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박정미.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박정미. Show all posts

2025/03/18

박정미 - 빅토리아조 어느 위선자와 그 부인의 초상 ㅡ조지 엘리엇, <미들마치>를 읽고... | Facebook

박정미 - 빅토리아조 어느 위선자와 그 부인의 초상 ㅡ조지 엘리엇, <미들마치>를 읽고... | Facebook

박정미

빅토리아조 어느 위선자와 그 부인의 초상
                  ㅡ조지 엘리엇, <미들마치>를 읽고 2

 미들마치 이야기는 1829년을 기점으로 전개되지만 조지엘리엇이 이 책을 쓴 건 빅토리아조(1837~1901)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1870년대 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 생활감각과 인물군상의 심리를 그려냈다고 볼 수 있다.

 뻗어나가는 영국제국주의의 심장에서 도처에 떠다니는 부를 움켜쥐고 싶어하는 탐욕과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도덕의식의 칼날이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는 시대였다.

 두 힘은 그 시대 인물들마다 스며들어 싸우다가 팽팽한 대치상태로 답보하거나 때로 타협을 이루어 공존하기도 하는데 그 결과 거대한 위선의 그림자가 시대를 뒤덮었다.

그로 인해 뻔뻔스레 경직되어가는 도덕감정, 불안과 초조, 신경증이 빅토리안들을 괴롭혔으니 이를 한 몸에 구현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은행가 '불스트로드'이다.

 불스트로드는 이 책 미들마치에서 단연 인상적으로 생생하게 그려진 인물 형상으로서 가장 희극적이면서 비극적인 운명의 주인공이다.

그는 지역의 돈줄을 쥐고 있는 금융자본가이자 은행장이다. 상공업계를 주물럭거리는 놀라운 수완과 청교도적인 엄중함으로 지역민들의 경제생활을 심판하는 권력자이기도 했다.
 불스트로드는 공평하고 정의롭게 채무유예와 대출을 결정하고 자선금을 기부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그 이후 채무자와 피기부자의 생활을 추적하여 재결정을 검토함으로써 그의 금권은 더욱 막강해졌다. 그는 돈으로써 하느님 앞에 떳떳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비상한 인물로 여겨졌다.
 그런 그에게 심각한 걱정거리가 새로 생겼다. 젊은시절 돈을 위해 그가 저지른 추악한 과오를 함께 나누었던 옛 동료 래플스가 불시에 나타나 쉬파리처럼 들러붙어버린 것이다.

 래플스는 그의 과거를 폭로하겠다는 협박을 일삼으며 끈질기게 돈을 뜯어갔다. 돈을 주어 쫓아내고 또 돈을 주어 쫓아내도 알콜중독으로 허비하고 또 다시 되돌아와 손을 내미는 래플스였다. 불스트로드는 자신의 과거가 언제 누설될지 모른다는 불안과 초조 속에서 래플스가 죽어 없어지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 마침내 운명의 순간이 왔다. 알콜중독으로 만신창이가 된 래플스가 그의 집에서 인사불성으로 드러누워버린 것이다.

 불스트로드는 정신착란과 섬망사태에 빠진 래플스가 잠꼬대로라도 자신의 과거를 폭로할까 싶어 간호를 자청하고 밤새워 그의 곁을 지켰다.

 지역의 실력있는 의사 리디게이트도 불러 환자의 상태를 알아보았지만 그의 희망은 사실 환자의 쾌유가 아니라 죽음이었다. 다만 그는 언제 어디서고 내려보시는 하느님의 엄혹한 감시의 눈초리를 의식하는 사람이었기에 꼼짝달싹할 수 없었을뿐이다.

