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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3

오강남, 부처님의 탄생 > 월간고경

부처님의 탄생 > 월간고경 | 백련불교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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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와 사상]
부처님의 탄생
오강남 / 2024 년 1 월 [통권 제129호] / 
 24-01-05 13:20 / 조회390회 / 댓글0건

비교종교학자의 불교 이야기 1 |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학 명예교수)



연재를 다시 시작하면서



지난 1년 간 ‘심층종교와 불교의 미래’라는 큰 제목을 가지고 글을 쓰라는 부탁을 받고 1년치를 다 채워서 이제 끝나는 것으로 알고 작별 인사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편집인으로부터 계속 연재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고민하다가 ‘비교종교학자의 불교 이야기’라는 큰 제목을 가지고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비교종교학자의 입장에서 불교를 역사적으로 살펴 가면서 이웃 종교들, 특히 기독교와 상통하는 점, 서로 배울 점 등을 부각해서 종교 일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을 썼으면 합니다.



부처님의 탄생



오늘은 우선 부처님의 탄생 이야기부터 해보겠습니다. 불자라면 다 아시는 이야기이지만 다시 간단히 기술하고 그 의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부처님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상이한 자료 때문에 하나로 통일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대로 이야기해 보면, 부처님은 기원전 6세기 히말라야 산 밑자락, 지금의 네팔과 인도 변경 부근에 있던 카필라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샤카釋迦족에 속하는 슈토다나[淨飯] 왕이었고 어머니는 아름다운 마야摩耶 부인이었습니다. 부부는 결혼 후 여러 해가 지나도록 아기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부인이 45세쯤 된 어느 날 꿈을 꾸는데, 흰 코끼리가 코로 흰 연꽃을 들고 나타나 마야부인의 주위를 몇 바퀴 돈 다음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이었습니다. 그 후 부인은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사진 1. 부처님의 탄생을 그린 불전도(3세기 간다라, 페샤와르박물관).



해산일이 가까워오자 그 당시의 관습대로 친정에 가서 해산하기로 하고 친정으로 향했습니다. 가마를 타고 가는 도중 룸비니라고 하는 동산에 이르렀을 때 산기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부인은 무우수無憂樹 나뭇가지를 잡으려고 오른손을 드는 순간 아기가 왼쪽 옆구리에서 나왔습니다.



아기는 나오자마자 북쪽을 향해 길게 일곱 발자국을 걸어가서 오른손으로 하늘을, 왼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사자와 같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하늘 위와 땅 아래에 나 홀로 존귀하도다[天上天下唯我獨尊].”라는 탄생게를 외쳤습니다.

여기까지는 불자들이 모두 잘 아시는 이야기겠지요. 이제 예수님의 경우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경우



예수님의 탄생도 성경 4복음서에 약간씩 다르게 나와 있어 통일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에 따르면 지금의 팔레스타인인 옛 유대 땅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이라는 동네에 마리아라고 하는 젊은 처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요셉과 약혼 관계에 있었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도 전에 마리아가 아기를 배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약혼자를 배려해서 조용히 파혼하려고 했는데, 그때 천사가 그의 꿈에 나타나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네 아내로 받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고 하고, 이어서 “아들을 낳을 것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고 했습니다. 이 말에 따라 요셉은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습니다.



사진 2. 목동들의 경배를 받으시는 아기 예수님(17세기,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로마의 식민지였던 유대에 모두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서 호구조사에 임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북쪽 갈릴리 지방 나사렛에서 살고 있었는데, 한국 잇수로 따져 330리나 되는 고향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거기서 아기 예수를 낳았다는 것이 이른바 동정녀 출생 이야기입니다.



몇 가지 다른 경우들



첫째, 부처님이나 예수님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위대한 분들의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 출생이 특별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집트나 그리스, 중국의 영웅들의 탄생 설화는 물론 우리에게 가까운 우리 역사 이야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예로 우선 박혁거세를 들 수 있습니다.



지금의 경주 지방에 있던 여섯 마을의 촌장들이 모여 나라를 세우자고 결의하고 덕 있는 사람을 임금으로 모시기로 했습니다. 촌장 중 한 분이 양산 기슭을 바라보니 흰 말 한 마리가 꿇어앉아 울고 있었습니다. 다가가자 말은 홀연히 하늘로 올라가고 그 자리에 큰 알이 하나 남아 있었습니다. 그 알을 건드리자 거기에서 건강한 사내아이가 나왔는데, 그가 혁거세. 그 알이 박처럼 생겼다고 하여 박혁거세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사진 3.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설화가 전해 오는 경주 나정羅井.



