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예수 -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의 '도마복음'풀이
또 다른 예수 -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의 '도마복음'풀이
오강남 (지은이) | 예담 | 2009-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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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어록으로 이루어진 <도마복음>의 텍스트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비교종교학의 관점에서 풀이하여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깨달음을 주는 책이다.
<도마복음>은 구원에만 초점을 맞춘 신약성경의 공관복음에 비해 내 속에 계시는 하느님을 아는 것과 이것을 깨닫는 깨침을 통해 내가 새 사람이 되고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저자는 <도마복음>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환기식 독법’으로 재해석해낸다. 환기식 독법이란 본문 자체의 의도를 찾아보고 오늘날 우리에게 메시지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적용해보는 ‘독자 반응 중심의’ 독법을 말한다.
저자서문 독자들께
예수의 비밀의 말씀
서언 살아 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
제1절 올바르게 풀이하는 사람은
제2절 찾으면 혼란해하고
제3절a 천국이 하늘에 있으면 새들이
제3절b 너 자신을 알라
제4절 늙은이도 갓난아기에게서 배우고
제5절 바로 앞에 있는 것을 깨달으면
제6절 금식을 할까요?
제7절 사람이 사자를 먹으면
본래의 근원으로 되돌아가라
제8절 지혜로운 어부와 같으니
제9절 씨를 한 줌 쥐고 뿌리는데
제10절 불을 지피다
제11절 하늘은 사라질 것이고
제12절 의인 야고보에게 가야
제13절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작에서 끝을 보라
제14절 금식을 하면
제15절 여자가 낳지 아니한 사람을 보거든
제16절 이땅에 분쟁을
제17절 눈으로 보지도 못했고
제18절 끝은 시작이 있는 곳에
제19절 있기 전에 있는 사람은 행복하니
제20절 그 나라는 겨자씨와 같으니
목숨처럼 사랑하고 눈동자처럼 지키라
제21절 남의 땅에서 노는 어린아이들과 같아
제22절 젖 먹는 아이를 보시고
제23절 천 명에서 한 명, 만 명에서 두 명
제24절 당신이 계신 곳을
제25절 목숨처럼 사랑하고 눈동자처럼 지키라
제26절 티는 보고 들보는 못 보는
세상의 아픔으로 아파하고
제27절 금식하지 않으면
제28절 내 영혼이 세상을 아파하고
제29절 육이 영을 위해
제30절 둘이나 한 명이 있는 곳에
제31절 예언자가 고향에서는
제32절 산 위의 도성은
제33절 지붕 위에서 외치라
깨침의 열쇠를 찾아
제34절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제35절 힘센 사람의 손을 묶어놓고
제36절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제37절 부끄럼 없이 옷을 벗어
제38절 나를 찾아도 나를 볼 수 없는 날이
제39절 깨달음의 열쇠를 감추고
제40절 포도 줄기가 아버지와 떨어져
나그네가 되어라
제41절 가지고 있는 사람은 더 많이
제42절 나그네가 되어라
제43절 당신은 누구십니까?
제44절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제45절 덤불과 가시는 좋은 과일을 맺을 수 없기에
제46절 여자에게서 난 사람 중에
제47절 동시에 두 마리 말을 탈 수 없고
제48절 한 집에서 두 사람이 서로 화목하고
어디서 왔느냐고 묻거든
제49절 홀로이며 택함을 받은 이는
제50절 어디서 왔느냐고 묻거든
제51절 언제 쉼이 있겠으며 언제 새 세상이
제52절 산 사람은 무시하고
제53절 할례가 쓸데 있습니까?
