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02

어느 유물론자와의 대화, 인권운동가 서준식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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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유물론자와의 대화
10년 전 기독교세계관학교에서 만난 인권운동가 서준식
기자명 김세준  승인 2003.03.15 


무심코 정리하던 서랍에서 테이프 하나가 굴러 떨어졌다. 그 테이프는 10여 년 전 기독교세계관학교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의 기독교 신앙에 대해 논하였던 것을 녹음한 테이프 중 하나였다.

이 글은 그 테이프를 녹취한 것이다. 이 테이프에는 내가 경실련 기독교청년학생협의회 대표로 있던 시절, 감옥에서 17년간 비전향장기수로 출소하여 인권운동을 하고 있던 서준식과의 대화가 들어 있다. 서준식은 재일교포 2세로,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인 1971년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연루되어 처음 7년형을 선고받았다. 그 뒤 형량이 늘어나면서 17년간 감옥에서 보내고 1988년 출소하게 된다.

당시 복음주의 계열에서 기독교학문연구회의 한 교수를, 진보쪽에서 민중신학자인 임태수 교수(현 호서대 구약학), 박성준 선생(목사이자 현 퀘이커교도), 그리고 유물론자인 서준식을 초청해서 강좌를 개최하였다. 테이프를 다시 돌리며, 오늘날에도 이 대화는 시기적으로 적절하며 듣는 이로 하여금 신앙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였다.

서준식은 당시 유명한 유서대필 사건으로 누명을 쓰고 수배된 강기훈의 무죄를 주장하며 동시에 유서대필의 허구적 조작을 밝히기 위해 강연하였다. 그 말미에 그의 사상의 한 자락인 '유물론과 신앙'이란 대목의 대화가 있었다 이 글은 그 당시의 강연을 녹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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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준 서준식 선생님의 서간문과 선생님의 이야기를 모델로 쓴 [금단의 땅]이라는 소설을 보면, 휴머니즘과 민족주의가 선생님의 세계관적인 관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 모인 청년들은 특별히 기독청년학생들인데, 저희가 갖고 있는 세계관과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무엇이 다른지 혹은 선생님께서 평소 생활이나 삶에서 가지고 있는 가장 주된 가치 기준이란 것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서준식 저는 20대에 휴머니즘과 과학사상에 심취했습니다. 저는 20대에 마르크스를 알았습니다. 우리가 대학 다닐 때는 우리 나라에는 사회과학서적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종로2가에 종로서적 있죠?! 그 종로서적 전체 크기가 이 방만한 크기였습니다. 그때 거기에 사회과학서적이라는 것이 없고 그냥 거기에 이만한 공간에 문학서적·관광서적·잡지, 그런 것들이 전부다 있는 거죠. 사회과학코너라고 해서 서가가 하나 있는데, 거기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말하는 의미의 그런 사회과학서적이 아니었습니다. 사회학개론이라든가 하는 대학 교과서가 전부였습니다. 따라서 60년대 말, 70년쯤까지는 우리 나라에 사회과학서적이라는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근데 그런 속에서 있으면서도 저는 사회과학서적을 그 당시 대학생들 수준치고는 아마 가장 선진적인 책을 읽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러냐, 방학 때 일본에 가서 지냈기 때문에, 일본에 가서 같은 값이면 우리 나라에서 볼 수 없는 책을 보자, 우리 나라에서 볼 수 있는 책은 학기 때 가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하는 생각으로 골라서 보다 보니까 그 당시 우리 나라 기준에서 저는 불온서적만 보고 방학 때를 지냈던 것입니다.

그래서 대학 1학년 때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라던가 [경제학 비판]이라던가 엥겔스의 [반듀링론] 뭐 그런 것들을 쭉 보게 됩니다. 필수적인 사회과학서적인 것들을. 근데 그것을 읽게 된 동기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도 읽으려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살았고 일본에는 얼마든지 지천에 깔려 있으니까. 그런데 그것을 읽게 된 것은, 아까 맨 처음 강의를 시작하면서 잠깐 말씀드렸듯이 우리 나라에 와서 굉장히 비참한 동포들의 모습, 이런 것들에 충격을 받고, 또 어떤 민족적인 감성이 새롭게 형성되면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점점 달라진 거죠. 아까 제 말로는 사회의식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속에서 자꾸만 호기심이 생겨서 그런 책을 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서간집이 저의 사상이라…. 저는 제 사상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나의 주장'이라는 글을 쓴 일이 있습니다. 옥중에서 법원에 제출하기 위해서 쓴 건데, 거기에 제 주장의 알맹이를 민족주의와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고, 민족에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건 변함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사랑이나 민족에 대한 사랑이나 그 감성만 가지고 무엇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과학이라야 합니다. 저는 과학이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과학사상에 심취했습니다. 그리고 아까 이야기했듯이 굉장한 딜레마에 휩싸인 거죠. 과학을 가지고 인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인간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대로 해결을 하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바로 이웃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려는, 그리고 그 이웃에 대한 사랑이 축적되지 않는, 구체적인 사랑이 축적되지 않는 사상이 무엇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그런 회의를 느꼈던 것입니다.