혁거세가 태어난 날 닭처럼 생긴 용, 계룡鷄龍이 우물가에 나타나 그 옆구리로부터 여자아이를 나았습니다. 이름을 알영이라 했는데, 혁거세와 알영은 자라나 부부가 되고, 혁거세는 서라벌(신라)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그 외에 신라 4대 왕 석탈해도, 김씨의 시조 김알지도 모두 알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둘째, 또 다른 예는 고구려의 시조 주몽입니다. 하늘의 신 해모수가 하백의 세 딸 중 가장 아름다운 유화를 꼬여 그와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그 일로 하백은 유화를 집에서 쫓아냅니다.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어 헤매던 유화를 동부여의 금와왕이 그의 궁궐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런데 유화가 궁궐 방안에만 머물렀는데도 햇빛이 계속 그녀를 따라다니며 그녀를 비추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덜컥 임신하게 되었는데 해산을 하고 보니 큰 알이었습니다. 금와왕은 이를 불길하게 여겨 없애려고 온갖 방법을 다 했으나 모두 실패했습니다. 드디어 그 알에서 한 사내아이가 알을 깨고 나왔습니다. 아이는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 혼자서 걸어 다니고 일찍부터 힘이 세고 총명하였습니다.



탄생 설화의 속내



이런 이야기들을 문자 그대로 믿어서 나름대로 신앙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대로 믿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종교사적으로 우리에게 말해 주려는 더 깊은 뜻이 무엇일까? 그 ‘속내’를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첫째, 이런 기적적인 탄생 이야기는 위의 박혁거세나 주몽의 이야기에서 보듯 부처님이나 예수님의 경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이야기 하나 때문에 불교나 기독교가 특별하다거나 우월하다고 주장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둘째,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이런 정신적, 정치적 영웅들이 이렇게 특별한 방법으로 탄생했기 때문에 위대하게 되었다고 보기보다는 이런 이들이 그만큼 위대하기에 그들의 탄생도 보통 이상이어야 한다고 본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이런 기이한 일이 생긴다고 믿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이야기를 일거에 배격할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그런 정신적, 정치적 영웅들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위대하게 보였던가, 그들의 가르침이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하게 느껴졌던가를 가름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순전히 역사적이나 생물학적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무조건 그대로 믿으라고 하는 것을 문자주의(literalism)라고 하는데, 오늘날 젊은이들이나 지성인들에게 이런 문자주의를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불교에서도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하여 문자에 사로잡히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바울이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영은 사람을 살린다.”고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 속에 들어가 있는 ‘속내’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자주의를 경계하는 이들이 많지만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문학비평가 및 문학이론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캐나다의 노드럽 프라이(Northrop Frye, 1912∼1991) 한 분만을 소개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의미 깊은 말을 남겼습니다.



사진 4. 노드롭 프라이(Northrop Frye, 1912∼1991).



“성경이 역사적으로 정확하다면 그것은 오로지 우연일 뿐이다. [역사적 사실을] 보고한다는 것은 성경 저자들에게 전혀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들은 신화나 은유를 통해서만 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해준 것이다. 그들이 쓴 것은 상상력(vison)의 원천이 되는 것이지 교리의 근거가 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셋째, 부처님이 말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과 예수님이 말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부처님의 ‘아我’와 예수님의 ‘내가’가 무슨 뜻일까 하는 것입니다. 분명 이는 육체적이나 역사적인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여기서의 ‘나’는 우리 모두 속에 스며 있는 ‘우주적 나(cosmic I)’, ‘우리 본연의 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할 때 부처님의 선언과 예수님의 선포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나가면서



제가 평소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불경이든 성경이든 모든 경전은 결국 변혁(transformation)을 위한 것이지 정보(information)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경전은 철지난 과학책이나 역사책이 아닙니다. 경전에서 오늘을 위한 메시지를 얻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오강남 서울대학교 종교학 석사,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교 종교학과에서 ‘화엄 법계연기에 대한 연구’로 Ph.D. 학위취득.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종교학 명예교수. 저서로는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도덕경』, 『장자』, 『세계종교 둘러보기』,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종교란 무엇인가』, 『예수는 없다』,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살아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 『오강남의 생각』 등. 번역서로는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예수』, 『예수의 기도』, 『예언자』 등.
soft10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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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2

Kang-nam Oh - 삼동윤리(三同倫理)

(9) Kang-nam Oh - 삼동윤리(三同倫理) 우리가 동학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동학의 가장 중요한... | Facebook

Kang-nam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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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동윤리(三同倫理)

우리가 동학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동학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
시천주(侍天主) - 우리가 우리 안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
인내천(人乃天) - 우리가 바로 한울님이라는 것,
사인여천(事人如天) - 다른 사람들도 한울님이니 다른 사람들을 한울님처럼 섬기라.
아름다운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원불교의 중요 가르침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편인데, 
원불교의 중요 가르침은 삼동윤리(三同倫理) --
동원도리(同源道理)
동기연계(同氣連契)
동척사업(同拓事業)

동원도리(同源道理)는 모든 종교가 그 근원으로 올라가면 결국 하나라는 가르침입니다. 이는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스위스 출신 종교학자 슈온(Frithjof Schuon)의 사상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슈온에 의하면 모든 종교의 근원은 무색의 빛으로, 그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각기 다른 색깔로 나타나는데 그 각이한 색깔이 바로 각이한 종교들이라고 본 것입니다.
동기연계(同氣連契)는 모든 인류와 모든 생명이 같은 기(氣)로 연결되어 있는 ‘동포’라고 합니다. 이것은 모두가 기를 공유하고 있기에 한 형제라는 신유학이나 모두가 상호연관, 상호의존이라는 화엄의 세계관을 연상하게 합니다.
동척사업(同拓事業)은 종교인이건 일반인이건 다 함께 세상을 이롭게 하는데 힘을 합하자는 것입니다. 어느 종교학자는 종교들이 서로 다른 교리를 가지고 따지기보다 우선 다 함께 세상을 구하기 위해 힘쓰는 것이 좋다고 보고 이런 태도를 ‘soterio-centrism’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힘쓰는 것은 죽어서 어디로 가 보상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함께 세상을 살리는 일에 협력하자는 것입니다.
놀라운 가르침입니다.




