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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정사
陽明精舍(양명정사) 가는 길은 멀고 설었다. 항공망이 촘촘하고, 고속철과 고속도로가 뻥뻥 뚫린 대륙이지만 시골에는 간이역과 오솔길이 여전했다. 버스를 몇 차례 갈아탄 끝에야 다다른 곳은 구이저우(貴州) 성의 구이양(貴陽)하고도 롱창(龍場). 명나라의 大儒(대유) 왕양명의 흔적이 역력한 마을이다.
주희의 신유학을 혁신했던 개신(改新) 유학, 양명학이 발원한 장소인 것이다. 물론 500년 전 왕양명을 추모하기 위해 험한 길을 마다한 것은 아니다. 관심은 동시대, 그리고 미래를 향해 있다. 주자학과 양명학에 이어 또 한 번의 유교 혁신을 궁리하고 있는 당대의 민간 유학자 장칭(蔣慶)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또한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타지에서 활동하다가 낙향하여 양명정사를 꾸린 것이 2001년이다. 수양과 강학을 병행하는 현대판 書院(서원)이라 하겠다.
장칭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미국이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 구내 서점에서 중국의 유교 부흥에 관한 신간을 접했다. '유교 헌정'에 관한 그의 논의를 영어로 먼저 접한 것이다. 매우 인상적이었으나 소략하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가 출간한 중국어 원서들을 몽땅 구하기로 했다.
미국 명문 대학이 구축해둔 글로벌 지식망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미국과 중국은 물론 홍콩에 있는 책까지 죄다 수집해 주었다. 며칠을 몰입해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독창적이고 독보적이었다. 좀처럼 접해보지 못한 정치 이론이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나 선생을 직접 만나게 되는 것이다. 설렜다.
그는 1953년생이다. 문화 대혁명으로 하방했다, 개혁 개방으로 대학 공부를 할 수 있었다. 1978년 충칭에 있는 서남정법(西南政法) 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한다. 1982년부터는 같은 학과의 교수가 된다. 1988년부터 2001년까지는 개혁 개방을 상징하는 도시 선전의 행정학원 교수로도 있었다. 2001년 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차린 민간 학당이 바로 양명정사이다.
학술에 주력하던 그가 논객으로 주목받게 된 계기가 있었다. 1989년 6.4 천안문 사태이다.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가 잔인하게 진압당하면서 5.4 정신의 복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5.4의 핵심 정신이 바로 '민주'(와 과학)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칭은 전혀 다른 견해를 피력했다.
대만(타이완)의 신유가 잡지에 발표한 논설이 '중국 대륙 유학 부흥의 현실 의의 및 당면 문제'였다. '5.4'와 '문혁', '6.4'를 하나의 흐름으로 파악하여 서구 민주에 대한 낭만적 열정이 중국 정치를 거듭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관점을 제출한 것이다. 장차 중국 정치의 출로를 유학의 부흥에서 구한 선언적 문헌이었다.
그 후 자기 발언에 책임이라도 지는 양 30년 가까이 유교 헌정의 제도 입안에 주력해 왔다. 일각의 비판처럼 그는 '유교 근본주의자'인가, 아니면 시세를 앞서간 선각자인가? 어느 쪽이든 그와의 대화는 충분히 흥미롭고 인상적이었다. 헛걸음이 아니었다.
정치 유학
이병한 : 흔히 선생님을 '대륙 신유가'로 분류합니다. 그간 신유가라 하면 대만과 홍콩, 미국 등 대륙 밖의 학자들이 많았는데요. 대륙의 신유가라면 어떤 차별점이 있을지요?
장칭 : 정치 유학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대만의 신유가들도 정치에는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정치를 논하는 유학'일 뿐이지, '정 치유학'은 아닙니다. 정치 유학의 핵심은 유학에 바탕을 둔 제도 건설에 있습니다. 그러나 대만의 정치는 서방의 민주정입니다. 대만의 30년 민주화 과정에 유가의 목소리는 거의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날이 서구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 문화에서 가장 동떨어진 민주진보당(민진당)이 집권도 하지 않습니까? 괜히 '대만 독립'이 불거지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진보당은 문화적으로 비중국적입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서방의 정치이지 동방의 정치가 아닙니다. 신유가들이 아니라 반(反)유가들이 대만 민주를 이끌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적 정치 제도를 따를 뿐, 유가적 정치 제도를 탐구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정치인의 자질과 덕목을 따지는 '심성 유학'이 있을 뿐입니다.
이병한 : 심성 유학의 측면에서 평가해줄 지점은 없습니까?
장칭 : 심성 유학은 본질상 덕행 수양입니다. 수신(修身)과 공부(工夫, 쿵푸)이지요. 그런데 대만과 홍콩의 신유가들은 심성 유학을 '쿵푸'가 아니라 '이성(reason)'의 영역으로 축소시켰습니다. 유독 칸트 전공자가 많은 것도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유학을 서구의 철학이라는 사변적인 학문의 하나로 강등시킨 것입니다.
중국 유학은 서방 철학처럼 '신의 뜻'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내 안의 天性(천성)을 갈고 닦아 人性(인성)을 밝히는 것이 과제였습니다. 논리의 구축이 아니라, 수행을 통하여 덕을 쌓고 聖人(성인)에 이르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렇게 보자면 대만의 신유가들은 명백하게 서구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학과나 사학과 등 특정 학과의 전문가로 자족하는 것이지요. 대학에서 연구하고 강의하는 것을 업으로 삼아도 어색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유학은 분과 학문이 아닙니다. 공자는 사상가, 교육가, 사학자, 경학가, 문헌학자이자 정치가, 외교가, 종교가, 법률가이며, 예학자이고 음악가였습니다. 아니 공자는 그 어느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유학자'였을 뿐입니다. 大儒(대유)의 전통은 항시 그러했습니다.
이병한 : 그래서 쿵푸학(工夫學)의 재건을 주장하시는 것이지요? 그 중에서도 저는 '어린이 독경(讀經) 운동'이 인상적이더군요. 어린 친구들이 사서삼경을 합창하는 운동을 주도하셨습니다.
장칭 : 경전은 본래 소리 내어 읽는 것입니다. 성대를 울려서 내 몸을 공명시키는 것입니다. 소리 내어 읽기는 함께 읽기, 더불어 읽기이기도 합니다. 내 몸과 남의 몸, 서로의 몸을 경으로 단련시킴으로써 도덕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경이 본디 (음)악이었던 까닭입니다. 함께 노래하며 도덕적 학습 공동체를 형성해 갔던 것이죠. 혼자서 아무리 논리적 이성을 연마한다 한들 덕성을 갖춘 대장부, 군자에 이르지는 못합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 가치입니까? 저는 응당 쿵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병한 : 유학을 공리공담이라고 비판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한국에서는 '공자 왈, 맹자 왈' 하면, 뜬구름 잡는 흰소리를 말하거든요. 정치 유학의 현실적 근거가 있을까요?
장칭 : 정치 유학은 공자의 <春秋(춘추)>에 바탕을 두고 창립한 학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제도개혁, 즉 '改制立法(개제입법)'을 가장 중시합니다. 쿵푸학으로 사람의 도덕 생명을 바로 세우고, 정치 유학으로 王道(왕도) 정치를 재건하는 것입니다. 서방에서는 마르크스주의가 예외적으로 정치 실천을 강조하지요.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개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유학과 꽤 흡사한 구석이 있습니다. 유학의 관심 또한 세계의 개조에 있기 때문입니다. 유학은 줄곧 사회와 정치에서 도덕적 이상을 구현하는 실천학문이었습니다.
이병한 : 실제로 근대 유럽의 정치 혁명을 '맹자의 충격'으로 접근하는 연구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易姓革命(역성 혁명)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맹자>의 번역이 유럽의 정치적 각성을 촉발했다는 것인데요.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사무라이의 사대부화'라고 이해하는 관점이 제출되고 있듯이, 20세기 서구의 공산당원들을 '유럽의 사대부'로 이해하는 독법이 등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칭 : 재미난 비유입니다. 하지만 차이점 또한 분명했습니다. 유가는 계급 혁명, 폭력 혁명을 극구 반대합니다. 覇道(패도)의 정치니까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왕도 정치에 근거하여 세계를 개조하고자 합니다. 德(덕)으로 사람을 감화시키고, 仁(인)으로 천하를 다스려야 합니다. 왕도 정치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20세기의 공산주의자들이 폭력 혁명을 옹호했던 것은 '역사의 필연성'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헤겔의 역사 이성과 마르크스의 과학적 유물사관은 폭력 혁명과 무관치 않습니다.
이상적인 세계상 역시 다릅니다. 유가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조화를 탐구했지, 지배/피지배 없는 유토피아를 몽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민주 정치에 배울 측면이 있습니다. 냉전의 승패가 말해주듯 그들이 제도적 개혁에는 더 능했거든요. 정치 제도적 실천이란 혁명적 열정보다는 합리적 이성의 설계에 바탕을 두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改制立法(개제입법)에 더 근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理(리)와 勢(세)
이병한 : 그럼에도 정치 유학이란 결국 중국적인 사상이고 정치 아닙니까? 넓게 잡아도 중화 세계에 한정되는 게 아닐지요? 보편성이 있을까요?
장칭 :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정치 유학은 결코 협애한 문화 민족주의가 아닙니다. 더 좋은 정치, 가장 좋은 정치를 추구하는 보편주의입니다. 물론 저의 사고는 중국의 역사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보편적입니다. 중국성과 보편성의 종합을 지향합니다.
본디 왕도 정치란 천하의 이념이지 특정 국가의 이념이 아닙니다. 초월적이며 항구적인 道(도)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도'는 역사의 흐름과 세계의 변화로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변하는 것은 오로지 勢(세)일 뿐입니다. 다만 이 보편적인 '도' 또한 필연적으로 특수한 역사와 문화와 결합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야 구체적인 제도로 결실을 맺을 수 있으니까요. 그것이 바로 法(법)입니다. 즉 '법'은 나라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아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도'는 동일한 것입니다.
제가 정치 유학을 주창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난 20세기 중국 정치의 파탄 때문입니다. 혁명에 혁명을 거듭하며 너무나 큰 사회적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정체성의 위기가 가장 심각합니다. 주체성을 지키려다 정체성을 상실한 역설이 일어났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좌/우를 막론하고 서방의 정치를 추구한 것입니다.
정작 중국을 무대로 한 정치에 유학의 理(리)와 문명의 '根'(근)이 결여되었던 것입니다. 중국 문화를 상실한 정치가 100년을 휩쓴 것이지요. '天下爲公'(천하위공)을 사표로 삼았던 쑨원만 해도 달랐어요. 그러나 5.4 이후가 문제입니다. 좌/우 모두 중화 문명의 독특성과 중국 역사의 개별성을 무시하고 서방 민주에 함몰되었던 것입니다.
이병한 : 그래서 6.4도 5.4의 연속으로 이해하시죠? 5.4-문혁-6.4를 동일한 흐름으로 판단하시는 건데요. 좌/우의 편차는 있으되, 탈중국적 정치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일관되었다는 독법입니다. 매우 독특하면서도 논쟁적인 시각입니다.