지금은 어떠냐? 지금은 그 회의를 해결하지 못한 채 일에 쫓겨 사고의 진전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일에 쫓겨 가지고 진전이 전혀 없다는 것이 저는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빠서 이런 논쟁을 할 시간이 없다” 할 때가 저는 대단히 행복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구체적인 일에 열심히 몰두를 하면 회의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일이 쌓여 가는 과정에서 뭔가 세상을 보는 눈이 성숙되어가고, 그리고 사람이 일한 것이 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뭔가 실천적으로 쌓아지는 사상이 형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런 사상을 형성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저는 그런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 사상 혹은 생각에 녹아 있는 어떤 알맹이가 뭐냐 하는 질문을 받으면 아마 3-4년까지만 해도 민족에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고 대답을 했겠는데요. 지금은 그렇게 대답을 할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그저 바빠서 그저 최소한 먹고 살 것만 털어놓고 이 열심히 이것(인권운동)을 하고 있다, 이 속에서 뭔가 내가 젊었을 때 가졌던 생각이 그런 경험의 축적 속에서 방향이 수정되어갈지도 모르고 혹은 더 성숙되어갈지도 모른다, 하는 말씀밖에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가 기독교세계관학교인데요. 저는 중요한 것은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먼 데를 바라보지 않고 가까운 일만 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잘못 빠질 수 있습니다. 어떤 길이든 말입니다. 그런데 먼 데를 바라보는데 가까운 일을 열심히 하게 되면 먼 데를 바라보는데 있어서 특별히 고민하지 않아도 회의는 생기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하고 저하고 생각이 다를지도 모릅니다. 물론 신앙은 다릅니다. 그러나 저는 입장이 얼마든지 다른 사람, 아주 멀리 떨어진 사람, 사상이 다른 사람, 신앙이 다른 사람과도 얼마든지 공감 같은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어떤 때 공감을 느끼느냐 하면, 구체적인 일에 대해서 구체적인 하나의 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구체적인 하나의 일에 대하여 분개할 줄 알고 구체적인 하나의 일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사람하고도 사상이 다르고 신앙이 다른 사람하고도 동질의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분명히 저는 그렇습니다. 오늘 어떤 세계관에 대해 이야기할 자신도 없거니와, 그런 이야기를 피하고 인권에 관한 구체적인 했던 것은 그런 이유도 있다고 이해해주십시오.

