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 1 (1부 1권) - 왕도(王道), 하늘에 이르는 길
최인호 (지은이)열림원2005-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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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304쪽
152*223mm (A5신)
426g
ISBN : 9788970634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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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 1 (1부 1권) - 왕도(王道), 하늘에 이르는 길
유림 2 (1부 2권) - 주유열국(周遊列國), 사람에 이르는 길
유림 4 (2부 1권) - 백화제방(百花齊放), 선함에 이르는 길
유림 5 (2부 2권) - 격물치지(格物致知), 바름에 이르는 길
유림 6 (2부 3권) - 이기이원론(理氣二元說) 겸양에 이르는 길,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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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천5백 년 유교의 역사를 소설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작가 최인호가 유교의 역사와 유교가 찬란히 꽃피운 인문과 문화, 시대가 낳은 동양의 대사상가들을 특유의 대담하고 거침없는 문장으로 되살려 놓았다. 유교의 기원인 공자에서부터 유교의 완성자인 퇴계, 유가 사상을 잇는 제자백가들의 행적과 사상이 시공을 초월해 펼쳐진다.
작가는 공자, 노자, 맹자, 안자, 장자, 주자, 묵자, 순자, 왕양명, 조광조, 퇴계, 율곡 등 동양 교양과 고전의 원형인 대사상가들의 드라마틱한 조우를 보여준다. 공자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소크라테스와 예수, 붓다의 이야기도 곁들여 성인의 출생이 지닌 시대적 필연성을 되짚었다.
1부 1권 '왕도(王道), 하늘에 이르는 길'은 공자의 정명주의를 바탕으로 왕도 국가를 세우고자 했던 조광조의 이상과 실패를 그린다. 1부 2권 '주유열국(周遊列國), 사람에 이르는 길'은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의 행적과 일화, 사상을 중심으로 사람의 도리와 세상의 이치를 들려준다. 1부 3권 '군자유종(君子有終), 군자에 이르는 길'에서는 공자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 발전시키며 성리학을 완성한 퇴계의 철학자로서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1부 3권이 유가의 전반기 원시림이라면, 2부는 유림의 울창한 숲이라고 할 수 있다. 4권은 유가의 계승자들이었던 맹자를 중심으로 순자, 묵자, 양자 등 백화제방(百花齊放)을 다루며, 5권은 스물세 살의 젊은 나이로 퇴계를 찾아가 단 사흘 동안이지만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깊은 영향을 받은 거유 이율곡의 생애를 그린다.
6권에서는 퇴계사상의 골수인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의 형성과 발전과정, 그리고 불과 6년의 짧은 기간 동안에 경전을 편찬하고 유교의 진리를 선언한 지성 공자의 생애를, 공자의 고향 곡부를 통해 되살렸다.
목차
유림 1 (1부 1권) - 왕도(王道), 하늘에 이르는 길
책머리에
제1장 천인무간(天人無間)
제2장 기묘사화(己卯士禍)
제3장 지치주의(至治主義)
제4장 문정공(文正公)
유림 2 (1부 2권) - 주유열국(周遊列國), 사람에 이르는 길
제1장 첫 번째 출국 - 노자와 안자
제2장 두 번째 출국 - 노자와 공자
제3장 황금시대
제4장 세 번째 출국 - 상가지구(喪家之狗)
제5장 네 번째 출국 - 양금택목(良禽擇木)
제6장 공자천주(孔子穿珠)
유림 3 (1부 3권) - 추로지향(鄒魯之鄕), 군자에 이르는 길
제1장 명기두향(名妓杜香)
제2장 상사별곡(相思別曲)
제3장 추로지향(鄒魯之鄕)
작가 후기더보기
책속에서
무릇 한 사람에서 천만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 수가 많지 않다고 할 수 없으며, 한 가지 일에서 천만 가지 일에 이르기까지 그 일이 실로 복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心)' 이라는 것과 '도(道)'라는 것은 그 가운데서도 하나가 아닌 것이 없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천만의 사람과 천만의 일들이 비록 서로 다르고 복잡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관통하는) 도와 마음이 하나인 것은 하늘의 근본 이치란 원래 하나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천하를 함께 한다는 가르침으로써 나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마음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감화시키면 천하의 마음도 내 마음의 올바름에 감화되어 감히 바르게 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를 나의 도리로써 인도하면 천하의 사람들이 이 가르침의 크고 넓음에 감화되어 선한 대로 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도리와 마음이 성실한가, 못 한가에 따라 나라가 잘 다스려질지 아닐지가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 본문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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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최인호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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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서울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63년에 단편 「벽구멍으로」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가작 입선하여 문단에 데뷔했고, 1967년 단편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작가는 1970~80년대 한국문학의 축복과도 같은 존재였다. 농업과 공업, 근대와 현대가 미묘하게 교차하는 시기의 왜곡된 삶을 조명한 그의 작품들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하며 청년 문학의 아이콘으로서 한 시대를 담당했다.
