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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3

Taechang Kim - 柳生真 教授による "チェハンギの <恩> と <孝>

(6) Taechang Kim - 昨夜(2023.6.20.火曜日、19:00-21:30)の公共する美学を共にデザインするワークショップ... | Facebook

昨夜(2023.6.20.火曜日、19:00-21:30)の公共する美学を共にデザインするワークショップでの柳生真(韓国円光大学)教授による "チェハンギの <恩> と <孝>関する発題講演を傾聴し、
聴講者たちと交わした対話を終えた感想:

1.チェハンギは勿論、日韓中の気学研究史上気と恩あるいは孝との関連で論及したのは前例のない 画期的な試みであったということで、先ず評価する.
2. しかし 恩は恵と、そして孝は慈と、共に一体として相恩互恵し、親慈子孝するという相互性という多次元的動態として体感 体験 体認することが大事である.
3. チェハンギの美学とは、生命開新美学の観点と立場から見れば <報謝の美>ではないか、という気がする.
4. チェハンギと柳宗悦との恩関連繋がりの話があったけれど、ラフカデイオ-
ハーンが日本の美を世界が十分理解していないなかで、日本人以上に高く評価し
世界に知らせようとしてもらったことに感謝し、それをまだ世界が十分知らない
韓国民衆の日常生活から生み出された民衆的生活用品にそれまで認識されなかった独特の美をはっけんし、そこから貴族的芸術美学とはちがう民衆的工芸美学を
整理提示することによって世界に知らせることを通じて報恩の実践に献身したと
いう深い結縁を感じる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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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 Taechang Kim
    天地人三次元相関連動としての地球生態学的認識像は、歴史的状況的条件変化によって刷新を繰り返してきたけれど、恩恵生態学という新たな認識-実践像の
    整理と提示には大きな思考発展的意義と展望開新的可能性があるのではないだろう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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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d
  • Taechang Kim
    生態学と言うけれど、自然生態学が昨今の議論の主流になっているけれど、文化生態学や社会生態学、そして政治生態学や経済生態学等々いろんな専門分野が多元化しているなかで、韓国の一部では地球(生態)政治神学の吸収と波及こそが時代と現状の桎梏から解放される道筋であるかのように談論が続く. 果たしてそれで
    よいの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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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2023.6.20.화요일,19:00-21:30) 
공공하는 미학을 함께 디자인하는 워크숍에서 유생진(한국원광대학교) 교수의
 "최한기의 <은혜>와 <효>에 관한 발제 강연을 경청하고, 청강자들과 나눈 대화를 마친 소감:

1. 최한기는 물론 한중일 기학연구사상 기와 은혜 혹은 효와의 관련으로 논급한 것은 전례가 없는 획기적인 시도였다는 점에서 먼저 평가한다.
2. 그러나 은혜는 혜와, 그리고 효는 
자와 함께 일체로서 상은호혜하고, 친자자효한다는 상호성이라는 다차원적 동태로서 체감체험체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3. 최한기의 미학이란 생명개신미학의 관점과 입장에서 보면 <보사의 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4. 최한기와 야나기무네요시의 은혜관련 이야기가 있었는데, 
라프카디오-한이 일본의 미를 세계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일본인 이상으로 높이 평가하고 세상에 알리려고 해준것에 감사하고 그것을 아직 세계가 충분히 알지 못한다

한국민중의 일상생활에서 창출된 민중적 생활용품에 그동안 인식되지 않았던 독특한 미를 발굴하고, 그로부터 귀족적 예술미학과는 다른 민중적 공예미학을 정리 제시함으로써 세계에 알리는 것을 통해 보은 실천에 헌신했다고 라는 깊은 결연을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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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 3차원 상관연동으로서의 지구생태학적 인식상은 
역사적 상황적 조건변화에 따라 쇄신을 거듭해 왔으나 
수혜생태학이라는 새로운 인식-실천상의 정리와 제시에는 큰 사고 발전적 의의와 전망 개신적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태학이라고 하지만, 
자연생태학이 오늘날의 논의의 주류가 되고 있지만, 
문화생태학이나 사회생태학, 그리고 정치생태학이나 경제생태학 등 여러 전문분야가 다원화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일각에서는 지구(생태)정치신학의 흡수와 파급이야말로 
시대와 현상의 질곡에서 해방되는 길인 것처럼 담론이 계속된다. 
과연 그것으로 좋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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