김세준 선생님께서는 앞에서 '나는 유물론자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옥중에서 어떤 인간적 예수의 만남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셨구요. 저는 그것에 대해서 알고 싶었거든요.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이 하나고, 또 선생님께서 발견하신 예수상과 우리가 기존의 보이는 교회들이 생각하고 있는 예수상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차이점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예수상.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어떤 반성을 할 수 있는 기회로, 어떤 정체성을 더욱 살필 수 있는 그런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거든요. 그래서 그 두 가지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서준식 김세준 씨의 질문은 말하자면 젠장맞을 욕심이라는 겁니다.(웃음) 엄청난 욕심을 부리셨습니다. 어쩌다 제가 이런 자리에 나오게 되었는지 후회스럽기만 합니다. 저는 다음 번에 강의를 하시게 될 박성준(당시 목사, 현재 퀘이커 교도) 선생님과 제가 굉장히 친한 사이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입장은 제가 잘 이해 못 합니다. 그분보다도 어쩌면 제가 더 신앙적입니다. 그분은 신앙은 제가 뭐 깊이 그분의 사상을 연구해 본 것은 아니지만, '신앙은 생활의 문화다' 그렇게 이야기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신앙은 생활의 문화여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은 신앙이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유물론적인 유물론자였다가 유물론에 대해 회의를 느낀 이유,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에 제가 공부하고 아는 한 마르크스주의 속에 인간애, 바로 이웃에 있는 인간에 대한 구체적인 사랑을 다뤄주는 장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마르크스주의는 남성적인 기질만 있습니다. 여성들에게는 미안합니다. 왜 남성적이냐 하면, 어떤 섬세한 부분이 없는 겁니다. 섬세한 부분이 없고 과학적으로 딱딱 들어맞으면서 다이나믹하게 다이나믹하게 빨리 전개되는 사랑입니다. 사회변혁사상입니다. 마르크스주의는 그리고 또 아주 철학적으로도 그런 성격을 갖고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구체적인 사랑이 쌓이지 않으면 그런 사회변혁사상이라는 것이 뭔가 무서운 것이 될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됐습니다. 제가 마르크스처럼 지적인 대인이 아니라 소인이기 때문에 아마 그럴 것입니다. 마르크스가 인간에 대한 구체적인 사랑을 생각 안 했던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생각합니다. 그것은 마르크스가 남긴 서간집이라던가 그런 것에서 단편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봐도 분명합니다. 마르크스는 분명히 그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 자신이 그런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서 저 자신의 성격으로 봐서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서 마르크스주의를 따라가면 저 자신이 큰일 나겠다 싶었기 때문에 회의를 느꼈던 것입니다. 다만 단지 이 차이가 있었을 뿐입니다. 마르크스주의가 인간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된다고 생각을 했나하면요, 간단하게 설명해서 이렇습니다.

어떤 사회적인 조건이 성숙되는 시기에 인간은 사회를 변혁시킵니다. 사회구조의 질이 달라지는 거죠. 그러면 인간이 또 새로워진 질의 사회를 끌어당깁니다. 인간이. 근데 또 쭉 살다보니까 또 어떤 성숙된 조건에 의해서 다시 사회를 변혁시킵니다. 다시 인간이 또 새로운 사회를 당깁니다. 인간이 어떤 사회를 당길 때마다 인간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유물론이라는 것은 인간을 저 의식을 규정하는 것은 전제이지 의식이 전제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는 전제가 있습니다. 유물론에는. 아주 통속적으로 이야기해서 환경이 인간을 만든다, 하는 것이 유물론의 사상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르크스가 환경이 아닌 인간이 의식적으로 노력해 가지고 환경을 만든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적으로 볼 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인간의 의식이라는 것이 주위의 환경에 의해서 규정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세의 농경사회에는 농경사회적인 삶의 의식구조가 있고 행동양식이 있고, 그런 것들이 지금 고도로 발전된 자본주의사회에 와서는 사람의 의식이 달라진다는 것이죠 가령 예를 들어서 제가 고민했던 것은 이기주의의 문제입니다. 사회주의 문제를 가지고 고민했는데, 사회주의라는 것은 고도로 도덕적인 사람이라야만 그 속에서 적응할 수 있고 지탱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하면 다른 사람보다 많이 가지면 안 되는데, 욕심 부리면 안 되는데, 욕심을 부리면 사회주의적인 체제가 무너집니다. 그것은 요즘 동부라던가 소련 중국 그런데서 자꾸만 무너지는 것, 그것을 봐도 알 수가 있을 겁니다.

인간의 이기심이 없어질 수 있는가? 그런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면서도 만만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인간의 이기심이 버릴 수 있다, 다만 제로가 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변하는 것은 무엇 때문에 변하는가.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도 변하지만, 그러나 노력에 의해서 변하는 부분은 미미한 부분이다. 사회 구조가 변함으로써 인간의 이기심의 정도가 변한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통속적으로 중세 농경사회에 사는 사람의 이기심과 그리고 지금 고도로 발달된 이 산업문명에 사는 사람들의 이기심을 비교해봐도 이해가 될 것입니다. 또 산골 인심과 도시 인심이 다르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것을 생각해도 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기심이 제로가 될 것인가, 이기심이 사회가 변하면 어느 정도 속도로 이 사회의 변화를 따라올 수 있는가, 그런 문제가 의문스러울 뿐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분명히 마르크스의 문제, 변혁이론을 지지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떤 충족된 조건 속에서 인간이 사회를 변혁시킨다. 인간이 그 속에 담기면 과거에 있던 인간과 다른 인간이 됩니다. 조금이지만, 눈에 거의 띄지 않을 정도지만. 그리고 또 인간이 사회변혁을 합니다. 사회에 스스로 변혁하는 사회에 스스로 담기면, 담기고 또 오래 동안 가면 인간이 또 변합니다. 이런 과정을 수없이 거쳐 가지고 이 땅의 문제가 해결되어 가는 것이다. 저는 이것을 기본적으로는 지지합니다.

