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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2

서클 대화 진행의 증언과 그 비전 2 | 박성용

농촌과 선교 - [117호] 서클 이야기 : 서클 대화 진행의 증언과 그 비전 2 | 박성용
[117호] 서클 이야기 : 서클 대화 진행의 증언과 그 비전 2 | 박성용
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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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클 대화 진행의 증언과 그 비전 2

박성용 / 비폭력평화물결 대표


1. 서클의 조우와 토대 구축기- 2005년~2009년: AVP/HIPP, 그리고 서클 프로세스

각각의 서클 모델이라는 시냇물들이 2020년 현재 하나의 흐름으로 되기까지 한국에서 경험한 서클의 기원을 되돌아가 보면 그 각각에 약간의 관심과 문제의식 그리고 작은 만남의 사건들이 존재한다. 그때는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몰랐던 우연적인 조우로 혹은 작은 움직임의 시작으로 여겨진 것들이었다. 목격자이자 비폭력활동가가 된 지금의 나도 그 당시엔 하나의 작은 꿈이나 바램이어서 실재(reality)가 되는 미래에 대해 정확히 무엇이 될지는 몰랐다. 또한 그 작은 실마리의 꿈 이상으로 내 개인의 삶과 단체의 내부외부상황이 모호하고 생존의 비안전성으로 인해 잔뜩 구름이 많이 낀 개인과 단체의 상황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10년간의 해외 유학 말기인 2001년 마지막 학기에 9.11사태를 퀘이커 펜들힐에서 가을학기를 보내면서, 그간 유학 외에 미통일운동의 단체인 <자주연합>의 지역활동가로 있었던 나는 퀘이커교도이자 함석헌의 제자였던 해외통일운동의 산 증언자인 이행우 선생님의 도움으로 등록비 없이 펜들힐 센터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9.11사태를 퀘이커교도들이 어떻게 비폭력직접행동과 비폭력 증언활동(witness movement)을 하는지 목격하고, 거기서 1주일에 한 번씩 하는 서클 대화모임을 참관하게 되었다. 이행우 선생과 이미 펜들힐에 왔다 간 정지석 박사와의 인연으로 한국에 오면서 박사과정 마무리가 필요한 정지석 박사가 있던 유네스코/아시아태평양국제이해교육원의 시민사회 실장 자리를 2002년부터 3년간 이어 받게 되었다.

2003년인가 그다음 해에 학술진흥재단의 아시아종교분쟁과 평화프로젝트 2년 연구 사업차 필리핀 민다나오에 가서 거기서 3주간의 평화훈련과정에 참여한 한국의 참여자 10여 명 중에 통역자 겸 와있는 이재영(당시, 한국아나뱁티스트소장) 소장과 박수선 선생(평화여성회)외 몇몇이 필리핀의 평화운동을 배우면서 지금의 가해자피해자대화모임에 대한 2년간의 훈련과정에 있었던 것을 우연한 만남으로 알게 되었다. 이 우연한 만남은 2005년 초에 아태교육원을 그만두고 5월부터 비폭력평화물결의 공동대표로 옮아가면서 예기치 않은 필연적인 네트워크 활동으로 지금까지 동료로서 몇몇 개인 활동가와 단체들의 연대라는 인연을 맺게 된다. 그리고 민다나오에서 2년차 학진연구관련 필리핀원주민 방문을 통해 현주민의 서클형 대화의 충격을 받았지만, 펜들힐과 필리핀 원주민의 대화방식이 서클진행방식에 의한 차이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깨달은 것은 비폭력 실천의 전략에 대한 몇 년 후의 성찰과 자각을 통한 일이다.


비폭력 실천의 방식 중 사회변화(social change)라는 입장에서 분단조국의 현실에서 당장 내게 다가온 활동은 ‘7.27한강하구평화의배띄우기’라는 약 천여 명의 연인원이 몇 년 동안 지속된 사업이다. 이 운동을 DMZ분단선없는 한강하구에서 유엔사를 괴롭히고 시민의 평화연대를 각성시키는 비폭력직접행동의 운동을 김포, 강화, 인천, 서울, 일산의 5개 도시 시민사회단체들과 종교기관들로 이루어진 10여 개의 단체연합운동이 내가 오기 전년도부터 4년간 전개되었다. 비폭력평화물결은 퀘이커교도인 미국의 비폭력세력단체(NPI, nonviolent peaceforce international)의 데이비드 핫소대표가 그간 미국에 3년간 방문하며 퀘이커교도로 바뀌어져 돌아온 민중신학자 박성준 공동대표가 몇몇 동료와 이미 2002년 북미전쟁 가능성 앞에서 ‘인간방패’라는 방식의 비폭력직접행동의 방식으로 인간안보를 꿈꾸며 만들었다. 이미 박성준 선생은 단체 내에서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평화’라는 방식으로 퀘이커의 영향을 받아 토킹피스로 하는 참여형 서클대화방식을 전개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단체 내에서 다른 실무자들에게 공유된 것은 아니었다.