Young-Jin Min
귀한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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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민영진 맞아요. 동학, 원불교, 성덕도--볼수록 귀한 가르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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閔弘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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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hoon Oh
교수님, 원불교의 3동원리, 정말 큰 감동을 줍니다.
오늘부터 좀더 짙게 관심 갖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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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Sehoon Oh 원불교는 이런 가르침을 통해 '개벽'을 가져오려고 했다고 합니다. 공부할 것이 많은 종교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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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hoon Oh
Kang-nam Oh 관심 가지고 읽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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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g Kyung Koh
그런것을 ...종교의 3동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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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l Dong Lee
원불교의 삼동윤리는 2대 종법사이신 정산종사님의 게송으로 모든 종교와 인류가 하나이며, 다 함께 새상을 이롭게 하는 일에 힘을 모으자는 범 종교적인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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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Kil Dong Lee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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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Hwangbo
May be an image of 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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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Young Hwangbo 훌륭한 가르침, 훌륭한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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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렬
정말 좋은 한국종교의 교리입니다. 많이 공부하고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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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hee Shin
진리는 "하나"인데 근기에 따라서 현자들께서 설법들을 해 놓으셧건만 내것은 옳고 네것은 틀리고 인간의 얕은 지식으로 편을가르고 있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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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Songhee Shin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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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성
깊이 공감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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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Sung Park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젊은 종교인 모임에서 제가 농반 진반으로 했던 이야기 중에 기성종교(불교, 기독교 등)은 죽어서 갈 천국이나 극락이 있으니까 여차하면 그곳으로 떠나면 되지만 우리(원불교)는 사후세계 교리가 따로 없으니 죽으나 사나 이 지구를 좋게 만들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환경운동도 경제운동도 죽기 살기로 할 수 밖에 없지요. 그렇기 위해서는 삼동윤리 실현 밖에 답이 없다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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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Kang-nam Oh
박대성 제가 말하는 '심층종교'의 특징 중 하나는 내세 강조가 아니라 현세 중심이라는 것인데, 원불교는 이런 심층종교 특징을 다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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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 Jung Gil
박대성 아멘×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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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n Wook Jin
세상원리를 간단하게 정리할수 있는것이 놀랍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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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un Kim
가르침을 실천 잘 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자성반성
미신타파
문맹퇴치
도덕정신!!
성덕도 4대강령입니다.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강남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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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Jong-hun Kim 성덕도의 4대강령도 훌륭합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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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건
원불교가 동척사업으로 처음 그 시기에 달걀하나 쌀 한 줌 모아 협동조합을 만들어 식민지 상황에서 경제적 자립을 위한 생활종교를 표방한 것도 타 종교에서 들여다 봐야할 점이라고 봅니다. 만법이 일원으로 귀일하니 세계일화입니다. 여여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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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황호건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원불교의 상징이 '일원상'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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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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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
좋은 가르침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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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김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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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영
우리나라에서 태동한 동학과 원불교의 귀한 가르침…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교수님 덕분에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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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l-young Yoo
응원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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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Kil-young Yoo 주신 꽃,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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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ngnae Kim
삼동원리에서 무엇이 같은가는 더 생각해봐야겠죠. 동학의 천, 모두가 한울님이기 때문에 모두가 동포이고 모든 종교가 하나라고 말 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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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김성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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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ngnae Kim
Kang-nam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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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연
동학과 많이 닮았네요 ~ 기독교의 복음도 원래는 비슷했었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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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정하연 이럴 때 제가 학생들 paper에 달아주는 평은 "good observations!"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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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연
Kang-nam Oh 감사해요 ~ 갑진년도 건강하시고 많은 가르침을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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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정하연 감사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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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i Won Kim
고맙습니다. 오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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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상
교수님, K-종교에 대해 더 많은 가르침을 주십시오. 후학을 위해 늘 건강하셔야만 합니다.💕
1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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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이덕상 좋은 제안입니다. 지금 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고맙습니다.
6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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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상
Kang-nam Oh 제가 감사드립니다.
6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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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g Kyung Koh
가정잘돌보고. 이웃에게 배려심있게 대하고 사시면 됩니다
6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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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향
늦겨울의 나목의 정취롭습니다. 산책하기 좋습니다.
4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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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Jina Kim
단군 홍익인간 사상에서 보듯 우리민족 안에는 그 심연에 세상을 이롭게 하고자하는 열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3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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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옥수
동척사업의 뿌리사상은 홍익인간이군요.잘 읽었습니다.~^♡^