 리디게이트는 그에게 환자는 체질이 튼튼하니 곧 회복할 것이라고 자신하며 다만  "술은 절대 주지 말라"고 지시를 되풀이하여 강조했다.
 의사의 지시에 순응하며 이튿날을 환자곁에서 밤을 샌 불스트로이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집사와 가정부 에이블부인에게 간호를 맡기고 자기방에 돌아왔다. 그렇게 피곤하고 지친 때 은밀하고 무서운 시험이 시작될 줄은 꿈에도 모르는 채.
 ㅡ그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옷을 다 갈아입기도 전에 에이블 부인이 문을 두드렸다. 그는 그녀의 작은 목소리가 들리도록 문을 조금만 열었다.
“죄송합니다만 나리. 저 가엾은 사람에게 브랜디나 그런 것을 줄 수 없을까요? 몸이 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편 외에는 아무것도 삼키지 않으려 해요. 삼킨다 해도 기운이 날 것도 없는데요. 그런 데다 땅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고 자꾸자꾸 말하고 있어요.”
블스트로드씨에게서 대답이 없었기에 그녀는 놀랐다. 그의 내면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가면 저 사람은 기운이 없어서 죽을 거예요. 제가 전에 가엾은 주인어른 로빈슨씨를 간호할 때는 포트와인과 브랜드를 계속해서 드려야 했어요. 그것도 한 번에 큰 잔으로 말이에요.” 에이블부인은 약간 항의조로 덧붙였다.
 그러나 여전히 불스트로드씨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말을 이었다.

 “사람이 죽음의 문턱에 있을 때는 뭘 아낄 때가 아니고. 정말이지 나리께서도 그걸 바라시지 않겠지요. 그게 아니면 저희가 가진 럼주를 갖다주려고요. 하지만 나리께서 밤을 새워 간호하셨고, 하실 수 있는 것을 죄다 하셨으니까-----.”

 이 부분에서 문틈으로 열쇠 하나가 쑥 나왔고, 불스트로드씨의 쉰 목소리가 들렸다. “그게 포도주 저장실 열쇠요. 거기 브랜디가 많이 있을 거요.”ㅡ

  래플스는 그렇게 죽었다. 하지만 불스트로드는 평안을 찾을 수 없었다. 추문은 래플스 생전에 어느새 새어나가 래플스의 죽음으로 온 사방에 퍼지게 된 것이다.

 [불스트로드의 내적고뇌가 어찌나 생생하게 그려졌던지 나는 그만 그와 하나의 의식을 이루어 죄를 함께 짓고 고통을 같이 나누는 듯 했다. 온 세상이 그를 위선자라고 단죄했지만 나는 그가 한 없이 애처롭고 불쌍하기만 했다. 그의 위선은 그를 이해하는 내 안에도 있고 이렇게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작가 조지엘리엇 안에도 있었을거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은 그에게 구원의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그가 자신을 옥죄는 두려움을 떨치고 겸손하게 현실을 인정하고 나섰다면, 젊은시절의 공범인 래플스가 자신의 영혼의 공범임을 인정하고 불쌍히 여겨 돌봐주었다면, 그는 용서를 받았을 것이다. 세상사람들이 아니라 하느님과 자기자신에게 말이다.

 그를 괴롭히는 건 그가 언제나 자신의 선행으로 자신의 죄를 갚아달라고 거래해온 하느님이 아니었다. 하느님은 댓가없이 평화와 사랑을 주시는 분이기에 그가 내맡기기만 했으면 모든 죄를 탕감하고 그를 자유롭게 해방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어리석고 불쌍한 불스트로드는 자신을 이끌어온 이기심과 탐욕, 그로인한 거래의 습관을 한 순간도 놓아버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죄와 고통의 어둠 속에서 미들마치 지역의 가장 아름다운 사랑과 헌신의 장면이 펼쳐진다. 불스트로드의 부인 헤리엇은 점점 조여오는 주위의 이상한 분위기를 알아차리고 남편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알아보려 다니다 드디어 진실과 맞닥뜨리게 되는데.
ㅡ그 순간은 어쩌면 이후의 어떤 순간보다도 나빴을 것이다. 그 순간에 응축된 경험은 엄청난 감정적 위기에 처한 인간의 성향을 드러내고, 중간의 몸부림을 끝낼 궁극적인 행위를 예고한다. 래플스를 기억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여전히 금전적 몰락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오빠의 표정과 말에서 남편에게 뭔가 죄가 있다는 생각이 쏜살같이 머리를 스쳤고-그러다가 공포가 밀려드는 가운데 굴욕을 당하는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고-그러고는 한순간 살을 태울 듯한 수치심 속에서 오로지 세상의 눈길을 느낀 후 그녀의 마음은 단숨에 뛰어올라 남편 옆에 서서 슬프지만 비난하지 않으며 수치와 고립의 연대감을 나누었다.
 헤리엇 불스트로드는 쓰러질 듯 위태로운 몸과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자기 방문을 잠그고 누웠다. 방문을 잠갔을 때 그녀는 불행한 남편에게 가서 그의 슬픔을 동반자로 삼고 그의 죄에 대해 “나는 슬퍼할 거예요. 비난하지 않고”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야 그 문을 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헤리엇은 삶의 모든 기쁨과 자존심에 눈물을 흘리며 작별을 고하고 이제 내려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그 의식을 치르는 마음으로 그녀는 장신구를 모두 떼고 수수한 검은색 옷을 입었다.
 도서관으로 책을 반납해야 하는데 불스트로드와 헤리엇의 이야기를 적어놓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냥 돌려줄 수가 없었다. 책의 알맹이를 빼먹고 상을 차린 듯 했기 때문이다. 추악한 남편의 과거와 세상의 멸시를 그대로 공동책임으로 떠안으며 감싸안는 헤리엇의 동지적 사랑을 진정한 부부애의 표상으로 간직하고 싶었다. 
 몰아치는 불행과 거기서 확인되는 이 든든한 사랑이 불스트로드의 강고한 이기심의 장벽을 녹이고 그에게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주기를.

