希修
< 모든 '사랑'이 이타적/윤리적인 건 아님을 인정하는 정직이야말로 이타행의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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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사회운동가나 자선사업가의 위선이나 갑질에 대한 뉴스를 가끔 접한다. 어떤 연예인들은 자신을 너무 '사랑'했던 열광적 팬에 의해 살해되기도 하며, 자식을 위한답시고 자식을 자신의 장난감처럼 통제하는 부모들도 많다. 동서고금 문학과 예술의 영원한 주제가 남녀간의 사랑이지만, 죽고 못 산다고 결혼해 놓고서 원수가 되어 이혼하는 이들도 세상엔 흔하다. 왜 그럴까. 애초의 그들의 마음이 진심이 아니었다기 보다, 그 진심 속에 섞여들어간 자기중심주의를 인지 못 하고서 자신의 진심은 오직 이타적이라고 스스로를 미화, 기만한 탓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즉 '惡意' 아닌 '스스로에 대한 무지/부정직'이 문제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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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4가지 음식이 있다고 불교는 말한다. 첫째, 밥과 빵 같은 물리적 음식. 둘째, 감각적 자극. (감옥의 독방에 수감되는 것이 일종의 고문이 되는 이유.) 셋째, 의도/의지. (우울과 무력감에 빠져 있던 사람도 새로운 목표가 생기면 활력을 되찾음.) 넷째, 의식. 다시 말해,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는 그것이 본인에게 감각적, 정서적 혹은 관념적 만족, 즉 '음식'이 되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된다.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들은 기본적으로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라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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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의를 위한 활동에서 얻는 관념적 만족/보람은 쇼핑이나 음주가무에서 얻는 즐거움보다 물론 훨씬 숭고하며, 또 그런 활동의 결과가 실제로 사회 전체에 크나큰 공헌을 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은 칭송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는 그런 활동이 우선 자기만족을 위한 것임을 스스로 정직하게 인지, 기억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회적 약자를 팔아먹는 '본의아닌' 결과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노력이 1차적으로 자기 자신의 만족/보람을 위한 것이었음을 잊지 않는 사람은 사회의 발전 자체를 보상으로 여길 것이고, 따라서 보상심리에서 부와 권력을 탐하는 老慾으로 타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의 일류대 간판을 통해 남들 앞에서 뻐기고 싶은 자신의 티끌만한 욕망까지 찝어 낼 정도의 예민한 양심을 지닌 부모는 아이를 무리하게 푸쉬하지 않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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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tā (goodwill, 慈)를 목숨걸고 지키라고 가르치신 부처님이 pema (love, 사랑)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부정적이셨던 이유도, Beecher 부부가 가족 간이든 친구 간이든 personal하고 감정적인 사랑은 불건강하고 미성숙하며 자기중심적인 '에로스'로, impersonal한 사랑은 '아가페'로 분류한 이유도 같은 맥락 아닐까 싶다. 내 의식에선 아무리 누군가를 사랑하고 위한들, 나의 자기중심성을 벗어나지 못 하는 한 '염소에게 고기 갖다 주며 먹으라고 강요하는 사자의 염소 사랑' 같은 모습을 우린 때때로 보이게 된다. 진정으로 상대를 사랑한다면 우선 존중해야 하고, 진정으로 상대를 존중한다면 혹시라도 내가 상대에게 부담주거나 민폐끼치지 않을까에 나의 관심이 집중되지, 상대가 내 기대에 부응하느냐 나를 서운하게 하느냐는 내게 덜 중요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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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상대를 존중하고 사랑할수록 내 감정과 입장은 덜 중요해지는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자기존중도 포기하고 착취나 학대까지 감수해야 사랑이라는 말은 결코 아님), 내 감정과 입장을 중시할수록 A에 대한 나의 사랑은 결국 A를 소비하는 행위에 불과해지는 것. 그렇기에 부처님도 Beecher 부부도 사적 감정적 사랑을 본질적으로 미성숙하고 자기중심적인 것이라 판단한 것. 어떤 사람이 "나는 개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 그 실상은 개고기를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고, 심심할 때만 갖고노는 장난감으로서 좋아하기 때문에 하루종일 혼자 외로움에 사무치도록 방치하는 학대일 수도 있다. 자신의 필요나 '허기' 때문에 상대방을 소비/이용할 뿐이면서 그걸 '사랑'이라 우기고 상대의 '보답'/'호응'을 바라는 채권자 행세는, 이기심과 위선이 결합된 비윤리의 극치. "내가 너를 좋아하니 너는 나와 사귀어야 한다"며 폭력을 휘두르는 남성과 다를 바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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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죄를 지었을 때 부모를 숨겨 주어야 한다는 게 공자의 견해이고, 부모를 등에 업고 함께 도망가야 한다는 게 맹자의 견해이며, 한비자는 내 부모라도 고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중국문화권에선 법가보다 유가가 훨씬 큰 영향력을 가져 왔고 현재까지 건재하기에, 情이라고 하는 에로스 (사적 감정적 사랑)를 윤리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가까운 사람의 비위를 무조건 무제한 맞춰 주는 것이 지상 최대의 ‘윤리’이기에, 인연을 인질잡은 착취나 부패도 "서로 돕고 산다"로 포장되기 일쑤이고, 건강한 내부비판은 "내부총질"이라며 금기시되어 왔다. 양측 모두 행복한 동안에만 유효한 에로스를 최고의 윤리로 여기는 착각에서 벗어나 각자의 기분/감정은 1차적으로 각자의 책임이라는 사고가 뿌리내려야 해결될 문제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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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줄어 내 수입이 줄어도 좋으니 모든 사람들이 제발 건전한 생활습관과 운동으로 건강하게 살기를 바란다'라는, 제대로 된 의사가 가질 그런 마인드가 바로 부처님이 가르치신 mettā이다. ('정서'보다 오히려 '의지'에 가깝다.) 내가 상대를 좋아하느냐, 긍정적으로 평가하느냐, 상대와 친하게 지내느냐 등의 문제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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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Success and Failure" by Marguerite and Willar Bee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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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자비희사'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09580515412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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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그럼요. 다 자기만족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