Kang-nam Oh - 기독교의 개벽 사상, 예수님의 개벽 정신

(5) Kang-nam Oh - 기독교의 개벽 사상 2월15일 창비 창설자 백낙청 교수와 한국 자생 종교 동학과 원불교에서... | Facebook

Kang-nam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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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개벽 사상

2월15일 창비 창설자 백낙청 교수와 한국 자생 종교 동학과 원불교에서 강조하는 ‘개벽’ 사상을 놓고 세 시간 TV 대담을 했습니다. 이 대담 전에 백낙청 교수가 김용옥, 박맹수, 김용휘, 정지창, 방길튼, 허석, 이은선, 이정배 교수들과 동학/천도교, 원불교, 기독교에서의 ‘개벽’ 사상을 중심으로 대담하고 그것을 <개벽사상과 종교공부>(창비, 2024)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었는데, 저보고 이분들의 대담을 중심으로 총평 겸 저의 생각을 이야기해 보라고 하여 마련된 자리였습니다.   
이분들의 대담을 읽고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첫째, ‘개벽(開闢) 사상이 “동학·천도교, 증산교, 원불교의 핵심 가르침 중 하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종교들이 외세에 시달리고 고생하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다시 개벽’ ‘후천 개벽’을 강조했는데, 특히 원불교의 개교 포어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였습니다.
둘째, ‘개벽’이라는 것이 천지개벽 같이 하늘이 말리고 땅이 꺼지는 등 이 세상이 끝나고 새 세상이 열린다는 종말론적 사건이 아니라, 불합리한 현 세대를 끝내고 새로운 질서가 지배하는 새로운 세상을 연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개인 구원만이 아니라 사회 구원, 세계 구원을 포함하는 변화라는 것입니다. 
셋째, 제 개인의 생각입니다만, 이런 것이 개벽이라면 ‘개벽’이 동학과 원불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종교의 밑바닥에서도 발견되는 사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의 모든 종교는 불완전한 현실 세계에서 새로운 세상으로의 변혁을 꿈꾸는 일종의 ‘개벽’ 사상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유교도 <대학>에 나오는 것처럼 격물치지(格物致知) 성의정심(誠意正心)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 하여 정신수양을 하고 결국은 ‘치국’과 ‘평천하’하는 것, 질서있는 사회, 평화로운 세계를 이룩하는 것을 최종의 목표로 여기고 있는데 이것도 일종의 개벽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심지어 노자(老子)의 <도덕경>도 정치 지도자들을 위한 지침서로 그 최종적 목적은 그 당시 사회를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넷째, 무엇보다 중요한 발견은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도 개벽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라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웠다”고 외치다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당시 십자가는 정치범에게만 주어지는 형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로마의 학정에 시달리는 유대인들에게 사랑과 정의의 원리가 지배하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다가 정치범으로 체포되어 처형된 것이라 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종래까지 일반적으로 기독교의 핵심 가르침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의 공로를 믿고 죄 사함을 얻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제 개인의 죄 사함이 핵심이 아니라, '정신을 차리고(메타노이아를 체험하고),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의 원칙이 지배하는 새 세상이 이루어지도록 애쓰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개벽이 기독교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개인 구원만이 아니라 세상의 변혁(transformation)이 기독교 중심 가르침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입니다.
끝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학 창시자 수운이나 원불교의 창시자 소태산의 개벽 기별은 우리와 밀접하게 관계된 구체적인 근대사의 맥락에서 강조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유교나 불교나 기독교 등 종래까지의 종교들 속에도 개벽 사상이 있었겠지만 수운 선생이나 소태산 선생에 의하면 이들 종교는 그 ‘기운’을 다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유효기간이 지났거나 약효가 떨어져 세상을 구할 수 있는 도가 못 되기 때문에 선천 문화를 개벽할 수 있는 새로운 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학이나 원불교 개벽 사상이 우리에게 더욱 가깝고 귀하게 여겨지고, 나아가 한국 기독교도 이런 종교들과 발맞추어 예수님의 개벽 사상을 새롭게 강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호생
제 생각에도 모든 종교의 창시자는 새로운 세상을 여는 사상을 다 가지고 오셨다고 봅니다
그러한 사상이 기존의 세상을 발전시키는 정신적인 자양분이 되었다고 보고요
그런데 그런 사상은 오로지 사람의 문제만을 다루었습니다
2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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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생
하지만 증산께서 말씀하시는 개벽은 사람만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둘러싼 환경이 먼저 문제가 생겼다고 진단하시고 그 환경부터 뜯어고치는 공사를 보십니다
그것이 천지공사이고 그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이 후천개벽입니다
즉 그것은 사상적인 부분만이 아니고 실지적인 물질세상과 그 이면의 신명계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2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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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Kang-nam Oh
호생 증산도에서의 개벽은 우주적 개벽인 것이 분명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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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생
Kang-nam Oh 님 감사합니다~^^
저는 대순진리회 수도인 입니다~
2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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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Park
미국 기독교도들은 그 '개벽'을 '휴거'와 같이 해석해서 요한계시록'revelation'을 강조하고, 기후변화, 생태계 파괴에 대해 걱정하는 것을 미친 짓으로 규정합니다. 새 세상이 열릴 텐데, 신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 더 급하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기독교는 카나다, 오스트렐리아, 뉴질랜드 등 영연방 기독교와 천지차이로 다릅니다. 진보성이 전혀 없읍니다. (박사님을 곤혹케 하는 한국기독교의 무지한 단면이 미국 기독교라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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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Kang-nam Oh
John Park 휴거나 종말을 말하는 미국 기독교의 주류는 기본적인 패러다임 천이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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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Park
Kang-nam Oh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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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옥수
개벽사상의 의미 참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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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Sangil
책에 이어 페북을 통한 교수님의 가르침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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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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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n Park
이 개벽은 소위 우리가 말하는 '개혁reform'이나 '급진성radicality'와 같이 풀어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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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연
우리나라의 아름답고 참된 가르침이 참 많은데 왜 신천지가 득세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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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영식
좋은 조언이십니다. 불국토, 지상천국, 천지공사, 개벽론은 상통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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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영
깊이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다시 개벽의 시대가 열려야 한다는 생각들이 무르익어 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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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Bokseop
기독교인으로서 저항과 개혁이 기본인데 오늘의 교회는 저항도 개혁도 없어서 슬프네요. 개혁교회가 개혁을 상실했으니 소금이 맛을 잃은것과 같고 길에 버려져 밟힐까 안타깝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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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g Kyung Koh
머리가 씨끄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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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Sang Kyung Koh 죄송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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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g Kyung Koh
Kang-nam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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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l Dong Lee