소설집으로 『타인의 방』, 『... 더보기
수상 : 2011년 동리문학상, 2003년 현대불교문학상, 1999년 가톨릭문학상, 1982년 이상문학상, 1972년 현대문학상
최근작 : <최인호의 인생 꽃밭>,<길 없는 길 4>,<길 없는 길 1> … 총 219종 (모두보기)
최인호(지은이)의 말
오늘날 공자와 조광조, 이황, 이이 등의 얘기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라는 질문이 들지 모르지만 그것은 미시적인 생각이다. 요즘처럼 과도기로 인한 혼돈의 파고가 높을 때 일수록 근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어떤 시대라도 진정한 혁신과 변화를 하려면 그 중심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나는 그 원칙을 유교에서 목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교를 되살려 현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물으려 한다. 유림은 옛날 얘기도 아니고 케케묵은 교훈적 내용만을 담은 것도 아닌, 재미있는 현대적 이야기로 읽히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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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템스강의 작은 서점>,<최인호의 인생 꽃밭>,<차마 못다 한 이야기들>등 총 215종
대표분야 : 한국시 7위 (브랜드 지수 190,278점), 에세이 14위 (브랜드 지수 414,572점),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18위 (브랜드 지수 180,997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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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산으로 내가 갈 수 없으면 산이 내게 오게 할 수밖에(산중일기)
출생1945. 10. 17. 서울특별시, 사망2013. 9. 25.
학력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 학사
1985년 잃어버린 왕국 발표부터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을 많이 썼다. 그 전의 작품들은 별들의 고향 하나 읽어 봤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 졌고 대중적, 저질, 통속문학이라는 비평이 많다. 그래선지 잃어버린 왕국 이후론 그런 성향의 작품이 보이지 않고 내 취향의 작품이 많다.
2008년 고령의 지산동 고분으로 기억한다. 최인호가 고분에 누워 가야의 바람을 맞으며 가야의 하늘을 보고 있다. 제4의제국 가야 다큐멘터 첫 장면이다. 최인호의 역사 추적. 이때부터 최인호에 빠져 그의 역사소설들을 읽기 시작했고 그의 소설들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다만, 유림, 이황의 단양군수 시절 관기인 두향과의 관계 서술부분에서 작가의 역사인식에 실망.
근데 첫 작품인 잃어버린 왕국을 아직도 읽지 못했다.
아이러니다.ㅠㅠ
드라마도 상도 임상옥, 해신 장보고
해신 장보고는 소설과 내용이 너무 다르다. 최인호 해신이 원작이라지만 완전 다른 작품이라...
☆ 임상옥과 홍경래 http://naver.me/xev83k4c
☆ 상도 http://naver.me/5i9fEoNk
☆ 홍경래 평서대원수, 혁명아, 천하제일왕
http://naver.me/5thxya8f
☆ 박기풍 홍경래의 난(?) 진압
http://naver.me/xsUO0auU
우군칙 http://naver.me/FPuvx1lS
홍총각 http://naver.me/FUGJd4jX
김창시 http://naver.me/FtYerEW1
♧ 읽은책 24 📚
상도 3
해신 3
길없는길 4
제4의제국 3
제왕의문 2
유림 6
별들의 고향 2
산중일기
♧ 읽어야할 책 12 📚
잃어버린왕국5
지구인3
가족2
인연
천국에서온 편지...가지고 있는 책 여기까지만 읽자
☆ 홍경래의 난. 변태섭 한국사 통론 362~363p
이러한 농민층의 저항은 마침내 민란으로 발전하였다. 이미 세도정치가 시작된 직후인 1800년(순조 즉위년)에 경상도 인동에서 60여명의 농민이 관아를 습격한 사건이 발생한 것을 비롯하여 1808년 이후로는 함경도 단천·북청과 개성·춘천 등지에서 이러한 사건이 계속 일어났으니, 이는 조선사회의 모순이 농민의주체적 항쟁으로 표출된 것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1811년(순조11)에 평안도에서 일어난 홍경래의 난이었다. 이 난은 그 규모나 성격에 있어서 단순한 민란의 단계를 벗어나 농민전쟁으로 발전한 것이었다.
