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9

예지(叡智)

* 叡(예) *

*【叡】(밝을 예)  1. 밝다. 사리(事理)에 깊이 통함. 叡智. 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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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叡智]<예지>

①사물을 꿰뚫어 보는 뛰어난 지혜. 예지(叡知).
②우주(宇宙)의 본체(本體)인 이성(理性).
③기억력ㆍ상상력ㆍ사고력을 써서 이론적ㆍ실천적인 문제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정신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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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孟子)의 4단(四端)과 4덕(四德). 
불교열반의 4덕 : 상(常, 항상), 낙(樂, 기쁨), 아(我, 나), 정(淨, 깨끗함) 
○ 서양에서의 4덕 : 예지(叡知), 용기(勇氣), 절제(節制), 정의(正義).


책과 독서 그리고 글쓰기에 대하여
8 June 2020 — 전문적인 지식이 넓어지면 학자가 되고, 작가의 예지(叡知)가 깊어지면 사상가로 진급(進級)합니다. 학자의 저술은 다른 학자에게서 빌려오는 것이 ...

말이 별로 없는 그저 온순하고 의젓한 인품으로만 알았는데, 이처럼 인간의 기미(機微)를 샅샅이 통찰할 수 있는 예지(叡知)의 소유자 더구나 남녀의 애정을 예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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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소/프랑스 사상가 소설가>

10세 때에는 과자로 움직이고,
20세 때에는 애인, 
30세 때에는 쾌락, 
40세 때에는 야심, 
50세에는 식욕에 움직인다. 
어느 때가 되어야 인간은 그저 예지(叡知)만을 추구하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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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꾸짱!!@mayareki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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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일본 아줌마입니다. 
한국에 와서 24년째! 
남편은 한국사람이고 2남3녀의 한국인엄마입니다. 
일본어 강사 18년째. 상담심리 공부 6년째.(자격증 있음) 
20대는 한일관계가 좋아지면 좋겠다고 국제결혼을 선택했지만 여러가지 어려웠고 
30대는 남편을 바꾸겠다고 했으나 안됐었고 
40대는 아이들을 바꾸겠다고 했으나 안됐었고 
50대가 돼서 결국은 바꿀 수 있는 것은 자기 마음밖에 없다고 알아차려서 
지금은 마야력을 통해서 "진짜 나"를 찾는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마야력의 예지(叡知)와 나의 경험이 여러분의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음mm"과의 만남...기대하세요^^ 
"감사로 지금을 산다, 당신은 더 하나의 나, 모든 것이 준비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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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叡智)

책과 독서 그리고 글쓰기에 대하여

흔히 독서(讀書)는 글을 통하여 빛을 발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책 속에 들어가서 별을 찾는 탐구(探究)라고 합니다. 또한 서재에서 우주와 대화를 나누는 소통이라 합니다. 이렇듯 독서는 깊은 체험을 통해 지식의 정수를 터득(攄得)하는 평생의 일입니다.

그러니 책을 읽는 것만이 풍부한 지식을 장악(掌握)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지의 세계를 찾는 영감을 불러와야 지고(至高)의 예지(叡智)와 만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학식이 넓고 재주가 많음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옛 문인이 말했습니다. “10년은 독서에 바치고, 10년은 여행에 바치고, 10년은 그 체험을 보존 정리하는 데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 보존(保存)과 정리에 10년씩 허비하기는 너무 낭비입니다. 빠르면 몇 년이면 족합니다. 대신 독서와 여행에 많은 심혈을 기울이면 좋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그 몇 배라도 많은 시간을 바쳤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생은 너무 짧습니다. 한 백년을 살아야 하니 시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문장은 고독이나 불행에 봉착(逢着)했을 때 비로소 걸작(傑作)이 나온다고 합니다. 심장을 파고드는 인생의 아픔을 겪지 않은 사람은 생활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때문에 피눈물이 나도록 감동을 주는 좋은 글이 나오기 힘듭니다. 그래서 부유한 사람보다 불우한 사람의 글이 더 감화력(感化力)이 있다고 합니다.

