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 K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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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에 철학이 있는가?
일본현대철학이란 어떤 철학인가?
어제 대화모임에서 나온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 김태창 선생님은 교토 학파의 창시자인 기타로 니시다(Kitaro Nishita, 1870-1945)를 예로 들면서 그의 절대무의 철학, 場所의 철학을 언급하셨다.
나는 감신 대학원 시절 변선환 선생님으로부터 귀가 따가울 정도로 교토 학파에 관하여 많은 말을 들었다. 그러나 이름만 들었지 그 철학의 내용에 대한 가르침은 없었다.
선생님의 학위 논문 가운데 야기 세이이치의 장소적 그리스도론이 있어 읽은 적이 있지만 이해하기도 어려웠거니와 금새 잊었다.
선생님은 기독교-불교와의 만남과 대화에서 붓다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끝내 말씀을 아끼시고 그냥 신비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 말씀을 늘 흐렸다. 아직 어리다고 생각한 신학생들에게 파격적인 말씀으로 받을 충격을 염려하신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이나 대화는 늘 기독교 측에서 심한 의심과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다가 결국 이단 재판으로 귀결되기 일쑤이다. 기독교인들, 특히 목사인 사람들 불교 좀 공부하시라고, 성경을 읽고 신학을 공부하듯 정성스럽게 공부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그 후 이 책 <참 자아의 주님이신 붓다-그리스도>(Der Buddha-Christus als der Herr des wahren Selbst, 1982)를 알게 되었다. 저자인 프릿츠 부리는 바젤 대학 신학부 교수였는데 이 책에서 교토학파의 종교철학과 기독교를 다루었다.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참자아의 주님이시라면 붓다는 불교인들에게 참자아의 주님이시라는 내용이다. 물론 주님은 상징어이다.
- 프릿츠 부리는 교토 학파의 8명의 철학자를 논의하는데,
- 기타로 니시다를 일본의 위대한 철학자요 교토학파의 창시자로,
- 하지메 타나베(Hajime Tanabe, 1885-1926)에게는 “참회의 철학과 죽음의 변증법”을,
-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다이제츠 타이타로 스주키(Daisetz Teitaro Suzuki, 1870-1966)는 “서양인들을 위한 선불교”로,
- 신-이치 히사마추(Shin-ichi Hisamatsu, 1889-1980)는 “무신론적 불교”라는 제목으로,
- 게이지 니시다니(Keiji Nishitani, 1900-1990)는 “禪의 종교철학”으로,
- 요시노리 타케우치(Yoshinori Takeuchi, 1913-2002)는 “불교적 실존주의”로,
- 시추테루 우에다(Shizuteru Ueda, 1926-2019)는 “자기상실적 자기의 삼위일체 속에서 대상적 실체 사유의 돌파”라는 제목으로, 마지막
- 마사오 아베(Masao Abe, 1915-2006)는 “선불교와 기독교”라는 제목으로 서술했다.
나는 이 방대하고 어려운 책보다는 한스 발덴펠스(Hans Waldenfels)의 “절대무(Absolutes Nichts)”라는 책을 복사해서 두세 번 읽은 적이 있다.
주로 게이지 니시타니의 “空의 철학”을 연구하여 제출한 학위논문이다.
1989년 겨울 학위논문 완성을 앞두고 하이데거 생가는 꼭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하이데거의 고향 독일 남부 메스키르히를 찾아 생가와 바로 옆에 있는 교회를 보고 들길을 걷고 하이데거 아키브를 들어갔을 때 마침 거기에는 게이지 니시타니의 흉상이 있었다.
둘 사이의 사상적 깊은 관계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 흉상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후 이 분야를 더 이상 공부하지 못했다.
과정철학 사상이 더해져 하느님은 無이고 空이고....
김태창 선생님은 교토학파의 일본철학은 한국철학 수립을 위한 좋은 거울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신다. 동의하고 싶은 말씀이다.
선불교적 전통에서 서양철학을 연구하고 다시 서양철학을 선불교를 통해 해석하고, 선불교를 서양철학을 통해 해석하는 상호 교류, 만남, 논쟁, 대화 속에서 교토학파와 같은 일본철학이 형성됐으리라 생각한다.
교토학파의 일본철학은 아베 마사오 이후 계승되고 있는가? 잘 모르겠다.
5월 27일이 부처님 오신 날인데 기독교-불교, 불교-기독교의 만남이 한국 사상의 풍요로움을 위하여, 한국인의 정신 건강을 위해, 한국인의 영성 제고를 위해 여러 차원에서 일어났으면 좋겠다. 10명에서 100명이 되고, 1000명이 되고 10,000명이 되고 10만 명이 되고 100만 명, 1,000만 명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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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comments
이찬수
어제야말로 참석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고 죄송했습니다. 결혼33주년 1박2일 여행다녀오느라...^^
김태창 선생님께도 인사여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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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 Kalia
이찬수 교수님 부재의 자리가 컸지만 33주년 결혼기념일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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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범석
멋진 박사님의 통찰과 고민, 그리고 신헉자로서의 기조가 좋습나다.
Reply14 h
Philo Kalia
오범석 공감의 마중글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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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건
학부 시절 스즈키 선사의 <선불교 입문>을 영어로 읽고 싸대기 한대 맞은 강렬한 느낌을 받았죠.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었죠. "당신은 왜 당신의 존재에 대해서 유감을 느끼는가?" 죄책감에 시달리는 기독교인으로서 제대로 각성하게 해준 한 마디였습니다. 그 뒤 스즈키의 물음을 복음적으로 대답할 수 없다면 나의 신앙은 끝나겠다고 생각했었죠.
Reply13 hEdited
Philo Kalia
건차 공감합니다. 스즈키의 <서양의 길과 동양의 길>, <선불교에 대한 강연> 등을 읽었던 강렬한 느낌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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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
목사들이 불교를 공부하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일천하지만 불교를 공부할수록 그 깊이에 매료되어, 내가 믿는 하나님, 내가 알지 못했던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
Reply13 h
Jongsoo Lim
연등은 곱고, 아롱진 얘기는 깊고 어려우니요. 연등 한 점 걸겠습니다. "깨닳음을 허하소서."
May be a doodle of lighting and 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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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 Kalia
Jongsoo Lim 아롱지다는 말, 참 좋네요. 연등이 세상 곱게 만들어 인간들 아롱져 大通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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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규
페북에서
가장 좋은글 늘 감사합니다 심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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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 Kalia
변상규 변교수님, 안부인사 전합니다.
마중글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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