네트워크의 방식과 이로 인한 네트워크 리더십을 세우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것은 -이는 물론 나에게도 처음부터 익숙한 방식은 아니었다. 상황이 나를 그쪽으로 몰아갔던 것이다- 그 당시 평화활동가 연차대회를 3년간 준비하고 운영하며 10여 개 평화단체들과의 인연과 그 평화활동가 연차대회를 통해 알게 된 기독교 평화훈련단체들 -개척자, 한국아나뱁티스트 센터, 평화여성회 등- 그리고 기타 여러 평화운동단체들과의 연대모임꾸리기를 통해 나온 실무적 정황에 의한 것이다. 참여, 같이 숙고하기, 의사결정의 진통 과정을 경험하기, 새로운 기획을 위한 분담, 홍보와 실행 등의 방식을 통해 몇 가지 기획들이 이루어 졌다. 공동대표에서 대표로 위치전환 후부터 한강하구배띄우기 이외에 평화활동가연차대회 만이 아니라 4 훈련단체들과의 기독교평화아카데미, 그리고 여러 단체들과 더불어 요한 갈퉁(평화학자 요한갈퉁은 NPI의 일본지부인 일본비폭력평화세력단체[NPJ]의 교코 대표와의 인연으로 초대되었다)의 TRANSCEND 모델의 훈련워크숍 진행 등이 펼쳐졌다. 이러한 연대단체들과의 훈련워크숍 및 연대활동의 핵심동기는 평화활동가의 지침과 임파워먼트 그리고 상호지원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에서 나왔고, 내가 소속한 단체는 평화운동이라는 전선운동을 지원하는 공급책으로서의 훈련과정과 훈련매뉴얼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미 서클에 대한 자각 없는 사전 경험 -펜들힐, 필리핀 민다나오-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평화단체들과의 과정을 만들어 초대, 참여, 숙의, 결정, 나아가기라는 무의식적인 동아리진행원리를 실무와 네트워크사업에서 진행하고 있었지만, 서클을 의식하고 훈련과정으로 만나는 것은 2006년 대전의 퀘이커교도인 이종희 선생이 독일생활 30년을 접고 한국에 들어와 때마침 독일 친구이자 AVP 진행자인 우테 카스퍼스의 방한과 AVP의 소개워크숍에 대한 제안을 받고서 이다. 나는 당시 이종희 선생 개인도 AVP도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독일 퀘이커단체의 재정지원과 AVP(Alternatives to Violence Project; ‘삶을 변혁시키는 평화훈련’으로 한국에서는 소개되고 있음)의 성격에 대해 듣고서 의심 없이 흔쾌히 2007년 4월에 10개 단체들의 동의를 얻어 첫 공개워크숍과 1일 맛보기 워크숍을 열어 참여자 40여 명의 전원의 동의로써 이 워크숍이 우리 평화활동가들에게 필요한 모델이고 향후 한국에서 진행되기를 바라는 결정을 얻게 되었다.


원래 재소자 임파워먼트 훈련 프로그램 진행과 그것의 가치를 일상에서 실현하는 AVP진행자커뮤니티형성(55개 국가에서 진행)을 위해 한국에서 시작된 AVP는 청소년훈련과 학교에서의 교사의 지원을 위해 본 단체의 사업으로 AVP와 연관된 모델인 HIPP(Help Increase Peace Program; 한국에서는 ‘청소년평화지킴이’로 소개됨)의 가능성을 2007년부터 산돌학교 등을 통해 확인하며 한국의 학교상황에 대한 적응을 모색하게 되었다(HIPP의 본격적인 진행자과정은 2009년부터 광명에서 광명교육연대와 네트워크 사업으로 첫 시작을 하게 된다.).


서클은 간단하지만 의식의 깊이에 자리 잡기까지에는 원래 낯선 문화와 진행방식이어서 이것을 본격적으로 만나는 작업은 서클 프로세스에 대한 삼선재단의 지원에 의한 연구에 의한 결과이다. 이는 2000년 하반기에 사회감수성학습(SEL; Social & Emotional Learning)의 2년간의 연구 그리고 이후 평화감수성 훈련의 AVP의 긍정적인 영향 하에 서클 자체에 대한 이론적인 연구인 서클 프로세스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서클의 적용 가능성에 대한 긍정성을 갖게 되었고, 확신에는 불충분하지만 이제 서서히 서클로 하는 대화진행방식에 대한 이 연구와 AVP/HIPP의 경험을 통해서이다.