---
1] 돈의 세계가 되었으면서 도덕의식이 강하게 남아서 작용하는 빅토리아 조 후기는 현대 한국과 비슷하군요. 그러므로 조지 엘리엇의 소설들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특히 끌릴만 하기도 할 것 같습니다.
2]  [불스트로드의 내적고뇌가 어찌나 생생하게 그려졌던지 나는 그만 그와 하나의 의식을 이루어 죄를 함께 짓고 고통을 같이 나누는 듯 했다. 온 세상이 그를 위선자라고 단죄했지만 나는 그가 한 없이 애처롭고 불쌍하기만 했다. 그의 위선은 그를 이해하는 내 안에도 있고 이렇게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작가 조지엘리엇 안에도 있었을거라고 생각한다.] 서평자의 이 글을 읽으며 제가 느끼는 것은 소설가의 문장력을 나도 직접 음미해보고 싶다는 것이지만, 또 한가지는 서평자의 몰입감이 괭장하구나,라는 것입니다. 과연 내가 읽어서 같은 것을 느낄까 궁금해젔습니다. 

2025/03/15

박정미 - 조지 엘리엇, [미들마치>를 읽고 Middle Match

박정미 - 여자가 생의 동반자에게 거는 꿈은 -조지 엘리엇, <미들마치>를 읽고 잘... | Facebook

여자가 생의 동반자에게 거는 꿈은
-조지 엘리엇, <미들마치>를 읽고

잘 모르고 이 책을 읽었다면 나는 틀림없이 작가가 남자라고 여겼을 것이다.
내면의 심리를 깊이 있게 파고들면서 인물이 그리는 운명의 궤적을 끝까지 추적해나가는 그 힘찬 문체가 그릇된 추정의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거기에 1830년경 영국의 1차 선거법개정을 전후로 한 격변의 시대를 정치, 사회, 경제생활 측면에서 거대한 스케일로 그려내는 솜씨가 그 확신을 더 굳게 했을 것이다.
작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메리 앤 에번스>라는 본래의 이쁜 이름을 놔두고 남자 이름인 조지엘리엇으로 활동했다. 그렇지만 작가가 여자임을 알면서도 세상사람들은 감히 조지엘리엇을 여류작가로 분류해내기가 어려웠을 게다. 그 당시 어떤 남성작가보다 지적이고 현실적이고 가차없는 그녀의 작품세계를 여류의 이름에 가둬놓기가 버거웠을 것이므로.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면서 나는 작가가 그 시대 여자의 한계를 깨기 위한 방편으로 남자이름을 내세웠으리라고 짐작한다. 작가는 선이 굵은 작품을 써냈고, 그 인생 또한 여자뿐만 아니라 어떤 남자도 감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 통이 컸다.

이 책은 결혼을 전후로 한 여자의 다양한 심리와 거기에 필연적으로 결부된 남자의 운명을 다루었지만 결혼제도 자체 보다는 남녀가 평생의 동반자가 되었을 때 그 상호작용의 모습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조지엘리엇은 인습과 편견으로 꽉막힌 빅토리아조 영국에서 가족과 의절하면서까지 결혼제도 바깥에서 평생의 동반자를 찾고 지켜냈다. 그런 만큼 제도를 벗어나 한 차원 더 높은 시선으로 남녀관계를 자유롭게 고찰할 수 있었을 거라고 본다.