장칭 : 1919년 5.4 신청년들과 1989년 천안문의 대학생들이 지향했던 바가 무엇이었을까요? '과학'과 '민주'를 달성한 중국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중국과 세계의 일체화, 동질화였을 것입니다. 그 결과 지구상에 다시는 '중국 문명'을 발견할 수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5.4와 6.4의 실현이란 곧 중국의 서구화가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역사의 진보입니까?
이병한 : 그래서 서방의 민주에 반대하시는 겁니까? 중국 문명의 수호를 위해서?
장칭 : 이 또한 국수주의자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와 비슷한 발상을 했던 이가 서방에도 있습니다. 에드먼드 버크 같은 사상가가 대표적이죠. 그는 계몽주의의 대척점에서 인류의 문명과 역사, 종교의 다양성과 존엄성을 수호하고자 했습니다. 그런 그를 가리켜 계몽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라고 성토했지요.
20세기 중국의 비극은 버크와 같은 진정으로 깊이 있는 보수주의자가 없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저마다 혁명파이고 개조파였어요. 자유주의든, 민주주의든, 사회주의든, 기본 성질은 동일합니다. 모두 강렬한 근대주의와 세계주의 경향을 지닙니다. 그래서 자유 민주이든 사회 민주든 인류 역사 발전의 필연적 추세라고 주장합니다. 각자가 인류 최후의 문명을 자부하지요. 그래서 역사 발전의 풍부한 가능성을 무시하고 문명의 다양성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병한 : 20세기 중국의 주류가 혁명파였다는 점은 수긍합니다. 하지만 천편일률이었는지는 단언할 수 없는 것 같아요. 亂世(난세)에 出世(출세)를 거두고 在野(재야)로 침잠했던 유림들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한반도에서도 식민 시기와 냉전기 '민간 유림'들의 문집을 살피면 귀중한 사상 자원을 발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들은 한글이 아니라 한문으로 글을 썼을 지도 모릅니다. '國文(국문)적 근대'가 아니라 '漢文(한문)적 근대'라고 할까요? 물론 여기서 한문이란 중국의 문자가 아니라, 중화 세계의 보편 문자를 뜻합니다. 조선도, 일본도, 베트남도 공유했던 기록 수단이자 사유 도구였으니까요. 이들은 '중화 문명의 근대화'를 도모하지 않았을까요?
장칭 : 공감합니다. 100년의 대란으로도 중화 문명의 맥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유가의 '도'는 여전히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도'에 입각해서 현대인의 민주 정치에 대한 숭배와 미신을 타파해 가야 합니다. 물론 극도로 어려운 과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공자의 '王道(왕도)'도 맹자의 '仁政(인정)'도 당시에는 그만큼이나 지난했던 과제였습니다. 동시대인들의 상식을 넘어서야 합니다. 複古更化(복고경화), 역사로부터 미래를 구해야 합니다.
이병한 : 진보사관을 숙명사관으로 표현하시죠?
장칭 : 유가들은 인류 역사의 정세(定勢)를 믿지 않습니다. 진보 역시 종말만큼이나 숙명적인 시각이지요. 끊임없는 변화가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未來(미래)는 未知(미지), 일체의 가능성에 열려 있습니다. 유가의 사관이 훨씬 더 개방적이지 않습니까? 저는 민주 정치가 천하를 통일한 현상 또한 一世(일세)를 더 지속할 것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일세를 풍미했다 해서 천세만세를 누릴 수는 없습니다.
이병한 : 일세란 한 세대인가요? 혹은 한 세기입니까?
장칭 : 西勢東漸(서세동점)의 한 시대를 뜻합니다.
이병한 : 민주 정치도 '서세'의 산물이라는 뜻입니까?
장칭 : 그렇습니다. 理(리)가 아니라 勢(세)의 결과입니다. 윈스턴 처칠은 '민주주의는 완벽하지는 않을지라도, 그나마 가장 덜 나쁜 정치 제도'라고 말했습니다. 바른 말인가요? 서방의 經世(경세) 경험이 얼마나 됩니까? 관료제와 행정의 역사가 얼마나 되나요? 게다가 적은 인구에 작은 나라들이지 않습니까? 언제 유가의 왕도 정치를 해봤습니까?
어디까지나 그들의 역사적 맥락에서 나온 발언입니다. 아주 긴 시간 동안 신정 정치 아래 있었으니, 민주 정치가 그럴듯해 보일 수도 있었겠죠. 그래서 유럽 밖의 정치 전통은 모조리 신정 정치에 빗대어 살필 의사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영국인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해서 동방인들도 고분고분 따라야 합니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병한 : 왜 그렇습니까?
장칭 : 유가는 반드시 理(리)를 勢(세)보다 더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유가의 책무는 원리를 세워서 추세를 바꾸어 가는 것(立理轉勢)이지, 이치를 어겨가며 세력을 따르는 것(曲理就勢)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曲學阿世(곡학아세)는 금물입니다. 유가는 결점이 많은 민주 정치를 차선으로, 차악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왕도 정치의 '리'를 통하여 민주 정치의 '세'를 바꾸어낼 것을 사명으로 삼습니다.
역사적으로 늘 그랬습니다. 춘추전국 때 어땠습니까? 공맹이 시류와 조류를 쫓았습니까? 아닙니다. 공자는 王道(왕도)를 논하고, 맹자는 仁政(인정)을 말했을 뿐입니다. 그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당대의 시세였던 법가는 유가를 구닥다리(是古非今)라고 맹렬히 비판했지만, 천세만세의 대세가 된 것은 역시 유가였습니다.
이병한 : 20세기 초, 캉유웨이나 박은식의 大同(대동) 또한 그 유가 전통의 계보에 속할 것 같습니다.
장칭 : 역사적으로 진정 가치 있는 사상은 종종 동시대와 불화합니다. 사상의 본질은 비판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민주주의에 비판성이 있습니까? 민주주의야말로 현대 정치를 보호하고 수호하는 보수적 사상입니다. 시세를 따르는 정치일 뿐이죠.
이병한 : 현재 西勢(서세)가 기울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장칭 : 세를 따지는 것(問勢)은 세를 따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역사적 조건이 성숙되지 않았을 때에는 '리'를 밝히고, 세우고, 지켜야(明理、立理、守理)하기 때문입니다. 왕도와 인정과 덕치와 대동을 실행할 수 없는 난세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나 일단 역사적 조건이 무르익으면 '以理待勢'에서 '以理造勢'로, 최종적으로는 '以理轉勢'에 이를 것입니다.
이병한 : 선생님은 스스로를 어느 단계에 위치시키고 계신가요? 중국을 미국과 더불어 G2라고 부르는 판이니, 세를 기다리던 때(以理待勢), 즉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시기는 확실히 지난 것 같습니다. 세를 만들어가는 시기(以理造勢)입니까, 아니면 세를 바꾸는 시기(以理轉勢)입니까?
장칭 : 세가 바뀌고 있습니다.
이병한 : 민주 정치가 저물고 왕도 정치가 다시 일어난다는 말씀일까요?
장칭 : 민주 정치를 받아 안아서 왕도 정치가 더 完美(완미)해진다는 뜻입니다.
政道(정도)와 治道(치도)
이병한 : 왕도 정치의 미덕이 무엇입니까?
장칭 : 왕도 정치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주 정치의 폐해부터 짚어야 합니다. 민주 정치의 최대 병폐는 '民意(민의)의 독재'에 있습니다. 권력의 원천을 국민의 의사에만 맡기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이병한 : 인민주권론을 부정하시는 건가요?
장칭 : 그렇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권력의 합법성이 인민에게만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인민주권 유일론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이병한 : 권력이 국민으로부터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중국 유학자 장칭과의 인터뷰는 2016년 2월 24일(수요일) 계속 이어집니다. (☞관련 기사 : 왜 왕도 정치인가? ② "인민 주권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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陽明精舍(양명정사) 가는 길은 멀고 설었다. 항공망이 촘촘하고, 고속철과 고속도로가 뻥뻥 뚫린 대륙이지만 시골에는 간이역과 오솔길이 여전했다. 버스를 몇 차례 갈아탄 끝에야 다다른 곳은 구이저우(貴州) 성의 구이양(貴陽)하고도 롱창(龍場). 명나라의 大儒(대유) 왕양명의 흔적이 역력한 마을이다.
주희의 신유학을 혁신했던 개신(改新) 유학, 양명학이 발원한 장소인 것이다. 물론 500년 전 왕양명을 추모하기 위해 험한 길을 마다한 것은 아니다. 관심은 동시대, 그리고 미래를 향해 있다. 주자학과 양명학에 이어 또 한 번의 유교 혁신을 궁리하고 있는 당대의 민간 유학자 장칭(蔣慶)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또한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타지에서 활동하다가 낙향하여 양명정사를 꾸린 것이 2001년이다. 수양과 강학을 병행하는 현대판 書院(서원)이라 하겠다.
장칭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미국이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 구내 서점에서 중국의 유교 부흥에 관한 신간을 접했다. '유교 헌정'에 관한 그의 논의를 영어로 먼저 접한 것이다. 매우 인상적이었으나 소략하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가 출간한 중국어 원서들을 몽땅 구하기로 했다.
미국 명문 대학이 구축해둔 글로벌 지식망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미국과 중국은 물론 홍콩에 있는 책까지 죄다 수집해 주었다. 며칠을 몰입해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독창적이고 독보적이었다. 좀처럼 접해보지 못한 정치 이론이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나 선생을 직접 만나게 되는 것이다. 설렜다.
그는 1953년생이다. 문화 대혁명으로 하방했다, 개혁 개방으로 대학 공부를 할 수 있었다. 1978년 충칭에 있는 서남정법(西南政法) 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한다. 1982년부터는 같은 학과의 교수가 된다. 1988년부터 2001년까지는 개혁 개방을 상징하는 도시 선전의 행정학원 교수로도 있었다. 2001년 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차린 민간 학당이 바로 양명정사이다.
학술에 주력하던 그가 논객으로 주목받게 된 계기가 있었다. 1989년 6.4 천안문 사태이다.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가 잔인하게 진압당하면서 5.4 정신의 복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5.4의 핵심 정신이 바로 '민주'(와 과학)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칭은 전혀 다른 견해를 피력했다.
대만(타이완)의 신유가 잡지에 발표한 논설이 '중국 대륙 유학 부흥의 현실 의의 및 당면 문제'였다. '5.4'와 '문혁', '6.4'를 하나의 흐름으로 파악하여 서구 민주에 대한 낭만적 열정이 중국 정치를 거듭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관점을 제출한 것이다. 장차 중국 정치의 출로를 유학의 부흥에서 구한 선언적 문헌이었다.
그 후 자기 발언에 책임이라도 지는 양 30년 가까이 유교 헌정의 제도 입안에 주력해 왔다. 일각의 비판처럼 그는 '유교 근본주의자'인가, 아니면 시세를 앞서간 선각자인가? 어느 쪽이든 그와의 대화는 충분히 흥미롭고 인상적이었다. 헛걸음이 아니었다.