서클 프로세스에 대해 의식적으로 단체 내에서 밖으로 소개할 필요성을 지닌 도화선은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파동으로 인한 열심히 활동하던 한 촛불집회단체의 내부갈등에 대해 간단한 서클진행 대화방식의 도입부터가 시작점-아마도 2009년-이 된다(참고로 이명박 정부 시절에 촛불집회 이후 평화통일단체들은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특히 통일단체들의 보이지 않는 굿바이의 현실이 너무 컸다. 이 시절에 통일단체는 1/3로 축소되어 명망가 높은 대표가 있는 단체를 제외하고는 다 사라졌다.) 안전한 공간, 초대, 참여, 돌아가는 리더십, 센터피스와 토킹피스 등에 관한 서클개념들이 대화진행의 작동원리로 정착되기 시작한 것이다. 흥미로운 관찰은 기독교평화아카데미 3년간의 네트워크형 평화훈련 과정에 있어 소수의 참여자가 모여 어렵게 훈련과정을 진행하여 의미 있는 활동가를 키워냈지만, AVP/HIPP 그리고 서클 프로세스 등은 일반 대중의 손쉬운 서클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불러내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연스러운 경로로 서클 진행자로 서게 되었다는 점이다. AVP, HIPP를 만나서 혹은 단체 내부의 평화교육팀의 활동을 통해 서클을 만남을 통해 진행자로 활동가로 서는 일들이 매우 높아졌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현장에서 보게 된 것이다. 서클이 기존의 활동가에게 신념과 열정을 강화시키거나 일반인에게 동기부여와 새로운 활동가로 서게 하는 확률이 높아지면서 이에 대한 자연스러운 집중과 헌신이 나와 소속단체의 미션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비폭력평화물결에서 활동하던 초기 2005-2009년간은 유네스코·아태교육원이 시민사회 실장직에서 얻은 국내 평화단체들과의 연결, 그리고 평화의 배 띄우기, 평화활동가연차대회, AVP 등의 네트워크 사업 등을 통해 나와 소속단체의 자기 정체성과 방향 재정 위의 기간이자 서클이 단체에 수육(incarnate)이 되는 초기 시기였다. 이에 대해 다른 두 사건이 신념에 대한 전환을 준 것이 있었다. 그것은 2008년 촛불집회 이후 서클 프로세스의 중요성만 아니라 단체가 박성준 공동대표의 리더십이 떠난 단체 내 회원 활동 급격한 감소와 이명박 정권의 촛불단체들에 대한 집중적인 고사 작전을 통해 평화통일단체들이 사라지거나 어려움에 부닥쳐 2009년부터는 본 단체의 존재 가능성이 불투명해지기 시작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불길한 징조 앞에서 2008년 촛불집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바로 직전에 4월에 13개 단체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조지 레이키의 비폭력직접교육(nonviolent direct education)워크숍 4박 5일을 치렀고, 2008년 가을부터 네트워크 사업으로 준비하여 2009년 가을까지 진행된 비폭력세계행진이라는 칠레에서 시작하여 북미 유럽 그리고 아시아를 거쳐 다시 남미로 가는 국제연대 활동을 치렀다. 이 두 사업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생존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과 결핍에 대해 전혀 다른 관점을 얻었다는 점이다. 단체 내 전직 공동대표로 인해 모여든 후원자들의 떠남과 단체의 활동위축과 외부의 이명박 정권의 평화통일단체의 지원사업 중단의 시작이 주는 부정적인 충격이 서서히 몰려오고 있는 상황에서 조지 레이키의 민중의 지혜와 열성을 끌어내는 방식과 비폭력 행동의 다른 방식으로서 사회 방어(social defense)와 제3자개입(TPNI; third party's nonviolent intervention)에 대한 이론적 이해를 처음 접했고, 20여 단체들과 아무런 재정 없이 시작된 <세계비폭력행진>의 국제연대를 무사히 치러 내면서 자원과 재정의 결핍의 시작에도 불구하고 활동의 풍성함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만드는 민중에 대한 의존과 과정의 형성단계에 대한 중요성을 처음으로 이해하거나 그 중요성의 씨앗을 가슴에 품게 된 것이었다. 네트워크는 매우 중요한 ‘자원(resources)’이었고, 돌파를 위한 힘이 되었으며, 이들을 결합하는 '진정성 있는 문제의식'의 공유야말로 이들을 서로 끌어당기고 앞으로 가게 만들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확신을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확신은 단순히 신념으로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정교한 훈련이나 과정적 수단을 통해 발휘된다는 직접교육론(pedagogy of direct education)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비폭력대행진의 네트워크 사업이 끝나자마자 비폭력 훈련에 대해 집중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그간 알고 있었던 한국 NBC 센터의 캐서린 한 대표와 회복적 정의운동의 흐름에 대해 그동안 계속 들려주었던 이재영 소장을 2009년 11월 29일 보증금을 까먹어가며 버티고 있던 우리 단체의 가장 가난했던 공간인 서대문 영천시장의 2층의 사무실에 초대해서 모임을 갖게 되었다. 그 역사적 모임이 바로 ‘회복적정의시민사회단체네트워크’의 출발이다. 그동안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무엇이 새롭게 징조로 펼쳐지는 지를 공유하고, 훈련기관의 공통의 특성을 통해 무엇이 가능한지 협력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재영 선생의 그간의 회복적 정의 운동의 공헌에 눈여겨보아 왔고, NVC의 시민사회에서의 대화 운동의 가능성 그리고 AVP와 HIPP가 갖는 재소자들과 청소년들에게 줄 수 있는 갈등과 폭력에 대한 임파워먼트 훈련에 대한 각각의 모델이 결합하고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연대사업으로서 ‘회복적 정의’에 대한 공동의 사업추진을 확인한 첫 모임이 되었다. 그리고 2010년부터 평화여성회 내 갈등해결센터의 박수선 대표 등의 몇 단체들(광명교육연대, 나중에는 좋은교사운동 등)을 더 초대하여 본격적으로 ‘회복적정의시민사회네트워크’라는 공식명칭을 사용하게 되었고 향후 여러 일들이 펼쳐져 나가는 시원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는 허공에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동안의 여러 활동사업을 통한 신뢰와 우정에 의한 관계망이 형성되면서 나온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각자의 진실이 서로 엮여서(weaving) 새롭게 출범된 모임이고, 나는 이것이 각자의 작은 진정성으로 출발했지만 이 모임이 향후 중대한 변화를 일으킬 줄은 그 당시에는 꿈에도 예측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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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세상에 대한 경청(敬聽) / 박성준(성공회대 교수) 불교신문