이 책에서는 총 네 쌍의 연인이 결혼을 하고 그 부모세대인 두 부부의 사랑이 그려지는데 그들의 성격과 사회적 지위, 결혼에서 바라는 바는 다 다르다.

2025/03/08

박정미 - 승려와 철학자 | 장 프랑수아 르벨 , 마티유 리카르

(1) 박정미 - 진달래가 있는 영원의 찻집에서 바라보는 정경 책을 열면 노철학자와 장년의 승려가 향그러운 차 한... | Facebook




박정미

noeSdstoprf8m0c87ui404u5g6m87m0acf1at1u2g7gm8ig7him722ll5c05 ·




진달래가 있는 영원의 찻집에서 바라보는 정경

책을 열면 노철학자와 장년의 승려가 향그러운 차 한 주전자를 사이에 두고 정겹게 앉아있는 모습이 보인다.
창밖으로는 히말라야 눈 쌓인 영봉이 거대한 풍경으로 줄지어 달리고 그 위에는 시리고도 맑은 푸른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벽 한 켠에 소나무와 잣나무를 켜서 만든 땔감으로 벽난로를 지피고 있는데 거기서 나온 따뜻한 온기와 온화한 불빛이 두 사람의 얼굴을 비추고 때로 감추면서 일렁이고 있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나는 두 남자의 표정을 주의깊게 살피면서 대화에 귀를 기울이다가 때로 귓등으로 흘리면서 새봄에 피어난 진달래와 창밖의 풍경을 내다보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두 사람은 부자지간이다. 게다가 그 이력이 고대 전설의 현인 왕처럼 화려하고 매혹적인 인물들이다.
아버지 장 프랑스와는 문학과 철학을 전공한 대학교수 출신으로서 1970년대 일찍이 <마르크스도 예수도 아닌>을 펼쳐낸 이후 세계적으로 문명을 떨친 무신론자철학자이다.
아들 마티유 르카르는 젊은시절 분자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자를 찾아 티벳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스승의 인간됨에 반하여 티벳불교의 승려로 수행을 시작한지 20년을 넘겼다.

한국불교에서도 이런 경로로 유입된 푸른눈의 납자가 수행 끝에 불교의 진수를 체득하고 자신이 가진 분석적이고 정확한 언어/사유자산으로 이를 다시 전달해주는 경우가 많다.하지만 그가 가진 특이성은 그가 인간의 물질적 기초를 다루는 분자생물학계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뛰어난 과학자이기도 하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아들은 최고수준에서 동양적 사유와 서양적 사유간, 불교와 무신론간 대화의 향연을 펼치게 된다.
아들이 학문적 이력을 포기하고 승려생활을 시작한 것은 존재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갈증은 동양의 지혜로만 채워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들이 오늘날 서양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범주의 사람들, 즉 성자나 현자처럼 완벽한 존재의 이상에 부합한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제가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나 고대의 위대한 현자들에 대해 품고 있었던 그러나 제게는 이미 사문화되었던 이미지였습니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튼의 강연을 듣기 위하여, 혹은 성프란체스코를 만나기 위해 제가 직접갈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살아있는 지혜의 본보기처럼 보이는 존재들이 불쑥 나타난 것입다. 그래서 저는 ‘인간의 차원에서 완벽함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저들이 그런 것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를 수행으로 이끈 첫 스승 칸규르 린포체를 처음 대면했을 때 그는 깊은 명상에 들었을 때와 같은 직관적 방식으로 그의 인격을 접하고 흡수했다.

“제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은 바로 그분의 인격, 그분의 존재 자체였습니다. 그분에게서 나오는 깊이, 힘, 고요함이 제 정신을 열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가슴 속의 갈망과 동경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과학은 서양에서 거둔 성공의 금자탑일 수 있지만 문제는 과학으로 충분하지 않다는데 있다는 사실을 그는 뼈저리게 확인한다. 그래서 그는 아들을 서양의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티벳의 사원으로 빼앗기지 않았던가! 서양은 비과학적인 서양문화, 특히 철학에서는 실패하고 만 것이다.