몰락 양반인 홍경래·禹君則·李禧著(희저)·金昌始 등의 지도 하에 영세농 등 몰락농민을 기본 구성원으로 하고 여기에 광부·일용노동자·뱃사공 등이 가세하여 봉기한 것이었다. 이들은 처음 嘉山에서 난을 일으켜 곽산 · 박천 · 정주 · 태천 · 선천 · 철산 ·용천 등 7개 고을을 점령하였지만 곧 정부군의 반격에 의해서 만 4개월만에 진압되었다.
홍경래의 난은 진압되었지만 그렇다고 그 원인인 사회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이 난의 구성원은 당시의 사회변동에 의해서 배출되고 그 속에서 피해를 받는 계층들이었으니, 몰락 양반·상인·광산경영자 · 임노동자, 그리고 농민등 모두가 그러하였다. 세도정치의 부패와 특권 어용상인에 대한 반발, 그리고지주제에 대한 부정 등이 이들의 사회의식을 고양시키고 투쟁의 대열에 서게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국적으로 만연되어 있었으므로 따라서 민란은 이후에도 각지에서 계속 일어나게 되었다.
홍경래의 난이 진압된 이후 제주도 · 용인 · 전주 등지에서 민란이 계획 되었다가 사전에 발각당한 사건이 계속 일어났다. 또한 1833년(순조 33)에는 서울에서 미곡상과 관리들의 농간으로 쌀값이 폭등하자 영세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킨사건이 일어났고 1841년(헌종 7)에는 경주의 농민 수백명이 서울까지 올라와환곡의 부정을 고발하는 복합상소(대궐 앞에 엎드려 올리는 상소문)를 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도시민이나 농민들의 동향은 적극적인 항거의 방향으로나아가고 있었으니, 이제 민란은 전국적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 박기풍(朴基豊)
조선후기 황해도병마절도사, 평안도병마절도사, 좌우포도대장 등을 역임한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여유(汝有).
부사 박성(朴聖)의 아들이다.
1777년(정조 1) 무과에 급제, 1780년에 선전관이 되었고, 1800년(순조 즉위년) 함경북도절도사, 1807년 황해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811년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일어났을 때 도총부부총관으로 양서순무중군(兩西巡撫中軍) 겸 선봉장이 되어 청천강 이북의 각 고을을 회복하였다.
이듬해 평안도병마절도사를 겸하여 정주성을 네번이나 공격하여 전세는 유리하였으나 박기풍의 성격이 유약하여 규율을 잡지 못하고 모두 실패하였으므로, 홍문관의 탄핵을 당하고 그 대신 유효원(柳孝源)을 교대하여 마침내 파성하게 되었다.
그 뒤 1813년 좌포도대장·경상도병마절도사를 거쳐 1815년 이후 좌우포도대장, 1821년 삼도통제사(三道統制使), 1823년 좌우포도대장을 역임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박기풍(朴基豊))]
대장정 2022-04-02 공감 (34) 댓글 (4)
역사 소설을 좋아하고, 최인호라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썼다고 하여 읽게 된 책이다.
유교(儒敎) 가지고 있는 보수적 이미지 때문에 공개적인 장소에서 읽기가 꺼려졌던 책이기도 했다.
과연 유교은 보수적이기만 한 것일까?
이 책은 저자가 조광조의 삶을 추적하는 기행문 형식으로 시작해서
조광조의 삶을 작가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소설,
다시 조광조의 위패가 있는 심곡서원과 조광조의 묘를 가게된 작가가
조광조 사후 500년이 지난 현재 느끼는 감회를 적고 있는 소설과 기행문의 중간형태의 작품이다.
조광조
그는 그가 죽은지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에 대한 평가가 논란인 인물이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조광조에 대해 중립적인 시각을 취할려고 하면서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작가는 정당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치가들이 판을 치는
현대사회에서 이를 치유할 수 있는 대안을 조광조의 사상, 유교에서 찾을려고 하고 있다.
과연 유교는 현대 정치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이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조광조가 유배갈 때 갖바치가 조광조에게 흰색과 검은색의 짝짝이이지만 발에 딱 맞는 신발을 선물한다.
그의 벗 양팽손이 신발이 이상하다고 말하자 조광조는 '발에 딱 맞는데 색깔이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한다.
그리고 덧붙여서 '한 쪽에서 보면 흰색 신을 신었다고 할 것이고, 다른 쪽에서 보며 검은 신을 신었다고 할 것이다.' 라고 말한다.
유교도 이런 것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유교는 보수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져 보일 것이고,
다르게 보면 현대 정치의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처럼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조광조의 말처럼 그것이 무슨 상관일까?