이웃과 세상에 대한 경청(敬聽) / 박성준(성공회대 교수) < 신행 < 수행·신행 < 기사본문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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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세상에 대한 경청(敬聽) / 박성준(성공회대 교수)
신행
입력 2003.06.25 13:02
호수 152

“불교의 좋은 점?” 우선 떠오르는 대로 적어보면, -‘도그마’가 없다.-인간을 신이라 하지 않는다.-현대 과학의 지식과 융화한다.-다른 종교에 대해 관대하다.-사람마다 저 나름의 방식으로 깨달음과 해탈의 길을 추구할 수 있다.-불교에서는 깨달은 사람을 ‘부처’라 한다. 누구라도 존재의 실상을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불교에 대해 대강 이러한 호감을 가진 지는 오래됐다. 그런데도 불교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나는 대학 재학 중 군에 입대하여 병영생활 틈틈이 영어 성경책을 읽었다. 그러다가 인간 예수의 인품과 매력에 이끌려 기독교신자가 되었다. 그 후 40여년의 세월동안 기독교 신앙으로 인한 마음의 갈등과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더구나 역사와 사회에 대한 맑스주의적 해석에 눈떴던 나는 서구 기독교세계의 폭력성과 제국주의적 성격에 대해 예민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따금 내 마음속을 파고드는 ‘부끄러움’이 있었다. 그것은 한국인막?태어난 내가 서양종교인 기독교인이 되어 기독교에 대해서는 좀 안다고 하면서도, 우리 조상들이 삶의 근거로 삼아왔던 종교와 사상과 문화 전통에 대하여 무지하다는 자각이었다. 나는 그래서 나름대로 노력해 보았다. 특히 불교의 경우 제법 많은 시간을 들여 불교의 골자를 파악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나의 이런 시도들은 한마디로 실패였다. 기독교적인 사고방식에 깊이 물들어 있었던 탓인지 한문투로 표현되어 있는 불교의 언어들이 쉽게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그러던 중 1998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3년간 공부하게 되었는데 필라델피아 근교에 있는 펜들 힐(Pendle Hill)이라는 퀘이커의 작은 학교에서 내가 존경하게 된 퀘이커들 가운데 불교에 깊이 심취해 있는 분들을 만났다.그들은 베트남 출신의 승려 틱낫한스님의 책들을 읽어보라고 권해 주었다. 쉬운 영어로 읽기 때문에 한문 투의 추상적 언어에 부딪치지 않아 좋았고 적절히 예화를 섞어 친절하게 풀면서도 시적(詩的) 여운을 풍기는 틱낫한 스님의 문체는 신선했다. “아, 드디어 나도 불교 서적을 재미를 느끼며 읽을 수 있게 되었구나!” 나는 오랜만에 만족했고 행복을 느꼈다. 나는 이 책과 또 내가 접한 그의 모든 다른 책들에서 ‘mindfulness’가 불교적 수행의 ‘심장’에 해당할 만큼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mindfulness’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이 말을 우리말로 옮기고 설명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나는 ‘mindfulness’를 ‘깨어있는 가득한 마음’, ‘따뜻한 마음으로 깨어있기’ 등으로 옮긴다. 그리고 ‘mindfulness’를 풀어서 설명하기를, ‘깨어있는 가득한 마음’은 “어느 한 구석도 이지러짐이 없는 보름달처럼 가득하게 따뜻한 마음으로 나 자신과 이웃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깨어있는 것을 말한다”고 설명하곤 한다. 나의 이런 이해는 “참다운 불교수행은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이루어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실상사 도법스님의 가르침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결과이기도 하다.나는 ‘mindfulness’를 퀘이커의 ‘고요한 귀기울임’(listening)에 접맥시켜 경청(敬聽; mindful listening)’ 이라는 말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경청’은 “공경하는 마음으로 귀를 기울임”이다. 마음을 열고 자기를 온전히 내맡겨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통째로 듣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청(敬聽)’을 ‘움직이는 학교’(이것은 사람들 사이의 진정한 만남의 방법론이다)의 원리로 삼고 있다. <사진제공 열림원>