“17세기의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에 이르기까지 철학이 생겨난 이래 철학의 이중적인 차원이 계속 존속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과학적인 차원 또는 과학적인 목표이고 또 다른 차원은 지혜의 추구, 그리고 인간의 삶,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의 삶 너머에 있는 사람에 주어진 어떤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지. “
하지만 서양의 철학은 먼저 철학에서 과학의 분화가 일어남으로써 그 다음에 지혜와 의미의 추구 기능이 최종적인 실패로 귀결됨으로써 붕괴되었다는 것이 아버지의 진단이다. 정의의 추구와 행복의 추구를 동시에 담고 있는 철학의 남은 한차원마저 18세기에 들어와 정치의 영역으로 집중되어 나가고 극단화됨으로써 철학은 최종적으로 몰락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철학의 남은 한 면인 정의의 추구, 행복의 추구는 정의로운 사회를 조직하는 기술이 되고, 이 정의로운 사회는 집단적 정의를 통해 그 구성원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다시 말하면 선과 정의, 행복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혁명이 될 것이다.

그 순간 철학에서 다루는 도덕의 모든 분야는 정치제제 속에서 실현되는 것이지. 19세기가 되면 사람들은 사회를 철두철미하게 새로 건설하길 바라는 위대한 유토피아의 시대로 들어선다.”


이러한 관점에서 철학의 도덕적 기능은 제로에서부터 시작하여 완전히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를 최초로 시도한 중요한 사례가 프랑스혁명이고, 그 다음에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앞세운 혁명론의 시대가 펼쳐졌다.

“이러한 이상에 봉사하고 사람들이 절대적인 혁명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도덕이지. 그러므로 더 이상 개인적인 도덕도 개인적인 지혜의 추구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개인적인 도덕이란 집단적인 도덕에 참여하는 것이다. 파시즘과 나치즘에서도 우리는 인간의 혁신이라는 이념을 발견하게 된다. “
“중요한 것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로에서 무한까지 완전히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 거기에 반대한다고 의심되는 모든 것을 ‘제거’함으로써 인간을 혁신하는 것이었다. 혁명적 행위는 철학, 심지어 종교까지도 대체했다.”

그러한 전체주의적 기획, 유토피아를 향한 혁명의 이상은 나치즘과 볼세비즘, 마오이즘에서 수많은 인간살육을 초래했고, 체제의 논리를 극단까지 밀고간 폴포트의 캄보디아에서는 절대악으로 귀결되었다.

“정치 유토피아적 체제들이 실천적 측면에서 실패하고 정신적인 가치를 상실한 것은 20세기 말의 중요한 사건이 되었는데, 내가 비과학적인 부분에서 서양문명이 실패했다고 말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사회적 개혁이 도덕적 개혁을 대체해야 했고, 그러한 사회적 개혁은 재앙에 이르게 되었으며, 그 결과 우리는 지금 어찌할 바를 전혀 모르는 채 허무앞에 놓여있다.”

여기서 서양문명의 본질적 상처, 본질적 공백이 생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어떤 개인이 실현할 수 있는 지적 또는 예술적 성과와,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의 도덕적 삶 또는 간간히 그의 도덕의 빈번한 빈곤함 사이에서 생겨나는 불일치, 상충, 모순이다. 그것은 실상 철학이 개인의 지혜를 추구하는 것을 포기함으로써 남게 된 공백을 보여주는 것이다. “

최종심급에서 서양철학이 귀결된 유토피아적이며 전체주의적인 체제의 붕괴와 도덕에 남겨진 공백을 채우기 위해 불교와 같은 동양의 지혜가 밀고 들어오고 있다.
이러한 현대 서양철학의 붕괴를 설명하는 노철학자의 분석에는 그 밀려들어오는 티벳불교의 지혜의 물결에 아들을 떠나보낸 아버지의 회한이 묻어있다.