발에 딱 맞으면 그만이라고 생각된다.
마치 덩 샤오핑의 흑묘백묘론처럼...
유교가 보수적이고 시대에 맞지 않은 것이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런 것은 버리고 현대사회에서 맞고 옳은 것은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나는 이 책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읽는 것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나는 이 책을 통해 수기(修己)중 이었으니까...
azaling 2006-04-13 공감 (12) 댓글 (0)
“ 임금 사랑하기를 아버지 사랑하듯 하였고
나라 걱정하기를 내 집 걱정하듯 하였노라. “
작가 최인호가 15년 전부터 구상하였다는 소설 ‘유림’은 이렇게 조광조가 유배지 능주에서 사사당하기전 썼다는 절명시와 함께 그가 사약을 받고 죽은 곳에 세워진 ‘적려유허비’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시작이 좀 뜻밖이다. 작가 자신이 직접 ‘적려유허비’를 찾아가는 과정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자 화자가 작가 자신인 것이다.
작가는 15년 전 경허스님을 주인공으로 불교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장편소설 ‘길 없는 길’을 신문에 연재하던 중 인도에서 석가모니에 의해 출발한 불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서 위대한 사상가 원효를 탄생시키며 찬란한 꽃을 피웠듯 우리 민족의 혈맥 속에 또 하나의 원형질이 깃들어 있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2천5백년 전 중국에서 공자로부터 비롯된 유교. 그는 유교에 대한 소설을 쓰지 않고는 우리의 민족성을 파헤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총 2부 6권으로 완성될 소설 ‘유림’의 첫 번째 주인공으로 작가는 ‘조광조’를 선택했다.
조광조...
우리나라 역사에서 이처럼 극단적인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 또 있을까...
17세에 당대 제일의 성리학자 정굉필에게 사사하고 관직에 나가서는 임금에게 직언을 서슴치 않으며 끊임없이 개혁정치를 펴다 반대파인 훈구파에 탄핵되어 결국 기묘사화로 인해 37세의 나이에 생을 마친 인물 조광조...
이율곡은 그를 ‘학문이 채 이루어지기 전에 성급하게 정치에 뛰어든’ 아마추어 정치가로, 퇴계는 ‘천품이 뛰어나고 옳은 정치를 하였으나 주위 사람들을 다스리지 못한’ 실패한 정치가로 평가하였으며, 역모를 꾀했다 하여 탄핵되었으나 수많은 선비들은 그 부당함을 호소했고, 제대로 장사조차 치를 수 없는 죄인으로 죽음을 맞이했으나 사후 영의정으로 추증되고 문정공이라는 시호를 받기에 이르지 않았던가...
또한 그가 ‘내가 이리 죽게 되었으니 흉가가 되지 않겠느냐’고 했던 유배지는 ‘적려유허비’가 세워지고 유적지가 되었으며, 조광조가 그의 부친이 죽은 후 3년 동안 시묘를 하면서 학문에 정진했던 곳은 서원이 세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시호를 받은 지 30년 후에 서원이 세워졌고, 그 후에도 사액을 받지 못하다가 사후 130년이 흐른 효종에 이르러서야 임금에게 편액을 받았다. 이렇듯 조선시대 내내 엇갈리고 있는 그에 대한 평가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작가 또한 조광조를 가장 나중에 선정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작가가 조광조를 선정했을 당시의 고뇌와 그의 평가를 알 수 있는 내용이 소설 속에 등장한다. 조광조가 능주로 유배를 갈 당시 갖바치가 바쳤다는 짝짝이 신발의 일화를 통해서이다.
사실 이 책은 소설임에도 허구와 사실의 경계가 모호하다. 작가가 소설 속에 직접 등장함은 물론 등장인물들이 모두 역사에 기록된 실제 인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는 서술한 모든 이야기가 기록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밝히고 있어 소설 속 이야기가 모두 사실인 것처럼 여겨지기 쉬우나 갖바치가 조광조에게 바친 한쪽은 희고 한쪽은 검은 짝짝이 신발의 이야기는 허구이다.