그러나 저는 지지하면서도 불안한 겁니다. 그런 이론만 믿고 거기에 덮어놓고 따라가기가 불안한 겁니다. 말하자면 아까부터 누누이 말씀드렸듯이, 바로 이웃에 있는 옆에 있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쌓아가지 않는 그런 방식으로 이론만 따라가다가는 나 자신이 뭔가 무서운 사람이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시각에서 저는 예수를 보았습니다. 예수는 사람이냐 신의 아들이냐 하는 문제는 저도 워낙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저는 모르겠습니다. 모르지만 그러나 적어도 자기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상대화해야 한다. 겸손이라던가 이웃에 대한 사랑, 이런 것들은 자기 자신이 절대적인 존재로서는 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한때 바로 저의 옆에 있는 사람을 왜 이렇게 미워해야 하는가, 왜 이런 것 때문에 고민을 해야 하는가, 이런 것 때문에 굉장히 고민을 했습니다. 바로 이웃에 있는 사람,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같이 아껴야 할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사랑할 자신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많이 고민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요, 제 경우에는 옥중에서 같이 사는 동지에 대한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나 옥중에서 같이 사는 동지들을 저는 그렇게 썩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완전히 이거 뭐 고해성사처럼 되어버렸네요(웃음). 왜 그러냐면요, 옥중에서 같이 사는 동지들은 거의 다 저하고 세대가 다른 사람들입니다. 장기수들입니다. 30년, 40년을 감옥에서 사는 사람들이예요. 그 사람들은 일제시대 때 사회주의자가 됐거나 아니면 해방 직후에 사회주의자가 됐거나 전쟁의 와중에서 사회주의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사회주의자가 된 시기는 스탈린 시기입니다. 그리고 전쟁의 와중에 사회주의자가 된 사람들은 저처럼 인간에 대한 사랑 같은 그런 것 때문에 고민하면서 사회주의자가 된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사회주의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전쟁의 와중에서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는 상황 속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도, 바로 앞에 있는 인간에 대한 미움이 앞섰을 것은 분명할 것입니다. 저 자신도 그랬을 것입니다. 분명히 제가 만약에 전쟁 때 살았으면 말입니다. 그런 분들하고 정서가 안 맞고, 안 맞는 과정에서 굉장히 고민을 했고, 그런 분들을 사랑하지 못했고, 그리고 무의식 대중, 교도소에서 무의식 대중은 누구냐, 교도소에서 무의식 대중은 말단 간수와 그리고 청소를 하러 왔다갔다하는 잡범들입니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간수들은 우리에게 해코지를 합니다. 빨갱이라고 해서 해코지를 합니다. 빨갱이 아닌 사람도 빨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간수들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느냐? 간수들이 적이냐 대중이냐 하는 문제들을 가지고 고민했습니다.

저는 간수들은 대중이라고 봤습니다. 무의식 대중이라고 봤습니다. 우리가 무의식 대중은 정치의식이나 사회의식이 없는 대중인데, 이런 사람들은 우리가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해방되고싶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고난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박해를 가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되느냐, 저는 이런 사람들을 어디까지나 대중이라고, 마지막 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점에서도 제가 살고 있던 다른 사람들하고 생각이 달랐던 것입니다. 얼마나 외로운 일입니까? 그 같이 사는, 그 징역을 같이 사는 사람, 같이 고생하는 사람이랑 사람들과 정서가 맞지 않는다는 것, 이런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대중들 앞에서 왔다갔다하면서 청소하면서 해코지하고 욕이나 하는 그런  잡범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 그 얼마나 괴로운 것입니까