정치 유학
이병한 : 흔히 선생님을 '대륙 신유가'로 분류합니다. 그간 신유가라 하면 대만과 홍콩, 미국 등 대륙 밖의 학자들이 많았는데요. 대륙의 신유가라면 어떤 차별점이 있을지요?
장칭 : 정치 유학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대만의 신유가들도 정치에는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정치를 논하는 유학'일 뿐이지, '정 치유학'은 아닙니다. 정치 유학의 핵심은 유학에 바탕을 둔 제도 건설에 있습니다. 그러나 대만의 정치는 서방의 민주정입니다. 대만의 30년 민주화 과정에 유가의 목소리는 거의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날이 서구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 문화에서 가장 동떨어진 민주진보당(민진당)이 집권도 하지 않습니까? 괜히 '대만 독립'이 불거지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진보당은 문화적으로 비중국적입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서방의 정치이지 동방의 정치가 아닙니다. 신유가들이 아니라 반(反)유가들이 대만 민주를 이끌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적 정치 제도를 따를 뿐, 유가적 정치 제도를 탐구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정치인의 자질과 덕목을 따지는 '심성 유학'이 있을 뿐입니다.
이병한 : 심성 유학의 측면에서 평가해줄 지점은 없습니까?
장칭 : 심성 유학은 본질상 덕행 수양입니다. 수신(修身)과 공부(工夫, 쿵푸)이지요. 그런데 대만과 홍콩의 신유가들은 심성 유학을 '쿵푸'가 아니라 '이성(reason)'의 영역으로 축소시켰습니다. 유독 칸트 전공자가 많은 것도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유학을 서구의 철학이라는 사변적인 학문의 하나로 강등시킨 것입니다.
중국 유학은 서방 철학처럼 '신의 뜻'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내 안의 天性(천성)을 갈고 닦아 人性(인성)을 밝히는 것이 과제였습니다. 논리의 구축이 아니라, 수행을 통하여 덕을 쌓고 聖人(성인)에 이르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렇게 보자면 대만의 신유가들은 명백하게 서구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학과나 사학과 등 특정 학과의 전문가로 자족하는 것이지요. 대학에서 연구하고 강의하는 것을 업으로 삼아도 어색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유학은 분과 학문이 아닙니다. 공자는 사상가, 교육가, 사학자, 경학가, 문헌학자이자 정치가, 외교가, 종교가, 법률가이며, 예학자이고 음악가였습니다. 아니 공자는 그 어느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유학자'였을 뿐입니다. 大儒(대유)의 전통은 항시 그러했습니다.
이병한 : 그래서 쿵푸학(工夫學)의 재건을 주장하시는 것이지요? 그 중에서도 저는 '어린이 독경(讀經) 운동'이 인상적이더군요. 어린 친구들이 사서삼경을 합창하는 운동을 주도하셨습니다.
장칭 : 경전은 본래 소리 내어 읽는 것입니다. 성대를 울려서 내 몸을 공명시키는 것입니다. 소리 내어 읽기는 함께 읽기, 더불어 읽기이기도 합니다. 내 몸과 남의 몸, 서로의 몸을 경으로 단련시킴으로써 도덕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경이 본디 (음)악이었던 까닭입니다. 함께 노래하며 도덕적 학습 공동체를 형성해 갔던 것이죠. 혼자서 아무리 논리적 이성을 연마한다 한들 덕성을 갖춘 대장부, 군자에 이르지는 못합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 가치입니까? 저는 응당 쿵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병한 : 유학을 공리공담이라고 비판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한국에서는 '공자 왈, 맹자 왈' 하면, 뜬구름 잡는 흰소리를 말하거든요. 정치 유학의 현실적 근거가 있을까요?
장칭 : 정치 유학은 공자의 <春秋(춘추)>에 바탕을 두고 창립한 학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제도개혁, 즉 '改制立法(개제입법)'을 가장 중시합니다. 쿵푸학으로 사람의 도덕 생명을 바로 세우고, 정치 유학으로 王道(왕도) 정치를 재건하는 것입니다. 서방에서는 마르크스주의가 예외적으로 정치 실천을 강조하지요.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개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유학과 꽤 흡사한 구석이 있습니다. 유학의 관심 또한 세계의 개조에 있기 때문입니다. 유학은 줄곧 사회와 정치에서 도덕적 이상을 구현하는 실천학문이었습니다.
이병한 : 실제로 근대 유럽의 정치 혁명을 '맹자의 충격'으로 접근하는 연구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易姓革命(역성 혁명)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맹자>의 번역이 유럽의 정치적 각성을 촉발했다는 것인데요.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사무라이의 사대부화'라고 이해하는 관점이 제출되고 있듯이, 20세기 서구의 공산당원들을 '유럽의 사대부'로 이해하는 독법이 등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칭 : 재미난 비유입니다. 하지만 차이점 또한 분명했습니다. 유가는 계급 혁명, 폭력 혁명을 극구 반대합니다. 覇道(패도)의 정치니까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왕도 정치에 근거하여 세계를 개조하고자 합니다. 德(덕)으로 사람을 감화시키고, 仁(인)으로 천하를 다스려야 합니다. 왕도 정치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20세기의 공산주의자들이 폭력 혁명을 옹호했던 것은 '역사의 필연성'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헤겔의 역사 이성과 마르크스의 과학적 유물사관은 폭력 혁명과 무관치 않습니다.
이상적인 세계상 역시 다릅니다. 유가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조화를 탐구했지, 지배/피지배 없는 유토피아를 몽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민주 정치에 배울 측면이 있습니다. 냉전의 승패가 말해주듯 그들이 제도적 개혁에는 더 능했거든요. 정치 제도적 실천이란 혁명적 열정보다는 합리적 이성의 설계에 바탕을 두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改制立法(개제입법)에 더 근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理(리)와 勢(세)
장칭 :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정치 유학은 결코 협애한 문화 민족주의가 아닙니다. 더 좋은 정치, 가장 좋은 정치를 추구하는 보편주의입니다. 물론 저의 사고는 중국의 역사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보편적입니다. 중국성과 보편성의 종합을 지향합니다.
본디 왕도 정치란 천하의 이념이지 특정 국가의 이념이 아닙니다. 초월적이며 항구적인 道(도)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도'는 역사의 흐름과 세계의 변화로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변하는 것은 오로지 勢(세)일 뿐입니다. 다만 이 보편적인 '도' 또한 필연적으로 특수한 역사와 문화와 결합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야 구체적인 제도로 결실을 맺을 수 있으니까요. 그것이 바로 法(법)입니다. 즉 '법'은 나라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아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도'는 동일한 것입니다.
제가 정치 유학을 주창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난 20세기 중국 정치의 파탄 때문입니다. 혁명에 혁명을 거듭하며 너무나 큰 사회적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정체성의 위기가 가장 심각합니다. 주체성을 지키려다 정체성을 상실한 역설이 일어났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좌/우를 막론하고 서방의 정치를 추구한 것입니다.
정작 중국을 무대로 한 정치에 유학의 理(리)와 문명의 '根'(근)이 결여되었던 것입니다. 중국 문화를 상실한 정치가 100년을 휩쓴 것이지요. '天下爲公'(천하위공)을 사표로 삼았던 쑨원만 해도 달랐어요. 그러나 5.4 이후가 문제입니다. 좌/우 모두 중화 문명의 독특성과 중국 역사의 개별성을 무시하고 서방 민주에 함몰되었던 것입니다.
이병한 : 그래서 6.4도 5.4의 연속으로 이해하시죠? 5.4-문혁-6.4를 동일한 흐름으로 판단하시는 건데요. 좌/우의 편차는 있으되, 탈중국적 정치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일관되었다는 독법입니다. 매우 독특하면서도 논쟁적인 시각입니다.
장칭 : 1919년 5.4 신청년들과 1989년 천안문의 대학생들이 지향했던 바가 무엇이었을까요? '과학'과 '민주'를 달성한 중국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중국과 세계의 일체화, 동질화였을 것입니다. 그 결과 지구상에 다시는 '중국 문명'을 발견할 수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5.4와 6.4의 실현이란 곧 중국의 서구화가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역사의 진보입니까?
이병한 : 그래서 서방의 민주에 반대하시는 겁니까? 중국 문명의 수호를 위해서?
장칭 : 이 또한 국수주의자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와 비슷한 발상을 했던 이가 서방에도 있습니다. 에드먼드 버크 같은 사상가가 대표적이죠. 그는 계몽주의의 대척점에서 인류의 문명과 역사, 종교의 다양성과 존엄성을 수호하고자 했습니다. 그런 그를 가리켜 계몽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라고 성토했지요.
20세기 중국의 비극은 버크와 같은 진정으로 깊이 있는 보수주의자가 없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저마다 혁명파이고 개조파였어요. 자유주의든, 민주주의든, 사회주의든, 기본 성질은 동일합니다. 모두 강렬한 근대주의와 세계주의 경향을 지닙니다. 그래서 자유 민주이든 사회 민주든 인류 역사 발전의 필연적 추세라고 주장합니다. 각자가 인류 최후의 문명을 자부하지요. 그래서 역사 발전의 풍부한 가능성을 무시하고 문명의 다양성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병한 : 20세기 중국의 주류가 혁명파였다는 점은 수긍합니다. 하지만 천편일률이었는지는 단언할 수 없는 것 같아요. 亂世(난세)에 出世(출세)를 거두고 在野(재야)로 침잠했던 유림들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한반도에서도 식민 시기와 냉전기 '민간 유림'들의 문집을 살피면 귀중한 사상 자원을 발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들은 한글이 아니라 한문으로 글을 썼을 지도 모릅니다. '國文(국문)적 근대'가 아니라 '漢文(한문)적 근대'라고 할까요? 물론 여기서 한문이란 중국의 문자가 아니라, 중화 세계의 보편 문자를 뜻합니다. 조선도, 일본도, 베트남도 공유했던 기록 수단이자 사유 도구였으니까요. 이들은 '중화 문명의 근대화'를 도모하지 않았을까요?
장칭 : 공감합니다. 100년의 대란으로도 중화 문명의 맥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유가의 '도'는 여전히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도'에 입각해서 현대인의 민주 정치에 대한 숭배와 미신을 타파해 가야 합니다. 물론 극도로 어려운 과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공자의 '王道(왕도)'도 맹자의 '仁政(인정)'도 당시에는 그만큼이나 지난했던 과제였습니다. 동시대인들의 상식을 넘어서야 합니다. 複古更化(복고경화), 역사로부터 미래를 구해야 합니다.
이병한 : 진보사관을 숙명사관으로 표현하시죠?