이는 어느 날 한쪽은 희고 한쪽은 검은 신발을 신고 관아에 출근했던 정도전이 “왼쪽에서 보면 흰 신발만 보일 것이요 검은 신발은 보이지 않을 것이며, 오른쪽에는 검은 것만 보일 것이고 흰 것은 보이지 않을 것이니,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고 했던 예에서 따온 것으로, 소설 속에서 갖바치가 조광조에게 바친 신발은 비록 한쪽은 희고 한쪽은 검은 짝짝이 신발이었으나 발에 꼭 맞는 신으로, 조광조의 정치 철학은 한쪽에서 보면 개혁적이다 한쪽에서 보면 과격하다 할 것이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빛깔에 있지 않고 꼭 맞는 신발에 있음을 이르고 있는 것이다. 조광조에 대한 잘못된 평가를 지적함과 함께 오늘날의 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일화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 하늘과 사람은 그 근본됨이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이 사람에 대하여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임금과 백성은 그 근본됨이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예전에 이상적인 임금들이 백성들에게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
그렇다면 조광조가 결국 이루고자 함은 무엇이었을까? 작가는 그것은 공자의 유교 이념에 입각한 성리학적 지치주의를 이상적으로 실현하려 함에 있다고 보고 있다. 하늘과 사람은 근본됨이 하나이니 사람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세상은 하늘의 뜻이 실현되려는 이상사회가 되어야 하며 이와 같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완성 되어야 하는 것이다. 조광조는 공자의 마음으로 정치를 개혁하려 했으며 자신뿐만 아니라 중종 또한 공자가 되어주기를 소망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조광조는 비록 실패했지만 공자의 사상으로 낡은 정치를 개혁하려한 우리나라가 낳은 가장 위대한 정치가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조광조의 발에 꼭 맞게 신겨졌던 신발인 공자에게로 이어진다. 2천5백년전 중국에서 시작된 유교...인, 의, 예, 충, 효를 이야기하는, 이제는 낡아빠진 듯한 유교를 이제 와서 소설을 통해서나마 다시 불러들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작가는 공자에게, 조광조에게 혼란한 현 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할 방법을 묻고 있는 것이다.
얼음무지개 2005-09-06 공감 (2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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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의 왕도정치 어지러운 난세에 올바른 정신을 가진 당신이 그립습니다
인문학에길을묻다 2010-07-16 공감 (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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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와 소설의 버무림?
루시아 2008-01-23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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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알아야 현재와 미래가 보인다. 조광조를 보며 그의 정명사상을 본받고 싶다.
오손도손 2011-05-17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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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에 대한 객관적 해석 그리고 선비의 정신을 일깨우게 하는 중독성 있는 책임.
동래유인 2008-08-2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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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매미가 저리 우는 까닭은
어찌된 일인지 새벽부터 매미 소리가 요란합니다. 매미는 수컷만 울 수 있다죠. 암컷을 부르는 소리라고 합니다. 매미의 삶은, 아시다시피 참으로 허무합니다. 7년 여, 많게는 십 수년을 번데기로 살다가 여름 한철 구애의 목청을 높이는 것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성충으로 고작 한철만 살다 떠나 갑니다. 그 짧은 생이 아쉬워 새벽부터 이리 울어대는 걸까요.
매미 소리를 듣다가 비운의 정치개혁가 조광조가 떠오릅니다. 33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정계에 진출하고 중종의 총애를 받다가 37세의 젊은 나이에 중종의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한 정치개혁가 또는 실패한 이상주의자 조광조. 십 수년을 묻혀 있다가 고작 한철 암컷을 유혹하여 씨를 뿌리고 세상을 뜨는 매미처럼, 조광조 역시 그 짧은 4년의 행적을 통해 역사에 길이 남을 '낡은 정치의 개혁'이라는 선각자적 씨를 뿌리고 갔습니다. 4년이라고 해도 실제로 본격적인 정치 개혁을 단행한 건 불과 1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아, 매미가 저리 처절하게 우는 건 짧은 생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꼭 해야할 일을 하고 떠나야한다는 절박함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인호의 《유림》 1권을 읽었습니다. 조광조 편입니다. 2권은 공자, 3권은 퇴계 이황편입니다. 4,5,6권은 아직 출간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 맹자, 노자, 이율곡에 대한 글인 것 같습니다.
소설은 정암 조광조가 죽기 직전 유배되었던 곳을 기념하기 위한 능주의 '적려유허비'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제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글을 소설이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겠습니다. 1권만 봐서 그런지 몰라도, 현실과 과거를 오가며, 픽션보다는 논픽션이 주가 되는 이런 글을 뭐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다큐 소설'?
1장 〈천인무간〉에서는 적려유허비를 찾아 500 년 전의 조광조를 그리고 있습니다. '하늘과 사람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사람은 하나'라는 천인무간의 사상을 견지했던 조광조에 대한 개관 성격의 글입니다. 조광조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와 기묘사화로 불리우는 조광조의 유배와 죽음의 순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조광조를 찾아 떠나는 본격적인 여행은 2장부터입니다.
