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eum Lee
2015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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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쟁의 핵심은 개시개비가 아니다
원효의 화쟁(和諍)을 모두 옳고 모두 그르다는 개시개비(皆是皆非)로 해석하는 담론이 상당히 세를 얻고 있다. 불교학에서 탁월한 한 교수가 이렇게 해석하고 이를 칼럼, 책, 강연 등을 통하여 수차례에 걸쳐 전파하고 도법 스님의 화쟁위원회가 이런 대응과 실천을 여러 해 지속하면서, 수많은 이들이 진영의 논리를 떠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자는 실천에 편승하고 있다.
<장아함경>이나 <우다나경>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 비유가 나온다. 등과 다리와 꼬리만 만진 장님들은 각각 코끼리가 언덕처럼, 기둥처럼, 밧줄처럼 생겼다고 주장하며 서로 싸웠다. 부처님은 사이비인 육사외도의 주장이 이들 장님과 같음을 비판하기 위하여 이 비유를 활용하였다.
원효는 이 비유를 끌어와 화쟁에 대해 설명한다. 누구든 코끼리를 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므로 옳지만[皆是], 누구도 코끼리의 전모를 보지 못한 채 부분을 전체로 오인하고 있으니 그르다[皆非]는 것이다. 한 교수는 이를 근거로 화쟁의 핵심이 바로 개시개비이니, 다른 사람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이는 ‘평화로운 다툼’의 과정을 통해 코끼리의 전모를 완성할 수 있다며 이를 4대강, 강정 등 한국사회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도 적용하자고 주장한다. 보수도 그래야 하지만 진보 진영도 정부쪽 이야기를 경청하라고 주문도 하였다. 도법 스님은 ‘진영의 감옥’에서 탈피하자며 4대강 문제 등에 정부쪽과 이에 반대하는 사람을 함께 불러서 토론회를 가졌고, 노동이나 종단 개혁, 최근의 서의현 사태에서도 이런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선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고 설핏 보면 균형을 갖춘 합리적 방식 같지만, 실제나 결과는 그렇지 않다.
화쟁이 개시개비인 것은 옳지만 화쟁의 핵심은 아니다. 개시개비는 화쟁의 출발점일 뿐이며 이는 관념의 해석일 뿐이다. 화쟁은 ‘대립물 사이의 연기적 깨우침’이다. 극렬하게 싸우던 두 집단이 서로 긴밀하게 의존하고 있어 상생하는 것이 모두 잘되는 길임을 깨우치면 싸움을 멈출 것이다.
한 이야기를 예로 들자. 신병이 추운 겨울날에 찬 물로 세수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소대장이 이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식당에 가서 온수를 달래라.”고 했다. 신병은 그렇게 했다가 고참에게 군기가 빠졌다고 두들겨 맞았다. 다음 날 아침 인사계가 신병에게 “식당의 김병장에게 내가 세수할 온수를 달래서 가지고 와라.”고 시켰다. 신병이 그리 하자 인사계는 신병에게 그 물로 세수하라고 일렀다. 소대장과 인사계 모두 신병에 대한 자비심도 있었고 개시개비의 화쟁적 사고를 하였다. 하지만, 소대장은 여러 조건을 고려하지 못하고 신병의 실체만 보았다. 반면에 인사계는 고참과 신병, 자신과 신병 사이의 연기관계를 파악하였기에 소대장과 다른 사고와 행동을 한 것이다.
세월호, 임금피크제, 서의현 사태 모두 마찬가지다. 대립자 사이에 놓인 조건과 인과관계를 무시하고 실체만 바라보고 개시개비하면, 관념은 가능할지라도 현실의 장에서는 화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양자를 불러다가 대화를 시켜서 도법 스님이 해결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 교수의 말대로 강간당한 소녀에게 가해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라는 것은 화쟁이 아니라 폭력이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대립자 사이의 조건을 형성하는 것 가운데 가장 강력한 요인은 권력이다. 권력이 심하게 기울어진 곳에서 화쟁은 가능하지 않다.
정부나 종단이 압도적으로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고 많은 진실을 은폐하는 상황에서 약자보고 진영의 감옥에서 벗어나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것은 아무리 동기가 순수하더라도 강자를 편든 것으로 귀결된다. (미국 연방대법관으로 그의 이름을 딴 법학대학원이 뉴욕시에 있을 정도로 명판결과 명판결문으로 유명한 벤저민 카아도조(Benjamin N. Cardozo)가 “법관으로 재임 중 중립적이었다고 생각한 판결은 나중에 보니 강자에게 기울어진 판결이었고, 재임 중 약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고 한 것은 나중에 보니 중립적이었다.”라고 한 것도 이런 관계를 고려한 발언이다.) 이런 결과를 모르고 계속 개시개비를 주장한다면 무지한 것이고, 알고 그런다면 이는 사악한 것이다.
그러기에 세월호든, 임금피크제든, 서의현 사태든 이 문제를 화쟁으로 해결하려면, 양자가 놓인 조건을 파악하고, 먼저 대화의 장만큼은 권력이 대칭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일에 실패하면 약자의 편에 서라. 그것이 바로 ‘공정한’ 화쟁을 이루는 길이다.