이 책은 철학적 종교적 인식을 심화시켜준다기 보다는 두 다른 사유체계가 조우하며 그려내는 현장의 수준 높은 분위기를 보여주는 데 가치가 있다. 새로운 지식이 아니라 사상과 삶을 대하는 자세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무신론자 아버지는 우리가 신앙이나 영적 훈련에 대해서 가지는 의구심을 적확하게 포착하여 말로 표현해내는 시원함을 준다. 아버지의 산통을 깨는, 적당히 얼버무리지 않고 찔러대는 회의와 의심에 찬 질문 앞에서 영민한 아들은 최선을 다해 자신이 배우고 깨우친 불교적 진리를 방어하고 설득해낸다.
수행의 길에 한치의 의심도 없는 아들의 어조에는 아빠를 염려하는 희미한 안타까움이 배어나올 듯 말 듯 서려있다. 아마도 죽음을 자신보다 더 가까이 두고 있는 아버지의 나이를 의식하는 듯하다. 그걸 예민하게 느끼는 아빠는 살핏 아들을 비꼬고 놀리고 싶지만 다정하게 감싸안으면서 대견한 듯 놓아준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자신의 기본적인 위치에서 벗어나지 않고 확고하다. 대화는 승부를 내는 것도 결론을 도출해내기 위한 것도 아니다. 동양의 지혜와 서양의 철학이 함께 어울려 춤을 추는 이 대화는 지적향연이면서 너무나 감미로운 감성적 정서적 미학적 예술작업이기도 하다.

벽난로의 불길이 사그라든다. 두 부자는 말을 그치고 물끄러미 서로를 바라본다. 아름다운 시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보고 나는 삼십여년 전에 펼쳐진 그 시간을 닫는다. 책장을 덮는다. 아름다운 정경의 잔상과 향그러운 여운이 아직도 내 안을 감돌고 있다.

이 책을 소개해준 박헌권변호사님, 진달래를 빌려준 고운동천 이효열님께(오해하지 마시라. 진달래가지를 꺾어온게 아니라 산책길에 꺾어진 가지를 주워와서 물에 꽂았더니 꽃이 환하게 피어났다)감사드린다.
아, 참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이 뭐였더라?




All reactions:14Park Yuha, 정승국 and 12 others








2025/02/27

박정미 - 억압된 믿음의 귀환, 비틀린 종교의 부흥 -테리 이글턴, <신을... | Facebook

박정미 - 억압된 믿음의 귀환, 비틀린 종교의 부흥 -테리 이글턴, <신을... | Facebook

박정미

neoposdStr4t3ig054378t18afu250l840l51g359892aii0ha37fl0g55hh ·

억압된 믿음의 귀환, 비틀린 종교의 부흥
-테리 이글턴, <신을 옹호하다>를 읽고

테리 이글턴은 영국의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가, 문화이론가라고들 한다. 그의 책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도서목록을 찾아 훑어보는데, 이 책에 눈길이 멈췄다.
제목이 <신을 옹호하다>이다. ‘마르크스주의자의 무신론 비판’이라는 부제가 제목과 함께 빨간 표지에 금박으로 새겨져있었다. 괴이하다. 뭔 소리를 하려는 것일까, 호기심이 동했다.
다 읽고 나니, 출판사가 교묘하게 과장한 책 제목에 낚였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이 책의 영어판 원 제목은 ‘Reason, Faith, and Reflections on the God’이다. 딱 이 정도가 책 내용에 들어맞았었는데 한국어 번역판은 너무 나갔다.

테리 이글턴은 책을 통해 신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옹호했다. 믿음(faith)은 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말하는 것보다는 헌신과 충성을 뜻한다고 그는 말한다.

“기독교신앙에서 일차적인 것은 초월자인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명제에 동의하느냐, 않느냐가 아니다. 어둠과 고통과 혼란 속에 허덕이며 막다른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랑에 대한 약속을 충실히 믿고 지키는 인간들이 보여주는 헌신이다”

이성만으로는 인간실존을 해명할 수 없으며 의식의 지평에 드러난 이성의 뾰족한 일각 밑에 거대한 믿음이 존재를 지탱해주고 있다는 것이 그의 핵심 논지다. 신이 있다고 주장하며 무신론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는 현대 자본주의사회를 비판하는 것이다.
일찌기 니체와 마르크스를 배출한 유럽은 지금 믿음에 대한 욕구와 그 고질적 불능 사이의 모순으로 고통받고 있다. 기독교가 축출된 유럽의 정신적 공백상태에 이성보다는 계시를 앞세우는 전근대적 이슬람 종교가 밀고 들어오고 있다.