오강남 교수님의 개벽 사상에 대한 견해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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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l Dong Lee
개벽은 먼저 나를 개벽시켜서, 작게는 가정과 이웃을 변화 시키고, 크게는 사회와 국가 그리고 온 인류를 변화 시키는 에너지를 만들어 가는것이 진정한 개벽이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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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은산
자기 종교에만 함몰되지 않는데서부터 개벽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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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eSook Kim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한 생각을 얻습니다.
2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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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K Park
기독교 종말론이라 하지 말고 개벽 사상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 사상도 신정론이 아니라 탈신정론적으로 해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느 종교나 샘은 같고, 바라보는 지평은 온전한 해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귀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2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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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박충구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탈신정론적 해석이 무엇인지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박 교수님을 비롯, 기독교도 새로운 기독교(A New Christianity)가 되어야 한다는 신학자들이 많은 것 고무적이라 여겨집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2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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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K Park
Kang-nam Oh Enttheokratisierung, 에른스트 블로흐가 Atheismus im Christentum에서 제안한 용어 인데요, 권력종교의 근원 신의 정치 개념을 버려야 참된 자유의 길이 열리고 모든 억압적 관계가 해소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했지요.
2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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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박충구 재미있는 생각이네요. 캐나다에 무신론 목회자가 나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네요. 종래까지의 신관은 설자리가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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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K Park
Kang-nam Oh 군주적 하나님 이념은 기독교 제국주의의 숙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도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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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춘
박충구 글쎄요. 성경을 부인한다면 모를까 어찌 군주적이지 않은 하나님이 가능할까요? 이미 단어 자체가 Lord인데요. 그리스도도 King이고요. 이성신론이라면 가능하겠네요.
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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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춘
박충구 신정도, 섭리도, 군주도 다 없애면(탈) 어떤 하나님일까요? 탈탈탈 털고나면 존재바탕이 드러날까요?
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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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oungsun Yoo
고맙습니다~^^ 귀한 글 업고가서 공유합니다! (넙죽)
2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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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Myoung Kim
개벽사상은 새로운 도덕 질서를 만들자는 것인데, 최시형의 삼경사상에서는 경천, 경인, 경물이라고 해서 사람도 사물도 하느님과 같이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개벽 사상에서의 새로운 도덕질서는 인륜도덕 질서를 넘어서는, 요즘 말로는, 지구학적 도덕 질서일 것입니다.
2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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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김원명 훌륭한 말씀 감사합니다. 한국 종교의 개벽 사상이 전 지구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대담에 참여하신 분들의 공통된 생각 같았습니다.
2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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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Myoung Kim
Kang-nam Oh 지구인문학은 지구 전체를 유기체적으로 생각하는 인문학입니다. 예를 들어, 기후 문제도 함께 생각하는 인문학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암울한 1860년에서 1948년까지 동학, 천도교, 원불교 등이 창시되며 개벽사상의 전성기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벽사상은 우주를 하나의 생동하는 기로 보는데서 현재 지구 전체를 걱정하는 지구인문학에 영감을 주는 사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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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김원명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개벽이나 천지공사를 외쳤는데 현재 세상이 왜 아직 이모양인가 이해하기 곤란한 면도 있는 것 같네요. 깊은 통찰 다시 감사드립니다.
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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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Myoung Kim
Kang-nam Oh 저도 천지공사 등등 이야기는 잘 납득되지 않습니다.
춘추전국시대에 제자백가들의 온갖 지헤가 나왔듯이, 조선이 망해가는 가장 어려울 때 깊은 사유들이 신종교로 분출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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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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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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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효
개벽사상 깔끔하게 정리해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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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선도
2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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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현
개인구원을 넘어 사회구원까지 넓게 지평을 여는 개벽사상에 전적으로 함께하며, 모든 종교의 개벽사상을 새롭게,또 조화롭게 이루어지기를 바래봅니다. 늘 함찬 박수 보냅니다.
2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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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화
개벽사상을 단박에 이해하게 해 주시네요 좋은 가르침 감사합니다
2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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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재
감사합니다 💕
2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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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회
단군의 홍익인간도 원래 뜻은 사람사는 세상을 이롭게 하자는 말이니 개벽사상이랄 수 있지요. "인간"의 원 뜻이 사람사는 세상이니까요.
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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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i Won Kim
원불교의 개벽은
수직적 차별관계였던
천(하늘)과 지. 부와 모,
사와 농공상, 입법자와 치법, 도덕과 과학의 관계를
평등관계로 , 인본을 넘어 금수초목까지
하나로 보고 불공하는 대변화의 개벽입니다.
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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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김제원 상세히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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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춘
(후천)개벽이 도래했다고 해봤자 좋은 세상에서 함께 좋게 살다가 결국 생로병사를 겪고 죽고 마는 그 허무함은 어떻게 극복하시려고요?
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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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g Kyung Koh
다들. 창시할때와 인간이 운영하면서. 망가져 가는것이 문제죠
21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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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우주의 진강급
인지의 진급기
선후천교역기
후천개벽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새로운 문명세상
진리적 종교
사실적 도덕의 훈련
진리는 하나
세계도 하나
인류는 한가족
개척하자 하나의 세계
종교협력(연합)
14 h
Reply