제54절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니
제55절 자기 부모를 미워하고
제56절 세상을 알게 된 사람은 시체를 찾은 사람
제57절 가라지 씨를 뿌리고
당신은 구구시기에
제58절 아픔을 겪는 사람은 행복하니
제59절 살아 있을 동안 살아 계신 이를 주목하라
제60절 잡아먹히지 않도록
제61절 당신은 누구시기에
제62절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알지 못하도록
제63절 부자 농부는 그날 밤 죽고
제64절 손님을 초청했으나
제65절 소작인들이 주인 아들을 죽이고
제66절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고
제67절 자기를 모르면
핍박을 받으면 행복하다
제68절 미움과 핍박을 받으면 행복하니
제69절 자기 마음속에서 박해받는 사람은 행복하니
제70절 여러분 속에 있는 그것을
제71절 내가 이 집을 헐면
제72절 나누도록 말해주십시오
제73절 추수할 것은 많은데
제74절 우물 안에는 아무도
제75절 홀로인 사람만이 신방에
제76절 다 팔아 진주 하나를
제77절 나는 모든 것 위에 있는 빛
제78절 무엇을 보러 광야에
제79절 당신을 낳은 자궁이
세상을 깨닫게 된 사람은
제80절 세상을 알게 된 사람은
제81절 힘을 가진 사람은
제82절 나에게 가까이 함은 불 가까이
제83절 그들 안에 있는 빛은
제84절 여러분이 나기 전에
제85절 아담도 합당하지 않아
제86절 여우도 굴이 있고
제87절 몸에 의지하는 몸은
제88절 사자使者들과 예언자들이 와서
제89절 왜 잔의 밖을 씻는가
제90절 내게로 오라
제91절 당신이 누구신지
제92절 구하라 그리하면
제93절 거룩한 것을 개나 돼지에게
제94절 구하는 자는
제95절 돈이 있으면
아버지의 나라는
제96절 아버지의 나라는 작은 양의 누룩을
제97절 곡식이 가득한 항아리
제98절 그 힘센 자를 죽였더라
제99절 내 형제와 어머니
제100절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제101절 미워하지 않으면
제102절 자기도 먹지 않고 남도 먹지 못하게
제103절 도둑이 어디로 들어올지 아는 사람은
제104절 신랑이 신방을 떠날 때
둘을 하나로 만들면
제105절 창녀의 아들이라 불릴 것
제106절 둘을 하나로 만들면
제107절 아흔아홉 마리보다 너를 더
제108절 내 입으로부터 마시는 사람은
제109절 밭에 감추어진 보물
제110절 세상 것으로 부자 된 사람은
제111절 하늘과 땅이 말려 올라가도
제112절 영혼에 의존하는 몸이나 몸에 의존하는 영혼이나
제113절 아버지의 나라는 온 세상에 두루 퍼져 있어
제114절 여자를 남자로 만들어
저자후기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천국의 비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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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에 나오는 말씀들 중에는 신약 성경에 나오는 공관복음, 곧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아는 분들에게는 귀에 익은 말씀들이 많습니다. 실제적으로 약 50% 정도가 공관복음에 나오는 말씀과 평행을 이루는 말씀들입니다. 그러나 『도마복음』이 공관복음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공관복음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는 기적, 예언의 성취, 재림, 종말, 부활, 최후 심판, 대속 등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고, 그 대신 내 속에 빛으로 계시는 하느님을 아는 것, 이것을 깨닫는 ‘깨달’을 통해 내가 새 사람이 되고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 “저자서문” 중에서
훌륭한 종교적 가르침은 ‘편안한 사람에게는 혼란을, 혼란한 사람에게는 편안을 준다Disturbing the comforted, comforting the disturbed’고 한다. 언제나 안전지역에서의 편안한 삶,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삶만을 보장하는 종교는 우선은 편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성장과 발돋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선불교에서 사용하는 ‘화두話頭’나 ‘공안公案’도 우리의 상식적인 의식에 혼란을 주기 위한 것이라 하지 않는가. 이런 초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말씀의 더욱 깊은 뜻을 깨닫게 되면 놀랄 수밖에 없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듯하다. 전에는 볼 수 없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놀라운 은혜’이다.
- 제2절 “찾으면 혼란해하고” 중에서
깨달음은 평생에 단 한 번 오는 일생일대의 대사건일 수 있겠지만, 일회적으로 그치기보다는 매일, 매순간 깨달음의 연속을 맛보며 신나게 사는 삶, 매사에서 죽음과 부활의 연속을 체험하며 사는 삶이 더 현실적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옛 편견을 벗고 새로운 빛으로 들어서는 것, 산을 올라가며 점점 널리 전개되는 풍광을 내려다보며 계속적으로 외치는 “아하!” 경험, 바울이 말하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의 경험이 모두 깨침의 경험이라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 제23절 “천 명에서 한 명, 만 명에서 두 명” 중에서
이런 믿음은 실존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표현한 대로, 천만 길도 더 되는 깊은 바닷물에 나를 턱 맡기고 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잔뜩 긴장을 하고 허우적거리면 허우적거릴수록 더욱더 빨리 가라앉고 말지만, 긴장을 풀고 느긋한 마음으로 몸을 물에 턱 맡기고 있으면 결국 뜨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을 믿는 것은 하느님의 뜨게 하심을 믿고 거기에 의탁하는 것이다.