장칭 : 유가들은 인류 역사의 정세(定勢)를 믿지 않습니다. 진보 역시 종말만큼이나 숙명적인 시각이지요. 끊임없는 변화가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未來(미래)는 未知(미지), 일체의 가능성에 열려 있습니다. 유가의 사관이 훨씬 더 개방적이지 않습니까? 저는 민주 정치가 천하를 통일한 현상 또한 一世(일세)를 더 지속할 것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일세를 풍미했다 해서 천세만세를 누릴 수는 없습니다.
이병한 : 일세란 한 세대인가요? 혹은 한 세기입니까?
장칭 : 西勢東漸(서세동점)의 한 시대를 뜻합니다.
이병한 : 민주 정치도 '서세'의 산물이라는 뜻입니까?
장칭 : 그렇습니다. 理(리)가 아니라 勢(세)의 결과입니다. 윈스턴 처칠은 '민주주의는 완벽하지는 않을지라도, 그나마 가장 덜 나쁜 정치 제도'라고 말했습니다. 바른 말인가요? 서방의 經世(경세) 경험이 얼마나 됩니까? 관료제와 행정의 역사가 얼마나 되나요? 게다가 적은 인구에 작은 나라들이지 않습니까? 언제 유가의 왕도 정치를 해봤습니까?
어디까지나 그들의 역사적 맥락에서 나온 발언입니다. 아주 긴 시간 동안 신정 정치 아래 있었으니, 민주 정치가 그럴듯해 보일 수도 있었겠죠. 그래서 유럽 밖의 정치 전통은 모조리 신정 정치에 빗대어 살필 의사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영국인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해서 동방인들도 고분고분 따라야 합니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병한 : 왜 그렇습니까?
장칭 : 유가는 반드시 理(리)를 勢(세)보다 더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유가의 책무는 원리를 세워서 추세를 바꾸어 가는 것(立理轉勢)이지, 이치를 어겨가며 세력을 따르는 것(曲理就勢)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曲學阿世(곡학아세)는 금물입니다. 유가는 결점이 많은 민주 정치를 차선으로, 차악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왕도 정치의 '리'를 통하여 민주 정치의 '세'를 바꾸어낼 것을 사명으로 삼습니다.
역사적으로 늘 그랬습니다. 춘추전국 때 어땠습니까? 공맹이 시류와 조류를 쫓았습니까? 아닙니다. 공자는 王道(왕도)를 논하고, 맹자는 仁政(인정)을 말했을 뿐입니다. 그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당대의 시세였던 법가는 유가를 구닥다리(是古非今)라고 맹렬히 비판했지만, 천세만세의 대세가 된 것은 역시 유가였습니다.
이병한 : 20세기 초, 캉유웨이나 박은식의 大同(대동) 또한 그 유가 전통의 계보에 속할 것 같습니다.
장칭 : 역사적으로 진정 가치 있는 사상은 종종 동시대와 불화합니다. 사상의 본질은 비판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민주주의에 비판성이 있습니까? 민주주의야말로 현대 정치를 보호하고 수호하는 보수적 사상입니다. 시세를 따르는 정치일 뿐이죠.
이병한 : 현재 西勢(서세)가 기울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장칭 : 세를 따지는 것(問勢)은 세를 따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역사적 조건이 성숙되지 않았을 때에는 '리'를 밝히고, 세우고, 지켜야(明理、立理、守理)하기 때문입니다. 왕도와 인정과 덕치와 대동을 실행할 수 없는 난세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나 일단 역사적 조건이 무르익으면 '以理待勢'에서 '以理造勢'로, 최종적으로는 '以理轉勢'에 이를 것입니다.
이병한 : 선생님은 스스로를 어느 단계에 위치시키고 계신가요? 중국을 미국과 더불어 G2라고 부르는 판이니, 세를 기다리던 때(以理待勢), 즉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시기는 확실히 지난 것 같습니다. 세를 만들어가는 시기(以理造勢)입니까, 아니면 세를 바꾸는 시기(以理轉勢)입니까?
장칭 : 세가 바뀌고 있습니다.
이병한 : 민주 정치가 저물고 왕도 정치가 다시 일어난다는 말씀일까요?
장칭 : 민주 정치를 받아 안아서 왕도 정치가 더 完美(완미)해진다는 뜻입니다.
政道(정도)와 治道(치도)
이병한 : 왕도 정치의 미덕이 무엇입니까?
장칭 : 왕도 정치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주 정치의 폐해부터 짚어야 합니다. 민주 정치의 최대 병폐는 '民意(민의)의 독재'에 있습니다. 권력의 원천을 국민의 의사에만 맡기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이병한 : 인민주권론을 부정하시는 건가요?
장칭 : 그렇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권력의 합법성이 인민에게만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인민주권 유일론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이병한 : 권력이 국민으로부터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중국 유학자 장칭과의 인터뷰는 2016년 2월 24일(수요일) 계속 이어집니다. (☞관련 기사 : 왜 왕도 정치인가? ② "인민 주권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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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유학자 장칭과의 인터뷰가 2016년 2월 23일 발행된 왜 왕도 정치인가 ①에 이어서 ②가 계속됩니다. (☞관련 기사 : 왜 왕도 정치인가? ① "서양 민주주의는 끝났다")
이병한 : 선생님은 스스로를 어느 단계에 위치시키고 계신가요? 중국을 미국과 더불어 G2라고 부르는 판이니, 세를 기다리던 때(以理待勢), 즉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시기는 확실히 지난 것 같습니다. 세를 만들어가는 시기(以理造勢)입니까, 아니면 세를 바꾸는 시기(以理轉勢)입니까?
장칭 : 세가 바뀌고 있습니다.
이병한 : 민주 정치가 저물고 왕도 정치가 다시 일어난다는 말씀일까요?
장칭 : 민주 정치를 받아 안아서 왕도 정치가 더 完美(완미)해진다는 뜻입니다.
政道(정도)와 治道(치도)
이병한 : 왕도 정치의 미덕이 무엇입니까?
장칭 : 왕도 정치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주 정치의 폐해부터 짚어야 합니다. 민주 정치의 최대 병폐는 '民意(민의)의 독재'에 있습니다. 권력의 원천을 국민의 의사에만 맡기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이병한 : 인민 주권론을 부정하시는 건가요?
장칭 : 그렇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권력의 합법성이 인민에게만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인민 주권 유일론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이병한 : 권력이 국민으로부터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장칭 : 왕도 정치는 정치권력의 원천을 셋에서 구합니다. 소위 왕도통삼(王道通三)이라고 하지요. 즉 정치권력은 반드시 '天-地-人'(천지인)의 3종 합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天(천)이란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합법성을 말합니다. 地(지)는 역사와 문화, 즉 특정한 지리 공간에서의 합법성입니다. 人(인)이 바로 민의의 합법성이죠.
이는 중국인의 오래된 사유방식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특히 <春秋(춘추)>와 <易經(역경)>의 영향이 물씬합니다. 흔히 三才(삼재)라고 하지 않습니까? 중층적 구조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지요. 세계를 다층적으로 인식하는 만큼 권력의 원천 또한 다층적으로 구했던 것입니다. 제가 전혀 새로운 이론을 개진하는 것도 아닙니다. <중용>서부터 이미 '王天下有三重'이라 말했습니다.
그런데 서방의 민주 정치는 오로지 인민 주권에만 기초해 있어요. 오로지 초월적 신에게만 주권을 의지했던 신정을 거꾸로 세운 것입니다. 인간이 신의 자리를 대신한 것이지요. 그러나 권력의 정당성을 구하는 원천이 유일하다는 구조만큼은 동일합니다. 즉 인민 주권과 천주 주권은 내용상의 차이일 뿐, 형식적으로는 완전히 똑같습니다.
이병한 : 민주 정치는 민의(人道)만 대의하지만, 왕도 정치는 天道(보편적 원리)와 地道(역사와 문화)도 대의한다?
장칭 : 왕도 정치가 해결하고자 하는 과제는 결국 政道(정도)의 문제입니다. 정도와 治道(치도)를 혼돈해서는 안 됩니다. 치도는 구체적인 제도 건설에 관한 사안이지요. '정도'는 '치도'보다 상위 개념입니다. '정도'가 '치도'의 목적입니다. '치도'는 '정도'의 수단입니다. 그런데 현대 정치론은 대개 '치도'에 치우쳐 있습니다. 지엽말단에 논쟁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병한 : 治道(치도)를 거버넌스로 이해해도 될까요? 일당제, 다당제, 대통령제, 내각제, 소선구제, 비례대표제, 추첨제 등등 각종 제도 논의를 '치도'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장칭 : 그 뿐만이 아니지요. 민주주의 또한 '치도'입니다.
이병한 : 민주주의가 '정도'가 아니다? 목적 그 자체가 아니다?
장칭 : 그럼요. 민주주의 또한 좋은 정치, 즉 왕도 정치를 위한 수단일 뿐이지요. 민주주의가 말하는 보통 사람들의 정치가 하등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민중의 뜻과 민초의 희망은 본래 권력의 중요한 원천입니다. 비단 민주 정치 뿐 아니라 어떤 형태의 정치권력도 민의에 정면으로 반하면서 유지될 수는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민주 정치가 문제인 것은 인민 주권만을 유일무이한 권력의 원천으로 삼는다는 점에 있는 것입니다. 절대적이고, 배타적이며, 양보 불가능한 유일 원천입니다. 그래서 견제와 균형을 불허하는 독재 권력이지요. 왕도 정치에서 보자면 납득하기 힘든 지점입니다. 政道(정도) 역시 견제와 균형이 작동해야 하거든요.
정치권력의 합법성을 하나로 독점시킬 경우, 폐단이 극심하기 때문입니다. 서방의 옛 기독교 정치와 오늘날 이슬람의 신권 정치가 대표적인 사례이겠죠. 마찬가지로 민의만이 독재하는 민주 정치도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초월적 신성과 역사/문화를 방기하고 민의만 강조함으로써 극단적인 세속화와 인욕화(人慾化), 속물화를 촉발한 것입니다. 현대 민주 정치의 적나라한 실태이지요.
이병한 : 스노비즘이라고도 합니다.
장칭 : 정치에 도덕적 이상이 사라지면 세속적 욕망의 분출에 불과하게 됩니다. 현대 정치에 '聖王(성왕)'의 숭고함이 있습니까? 지도자를 모범으로 삼아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위엄과 존엄이 있습니까? 그래서 세계가 도덕적으로 퇴락해가는 것입니다. 인민들의 도덕적 각성을 자극하고 촉발하는 제도적 장치가 사라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가장(家長)이 존경받지 못하면 가정이 망가집니다. 교사가 존경받지 못하면 교실이 난장판이 됩니다. 나라의 지도자에게 도덕적 아우라가 없으면 사회가 저열해지고 졸렬해지고 천박해집니다. 그래서 왕왕 대중들이 파시스트들에게 열광하는 것입니다. 민주 정치가 거세해버린 도덕적 욕구 불만을 가상적으로나마 대리 해소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병한 : 신의 뜻, 혹은 하늘의 뜻만 대변했던 신정 정치도 편향되었지만, 사람들의 의사만 대변하는 민주 정치도 편중된 것이다?