이 부분에서 저는 인간적인 한계, 벽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벽 같은 것을 느끼고 이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나는 실천가가 되든 혁명가가 되든 무슨 주의자가 됐든, 이건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거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되는가? 나 자신을 상대화해야 하는데, 나 자신을 상대화할 무언가가 없었습니다. 무언가가 있어야 상대가 되는 거죠. 나 혼자만 있으면 상대화가 될 수 없죠. 그러기 위해서 신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신은 우리를 상대화해주는 하나의 기준입니다. 우리가 신이 없으면 자기가 절대자입니다. 그리고 신이 있으면 신과 비교하면서 자기가 상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저는 신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신앙은 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신앙도 역시 그런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수가 신의 아들이었는지 아니었는지 그것은 모르겠습니다. 어찌됐든 예수는 항상 신을 바라보면서 자기 자신을 상대화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분명히 유물론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께서 알 수가 있을 겁니다. 유물론적인 사고방식을 다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신앙적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이것은 유물론적인 것하고, 그러니까 객관주의하고 주의적인 것 주관적인 것, 이것이 절묘하게 예수 속에서 혼재하고 있습니다.

유물론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통속적인 유물론에 빠지지 않고 그렇게 그 어떤 인간해방운동 속에서의 실존입니다. 하나의, 거의 완벽한 실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모습일 수가 있는가! 그것은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를 생각했을 때 예수는 신 때문에 그랬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예수에게 만약에 신이 없었더라면 예수는 그렇게 절묘한 조화를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제가 신 없이 반쪽으로 살았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굉장히 추상적으로 되었는데요. 저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가 시간도 아깝고 또 구체적으로 설명할 시간도 없습니다. 예수의 어떤 부분이 유물론적이었는가 하는 이야기는 그런 어려운 문제는 저한테 묻지 마시고 다음 번에 강의하실 박성준 선생님한테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고민을 하면서 신앙을 가지려면 유물론을 포기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저는 저를 키워준 것이 유물론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를 키워주었고 그리고 제가 그 비참한 사회 상황 속에서 그  불행한 사람들, 즉 핍박받고 힘든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동정심을 가질 수 있었고, 그 사람들 편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유물론 철학 덕분입니다. 저를 키워준 그 유물론 철학을 지금 내가 신이 필요하다고 해서 내팽개칠 수가 있는가. 이런 문제가 굉장히 고뇌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그러면 어떻게 했는가. 유물론도 잡고 신도 잡을 수 있지 않느냐, 신앙도 잡을 수 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유물론자도 신앙을 잡을 수가 있을 것 같다는데서 제 사색은 끝났습니다. 이 유물론의 반대개념은 관념론입니다. 그리고 무신론의 반대개념은 유신론입니다. 이것은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유물론으로 있으면서도 신앙은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을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어디서 차이가 나는가, 가령 신의 은총이라던가 섭리라던가, 그런 부분은 제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이 세상을 올바르게 살려고 하다하다 안되니까 신을 잡으려고 했던 것이지, 신의 은총이라던가 섭리 그것을 느끼는 단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비슷한 것은 느껴봤습니다. 제가 감옥 안에서 이런 이유 때문에 저는 해방신학이라던가 민중신학 같은 그런 계통의 책을 모두 불허 당했기 때문에 감옥 안에서 전혀 못 봤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예수 덕분에 많은 사색을 했다는 것, 가령 예를 들어서 예수복음서를 읽으면서 뭐가 딱 느끼는 거 올 때 “아, 기독교인들은 이런 것을 은총이라고 하는구나” 하는 그런 느낌은 드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은총인지 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예수는 세리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세리를 왜 사랑해야 합니까. 세리는 여러분께서 알다시피 로마제국의 세금징수인인데, 로마제국의 따까리입니다. 말하자면 하수인입니다. 세리를 유태인이 했다는 말이죠. 근데 그 당시 세리들은 민족반역자 아닙니까? 일제 시대 우리 나라에서 보면 일본순사가 되었던 조선 사람 같은 그런 존재였습니다. 세리가 그런 역할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세리를 사랑해야 하느냐 . 아마 그 당시 유태인들 중에는 거의 다가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롯당이던가. 그런 사람들이 굉장히 정치적인 래디컬적 운동을 시도했는데요. 그런 사람들은 아마 정치적인 문제가 깨어져 버리면 예수처럼 강하지 못했을 겁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에 있어서 예수처럼 그 단단한 것을 안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쨌든 제롯당은 세리를 증오했을 겁니다. 우리 나라 독립운동가들이 친일파 순사나 경찰들을 데려다가 처단했듯이, 그 처단하는 것 자체를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처단은 아주 악질은 처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증오를 하면서 처단하는 것과 그리고 우리 뭔가 깊은 역사적인 인식 아래 처단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왜 세리를 사랑하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십니까?

