표현이다.
아, 상당히 그렇게 봐요. 겸손한
표현이다. 겸손한 표현이고 그렇게
보다 보니까 내가 그 양끝을
두들겨서이 한문으로 말하면
아고기양단.
음.
고는 이게 두들긴다는 게
내가 그 양끝을 양단을 두들겨서
갈런
음.이
갈인데 끝까지 끝까지 밝혀 보겠다.
끝까지 밝혀 보겠다.
예. 이게 사실은 평 이게 보통
논어에서는이 문장 논어 자한편
아 9편 7장 7장에 나온이 문장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요.
대수럽지 않게 넘어가는 것 중에
상당한 해석이 어떻게 하는가 하면
무지를 공자는 말이지 스승 중에
스승으로 알려 준 사람인데 무지야
했거든.
겸손한 표현이다.
아 상당히 그렇게 봐요. 겸손한
표현이다. 겸손한 표현이고 그렇게
보다 보니까 무지하고 뒤에 나오는
거는 뭐냐면
간언을 아까 양쪽 끝을 두들겨서
끝까지 밝혀보겠다는 갈 갈을 갈을
어떻게 하면 끝까지 가르치겠다.
이렇게 나와.
그러니까이 이렇게 해석하는 거 자체가
얼마나 모선되는지 자체를 의식을 못
해. 앞에는 무지라고 했는데 뒤에는
가르치겠다. 왜? 공자는 스승 중의
스승인데
스승이 이렇게 무지라고 하는 건
대단히 겸한 표현이야. 아 그러니까
앞에는 무지를 그렇게 해 놓고 뒤에는
가르치겠다.
천만해. 전혀. 그이 나한테는 그게
바로 들어오는 거예요.
왜? 연차이라는 걸 경험했기 때문에.
그까
연천이라는 걸 내가 저 실제로 해
봤기 때문에
공공을 대부분 어떻게 해석하는가 하면
텅 비었다는 걸 앞에 비부를 수식하는
말로 해.
아무리 텅 빈 사람이 와서 물어봐도
이거
아무리 멍청하고 텅 빈 사람이 와서
물어봐도 나는 끝까지 양쪽을 두들겨서
끝까지 가르치겠다.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죠.이
말이 안 되는 해석을 대부분 그렇게
하고 근데 나한테는
공공이 비을 수식하는게 아니야.
음.
공자를 수식하는 말이요.
내가 텅 빈 상태에서
야방시 전차는 해 보셨잖아.
영위에 선다는 그러니까
영유에 선다 핵심적인 거예.
예. 그거를 어 그렇게 해서 그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 아닌 영의 영의
서서 제로
일체 제로 베이스에서
어
그 말은 뭐냐면 무지를 자각한
상태에서라는 말이야. 예.
그런데 그 말을 또 사람들이 이렇게
잘 해석 못 하면 그럼 내 내가 알고
있는 걸 다 버리란 말이냐? 버리면
안 돼. 버려 가지고 어떻게
파이칩니까? 버리라는게 아니고
내가 인식하고 있는 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감각일 뿐이고 나의 판단일
뿐이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틀림
없다라는 생각이 없는 거예요.
이게 영예요. 그니까 무지를 장악한
상태에서 끝까지 한번 그리고
무지야 해 버리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죠.
음
불가지론이요.
알 수 없어. 그건 나요. 불가지론
아니면 이런들 어려 저런들 어때리
회의론이 여기에 빠지잖아요. 이게
연찬 정신이거든. 치열하게 탐합니다.
어떤 바탕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이 나의 감각이고
판단일 뿐이지만 하는 자각이 있는
상태. 그러니까 내 생각이
틀림없다는게 아니지.
그런 단정이나 고정이 없는 상태에서
끝까지 한번 탐구해 보겠다. 요게
논어 9편 7장이에요.
예. 이것이 나한테 전편을 읽는
키워드가 됩니다. 그러고 보면 다른
부분들이 제대로 이해가 되기
시작해요. 네.
음. 그래서
막 이런 점이에 내가 그 논노하고
이렇게 만나서
그 후 스스로 입문동이라고 하는 거
임문동갈 자체하고서 주로 동반자가
논어했습니다. 왜?
연이 굉장히 중요한데 이걸 야마귀시
연찬을 가지고 이야기하기 힘들어
사람들한테.
이름도 잘생 한 데다가
아 그래도 연천 야마기시 연찬 덕분에
국회에서도 뭐 하면 맨날 요즘에
연한다. 연찬 말은
많이 따오긴 한데 연이 안 돼. 실제
그게 연천이 아니고 그냥 뭐 저
연천회라 말은 많이 해.