“지금 서구세계는 절대적 진리와 그 토대에 대해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은, 철저하게 형이상학적인 적수와 정면으로 대결하고 있다. 게다가 그 서구문명은 아무것도 믿지 않으면서 삶을 대충 꾸려가고 있는 것이다. 서구는 니체 이후의 정신세계에 사로잡힌 채 물질주의와 정치적 실용주의, 도덕적이고 문화적인 상대주의. 철학적 회의주의 등을 마구잡이로 뒤섞으면서 과거의 형이상학적 토대를 열심히 훼손하고 있는 중이다.

유럽대륙에서 기독교적인 믿음을 잃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보다 더 큰 파급효를 낳는다. ‘천부적 인권’이라는 개념은 기독교로부터 유래되었고 인권의 문화는 그 자체가 기독교적 양심의 세속적 형태를 띠고 있다.
하지만 인권을 떠받치는 기독교의 토대가 무너짐으로써 유럽사회는 도덕적, 윤리적 관점에 구멍이 생겼을뿐만 아니라 인권의 언어조차도 온통 불확실성의 바다로 빠지게 되었다.
많은 유럽의 지식인들은 이 전방위적 위기 앞에서 유럽문명을 떠받쳐온 기독교신앙을 재고하고 믿음과 이성의 관계를 다시 조명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이 강한 이글턴조차 엄밀한 논리적 정합성보다는 유럽인의 삶을 먼저 보듬으며 믿음을 재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테리 이글턴은 (사회주의자답게)자본주의 자체에 내재한 무신론적 경향과 철저한 이성중심주의가 후기 자본주의에 와서 극대화되었다고 본다.

“자본주의 체제는 그 본질에서 무신론적이다. 자본주의 옹호자들이 경건한 태도로 뭐라고 주장하든 간에 현실에서 드러나는 물질적 행태와 거기에 내재된 가치관과 신조들은 신을 부정한다.”

합리적 이성의 과도한 강조는 오히려 이성을 스스로 파먹고 유럽의 토대를 침식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이성이 지나치게 지배적이고 타산적이며 도구적이 되면 급기야 너무 천박해져서 합리적인 믿음이 번성할 수 있는 토대 역할을 못하게 된다. 후기자본주의 시대에 오히려 비합리적 비이성적 신앙이 번성하는 이유다.

“이성이 진정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이성 자체가 아닌 다른 무엇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그 기반이 사랑과 성실, 평화로운 공동체 같은 게 아니라 주로 물질적 이익과 정치적 지배라면 
믿음과 이성은 서로 헛돌면서 스스로를 희화화하게 된다. 그 결과 믿음은 신학자들이 신앙주의라고 부르는 유형의 비합리주의로 타락하면서 이성에 완전히 등을 돌려버린다. 이런 상황에서는 광신에 빠지기 쉽다.”

“계몽주의가 내세운 이성이 더없이 소중하기는 해도, 그 자체와 정반대의 것을 불러오기 쉽다는 사실이 이런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진보의 이데올로기에서 보면 과거란 선사시대의 원시림으로 추방해야 할 유치한 무엇일 따름이다. 그래서 이 이데올로기는 우리에게서 역사적 유산을-다시 말해 우리가 미래를 위해 활용해야 할 가장 소중한 자원의 일부를-빼앗아버린다.
과거를 지움으로써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사람들은 과거가 결국은 복수의 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뿐이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종교가 부흥하는 현상은 바로 이런 ‘억압된 것의 회귀’를 보여주는 사례다. “

억압된 것의 회귀가 종교에 미치는 두가지 악영향이 있는데 하나는 종교적 근본주의이고 또 하나는 종교의 재주술화이다.
“(이슬람근본주의는 물론이고)기독교근본주의는 반정치적이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정치적 투쟁을 일삼기는 하나 근본에서는 문화주의의 한 형태로서 정치를 종교로 대체하고자 한다.”

“포스트모던한 시대에 오면 종교는 다시 공공영역으로 나아가고 집단화되는데 그렇다고 고전적 의미의 정치가 부활하는 것은 아니고 종교가 정치의 대체물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후기 자본주의 세계의 재주술화를 목격하게 되는데 이는 종교가 부활하는 가운데 사람들이 다시 마법에 걸리듯 비합리적인 것들에 매혹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세계곳곳에 번성하는 종교의 재주술화와 종교 근본주의의 대두는 종교를 정치영역으로 밀고들어가 비합리적 의사결정을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