- 제36절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중에서
최근에는 경제 제일주의를 주장하는 그리스도인 지도자도 있다. 경제가 인생사의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인임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물론 배고픈 사람들에게 당장 먹을 것을 구해주는 것 같은 ‘경제 활동’이라면 그것이 최우선의 과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빈익빈 부익부,’ 철저히 천박한 자본주의적 재테크에 따라 땅 투기나 기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오로지 돈을 모으겠다는 일념으로 살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받들고 있는 사람이라면 스스로를 예수님 따르는 사람이라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는 그냥 금송아지를 섬기는 사람일 뿐이다.
- 제54절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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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세상을 바꾼 그들의 사랑 1~5 세트 - 전5권>,<종교인의 연애>,<아하!> … 총 56종 (모두보기)
인터뷰 : 예수는 없지만 예수는 있다 - 2002.12.03
소개 :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비교종교학 명예교수. ‘종교너머, 아하!’ 이사장.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교에서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북미한인종교학회 회장, 미국종교학회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북미와 한국을 오가며 집필과 강연을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세계 종교 둘러보기》 《종교란 무엇인가》 《장자》 《도덕경》 등이 있다.
내 속에 계신 하느님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예수가 진정 우리에게 원했던 삶을 담은 『도마복음』에 대한 풀이. 구원에만 초점을 맞춘 신약성경의 공관복음에 비해 내 속에 계시는 하느님을 아는 것과 이것을 깨닫는 깨침을 통해 내가 새 사람이 되고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도마복음』을,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가 학자로서의 풀이와 이해를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환기식 독법’으로 재해석해냈다. 따뜻함과 명쾌함이 묻어나는 그의 해설을 통해 믿음을 넘어 깨달음을 추구했던 전정한 예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믿음을 넘어 깨달음을 전파한 예수를 만나다
『또 다른 예수』는 예수의 어록으로 이루어진 『도마복음』의 텍스트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비교종교학의 관점에서 풀이하여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깨달음을 주는 책이다.
1945년 이집트 북부 나그함마디Nag Hammadi에서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된 문서 중 일부분이 『도마복음』이다. 4세기 초 로마 제국을 통일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면서,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하나의 하느님, 하나의 종교, 하나의 신조, 하나의 성서’로 통일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개별적으로 떠돌아다니던 그리스도교 문헌들 중 27권을 선별해 기독교의 경전으로 정경화하고, 자신의 신학적 판단 기준에 따라 ‘이단적’이라고 여겨지는 책들을 모두 파기 처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때 『도마복음』은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판단하여 지금까지 외경으로 인식되었다.
『도마복음』은 총 114절의 예수의 말씀인 어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50퍼센트 이상이 공관복음에 나오는 구절과 평행을 이루고 있다. 성서고고학자들에게 『도마복음』의 발견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예수가 전한 ‘비밀의 말씀’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도마복음』은 공관복음에서 주로 언급되는 기적, 예언의 성취, 재림, 종말, 부활, 최후 심판, 대속 등은 없지만, 대신 내 속에 빛으로 계신 하느님을 아는 것, 이것을 깨닫는 깨달음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공관복음이 예수의 구원과 믿음에 대해 강조하였다면, 『도마복음』은 깨달음을 강조하면서도 공관복음과 전혀 상호배타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다. 공관복음과 동일한 평행구의 예수의 말씀을 통해 내 안의 하느님 나라와 내 안의 참나를 깨닫고 우리의 종교의식이 한층 업그레이드될 수 있도록 인도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떻게 믿고, 또 어떤 삶으로써 깨달음을 드러내야 할지를 선명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공관복음에 나타난 것과는 또 다른 예수를 통해 종교의 본질을 다시금 진솔하게 사색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내 안에 있는 하느님 나라”, 기독교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도마복음』은 현재적 “하느님 나라”를 강조하면서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어떻게 살 것인지를 다루는 현실 복음이라고 할 수 있다.