장칭 : 그래서 政道(정도)의 균형과 견제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 가지 권력의 합법적 원천이 중용과 조화(中和)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병한 : '三權(삼권) 분립'에 빗대어 '三道(삼도) 분립'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장칭 : 권력이란 본디 道(도)를 실천하고 실현하는 권능입니다. 정치는 무릇 신성한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 정치는 권력이라는 기술적 차원의 문제에 집중함으로써 정작 '도'를 놓치고 말았어요. 인민 주권의 독재가 좌우를 가리지 않고 20세기에 만연하지 않았습니까? 근대 정치의 근원적인 결함과 결핍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병한 : '대중 독재'라는 표현도 있죠.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천지인 가운데 먼저 천도가 부재함으로써 일어나는 폐단은 무엇입니까?
장칭 : 세속화된 사회의 '민의'라는 것은 결국 개개인들의 욕망과 이익의 총합 아닙니까? 현대 민주 국가는 유권자들의 이익과 인류 전체의 이익이 충돌할 때, 필연적으로 국익에 굴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나라의 정치인이 자신의 지역이나 계급의 이해를 반영하지 않고 천하의 공익을 대의하면 어떻게 됩니까? 정치인으로 수명이 다하겠지요. '민의'가 유일한 권력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천하의 관점에서 보면 국익이라는 것도 사익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 국익을 견제할 천하의 공익을 대의하는 제도적 장치가 민주 정치에는 애당초 미비한 것이지요.
생태 문제와도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생태란 본디 신성한 합법성, 즉 천도의 영역입니다. 천도와 인욕이 충돌할 때 유가의 방법은 인욕의 극복에 있었습니다. 왕도 정치의 전제로 '쿵푸학'을 강조했던 까닭입니다. 그러나 민의가 독재하는 민주제도 아래서는 민의가 천도를 위반할 때, 즉 인욕이 생태와 충돌할 때 속수무책이지요. 제도적으로 천도의 견제를 전혀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병한 : 유럽에는 녹색당이 있습니다.
장칭 : 녹색당이 대변하는 가치가 바로 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 정치 아래서는 녹색당 또한 어디까지나 治道(치도)의 층면에서 접근할 뿐입니다. 녹색당의 정신을 전면적으로 관철하기 위해서는 민주 정치 자체의 개혁, 즉 政道(정도)의 차원까지 밀고가야 합니다. 그러나 서방에서는 3중 합법성의 발상이 부재하기에 녹색당은 만년 소수 정당에 그치고 마는 것이지요.
이병한 : 두 번째 합법성, 역사와 문화를 대의하지 않음으로써 빚어지는 폐해는 무엇입니까?
장칭 : 비서구 국가에서 그 폐단이 특히 심합니다. 민주 정치를 수용해 가면서 그 나라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을 배척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현실 정치와 민족-역사-문화-전통 사이에 커다란 균열이 발생한 것이지요. 서구화된 엘리트와 토착 민중들 간의 갈등을 촉발한 원인이기도 합니다.
설령 민중들이 민주 정치를 지지하더라도 문제는 지속됩니다. 민족의 역사 문화 전통이 부재하기에 완전한 합법성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민의의 합법성이란 그때 그곳을 일시적으로 점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사에 그칩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무수한 사람들, 즉 선조와 후세의 총체적인 의사를 반영하지는 못하는 것이지요.
국가는 결코 사회 계약의 공학적 산물이 아닙니다. 일종의 '역사적 유기체'입니다. 국가는 과거의 국가이자, 현재의 국가이며, 장래의 국가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정치권력 또한 반드시 과거와 미래에 책임을 지고, 역사적 문화적 정당성을 획득해야 합니다. 최고 권력자의 세습이 오래 지속되었던 까닭이기도 합니다. 세습제도 그 나름의 합리성이 있었던 것이지요.
서방에서는 역사 문화적 합법성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민주 정치 자체가 서방의 역사 문화적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서방 국가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과거와 미래를 대의하는 역사 문화 기구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서방의 민주 정치가 비서구에서 작동이 잘 안 되는 이유는 비서구의 문화적 토양이 열악하고 의식 수준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정치 제도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문화가 문제가 아니라, 문화와 동떨어진 제도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병한 : 흥미로운 지적입니다. 1980년대 동아시아의 민주화, 1990년대 동유럽의 민주화, 2000년대 중앙아시아의 민주화, 2010년대 중동의 민주화 등 반세기에 가까운 '비서구 민주화'를 총괄적으로 성찰하는데 유익한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장칭 : 작금 인류의 정치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민주주의를 더욱 충실하게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권력의 표준을 새로이 세우는 것입니다. 민의가 독재하는 민주 정치를 지양하고, 다중적 합법성이 상호 균형을 이루는 '새 정치(新型政治)'를 만드는 것이 근본적 과제입니다. 이 새 정치는 아마도 중국 유가들이 추구해 왔던 왕도 정치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이병한 : 왕도 정치가 민주 정치를 받아 안는다는 말은 어떤 뜻일까요?
장칭 : 민주 정치를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왕도 정치를 통하여 민주 정치를 지양한다는 뜻입니다. 즉 왕도 정치는 민주 정치를 초월합니다. 민주 정치의 기본 원칙을 治道(치도)로 흡수하여 政道(정도)의 세 기둥을 더욱 튼튼하게 다지는 것입니다. 더 완미한 왕도 정치로 이행하는 것이지요. 외부의 사상과 제도를 흡수하여 통합하는 것은 중화 문명의 오랜 장기였습니다.
의회 삼원제
이병한 : 그래서 제출한 대안이 의회 삼원제(議會三院制)이죠?
장칭 : 유가의 왕도 이념을 기초로 삼아 새로운 제도를 구상해본 것입니다. 3종 합법성이라는 '정도'를 실현하는 '치도'인 것이지요. 삼원제를 설치함으로써 각각의 의회가 저마다의 정당성을 대표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잠정적으로 通儒院(통유원), 庶民院(서민원), 國體院(국체원)으로 이름을 지어 보았습니다.
'통유원'은 초월적, 보편적, 신성한 합법성을 대의합니다. 왕년의 유림 정치를 복원시키는 것입니다. '서민원'은 민의를 대표합니다. 서구 민주의 의회를 수용한 것입니다. '국체원'은 역사와 문화를 대변합니다. 불교와 도교, 회교 등 각종 종교 단체 대표, 교육 기관 수장, 소수 민족 지도자, 비정부기구 인사 등을 망라합니다.
이병한 : 삼원제를 구성하는 의원들의 선출 방법도 상이합니다.
장칭 :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통유원'은 중국 전통의 과거제를 계승합니다. 선발제입니다. '서민원'은 선거나 추첨을 통하여 선출하지요. 민주주의에 해당하겠습니다. '국체원'은 세습제와 추천제로 운영됩니다. 그들 조직의 독자적 원리와 전통을 존중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병한 : 재미있는 발상입니다. 삼원제로 운영되는 국정은 어떠할까요?
장칭 : 새로운 법률은 반드시 삼원에서 모두 동의를 얻어야 됩니다. 서민원에서 민중들이 지지한 정책이라 하더라도 천도에 어긋나는 경우에는 통의원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통의원이 천도에 근거한 것이라며 제출한 법안 또한 서민원이 동의하지 않으면 법률로 성립할 수 없습니다.
국체원은 통유원과 서민원이 발안하는 법안들이 국가의 역사와 전통, 문화에 부합하는지를 판별할 것입니다. 현재의 대통령이나 주석에 빗댈 수 있는 '최고 행정 장관' 역시 삼원의 동의를 구해서 선출합니다. 그래야 천지인을 모두 대표하고 성속을 두루 아우르는 국가수반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왕년의 황제, 天子(천자)는 바로 그러한 인물이었습니다.
이병한 : 서구에도 일부 양원제 국가가 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장칭 : 전혀 다르지요. 상원과 하원의 실질적인 차이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양 기관 모두 민의를 따르는 기관이니까요. 상하원 모두 서민원에 그칠 뿐입니다.
이병한 : 그러하면 서방 국가들도 의회 삼원제를 따라야 할까요?
장칭 : 아닙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도'는 보편적이되, '법'은 개별적입니다. '정도'는 보편적이되, '치도'는 특수합니다. 중국의 삼원제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한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 특색의 삼원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보태 유학자들이 국정 전반을 감사하는 '태학 국정 감사제'(太學監國制)도 궁리하고 있습니다. 유학자들이 국정을 이끌었던 오랜 전통이 있기에 가능한 발상이지요. 서방은 서방의 사정에 맞는 제도 혁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병한 : 얼핏 이란이 떠오릅니다. 이란에서도 하원과 유사한 의회가 법률을 제정하고, 상원에 빗댈 수 있는 헌법수호위원회가 그 법률을 심의하지요. 의회의 의원들은 보통선거로 선출하고, 헌법수호위원회는 종교 지도자와 이슬람 학자들로 구성됩니다. 선생님이 구상하시는 통유원와 국체원을 합친 모양새입니다. 이란의 정치 제도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장칭 : 이란은 그 나름으로 자신들의 문명에 부합하는 정치 제도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는 이슬람만 고수하는 사우디나 서구화를 추진했던 터키보다 낫다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이란 또한 여전히 신권 정치가 압도합니다. 여전히 '정도'와 '치도'를 혼동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지적한 대목은 '치도'의 문제이죠.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은 명백하게 초월적이고 신성한 천도가 권력의 유일 원천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정도'의 균형과 견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치도'상으로도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헌법수호위원회의 권한과 권력이 의회보다 월등하게 크지 않습니까? 양 기관은 상하 관계에 가깝습니다. 성이 속보다 위에 있는 것이지요. 의회 삼원제에서 통유원과 서민원이 대등한 권리를 가지는 것과는 다른 지점입니다.
이병한 : 선생님의 독법을 빌면, 이란의 신권 정치와 서방의 민주 정치는 '정도'의 내용상으로는 굉장한 차이가 있으면서도, 합법성의 유일 독재라는 점에서는 차별이 없다고 할 수 있겠군요. 한쪽은 神意(신의)가 독재를 하는 것이고, 다른 쪽은 민의가 독재를 하는 것입니다.
장칭 : 그렇습니다. 양자 모두 중용과 조화(中和)의 원칙에서 어긋납니다. 공히 편향되고 편중되었습니다. 의회 삼원제야말로 중도적 정치, 왕도 정치의 '정도'에 부합하는 '치도'라고 하겠습니다.
이병한 : 그런데 중국에서 실현 가능성이 있는 발상일까요? 통유원을 운영해갈 유림들이 있습니까?
장칭 : 중국인들은 이미 강렬한 문화적 자각을 하기 시작했고, 유가적 가치도 회귀하고 있습니다. 의회 삼원제를 실현하는데 몇 백 년이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병한 : 몇 십 년 안에는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장칭 : …. (웃음)
이병한 : 그러면 유가 정당이 등장하는 걸까요? 중국공산당은 어떻게 됩니까?
장칭 : 너무 때 이른 논의입니다.
