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7

철학적 신론의 집대성자 토마스 아퀴나스와 이슬람 신학자 이븐 루시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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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신론의 집대성자 토마스 아퀴나스와 이슬람 신학자 이븐 루시드
기자명 이찬수
입력 2026.01.26


동쪽의 철학과 이슬람

서양 철학의 시발점은 그리스어로 ‘(해가) 솟아오르는 곳’(아나톨레)을 의미하는 아나톨리아였다. ‘아나톨리아’가 라틴어로는 ‘떠오르는 것’을 의미하는 ‘오리엔스’로 불렸고, 영어 ‘오리엔트’로 전승되어 왔다. 그 원형 동사인 ‘오리리’(oriri)의 명사형이 ‘오리고’(origo)이고, ‘오리고’에 해당하는 영어가 ‘오리진’(origin)이다. 그리스를 시발로 하는 서양 철학의 ‘오리진’(기원)이 그리스의 동쪽에 있었던 것이다.

세계 최초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탈레스를 위시해,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등이 ‘오리엔트’의 대표적 철학자들이었다. 이들의 사유 체계를 기반으로 그리스에서 소크라테스와 같은 사상가도 등장했으니, 서양 철학은 동쪽의 영향을 받아 시작된 셈이다.

그리스의 동쪽, 특히 이슬람권에서 받은 영향도 컸다. 가령 서양 중세의 경우 학문의 중심은 신학이었고, 철학은 그 보조 도구처럼 여겨졌다. 그에 비해 비슷한 시기 이슬람권에서는 상대적으로 철학자들이 많이 나왔다. 알 칸디(801-873), 알 파라비(872-950), 이븐 시나(980-1037), 알 가잘리(1058-1111), 이븐 루시드(1126-1198), 이븐 아라비(1165-1240), 이븐 할둔(1332-1406)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우리의 주제와 관련해 이븐 루시드가 서양 철학에 끼친 영향이 중요하다.

이븐 루시드가 발견한 아리스토텔레스

이븐 루시드(Ibn Rushd, 1126-1198)는 스페인 태생의 이슬람 최고의 철학자다. 구미 학계에서는 아베로에스(Averroes)라는 라틴어권 이름으로 알려져 왔다. 그는 철학을 종교의 하위 범주로 두던 당대 이슬람과 그리스도교 주류 사상과 달리, 철학과 종교는 같은 진리를 추구한다고 보았다. 가령 그는 이렇게 말했다: “조물주의 솜씨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는 조물주의 제작물을 이해하지 못하며, 조물주의 제작물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는 조물주를 이해하지 못한다.”(아베로에스, <결정적 논고>, 책세상, 20쪽) 조물주와 피조물, 신과 인간에 대한 이런 식의 상호적 이해는 보편과 특수를 분리시키지 않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깊이 연구하고 그의 주요 작품을 주석했다. 오늘날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서양 철학의 기초를 놓은 대표자로 널리 인용되고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생존 당시 탁월한 역량에 비해 그리스 사상계에서는 소외되다시피 했다. 그리스를 지배했던 마케도니아 출신이라는 사실을 껄끄러워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은 그의 사후 거의 잊혔다. 그러다가 수백 년 후 이븐 루시드는 그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리스어 저작을 알아보고 아랍어로 번역했고, 상세하게 주석을 하면서 이슬람 신학에 적용했다. 이슬람 신학계에서는 이븐 루시드를 통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위험시하면서도 신과 인간, 신앙과 이성의 유기적 관계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식 이븐 루시드의 논리가 확산되었다.

그 뒤 유럽의 그리스도교 세력이 이슬람화한 스페인을 다시 정복하면서 40만 권이나 되는 이슬람의 방대한 도서관 자료들을 접했다. 라틴어권 지식인들이 이슬람 철학을 번역하는 일에 뛰어들었고, 이븐 루시드의 아랍어 아리스토텔레스 주석도 라틴어로 번역했다. 이슬람을 배우려는 흐름이 거셌고, 그 과정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유럽 지성계에 다시 등장했다.

특히 중세 최고의 사상가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븐 루시드의 주석을 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이해했고 자신의 신학 언어 안에 수용했다. 아퀴나스는 이븐 루시드를 으레 ‘주석가’(Commentator)라고 부르며 높였다. <대이교도대전>과 <신학대전>에는 “주석가가 말하고 있듯이(ut dicit Commentator)”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 주석가가 이븐 루시드다.
스페인 코르도바에 있는 이븐 루시드 조각상, 2016년 8월.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이븐 루시드의 지성론