2장 〈기묘사화〉에서는 말 그대로 기묘사화의 전말을, 3장 〈지치주의〉에서는 조광조의 핵심 정치사상인 지치주의를, 4장 〈문정공〉에서는 조광조의 사후 평가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담고 있습니다. 문정공은 조광조를 존경하였던 선조가 죽은 조광조에 내린 시호입니다.
읽는 내내 몇 년전 TV에서 방영했던 〈여인천하〉라는 드라마가 연상되었습니다. 첩의 딸로 태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정난정이 주인공이었는데, 그 시기가 바로 조광조의 시기와 일치합니다. 당시 주인공 강수연 뿐만 아니라 경빈 박씨 역을 맡은 도지원의 표독스런 연기가 볼 만 했습니다. 매향이 역의 박주미도 예뻤죠 아마도^^. 드라마인 만큼 픽션이 상당히 가미되어 역사적 사실보다는 거의 흥미 위주로 흘렀던 것 같습니다.
임혁이 갖바치 역으로 나왔는데, 그 당시 저는 갖바치라는 존재 역시 '픽션'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천민인 갖바치가 조정의 고관대작인 조광조에게 '조언'하는 장면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갖바치는 꽤 비중있는 역사적 인물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특히 조광조가 유배지로 떠날 때 그가 건내 준 희고 검은 짝짝이 가죽신 한 켤레와 참언 한 구절은 마지막까지 화두가 되어 조광조에 대한 평가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 참언 한 구절은 이러합니다.
"천층 물결 속에 몸이 뒤집혀 나오고 / 천년 세월도 검은 신을 희게 하지는 못하는구나."
저자는 그 가죽신이 바로 '공자'라고 말합니다.
아차차, 이거 천기누설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가죽신의 비밀을 풀기 위한 저자의 사고의 흐름이 책 뒷부분의 주된 내용인데 그 결론을 미리 말해버렸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책을 읽지 아니하고 위와 같은 말의 뜻을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겁니다. 또한 이 책은 단순히 인물의 갈등을 따라가는 일반적인 소설이 아니라 역사적 인물을 재조명하는 평론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이 정도 천기누설이 별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정리하고 남기고 싶은 말들이 꽤 많았습니다. 특히 이 책은 수많은 고사들이 중첩되어 있어 '지식'으로서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그러나 오늘도 출근 시간에 쫓겨 요약 정리할 시간이 부족함이 안타깝네요.
결과적으으로 맥을 못 짚은 리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저 재미있으니 그 재미를 느끼고 싶으면 직접 봐라,는 식의 무례한 글이 된 것 같습니다. 짧은 시간에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제 글 실력이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글 읽는 분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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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좋은날 2005-07-22 공감(3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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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에게 길을 묻다
“ 임금 사랑하기를 아버지 사랑하듯 하였고
나라 걱정하기를 내 집 걱정하듯 하였노라. “
작가 최인호가 15년 전부터 구상하였다는 소설 ‘유림’은 이렇게 조광조가 유배지 능주에서 사사당하기전 썼다는 절명시와 함께 그가 사약을 받고 죽은 곳에 세워진 ‘적려유허비’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시작이 좀 뜻밖이다. 작가 자신이 직접 ‘적려유허비’를 찾아가는 과정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자 화자가 작가 자신인 것이다.
작가는 15년 전 경허스님을 주인공으로 불교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장편소설 ‘길 없는 길’을 신문에 연재하던 중 인도에서 석가모니에 의해 출발한 불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서 위대한 사상가 원효를 탄생시키며 찬란한 꽃을 피웠듯 우리 민족의 혈맥 속에 또 하나의 원형질이 깃들어 있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2천5백년 전 중국에서 공자로부터 비롯된 유교. 그는 유교에 대한 소설을 쓰지 않고는 우리의 민족성을 파헤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총 2부 6권으로 완성될 소설 ‘유림’의 첫 번째 주인공으로 작가는 ‘조광조’를 선택했다.
조광조...
우리나라 역사에서 이처럼 극단적인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 또 있을까...
17세에 당대 제일의 성리학자 정굉필에게 사사하고 관직에 나가서는 임금에게 직언을 서슴치 않으며 끊임없이 개혁정치를 펴다 반대파인 훈구파에 탄핵되어 결국 기묘사화로 인해 37세의 나이에 생을 마친 인물 조광조...
이율곡은 그를 ‘학문이 채 이루어지기 전에 성급하게 정치에 뛰어든’ 아마추어 정치가로, 퇴계는 ‘천품이 뛰어나고 옳은 정치를 하였으나 주위 사람들을 다스리지 못한’ 실패한 정치가로 평가하였으며, 역모를 꾀했다 하여 탄핵되었으나 수많은 선비들은 그 부당함을 호소했고, 제대로 장사조차 치를 수 없는 죄인으로 죽음을 맞이했으나 사후 영의정으로 추증되고 문정공이라는 시호를 받기에 이르지 않았던가...