====
Kang-nam Oh
  · 
예수님의 개벽 정신

며칠 전 “기독교의 개벽 사상”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 예수님도 로마의 식민지 지배를 종식시키고 하느님의 통치 원리가 지배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꾼 개벽 사상가였을 것이라는 글을 올렸는데, 많은 분들이 호응하시고 좋은 댓글도 다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그와 관계되어 한 말씀 더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 당시 무력으로 로마의 식민지 지배를 종식시키려는 운동이 있었는데, 이들을 ‘열성당’(Zealots)이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도 열심당이 있었을 것이라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자신을 열성당으로 묘사한 책이 있습니다.
레자 아슬란 지음, 민경식 옮김, (와이즈베리, 2014) <젤롯 - “예수는 정치적 혁명가였다” 20년간의 연구로 복원한 인간 예수를 만나다>를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이 책은 2013년 출판되자 미국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었습니다. aladin.co.kr 인터넷 서점 책 소개에 있는 글을 옮깁니다.
“기독교의 나라 미국을 논쟁에 빠뜨린 화제작. 변방의 구멍이라고 불린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예수는 그중에서도 단연 카리스마 넘치고 혁명적인 리더였다. 로마는 그를 십자가 처형했으나 그의 메시지는 종교가 되어 로마를 삼켰다. 절대 굴복을 모르는 의지, 하느님의 나라가 기어코 오리라는 열정적인 신념, 이것이 젤롯(zealot)이다.”
제가 한마디 덧붙이면 예수님은 로마의 식민지 통치를 뒤집어 엎으려 시도했다고 볼는 수 있지만 일반 열성당처럼 무력을 사용하려 하지 않고 그대신 “의식 개변(메타노이아)”라는 정신 개벽을 통해 그 일을 완수하려 하지 않았을까 보고 싶습니다.

알라딘: 솔바람 물결소리, 남지심 2014, 초판출간 1982년

알라딘: 솔바람 물결소리


솔바람 물결소리 
남지심 (지은이)얘기꾼2014-10-22
초판출간 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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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쪽

책소개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화엄만다라를 그리듯 모든 등장인물이 주인공이 되는 글을 써오고 있는 남지심 작가의 장편소설 <솔바람 물결소리>. 작가의 초기작이다.


목차


프롤로그 006
다비식 009
1장 3월 023
2장 4월 059
3장 5월 091
4장 6월 119
5장 7월 157
6장 8월 187
7장 9월 225
8장 10월277
9장 11월 313
10장 12월 349
11장 1월 375
다비식 401