취푸 : 숙명(Destiny)과 천명(天命)
이병한 : 화제를 바꾸겠습니다. 한창 논쟁의 당사자가 되고 있는 사안이 있죠. 산둥 성 취푸(曲阜)는 공자의 고향입니다. 이곳에 교회가 들어서고 있다더군요. 성명서 초안을 기초하는 등 반대 운동을 이끄는 선봉장이십니다.
장칭 : 취푸는 유가의 발원지이자, 중화 민족의 성지입니다. 영해, 영토, 영공만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문화와 전통과 역사, 가치에도 주권이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그것이 三孔(삼공), 즉 孔廟(공묘), 孔林(공림), 孔府(공부)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근방에 40미터가 넘는 고딕식 교회를 짓는다니요? 가당치 않습니다.
이병한 : 유교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와 같은 일신교는 아니지 않습니까? 도리어 중화 문명의 포용성을 과시하는 측면은 없을까요?
장칭 : 저는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 전혀 배타적이지 않은 사람입니다. 인류의 모든 문명적 자산을 섭취하고 포용하고 존중하자는 태도를 견지합니다. 특히 천주교에는 근대성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자극하는 심원한 사상적 자원이 많다고 여깁니다. 유교와 천주교의 대화를 적극 추진해볼 만합니다. 그래서 저 자신 중국어로 옮긴 신학서도 적지 않아요.
따라서 중국의 기독교들 또한 교회를 지을 권리가 있음을 십분 수긍합니다. 실제로도 많은 교회가 들어서고 있어요. 제가 대학 교수 노릇을 했던 선전에서는 26층짜리 교회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어요. 상하이에 100층짜리 교회가 들어선다 해도 토를 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취푸는 다릅니다. 특수한 장소입니다. 성지에요. 중국 문명의 성소에다 서방 종교의 상징인 고딕식 교회를 꼭 지어야 합니까? 중국 문화와 유교 문명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유림도 메카에 유교 사당을 짓지 않습니다. 어떤 스님도 예루살렘에 불교 사원을 만들지 않습니다. 싯다르타가 각성했던 보드가야에 천주교 성당을 지을 수 있습니까?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이병한 : 문명 간 대화라는 측면에서는 어떻습니까? 취푸에서 열리는 '세계 문명 포럼'에서도 취푸의 교회 건설을 유교와 기독교의 대화라고 수긍하는 눈치던데요.
장칭 : 문명 간 대화의 대전제는 공자가 말한 '己所不欲勿施於人(기소불육 물시어인)'의 태도부터 갖추는 것에 있습니다. 내가 원치 않은 것을 남에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혹은 예수가 말한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부터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제 본 뜻 또한 교회 건설 반대가 아니라 중국 문명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표하라는 것입니다.
이병한 : 취푸가 유교의 성지이기에 교회 건설은 안 된다는 주장을 '정교 분리'에 어긋난다며 비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장칭 : 정교 분리는 신화입니다. 인류의 어떠한 정치도 종교와 근본적으로 분리될 수가 없습니다. 재차 왕도 정치의 용어로 말하면, 국가의 정치권력은 천도와 지도와 인도를 실현해야 합니다. 중국에서는 그 천도와 지도가 상당 부분 유교에 기초해 있습니다. 20세기 중국 정치가 혼란스러웠던 것은 유교와 이탈한 정치가 횡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국은 종국적으로 '유교 헌정'을 만들어서 정교합일을 복구해야 합니다.
이병한 : 근대의 서구 국가들은 정교 분리의 산물이지 않습니까?
장칭 : 아닙니다. 그 또한 허구입니다. 미국의 정치권력은 미국의 역사를 통해 형성된 것입니다. 어찌 청교도와 분리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까? 개신교의 가치관은 고스란히 미국 헌법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근간이 청교도에 기초해 있는 것입니다. 설령 법률 조항으로 國敎(국교)가 없다 할지라도, 실질적인 정치 생활에서는 작동하는 것이지요.
다른 종교가 미국의 지도적 가치관이 될 수 있습니까? 이슬람이? 불교가?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개신교는 미국에서 일종의 王官學(왕관학)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치도'의 차원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지만, '정도'의 차원에서는 이미 정교합일 상태입니다. 그 역사성을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자유주의자들의 허위입니다.
이병한 : 캐나다의 저명한 종교 철학자인 찰스 테일러도 비슷한 취지의 얘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미국의 헌법을 '숨겨진 교회'라고 표현했지요.
장칭 : 그럼요. 비단 미국 뿐만도 아닙니다. 영국은 아예 성공회가 국교입니다. 국왕이 종교의 수장입니다. 그리스 헌법 역시 동방정교를 국교라고 명시해 두었습니다. 북유럽 국가들은 루터교가 국교 역할을 합니다. 이슬람 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러시아도 정교회에 뿌리를 두고 있죠.
그걸 인위적으로 분리하려던 것이 공산주의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100년도 안 되어 자멸한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사라진 자리에 동방 정교와 이슬람이 다시 자라났습니다. 인간은 결코 초월적 가치 없이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정교 분리'는 서방 국가에서도 통용될 수가 없는 사이비 이론입니다.
이병한 : 그래서 중국에서는 '유교 헌정'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시고요.
장칭 : 그렇습니다. 유교 헌정이 '정도'이고, 의회 삼원제가 '치도'입니다. 왕도 정치의 구현은 중국 역사의 '天命'(천명)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20세기 중국 사상계의 비극은 자기 문화에 내재하는 논리 속에서 중국 정치의 발전 방향을 사고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다를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낙관합니다.
이병한 : '20세기의 숙명에서 21세기의 천명으로' 라고 말해도 될까요?
장칭 : 서구는 민주주의를 선전하고, 이슬람은 지하드로 선동합니다. 중국이 왕도 정치라는 제3의 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서구 근대는 또 다른 극단이었어요. 만사를 인권 중심으로 사고하면서 초월적 가치를 배격하고 극단적 세속화를 야기했습니다. 여기에 저항하는 이슬람 국가들 또한 그들만의 역사 문화적 합법성만 강조한 나머지 어떠한 변화와 개혁도 거부하는 수구성을 초래했습니다. 그래서 동시대인들의 민의를 수렴하지 못하는 근본주의가 된 것이지요.
역시나 중도를 견지해야 합니다. 서구 민주의 장점을 수용하되, 민주 정치의 결점 또한 극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왕도 정치가 전 세계, 전 인류에게 호소력이 있는 제도로 거듭날 수 있도록 성심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이병한 : 한때 한중 간의 '인문 연대'라는 말이 돌았습니다. 왕도 정치의 재건이 중국만의 단독사업이 아니라 주변국들과의 합작 프로젝트가 되었으면 하면 바람입니다. 장시간 귀중한 말씀, 깊이 감사드립니다.
유교 헌정 : 당대의 파천황
장칭과의 대화는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다. 하룻밤을 양명정사에서 묵었던 것이다. 덕분에 거처하고 있는 그의 제자들과도 말을 섞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수련과 강학으로 빼곡한 그들의 일상을 잠시 엿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양명정사를 찾아 온 한국인 방문객은 내가 처음이라 했다. 재야의 山林(산림)들에게 공자의 즐거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을 선사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장칭의 유교 헌정은 파격적이다. 당대의 破天荒(파천황)이라 할만하다. 그러하기에 당장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1978년생인 내가 눈을 감기 전에도 난망하지 않을까. 그래서 민주 정치에서 왕도 정치로의 이행 과정을 별도로 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이행기에는 이행기에 어울리는 제도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것을 꿈꾸되, 리얼리스트가 되어야 하는 법이다. 마침 적임자로 꼽을만한 이가 있다. 자칭 '유교 좌파'를 자처하며 청화 대학교에서 활동하고 있는 영국 출신의 정치철학자 다니엘 벨(Daniel Bell)이다. 서방의 새 정치와 동방의 옛 정치를 오래 고민한 끝에 제출한 <중국 모델(The China Model : Political Meritocracy and the Limits of Democracy)>도 막 출간된 참이었다. 이번에는 '백인 유학자'와 함께 유교 정치의 미래에 대해 대화를 이어가기로 한다.
이병한 : 선생님은 스스로를 어느 단계에 위치시키고 계신가요? 중국을 미국과 더불어 G2라고 부르는 판이니, 세를 기다리던 때(以理待勢), 즉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시기는 확실히 지난 것 같습니다. 세를 만들어가는 시기(以理造勢)입니까, 아니면 세를 바꾸는 시기(以理轉勢)입니까?
장칭 : 세가 바뀌고 있습니다.
이병한 : 민주 정치가 저물고 왕도 정치가 다시 일어난다는 말씀일까요?
장칭 : 민주 정치를 받아 안아서 왕도 정치가 더 完美(완미)해진다는 뜻입니다.
政道(정도)와 治道(치도)
이병한 : 왕도 정치의 미덕이 무엇입니까?
장칭 : 왕도 정치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주 정치의 폐해부터 짚어야 합니다. 민주 정치의 최대 병폐는 '民意(민의)의 독재'에 있습니다. 권력의 원천을 국민의 의사에만 맡기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이병한 : 인민 주권론을 부정하시는 건가요?
장칭 : 그렇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권력의 합법성이 인민에게만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인민 주권 유일론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장칭 : 왕도 정치는 정치권력의 원천을 셋에서 구합니다. 소위 왕도통삼(王道通三)이라고 하지요. 즉 정치권력은 반드시 '天-地-人'(천지인)의 3종 합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天(천)이란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합법성을 말합니다. 地(지)는 역사와 문화, 즉 특정한 지리 공간에서의 합법성입니다. 人(인)이 바로 민의의 합법성이죠.
이는 중국인의 오래된 사유방식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특히 <春秋(춘추)>와 <易經(역경)>의 영향이 물씬합니다. 흔히 三才(삼재)라고 하지 않습니까? 중층적 구조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지요. 세계를 다층적으로 인식하는 만큼 권력의 원천 또한 다층적으로 구했던 것입니다. 제가 전혀 새로운 이론을 개진하는 것도 아닙니다. <중용>서부터 이미 '王天下有三重'이라 말했습니다.
그런데 서방의 민주 정치는 오로지 인민 주권에만 기초해 있어요. 오로지 초월적 신에게만 주권을 의지했던 신정을 거꾸로 세운 것입니다. 인간이 신의 자리를 대신한 것이지요. 그러나 권력의 정당성을 구하는 원천이 유일하다는 구조만큼은 동일합니다. 즉 인민 주권과 천주 주권은 내용상의 차이일 뿐, 형식적으로는 완전히 똑같습니다.
이병한 : 민주 정치는 민의(人道)만 대의하지만, 왕도 정치는 天道(보편적 원리)와 地道(역사와 문화)도 대의한다?