성서에서 예수는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설교하면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과 같은 장소의 개념이 지배적이고, 이렇게 이해하는 기독교인들도 많다. 이 책은 종말론적 입장에서 보는 내세적 하느님 나라보다 현재적 의미적 하나님의 통치 영역을 강조하면서 『도마복음』은 이 “하느님 나라”의 현재성과 그에 대한 깨달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 『도마복음』은 믿음을 부인하지 않지만, 믿음을 넘어서 의식의 변혁을 촉구하고 있다. 공관복음에서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고 강조하지만, 『도마복음』에서는 믿음을 넘어서서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과 그를 통해 자유와 해방을 얻고 새 생명으로 태어나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진정한 종교의 의미는 무엇이며, 참 종교인의 모습으로 사는 것에 대해 깊이 숙고해볼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저자는 『도마복음』이 씨? 사상과 맞닿아 있음을 설명하면서 깨달음을 통해 “믿는 것은 그리스도다. 그 그리스도는 영원한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 된다. 그는 예수에게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내 속에도 있다. 그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와 나는 서로 다른 인격이 아니라 하나라는 체험에 들어갈 수 있다”는 험석헌 선생님의 말씀처럼 깨침을 얻으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오강남 교수의 『장자』『도덕경』에 이은 고전 풀이의 역작
『장자』『도덕경』을 펴낸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가 예수의 어록만으로 구성된 『도마복음』을 특유의 ‘환기식 독법’으로 풀어냈다. 환기식 독법이란 본문 자체의 의도를 찾아보고 오늘날 우리에게 메시지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적용해보는 ‘독자 반응 중심의’ 독법을 말한다. 이 책에서 오 교수는 해박한 비교종교학의 지식으로 『도마복음』을 깊이 있게 풀어내면서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을 깨닫는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비교종교학을 공부한 배경을 살려 다른 종교 전통의 문헌들, 특히 『장자』『도덕경』『불경』 등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과 비교하면서 이해하려고 시도했다. 또한 학자적 관점으로만 풀이하기보다 한 구절 한 구절의 깊이 있는 의미를 다양한 관점으로 풀이하면서 역사적 문헌을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떤 메시지로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지에 주안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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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또 다른 예수 새창으로 보기
겨울호랑이 ㅣ 2016-04-18 ㅣ 공감(2) ㅣ 댓글 (0)
˝도마복음˝을 비교종교학자 오강남교수가 해석한 책. 도마복음은 다른 복음서와는 2가지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다른 복음서는 복음 말씀의 지향이 ˝교회˝ 공동체이며, 이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 말씀인 반면, 도마 복음에서는 철저하게 자신의 내면을 지향한다.
또한, 다른 복음에서는 전체적으로 예수의 생애 속에서 전후 이야기 흐름이 보이는 반면, 도마 복음에서는 `말씀`위주로 구성되어 각 말씀이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도마복음은 말씀에 대한 해설이 필요한데, 이 책에서는 다른 종교와 비교를 통해 성경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비춰 주고 있다.
특히, 요한복음에서 믿음이 없는 인물로 묘사되는 `도마`라는 인물과 그의 공동체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내게 의미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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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또 다른 예수 새창으로 보기
달의뒷편 ㅣ 2014-12-12 ㅣ 공감(1) ㅣ 댓글 (0)
도마복음은 정경에 포함되지 못하고 사장되었다가 1945년 이집트의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되었다. 기존 복음서와는 달리 예수의 어록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점, 내 안의 참된 하나님을 발견해야 한다는 깨침을 중시한 점 등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이질적인 내용이 담겨있다.
도마복음을 쓴 도마(Tomas)는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으로 갈릴리 출신의 어부이다.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요한복음 20장 24~25절, 개역개정)
요한복음의 위 구절로 인해 그는 의심 많은 도마(doubting Thomas)로 불려진다.
그는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인도로 가서 선교하다 순교했다고 한다. 일설에는 그가 예수의 쌍둥이 형제라고 했을 정도로 그는 신비주의의 베일에 싸여있는 인물이다.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가 쓴 <또 다른 예수>는 도마복음을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풀이한 책이다.
특히 불교나 동양철학과 비교하여 해설한 부분은 도마복음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고 풍부하게 한다.
두 귀가 있는 자들은 들어라. 깨달은 자 안에는 빛이 있나니 그 빛이 온 세상을 비추노라. 그 빛이 비추지 않으면 어둠이 있으리라. (24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 비밀에 합당한 자에게 내 비밀을 밝히노라. 네 오른손이 하는 바를 네 왼손이 알지 못하게 하라. (6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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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믿음을 넘어선 깨달음을 원했다! - 도마복음 이야기 새창으로 보기
글샘 ㅣ 2014-01-02 ㅣ 공감(4) ㅣ 댓글 (2)
오강남 교수의 '도마복음' 풀이
공관복음이라는 말도 첨 들어본 나로서는 '도마복음'은 낯설었다.