책속에서


P. 12죽음은 영원한 이별, 한순간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영원한 이별, 생명은 끝없이 윤회한다 하나 전생의 만남을 모르니 내생의 만남도 알지 못한다. 생(生)과 사(死)가 하나라지만 그건 요원한 비밀, 지금 우리에게는 육신의 이별만이 안타까운 것이다.
P. 255바보라는 말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다. 바보가 되면 편한데 사람들은 바보가 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지 못하는 건 바로 그래서가 아닐까?
P. 305석양을 받아 은회색으로 반짝이든 바다는 검은 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바다는 어둠속에 잠길 것이다. 그러면 바다의 형체는 볼 수 없게 된다. 인간의 생명도 그런 것이 아닐까?
죽음이 오면 육신의 생명은 끝난다. 하지만 바다의 본래 모습이 어둠 속에서도 변화가 없듯이 인간의 생명도 육신의 생(生), 멸(滅)과는 관계없이 그대로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 사가 따로 없고 모든 생명은 여여 하여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접기
P. 364나는 창가로 고개를 돌리고 거리 풍경을 바라보았다. 다솔스님이 보고 싶었다. 그러나 다솔스님은 너무 먼 곳에 계셨다. 이 무서운 절망의 순간에도 내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에 계셨다. 아득한 그 거리, 그건 바로 잿빛 승복이었다.
P. 368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서 내 소유로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나에게 가장 마지막으로 남아 줄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마음일까? 하지만 마음은 형체가 없다. 형체가 없을 뿐 아니라 끝없이 유전(流轉)한다. 그 마음을 나라고 하기에는 너무 막연하다. 결국 내가 살아 온 삶 자체가 어떤 환영(幻影)처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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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만에 밀려오는 감동
- 남지심 작 <솔바람 물결소리>를 다시 읽고

남지심 작 소설 『솔바람 물결소리』가 산뜻한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나왔다. 반갑고 기쁜 일이다. 198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작이었으니 3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 새 모습으로 부활한 셈이 아닌가? 감격스러운 일이다.

내가 새로 나온 이 소설을 이처럼 반기는 것은 내가 이 소설과 특별한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30여 년 전 캐나다 토론토에서 나오는 어느 교포 신문에 연재되었다. 불교를 소재로 한 이 소설이 그 당시 캐나다 대학에서 불교를 가르치고 있던 나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 소설에 은은히 배어 나오는 불교 정신은 내가 학생들에게 강의하면서 설명해주는 불교 내용보다 더욱 감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불교에 관심이 있는 서양 학생들이나 한국인 2세들이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간 신문이라 한 주일에 한 꼭지씩 연재되어 나오는 것을 영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신문이 배달되어 올 때 마다 그때그때 번역하다가 어느 새 책 전체를 다 번역하게 되었다. 완성된 원고를 내가 가르치던 몇몇 학생들, 친구들, 내 아들에게 읽어보게 했다.

1986년 가을 교수들이 6년 가르치고 1년 자유롭게 보낼 수 있는 안식년을 맞아 서울에서 가르치기로 하고 귀국했다. 어느 날 학교 도서관에 비치된 『한국일보』 자매지 The Korea Times 지를 보는데, '한국현대문학번역' 응모에 관한 광고가 나왔다. 그 때 5.25 인치 커다랗고 얇은 프로피 디스크에 넣어온 번역물을 프린트해서 코리아 타임즈사로 보냈다. 그해 11월 초 제17회 현대문학 영문번역 장편소설 부문에서 당선되었다는 통고를 받았다.

지금도 그 때 줄 한 줄 번역하면서, 그리고 번역된 것을 고치고 또 고치면서 느낀 감동과 여운을 잊을 수 없다. 강 선생님이 혜강이에 대해 가졌던 마음 씀씀이, 강 선생님과 다솔 스님과 혜강이가 홍련암에서 3일간 기도하던 일, 강 선생님과 다솔 스님이 음성나환자 촌인 청솔 마을을 찾아 가는 이야기, 마지막으로 청솔 마을을 찾아 갔다가 돌아오면서 다리 위에 수북이 쌓인 눈을 솔가지로 쓸어내리는 다솔 스님의 모습, 눈을 피해 들어간 폐가에서의 마지막 장면, 혜강이가 조상하다가 완성하지 못하던 관세음 보살상을 강 선생님이 숨을 거둔 모습을 보고 난 후 완성한 것, 다솔 스님의 다비식 등, 이 모두가 30년 전 내 마음 속에 그려진 그 장면들이 지금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새로 나온 책을 펴 보았다. 전보다 아름다운 표지와 시원시원한 행간이 읽기에 더욱 편해졌다. 내 머리에 아직 남아 있는 대사 몇 구절을 찾아보았다.

주인공 강 선생님이 어린 딸 자운이를 남기고 먼저 떠나야 할 심정을 그리는 대목이다. "나는 자운이 발밑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너를 남겨두고 가야 하는 엄마는 죄인이다. 나는 자운의 조그만 두 발을 가슴에 꼭 껴안았다. 그리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울었다."(374쪽)

강 선생님이 죽기 전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뒷일을 모두 챙기고 하는 말이다. "정이란 가장 고통스러우면서도 역시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이 비록 번뇌망상의 원천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정을 느낄 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그 짙은 애정을 확인하지 못했다면 나의 마지막 길은 더욱 쓸쓸했을 것이다."(389쪽)

지금 읽어도 역시 감동이다. 아니 30년이 지나고 읽으니 이런 대목이 더욱 숙연하게 다가옴을 느끼게 된다. 나에게만이 아니라 전에 읽었던 독자들이나 새롭게 이 책을 접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이 주는 잔잔한 감동으로 마음이 정화되는 경험을 하게 되리라 믿는다.
- 오강남 (종교학자,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명예교수)



저자 및 역자소개
남지심 (지은이)

작가와 작품은 일치할까? 이 질문에 아마 그럴 것 같다고 대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 남지심 작가이다.