2023/02/01

한국 첫 '퀘이커' 탄생했던 '군산 도립의원'

한국 첫 '퀘이커' 탄생했던 '군산 도립의원'



한국 첫 '퀘이커' 탄생했던 '군산 도립의원'
수탈의 도시 군산의 '현대 의료사 100년' (4)
조종안(chongani)
등록|2011.03.03 17:50수정|2011.03.03 17:50
 


▲ 파괴된 건물을 복구한 군산 도립의원 본관(1954년). 한 때는 군산의 명물이었습니다. ⓒ 군산도립의원

군산 도립의원은 해방(1945년)과 함께 한국인 운영체제로 바뀐다. 그해 11월 쌍천 이영춘 박사는 전북 군정청 지사(정일사)와 보건후생국장(노윤모)의 간청으로 원장을 겸임한다. 이 박사는 6개월에 걸쳐 병원 업무를 수습하고 원산 출신 이상기 의사에게 원장직을 인계한다.

일제강점기(1922년)에 완공된 병원 건물은 한국전쟁(1950년) 때 폭격으로 대부분 파괴된다. 당시 영국인 의사 '잉글 라이트'(Ingle Wright) 박사를 포함한 미·영 '퀘이커(Quaker)'들은 난민들을 위한 의료 봉사를 하면서 건물 복구공사에도 참여한다.





▲ 난민들 의료와 건물 복구사업에도 참여했던 퀘이커 봉사단들. 가족이 모두 참여한 퀘이커도 있었다고 합니다. ⓒ 이영춘박사기념사업회



▲ 미·영 퀘이커 봉사단과 한국인 봉사자들 기념사진. ⓒ 이영춘박사기념사업회
퀘이커가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시기는 휴전협정이 이루어지던 1953년. 당시 의사, 간호사, 사회사업가 등으로 이루어진 퀘이커 소속 봉사단이 군산 도립의원에서 구제활동을 하면서 한국에서 첫 퀘이커가 탄생한다. 주인공은 대한 적십자사 총재를 지낸 이윤구(전 인제대총장) 박사.

한국인 최초로 퀘이커가 된 이 박사는 자신이 쓴 경험담에서 "1956년 여름이었어요. 그때는 군산 도립병원에서 일하는 외국인 봉사자들과 한국인 의사, 간호사들이 주말에 교대로 대천 해수욕장에 가서 지친 몸을 쉬는 제도가 있었어요"라며 당시를 회고했다.

장로교 신자였던 바보새 함석헌(1901-1989)도 1961년 1월부터 퀘이커 모임에 나가기 시작한다. 함석헌은 훗날 <나는 어떻게 퀘이커가 됐나>라는 글에서 일요모임 회원이었던 이윤구 박사를 통해 퀘이커를 알게 되었다고 술회했다.

"6·25 직후 우리나라 복구 사업을 하는데 퀘이커교에서 영·미 합작으로 수십 명의 사람을 보내왔었지요. 그들이 군산에서 파괴된 도립병원 복구공사를 했는데 거기에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참가해서 처음으로 퀘이커를 알게 되었어요. 나는 그들의 신앙에 참 감동했어요. 그들로 인해서 나는 퀘이커리즘에 흥미를 느끼게 됐어요." (<함석헌 평전> 142쪽)




▲ 도내 대학에 의예과가 없던 시절 개정 간호학교 학생들이 실습하는 모습.(50년대 외국인이 촬영한 사진으로 추정됩니다) ⓒ 김성겸
'가천 길재단' 이길여 회장은 자신의 저서 <간절히 꿈꾸고 뜨겁게 도전하라>에서 군산 도립의원에서의 수련의 시절(1957-1958)을 회상했다. 이회장은 군산이 고향이고 외국인 의료진이 파견 나와 있는 병원이어서 수련의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퀘이커 봉사단 소속 영국인 의사 '골든'이 폐렴환자의 입과 코에서 흐르는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내는 모습을 보는 순간 하얀 가운을 입은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다면서 그때 충격을 받고 '진정한 봉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퀘이커봉사단은 1958년 여름에 본국으로 돌아간다.

한때는 월명공원과 함께 명소가 되기도

군산 도립의원은 한때 외지인들도 즐겨 찾던 명소였다. 나무가 숲처럼 우거진 정원에서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은 정신을 맑게 해주었고, 잘 가꾸어진 넓은 잔디는 환자는 물론 간호사와 일반인들에게도 좋은 휴식 공간이 되어주었다.