그런데 이미 서론을 읽으면서도 이 책, 교회의 고집쟁이들은 참 싫어하겠단 생각이 든다. ㅋ~
그래서 맘에 들었다.
특히 한국 교회처럼 '성장 교회주의'를 우선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런 책들은 더 나와야 한다.
물론, 오강남 교수는 한국에서 활동하기 어렵겠다만...
여러분이 여자가 낳지 아니한 사람을 보거든 엎드려 경배하십시오.
그분이 바로 여러분의 아버지이십니다.(15절, 95)
성령으로 혹은 불로 다시 태어난 사람,
스스로 내 안의 하느님을 발견하라는 도마복음서의 취지에 따르면,
교회에 계신 하느님을 찾지 말고, 내 속에 빛으로 계시는 하느님(GNOSIS)을 깨달으라는 말이 된다고 한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158)
이 회개는 어원적으로 '의식의 변화'를 뜻한다고 한다.
반성해서 그분의 세계에 편입되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의식의 변화 혹은 변혁의 체험'을 바랐던 분이 예수님이셨다고...
초기 기독교 사회에서 '도마복음'을 배격하고 '요한복음'까지 설정한 것은 의미가 깊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깨달음에 이르므로 모두 예수님처럼 자유의 사람이 되라는 '도마복음'식 기별을 받아들이는 사람보다,
예수를 믿고 은혜의 선물로 주는 영생을 강조하는 '요한복음'의 길을 채택한 사람들이 많았다.(135)
많은 기독교 교회들이 권력과 결탁하여 부를 누리고 있다.
첨탑이 뾰족하게 자꾸 높아지면서 진리에서는 멀어지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다.
이런 현실에서는 '요한복음'처럼 빛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보다,
'도마복음'처럼 빛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우리 스스로도 빛임을 깨닫고 이를 비추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임을 공부하는 일도 신선한 경험이다.
신비주의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말을 인용하면서 종교의 기본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무엇을 해야 할까보다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할까를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성결의 기초를 행위에다 두지 말고 됨됨이에다 두도록 하라.
행위가 우리를 성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위를 성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본질적 됨됨이에 있어서 위대하지 못한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그 행위는 헛수고에 그치고 만다.(176)
헌금을 많이 하고, 신도 수를 늘리기 위하여 역전에서, 지하철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할까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무엇을 할까를 골몰한다.
길거리에서 노래부르며 커피 나눠주는 '00교회' 신도들 역시 그렇다.
그들의 됨됨이가 <등경 위의 등잔> 같다면, <우뚝 솟은 바위산> 같다면,
애써 기타 튕기며 노래하고 커피 주지 않아도 교회로 사람들이 갈 것이다.
도마복음의 가르침에서 뭔가를 얻을 수 있다면,
오늘날 그리스도교에서 해야할 가장 시급한 일도
이처럼 종교 지도자들이 감추거나 잃어버린 '깨침의 열쇠'를 다시 찾아 활용하라는 열쇠.(207)
두드려야 열리고, 찾으면 구할 것인데,
무엇을 할까에 골몰하는 그들은 두드리거나 찾지 않고, '감추거나' 애써 '잃어버리는' 교회로 가는 것은 아닌지.
<크리스찬> 되기보다 <크리스트>가 되라
이렇게 가르친 도마 복음을 되짚어 보는 일은, 높은 곳에서 자기들끼리 잘 사는 신도들에게
뜨거운 죽비가 되지나 않을까?
이미 죽비따윈 두렵지 않는 단단히 걸어잠근 마음이라면, 교회는 이미 크리스찬들의 천국이 되어버린 곳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든지 알게된 사람은 시체를 찾은 사람입니다.(56절, 267)
죽음을 알고 겸허한 사람은, 삶을 속도와 성장에 무게두지 않는다.
삶의 포인트는 밀도여야 한다.
괴로운 밀도는 트라우마가 되지만, 행복한 밀도는 삶의 자양분이 되는 법.
'깨달음' 이후로는 삶이 밝고 환하게, 신 나고 즐겁게 이끌어질 수 있다.