저는 감옥에서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교도관들, 간수들, 불쌍합니다. 간수들은 항상 우리를 핍박합니다. 우리를 끌어다가 두들겨 패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들과 관련한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서대문구치소가 독립문에 있는 데에, 제가 미결 때 거기 살았습니다. 거기서 간수가 아래 위층에서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야간 근무할 때 심심하니까. 죄수들은 전부 다 잠자고 있는 것입니다. 잠자고 있지 않은 사람만 아래 위층에서 근무하는 간수가 두 사람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것이죠. 근데 한 간수가 말하기를 다른 간수에게 '자네는 바깥에서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래?' 그랬다구요. 그러니까 '그런 거 뭐라고 묻느냐' 하니까, 그거 물었던 사람이 항상 남편 직업을 사람들이 물어봐서 아주 곤란하다고 그러더라. 그러니까 위층에 있는 간수가 뭐라고 그랬냐 하면, 우리 마누라는 누가 남편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아, 법무부에 근무합니다' 그렇게 대답한데요. 그러니까 '법무부에서 어떤 직책에 있습니까?' 하고 묻는데요. 그러니까 '한 250명 데리고 있습니다'라고 한데요. 거기에 간수들의 애환 같은 것이 그대로 스며 있습니다. 저는 이 사람들이 굉장히 불쌍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불쌍하다기보다도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자꾸만 이 사람들이 무의식 대중이라는 겁니다

제 이야기는, 무의식 대중이라고 생각한 이 사람들이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간수들에 대한 측은함이 뭔가 가슴에 와 닿을 때, 이 때 저는 예수가 세리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했던 뜻을 뭔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마 같은, 비슷한 뜻일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비슷한 느낌 딱 올 때 이럴 때, 말단 간수들에게 얼마나 잘해줘야 하는가 새삼 깨닫게 되고, 그런 때 뭔가 제가 한 사람의 사회운동가로서 조금 성장했다 하는 느낌이 오고, 이런 것들이 따뜻한 교도소 운동마당을 비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운동마당에서 이런 사실을 홀연히 느꼈을 때 '아, 이거 은총이다' 하는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은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참, 저는 기독교인이 아니니까 은총이 뭔지 배운 바가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예수를 많이 배웠습니다. 성경의 이야기들을 많이 배웠습니다. 누가복음 마태복음 마가복음에서 나타나는 미묘한 차이들, 이러한 차이들에 대해 사색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일일이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가령 마태복음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하고, 마가복음에서는 그런 건 없고, 누가복음에서는 단순히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합니다. 그럼 예수가 어느 말을 했는가? 예수가 마태복음에서 했던 말이 옳은가 누가복음에서 한 말이 옳은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마태복음에서는 산꼭대기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누가복음은 편지를 통해 복음을 썼습니다. 이런 차이에 대해서 우리는 알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냥 신앙이니까 그냥 믿어버리면 된다는 생각, 저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저는 신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이 자기가 뭔가 알려고 노력해야 하고, 신앙으로 행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가령 예를 들어서,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는지 실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는지 이런 문제를 알려고 하는데, 머리로만 알려고 하지 말고 자기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경험, 그리고 신앙의 경험, 역사적 경험, 사회적 경험, 그런 것들을 가져다가 전력으로 그 안에 투입해야 합니다. 복음서 속에 나 같으면 어떻게 이야기했을 것인가? 예수가 만약에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야기했겠는가? 그런 것을 알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은 제가 살아온 모든 지금까지 살아온 45년간을 축적한 치열한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는 마음이 아니라 그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렇게 외쳤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교도소에 있을 때 그렇게 느꼈습니다. 저는 무조건 뭔가 덮어놓고 '나는 이 사람들 편이 되고 싶다' 하고 느낄 때가 있는 것입니다. 뭔가 너무나도 비참한 사람들을 볼 때 이건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덮어놓고 이 사람들 편이 되고 싶다 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저 나름대로의 신앙입니다, 이것이.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할 필요 없고 또 두서도 없으니까. 너무 곤란한 질문은 하지 마십시오

김세준 조금만 더 기다리면 그리스도인이 되실 것 같습니다.

서준식 김세준 씨는 아직도 꿈에서 못 깨어나는군요.(모두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