남지심 작가는 강릉에서 태어나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장편공모에 『솔바람 물결소리』가 당선되어 글쓰기 작업을 시작한 이래,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화엄만다라를 그리듯 모든 등장인물이 주인공이 되는 글을 써오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솔바람 물결소리』, 『연꽃을 피운 돌』, 『우담바라 1,2,3,4』이 있고 인물 평전으로 『청화 큰스님』, 『한암』, 『명성』, 『불영의 법향』등과 에세이 『톨스토이와 흰 코끼리』등 다수의 수필집, 소설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우담바라 1~4 세트 - 전4권>,<우담바라 4>,<우담바라 3> … 총 32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남지심 작가의 『솔바람 물결소리』와 『연꽃을 피운 돌』을 그리워했던 많은 독자들을 위하여, 소장하고 선물할 수 있도록 단아한 디자인에 고급스러운 양장으로 정성들여 제작하였습니다.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선보이는 『솔바람 물결소리』와 『연꽃을 피운 돌』과 함께 30년만의 감동과 추억을 다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솔바람 물결소리』를 쓸 때 내 나이는 36살, 지금 생각해 보면 풋풋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젊은 나이였는데, 나는 그때 왜 그렇게 죽음의 문제에 매달려 있었는지 모르겠다. 주인공 강기혜를 그때 내 나이인 30대 후반에 폐암으로 죽게 한 후, 35년의 세월이 흐른 금년 봄, 나도 폐암 수술을 받았다. 폐암이라는 판정을 받았을 때 내 머릿속에서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솔바람 물결소리』였다. 뿌린 씨를 거두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프롤로그중에서

[ 편집자 이야기 ]

30년전의 일로 기억된다.
초등학생 시절에 나의 어머니는 한 동안 책 한권을 손에서 놓지 않고 계셨다. 어떤 책인지 제목을 어깨 너머로 보고는 이내 흥미를 잃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책을 좋아 하셨다. 언제나 손이 가는 곳에 책이 놓여 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어머니가 유독 한권의 책을 가슴에 대고 계셨다. 그 책이 '솔바람 물결소리' 였다. 아직도 그 때의 장면과 기억을 어렴풋이 가져 올 수 있는걸 보면 어린 시절 나의 눈에 꽤나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대학시절, 어머니처럼 작고 낡아버린 서가에서 오래된 책이 눈에 띄였다. 『솔바람 물결소리』 그리고 『연꽃을 피운 돌』 마치 같은 듯 다른 느낌의 이 두 책이 항상 보살핌을 받고 있는 것처럼 단아하고 가지런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흥미를 끌지 못했던 제목의 책은 10년이 지난 나의 눈에 새롭게 들어왔고 또 남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시 20년 이라는 긴 시간을 지나 남지심 작가의 『솔바람 물결소리』와 『연꽃을 피운 돌』을 내가 몸 담고 있는 작은 출판사에서 출간하기로 하였을 때, 책 만드는 내게 숙연(宿緣)이라 할 수 있는 책이 기다려주고 있었다는 것은 묘한 설렘으로 다가왔다.

2014년 10월 22일, 이 책이 인쇄소에서 나온 날, 아직 인쇄기계의 온기가 남아 있고 종이 냄새가 거칠게 베어 있는 책을 들고서 어머니가 살고 계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더 이상 낡아질 것이 없는 작은 서가에 표지가 잘 보이도록 두권을 나란히 놓고 나왔다.

[ 출판사 이야기 ]

만남은 우리의 삶을 끌고 가는 나침반이다. 좋은 만남은 우리의 삶을 좋은 쪽으로, 나쁜 만남은 우리의 삶을 나쁜 쪽으로 끌고 간다. 그래서 얼마큼 가다 보면 만남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자연히 알게 된다.
만남은 꼭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책도 인생을 밝음 쪽으로 혹은 어둠 쪽으로 얼마든지 끌고 갈 수 있다. 책은 작가의 사상이 농축된 것임으로 오히려 더 강렬한 힘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고 본다.

남지심 작가의 초기 작품인 『솔바람 물결소리』와 『연꽃을 피운 돌』을 다시 펴내게 된 것은 좋은 만남을 가져다 줄 좋은 작품이라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30여년이라는 세월은 한 시대를 뛰어 넘는 긴 시간이다. 그럼에도 조금도 녹슬지 않은 것 같은, 오히려 더 은은한 광채를 내 뿜는 것 같은 두 권의 책은 좋은 친구처럼 독자 한 분 한 분과 좋은 만남의 인연으로 이어가리라 믿는다.

이 가을, 국화 꽃 향기 같은 두 권의 책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기를 바란다. 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