장칭 : 왕도 정치가 해결하고자 하는 과제는 결국 政道(정도)의 문제입니다. 정도와 治道(치도)를 혼돈해서는 안 됩니다. 치도는 구체적인 제도 건설에 관한 사안이지요. '정도'는 '치도'보다 상위 개념입니다. '정도'가 '치도'의 목적입니다. '치도'는 '정도'의 수단입니다. 그런데 현대 정치론은 대개 '치도'에 치우쳐 있습니다. 지엽말단에 논쟁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병한 : 治道(치도)를 거버넌스로 이해해도 될까요? 일당제, 다당제, 대통령제, 내각제, 소선구제, 비례대표제, 추첨제 등등 각종 제도 논의를 '치도'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장칭 : 그 뿐만이 아니지요. 민주주의 또한 '치도'입니다.
이병한 : 민주주의가 '정도'가 아니다? 목적 그 자체가 아니다?
장칭 : 그럼요. 민주주의 또한 좋은 정치, 즉 왕도 정치를 위한 수단일 뿐이지요. 민주주의가 말하는 보통 사람들의 정치가 하등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민중의 뜻과 민초의 희망은 본래 권력의 중요한 원천입니다. 비단 민주 정치 뿐 아니라 어떤 형태의 정치권력도 민의에 정면으로 반하면서 유지될 수는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민주 정치가 문제인 것은 인민 주권만을 유일무이한 권력의 원천으로 삼는다는 점에 있는 것입니다. 절대적이고, 배타적이며, 양보 불가능한 유일 원천입니다. 그래서 견제와 균형을 불허하는 독재 권력이지요. 왕도 정치에서 보자면 납득하기 힘든 지점입니다. 政道(정도) 역시 견제와 균형이 작동해야 하거든요.
정치권력의 합법성을 하나로 독점시킬 경우, 폐단이 극심하기 때문입니다. 서방의 옛 기독교 정치와 오늘날 이슬람의 신권 정치가 대표적인 사례이겠죠. 마찬가지로 민의만이 독재하는 민주 정치도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초월적 신성과 역사/문화를 방기하고 민의만 강조함으로써 극단적인 세속화와 인욕화(人慾化), 속물화를 촉발한 것입니다. 현대 민주 정치의 적나라한 실태이지요.
이병한 : 스노비즘이라고도 합니다.
장칭 : 정치에 도덕적 이상이 사라지면 세속적 욕망의 분출에 불과하게 됩니다. 현대 정치에 '聖王(성왕)'의 숭고함이 있습니까? 지도자를 모범으로 삼아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위엄과 존엄이 있습니까? 그래서 세계가 도덕적으로 퇴락해가는 것입니다. 인민들의 도덕적 각성을 자극하고 촉발하는 제도적 장치가 사라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가장(家長)이 존경받지 못하면 가정이 망가집니다. 교사가 존경받지 못하면 교실이 난장판이 됩니다. 나라의 지도자에게 도덕적 아우라가 없으면 사회가 저열해지고 졸렬해지고 천박해집니다. 그래서 왕왕 대중들이 파시스트들에게 열광하는 것입니다. 민주 정치가 거세해버린 도덕적 욕구 불만을 가상적으로나마 대리 해소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병한 : 신의 뜻, 혹은 하늘의 뜻만 대변했던 신정 정치도 편향되었지만, 사람들의 의사만 대변하는 민주 정치도 편중된 것이다?
장칭 : 그래서 政道(정도)의 균형과 견제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 가지 권력의 합법적 원천이 중용과 조화(中和)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병한 : '三權(삼권) 분립'에 빗대어 '三道(삼도) 분립'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장칭 : 권력이란 본디 道(도)를 실천하고 실현하는 권능입니다. 정치는 무릇 신성한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 정치는 권력이라는 기술적 차원의 문제에 집중함으로써 정작 '도'를 놓치고 말았어요. 인민 주권의 독재가 좌우를 가리지 않고 20세기에 만연하지 않았습니까? 근대 정치의 근원적인 결함과 결핍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병한 : '대중 독재'라는 표현도 있죠.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천지인 가운데 먼저 천도가 부재함으로써 일어나는 폐단은 무엇입니까?
장칭 : 세속화된 사회의 '민의'라는 것은 결국 개개인들의 욕망과 이익의 총합 아닙니까? 현대 민주 국가는 유권자들의 이익과 인류 전체의 이익이 충돌할 때, 필연적으로 국익에 굴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나라의 정치인이 자신의 지역이나 계급의 이해를 반영하지 않고 천하의 공익을 대의하면 어떻게 됩니까? 정치인으로 수명이 다하겠지요. '민의'가 유일한 권력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천하의 관점에서 보면 국익이라는 것도 사익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 국익을 견제할 천하의 공익을 대의하는 제도적 장치가 민주 정치에는 애당초 미비한 것이지요.
생태 문제와도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생태란 본디 신성한 합법성, 즉 천도의 영역입니다. 천도와 인욕이 충돌할 때 유가의 방법은 인욕의 극복에 있었습니다. 왕도 정치의 전제로 '쿵푸학'을 강조했던 까닭입니다. 그러나 민의가 독재하는 민주제도 아래서는 민의가 천도를 위반할 때, 즉 인욕이 생태와 충돌할 때 속수무책이지요. 제도적으로 천도의 견제를 전혀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병한 : 유럽에는 녹색당이 있습니다.
장칭 : 녹색당이 대변하는 가치가 바로 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 정치 아래서는 녹색당 또한 어디까지나 治道(치도)의 층면에서 접근할 뿐입니다. 녹색당의 정신을 전면적으로 관철하기 위해서는 민주 정치 자체의 개혁, 즉 政道(정도)의 차원까지 밀고가야 합니다. 그러나 서방에서는 3중 합법성의 발상이 부재하기에 녹색당은 만년 소수 정당에 그치고 마는 것이지요.
이병한 : 두 번째 합법성, 역사와 문화를 대의하지 않음으로써 빚어지는 폐해는 무엇입니까?
장칭 : 비서구 국가에서 그 폐단이 특히 심합니다. 민주 정치를 수용해 가면서 그 나라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을 배척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현실 정치와 민족-역사-문화-전통 사이에 커다란 균열이 발생한 것이지요. 서구화된 엘리트와 토착 민중들 간의 갈등을 촉발한 원인이기도 합니다.
설령 민중들이 민주 정치를 지지하더라도 문제는 지속됩니다. 민족의 역사 문화 전통이 부재하기에 완전한 합법성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민의의 합법성이란 그때 그곳을 일시적으로 점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사에 그칩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무수한 사람들, 즉 선조와 후세의 총체적인 의사를 반영하지는 못하는 것이지요.
국가는 결코 사회 계약의 공학적 산물이 아닙니다. 일종의 '역사적 유기체'입니다. 국가는 과거의 국가이자, 현재의 국가이며, 장래의 국가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정치권력 또한 반드시 과거와 미래에 책임을 지고, 역사적 문화적 정당성을 획득해야 합니다. 최고 권력자의 세습이 오래 지속되었던 까닭이기도 합니다. 세습제도 그 나름의 합리성이 있었던 것이지요.
서방에서는 역사 문화적 합법성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민주 정치 자체가 서방의 역사 문화적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서방 국가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과거와 미래를 대의하는 역사 문화 기구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서방의 민주 정치가 비서구에서 작동이 잘 안 되는 이유는 비서구의 문화적 토양이 열악하고 의식 수준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정치 제도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문화가 문제가 아니라, 문화와 동떨어진 제도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병한 : 흥미로운 지적입니다. 1980년대 동아시아의 민주화, 1990년대 동유럽의 민주화, 2000년대 중앙아시아의 민주화, 2010년대 중동의 민주화 등 반세기에 가까운 '비서구 민주화'를 총괄적으로 성찰하는데 유익한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장칭 : 작금 인류의 정치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민주주의를 더욱 충실하게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권력의 표준을 새로이 세우는 것입니다. 민의가 독재하는 민주 정치를 지양하고, 다중적 합법성이 상호 균형을 이루는 '새 정치(新型政治)'를 만드는 것이 근본적 과제입니다. 이 새 정치는 아마도 중국 유가들이 추구해 왔던 왕도 정치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이병한 : 왕도 정치가 민주 정치를 받아 안는다는 말은 어떤 뜻일까요?
장칭 : 민주 정치를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왕도 정치를 통하여 민주 정치를 지양한다는 뜻입니다. 즉 왕도 정치는 민주 정치를 초월합니다. 민주 정치의 기본 원칙을 治道(치도)로 흡수하여 政道(정도)의 세 기둥을 더욱 튼튼하게 다지는 것입니다. 더 완미한 왕도 정치로 이행하는 것이지요. 외부의 사상과 제도를 흡수하여 통합하는 것은 중화 문명의 오랜 장기였습니다.
의회 삼원제
장칭 : 유가의 왕도 이념을 기초로 삼아 새로운 제도를 구상해본 것입니다. 3종 합법성이라는 '정도'를 실현하는 '치도'인 것이지요. 삼원제를 설치함으로써 각각의 의회가 저마다의 정당성을 대표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잠정적으로 通儒院(통유원), 庶民院(서민원), 國體院(국체원)으로 이름을 지어 보았습니다.
'통유원'은 초월적, 보편적, 신성한 합법성을 대의합니다. 왕년의 유림 정치를 복원시키는 것입니다. '서민원'은 민의를 대표합니다. 서구 민주의 의회를 수용한 것입니다. '국체원'은 역사와 문화를 대변합니다. 불교와 도교, 회교 등 각종 종교 단체 대표, 교육 기관 수장, 소수 민족 지도자, 비정부기구 인사 등을 망라합니다.
이병한 : 삼원제를 구성하는 의원들의 선출 방법도 상이합니다.
장칭 :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통유원'은 중국 전통의 과거제를 계승합니다. 선발제입니다. '서민원'은 선거나 추첨을 통하여 선출하지요. 민주주의에 해당하겠습니다. '국체원'은 세습제와 추천제로 운영됩니다. 그들 조직의 독자적 원리와 전통을 존중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병한 : 재미있는 발상입니다. 삼원제로 운영되는 국정은 어떠할까요?
장칭 : 새로운 법률은 반드시 삼원에서 모두 동의를 얻어야 됩니다. 서민원에서 민중들이 지지한 정책이라 하더라도 천도에 어긋나는 경우에는 통의원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통의원이 천도에 근거한 것이라며 제출한 법안 또한 서민원이 동의하지 않으면 법률로 성립할 수 없습니다.
국체원은 통유원과 서민원이 발안하는 법안들이 국가의 역사와 전통, 문화에 부합하는지를 판별할 것입니다. 현재의 대통령이나 주석에 빗댈 수 있는 '최고 행정 장관' 역시 삼원의 동의를 구해서 선출합니다. 그래야 천지인을 모두 대표하고 성속을 두루 아우르는 국가수반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왕년의 황제, 天子(천자)는 바로 그러한 인물이었습니다.
이병한 : 서구에도 일부 양원제 국가가 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장칭 : 전혀 다르지요. 상원과 하원의 실질적인 차이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양 기관 모두 민의를 따르는 기관이니까요. 상하원 모두 서민원에 그칠 뿐입니다.
이병한 : 그러하면 서방 국가들도 의회 삼원제를 따라야 할까요?