이븐 루시드에 따르면, 인간의 이성은 신에게서 비롯되었기에, 이성을 통한 철학적 탐구와 경전(쿠란)을 통한 계시는 하나의 진리로 수렴된다. 그에게 신(알라)의 계시적 진리와 인간의 이성적 진리는 근본적으로 하나다: “논증적 진리와 성서적 진리는 상충될 수 없다... 진리는 진리에 반대되지 않고 오히려 일치하며, 그것의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결정적 논고>, 25쪽) 이것은 나중에 토마스 아퀴나스의 다음과 같은 사상에 녹아들어 간다: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완성하므로, 자연 이성은 마땅히 신앙에 봉사해야 한다.”(Cum enim gratia non tollat naturam, sed perficiat eam, oportet quod naturalis ratio subserviat fidei. <신학대전> 제1부, 제1문제, 제8절의 답변)

이븐 루시드는 인간과 신의 연결성을 전제하면서도, 결국 인간의 지성은 사라지고 진짜 지성만이 영원히 존재한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을 해석하며, 인간의 지성을 세 층위로 구분했다. 첫째는 ‘능동 지성’(Intellectus Agens)이다. 어두운 방에 빛을 비추면 사물이 보이듯이, 인간의 감각 정보 속에 숨겨진 보편적 형상을 인식할 수 있게 해 주는 영원한 지성, 모든 인간에게 공통으로 작용하는 하나의 지성이다. 둘째는 ‘가능 지성’(Intellectus Possibilis)이다. 능동 지성이 비춰 준 보편 진리를 받아들이는 ‘그릇’의 역할을 한다. 개별 육체에 제한되지 않고 인류에게 존재하는 공통 지성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언어를 빌려 ‘질료 지성’(Intellectus Materialis)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셋째는 ‘습득 지성’(Intellectus Adeptus)이다. ‘능동 지성’의 빛이 ‘가능 지성’이라는 그릇에 담겨 개별 인간이 구체적으로 이해한 지적 상태다. 다만 인간의 육체와 연결된 지성이기에, 죽음으로 육체가 사라지면 이 지성도 사라진다.

이 셋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면, 능동 지성은 어두운 도서관을 비춰서 책을 읽을 수 있게 해 주는 햇빛과 같고, 가능 지성은 지식이 담겨 있는 거대한 공유 서고와 같으며, 습득 지성은 서고의 책을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고 있는 상태다. 습득 지성은 육체의 소멸과 함께 사라지지만, 서고와 같은 가능 지성은 남아 있다. 가능 지성이 단일한 능동 지성, 즉 신적 이성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븐 루시드는 개인적 영혼의 불멸은 불가능하고 이 ‘단일 지성’만이 영원하다고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단일지성론’(Monopsychism)을 펼쳤다. 그의 사상에 동의하는 이들은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들’(Averroists)로 불리며, 이븐 루시드의 철학은 중세 유럽의 주요 학파로 작용했다.

이븐 루시드와 토마스 아퀴나스

그의 주장은 대단히 논쟁적이었고, 중세 신학계에 던진 폭탄과도 같았다. 보수적 이슬람 학자들의 눈에는 파격을 넘어 이단적이었다. 인간의 개별적인 인격이나 기억은 육체와 함께 소멸한다는 이븐 루시드의 생각은 내세와 형벌의 개인적 차원을 무시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의 책은 이슬람 사회에서 금서가 되었다. 이어 1270년대 파리의 그리스도교회 주교도 그를 이단으로 규정했다. 아우구스티누스 이래 중시되던 인간의 자유 의지와 개별 심판을 부정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74)도 한편에서는 이븐 루시드에게 많이 배웠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의 ‘반신학적’ 주장에 대해 동의하지 못했다. 아퀴나스는 “만약 지성이 하나라면, 내가 생각할 때 네가 생각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Hic homo intelligit)”며 이븐 루시드를 비판했다. 이븐 루시드의 라틴어권 이름인 아베로에스를 거론하며 조목조목 비판하기도 했다.(<대이교도대전> 제2권 73장-76장) 이븐 루시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전승하며 새로운 철학적 논리와 사유를 알려 주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파괴자’이기도 하다는 비판이었다. 이슬람 주류 신학의 반응과 비슷하게, 아퀴나스도 개인이 고유한 지성을 가져야 사후에 각자의 행동에 대해 심판을 받을 수 있다는 교회의 오랜 입장을 견지했다. 인간의 개체성을 살려야 인간의 영혼이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고 심판의 근거도 마련된다는 것이었다. 도미니코회 수도자이자 신학자였던 아퀴나스에게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승리', 안드레아 디 보나이우토, 1365-1367. 중세 가톨릭의 관점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를 이성과 철학을 통합 완성했다는 지혜의 상징으로 중앙에 크게 그리고, 하단과 주변에 고대 이슬람 철학자들을 그렸다. 아래에 노란 옷을 입고 터번 쓴 이가 이븐 루시드다. (그림 출처 = picryl.com)

제일원인과 존재의 유비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븐 루시드를 통해 배우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일원인’, 즉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것을 움직이게 하는 ‘부동(不動)의 원동자(原動者) 개념을 신에 적용했다. 그 이전에는 플라톤 철학과 신플라톤주의가 사상의 주류였는데, 아랍권을 거쳐 전해져 온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수용하면서 아퀴나스는 이들을 통합시키는 신학을 집대성할 수 있었다. 신을 제일원인으로 해석하면서, 부동의 원동자와 그로 인한 동자(動者)의 관계를 ‘존재의 유비’(analogy of being) 개념으로 연결시키고자 했다.