글짓기에서 체험보다 더 좋은 스승이 없다는 말은 이와 같은 이치(理致)에서 나옵니다. 상식으로 돌아가서 진리를 논증(論證)하다보면 논리적 사고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논리를 전개하다보면 언어를 만들어야하고 그 언어를 또 설명(說明)하려면 논리가 따라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진리는 언어에 의해 모호해지고 왜곡(歪曲)되며 잘못 표현되어 진리라는 것이 죽도 밥도 안 되고 맙니다. 지금까지의 대량의 글들은 많은 시비만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조(思潮)를 만들어 내려면 또 새로운 학파가 생기게 됩니다. 여러 학파가 많이 생길수록 모순당착(矛盾撞着)의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해서 글은 사람에게 가장 가까이 있어야 할 학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 가장 멀리 떨어져나가 있으면 심지어 지식무용론(知識無用論)까지 나오게 됩니다. ‘현자(賢者)는 무언, 능자(能者)는 담화하고, 우자(愚者)는 논한다’는 말처럼 말을 많이 하면 그 사람이 경솔하고 어리석어집니다. 성현은 스스로 직접 체득한 삶을 말하고, 능자는 현자의 말을 하고, 우자는 능자(能者)의 말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언수궁(多言數窮)은, 말이 많으면 탈이 많다는 경구(驚句)가 생겨납니다.

인간은 책이 있어 말을 할 수 있고 독서하는 서적이 있어 즐거움이 있습니다. 주당(酒黨)은 술이 있어 말을 할 수 있고 마시고 취해서 유쾌해 질 수 있습니다. 만일 행락객(行樂客)이 꽃과 달이 없다면 무얼 즐길 수 있을까 하고 한탄하게 됩니다. 다행히 책이 있어 독서의 즐거움이 있고, 술이 있어 취하는 흥락(興樂)이 있고, 꽃과 달이 있어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책과 술과 꽃과 달을 즐기면서 노닐지 않으면 좋은 문장이 나올 수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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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덕경, 36장

움츠려 들려고 하는 것은
틀림없이 잠시 동안 크게 확 펼치게 되며,
쇠약해지려고 하는 것은
틀림없이 잠시 동안 드세게 강해지고,
떠나버리려고 하는 것은
틀림없이 잠시 동안 더불어 친하게 함께 지내며,
빼앗으려고 하는 것은
틀림없이 잠시 동안 베풀어 주는 것이다.
이를 일러 미묘한 움직임을 알아채는 예지(叡知)라 하는데,
부드럽고 약하면서도 억세고 강한 것을 이길 수도 있다.
그리고 물고기가 연못 밖으로 벗어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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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후의 세계(죽음 이야기) 3.-

사람은 육체와 생명 자아가 방출하고 있는 에ㅡ텔체가 유체의 중간에 위치해서 육체의 육체적, 물질적 구조를 통일적으로 유지시키고 옹호하는 작용을 하였습니다.

에ㅡ텔체가 이탈된 육체는 분해되고 마는 것으로 확증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은 육체 아닌 유체 영체 등 자아의 또 다른 자기표현의 몸을 구성하는 임무가 있습니다.

에ㅡ텔체는 타계의 거주자와 교통 연락을 할 수 있고,
영매들은 타계와 의사전달 대화도 할 수 있습니다.

육체 내부에서 서로 중첩하면서 여러 가지 다른 기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육체, 유체, 영체, 본체는 서로 침투하고 서로 겹쳐 있으면서 제각기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육체는 주로 욕망을, 유체는 감정을, 영체는 이성을, 본체는 예지(叡知)를 관장하고 있습니다.

에ㅡ텔체의 특징은 마음의 상태, 생각하는 것을 예민하게 반영합니다.
고정적이 아니고 유동적 입니다. 시공을 초월하되 자아가 운용하는 기관입니다.
살았을 때 육체 구석구석에 일체를 이루고 죽음에 이르러서는 그 생명핵심과 함께 육체를 벗어나 영의 세계에 살게 됩니다.

영의 세계도 우리의 현계에 침투되어 있습니다.
죽으면 영혼은 옹색하고 둔중한 육체에서 벗어나 보다 맑고 경쾌한 의식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백년 뒤엔 내 살과 피는 한 방울의 물이 되여 갈증 난 나그네 목을 적셔 주겠지 !

육체를 떠난 영혼은 자기 시체에서 150cm 정도 높이에 떠서, 보고, 듣고, 비약하고(날고), 음식을 운감 하고(먹고), 의사를 전달하는 5가지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처음은 자기가 죽었는지 ?
잘 모릅니다. 마지막 숨을 몰아 쉴 때부터 아주 편안하고 시원하고 경쾌한 기분으로 자기 시체를 바라보고 가족들이 울고 있으면 자기는 편하다고 울지 말라고 하나 산 사람은 알아 들을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