또한 그가 ‘내가 이리 죽게 되었으니 흉가가 되지 않겠느냐’고 했던 유배지는 ‘적려유허비’가 세워지고 유적지가 되었으며, 조광조가 그의 부친이 죽은 후 3년 동안 시묘를 하면서 학문에 정진했던 곳은 서원이 세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시호를 받은 지 30년 후에 서원이 세워졌고, 그 후에도 사액을 받지 못하다가 사후 130년이 흐른 효종에 이르러서야 임금에게 편액을 받았다. 이렇듯 조선시대 내내 엇갈리고 있는 그에 대한 평가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작가 또한 조광조를 가장 나중에 선정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작가가 조광조를 선정했을 당시의 고뇌와 그의 평가를 알 수 있는 내용이 소설 속에 등장한다. 조광조가 능주로 유배를 갈 당시 갖바치가 바쳤다는 짝짝이 신발의 일화를 통해서이다.
사실 이 책은 소설임에도 허구와 사실의 경계가 모호하다. 작가가 소설 속에 직접 등장함은 물론 등장인물들이 모두 역사에 기록된 실제 인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는 서술한 모든 이야기가 기록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밝히고 있어 소설 속 이야기가 모두 사실인 것처럼 여겨지기 쉬우나 갖바치가 조광조에게 바친 한쪽은 희고 한쪽은 검은 짝짝이 신발의 이야기는 허구이다.
이는 어느 날 한쪽은 희고 한쪽은 검은 신발을 신고 관아에 출근했던 정도전이 “왼쪽에서 보면 흰 신발만 보일 것이요 검은 신발은 보이지 않을 것이며, 오른쪽에는 검은 것만 보일 것이고 흰 것은 보이지 않을 것이니,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고 했던 예에서 따온 것으로, 소설 속에서 갖바치가 조광조에게 바친 신발은 비록 한쪽은 희고 한쪽은 검은 짝짝이 신발이었으나 발에 꼭 맞는 신으로, 조광조의 정치 철학은 한쪽에서 보면 개혁적이다 한쪽에서 보면 과격하다 할 것이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빛깔에 있지 않고 꼭 맞는 신발에 있음을 이르고 있는 것이다. 조광조에 대한 잘못된 평가를 지적함과 함께 오늘날의 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일화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 하늘과 사람은 그 근본됨이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이 사람에 대하여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임금과 백성은 그 근본됨이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예전에 이상적인 임금들이 백성들에게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
그렇다면 조광조가 결국 이루고자 함은 무엇이었을까? 작가는 그것은 공자의 유교 이념에 입각한 성리학적 지치주의를 이상적으로 실현하려 함에 있다고 보고 있다. 하늘과 사람은 근본됨이 하나이니 사람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세상은 하늘의 뜻이 실현되려는 이상사회가 되어야 하며 이와 같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완성 되어야 하는 것이다. 조광조는 공자의 마음으로 정치를 개혁하려 했으며 자신뿐만 아니라 중종 또한 공자가 되어주기를 소망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조광조는 비록 실패했지만 공자의 사상으로 낡은 정치를 개혁하려한 우리나라가 낳은 가장 위대한 정치가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조광조의 발에 꼭 맞게 신겨졌던 신발인 공자에게로 이어진다. 2천5백년전 중국에서 시작된 유교...인, 의, 예, 충, 효를 이야기하는, 이제는 낡아빠진 듯한 유교를 이제 와서 소설을 통해서나마 다시 불러들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작가는 공자에게, 조광조에게 혼란한 현 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할 방법을 묻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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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무지개 2005-09-06 공감(2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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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꾸민 조광조 이야기
글쎄 내가 보기에는 이 책은 소설은 아니다. 어디를 읽어봐도 소설이라곤 하기엔 곤란하다. 다만 지금시대의 최고의 소설가가 쓴 글이라서 책 표지에 장편소설이라고 했는가 추측한다. 차라리 기행문이라 하면 적당하다.역사적 사실을 당대의 최고의 소설가(픽션)의 눈으로 바라보는 책으로 알고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조광조와 중종 그리고 그 시대의 역사적 사료들의 단편을 모아서 덧붙이고 꾸미고 하는 글솜씨에 감탄한다.