아퀴나스에 따르면, 신도 존재이고 인간도 존재이되 이들은 동일한 존재는 아니다. 동일하다면 범신론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서로 분리된 다른 존재도 아니다. 다르다면 인간이 신을 인식하거나 추구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아퀴나스는 모든 자연적 존재는 신의 속성을 ‘나누어 갖기’(分有)에 신은 불완전한 대상들 속에서 ‘유비적으로’ 드러난다는 논리로 신과 인간을 연결시켰다. 존재자들은 불완전하되, 신이라는 완전한 존재의 ‘유비’적 존재라는 것, 신의 완전성의 일부를 피조물이 자신의 본성 혹은 형상에 맞게 실현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누어 갖는다(分有)’는 개념은 한편에서 보면 플로티누스의 유출설과도 통한다. 플로티누스에 따르면, 인간은 육체와 영혼을 지닌 존재이지만, 일자(一者, to hen)로부터 유출되었기에 육체는 영혼을, 영혼은 지성을, 지성은 일자를 지향하며, 그런 식으로 일자로의 회귀가 가능하다. 다만 이 유출설은 일자와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존재성/회귀성이 희박해지는 데 비해, 아퀴나스의 ‘분유’는 독립적 실체로서의 독립성이 유지된다. 신의 존재를 제한적으로 나누어 갖는다는 의미의 ‘분유’ 및 ‘유비’는 인간과 신의 연결을 말하기 위한 아퀴나스의 논법이라고 할 수 있다.

아퀴나스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아퀴나스는 신을 설명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휘포케이메논’(hypokeimenon)이라는 개념을 빌려왔다.(https://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383) 그리스어 휘포케이메논은 ‘그 자체는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도 술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기체’(基體)로 번역하곤 한다. 문제는 번역 과정에서 생겼다. 그리스어 휘포케이메논에 해당하는 라틴어는 subjectum(영어 subject)이었고, 우리말로는 주체 혹은 주어에 해당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어떤 문장에서 subjectum, 즉 주어는 늘 술어에 의해 지시된다. 지시되는 만큼 주어이며, 주어는 사실상 술어에 종속된다. 그래서 아퀴나스는 신을 subjectum으로 볼 수 없었다. subjectum은 술어에 의존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퀴나스는 휘포케이메논을 자신의 존재를 자신을 통해서만 규정할 수 있는 substantia, 즉 실체로 해석했다. 신은 다른 어떤 것에 의존하지 않는 자존자(自存者)라는 것이다. 어떤 존재의 ‘실체’는 그 존재의 최종적 근거를 의미한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휘포케이메논’을 ‘실체’로 이해한 이래, 서양 철학계에서 ‘실체’와 ‘주체’는 한편에서는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다른 한편에서 실체는 자존성을, 주체/주어(subjectum)는 의존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구분되었다. 번역 과정에 언어적, 개념적 혼란이 생겼고 신에 대한 이해도 뒤섞인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일원인이 그렇듯이, 아퀴나스의 철학적 신학에서는 신만이 자존적인 순수 실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아퀴나스는 이런 식으로 신학과 신앙의 대상인 신을 철학적인 언어로 규명하면서, 신을 순수한 실체, 자존적 존재로 해석했다. 그 전까지는 분리시켰던 종교와 철학을 종합하고 서로 연결지은 것이다. 이것은 “인간 이성의 원리들이 신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신적 지혜에 속하는 계시적 진리가 이성적 진리와 반대될 수는 없다”는 입장에 기인한 것이었다.(<이교도대전> 제1권 7장) 이런 입장은 이븐 루시드와도 통하는 것이었고, 이븐 루시드에게서 배운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를 교회의 교의에 정교하게 맞춘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아퀴나스는 신학과 철학을 집대성했다.

그의 대작인 <신학대전>은 아직도 한국어로 번역 중이며, 완간되면 거의 72권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목차만 읽는 데도 한참 걸릴 정도로 경외감이 드는 대작이다. 그의 사상은 그리스도교 사상에서, 특히 가톨릭 신학에서는 교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막대하다. 20세기 최대의 신학자라고 할 수 있을 칼 라너도 거의 토마스 아퀴나스의 입장을 현대의 언어에 맞게 재해석하며 종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에 이슬람 신학자의 논리와 사상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찬수
서강대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남대 교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보훈교육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신학, 불교학, 철학을 중심으로 이십여 년 종교학을, 십수 년 평화학을 강의하고 연구했으며, 아시아종교평화학회를 창립해 부회장으로 봉사하면서, 가톨릭대에서 평화학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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