▲ 군산 도립의원 정문에서 월명공원 가는 길. 높은 가시철망이 눈길을 끕니다. (1965년 2월 촬영) ⓒ 조종안
병원 정문에서 왼쪽 길로 조금 올라가면 일제강점기 군산부사 건물과 군산신사가 있던 자리가 나오는데 숲이 우거져 새벽 산책길로 사랑을 받았다. 긴 돌담을 끼고 비릿한 바다냄새를 맡으며 미팅을 즐기던 중고등학생들에게도 추억의 기념사진 촬영지로 인기가 좋았다.

특히 붉은색 벽돌로 쌓은 대리석 2층 본관 건물은 시내에서 고층 건물을 보기 어려웠던 60-70년대 상춘객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해주었다. 50년대 자유당 시절 대통령이 방문했던 병원이라는 소문은 시골 노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도선장 가는 길목이었던 병원 인근에는 시영 테니스코트와 해망굴, 흥천사, 등나무 숲, 어린이 놀이터가 자리하고 있어서 봄이면 상춘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외지 사람들이 환자 병문안을 관광 겸해서 올 정도였다.

어떻게 운영했는지 해마다 적자 못 면해




▲ 군산 도립의원 산부인과 과장이었던 황선주 박사 ⓒ 조종안1961년 전남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군산 도립의원 수련의를 거쳐 산부인과 과장으로 근무했던 황선주(76) 박사를 만났다. 황 박사는 1972년 시내 개복동에 개원해서 진료에 임하다 7년 전부터 쉬고 있다고 말했다.

- 고향이 전남으로 아는데, 군산으로 오시게 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나요?
뭐시냐, 나는 처음에 여수로 갈라고 했지라. 그런데 존경하는 과장님이 군산으로 가라는 거라. 누구 말이라고 거역하겠어, 멋모르고 오게 됐지. 전북대학교가 의대 개설을 앞두고 있을 때여서 군산에는 서울 세브란스(연세대 의대)하고 전남의대 출신 의사가 많았어요.

- 당시 병원 분위기는 어땠는지요?
극빈자들은 무료로 치료해주었지. 그들을 위한 병동이 따로 있었는데 귀신 나올 것처럼 음침했지라. 꼭 거지 촌 같았어요. 일반 환자들도 잡목이나, 석유난로에 밥을 해먹응께 굉장히 불편했어요. 그래도 그때는 나도 잘 나가고, 군산도 잘 나갔어요. 바다에 고기가 펄떡펄떡 뛰어댕기고 대단했죠. 그려서 그냥 주저앉았지라. 지금까지.(웃음)

황 박사는 병원 바로 앞에 병원 원장과 서무과장 사택이 있었고, 입원실을 칸칸이 막아서 살림도 할 수 있도록 과장(의사)들에게 숙소를 제공해주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충청도 등 외지에서도 환자가 많이 왔는데, 어떻게 운영했는지 적자를 면하지 못했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콜레라 확산으로 곤욕 치르기도

1969년 가을에는 콜레라 확산으로 환자 1백 60여 명을 한꺼번에 수용하느라 곤욕을 치른다. 일본선적 '긴세이 마루'호 선원(시마사키 씨지에)이 심한 설사와 탈수 증상으로 6일간 입원치료를 받고 출항한 후 군산시와 옥구군 미면 일대까지 콜레라가 번졌던 것.

환자 대부분이 가난한 부두 노무자와 그 가족들이었다. 당시 정부는 콜레라 방역 특별대책본부를 설치했고, 국방부는 군산, 옥구 지역에 휴가나 외출을 일절 금지시켰다. 특히 군산항에 입항한 해군 함정은 군인들의 육지 상륙을 막을 정도로 악몽의 상황이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1970년에는 지역주민의 보건향상을 위해 간호보조원 양성소를 개설하여 전문 간호인력을 배출하기 시작했으며, 1972년에는 혈액원을 설치하여 군산 지역의 응급환자에게 부족한 혈액을 공급하면서 질 높은 진료에 일익을 담당한다.

고등학생 때부터 병원 약국에서 근무했다는 김성겸(60세) 현 군산의료원 기획팀장에게 1969년 11월 콜레라 사태와 70년대 의료상항을 들어보았다.

"콜레라 사태가 나던 69년은 제가 야간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근무할 때인데요. 입원실이 부족해서 병원 복도에 야전침대를 깔고 환자를 받았습니다. 환자를 돌보던 저도 감염되어 죽을 뻔했어요. 60-70년대만 해도 의료시설이 빈약했고, 입원실 환경도 열악하기 짝이 없었거든요. 그 속에서도 77년 익산역 폭발사고 때는 절반이 넘는 환자를 수용했습니다.

80년대 초까지는 입원실이 어른 허리높이의 온돌방으로 되어 있어서 환자 가족이 불을 지펴서 밥을 해먹었지요. 청구목제나 한국합판에서 나오는 잡목을 병원 매점에서 팔았어요. 새끼줄로 묶은 잡목 한 단에 20원-30원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불을 땔 때는 연기가 자욱해서 수술환자 '뜨레싱'을 다니지 못할 정도였어요. 다 지나간 옛날 얘깁니다."