나는 가끔 역사를 되돌리고 내 편의대로 생각해본다. 만일 어떤 역사적 사실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기묘사화가 없고 중종이 조 광조를 계속 신임하였으면 조 광조의 알성시 대책처럼 하늘의 도가 널리 퍼졌을까? 아니면 조 광조 자신이나 또 다른 한계에 막혔을까? 참 재미있는 구상이다. 내 생각으로는 조 광조도 훈구파와 같은 개혁의 대상이 될 것이 뻔한 이치이다.
조광조는 급진적인 개혁가는 아니다. 성리학으로 중무장한 원칙론자이다. 이 어지러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것은 공자의 말씀밖에 없다는 원칙을 세워 세상의 모든 소리에 귀를 막는 모습이다. 자기의 테두리 범주에 벗어난 모든 사람은 타도의 대상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조 광조의 정적인 정국공신들의 처세술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일관되고 자기의 원칙에 충실하다 보니 한 번의 반란에 무너지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범했다. 조 광조 답게 살다 간 것이다.
조선의 권력구조, 성리학의 전달 경로와 사상, 그 시대적인 배경을 미미하게 아는 사람에게는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이 책으로 유교를 전부 이해하려는 사람에게는 무리가 있다, 소설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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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터봉 2005-08-12 공감(1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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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 1부 1권
역사 소설을 좋아하고, 최인호라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썼다고 하여 읽게 된 책이다.
유교(儒敎) 가지고 있는 보수적 이미지 때문에 공개적인 장소에서 읽기가 꺼려졌던 책이기도 했다.
과연 유교은 보수적이기만 한 것일까?
이 책은 저자가 조광조의 삶을 추적하는 기행문 형식으로 시작해서
조광조의 삶을 작가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소설,
다시 조광조의 위패가 있는 심곡서원과 조광조의 묘를 가게된 작가가
조광조 사후 500년이 지난 현재 느끼는 감회를 적고 있는 소설과 기행문의 중간형태의 작품이다.
조광조
그는 그가 죽은지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에 대한 평가가 논란인 인물이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조광조에 대해 중립적인 시각을 취할려고 하면서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작가는 정당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치가들이 판을 치는
현대사회에서 이를 치유할 수 있는 대안을 조광조의 사상, 유교에서 찾을려고 하고 있다.
과연 유교는 현대 정치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이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조광조가 유배갈 때 갖바치가 조광조에게 흰색과 검은색의 짝짝이이지만 발에 딱 맞는 신발을 선물한다.
그의 벗 양팽손이 신발이 이상하다고 말하자 조광조는 '발에 딱 맞는데 색깔이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한다.
그리고 덧붙여서 '한 쪽에서 보면 흰색 신을 신었다고 할 것이고, 다른 쪽에서 보며 검은 신을 신었다고 할 것이다.' 라고 말한다.
유교도 이런 것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유교는 보수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져 보일 것이고,
다르게 보면 현대 정치의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처럼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조광조의 말처럼 그것이 무슨 상관일까?
발에 딱 맞으면 그만이라고 생각된다.
마치 덩 샤오핑의 흑묘백묘론처럼...
유교가 보수적이고 시대에 맞지 않은 것이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런 것은 버리고 현대사회에서 맞고 옳은 것은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나는 이 책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읽는 것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나는 이 책을 통해 수기(修己)중 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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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aling 2006-04-13 공감(1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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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을 초월한 작품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 최인호다'라는 생각이 든 작품이다.
작가가 직접 관련 지역을 찾아 다니다가 툇마루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이야기 풀이가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과거로 시간 여행을 가는 듯한 현실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절묘한 연결이 작가의 현실적인 탐방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사실감을 더 해주었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가 아닌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기 위해서 노력하셨던 옛 위인들의 노력과 사상에 커다란 감흥을 느낄 수 있었고, 본인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려는 사람을 눈의 가시로 여겨 축출해내는 사람들이 승리한다는 점에서 분노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기득권자의 이익을 모두 다 빼앗는것이 아닌 조금씩 더 많이 나누어 가지는 식의 정치가 필요하지 않을 까 싶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너무나 개인적이고 그들만의 이익을 쫓는 현재의 정치 풍조에 대해서 "국민들을 위한 명분과 도덕적으로 알맞은 정치로의 회귀가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해서 더 좋은 방향이 아닌가" 라고 꼬집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자신들의 이익을 ! 위한 싸움에는 눈에 불을 켜고 난리를 치고, 직접적으로 이익이 되지 않는 중대한 사항들에 대해서는 슬그머니 넘어가는 답답하기만 한 현 정치판에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한 작가에게 크게 공감하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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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장미 2005-07-08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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