장칭 : 아닙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도'는 보편적이되, '법'은 개별적입니다. '정도'는 보편적이되, '치도'는 특수합니다. 중국의 삼원제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한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 특색의 삼원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보태 유학자들이 국정 전반을 감사하는 '태학 국정 감사제'(太學監國制)도 궁리하고 있습니다. 유학자들이 국정을 이끌었던 오랜 전통이 있기에 가능한 발상이지요. 서방은 서방의 사정에 맞는 제도 혁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병한 : 얼핏 이란이 떠오릅니다. 이란에서도 하원과 유사한 의회가 법률을 제정하고, 상원에 빗댈 수 있는 헌법수호위원회가 그 법률을 심의하지요. 의회의 의원들은 보통선거로 선출하고, 헌법수호위원회는 종교 지도자와 이슬람 학자들로 구성됩니다. 선생님이 구상하시는 통유원와 국체원을 합친 모양새입니다. 이란의 정치 제도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장칭 : 이란은 그 나름으로 자신들의 문명에 부합하는 정치 제도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는 이슬람만 고수하는 사우디나 서구화를 추진했던 터키보다 낫다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이란 또한 여전히 신권 정치가 압도합니다. 여전히 '정도'와 '치도'를 혼동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지적한 대목은 '치도'의 문제이죠.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은 명백하게 초월적이고 신성한 천도가 권력의 유일 원천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정도'의 균형과 견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치도'상으로도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헌법수호위원회의 권한과 권력이 의회보다 월등하게 크지 않습니까? 양 기관은 상하 관계에 가깝습니다. 성이 속보다 위에 있는 것이지요. 의회 삼원제에서 통유원과 서민원이 대등한 권리를 가지는 것과는 다른 지점입니다.
이병한 : 선생님의 독법을 빌면, 이란의 신권 정치와 서방의 민주 정치는 '정도'의 내용상으로는 굉장한 차이가 있으면서도, 합법성의 유일 독재라는 점에서는 차별이 없다고 할 수 있겠군요. 한쪽은 神意(신의)가 독재를 하는 것이고, 다른 쪽은 민의가 독재를 하는 것입니다.
장칭 : 그렇습니다. 양자 모두 중용과 조화(中和)의 원칙에서 어긋납니다. 공히 편향되고 편중되었습니다. 의회 삼원제야말로 중도적 정치, 왕도 정치의 '정도'에 부합하는 '치도'라고 하겠습니다.
이병한 : 그런데 중국에서 실현 가능성이 있는 발상일까요? 통유원을 운영해갈 유림들이 있습니까?
장칭 : 중국인들은 이미 강렬한 문화적 자각을 하기 시작했고, 유가적 가치도 회귀하고 있습니다. 의회 삼원제를 실현하는데 몇 백 년이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병한 : 몇 십 년 안에는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장칭 : …. (웃음)
이병한 : 그러면 유가 정당이 등장하는 걸까요? 중국공산당은 어떻게 됩니까?
장칭 : 너무 때 이른 논의입니다.
취푸 : 숙명(Destiny)과 천명(天命)
이병한 : 화제를 바꾸겠습니다. 한창 논쟁의 당사자가 되고 있는 사안이 있죠. 산둥 성 취푸(曲阜)는 공자의 고향입니다. 이곳에 교회가 들어서고 있다더군요. 성명서 초안을 기초하는 등 반대 운동을 이끄는 선봉장이십니다.
장칭 : 취푸는 유가의 발원지이자, 중화 민족의 성지입니다. 영해, 영토, 영공만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문화와 전통과 역사, 가치에도 주권이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그것이 三孔(삼공), 즉 孔廟(공묘), 孔林(공림), 孔府(공부)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근방에 40미터가 넘는 고딕식 교회를 짓는다니요? 가당치 않습니다.
이병한 : 유교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와 같은 일신교는 아니지 않습니까? 도리어 중화 문명의 포용성을 과시하는 측면은 없을까요?
장칭 : 저는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 전혀 배타적이지 않은 사람입니다. 인류의 모든 문명적 자산을 섭취하고 포용하고 존중하자는 태도를 견지합니다. 특히 천주교에는 근대성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자극하는 심원한 사상적 자원이 많다고 여깁니다. 유교와 천주교의 대화를 적극 추진해볼 만합니다. 그래서 저 자신 중국어로 옮긴 신학서도 적지 않아요.
따라서 중국의 기독교들 또한 교회를 지을 권리가 있음을 십분 수긍합니다. 실제로도 많은 교회가 들어서고 있어요. 제가 대학 교수 노릇을 했던 선전에서는 26층짜리 교회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어요. 상하이에 100층짜리 교회가 들어선다 해도 토를 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취푸는 다릅니다. 특수한 장소입니다. 성지에요. 중국 문명의 성소에다 서방 종교의 상징인 고딕식 교회를 꼭 지어야 합니까? 중국 문화와 유교 문명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유림도 메카에 유교 사당을 짓지 않습니다. 어떤 스님도 예루살렘에 불교 사원을 만들지 않습니다. 싯다르타가 각성했던 보드가야에 천주교 성당을 지을 수 있습니까?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이병한 : 문명 간 대화라는 측면에서는 어떻습니까? 취푸에서 열리는 '세계 문명 포럼'에서도 취푸의 교회 건설을 유교와 기독교의 대화라고 수긍하는 눈치던데요.
장칭 : 문명 간 대화의 대전제는 공자가 말한 '己所不欲勿施於人(기소불육 물시어인)'의 태도부터 갖추는 것에 있습니다. 내가 원치 않은 것을 남에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혹은 예수가 말한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부터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제 본 뜻 또한 교회 건설 반대가 아니라 중국 문명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표하라는 것입니다.
이병한 : 취푸가 유교의 성지이기에 교회 건설은 안 된다는 주장을 '정교 분리'에 어긋난다며 비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장칭 : 정교 분리는 신화입니다. 인류의 어떠한 정치도 종교와 근본적으로 분리될 수가 없습니다. 재차 왕도 정치의 용어로 말하면, 국가의 정치권력은 천도와 지도와 인도를 실현해야 합니다. 중국에서는 그 천도와 지도가 상당 부분 유교에 기초해 있습니다. 20세기 중국 정치가 혼란스러웠던 것은 유교와 이탈한 정치가 횡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국은 종국적으로 '유교 헌정'을 만들어서 정교합일을 복구해야 합니다.
이병한 : 근대의 서구 국가들은 정교 분리의 산물이지 않습니까?
장칭 : 아닙니다. 그 또한 허구입니다. 미국의 정치권력은 미국의 역사를 통해 형성된 것입니다. 어찌 청교도와 분리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까? 개신교의 가치관은 고스란히 미국 헌법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근간이 청교도에 기초해 있는 것입니다. 설령 법률 조항으로 國敎(국교)가 없다 할지라도, 실질적인 정치 생활에서는 작동하는 것이지요.
다른 종교가 미국의 지도적 가치관이 될 수 있습니까? 이슬람이? 불교가?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개신교는 미국에서 일종의 王官學(왕관학)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치도'의 차원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지만, '정도'의 차원에서는 이미 정교합일 상태입니다. 그 역사성을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자유주의자들의 허위입니다.
이병한 : 캐나다의 저명한 종교 철학자인 찰스 테일러도 비슷한 취지의 얘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미국의 헌법을 '숨겨진 교회'라고 표현했지요.
장칭 : 그럼요. 비단 미국 뿐만도 아닙니다. 영국은 아예 성공회가 국교입니다. 국왕이 종교의 수장입니다. 그리스 헌법 역시 동방정교를 국교라고 명시해 두었습니다. 북유럽 국가들은 루터교가 국교 역할을 합니다. 이슬람 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러시아도 정교회에 뿌리를 두고 있죠.
그걸 인위적으로 분리하려던 것이 공산주의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100년도 안 되어 자멸한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사라진 자리에 동방 정교와 이슬람이 다시 자라났습니다. 인간은 결코 초월적 가치 없이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정교 분리'는 서방 국가에서도 통용될 수가 없는 사이비 이론입니다.
이병한 : 그래서 중국에서는 '유교 헌정'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시고요.
장칭 : 그렇습니다. 유교 헌정이 '정도'이고, 의회 삼원제가 '치도'입니다. 왕도 정치의 구현은 중국 역사의 '天命'(천명)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20세기 중국 사상계의 비극은 자기 문화에 내재하는 논리 속에서 중국 정치의 발전 방향을 사고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다를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낙관합니다.
이병한 : '20세기의 숙명에서 21세기의 천명으로' 라고 말해도 될까요?
장칭 : 서구는 민주주의를 선전하고, 이슬람은 지하드로 선동합니다. 중국이 왕도 정치라는 제3의 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서구 근대는 또 다른 극단이었어요. 만사를 인권 중심으로 사고하면서 초월적 가치를 배격하고 극단적 세속화를 야기했습니다. 여기에 저항하는 이슬람 국가들 또한 그들만의 역사 문화적 합법성만 강조한 나머지 어떠한 변화와 개혁도 거부하는 수구성을 초래했습니다. 그래서 동시대인들의 민의를 수렴하지 못하는 근본주의가 된 것이지요.
역시나 중도를 견지해야 합니다. 서구 민주의 장점을 수용하되, 민주 정치의 결점 또한 극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왕도 정치가 전 세계, 전 인류에게 호소력이 있는 제도로 거듭날 수 있도록 성심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이병한 : 한때 한중 간의 '인문 연대'라는 말이 돌았습니다. 왕도 정치의 재건이 중국만의 단독사업이 아니라 주변국들과의 합작 프로젝트가 되었으면 하면 바람입니다. 장시간 귀중한 말씀, 깊이 감사드립니다.
유교 헌정 : 당대의 파천황
장칭과의 대화는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다. 하룻밤을 양명정사에서 묵었던 것이다. 덕분에 거처하고 있는 그의 제자들과도 말을 섞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수련과 강학으로 빼곡한 그들의 일상을 잠시 엿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양명정사를 찾아 온 한국인 방문객은 내가 처음이라 했다. 재야의 山林(산림)들에게 공자의 즐거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을 선사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장칭의 유교 헌정은 파격적이다. 당대의 破天荒(파천황)이라 할만하다. 그러하기에 당장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1978년생인 내가 눈을 감기 전에도 난망하지 않을까. 그래서 민주 정치에서 왕도 정치로의 이행 과정을 별도로 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이행기에는 이행기에 어울리는 제도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것을 꿈꾸되, 리얼리스트가 되어야 하는 법이다. 마침 적임자로 꼽을만한 이가 있다. 자칭 '유교 좌파'를 자처하며 청화 대학교에서 활동하고 있는 영국 출신의 정치철학자 다니엘 벨(Daniel Bell)이다. 서방의 새 정치와 동방의 옛 정치를 오래 고민한 끝에 제출한 <중국 모델(The China Model : Political Meritocracy and the Limits of Democracy)>도 막 출간된 참이었다. 이번에는 '백인 유학자'와 함께 유교 정치의 미래에 대해 대화를 이어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