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1

왜 우리는 '번뇌를 여의'는 걸 두려워할까?


왜 우리는 '번뇌를 여의'는 걸 두려워할까?

'여의다'는 슬픈 이별을 말한다
by무루 MuRuJan 19. 2016

자료를 정리하다 '번뇌를 여의다'라는 표현을 보았다. 그리고 '여의다'의 뜻이 무척 궁금해져서 검색을 하던 중 우연히 아래 칼럼을 보았다. 2015년 1월에 쓰인 것이었다. 그리고 이 칼럼을 통해 이별을 뜻하는 '여의다'가 슬픔이 가득한, 공허함과 쓸쓸한 느낌의 말임을 더 선명히 알게 되었다. 우리가 잘 아는 대표적인 표현이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이다. 주로 죽음에 의한 이별과 슬픈 이별의 경우에 쓰인다.(우선 아래 칼럼의 일독을 권한다)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3090360
[이 아침에]여의다의 뜻

'여의다'라는 말은 사용하기가 좀 그렇다. 제일 먼저 생각하는 표현이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고'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여의다'라는 말은 슬픔이 가득한 말이다. 공허한 느낌으로

www.koreadaily.com

그런데 처음의 문장이었던 '번뇌를 여의다'와 연결하여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번뇌'란 결코 헤어지기에 슬프거나 저어되는 대상이 아닌데 왜 '여의다'라는 표현이 쓰였을까? 만약 할 수만 있다면 다들 벗어나고 싶은 게 번뇌인데 말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사실 번뇌와 헤어지기 싫어한다. 번뇌를 놓기 싫어한다. 그래서 슬픈 이별인 '여의다'는 표현이 은연 중에 사용된 것이다.

무슨 말이지? 할 수만 있다면 걱정, 고민, 불안, 불만의 느낌과 생각인 그 번뇌를 다들 놓고 싶어 하는 거 아닌가?

물론 표면적으론 그런다. 그런데 기실 번뇌란 '나쁘고 부정적인 느낌과 생각'들만이 아니다. 번뇌는 우리 인간이 가지는 모든 느낌과 생각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무심한 것이든 모두. 이게 많이 간과되고 있는 부분이다.

말하자면 번뇌는 마치 망나니처럼 행동하는 식구와 같다. 자식이든 형제든 부모든 말이다. 혹은 오래 사귀고 있지만 이제는 서로 괴롭히고 고통만 주는 연인이나 파트너일 수도 있다. 골치 아프지만 우정을 배신할 수 없는 친구도 가능하다. 뭔가 못마땅하고 괴롭지만, 뭔가 이상하지만 그동안의 정과 익숙함 때문에 혹은 인연 때문에 쉽게 갈라지지 못한다. 헤어지지 못한다. 이미 내 가슴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아무리 골칫거리라 해도 어떻게 내 가슴의 일부를 떼어낼 수 있겠는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런 가족, 연인, 친구, 지인 등과 '여의어야' 한다 말은 아니다. 위 말은 그냥 비유상 그렇다는 말이다. 실제 관계에선 대부분의 경우 최대한 지혜를 발휘해서 나와 상대를 개선시키고 관계를 개선시키는 게 가장 좋다. 그렇게 해야 한다. 물론 정 안되면 갈라서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번뇌'는, 간단히 말하면 우리의 생각이다. 우리는 주로 부정적 생각 등만 번뇌라고 여기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모든 생각'이 사실은 번뇌이다. 많이 간과되던 이 부분을 잘 파악해야 비로소 뭔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그럼 '생각'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하나? 그래야 번뇌를 여의게 되나?

물론 그건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 생각을 하지 않을 순 없다. 오히려 생각은 아주아주 잘 하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한다. 좋은 도구이니까.

'번뇌를 여의다'는 표현은 그만큼 우리 인간이 자신의 생각 그 자체와 헤어지기 싫어한다는 뜻이다. 부정적인 생각만이 아니라 생각 그 자체와. 당연하지 않은가? 우리의 생각이 곧 우리 자신인 양 여겨지고 있는 상황에선 말이다.

하지만 '생각과 헤어지기'는 현상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인간의 뇌와 의식의 기능과 구조가 그렇다. 우리는 심지어 설사 그게 가능하다 해도 워낙이 자신의 생각과 자기를 동일시하는 패턴이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자신을 부정하는 듯 느껴지고 여겨지기에 '생각을 부정하거나 멈추거나 여의는 것'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거부한다.

이것은 우리의 가장 큰 오해, 오류, 착각 중에 하나이다.
'생각을 여의'는 것을 '나를 여의'는 것으로 아는 것.

그런데 여기서 한 층 더 깊이 들어가 볼 수 있다. 사유의 층을 말이다.

사실은 '나'라고 하는 주체 설정도 단지 하나의(a) '생각'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론 생각을 여의는 게 나를 여의는 것이 되는 게 맞다. 아마 '어, 그런가?' 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 그렇다.

아마 그래서 우리 모두는 생각을 여의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 비밀을 은연중에 다들 느끼고 알고 있기에. 그렇지 않은가? 이미 '생각과 나의 동일시'가 단단히 패턴화 되어 있는 우리에겐, 생각(번뇌)을 부정한다는 것은 곧 나를 부정하는 것이 되는 게 당연하다. 비록 의식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럼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까? 번뇌를 여의곤 싶은데 정작 우리 속마음은 여의치 않으려 함에서 오는 이 미묘한 역설적 상황.

방법은 한 가지인데,
바로 번뇌의 정체를 알아채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생각의 정체이다.
또 다른 말로 하면 '나라는 주체 설정'의 정체이다.

애초에 그런 인위적인 '주체 설정' 따위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래서 그 가상의 주체가 하는 생각을 그 가상의 주체와 동일시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래서 그 생각과 동일시가 여러 가지 고통, 고민, 번민, 번뇌로 전변(변성) 되지 않게 되는 것.

(주의할 것은, 그런 주체 설정, 동일시, 생각을 안 해야 하거나 그런 게 떠오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상태는 예를 들어 멍 때릴 때, 잠잘 때, 기절했을 때 등에서도 항싱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다. 깊은 사마타 명상 때도 일어난다. 그게 아니라 그것들의 정체와 본래 기능을 잘 알고, 그래서 본래 기능대로 잘 써주면서 다만 불필요한 대접과 대응, 매몰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굳이 의도적으로, 인위적으로, 애써서, 노력해서

번뇌를, 생각을, 나를 여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체가 무언지 알기에

저절로 여의게 되는 흐름.

사실은, 정체를 알면 더 이상 여의고 말 것도 없게 되는 흐름.


[출간 공지] 책 '자기 미움'의 출간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종이책 & 전자책)

- 가장 가깝기에 가장 버거운, 나를 이해하기 위하여

독자 여러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책 '자기 미움'이 출간되었습니다. 좋은 출판사 '북스톤'에서 종이책과 전자책 모두로 정성 들여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동안 브런치에 연재해 온 '자기 미움' 심리와 일상의 여러 부정적 감정들로부터 자유로게 되는 방법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습니다. 이 책이 많은 분들에게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책에는 또한 정체성 문제, 감정 다루기, 상처 넘어서기, 관계 문제 해결하기에 실제 도움이 되는 내용들과 구체적인 실천법들이 담겨 있습니다.

- 이경희 작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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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루 MuRu무루센터 출간작가
무루의 깨달음저자

무루 이경희. 저서 <무루의 깨달음> <자기 미움>. 무루센터 원장. 심리상담/트라우마 치료. 명상/깨달음 안내. www.facebook.com/MuRu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