1977년 11월11일 익산역 폭발사고로 부상당한 가수 하춘화가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온 기자들과 사인을 요구하는 팬들의 성화로 의사들이 진료를 못할 정도였다는 김 팀장 설명은 당시만 해도 전주·익산의 종합병원들보다 규모가 컸음을 방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지방공사 '군산의료원'으로 새 출발

군산 도립의원은 지역주민의 인지도가 향상되면서 병실 등 부대시설이 부족할 정도로 환자가 늘어난다. 1981년 11월에는 100병상의 인가를 얻어 본관 신축공사를 마무리한다. 그러나 2년 뒤인 1983년 7월1일 지방공사 전라북도 '군산의료원'으로 전환된다.




▲ 군산시 지곡동에 자리한 ‘군산의료원’ ⓒ 조종안


지방공사로 바뀐 군산의료원은 1988년 5월20일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1995년까지 병동을 세 차례 중축한다. 1996년 1월 정밀안전진단 결과 신축 권유로 신축이전 계획을 수립하고, 1997년 8월 14일 지금의 자리(지곡동 146번지 45필지)를 병원 부지로 결정한다.

1997년 5월1일 진료과 20개에서 21개 과로 증설한 군산의료원은 1998년 11월 원광대학교 병원으로 위·수탁을 계약 체결하고, 2002년 4월 한방병원 개원과 함께 신축병원 건물(400병상)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22/08/24

퀘이커 대구 공부 모임/교회(2011.9.4-) : 네이버 블로그 + 친우 모임 카페

퀘이커 대구 공부 모임/교회(2011.9.4-) : 네이버 블로그




cafe.daum.net/quakers 에 대부분 한승훈님이 적으시고 10월16일 대전모임글은 남영
님이 적으심.
2011.9.4
 11시 40분 경에
 남영택, 이도엽, 이욱동, 한승훈, 진보겸, 한진희 모임장소(반월당역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실)에
모임
 이도엽, 이욱동은 처음 방문하여 각자 소개함.
11시 45시에서 12시 45분 까지 고요예배드림
 처음 오신 분들이 모임에 대한 궁금한 점을 묻고 기존 친우들이 답을 함.
13시 20분 경에 대화를 끝내고 흩어짐.
다음 모임은 9월18일 일요일로 함.
 "조지 폭스의 일기" 읽기는 토론 못함.
남영택님 다음 번에 5,6장 읽고 같이 이야기 합니다.
기록: 한승훈
2011.9.18
오늘 고요예배는 11시10분~12시10분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참석자 : 남영택, 이도엽, 이욱동, 진보겸 총 4명.
다음 예배일 : 9월 25일
- 10월 30일에 있을 서울퀘이커모임의 수양회 주제를 진보겸이 알아서 알려주기로 함.
- 10월부터는 둘째 넷째 주에 모이기로 함.
- 점심을 함께 먹고 헤어짐. 이욱동님이 사주셨어요. ^^
기록: 진보겸
2011.9월 25일 대구 친우 모임
 참석자: 남영택, 이도엽, 이욱동
11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고요 예배
 신앙과 종교에 관한 대화와 일상 대화를 나눈 후 점심을 먹고 2시 20분경에 헤어짐
 기록: 남영택
2011.10.2
퀘이커서울모임
 참석자: 이도엽
 시간: 오전 11시-오후 3시
Spirituality
퀘이커 대구 공부 모임/교회(2011.9.4-)
blechtromm
2015. 10. 6. 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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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사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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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13. 로뎀나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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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18. 로뎀나무교회
2016.3.20. 로뎀나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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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27. 중앙교회: 우리 대신 돌아가신 예수님의 부활절
2016.4.1. 로뎀나무교회: 탈북자 이금철님 간증 
2016.4.3. 로뎀나무교회: 청년대학부 심포지엄 
2016.4.8. 로뎀나무교회: 믿음으로 매사를 해결하자.
2016.4.9. 로뎀나무교회: 사사기3-4 
2016.4.10. 로뎀나무교회
2016.4.13. 로뎀나무교회
2016.4.15. 로뎀나무교회
2016.4.16. 로뎀나무교회: 사사기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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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4.24. 로뎀나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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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5.8. 로뎀나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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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읽고
이도엽