근데
어 그거를 내가이
야망의 나오면서 나오는 것도 앞으로
이야기하게 될지 모르겠지만은 지금
세상에서는 어 그런 어 방식 그런
방식은 보편증을 획득하기가
어렵더라고. 음흠. 어
그냥 뜻 맞는 사람끼리 몇 사람은
행복하게 살 나도
어 내가 그게 저 그런 면에서는 저
전혀 야마이 살면서 불편이 없었어요.
나는 왜냐면 그런데 좀
원래 좀 익숙한 사람이야. 목소리
그래서 아근데 이게 운동으로서
보편성을 획득하기 어렵다는 생각
때문에 나왔어 나왔는데
아
어
그 연찬을 이렇게 보편했으면 좋겠는데
야마이 씨가 지금 일본에서도
운동으로선 거의 끝난 상태입니다.
그 일본에서 또 여러 가지 저 뭐 안
좋은 선입관들이 많아서
그 뭐뭐라 일종에
사교 비슷하게 사교 집단 비슷하게
이렇게 보하는 견해도 있고 해서
한국은 뭐 그런 것까지는 아닙니다만은
일본이 이제 본산이니까 한국은 뭐
한국
한 곳에 있잖아요. 한 곳 뭐 어디
거기죠? 향남 바람 바람 산남마인데
어 그래서 내가 그 입문 운동을
하면서 어 야마귀시이라는 이름보다는
공자의 이름을 불려서 사실은 연차의
보편화 운동이랄할까 이게 핵심입니다.
이 핵심이고
그게 그걸 통해서만 지금의 이렇게
심리적 내전에 가까운
우선 지금 저 우리 정치 상황 퇴적인
정치 상황을 넘어설 수 있지 않겠느냐
이런 생각도 있었고
또 여러 가지 뭐 협동 운동이라든지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운동들이
있잖아요. 이런 운동들이 정말로
뿌리를 데리고 성공할 수 있으려면
그 내부의 소통문화 그리고 어떤
합의에 이르고 실천하는 그런 면에서
어 이런 연이라는게 참 중요하게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예.
공자하고 만나서 공자하고 미올
기간이었지.
네. 네
그 22년 동안 이제 공자와 함께
미를 하셨는데에
공자 이제 사람됨을 물었고 이제
그러니까 공제 핵심을 지금 그 어떻게
보면은 그 무지의 자가 무지의 자가
그러니까 야마귀시 연찬에서도
어 영위에서 모든 것을 제로에서 실제
뭔가
실제는 뭔가 그러니까 선입견을 을
가지고 그것을 합리하기 위해서 논리적
변명거리를 항상 하는게 학문이고
사람들의 논리데 그러니까 100분
토론 하면은 전혀 100분 동안
교집합이 하나도 안 생기고 서로 더
등을 돌리기만 하는데 그러니까
내가이기는게 목적이 아니고 내 논리의
병명거리 합리성을 찾는게 목적이
아니고 진짜는 뭔가
진실은 뭔가 이런 것을 그러니까
자기가 무지의 자각 편견과 고정관념을
놓지 않으면은 는 실제적 진실을
탐구할 수 없기 때문에 공자였던 이런
어 모습을 가장 높게 평가하셨고
그러니까 그 불교소도 승산 스님이
미국가 가지고 어 선불 세계 알려 때
그분은 항상 트레이드 마크가 오직
모를 뿐
오직 모를뿐 그랬는데
그런 것도 어떻게 보면 이제 그
분류가 무하고
네
그 무상이고 그러니까 무지의 자각하게
더 철저한 것이 불교하지만 한국
선불교의 모습 보면은 굉장히 그
기독교 이상으로 놀랍게 독선적인
모습이 또 강한데 그리고 예를 들면은
일본의 야마귀시도
연찬 정신이 놀라울만큼 야마귀시
미오조라는 사람이 다시 이렇게 무지의
자각을 현실에 맞게 100년 전에
퇴살려냈는데
어떻게 그렇게 연을 예리하게 이렇게
파헤치는 단체가 연찬 정신하고 또 정
반대 대로 또 가버려 가지고
어 또 그게 또 산산 조각이 많이
깨지고서 에존이라는 새로운 곳으로
이렇게 탄생하고 그러니까 그게 그렇게
이제 공자도 그렇게 위대한 무지에
자각을 했음에도 한국에 와서 성리하기
위해서 너무 또 독선적으로 변했듯이
그런 점이 어떤 참 그 삶의
아이런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
본질의 근본 바탕을 따져야지 어떤
지금의 또 야마귀시 공동체를 보고
야마귀시 미오조를 오해하면 안 되고
지금 성리학만 보고 또 공자를
오해하면 안 되고 어 또 지금의 어떤
선승들의 모습만 독선적인 모습만 보고
또 붙다야만 되고 하튼 이제 그런
점을 느끼게 입니다. 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잘못된 이유 #이남곡 #야마기시 #논어를 연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