시체를 찾은 사람이 되어라.
가스펠 송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한 구절
I once was lost, but now am found.
<참나>를 찾아 울타리를 떨쳐나갈 용기있는 사람.
그 사람을 찾는 성경이 <도마 복음>이다.
새삼, 안중근 선생의 세례명이 '도마'였음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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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예수 / 오강남 새창으로 보기
nana35 ㅣ 2013-04-05 ㅣ 공감(1) ㅣ 댓글 (0)
나그함마디 문서 중에 가장 유명한 '도마복음'은 예수의 어록으로 이루어져 있고 공관복음과 많은 비유를 공유하고 있지만, 내면의 깨달음에 강조점을 두고 있어서 정전에 들어가지 못했다.
흔히 영지주의라 하면 비교秘敎적 신비주의나 은밀한 입교의식 같은 분위기를 기대하게 된다. 영지주의가 워낙 다양한 분파를 하나로 뭉뚱그린 명칭이기 때문에 그런 경향의 종파도 있지만, '도마복음'은 예수의 비유 속에 감추인 뜻에 도달하여 우리들도 각자覺者의 경지에 이를 것을 촉구하는 말씀이다.
저자도 각 절마다 주석을 달면서 도가나 불가의 가르침을 많이 인용하고 있는데, 양자의 친연성이 단지 비슷한 비유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 아니라 명상과 자아 성찰을 통한 깨달음(득도, 성불)을 중시한다는 본질적인 유사성 때문이다. 피조물과 완전히 절연된 유일신의 그늘 아래서 살아온 서양인들이 이런 사고법에 낯선 경외심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화두와 같은 가르침을 통해 해탈에 이르려는 선불교나 호흡법과 단약을 이용하여 인간도 신선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도교사상을 오랜 세월동안 체화한 동양인에게 '도마복음'은 '노자'나 '장자' 같은 고전속의 중층된 어록과 별다르지 않다.
신자 각각의 소우주를 중시한 이런 가르침이 주교 아래 통일된 교단을 세우려는 문자중심주의자들에게는 심히 거슬렸을 게다. 동양도 분서갱유와 같은 사상 통일의 참사를 겪었지만 그 기간이 짧았고 무엇보다 이 백가쟁명이 정치사상으로 그쳤기에 후대까지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면, 영지주의는 종교의 틀 아래서 믿음의 영역을 다투어야 했기에 로마제국을 점령한 가톨릭의 박멸 시도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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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의구심, 왜 예수의 말을 옮겨적었는데 뜻을 이해하기 어려울까? 도덕경처럼... 새창으로 보기
KarlKim ㅣ 2010-11-10 ㅣ 공감(1) ㅣ 댓글 (0)
몇년전 동양사상에 대한 탐구과정에서 한자를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오강남교수가 풀어쓴 도덕경/장자를 읽고 오랜동안 책꽂이의 가장 손이 닿기 쉬운곳에 놓아두고 밑줄 쳐가며 뜻을 음미했던 기억으로 책을 구매했다.
책을 읽고 나서 먼저 드는 의구심은 왜 예수의 말을 옮겨 적었는데, 해석 없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도덕경은 한자의 뜻을 일일이 찾아서 보면 대략적인 해석이라도 될터인데... 아마도 당대의 문화적인 지식없이는 이해가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나름 추정해 본다.
또하나 이상한 점은 일반인을 위한 서적이라고 보기에는 해석에서 인용되는 내용이 너무 지식을 요한다. 일반인들이 불교/기독교/유대교/흰두교/천도교의 교리나 경전을 어찌 알 수 있을까?
그리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지은이가 불교에 대한 비유를 하면서 드는 내용이 모두 대승불교의 경전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설법으로 언급하는 예수의 말을 해석하면서 부처의 직설법이 한두군데밖에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아마도 지은이가 최근 한국불교계에서 소개되는 초기불교 경전을 접하지 않은듯 하다. 여러곳에 불교적 해석을 하면서 표현하였던 대승불교의 '참나'라는 용어가 눈에 거슬렸음을 느낀다.
다루기 힘든 주제를 학술적인 관점에서 풀어 쓴 지은이의 용기에 감사 드린다. 인류 문화 유산을 발견된지 50여년이 지난 지금이나마 접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좀더 심도 있는 또 다른 접근을 시도한 도서를 기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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