스마트폰에 열광하고 태블릿 PC에 관심을 가지는 세대에게 국사책들은 책장 어딘가에
오랫동안 박혀있었던 먼지 쌓인 물건이기 쉽다. 매스컴은 점점 피상적인 내용들만을 주로
전달하고 아무런 결과나 의미를 낳지 않는 일시적인 흥분에 나라는 술렁거린다. 우리나라는
원래 이런 나라였나? 원래 이렇지는 않았는데. 하지만 이런 어둠이므로 함석헌 선생님이 쓰
신 ‘뜻으로 본 한국역사’가 가진 의미는 더욱 빛을 발한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함석헌
선생님이 1934년도쯤부터, 오산학교에서 역사선생님으로 계실 때 김교신, 송두용, 정상훈,
양인성, 류석동 선생님과 함께 하시던 ‘성서조선’이라는 동인지에 연재하던 글들을 엮은 책
이다. 하지만 이 책은 서문을 읽어보면 1950년에 한 번의 수정을 거치고, 65년도에 해인사
에서 대대적인 수정을 거쳐서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된 걸로 되어있다. 한자말을 줄이고, 기
독교 중심에서 종교다원주의적인 관점으로 바꾸기 위해 대대적으로 수정을 하신 듯하다. 그
래서 1934년도에 처음 출판되었을 때의 제목은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였다. 함 선
생님이 이 책을 통해 하시고 싶은 말씀은 뭘까. 함석헌 기념사업회 사이트에서 선생님이 88
년도에 하셨던 강의 네 편 중의 한 편을 보면 중간에 선생님이 대략 이런 말씀을 하신다.

“도쿄의 우치무라 선생의 성서집회에서 후지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그 이가 이런 말을 했
어요. ‘참 의미에서의 역사철학은 성경에만 있다.’ ”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읽다보면 이 참 의미에서의 역사철학에 대한 함 선생님의 고백이
나온다. 본인도 한 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고, ‘참 의미에서의 역사철학은 성경 밖에는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결국 생각이 바뀌게 되셨다고. 기독교만이 옳은 종교가 될 수는 없다는
생각, 그 생각을 함 선생님께서는 50세 되시던 50년도쯤에 가지게 되신 듯하다. 그 때가 아
마 선생님이 ‘대선언’이라는 책을 출간하실 때쯤인 것 같다. 잘은 모르겠지만, 종교다원주의
자 간디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른다. 선생님이 감옥에서 읽으셨던 불경들에 의한 깨달음 때
문일 수도 있다.
그럼, 후지이라는 분이 말한 ‘참 의미에서의 역사철학’은 어떤 것일까? 함 선생님이 생각하
시는 참 의미에서의 역사철학은 뭘까? 그건 ‘뜻으로 본 한국역사’ 전체에 몇번이고 나와있
고, 내가 갖고 있는 2001년판 책 표지에도 그런 취지의 내용이 발췌되어 있다. 즉 우리 민
족이 겪었던 고난은 무의미한 고생, 피할 수 없었던 악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만이 발전을
위함이 아니라 악도 발전을 위한 양분일 수 있다, 는 말이 아니다. 역사는 고난으로만 발전
한다는 것이다. 함 선생님은 역사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때 언제나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아
가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거쳐온 모든 세월은 발전의 과정이었기 때문에 우리 민족
의 이 고난으로 점철된 역사는 사실 우리를 성숙하게 하는 역사일 수 밖에 없다.
[영국도 오히려 헌법을 자랑할 수 있고, 독일도 오히려 철학을 내세울 수 있으나, 한국은
그래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자랑할 터인가? 이 사실을, 이 끔찍한 속일 수 없는 사실을 희
망과 자부심에 부풀은 젊은 가슴 위에 말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생각할 때, 나는
“내가 왜 역사 교사가 되었던고!” 하고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끓는 물을 돋아
나는 새싹위에 퍼붓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러는 가운데서 진리를 보여 주었다. 나를 건진 것은 믿음이었다. 이 고
난이야말로 한국이 쓰는 가시 면류관이라고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의
역사를 뒤집고 그 뒷면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세계 역사 전체가, 인류의 가는 길
그 근본이 본래 고난이라 깨달았을 때 여태껏 학대받은 계집종으로만 알았던 그가 그야말로
가시 면류관의 여왕임을 알았다. 이제 우리는 마찌니와 한가지로 ‘그녀가 할 일은 아직이다’

라고 용기를 낼 수 있다. 과연 그녀의 일은 이제부터다. P78, 뜻으로 본 한국역사]
고구려와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당할 때, 고려의 북진정책이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좌절될 때, 성삼문과 박팽년이 모진 고문을 당하고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며 인조가
삼전도에서 엎드려 머리를 찬바닥에 부딪힐 때, 이 수난의 여왕은 그 원숙미를 더 깊이할
운명이었던 거다. 그 수난의 여왕의 초상화를 그린다면 그건 엷은 미소의 모나리자 같을까?
아니면 할머니로도 보이고 미인으로도 보이는 그 착시현상 그림 같을까? 알 수가 없다. 그
런 수난의 여왕이 이젠 화장을 짙게 하고 짧은 치마를 입으며 물질적 아름다움을 뽐내려한
다. 속은 텅비었는데. 지나간 역사는 낡게만 보고. 하지만 좌절할 필요는 없다. 역사책을 찢
어버리고 싶을 때라도 역사는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런 때여야만이 역사는 참의미로 발전하
기 때문이다.

깊은 밤 별빛이 더 밝은 것처럼 우리는 이 시대에 빛나고 싶다. 과거를 잊은 사람에겐 원
숙미가 없지 않나? 수난의 여왕은 스스로 십자가에 매달려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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